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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온라인 당비의생각</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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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17 Aug 2011 08:09: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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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고정수의 일본 탐구 09]&#039;민의&#039;의 딜레마</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62</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lt;b&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b&gt; | 칼럼니스트&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2010년 6월 2일. 한국에서는 지방선거가 한창이었던 바로 그날, 일본 정치계에서는 빅뉴스가 보도되어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토야마 총리의 사임 기자회견이 그것이었다. 지난해에는 정치자금 위장 문제를 둘러싸고 어머니한테서 9억 엔이나 “선물”을 받았었다는 것이 발각돼 국민들에게 불신감을 품게 만들었던 데다가, 올해 들어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실수를 연발하면서 오키나와 현 주민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화나게 했다. 지난 해 총선 전에 미군 기지를 최악의 경우에도 오키나와 현 밖으로 옮기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난해 9월 16일 국회에서 지명을 받은 지 266일 만에 사퇴를 함으로써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래 6번째로 짧은 재위기간을 기록하게 되었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그러고 보니 2006년에 5년에 걸쳐 장기 정권을 유지해왔던 고이즈미 총리가 “용퇴(勇退)”한 후에 취임한 세 명의 자민당에 속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타로 전 총리 3명이 모두 1년 정도의 단기 정권으로 끝나 버렸다. 사정은 각자 달랐지만 명확한 정책을 내세우지 못한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공통점이다. 이번 하토야마 총리 사임회견에서도 “국민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민의”의 의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게 한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부러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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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런 식으로 “민의”에 따라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민의”는 어디까지나 지금 살고 있는 이의 의견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가라타니가 말하는 “미래의 타자” 즉, 아직 태어나지 않는 이에 대해서 배려할 필요가 있는데, “민의”에 너무 많이 의지하면 지금 살고 있는 이의 이익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비참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다름 아니라 대의제의 위기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는 일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도 결국에는 선거(국민투표)를 통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가라타니 고진은 &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2003, 이매진, 송태욱 옮김.) 제 3장 &amp;lt;투표와 제비뽑기&amp;gt;에서 대표제의 최고 형태로 간주할 수 있는 보통선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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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amp;nbsp;우리가 대의제의 최고 형태라고 생각하는 보통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는 본래 의미의 ‘대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선출된 대표자는 자신들을 뽑아준 자에게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근대 의회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가는 당선된 뒤 다른 정당으로 옮겨도 되고 정책을 바꿔도 된다. 왜냐하면 투표한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그 사람에게 투표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치가가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또는 배신했다고 생각한다.(중략) 제한선거와 달리 보통선거는 아주 이상적인 대의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치가의 그러한 행동은 대의제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164쪽.)&lt;/font&gt;&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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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br /&gt;
&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amp;nbsp;보통선거를 바라는 자는 보통선거로 민의가 더욱 잘 대표될 걸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의회에 대한 실망과 반발이 분출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의회가 쓸데없는 존재처럼 보이게 된다. 보통선거는 진정한 ‘대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통선거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은 진정한 대의제를 찾는다. 진실로 대표되는 것을 찾는 것이다. (166쪽.)&lt;/font&gt;&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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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nbsp;그 결과 진정한 대표를 찾는 사람들은 느릿느릿 논의만 하고 있는 의회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 독재 권력을 환영하기에 이른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의회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의”가 더 충실하게 대표되는 듯한 선거나 투표의 형태를 취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한다. 전에 이 칼럼에서 소개한 아즈마 히로키의 &amp;lt;민주주의2.0 (=전자 투표에 의한 정치 운영 시스템)&amp;gt;도 그런 방향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생각이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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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amp;nbsp;국민투표는 그런 시스템(=전자식 투표 시스템, 필자에 의한 주석)으로 간단하게 실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회(대의제)는 불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경우를 전자식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민의를 직접 또는 진실로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애당초 ‘민의’란 무엇일까? 일반 사람들이 가진 의견은 사전에 정치가, 관료, 대중매체들에 의해 입력된 것이고, 자발적이라고 해도 그저 주어진 선택지에서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 대중매체가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국민투표의 결과는 끊임없이 부동(浮動)한다. (179쪽)&lt;/span&gt;&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br /&gt;
&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612A0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amp;nbsp;그런데 국민투표로 한 번 결정된 일은 간단하게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외국과 한 약속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국가로서 지니는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정한 것은 쉽게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의견을 바꾼 투표자들은 끊임없이 지금 자신들의 의견이 대표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더욱이 국민투표로 정한 결정이 실패로 끝난 경우, 누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잘못된 판단을 한 사람들 자신이자 ‘민의’ 자체다. 그러면 그 결과는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것을 포기하고 판단과 결정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나 관료조직에 맡겨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180쪽.)&lt;/span&gt;&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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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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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nbsp;다시 말해 일견 “민의”가 총리(대표자)를 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일본의 상황은 별로 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적인 체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의 위험한 징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보증하는 선거 제도는 없애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재 체제를 막을 수 있을까? 가라타니가 제창한 제비뽑기의 도입을 포함해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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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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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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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E8E8E&quot;&gt;&lt;b&gt;﻿&lt;/b&gt;&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E8E8E&quot;&gt;&lt;b&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b&gt; :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자란 100% 일본인. 2000년 말에 영화 &amp;lt;쉬리&amp;gt;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씨네21》에 &amp;nbsp;〈한 일본 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번역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웹진 《매거진t》에 〈나는 오사카 TV 오타쿠〉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년에 두세 번 한국에 여행을 간다. 한국을 방문하여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과 친교를 맺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div&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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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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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Jul 2010 09:30: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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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민주당을 생각하다</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61</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lt;b&gt;김신식&lt;/b&gt; |&lt;b&gt;&amp;nbsp;&lt;/b&gt;당비의 생각 간사&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6.2 지방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깨갱’모드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자만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시, 이번 선거의 주요 코드였던 ‘심판’이란 단어를 복기해보자. 적어도 투표에 참여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이 ‘예쁜 자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머리말로 달았다. 자식들 다 고놈이 고놈이지만, 그나마 괜찮은 놈이 민주당이기에 찍었다는 원칙. 역사는 민주당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위 ‘반(反)의 정서’로 국민들이 도와준 경우가 몇 번인가를 세어보자. 아니 횟수가 중요하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깨갱’할 때, 국민들이 투표로 도와줬던 그 순간의 농도를 측정할 때,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농도는 꽤 짙었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결과론적이다, 누구의 탓이다는 6.2 지방선거를 둘러싼 주요 ‘뒷담화’의 틈을 뒤집고 내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장면은, 민주당의 성배를 위해 독배를 들었다는 민주당의 서울시장 경선후보 이계안에 대한 이야기다. 이계안을 언급하는 것이 단순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의 ‘아쉬운 패배’를 분석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것보다 내가 촉구하는 것은 민주당의 어떤 태도이다. 앞에서 말한 ‘반(反)의 정서’로 대체 언제까지 일관할 것인가. 누군가는 플러스 - 마이너스, 영이라는 이 제로섬 게임의 틀을 깨야 한다. 나는 이 게임의 틀을 깨지 않는 한, 한나라당, 민주당에 대한 &amp;nbsp;‘도찐개찐론’을 여전히 철회할 마음이 없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gt;심판론 앞에 초조해진 또 하나의 정당, 민주당&amp;nbsp;&lt;/b&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039;MB 심판‘이라는 모토 아래, 이계안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워낙 ’심판‘이라는 모토가 주는 준엄함 때문인지, 당의 결정을 따른 이계안의 태도에 대해 언론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요 프레임은 “이제 우리를 위해 오실 심판자 한명숙님이여!”였다. 많은 사람들은 “두고봐라, 이명박과 오명박”으로 대동단결한 듯 했다. 심판이라는 정서가 주는 도전자 정신의 주입과 공유는 한명숙과 오세훈의 TV토론과 출구조사의 관련성에 대해 의외의 결과를 내놓았다. 한명숙은 생각보다 준비되지 않았고, 오세훈은 회가 거듭할수록 의기양양했다. 오히려 이 의기양양함으로 빚어진 마지막 TV토론에서의 오세훈의 태도는 분명 마이너스 였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손실을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출구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 한명숙이 TV토론에서 보인 어눌한 태도는 그리 중요한 &amp;nbsp;감점 요인은 아닌 걸로 판명되었다. 내가 잘 가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 점을 안심하고 있었다. “거 봐요, 뭐 TV 토론 사람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랬잖아요.”&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하지만, 국민들의 안심과 정당의 안심은 달라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은 분명 ‘심판’이라는 모토를 잘 ‘이용’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판을 ‘구성’할 줄만 알았지, ‘창작’할 여력은 역시 없었다는 걸 입증했다. 한명숙의 선전 뒤에 숨은 민주당의 불성실함을 우리가 애써 덮어줄 이유는 없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사람특별시’라는 이번 선거의 모토 안에서 기획된 공약들의 논리를 점검해보자. 공약의 논리를 관통하는 것은 철저히 ‘심판’이라는 모토 아래 ‘반(反)의 정서’를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여러분, 오세훈식 행정이 이러저러 했습니다. 너무나 엉망이에요”에 주렁주렁 달린, 반대 이야기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그럼으로 우리는 이렇게 하겠습니다의 논리. 상식적으로는 맞다. 근데 민주당은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내세운 분석안을 그럴듯하게 잘 포장은 했지만, 이 포장의 약발이 이번 선거뿐인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반대’를 넘어서, 그것에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식의 공약은 넘쳤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서울을 고민할 수 있는 공약은 빈곤했다. ‘반대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함으로써 국민들이 ‘그래도 이 친구들이 비교적 상황 판단을 잘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심리선에 적당하게 걸쳐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amp;nbsp;이번 선거에도 &amp;nbsp;국민들을 ‘헉!’하게 하는 민주당의 의외성은 없었다. 선거 준비를 정말 잘했냐고 묻는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또 한 번 국민들의 동정에 업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이번 정부의 행보를 통해 정말 “‘운빨’ 장난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의 ‘운빨’은 이번에도 적중했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민주당의 의외성이 돋보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이계안에 대한 이야기. 특히 이계안과 한명숙의 경선 과정이다. ‘정권 심판’이라는 모토의 농도가 워낙 짙어, 대중들이 봐 준 측면도 있지만, 경선 과정에서 tv토론을 거부한 채, 여론조사 형식으로 후보를 추대한 일은,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민주당은 후보 추대 과정에서, 사실 “우리에겐 한명숙 ‘씩이나’ 있다구!”를 외칠 정치적 전술을 펼쳐야 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조급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인물이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우리에겐 한명숙 ‘밖에’ 없다구!”였다. 물론 이 결핍과 빈곤의 절박함이 한명숙이라는 인물론을 돋보이게 한 건 유효했지만, 만약 ‘심판’이 그리 지배적인 테마가 아니었다면, (좀 더 세게 말해서, 이 ‘운빨의 코드’마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리 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그렇다면 한 가지. 이계안의 정책이 한명숙의 그것보다 더 뛰어난가? 그것을 장담할 순 없다. 다만, 이런 몇 가지는 적어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봤을 땐, 민주당에서 경선 과정 안에 토론을 넣었더라도, 한명숙은 이계안을 이기고 후보가 되었을 게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토론이라는 과정 자체를 없애고, ‘심판’을 준비하는 시간 절약의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토론을 통한 서울 시정에 대한 학습 효과였을 것이다. 이계안이 내세우는 서울 시정에 대한 생각, 한명숙이 내세우는 서울 시정에 대한 그것들을 주고 받으면서, 한명숙이 나름 서울을 학습할 수 있는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건 민주당 이미지 전반에도 심판이라는 선거 전략과 더불어, 민주당이 현실 정치 안에서 어떻게 한국 사회를 인식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할 때, 민주당은 장기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전술 하나를 놓친 셈이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gt;민주당마저 웃을 이유는 없어&amp;nbsp;&lt;/b&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다행히(?), 사람들은 적진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좀 모자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덮어 주었다. 그 안에 이계안도 들어가 있다. 그 또한 이 정서의 논리에 수긍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민주당은 힘을 얻어, ‘중단’과 ‘촉구’의 정치적 수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그래, 이러라고 뽑아준 것이다”라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정확히 이 시점이 민주당에게도 역풍이 올 수 있다는 위기의 징조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체감한다. 민주당이 야당으로 내세우는 그 ‘반(反)의 정서’가 남은 2년을 채운다면, 변덕 심한 대중들이 또 얼마든 다른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노무현 탄핵 이후 총선에서 눈물을 흘렸던 그들의 태도는 결국 자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절망했다. 그 절망이 지금 이 정부를 찍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민주당이 그렇게 강조하는 ‘뉴 민주당 플랜’이라는 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혹시 이게 위기 때만 쓰이는 민주당 스스로의 자위 기구가 아니길 부디 믿고 싶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gt;&amp;nbsp;결빙 효과를 깨야 한다&lt;/b&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특히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단일화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 진보정당을 ‘이상주의’로 매도했던 프레임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 내 현실 정치를 구성하는 정당, 언론, 시민의 노력에 대한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게끔 만든다.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라는 영화를 비평하는 진보주의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그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뛰어들면 철이 지났거나, 너무나 생뚱맞다고 힐난한다. TV토론에서 노회찬이 오세훈의 입을 납작하게 해주길 바라는 대중의 욕망이, 정작 표로 이어지지 않았던 현실이 아직 한국 사회의 진실이다. (많은 네티즌은 답답한 tv토론을 지켜보면서, 오세훈의 복지를 입만 살아 있는 ‘오랄 복지’라고 평가하면서도, 또한 노회찬의 ‘입만을’ 빌리고 싶어 했던 듯하다) &amp;lt;백 분 토론&amp;gt;에 나오는 진보적 달변가와 한국 현실 정치에 뛰어든 그들이 다르다고 혹은 아직 모자라다고 간주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덧씌운 편견이 아닐까. 우리는 정작 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쾌락 앞에 그 현실이라는 ‘구성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먼저 타이르는 건 아닐까. 민주당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민주당 자체에 또 하나의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이 이어져선 안 될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귀결되는, 정치사회학에서 설명하는 ‘결빙 효과’를 깨기 위해선, 우리는 꾸준하게 진보 정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공간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 정당 스스로의 노력 또한 필요함은 물론이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2010. 6.6 ⓒ 김신식&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margin-left: 8em; &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8pt;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E8E8E&quot;&gt;&lt;b&gt;김신식&lt;/b&gt; : 당비의 생각 간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재학중이며,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빠돌이’다. ‘석사,박사’라는 해물떡국집을 개업해볼까 고민하다가, 주위의 만류로 오히려 한정식집으로 판을 더 크게 벌여볼까 궁리중이다. http://blog.aladdin.co.kr/717962125&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gt;&lt;/div&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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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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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Jun 2010 11:00: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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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고정수의 일본 탐구 08] 다시, 문화를 생각하다</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60</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lt;b&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b&gt; | 칼럼니스트&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내가 젊었을 때 즐겨 읽었던 작가들 중에는 츠츠이 야스타카라는 SF소설가가 있다. 한국에서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amp;lt;시간을 달리는 소녀&amp;gt;(2009)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더 알려져 있을지 모른다. 츠츠이는 그 외에도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걸쳐 &amp;lt;나에 관한 소문&amp;gt;이나 &amp;lt;허인들&amp;gt;, &amp;lt;허항선단&amp;gt;을 비롯한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작가다. 또한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최근 출시된 에세이 &amp;lt;바보의 벽&amp;gt;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에세이스트로서도 정평이 나 있다. 이번 달은 그런 츠츠이 야스타카가 1976년에 발표한 에세이 &amp;lt;사설박물지&amp;gt;를 서론으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제목 그대로 여러 동식물의 기묘한 생태를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인간 사회에 대해서 비평하는 그 에세이 안에서 츠츠이는 유대목에 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처음에 나는 예를 들어 주머니늑대 등, 늑대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늑대의 동족임이 틀림없는 줄 알았다.(중략) 그러나 분류학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놀랍게도 (중략) 주머니늑대는 제 아무리 늑대를 닮았다고 하더라도 늑대와 동족이 아니고 또 (중략) 주머니두더지가 아무리 두더지와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눈이 퇴화되고, 구덩이를 파고 지하 생활을 하더라도, 두더지와는 동족이 아니라 역시 유대목이라는 것이다. (중략) 그럼 어째서 유대목에 속하는 동물들 각자가 몇 진수아강(眞獸亞綱)에 이렇게 유사한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amp;lt;진화의 평행현상&amp;gt;이라 불리는 불가사의한 자연의 장난이다.(&amp;lt;사설박물지&amp;gt;마이니치(每日) 신문사 1976 165~167쪽, 고정수 옮김)&lt;/span&gt;&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곧이어 츠츠이는 그 &amp;lt;진화의 평행현상&amp;gt;을 인간계에 적용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 부분은 이번 논고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생략하기로 하고, 내가 윗 글을 인용한 이유는 그것이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예로 들어도 일본에서는 본격문학을 비롯해 미스터리, SF, 판타지, 시대 소설 등, 다양한 장르가 각각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고, 또 같은 미스터리 중에서도 본격파, 사회파, 하드보일드, 경찰물, 철도 미스터리 등, 여러 가지 장르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그런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이, 모두 외부(미스터리 소설의 경우에는 영국이나 미국)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면서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차차 변해가고, 최종적으로는 일본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는 일이다. 마치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다른 대륙과 분리되는 바람에 독자적으로 진화를 한 결과, 주머니늑대나 주머니두더지가 생긴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둘 다 대륙과의 단절이 독자적인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데, 유대목에 대해서는 그 설명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일본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은 역시 가라타니 고진의 생각을 참고로 하는 게 좋을 것이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가라타니 고진은 &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 제2장 &amp;lt;일본정신분석&amp;gt;에서 사상사가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각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마루야마는 고대부터 일본 사상사를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사상사에는 다양한 개별 사상의 좌표축을 형성하는 원리가 없고, 어떤 것을 이단으로 만드는 정통이 아니라 모든 외래 사상이 수용되고 공간적으로 잡거하며, 거기에 원리적인 대결이 없기 때문에 발전도 촉진도 없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외부에서 도입된 사상은 결코 ‘억압’되는 일이 없이 단지 공간적으로 ‘잡거’할 뿐이다. 새로운 사상은 본질적인 대결이 없는 상태에서 보존되고 새로운 사상이 오면 갑자기 꺼내진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는 뭐든지 있게 된다.(&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송태욱 옮김, 이매진, 70~71쪽)&lt;/span&gt;&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br /&gt;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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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마루야마 마사오는 이것을 서양과 대비해서 고찰했지만, 중문학자이자 비평가인 다케우치 요시미는 아시아 국가들과 대비하여 생각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 서양과 접촉했을 때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에서는 반동적인 ‘저항’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근대화’를 이루어냈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br /&gt;
&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다케우치 요시미는, 그 이유가 일본에는 ‘저항’해야 할 ‘자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원리적인 좌표축이 있다는 것은 ‘발전’보다도 오히려(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정체’를 초래한다.(중략) 다시 말해 마루야마 마사오도 다케우치 요시미도, 일본에는 확고한 자기라든가 원리 같은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뭔가 확고한 원리나 자기가 있다면 밖에서 들어온 것과 충돌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일본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깥에서 온 것이 정착한다면, 그때는 그것들이 ‘변조되었을’때 뿐이다. (&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송태욱 옮김, 이매진, 71~72쪽)&lt;/span&gt;&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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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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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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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이런 식으로 일본에 있어서 다양한 것이 ‘잡거’한다는 것을 일단 인정한 다음에 가라타니 고진은 그 ‘변조하는 힘’이란 무엇인지를 고찰하고 최종적으로 일본에 독특한 표기 시스템, 즉 한자와 가나의 병용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아시다시피 일본어에서는 12세기 이후 한자와 가나(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섞인 글이 표준화되었는데 그 복잡한 표기 시스템이야말로 ‘아무것이나 받아들이지만 기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전통을 가능케 한다고 지적했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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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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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둘째로 더 중요한 것은, 한자는 일본어 내부로 흡수되면서도 동시에 항상 외부적인 것에 그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자로 쓰인 것은 외래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중략) 외래어는 말해질 때는 외래어라는 사실이 그다지 의식되지 않지만 쓰일 때는 가타카나가 외래성을 명시한다. (중략) 다시 말해 한자나 가타카나로 표기되는 한 외래적인 것의 외래성이 언제 어디까지나 보존되는 것이다. (&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송태욱 옮김, 이매진, 84쪽)&lt;/span&gt;&lt;/fon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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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margin-left: 8em; &quot;&gt;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C3C04&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 &quot;&gt;예컨대 한자나 가타카나로 수용된 것은 결국 외래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받아들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외래관념은 아무래도 한자나 가타카나로, 즉 표기에서 구별되는 이상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내면화되는 일도 없고 또 저항도 받지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저 옆으로 치워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는 외래적인 것이 모두 보존되는 것이다. (&amp;lt;일본정신의 기원&amp;gt;송태욱 옮김, 이매진, 85쪽)&lt;/span&gt;&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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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amp;nbsp;가라타니 고진은 그렇게 1990년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의 사상에 있어서는 한자와 가나가 섞인 표기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는데 그 후 2000년대에 그 논문을 책으로 간행했을 때 그런 표기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추가했다. 그것이 “동아시아의 역사적 지정학(地政學)”인데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생각할 때 중국과 한국, 특히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아시다시피 일본 열도에는 옛날부터 수많은 종족이 도래해 살고 있었지만 군사적인 정복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걸 가지고 일본이 “신국”인 증거라는 망언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건 일본과 중국, 몽골, 또는 러시아 사이에 한반도가 있어, 그곳에서 침입이 저지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이 끊임없이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 국가의 윤곽을 작위적으로 유지하려고 했었던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자신의 윤곽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소비되지 않고, 또 밖에서 무엇이든 받아들이지만 받아들인 것들을 실용적으로 처리해 전통 규범의 힘에 매이지 않고 창조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이 지금 문화적 다양성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한반도 덕분? &amp;nbsp;아무튼 일본의 문화적 독자성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걸 동아시아의 역사적 지정학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2010. 6.1 ⓒ 고정수&amp;nbsp;&lt;/div&gt;
&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br /&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 style=&quot;margin-left: 4em; &quot;&gt;
&lt;/div&gt;
&lt;div style=&quot;margin-left: 8em; &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E8E8E&quot;&gt;﻿&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quot;&gt;&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8E8E8E&quot;&gt;&lt;b&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b&gt; :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자란 100% 일본인. 2000년 말에 영화 &amp;lt;쉬리&amp;gt;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씨네21》에 &amp;nbsp;〈한 일본 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번역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웹진 《매거진t》에 〈나는 오사카 TV 오타쿠〉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년에 두세 번 한국에 여행을 간다. 한국을 방문하여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과 친교를 맺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gt;&lt;/div&gt;
&lt;/div&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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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gt;</description>
			<category>당비의생각</category>
			<category>가라타니 고진</category>
			<category>고정수의일본탐구</category>
			<category>마루야마 마사오</category>
			<category>시간을 달리는 소녀</category>
			<category>일본문학</category>
			<category>일본정신의 기원</category>
			<category>지정학</category>
			<category>츠츠이 야스타카</category>
			<category>한반도</category>
			<category>히라가나</category>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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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dangbi.tistory.com/60#entry60comment</comments>
			<pubDate>Thu, 03 Jun 2010 11:40:4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알려드립니다</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7</link>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최근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amp;lt;온라인 당비의생각&amp;gt;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부 논의와 정비가 이루어지는 대로, 정상적인 업데이트 시일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amp;nbsp; 독자 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바랍니다.&lt;/SPAN&gt;&lt;br /&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간사 김신식&lt;/SPAN&gt;&lt;br /&gt;
&lt;/DIV&gt;
&lt;DIV&gt;&lt;br /&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notice</category>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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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May 2010 10:00: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느리고,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이기는 세상</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9</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최진성&lt;/STRONG&gt; | 영화 감독&lt;/P&gt;
&lt;P&gt;&amp;nbsp;4대강이 무서운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나는 환경운동연합이 제작하는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프로젝트 &amp;lt;저수지의 개들&amp;gt;’을 연출하기 위해 남한강 유역을 3회에 걸쳐서 다녀왔다. 2월초부터 3월 중순까지 2주 간격으로 다녀온 여주 일대의 남한강 유역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여주 환경운동연합의 가이드로 아직까지 개발 되지 않은 곳과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곳을 비교하면서 돌아보았던 나는, 남한강에 2주 간격으로 다시 올 때마다 아름답고 멀쩡했던 강이 몰라볼 정도로 바뀌어가고 있음에, 그 개발의 속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lt;br /&gt;
&amp;nbsp;&amp;lt;저수지의 개들&amp;gt;은 아름다운 강들이 개발에 부서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며 제작하는 일종의 뮤직다큐멘터리이다. 4대강을 돌며 4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될 예정인 이 뮤직다큐멘터리는 우선 4월 초에 첫 번째 편인 ‘take1. 남한강’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인류애를 가득 담아 노래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밴드’ 윈디 시티가 남한강과 다음 세대를 위하는 마음을 모아 &amp;lt;위하여&amp;gt;란 노래를 만들어 주었고, 윈디 시티와 우리는 남한강 공사현장으로 가서 게릴라 공연을 했다. 거기서 윈디 시티는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춤을 췄으며, 꼬마 아이는 연을 날렸고, 나는 장난감 포크레인을 가지고 끌고 다니며 놀.았.다. 강을 파헤치는 무시무시한 포크레인의 힘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고 싶었던 일은 이렇게 강과 더불어 노래 부르고, 하늘에 연을 높이 날리고, 구석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amp;lt;저수지의 개들&amp;gt; take1. 남한강’은 포크레인의 무쇠에 맞서는 방식으로서 우리만의 소박한 놀이를 기록한 뮤직비디오다. &lt;br /&gt;
&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inline;&quot;&gt;&lt;img src=&quot;http://cfile2.uf.tistory.com/image/140C27044BFC6DEA796C3D&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jusuzi.jpg&quot; height=&quot;348&quot; width=&quot;234&quot;/&gt;&lt;/div&gt;&lt;br /&gt;
&lt;br /&gt;&amp;lt;저수지의 개들&amp;gt; take1. 남한강’의 유투브 동영상&lt;br /&gt;
&lt;object width=&quot;640&quot; height=&quot;385&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www.youtube.com/v/-z7lgTLIvSo&amp;amp;hl=ko_KR&amp;amp;fs=1&amp;amp;&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gt;&lt;/param&gt;&lt;embed src=&quot;http://www.youtube.com/v/-z7lgTLIvSo&amp;amp;hl=ko_KR&amp;amp;fs=1&amp;amp;&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640&quot; height=&quot;385&quot;&gt;&lt;/embed&gt;&lt;/object&gt; &lt;/P&gt;
&lt;P&gt;&amp;nbsp;촬영 당일 날은 윈디 시티와 제작진들과 더불어 일반 시민들도 함께 했는데, 윈디 시티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우리 스탭들도 그랬으며 그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남한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스탭 중의 한 명은 강천보 공사현장을 보고 ‘지옥’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개발의 폭력성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친환경적인 개발이란다. 실은 나 역시도 2월초에 남한강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풍경인지는 몰랐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 의식에는 애초부터 공감하고 있었으나, 공사현장을 직접 가 본 다음에야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던게다.(그런 의미에서 어떤 식으로든 4대강 개발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오시길 당부한다.) 무참하게 박살난 강과 습지와 단양쑥부쟁이 등을 보면서 우리가 강과 물고기와 풀들에게 행한 폭력이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미래에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더랬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래의 친구들에게,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윈디 시티는 이렇게 노래한다.&lt;/P&gt;
&lt;P&gt;&lt;br /&gt;
&lt;EM&gt;시냇물은 졸졸졸&lt;br /&gt;
고기들 왔다 갔다&lt;br /&gt;
아이들을 뛰놀게 해주세&lt;/EM&gt;&lt;/P&gt;
&lt;P&gt;&lt;EM&gt;우리가 전해 받은 이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lt;br /&gt;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세 우리 모두 모두 다같이&lt;br /&gt;
길이 보전될 강산을 위하여&lt;/EM&gt;&lt;/P&gt;
&lt;P&gt;&lt;br /&gt;
&amp;nbsp;지방 선거가 2주도 남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대강 사업 반대와 무상급식에 관련한 언급을 하는 것 자체를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한다고 들고 나왔다. 참, 황망한 일이다. 선거가 코앞인데 가장 정치적인 쟁점들을 언급하지 말라니 말이다. 허나 굴하지 않고 천주교와 불교 등의 종교단체와 여러 시민단체들이 이에 불복하며 기도를 하고, 퍼포먼스를 진행 중이다. 나는 이들이 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도’가 ‘자본과 개발의 빠른 속도’ 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딱딱한 것을 이기고, 느린 것이 빠른 것을 이기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지만,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딱딱한 것 같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냐, ‘자본과 공존하는 폭력’이냐를 두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무말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으라니까, 그냥 조용히 느리게 투표장에 가자. 그렇게 보여주면 된다. &lt;/P&gt;
&lt;P&gt;(&amp;lt;저수지의 개들&amp;gt;은 이제 ‘take2-낙동강 편’을 윈디 시티만큼이나 아름다운 뮤지션과 함께 만들기 위해 천천히 느릿느릿 준비 중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딱딱한 포크레인 앞에서 약하고, 부드럽고, 느리게 놀 것이다. 윈디 시티의 노래 ‘위하여’는 &amp;lt;저수지의 개들&amp;gt; 공식 블로그(&lt;A href=&quot;http://blog.naver.com/dogreservoir&quot;&gt;http://blog.naver.com/dogreservoir&lt;/A&gt;)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다.)&amp;nbsp;&amp;nbsp;&amp;nbsp; &lt;/P&gt;
&lt;P&gt;&lt;br /&gt;
&lt;EM&gt;사람들아&lt;br /&gt;
내 얘기를 좀 들어보소&lt;br /&gt;
이 금수강산이&lt;br /&gt;
그저 우리들만의 것인가?&lt;/EM&gt;&lt;/P&gt;
&lt;P&gt;&lt;EM&gt;탐욕에 눈이 멀어 우리가 얻을 게 무언가?&lt;br /&gt;
우리는 돈을 먹고 살수는 없다네&lt;br /&gt;
잊지 말게나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lt;/EM&gt;&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quot;&gt;&lt;FONT color=#8e8e8e&gt;&lt;STRONG&gt;최진성&lt;/STRONG&gt; : 독립영화 감독이다. &amp;lt;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amp;gt;로 2001년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을, &amp;lt;그들만의 월드컵&amp;gt;으로 2002년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amp;lt;히치하이킹&amp;gt;으로 2004년 대한민국영화대상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계속해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있다. 현재 한성대학교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lt;/FONT&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59-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59-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59-2&quot; class=&quot;entry-ccl-nd&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3.png&quot; alt=&quot;변경 금지&quot;/&gt;
	&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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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gt;</description>
			<category>당비의생각</category>
			<category>4대강</category>
			<category>4대강반대</category>
			<category>남한강</category>
			<category>단양쑥부쟁이</category>
			<category>윈디 시티</category>
			<category>저수지의 개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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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최진성</category>
			<author>온당비</author>
			<guid>http://dangbi.tistory.com/59</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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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May 2010 09:47: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039;없음&#039;을 위한 민주주의 - 욕망의 교차 공간, 신도림역에 서서</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8</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김신식&lt;/STRONG&gt; | 당비의 생각 간사&lt;/P&gt;
&lt;P&gt;&lt;br /&gt;
&amp;nbsp;나는 운동화를 비교적 빨리 바꾸는 편이다. 운동화 뒷쪽이 빨리 벌어져 너덜너덜해지기 때문이다. 내 운동화와 신도림역은 상극인 듯하다. 학교 위치상, 꼭 신도림역을 거쳐야 하는데, 지하철 안에서 신도림역 이름만 나오면, 미리 인상이 찌푸려진다. 오늘도 조심조심 걸어야지. 사람들이 날 밀더라도 짜증내지 말아야지. 걸을 때 되도록 내 뒷사람 구두 굽에 안 닫게 해야지. 하지만, 세상은 결심과 반대의 장면을 나에게 선사한다. 작년이었나. 킬 힐을 신은 여학생에게 역 계단에서 한 번 밟힌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산지 얼마 안 된 신발의 뒷 굽이 확 벌어져 신경질이 난 적이 있었다. 싸게 산 덕분이라 자신에게 위안을 보냈지만, 그런 경험이 갈수록 쌓이다보니, 신도림역은 나에게 &#039;신경질역&#039;이 되어버렸다.&amp;nbsp; 그러면서 나는 이 역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amp;nbsp; &lt;/P&gt;
&lt;P&gt;&amp;nbsp;신촌 방향과 강남 방향으로 갈리는 두 플랫폼. 이곳에 오면 어떤 욕망이 보인다. 내가 살면서 추구해야만 하는 그 욕망. 그것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통로가 여기 있다. 서울에 진입해야만 하는 사람들. 갈수록 이 진입로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정치인들은 &quot;지읍시다, 세웁시다, 만듭시다!&quot;라고 주절대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은 없어져야 할 것이 많다. 기술이 늘어나고, 매체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감각이 늘어난다. 내가 &#039;발산형 사회&#039;라고 부르는 현상. 모든 에너지들이 발산되는 구조. 이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그 피로도가 더해진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피로도를&amp;nbsp; &#039;있음&#039;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안이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039;없음&#039;을 위한 민주주의다. &lt;/P&gt;
&lt;P&gt;&lt;STRONG&gt;‘질서적’ 민주주의를 벗어나 &lt;/STRONG&gt;&lt;/P&gt;
&lt;P&gt;&amp;nbsp;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혼란이라고 생각하며, 민주주의는 이 혼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의 권력을 잡은 자들이 질서라는 개념을 민주주의의 가장 큰 효과라고 강조하면서, 그들은 이 질서가 주는 가지런한 자유를 자신들의 노력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적한 것은, 사람들의 불안이다. 사람들은 늘 &#039;있음&#039;에 친숙해져야 하며, 이 &#039;있음&#039;에 기반을 둔 사회적 구조에 천착한다. 그러하여, 자신들의 일상에 &#039;있음&#039;을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고로 &#039;없음&#039;은 늘 민주주의의 적으로 여겨진다.&amp;nbsp; &lt;/P&gt;
&lt;P&gt;&amp;nbsp;정전이 일어난 당신, 그리고 이웃의 집을 상상하기. 사람들은 정전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그 고요함의 에너지를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 안에서, &#039;있음&#039;이 천착하는 존재론적 안전의 구조. 그러므로, 사람들은 &#039;있음&#039;에 대한 사고만으로 이 세상이 움직인다고/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상력이라는 말, 이 말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각자의 사연은, 늘 &#039;있음&#039;안에서만 작동해야 하는 규범이 발생한다. &#039;없음&#039;에 대한 삶을 늘 혼란으로 규정하며, 심지어 그 &#039;없음&#039;의 삶이 주는 행복을 비현실적이라며 몸부림친다. &#039;발산형 사회&#039;안에서, 사람들이 저절로 표출하게 되는 언어 그리고 감정들. 이 언어와 감정을 배출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불안한 판단과 자기 검열.&amp;nbsp; &lt;/P&gt;
&lt;P&gt;&amp;nbsp;결국 &#039;극단적 없음&#039;을 경험하지 못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삶 안에서, 그 삶을 유지하는 에너지 흐름이 중단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039;발산형 사회&#039;의 비극에 동참한다. 이 비극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언어들이 나의 몸 안과 밖에 넘쳐난다. 현대인의 고독과 무관심을 반영하는 메일 함 속 스팸 메일의 홍수, 나와 타인의 모호한 감시 경계 속에서 불안과 의심의 언어를 조장하는 &#039;뒷담화&#039;라는 현대 사회의 고도화된 안식처. 지나치게 큰 웃음과 울음. 방 안에 무엇 하나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걱정하게 되는 미디어 환경과 장소의 합일. 이것을 추동하는 도시들.&amp;nbsp; &lt;/P&gt;
&lt;P&gt;&amp;nbsp;&#039;있음&#039;에 기반을 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상상력.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이 민주주의를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상력이란 개념은 늘 현재의 &#039;있음&#039;을 둘러싼 포장의 언어가 되었다. 그 포장을 풀었을 때 사람들이 확인하는 것은 냉소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039;있음&#039;이 주는 위험을 발견할 때라도, 그 &#039;있음&#039;을 경고하고, 성찰하는 이들의 시선은 &#039;극단적 없음&#039;을 늘 불온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amp;nbsp; &lt;/P&gt;
&lt;P&gt;&amp;nbsp;단순한 절약/ 검약 정신을 챙기기?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039;정비식&#039;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039;비방할&#039; 가능성이 큰 &#039;파괴적&#039; 민주주의. 나는 이 민주주의의 현실적 실천의 언어를 여기서 제시할 순 없다. 다만, 꿈꾼다. 작은 프라이드 차 안에 몇 명이 들어가는지 기네스북 기록을 세워보려는 자들이 채운 풍경 같은 이 곳, 신도림역. 나는 차라리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 수용하기 위해 구획을 짓는 민주주의가 아닌, 이 공간을 파괴하여 새로운 풍경을 제시하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이다.&amp;nbsp; &lt;/P&gt;
&lt;P&gt;&lt;STRONG&gt;‘있음’의 굴레를 탈출하자 &lt;/STRONG&gt;&lt;/P&gt;
&lt;P&gt;&amp;nbsp;강수돌 선생이 말하는 &#039;팔꿈치 사회&#039;를 살아가는 타인이, 상대방을 이리저리 치면서 길을 갈 때, 그 길로 인해 생기는 짜증을 안 생기게 해달라는&#039;나&#039;의 요구는, 기존의 &#039;있음&#039;을 확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공간의 &#039;없음&#039;으로 인하여, 욕망의 흐름 자체가 완전히 절단될 때. 그 절단이 주는 충격과 파격은 진보진영 특유의 &#039;묵시록 효과&#039;가 주는 과장된 경고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 안에 스며든 생각보다 무덤덤한 현실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lt;/P&gt;
&lt;P&gt;&amp;nbsp;이런 상상과 실천을 관계 맺는 것을, &#039;혁명&#039;과 &#039;급진&#039;이라고 쉽게 부르는 진보들도 문제고, 그것을 &#039;불안&#039;과 &#039;혼란&#039;이라 지적하는 보수도 문제인 지금. 실천의 언어는 갈수록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사유의 언어는 계속 &#039;있음&#039;이란 상품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윤리적 선만 긋는다.&amp;nbsp; &#039;있음&#039;을 위한 민주주의에서 내가 늘 느꼈던 불안함이란 건, 내 운동화가 타인의 움직임 때문에 너덜너덜해졌다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느껴지는 창피함도 아닐 것이다. 내가 맨발로 이 땅을 걸어갈 수 있다는 행복. 그것을 행복이 아니라, 현실적 불안이라 보는 사회적 시선의 감옥에 스스로가 나오길 싫어한다는 것이 아닐까. 고로 이 행복 자체를 상상하는 게 점점 더 희미해진 현실.&amp;nbsp; &#039;있음&#039;을 위한 민주주의를 신봉하라고 설득하는 이 감옥 안에 산 지 꽤 된 것 같은데, 나는 오늘도 자발적으로 이 감옥의 창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quot;&gt;&lt;FONT color=#8e8e8e&gt;&lt;STRONG&gt;김신식&lt;/STRONG&gt; : 당비의 생각 간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재학중이며,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빠돌이’다. ‘석사,박사’라는 해물떡국집을 개업해볼까 고민하다가, 주위의 만류로 오히려 한정식집으로 판을 더 크게 벌여볼까 궁리중이다. &lt;/FONT&gt;&lt;A href=&quot;http://blog.aladdin.co.kr/717962125&quot;&gt;&lt;FONT color=#8e8e8e&gt;http://blog.aladdin.co.kr/717962125&lt;/FONT&gt;&lt;/A&gt;&lt;br /&gt;
&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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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gt;</description>
			<category>당비의생각</category>
			<category>강수돌</category>
			<category>민주주의</category>
			<category>신도림역</category>
			<category>팔꿈치 사회</category>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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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May 2010 09:24: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고정수의 일본 탐구 07]『1Q84』 읽기를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에 관하여</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5</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STRONG&gt; | 칼럼니스트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지난해 일본 출판업계 최대의 이슈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5년 만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은 출판되기 전부터 예약이 쇄도했을 뿐 아니라 출판되자마자 거의 모든 서점에서 매진됨과 동시에 1권과 2권이 각각 2009년 베스트셀러 1,2위를 차지하는 등 모종의 사회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 현상에 대해서 문학계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1Q84』가 출판된 지 2개월 만인 7월에는 연구서 『무라카미 하루키 ‘1Q84’를 독해하기』와 요모타 이누히코 · 가토 노리히로를 비롯한 35명의 논객들이 쓴 『1Q84』 리뷰를 모은 『무라카미 하루키 ‘1Q84’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출간되고, 그 후에도 「서사론으로 읽는 무라키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오오츠카 에이지), 「무라카미 하루키 전기 ‘1Q84’의 제네시스」(스즈키 카즈나리) 등 수많은 비평이 발표되었다. 내용을 보자면 단순한 해설서에 그친 것에서부터 본격적인 비평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리뷰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소개하려고 한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칼럼니스트 오다지마 타카시가 잡지 《SIGHT》 2009년 가을호에 발표한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 오다지마는 원래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노르웨이의 숲』 이전의 작품을 모두 읽었지만 어느새 멀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20년 만에 읽게 된 『1Q84』는 1권의 3분의 2쯤에서부터 이야기가 스릴링(Thrilling) 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그 전개력에 감탄한 반면 그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길고 긴 복선이 거의 별개와 같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긴 시간동안 독자를 “방치”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소설작법에서는 “실격” 대접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최종적으로는 도중에 주저 않지 않고 “마지막까지 읽으면 반드시 재미있을 것이다”라고 결국 추천까지 하게 될 테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엔터테인먼트적인 관점으로 비평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오다지마 타카시의 비평도 들어맞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특히 요사이 독자들의 인내심에 대해서 지적한 부분은 어느 정도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는 것 같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라이트 노벨(Light Novel, 10~20대를 대상으로 한 일본 소설을 통칭)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1Q84』의 길고 긴 복선을 참을 수가 없어 도중에 읽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트위터와 인내심의 상관관계&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하기야 요즘 들어 일본에서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반면 욕망을 빨리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트위터 붐이다. 트위터란 2006년 미국의 잭 도시 · 에번 윌리엄스 · 비즈 스톤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마이크로 블로그’ 또는 ‘미니 블로그’로서 샌프란시스코의 벤처기업 오비어스가 처음 개설했는데, 트위터(=지저귀다)라는 그 이름 그대로 재잘거리듯이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짧게 올릴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다. 한 번에 쓸 수 있는 글자 수도 최대 140자로 제한되어 있다는 게 그 특징이다.(글자 수 제한을 없앨 수 있는 설정도 가능하지만 되도록 피해 달라는 것이 트위터 관리자 쪽의 요청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트위터는 블로그의 인터페이스에 미니홈페이지의 ‘친구 맺기’ 기능과 메신저의 신속성을 갖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서, 관심 있는 상대방을 따라 읽는 ‘팔로우(follow)’라는 독특한 기능을 중심으로 소통한다. 이는 다른 SNS의 ‘친구 맺기’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상대방이 허락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뒤따르는 사람’ 곧 ‘팔로어(follower)’로 등록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시다시피 웹에 직접 접속하지 않더라도 핸드폰의 문자(SMS)나 스마트폰 같은 휴대기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글을 올리거나 받아볼 수 있으며, 댓글을 달거나 특정 글을 다른 사용자들에게 퍼트릴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류하는 ‘빠른 소통’이 가장 큰 특징으로써 속보를 장점으로 하는 세계적 뉴스채널 CNN을 앞지를 정도의 신속한 ‘정보 유통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트위터를 이용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유명하며, 기업들도 홍보나 고객 불만 접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9년 5월까지 전 세계 트위터 사용자 수는 약 3200만 명에 달했다.(이상 트위터 설명은 네이버 백과사전을 바탕으로 작성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일본에서는 2008년 4월부터 트위터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지난해부터 하토야마 총리가 이용하기 시작하는 등 사용자가 늘어가고 있다. 전에 이 칼럼에서 소개한 아즈마 히로키도 자신의 생각을 트위터를 통해 널리 보급하고 있다. 또한 2010년 4월 중순에 시작된 우에노 쥬리와 에이타 주연의 미니 시리즈 〈솔직하지 못해서〉는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남녀들 사이의 연애 이야기를 펼친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제로(00) 연대에 융성한 블로그를 능가할 거라고 예상되는 그 배경에는 앞서 말한 “욕망의 빠른 충족”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이제 일본 사람들은 블로그에 적힌 겨우 원고지 5~10매 분량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인내심마저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2010. 5.1 ⓒ 고정수&amp;nbsp;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8e8e8e&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STRONG&gt; :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자란 100% 일본인. 2000년 말에 영화 &amp;lt;쉬리&amp;gt;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씨네21》에&amp;nbsp; 〈한 일본 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번역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웹진 《매거진t》에 〈나는 오사카 TV 오타쿠〉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년에 두세 번 한국에 여행을 간다. 한국을 방문하여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과 친교를 맺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amp;nbsp; &lt;/SPAN&gt;&lt;br /&gt;
&lt;/FONT&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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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당비의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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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팔로어</category>
			<author>온당비</author>
			<guid>http://dangbi.tistory.com/55</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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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3 May 2010 10:43:2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좌파는 군대에 대해 어떻게 묻고, 대답할 것인가?</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양승훈&lt;/STRONG&gt; | 문화연구자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두 권의 책이 있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이다. 앞의 책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명곤이 추천사를 썼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련소에서 “엄마!”를 외쳤던 이야기와 훈련을 받으면서 겪었던 고충, 그 외에 ‘카타르시스’라는 측면에서 건빵 먹던 이야기, 뽀글이를 끓여먹던 이야기, 축구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들이 군대에 대해 말할 때 등장하는 “사내자식은 역시 군대를 갔다와야해”라는 말과 대구를 이룬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는 그 전형성을 충족하는 이야기들을 펼친다. 그것들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라면 알만한 이야기들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책의 저자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았다. 102보충대, 306보충대에 가서 전방으로 가거나 논산훈련소로 가서 육군이 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군대를 갈 건지에 대해 전략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학원 수강’을 해 ‘공인영어점수’를 획득하거나 ‘통역/번역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군대에 가서도 ‘그들’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고참이 무섭거나 훈련이 고된 것에 대해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말 시간에 부대 인터넷방에서 ‘싸이질’을 하거나 ‘스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한다. 하루 일과시간 짬짬이, 그리고 일과 이후의 ‘연등 시간’등도 그냥 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그들은 그 순간에도 ‘학습’을 한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군대 생활의 ‘영예’는 군사주의적인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 아니다. 그들은&amp;nbsp; ‘무식한’ 신체에 대해 조롱한다. 외려 그들은 군대에서 ‘스펙’을 쌓고 ‘경력 관리’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고시 합격’, 수능시험을 다시 치러 획득하는 ‘학벌 세탁’, ‘공인영어시험 고득점’ 등을 준비한다. 제대 후 복학해서 ‘학교 적응’하려 하는 예비역들을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무시한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는 그들의 자기 서사를 보여준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여기에는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위계에 따른 구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육군 전투병으로 기어이 가지 않는 그들은 예전의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다. 이들에 대해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와 ‘평화’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데 좌파들이 무기력한 지점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amp;nbsp;‘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라면 모를만한, 군대 잘 다녀온 ‘그들’?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일련의 중요한 시간들을 떠올려 보자. 2001년 12월에 ‘여호와의 증인’처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이유가 아닌, 오로지 군대의 폭력성에 대한 거부를 이유로 오태양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 이듬해부터 나동혁 ․ 염창근 그리고 숱한 사람들의 병역거부가 이어졌다. 당시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세력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권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등을 만들면서 이에 대응했다. 이어 2005년에는 군대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린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다. 1월에 육군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오물을 먹인 중대장 사건이 있었고, 그해 6월에는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그후 군에 대한 ‘민주화’ 요구들이 일어났다. ‘병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진척되었다. 윤광웅 장관이 직접 지도에 나섰고, 군생활에 대한 예비역들의 기억 서사에 “(군대에서 고참에게) 맞지는 않았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과 맞물린다. 그리고 2007년 대체복무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또 군복무기간 단축으로 2014년까지 병사들의 군생활이 18개월로 단축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를 체험하는 한국의 남성들의 서사는 분명하게 변하고 있다. 2005년이라는 상징적인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군대 경험은 상이하다. 게다가 병과별 ․ 배속지별 경험도 크게 다르며,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카투사 ․ 공군장교 ․ 공군병 ․ 의무소방의 군대 경험과 육군 ‘일빵빵(100) 특기’ 소총수들의 경험은 명백하게 다르다. 그 차이들에 이 글의 문제제기의 실마리가 있다. 이를테면 ‘명문’ 대학생들과 지방대생은 같은 군대를 가지 않는다. 같은 훈련소를 가도 전혀 다른 보직을 받곤 한다. 이건 단순히 ‘빽’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와 ‘그들을 맞아들이는 군대의 자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언급할 계획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이러한 변화에 대해 좌파들은 여전히 맥락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군대에 대한 담론들은 ‘대한민국은 군대’이기에 ‘군사주의’로 읽어내고, 남녀 성별위계를 통해 ‘가부장제’를 양산하는 것으로 읽어낸다. 문제는 ‘어떤’ 군사주의, ‘어떤’ 가부장제인 것인데 그 차이들과 그 차이들을 만들어내는 변화의 맥락은 읽지 않는다. 거기에는 군대에 대한 강한 근대적 서사에 대한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억압적 국가기구’이거나 ‘가부장제를 양산하는 남성성의 훈련기구’ 등 말이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 양상은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택에 군대에 대한 주요 담론들은 우파들이 선점하게 되었다. 우파들은 군대에서 ‘씩씩한 남자’ 뿐만 아니라 ‘영리한 남자’들까지 선점해버렸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좌파의 ‘발본적 사유(radical thinking)’는 늘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하게 ‘실천’의 문제가 엮여 있다. 이는 ‘구체적 현장’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좌파들은 군대에 관한 문제에서 늘 지지부진하고 구체적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자유의 의지’가 ‘자기계발의 의지’로 되어버리고 나서야 ‘자기계발서’를 씹고 있는 것처럼, 군대가 굉장히 많은 모순들과 틈새들을 만들어버려서 근대국가의 ‘국민개병제’가 박살이 나버리는 이 순간에도 특별한 문제의식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가츠와 군대 잘 다녀온 ‘그들’의 이야기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대중의 ‘열폭’은 더 증가하여 ‘군가산점제’ 같은 이슈만 나오면 여성들에 대해 파시즘적인 대응들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쟁점들 앞에서 여전히 ‘선량한 얼굴’을 가지고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 과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나름의 대답 역시 바꿔야 한다. 좌파는 군대에 대해 어떻게 묻고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2010.4.1 ⓒ 양승훈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FONT color=#8e8e8e&gt;&lt;STRONG&gt;양승훈 &lt;/STRONG&gt;: 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 문화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lt;/FONT&gt;&lt;/SPAN&gt;&lt;/SPAN&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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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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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Apr 2010 11:01: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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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정수의 일본 탐구 06] ‘민주주의 2.0’?-선거가 필요하지 않은 정치의 매력과 불안</title>
			<link>http://dangbi.tistory.com/5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lt;/STRONG&gt; | 칼럼니스트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지난 1월의 칼럼 「‘혼활’이라는 유행어와 경쟁사회에 대한 단상」(&lt;A href=&quot;http://dangbi.tistory.com/36&quot;&gt;http://dangbi.tistory.com/36&lt;/A&gt;)에서 ‘유행어 대상’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최근 올해의 ‘유행어 대상’의 유력 후보가 될 듯한 새로운 단어가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 2.0’이란 말이다. 원래 이 말은 일본의 차세대 철학자이자 서브컬처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가 만든 말인데, 지난해 10월 24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토론 프로그램인 &amp;lt;아침까지 생방송(朝まで生テレビ)&amp;gt;에 아즈마가 출연해 수많은 논객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난 후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이날 아즈마는 지난 10년 동안에 일어난 ‘정보기술혁명’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정치가들이 해왔던 일은 말하자면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 때문에 앞으로는 이렇게 수많은 정치가는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한 다음, 종래의 선거를 바탕으로 하는 간접민주주의를 대신하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정치 시스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민주주의 2.0’이라고 불렀다. 구체적으로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활용하면서 국민이 정책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우자는 말인데 적어도 10만 명 규모의 지방자치 체제에서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아즈마의 주장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물론 지금까지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주장들은 간접민주주의(선거)에 의해서는 민의가 잘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혐오감으로부터 개진된 것이었기에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정보기술을 활용하자는 아즈마의 구체적 제안이 신선해 보임으로써 ‘민주주의 2.0’이 일반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명석한&amp;nbsp; 데리다론 『존재론적, 우편적』으로 ‘산토리학예상’을 받은 철학자답게 이론적인 뒷받침도 잊지 않았다. 아즈마가 거론한 것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오는 ‘일반의지’라는 개념이다. 제대로 된 일반의지의 성립을 위해서는 시민 하나하나가 고독한 존재로 판단을 내려야 하고, 함부로 결사를 만들어 정치적인 의론은 하면 안 된다는 루소의 생각을 소개한 아즈마는 이 일반의지를 정보기술혁명 이후의 ‘집합지(集合知)’에 가까운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다시피 집합지란 “각자가 어리석은 판단밖에 내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견 집약을 한 결과로서 창출되는 전체로서의 현명한 지(知)”를 뜻한다. 아즈마에 따르면 이 집합지야말로 민주주의를 기초 지은 사상가로서 잘 알려진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와 비슷한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840000&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집합지는 우자(愚者)의 집단에서 생긴다. 즉, 집합지의 발상은 개인을 우자라고 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집합지의 형성에는 꼭 토의가 필요하지 않다. 유저가 모두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체를 집합하면 적절한 자원배분이 행해진다. 그것이 집합지의 이미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란, 의견을 달리하는 시민들이 충돌하고, 의논을 거치고 나서 하나의 결론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루소의 재해석을 제시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집합지는 민주주의의 대극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만약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문헌 『사회계약론』이 실은 집합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_아즈마 히로키, 「집합지라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SIGHT》2009년 겨울호 199쪽에서(고정수 옮김)&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아즈마가 그런 주장을 한 배경에는 지금 일본이 빠져 있는 정치적 상황이 깔려 있다.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자민당에 의한 일당독재 체제가 끝나고 민주당과 자민당에 의한 ‘2대정당제’로 이행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일본의 현실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아즈마의 주장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840000&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냉전시대(이데올로기 시대)라면 몰라도 애당초 21세기 현대 사회는 ‘이것이냐 아니면 그것이냐’로 전체 방침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빈곤에 대한 문제, 재정에 대한 문제, 환경에 대한 문제 그 어떤 문제도 사상이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순히 ‘보수적’, ‘혁신적’인 정책 패키지로 구분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_아즈마 히로키, 「집합지라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SIGHT》2009년 겨울호 201쪽에서(고정수 옮김)&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그런 상황 속에서는 선거가 필요하지 않은 ‘집합지’에 의한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걸 가능케 하는 기술적 조건도 충분해졌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필자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면 아즈마가 주장하는 집합지에 의한 정치(‘민주주의 2.0’)가 결국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라이프니츠 증후군’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라타니는 『유머로서의 유물론』에 수록된 「라이프니츠 증후군」에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에 있어서는 다수성이 결국 단일성에 집약되어 버린다고 말하고, 그 생각은 일본에서는 니시다 기타로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언급에 잘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가라타니의 그런 니시다 철학 해석이 맞는 것이라면 그런 생각 -‘민주주의 2.0’을 포함해- 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아즈마가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일반의지 2.0’이라는 책의 출간이 기다려진다. 왜냐하면 가라타니가 주재했던 잡지 《비평공간》에서 데뷔한 아즈마이기에 가라타니가 제기한 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2010. 4.2 ⓒ 고정수&amp;nbsp;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8e8e8e&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gt;고정수(다카이 오사무) &lt;/STRONG&gt;: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자란 100% 일본인. 2000년 말에 영화 &amp;lt;쉬리&amp;gt;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씨네21》에&amp;nbsp; 〈한 일본 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번역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웹진 《매거진t》에 〈나는 오사카 TV 오타쿠〉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년에 두세 번 한국에 여행을 간다. 한국을 방문하여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과 친교를 맺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amp;nbsp; &lt;/SPAN&gt;&lt;/SPAN&gt;&lt;/FONT&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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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온당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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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Apr 2010 10:50: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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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단들을 위한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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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amp;nbsp;이상길| 당비의생각 기획위원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뤽 볼탕스키(Luc Boltanski)라는 프랑스 사회학자가 있다.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그의 동생이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뤽 볼탕스키는, 한국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피에르 부르디외 이후 프랑스 사회학계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형이자 언어학자인 장-엘리 볼탕스키가 부르디외와 친구였던 관계로, 일찍부터 부르디외와 각별한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부르디외의 대표적인 공저자이자 수제자로 꼽혔던 그는 1980년대 들어 부르디외 사회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가면서 프랑스 학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킨다. 당시 볼탕스키의 부르디외 비판은 호사가들에 의해 ‘부친 살해(parricide)’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또 프랑스 사회학의 패러다임 전환과 분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amp;nbsp;&lt;br /&gt;
&lt;br /&gt;볼탕스키가 2008년 소책자를 하나 펴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Rendre la réalité inacceptable』라는 제목의 이 책은 동시에 나온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La production de l&#039;idéologie dominante』이라는 책의 부록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좀 더 부연하자면, &amp;lt;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amp;gt;은 1976년 볼탕스키가 같은 제목으로 부르디외와 공저한 논문을 책의 형태로 재출간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는 바로 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의 재출간을 계기로 볼탕스키가 그 논문의 기원, 문제의식, 논점, 스타일, 수용 등을 여러 개인적인 일화와 더불어 정리한 책이다. ‘부친살해’ 이전 볼탕스키의 궤적을 부분적으로밖에 알고 있지 못한 내게 부르디외와의 협력 시기에 대한 볼탕스키의 회고는 자못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떻게 두 사람이 주역이 되어 《악트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라는 학술지를 창간했는지 서술한 대목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악트》의 놀라운 마법&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지금은 세계적인 학자들로 자문위원과 편집위원의 진용을 갖춘 프랑스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지로 성장해 있지만, 초창기의 《악트》는 약간의 저작 경력만 있는 40대와 30대 초반의 사회학자 둘이서 고생 고생해 만들어낸 일종의 ‘학문적 동호회지’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거기 실린 논문들이 새롭고도 어려웠으며 신랄하면서도 발랄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으로부터 얻어낸 약간의 지원금과 몇 명의 조력자(편집자, 디자이너, 인쇄공)를 데리고 일 년에 자그마치 여섯 호씩 나오는 학술지를 펴냈다. 1975년 첫 호가 나왔으니, 바야흐로 손으로 쓴 원고를 다시 타자로 치고 각종 시각자료를 가위, 풀로 오려붙여 레이아웃을 짜면 연구원 지하 2층의 인쇄소에서 오프셋으로 책을 찍어내던 시절이었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몇몇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논문 원고를 채우면서, 잡지를 편집, 제작하고, 학교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직접 배포까지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든 창간호 2천부가 2주 만에 다 팔리고, 일 년 만에 《악트》의 정기구독자가 1천4백 명을 헤아리게 된 상황을 볼탕스키는 “진정 마법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초창기 《악트》는 사실 지금 들춰봐도 놀라운 감이 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다양한 주제(이를테면 만화·패션·스포츠·자동차·사진 등등)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논문들, 그리고 종종 중요한 외국 저자들의 번역논문들을 빽빽이 실은 이 학술지는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스타일상으로도 전위적이고 도발적이었다. A4 용지 크기의 판형에, 논문의 형식은 내용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일반적인 논문 외에 한 두 페이지짜리 연구노트나 비평, 서한문이 실리는가 하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처럼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논문도 실렸다. 부르디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나는 철학자다』라는 제목으로 국역본이 나와 있다.) 역시 원래 이 잡지에 먼저 실렸던 한 편의 ‘논문’이다. 게다가 《악트》의 논문들에는 그 주제와 개념을 시각화한 그림·사진·도표·통계·만화·인터뷰 발췌문 등이 덧붙었다. 볼탕스키에 따르면, 그러한 구성은 그즈음 프랑스에서 한창 유행 중이던 만화 팬진(fanzine)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패쇄된 자유의 공간&amp;nbsp;&lt;br /&gt;
&lt;/STRONG&gt;&lt;br /&gt;
책에서 볼탕스키는 이 회고담의 의도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좋았던 옛 시절’의 노스탤지어나 나르시시즘에서가 아니라, 현실 비판의 의지 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삼십 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 왜 오늘날 이루어질 수 없겠는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대학 사회가 더 ‘규범화’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도 장애물은 많았다. 권위적인 학장이 있었고, 땍땍거리는 보직교수들이 있었고, 정치적인 반동분자와 바보들이 있었고, 오만한 구식 관료들이 있었다. 그래도 ‘근대적인’ 경영과 관리 기술이 학계와 문화계 곳곳에 침투해 있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의미의 ‘능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들과 놀고먹는 교수들이 뒤섞여 있었고,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볼탕스키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논의를 이어간다. 이러한 관리상의 허점이 바로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만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었노라고. 주변인들은 주변부에서 편하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노라고.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볼탕스키에 따르면, 그 시절 프랑스의 대학 사회가 어느 정도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었기에, 규범은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내면화되어 있지 않았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대단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연구자들은 규범을 무시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결과 지속적인 위반이 이루어졌다. 그럴듯한 경력이나 직위나 성과가 없는 사람들, (부르디외나 바르트나 샤르티에처럼)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들, (푸코나 들뢰즈처럼) 때로는 약간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대학 사회의 소세계가 있었고, 뭔가 새로운 사건은 바로 거기서 벌어졌다. 이른바 ‘정상과학’의 바깥에서,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와 대안적인 접근방식, 예기치 못한 이해관심이 계발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주류 사회학계의 학회지에 맞선 학술지 《악트》는 그렇게 탄생했고, 새로운 학풍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볼탕스키는 씁쓸하게 되묻는다. “오늘날 누가 그런 잡지에다가 자기 논문을 출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타자기로 치고 통계와 미키마우스가 나란히 콜라주된데다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편집위원회 조차 없는 프랑스어 잡지. 누가 자기 경력을 위해서 그런 잡지를 바라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amp;nbsp;&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단’이 사라진 대학 사회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20세기 후반의 인문학계는 프랑스 학자들이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문학·언어학·역사학·사회학·정신분석학 등 각 분야에서 프랑스 사상은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039;·&#039;새로운 역사학’ 같은 다양한 꼬리표를 달고 영미권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곳곳에까지 퍼져나갔다. 그 덕분에 우리도 프랑스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민족이나 인종 ․ 개인의 ‘천재성’이라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그들 역시 특수한 사회적 조건 아래 생산된 존재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볼탕스키의 회고는 프랑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바꾼 학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의 일단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만하다. 그것은 ‘더 많은 이단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해줄 수 있는 대학 사회의 분위기’야말로 학문의 혁신과 발전에 핵심적인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왜 《악트》 뿐이겠는가? 《텔켈Tel Quel》, 《코뮈니카시옹Communications》, 《르세르쉬Recherches》, 《트라베르스Traverse》,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 등등 숱한 아방가르드 잡지와 학술지, 그리고 크고 작은 출판사의 새로운 총서들이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의 프랑스 학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 과연 이단들을 위한 자리는 있는가? 안타깝지만 규범화의 압력, 정상성의 독재가 우리 사회 다른 어디보다 더 심해진 곳이 바로 대학 사회다. 교수 선발에서는 어느새 영어 발표와 영어 강의가 의무화되었고, S(S)CI와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목록은 유일하게 권위 있는 평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연구자들은 학교에 취직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공부한 지역이나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영어학원에 다녀야 하고 등재지 논문의 출판에 조바심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정한 경쟁의 외양 아래, 영미권 이외의 지역에서 공부한 연구자 집단은 대학 사회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 관심, 다른 문제틀, 다른 지적 전통 아래 공부하는 이들이 대학교수직에 안착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규직 임용이나 승진을 위해 연구자들은 무엇보다도 등재지 논문의 양산을 요구받는다. 그러니 누가 등재되지 않은 지면, 정해진 논문 형식에서 벗어난 글, 다작이 어려운 연구를 택하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바깥의 사유’를 위한 자원의 배분이 필요하다&amp;nbsp;&lt;/STRONG&gt;&lt;br /&gt;
&lt;br /&gt;학문의 세계에서 ‘선택과 집중’만이 능사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자유와 다양성’이야말로 창조의 바탕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정부와 대학 또한 당연히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브레인 코리아’, ‘인문한국’, ‘월드 클래스 유니버시티’를 원한다면, 그런 이름표를 단 프로젝트 추진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외래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입법과 정책안 마련부터 꾀해야 한다. 그 필요성을 간절히 호소한 개인적 희생이 이미 몇&amp;nbsp; 차례나(!) 있었고, 최근에도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장기농성이 있었다. 어렵게 학문의 길을 택한 이들이 대학의 비정규직 위치에서나마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학계에 지원할 예산이 있다면, 실속 없는 각종 세미나와 해외석학 초빙, 그리고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강사들에 대한 합당한 지원에 우선적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들이 연구재단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자신이 원하는(혹은 만든) 지면에 발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술 출판에 대한 지원 또한 대폭 늘려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원의 절대량보다는 자원의 배분이 문제이며, 그 배분을 결정하고 정당화하는 가치가 문제다. 예산의 새로운 배분은 세미나 준비와 프로젝트 관리에 바쁜 교수들에게 ‘시간’을 지원해주는 역설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긴요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이든 정부든 그들에게 ‘시간’을 지원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현재의 대학 사회와 한국연구재단이 부과하는 ‘규범’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며, 우리 학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일궈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의 완화 내지 분화가 학문의 발전에 더 효율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규범을 최대한 다원화하고 그것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대, 틈, 사이를 내버려두기. 규범에서 벗어나는 연구들이 학계에서 우글거리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상징적 보상만을 추구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대학 강의에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기. 그들에게 사유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위한 시간을 보장해주기. 바로 그러한 기반 위에서 학문의 이단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며 ‘정상과학’의 혁명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기』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생각들이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2010.3.22 ⓒ 이상길 &lt;br /&gt;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8em;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FONT color=#8e8e8e&gt;&lt;STRONG&gt;이상길&lt;/STRONG&gt; :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학사 ․ 석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5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파리1대학교에서 철학과 DEA과정을 수료했다. 미디어와 문화연구 분야에서 글을 써왔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저서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2007)와 『근대한국의 일상생활과 미디어』(2008)를 펴냈고,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다』(2007), 『푸코, 사유와 인간(2009), 『근대의 사회적 상상』(2010) 등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amp;nbsp;&lt;/FONT&gt;&lt;/SPAN&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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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Mar 2010 15:56: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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