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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날아다니는 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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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날아다니는 세상의 단편들을 펜으로 잡아내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5 Sep 2009 09:12: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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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날아다니는 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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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스펙터클의 반정치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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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class=바탕글 align=left&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cellSpacing=1 cellPadding=1 width=673 bgColor=#ffffff&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BORDER-RIGH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BOTTOM: #000000 1px solid&quot; width=&quot;100%&quot;&gt;&lt;STRONG&gt;요약&lt;br /&gt;
&lt;/STRONG&gt;&amp;nbsp;&lt;br /&gt;
&amp;nbsp;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가장 잘 반영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갈등의 정치적 반영, 과도한 도덕주의에 대한 경계, 정책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같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집권 과정부터 집권 말기에 이르기까지 정당정치 구조를 지속적으로 퇴행시키며 스펙터클에 의한 동원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외적 수단에 의한 정치에 의존하였다. 노무현이라는 현상에 매혹되었던 것은 욕망에 충실한 한국의 중간계급이며 이들은 노사모 &amp;nbsp;· 촛불과 같은 동원참여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정치적 정서를 표출해왔다. 노무현에 대한 추모에서 나타나는 정서 역시 노무현의 실제 정책과 사회경제적 귀결에 대한 정치적 평가보다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동일시 대상의 죽음과 영결식의 패전트가 연출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매혹이다. 이러한 방식의 동원참여는 반정치적 정서를 재생산하며 이는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독으로 작용한다.&lt;br /&gt;
&lt;br /&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amp;nbsp;이 글의 목적은 노무현 추모 열기라는 현상에 대한 감정적 동일시나 단편적 분석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라는 통시적이고 거시적인 과정 내에 현상을 위치시키고 바라보는 데에 있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이라는 개인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이명박과 같은 개인의 가치관이 관철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정당정치 구조의 부실과 시민사회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다. 사회의 갈등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협애한 이념적 대립 축을 중심으로 갈등하는 정당체제는 인민의 이익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며, 다원주의 없는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최장집, 2005).&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보수적 민주주의 체제가 공고화 되어가던 시점에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열망을 동력으로 하여 집권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리더십과 인적자원의 문제, 헤게모니와의 대면과 타협,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의 덫에 갇혔으며 사회적 갈등의 발현을 억압하는 통합이데올로기, 과도한 도덕주의, 민주적 가치와 위배되는 전문가주의, 신자유주의적 지배담론에 포섭되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과도한 도덕주의를 내세운 정당개혁과 리더십의 문제는 오히려 정당과 시민의 연계 고리를 파괴하였으며, 헤게모니와의 타협과 통합이데올로기에의 포섭은 정당의 갈등축을 흐리게 하여 전반적인 정당구조의 쇠퇴를 초래하였다(최장집, 2006: 75-91).&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러한 총체적 난국 상황에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선택하였던 방법은 정당정치의 회복이 아니라 정치외적 수단에 의한 정치, 즉 스펙터클을 통한 대중의 동원참여(박동진 외, 2006: 64)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웠던 정치적 스펙터클의 전형은 지역주의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경제적 갈등 축을 직접적 대변하고 돌파하기 보다는 초지일관 ‘지역주의 타파’를 제일의 정치적 동원기제로 활용하였고, 더 나아가 지역주의 문제를 참여정부의 정치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였다(강병익, 2007a: 88). 하지만 지역주의 문제는 한국정치의 근본모순을 구성하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갈등축의 억압에서 기인한 종속변수일뿐더러, 이에 대처하는 노무현 정부의 방안 역시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박상훈, 2005). 더욱이, 노무현 정부가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제안한 정책들은 지역주의의 해소보다는 대부분 당시 집권여당의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lt;sup class=&quot;footnote&quot;&gt;&lt;a id=&quot;footnote_link_98_1&quot; href=&quot;#footnote_98_1&quot; onmouseover=&quot;tistoryFootnote.show(this, 98, 1)&quot; onmouseout=&quot;tistoryFootnote.hide(98, 1)&quot; style=&quot;color: #f9650d; font-family: Verdana,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각주:&lt;/span&gt;1&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lt;/a&gt;&lt;/sup&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정치외적 수단에 의한 정치는 진영이 명확하고 도덕적 열정을 추동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매혹을 이끌어냄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열정적 동원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스펙터클의 구체적 결과가 체감되지 않을 시에는 오히려 참여자들에게 피로감과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을 안겨줌으로써 냉소주의를 심화 · 확산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와 더불어 갈등의 축을 재정의 하는 데에 대규모의 정치자원을 투입함으로써 사회의 근본모순을 규정하는 갈등이 드러나는 것을 억압하고, 스펙터클에 참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샤츠슈나이더, 2008). 이는 도덕적 열정에 의한 스펙터클에 대한 중간계급&lt;sup class=&quot;footnote&quot;&gt;&lt;a id=&quot;footnote_link_98_2&quot; href=&quot;#footnote_98_2&quot; onmouseover=&quot;tistoryFootnote.show(this, 98, 2)&quot; onmouseout=&quot;tistoryFootnote.hide(98, 2)&quot; style=&quot;color: #f9650d; font-family: Verdana,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각주:&lt;/span&gt;2&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lt;/a&gt;&lt;/sup&gt;의 매혹,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대변하지 못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혐오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반하는 반(反)정치주의로 귀결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요컨대 노무현 정부는 지역주의나 탄핵 문제와 같은, 진영이 전국적 규모로 명확하게 나누어지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연출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 열정을 동원하는 방식의 정치를 시행하였지만, 담론과 실제 정책의 내용은 괴리되어 있었으며 오히려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중간계급 편향적인 운동에 의한 정치는 정치적 스펙터클의 강력한 동원자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반정치적인 경향으로 귀결되어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 노무현이라는 현상에 매혹되었던 것은 그가 연출한 정치적 스펙터클을 도덕적 스펙터클로 받아들인 중간계급이다. 중도적 정치의식을 지닌 시민의 확대와 중간계급 의식을 반영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결여된 절충적 · 덕담 수준의 지속적인 ‘욕망의 정치’ 의 확대는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귀결을 방증하고 있다(강병익, 2007b).&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촛불을 거쳐 노무현 서거 정국에서 드러난 일련의 흐름은 위와 같은 계급 편향적이면서도 보편담론을 표방하는 중간계급의 허위의식이자,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와 심정윤리만을 강조하는 반지성주의 및 반정치주의의 포괄적인 총체이다. 촛불은 환등상(phantasmagoria)으로 어른거리다 사라진 근대성의 그림자이자 거대한 스펙터클로서 도시의 중간계급을 유혹하는 욕망의 기제였다(이택광, 2009). 또한 유사과학과 괴담에 의해 추동되고 이론의 빈곤을 배태하고 있는 반정치주의와 탈정치화의 통로였다(백승욱, 2009). 촛불을 통해 나타난 흐름은 이른바 ‘촛불시민’ 이 다시 거리로 나온 노무현 서거 정국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노무현의 사회경제적 귀결에 대한 냉정한 이론적 고찰은 사라진 채 유시민 전 의원 류의 유사이론(유시민, 2005)에 의거하여 진중권 중앙대 교수,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와 같은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규탄과 성토가 나타났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도덕적 성토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부’ 라는 이름이 삼성경제연구소의 아이디어라는 점과 노무현과 이학수의 개인적 유착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나오고 있지 않다.&lt;sup class=&quot;footnote&quot;&gt;&lt;a id=&quot;footnote_link_98_3&quot; href=&quot;#footnote_98_3&quot; onmouseover=&quot;tistoryFootnote.show(this, 98, 3)&quot; onmouseout=&quot;tistoryFootnote.hide(98, 3)&quot; style=&quot;color: #f9650d; font-family: Verdana,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각주:&lt;/span&gt;3&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lt;/a&gt;&lt;/sup&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정적 스펙터클이다. 그가 생전에 동원하였던 지역주의, 개헌 등과 같은 스펙터클과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에 얽힌 내러티브와 그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상징 및 이미지가 정치적 공간을 혁명적으로 재편한다. 이는 후보의 정강 대신 현직 의원의 기록에 투표하는 경향, 의사소통 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적 인물(media figure)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현상의 반영(마넹, 2004: 266-269)이다. 정당의 이합집산은 스펙터클이 될 수 없지만 정치인 개인의 죽음은 거대한 스펙터클이 된다. 이 시점에서 정치는 다시 스펙터클로 환원된다. 이명박 정부는 세심한 정책적 비판의 대상이 아닌, 선과 악의 결전이라는 스펙터클한 구도 속에서 타도해야 마땅한 절대악으로 상정되며, 정치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영논리와 십자군적 열정에 의해 재배치된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이러한 감정적 스펙터클이 물질적 패전트로 물화(Reification)됨으로써 스펙터클의 정점을 이루며, 그 동원효과를 극대화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모든 패전트는 권력의 스펙터클을 대중에게 각인시킴으로써 권력의 기의(記意)를 학습시킨다. 하지만 권력의 기의는 패전트를 연출하는 현실권력의 의도대로 각인되지는 않으며, 대중이 패전트에서 경험하는 것은 현실권력의 ‘성격’ 이 아닌 권력에 대한 개념이다. 그리고 권력의 기의를 경험한 대중은 권력의 기표(記標)를 찾아 기의와 일치시킨다. 죽은 노무현은 일본 근대 초입, 메이지 천황이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그랬듯 영결식을 통해 순행(巡行)을 실천하였고 시민에게 스스로를 내보였다. 시민들은 여기서 국가의 리더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리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의 삼위일체를 읽어내며 내면에 노무현의 응시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노무현은 내면의 도덕법칙이자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정치신념의 준거로서 환원된다(후지타니, 2004: 301-305).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통상적 반응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는 분명 의사(擬似) 수호자주의이며 현실 정치의 원칙으로 삼기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달, 2006: 112-168, 301-30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이명박 전선’ 으로 결집된 정치권은 노무현 추모 열기를 정치적 자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노무현 추모 정국에 동참하는 대부분의 중간계급은 스펙터클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시민’ 이라는 통합 이데올로기에 의한 진영재편은 배제되고 억압된 계급에 대한 동정과 멸시의 자세로 표출되며 이는 실질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현대정치의 특징 중 하나인 욕망에 의한 정치에 대한 급격한 반동은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과도한 도덕주의의 부활을 예고하며&lt;sup class=&quot;footnote&quot;&gt;&lt;a id=&quot;footnote_link_98_4&quot; href=&quot;#footnote_98_4&quot; onmouseover=&quot;tistoryFootnote.show(this, 98, 4)&quot; onmouseout=&quot;tistoryFootnote.hide(98, 4)&quot; style=&quot;color: #f9650d; font-family: Verdana,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각주:&lt;/span&gt;4&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lt;/a&gt;&lt;/sup&gt;,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욕구의 반지성주의적 표출은 정부의 대내 자율성을 저해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파국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보비오, 2007: 126-132).&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정리하자면, 현재의 노무현 추모 정국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냉정하고 엄밀한 평가나 정책적 고려가 결여된 채 이루어지고 있는 스펙터클에 대한 매혹이자 반지성주의, 과도한 도덕주의, 의사 수호자주의와 같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좋은 아버지(buon padre)버전에 불과하다.&lt;sup class=&quot;footnote&quot;&gt;&lt;a id=&quot;footnote_link_98_5&quot; href=&quot;#footnote_98_5&quot; onmouseover=&quot;tistoryFootnote.show(this, 98, 5)&quot; onmouseout=&quot;tistoryFootnote.hide(98, 5)&quot; style=&quot;color: #f9650d; font-family: Verdana, Sans-serif&quot;&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각주:&lt;/span&gt;5&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lt;/a&gt;&lt;/sup&gt; 따라서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결코 특별하고 위대한 도덕성의 표출이 아닌,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의 연장선상에서 국면적으로 발현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갈등축을 폭력적으로 재편함으로써 사회의 진정한 갈등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하고, 열정의 동원참여에 의한 최대강령적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이성적 과정을 통한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결국 이는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기여를 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열망과 절망의 순환을 반복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더욱 깊게 재생산하여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파국에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수 있는 위험한 징후이다.&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참고문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강병익a,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의 리더십”, 『미래공방』, 진보정치연구소, 2007년 창간호 pp.77-90&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U&gt;______b “철학도 실체도 없는 보수정치의 중도론”, 『미래공방』, 진보정치연구소, 2007년 5 ․ 6월호&lt;/P&gt;
&lt;P class=바탕글&gt;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이산, 2004&lt;/P&gt;
&lt;P class=바탕글&gt;달, 로버트(Robert A. Dahl),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문학과 지성사, 2006&lt;/P&gt;
&lt;P class=바탕글&gt;마넹, 버나드(Bernard Manin),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2004&lt;/P&gt;
&lt;P class=바탕글&gt;박동진 외, 『인터넷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6&lt;/P&gt;
&lt;P class=바탕글&gt;박상훈,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오마이뉴스 2005년 9월 12일자&lt;/P&gt;
&lt;P class=바탕글&gt;백승욱, “경계를 넘어선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2009&lt;/P&gt;
&lt;P class=바탕글&gt;보비오, 노르베르토(Norberto Bobbio),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문학과 지성사, 2007&lt;/P&gt;
&lt;P class=바탕글&gt;샤츠슈나이더.E.E.(Elmer Eric Schattschneider),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2008&lt;/P&gt;
&lt;P class=바탕글&gt;시사IN, ‘삼성은 참여정부 두뇌이자 스승이었다’, 2007년 11호&lt;/P&gt;
&lt;P class=바탕글&gt;유시민, ‘나는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싶지 않다’, 오마이뉴스 2005년 9월 6일자&lt;/P&gt;
&lt;P class=바탕글&gt;이택광, ‘다시 중간계급’(&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ff single&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COLOR: #0000ff&quot;&gt;http://wallflower.egloos.com/1816737&lt;/SPAN&gt;&lt;/U&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U&gt;______ ‘중간계급’(&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ff single&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COLOR: #0000ff&quot;&gt;&lt;A href=&quot;http://wallflower.egloos.com/1809869&quot; target=_blank&gt;http://wallflower.egloos.com/1809869&lt;/A&gt;&lt;/SPAN&gt;&lt;/U&gt;) &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U&gt;______ “촛불의 매혹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2009&lt;/P&gt;
&lt;P class=바탕글&gt;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5&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U&gt;______ 『민주주의의 민주화』, 후마니타스, 2006&lt;br /&gt;
&lt;br /&gt;&lt;FONT color=#318561&gt;연세대학교 시국토론회 발제문&lt;/FONT&gt;&lt;/P&gt;&lt;div class=&quot;footnotes&quot;&gt;
	&lt;ol class=&quot;footnotes&quot;&gt;
		&lt;li id=&quot;footnote_98_1&quot;&gt;2003년에서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이 도입하려고 하였던 전두환식 2인 중선거구제도는 지역주의 해결에 대한 노무현 정부 및 집권여당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중선거구제는 사실상 비례대표제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STV식(아일랜드에서 사용)이 아니라 일본에서 사용하다 폐지한 SNTV식을 도입을 주장한 건데, SNTV식 중선거구제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First-past-the-post)보다도 못한 제도이다. 또한 비례대표제 역시 노무현의 주도가 아닌 민주노동당의 헌법소원을 통해 도입된 것이다. 이를 통해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문제 자체를 스펙터클화하여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꺼낸 중선거구-이원행정부제 논의는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98_1&quot;&gt;[본문으로]&lt;/a&gt;&lt;/li&gt;
		&lt;li id=&quot;footnote_98_2&quot;&gt;중간계급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이택광, ‘중간계급’(http://wallflower.egloos.com/1809869) 과 이택광, ‘다시 중간계급’(http://wallflower.egloos.com/1816737)를 참조. &lt;a href=&quot;#footnote_link_98_2&quot;&gt;[본문으로]&lt;/a&gt;&lt;/li&gt;
		&lt;li id=&quot;footnote_98_3&quot;&gt;기득권과 정면으로 맞서다가 좌초한 노무현이라는 신화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삼성과 밀착되어 있었으며 집권기간 전반에 걸쳐 이건희 전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기용하며, 삼성 X 파일 사건에 대해 “정·경·언 유착과 도청 문제 가운데 도청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 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행태로 일관하였다(‘삼성은 참여정부 두뇌이자 스승이었다’, 시사IN, 11호). &lt;a href=&quot;#footnote_link_98_3&quot;&gt;[본문으로]&lt;/a&gt;&lt;/li&gt;
		&lt;li id=&quot;footnote_98_4&quot;&gt;흥미로운 점은 중간계급의 도덕주의는 청교도적 금욕주의 보다는 ‘욕망의 평등’ 에 대한, 분배적 정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간계급의 정치적 휩쓸림은 이명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던 부르주아 계급으로의 편입 욕망이 좌절되자 욕망의 평등이라는, 즉 각개약진이 실패하자 일종의 연대전술을 취한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연대는 그들의 계급적 허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부의 동질성에 기반한 연대로 귀결된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98_4&quot;&gt;[본문으로]&lt;/a&gt;&lt;/li&gt;
		&lt;li id=&quot;footnote_98_5&quot;&gt;어청수 전 경찰청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기용되었으며, ‘명박산성’ 은 노무현 정부 시절 APEC 회의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행 집시법 역시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다. 또한 임채진 검찰총장 역시 노무현이 두둔한 ‘삼성 장학금’ 검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무현의 죽음은 일종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무현에 대해 신화가 만들어지고 스펙터클로 소비한다는 것은 유사역사가 가지는 판타지에 대한 매혹이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98_5&quot;&gt;[본문으로]&lt;/a&gt;&lt;/li&gt;
	&lt;/ol&gt;
&lt;/div&gt;
&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3499533&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광대의 사회학</category>
			<category>노무현</category>
			<category>도덕주의</category>
			<category>민주주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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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서거</category>
			<category>스펙터클</category>
			<category>신자유주의</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category>최장집</category>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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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Jun 2009 22:59: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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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이냐, 야만이냐: 한예종,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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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지난 18일 문광부의 한예종 종합감사 결과 통보와 연이은 황지우 총장의 사퇴로 인해 외부에 널리 알려진 한예종 사태는 날이 갈수록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상식과 몰상식, 예술과 야만, 이성과 추악한 욕망 사이의 대립이자 한국 문화계의 향후 진로를 결정지을 만한 중대한 갈림길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미 국립미술관장 해임 사건, 국립오페라단 해체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보여주었다시피 ‘잃어버린 10년’ 지우기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의 문화 발전과 예술진흥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욕과 강박관념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다.&lt;br /&gt;
&lt;br /&gt;황지우 총장의 사퇴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소위 ‘한예종 죽이기’ 시나리오는 위와 같은 유인촌 장관의 독특한 문화철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예종에 대한 전 방위적 공격이 문광부뿐만 아니라 공식 정부조직이 아닌 뉴라이트 세력과의 철저한 공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작년부터 이미 한예종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왔으며 문광부의 감사 결과에 맞추어 꽹과리를 열심히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행동방식은 흡사 서북청년단이나 나치 돌격대와 같은 유사정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일사분란하며, 오히려 문광부가 이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돌격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광부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lt;br /&gt;
&lt;br /&gt;물론 정부 외의 조직이라고 해서, 뉴라이트를 표방한다고 해서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고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언’ 이 아닌 명백한 ‘망언’만을 일삼는다면, 그리고 권력의 비호에 힘입어 자신들의 몽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규탄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평소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공격내용과 지난 15일에 명동 포스트 타워에서 있었던 문화미래포럼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이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한예종에 고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규탄한다.&lt;br /&gt;
&lt;br /&gt;첫째, 한예종 교수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공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추측에 근거하여 한예종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닭이 우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좌파 교수’ 가 거슬린다면 지난 시국선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학교를 찾아내 그곳부터 공격해야 할 것이다. 더 생산적인 방안으로는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 프리다 칼로, 브레히트, 네루다 등을 예술사에서 지워버리는 ‘예술사 바로잡기 작업’ 에 착수하는 쪽을 추천한다. 미래의 콩고물을 기다려야 하는 한예종 공격보다는 학술진흥재단에서 당장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쪽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은가?&lt;br /&gt;
&lt;br /&gt;둘째, 이론교육 및 통섭교육에 대한 공격은 문광부와 문화미래포럼의 구성원들의 머릿속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비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주장이다. 근대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자연의 모사가 아닌, 작가의 독창적인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사상과 주관이 없는 기술에서는 복제 이상의 ‘예술’ 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방가르드 없이 예술은 발전할 수 없다. 게다가 숭고한 예술의 차원이 아닌 세속의 비즈니스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이들의 무능은 명백히 드러난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에 의하면 현대 문화산업에서 예술품이 상품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학이론과 담론이 필수적이다. 작품의 가격이 가장 높은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실기 기술 때문에 가격이 높은가? 포르말린 속에 담겨 있는 동물의 사체를 비싼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론과 담론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세력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선 문화미래포럼에 소속된 교수들부터 학과를 폐지하고 의대에 가서 포르말린과 메스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lt;br /&gt;
&lt;br /&gt;마지막으로, 국공립 대학은 부실하고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 없는 신앙에 가깝다. 모든 주장이 논파당한 후 고장난 라디오처럼 민영화의 주문만을 반복하여 외우는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예종에 대한 모든 부당한 간섭과 공격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이들이 모여 만든 신생 대학이 곧 비효율적인 한예종을 압도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위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에 뛰어드는 일만 남았다. 번거롭게 이미 비효율적인 관료체제와 좌파 교수들에게 포섭되어 있는 한예종을 개혁하기 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가’ 들이 모여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amp;nbsp;&amp;lt;빅뉴스&amp;gt;에서 무료로 대학 홍보를 해주고 ‘실크로드 포럼’ 에서 학생들도 공급해줄 것이다. 한국 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화미래포럼 교수들은 당장 사직서를 쓰고 사학재단부터 만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lt;br /&gt;
&lt;br /&gt;결국 이들의 한예종 공격은 합리적인 이론적 근거를 결여한 채 무지에서 나온 아집 혹은 콩고물에 대한&amp;nbsp;추악한 탐욕에 근거한 것이다. 유인촌 장관의 빈곤한 예술관, 정치적 야욕과 뉴라이트 세력의 물질적 욕망 혹은 근거 없는 몽상이 만나 현실에 구현되었을 때 펼쳐질 한국 문화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에 비해 이들이 문제삼는 한예종은 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배움의 터를 제공해주고 수많은 대외적 성과를 산출하는, 실력있고 아름다운 예술의 터전으로&amp;nbsp;자리매김하고 있다.&amp;nbsp;따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우리 진보신당 학생모임은 이 땅의 예술을 지키기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위대한 싸움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추악한 욕망이, 척박한 땅에 이제 막 새싹을 틔운 순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amp;nbsp;예술이냐, 야만이냐. 우리는 함께 선언한다. 강풍은 꽃을 꺽을 수는 있지만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 길고 엄혹한 겨울 속에서 예술이라는 빛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모두가 함께 한발짝씩 나아갈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끝에서, 한예종은 모두와 함께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EM&gt;&lt;br /&gt;
&lt;/EM&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EM&gt;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아르튀르 랭보&lt;br /&gt;
(Et a l&#039;aurore, armes d&#039;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lt;br /&gt;
&lt;/EM&gt;&lt;/P&gt;
&lt;P&gt;&lt;EM&gt;&lt;br /&gt;
&lt;/EM&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2009년 6월 17일&lt;br /&gt;
진보신당 학생모임&lt;br /&gt;
club.cyworld.com/newprogress&lt;br /&gt;
&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3432275&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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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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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7 Jun 2009 00:58: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카오스와 코스모스 : 규율과 근대적 사회질서 (나루사와 아키라,『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 소화, 200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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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TRONG&gt;1. 코스모스&lt;br /&gt;
&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현대의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는 근대는 베버의 고전적 논의에 의하면 지속적인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코저, 1978: 347-348). 이는 불확실성을 최소화 하며, 예측 가능성을 최대화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자 하는 전사회적 노력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맑스가 예리하게 지적하였다시피 인간은 환경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가 교육받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엥겔스, 1989: 21). 따라서 근대화 과정은 사회의 지속적인 합리화라는 한 면으로만 파악될 수 없으며, 근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인간을 ‘근대적 인간형’ 으로 주조해내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의 저자인 나루사와 아키라는 이 저작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접근하고자 한다. 일본은 서구의 근대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제국주의시기에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근대국가를 단시간 내에 건설한 국가로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서구에서 수입된 동아시아 근대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저자의 근대성에 대한 개념화는 베버의 관념과 유사하며, 따라서 근대화 과정이란 곧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은 완전히 배제되어 주술이 코스모스의 유지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없어지고 모든 것이 세속화되는”(8쪽)&amp;nbsp;과정에 다름 아니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또한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의 특이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근대적 질서의 형성과정이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빠르다. 둘째,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사회의 해체와 재편에 대한 저항이 약했다. 셋째, 군대와 학교가 맡았던 역할이 비교적 컸다. 넷째, ‘질서화’ 가 목적합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근대적 질서가 사람들에게 내면화 되어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였다(12-17 쪽). 이와 더불어 저자에 의하면 일본의 근대적 규율 질서는 서구에서 수입된 요소들로만 구성된 것뿐만 아니라, 전근대 사회에서부터 유래하는 독자적인 사회적 기원을과 혼합된 구조적 복합체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 저작의 주제인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전개과정은 위에서 제시된 문제의식들에 의해 탐구되고 배열되어져 있다. 우선 저작은 근대적 사회질서를 시간, 공간, 신체, 인간관계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각각의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든 영역은 근대적인 이분법적 도식-청결/부정, 근면/나태, 표준/비표준 등-에 의해 규정되며, 궁극적으로 철장(Iron cage) 과 같이 경직된 사회질서를 만들어낸다. 이에 대한 엘리트 계급과 피지배 계급 모두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결국 강화된 통제에 의해 근본적으로 억압되며, 주체들은 규율 질서에 포섭되어 억압 자체에서 쾌적함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근대적 규율 질서 속에 안주하게 된다(127-134 쪽).&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어서 저작은 서구와 전통 양자의 다양한 사례들에서 각 영역을 관장하는 도식의 역사적인 기원을 찾는다. 1장에서 다루었던 근대화 ‘학교’ 로서 군대의 역할이 전통사회의 규율질서에서는 미비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선종의 규율에 대한 분석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제국군대의 규율 및 정신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와 같은 저자의 접근은 질서와 규율로 촘촘하게 얽혀있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코스모스를 창조해낸&lt;/SPAN&gt;&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 일본의 근대를 현실적으로 재현하며 동시에 근대성의 억압을 폭로한다. 특히 일본 전통에 존재하는 근대 규율의 요소들은 그것들이 실제 국가의 근대화 정책에 반영된 기작이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함의를 지닌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TRONG&gt;&lt;br /&gt;
2. 코스모스 너머 : 주체와 관점들&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저자의 연구는 근대화가 지닌 억압적인 이면을 폭로함과 동시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근대화에 따른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풍부한 자료를 통해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본의 근대적 질서가 순수하게 서구에서 수입한 것만이 아닌, 자생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은 반(反) 오리엔탈리즘적인 함의를 포함한다. 이는 저자의 근대성 비판과는 배치되는 지점이지만, 맑스주의 진영에서마저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미발전성’ 에 대한 편견(호스톤, 1991: 167-228)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연구결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목적론적인 독해법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이 저작은 일본의 독자적인 ‘문명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식의 독해가 가능하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문명국’ 이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근대화에 접근하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근대화 과정을 문명화의 관점에서 다룬 대표적인 연구로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 있다. 『문명화 과정』 은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교본으로 삼았던 서구의 규범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문명화된’ 행동의 성립은 서구사회가 ‘국가들’ 로 조직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엘리아스, 1996: 49). 엘리아스에 의하면 ‘문명’ 개념의 전신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시빌리테(Civilité&lt;/SPAN&gt;&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 개념이 고유한 특성과 기능을 얻은 것은 기사사회가 붕괴되고 가톨릭 교회의 통일이 해체되던 16세기 후반이며, 이러한 개념의 도입은 수치심에 대한 불쾌감을 유발하여 ‘문명화됨’ 과 ‘미개함’ 의 이항구도를 만들어내었다(엘리아스, 1996: 171-181).&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수치심에 대한 불쾌감을 핵심적 요소로 삼는 문명화는 서구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압력하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기능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분화가 다수의 사람들을 서로 의존하게 만드는 곳, 물리적 폭력의 독점이 감정을 배제한 협동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필수적으로 만드는 곳, 그리고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예상할 것을 요구하는 기능들이 생겨나는 곳에는 어디서나 문명화 과정이 발견된다(엘리아스, 1996; 2: 332). 저자 역시 무가(武家) 사회 및 공가(公家) 사회의 규율에 대한 연구는 엘리아스가 지적한 마지막 요건의 관점에서 수행하였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272-273 쪽). 그렇기에 저자와 엘리아스의 연구는 각각 시공간이 다르지만 유사한 근대화의 유형을 보여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하지만 저자의 연구는 엘리아스의 연구에 비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 II』 의 전 페이지를 할애하여 질서를 형성하는 주체들의 형성과정과 주체들이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 모두를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다. 반면 저자의 연구는 자료수집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포괄하는 문명화의 모습은 『문명화 과정 I』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그치고 있으며, 저자가 스스로 엘리아스의 연구와 비교하며 지적하는 일본적 근대화의 특수성 역시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율을 도입하는 주체로서의 국가가 등장함에도 국가의 행동에 대한 세밀한 구조적 분석 없이 현상의 나열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와 더불어 엘리아스의 연구 역시 국가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하는 ‘문명화’ 는 개인적인 단위에서만 일어나며 사회 및 국가와의 상호작용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Gorski, 1993: 270).&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따라서 저자가 엘리아스에게 상당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본 저작의 후속 연구에서는 엘리아스가 수행한 연구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그가 다루지 못한 지점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포괄할 것이 요망된다. 국가와 사회의 “규율혁명(Disciplinary Revolution)” 을 통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규율혁명의 발생 여부와 국가의 경제적 지위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근대적 국가 형태들을 제시하는 Gorski 의 연구(Gorski, 1993: 304)는 본 저작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유용한 전망을 제공해준다. 또한 Gorski 의 연구는 본 저작이 근대적 사회질서라는 이름으로 동질적인 것으로 묶은 규율 질서에 대해서도 그것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발현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규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제시한다(Gorski, 1993: 271).&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그리고 이 저작은 국가권력의 변화에 주목하지만 경제체제의 변화 및 작동에는 그리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도시사회화와 규제를 다루는 장에서 억압적인 신분질서와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양립불가능성을 논하는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었음에도(219 쪽), 본문의 다른 부분에서는 경제의 역할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근대화의 거대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맑스의 논의는 근대성을 논하는 데에 있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분석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말해준다(맑스, 2007: 51-88). 일본의 근대화 과정 역시 서구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포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외교(Gunboat Diplomacy)’ 혹은 ‘자유무역 제국주의(Free-trade Imperialism)&#039; 에 대한 대응이자 모방으로써 이루어진 만큼, 이러한 경향을 낳고 촉진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근대적 질서에 의해 변화하는 동시에 근대화 과정을 조율하는 독자적 영역으로서의 경제에 대한 주목을 요청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또한 이 저작에서 나타는 국가이론, 경제관의 결여와 더불어 저자가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하여야 할 지점은 오히려 Goski 가 엘리아스가 그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다고 비판한 개인의 멘탈리티 영역이다. 저작 전반에 걸쳐 근대적 사회질서가 부과하는 규율을 받아들이는 주체들의 반응이 자주 인용되고 있음에도, 대부분 단편적인 인상비평이거나 기작에 대한 증명이 결여된 표면적 반응 위주에 그치고 있다. 특히 근대적 시간의 형성을 다루는 데에 있어 테일러리즘의 심리적 문제(그람시, 1999: 371-373)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상당히 의아하다. 근대성의 억압적 측면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근대화 과정이 주체들을 억압하는 기작과 그 억압의 심리적 결과가 명확하게 제시가 되어야 함에도, 저자가 이 문제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는 점은 저자의 목소리를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근대화와 문명화에 대한 맑스와 프로이트의 연구는 이 저작이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많은 유용한 설명을 제공한다. 맑스의 소외에 대한 논의(맑스, 2006: 82-104)는 노동과정을 표준화 시키며 고용주의 의도대로 규율하는 근대화가 단순히 노동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노동자의 멘탈리티 및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근대적 형태의 공장에서 초단위로 규율되는 시간과 작업공정은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케 함으로써 소외를 유발하며, 이는 결국 자연과 유적 존재로서 인간 고유의 활동적 기능으로부터의 소외를 야기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근대성의 억압적 측면은 오히려 저자의 연구보다 맑스의 연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상징적 대비-쾌와 불쾌, 청결과 더러움, 정과 부정 등-들은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병행된다면 더욱 풍성한 연구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아스 역시 상징적 대비를 강조하며 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계보학적 방법에 치중한 나머지, 근대성 속에서 성립하는 상징적 대비의 심상과 작동기작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청결과 질서는 문명의 요구 가운데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추구는 단순한 유용성 이상의 무언가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문명은 인류를 리비도적 유대로 묶인 공동체로 통합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에로스의 사회적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프로이트, 1997: 289-341). 저작의 인간관계의 변화에 대한 장(118-128 쪽)&amp;nbsp;역시 문명의 억압에 의한 신경증 및 사회에 의해 학습된 초자아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면 훨씬 풍성한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저자의 문제의식과 그 결과물은 상당히 만족스럽지만, 근대의 코스모스를 온전히 재현하기에는 우주에 구멍이 뚫린 부분이 많다. 물론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에 대한 계보학적 증명이 저작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이 저작의 연구성과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저자 자신이 근대성이라는 문제에의 천착과 그 극복을 강하게 주장한 만큼 구체적 자료를 근대라는 역사적 흐름과 연결시킬 수 있는 사회과학적인 분석이 추가되어야만 저자의 연구가 완전해진다고 할 수 있겠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TRONG&gt;&lt;br /&gt;
3. 코스모스의 내부 : 격동의 근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앞에서 저작의 이론적 측면에 대해 검토하였다. 요약하자면 저자의 연구는 충분한 실증적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이론의 부족으로 인해 문제의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다른 연구들의 실증적 자료를 참고하여 앞에서 언급한 이론적 측면을 보완하는 자료들을 검토함과 동시에 저작에 나타나 있는 주장들의 실증적 타당성을 함께 검토할 것이다. 특히 저작에서 묘사하고 있는 질서형성의 과정이 과도하게 단순하다는 지적을 중심으로 하여 실증적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저작의 문제의식을 확장시키고 좀 더 심화된 독서에 도움이 되는 길을 열고자 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저자가 상당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하여 연구를 했다시피 메이지 유신 이후의 사회질서와 도쿠가와 막부 시기의 사회질서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두 개의 질서의 외형적 상동성을 규명하는 것에 집중하여 두 개의 질서가 연결되는 고리의 형성과정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인 사무라이 계급은 도쿠가와 막부의 사회구조를 특징지었던 병농분리제에 의하여 관료층으로 재편되었던 존재이며 이들에 의해 관료주의적 지배이념이 정당화 되고, 이러한 이념이 정당화 하려고 하였던 관료제적 지배기구의 인적 구성이 유신 이후 국가와의 인적 연속성을 지닌다고 하였을 때(박영재 외, 1996: 3), 이들을 질서의 재생산을 담당한 주체이자 유신 이전과 이후의 가교라고 할 수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실제로 유신 이후 판임관급의 중하층 관료의 경우 구 막부 출신의 관료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였다. 막부 말기 양학(洋學)을 통해 서구의 기술을 익히고 막정개혁의 경험을 가진 이들 기술관료와 실무관료들이 부국강병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던 오오쿠보 정권의 강력한 3성체제(三省體制 : 내무성, 대장성, 공부성) 내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며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다(박영재 외, 1996: 48). 물론 이들의 일천한 경험과 단편적 지식,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국내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식산흥정책과 같은 서구산업의 외형적 이식은 실패하였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미시적 차원에서의 규율화는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기존 사회의 규율을 기반으로 하여 성공하였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하지만 이러한 규율의 내용물이 무가사회의 규율에서 곧바로 유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17세기 후기에 이르면 전쟁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무사의 긴장감이 사라진데다가, 경제가 안정되고 사치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무사들은 상권을 장악한 상인들에게 경제력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무사들에게 ‘무사다운 기풍’ 이 남아있을 리는 만무하였으며(구태훈·박기수, 2007: 111-114), 존재하지 않는 무가사회의 규율이 전사회로 확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풍(士風)을 상실한 무사들에 대한 무가사회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직분을 구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무(武)의 재발견을 촉구하였고(구태훈·박기수, 2007: 123), 그것이 사문화된 무가사회의 규율을 되살려낸 요인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무가사회 내부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명시화된 규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불충분한 편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추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선종의 청규(淸規)의 경우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사회질서와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무가사회의 규율보다 한층 어렵다는 것이다. 청규와 같은 근세 불교에서의 계율운동은 지닌을 거치며 계율주의와 민중구제의 결합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이는 후에 지운존쟈에 의해 민중적 계율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사회의 발전에 따른 제 모순의 전개에 대응한 농공상(農工商) 민중의 존재 형태의 변용과 민중사상의 변천에 응하면서 본격적인 부흥을 이룬다. 하지만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보시, 공양료의 변화는 사찰의 지배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들을 경제적 지배층으로 행세하게 만들었다(야마구치, 2001: 210-213).&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는 과연 청규가 사찰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위하력(爲下力)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지점이다. 실제로 진언종(眞言宗)으로부터 파생된 슈겐도의 경우, 권위를 얻게 되자 입산 수도자들은 금욕주의를 버리고 가정을 갖고 육식을 하였다. 또한 입산수도의 목적도 개인의 신비주의적 체험이나 참회를 위한 것에서 비금욕적인 속세의 사람들을 치료해주기 위한 것으로 변했다(젠슨, 2006: 329).&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그렇지만 청규를 비롯한 선종의 사상이 근대로 이어지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불교의 보급에 앞장선 선승들은 속세의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한자가 아닌 이해하기 쉬운 일본어로 글을 썼다. 이시다 바이간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심학(心學)은 내면의 태도를 바로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모든 상거래가 해탈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學)을 특정 계급의 지적활동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인간성을 연구하는 도전으로 간주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보편성 위에서 상인계급은 그들만의 윤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후에 메이지 관료들에 의해 심학은 금지되었지만 이는 서민들에게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계산을 억제하려 애썼으며 사회 전체의 가치를 일치시키는 방법을 제공하였다(젠슨, 2006: 331-333). 저작은 상인 계급의 사치를 법으로 규제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지만(218-219 쪽)&amp;nbsp;심학의 영향에 의한 자발적 규제 역시 충분히 조명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이는 계산에 의해 형성된 궁정문화와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양자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은 추후에 저자에게 넘겨진 과제일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또한 주목하여야 할 지점은 저자가 결과론적으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소동’ 이라고 간주하는 저항의 문제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일탈과 저항은 결국 근대적 사회질서의 좌표축 안에 고스란히 수용되는 것이다(128 쪽). 이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같이 ‘문명’ 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 의 불가피성과 가치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자들에게는 적절한 지적이 될 수 있겠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근대적 사회질서에 대한 거부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실패하였다고 하여 근대에 포섭되었다고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메이지 정부가 징병제를 도입하는 1873~74년에 성난 군중은 16차례나 폭동을 일으켜 수많은 병적보관소를 공격해 파괴했다. 또한 의무교육이 도입될 당시 초등학교의 재정은 국세인 재산세에 부과되는 10%의 지방세로 충당되었는데, 1870년대에 성난 납세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주로 방화(放火)를 통해 적어도 학교 2천 곳을 파괴했다(고든, 2005: 139-142). 이러한 대규모의 저항을 단순히 ‘소동’ 이라고 치부하기도 무리가 있을뿐더러, 집합행동이 원자적 개인들의 반발이 아닌 조직에 기반한 저항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이러한 저항이 단순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기도 힘들다. 집합행동은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며, 따라서 근대적 사회질서에 대한 거부는 곧 근대적 사회질서의 좌표축 외에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스카치폴, 1986: 304-306).&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군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상식적이면서도 치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뒷받침 되고 있다. 이 저작에서는 군대가 일본인들의 신체와 정신을 규율하는 핵심적 기제 중 하나로 작동한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군대와 사회 사이의 관계는 훨씬 복잡한 관계를 보인다. 당시 육군을 대표하는 군인 정치가의 한 사람이던 우가키 가즈시게는 사회질서 형태와 군대 조직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호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일본의 군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요시다, 2005: 28-30).&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와 더불어 저자가 강조하는 ‘인간개조’ 의 기제로서의 군대의 효용 역시 실제에 비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우선 군부가 의식적으로 추진하였던 군대를 통한 언어의 표준화 자체가 간단하게 달성될 수 없었다. 예컨대 오사카의 보병 제 8연대에서는 하사관 지원자가 적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부대로부터 하사관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1921년 동 연대에 입영한 오노 반장은 도호쿠 출신의 군조였는데 사투리와 도호쿠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아 사병들이 지속적으로 곤란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요시다, 2005: 45). 또한 양식에 대한 병사의 반발 역시 매우 강하였으며, 근대 일본이 경험한 최초의 대외전쟁인 청일전쟁 때에도 보급업무에 종사한 군인들 대부분은 짚신을 신고 있었다. 당시 가나자와의 보병 제7연대가 사흘간 실시한 종일 행군에서 각각 1,338명 중 687명, 1,327명 중 527명이나 되는 병사가 구두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경향은 메이지 이후의 다이쇼 시기에 들어서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문제로 남았다(요시다, 2005: 60-62). 식성과 구두로 대표되는, 신체 규율에 대한 병사들의 부적응은 1864년 10월 8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관찰자는 일본 군인들의 행진 모습이 전혀 숙달되지 않은 채 자신이 보조를 잘 맞추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언제나 앞에 있는 병사의 발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전혀 군인답게 보이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유모토, 2004: 370-371).&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요약하자면 저자가 저작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분은 다양한 자료를 검토한다면 과도한 단순화라고 간주할 수 있다. 관찰의 이론의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규율이라는 근대의 한 면만을 표현하는 자료들 위주로 수집하였기에, 그리고 그러한 쪽으로만 해석하였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검토들 역시 저작에서 표현하고 있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한 측면도 있으며, 저작에 나타나는 자료들 역시 엄연한 역사적 사실들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얼굴의 근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근대 내부에 있는 다양한 흐름들과 그 역동성을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TRONG&gt;&lt;br /&gt;
4. 카오스 : 질주하는 근대&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저자는 본문을 통틀어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전근대와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근대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저자에게 있어서 근대란 철저히 규율권력에 의해서 통제되는, 억압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로운 코스모스이다. 하지만 근대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시적 차원에서의 코스모스와 거시적 차원에서 카오스를 구분하지 않은 채 근대성 일반을 코스모스로 규정하는 것은 이념형과 현실간의 괴리를 무시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성이 일반적 코스모스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현실태가 카오스일 때, 현실을 다루는 역사서로서의 저작은 후자의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근대성에 대한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는 저자가 미처 다루지 못한 근대성과 근대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비에 의하면 근대성 역시 전근대성과 탈근대성과 마찬가지로 분절성, 순간성, 불연속, 혼란적 변화 상황이 연속적으로 관찰된다(하비, 1994: 71). 또한 근대화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리듬을 끊임없이 파괴시키며, 모더니즘은 덧없고 분절적인 세계에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하비, 1994: 267). 이는 근대성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정의될 수 없음을 말해주며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말해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따라서 저자가 정적이고 억압적으로 묘사한 근대적 질서는 근대라는 동전의 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또 다른 면에는 하비가 묘사한 혼돈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근대성이 낳은 문제점을 열거하며 그것에서 해방될 것을 주문하는 것은 다소 무기력해 보인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자칫 근대에서 근대로 탈주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특히 부정적인 것의 양가성을 무시한 채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근대적 도식 자체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매우 예리하다. 물론 저자 역시 근대의 양가성에 대해서는 다소 미흡해 보이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평등의 기제로서의 국민개병제와 국민교육의 기능 역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저작 역시 저자가 비판하였던, 근대적 좌표축 내부에 포섭되는 ‘소동’ 에 그칠 수도 있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쪽 번호&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바탕;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hans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br /&gt;
이후의 연구에서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분석적 문제, 근대성 자체의 양가성 및 문명론에 대한 일반론적 입장을 보강하여야겠지만 이 저작에서 보여준 성실한 자료수집 자세와 근대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은 저작의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다음 연구를 기꺼이 기대하게 만든다.&lt;br /&gt;
&lt;br /&gt;&lt;br /&gt;
&lt;STRONG&gt;참고문헌&lt;/STRONG&gt;&lt;br /&gt;
&lt;br /&gt;&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고든, 앤드류(Andrew Gordon).『현대일본의 역사』(이산, 2005)&lt;/P&gt;
&lt;P class=바탕글&gt;구태훈·박기수.『전통사회의 사회질서와 경제발전: 17~19세기 일본과 중국』(선인,2007)&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람시, 안토니오(Antonio Gramsci).『그람시의 옥중수고 I: 정치편』(거름, 1999)&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루사와 아키라.『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소화, 2004)&lt;/P&gt;
&lt;P class=바탕글&gt;맑스, 칼(Karl Marx).『경제학-철학 수고』(이론과실천, 2006)&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style=&quot;COLOR: #ffffff&quot;&gt;칼&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스 .&lt;/SPAN&gt;&lt;/U&gt;『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그린비, 2007)&lt;/P&gt;
&lt;P class=바탕글&gt;박영재·박충석·김용덕.『19세기 일본의 근대화』(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lt;/P&gt;
&lt;P class=바탕글&gt;스카치폴, 테다(Theda Skocpol).『역사사회학의 방법과 전망』(사회학연구소, 1986)&lt;/P&gt;
&lt;P class=바탕글&gt;야마구치 게이지.『일본근세의 쇄국과 개국』(혜안, 2001)&lt;/P&gt;
&lt;P class=바탕글&gt;엘리아스, 노르베르트(Norbert Elias).『문명화과정 I』(한길사, 1996)&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style=&quot;COLOR: #ffffff&quot;&gt;노르베르트 엘&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리아 스 .&lt;/SPAN&gt;&lt;/U&gt;『문명화과정 II』(한길사, 1996)&lt;/P&gt;
&lt;P class=바탕글&gt;엥겔스, 프리드리히(Friedrich Engels).『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백산서당, 1989)&lt;/P&gt;
&lt;P class=바탕글&gt;요시다 유타카『일본의 군대: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일본』(논형, 2005)&lt;/P&gt;
&lt;P class=바탕글&gt;유모토 고이치,『일본 근대의 풍경』(그린비, 2004)&lt;/P&gt;
&lt;P class=바탕글&gt;젠슨, 마리우스(Marius B. Jensen).『현대일본을 찾아서 1』(이산, 2006)&lt;/P&gt;
&lt;P class=바탕글&gt;코저, 루이스(Lewis A. Coser).『사회사상사』(일지사, 1978)&lt;/P&gt;
&lt;P class=바탕글&gt;프로이트, 지그문트(Sigmund Freud).『문명 속의 불만』(열린책들, 1997)&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비, 데이비드(David Harvey).『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한울, 1994)&lt;/P&gt;
&lt;P class=바탕글&gt;호스톤, G.A(G.A. Hoston).『일본 자본주의 논쟁』(지식산업사, 1991)&lt;br /&gt;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Philip S. Goski, &quot;The Protestant Ethic Revisited: Disciplinary Revolution and State Formation in Holland and Prussia&quot;, &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Th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lt;/SPAN&gt;Vol.99, No.2.(Sep.,1993), pp.265-316.&lt;/P&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lt;/SPAN&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3163079&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광대의 사회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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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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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4 May 2009 17:35: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일본사회의 &lt;게 공선&gt; 붐과 그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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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amp;nbsp;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영향은 경제대국 일본 역시 피해가지 못하였고 그 결과는 ‘격차사회’ ‘워킹 푸어’ ‘상실의 세대’ 등으로 표현되는 침체된 경제사회적 현실로 나타났다. 노마 필드는 이러한 일본의 출구 없는 모순 속에서,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29년에 출판된 코바야시 타끼지의 소설 &amp;lt;게 공선&amp;gt;에 대한 젊은 층의 열광을 분석한다(&amp;lt;시평&amp;gt; 일본의 사회현실과 『게 공선』의 부활, &lt;A title=&quot;[http://www.changbi.com/quarterly/intro.asp?pKind=01&amp;amp;pVOL_ID=143]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www.changbi.com/quarterly/intro.asp?pKind=01&amp;amp;pVOL_ID=143&quot; target=_blank&gt;창작과 비평 통권 143호&lt;/A&gt;). 필드는 &amp;lt;게 공선&amp;gt; 붐의 원인을 단순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며 그 붐 속에 나타나는 현대 일본사회의 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lt;br /&gt;
&amp;nbsp;&lt;br /&gt;
필드에 따르면 중년의 좌파들에게마저 도덕적 채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외면당하고 있던 타끼지를 부활시킨 것은 우연과 필연의 일치였다. 특히 우파 펑크록 밴드에서 노동운동가로 전향한 아마미야 카린은 &amp;lt;게 공선&amp;gt; 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단순한 상황인식 틀로서의 &amp;lt;게 공선&amp;gt; 에 대한 관심은 곧 사회변혁 및 연대에 대한 주장으로 전화한다. &amp;lt;게 공선&amp;gt; 이 일본사회에서 가지는 함의는 단순한 메타포를 뛰어넘으며 중년층의 반전운동과 청년층의 빈곤운동을 결합시키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눈앞에서 행해지는 야만적 착취에 대한 환기 및 즉자적 반발을 넘어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라는 구조 자체에 대한 대자적 저항을 주문하는 타끼지의 문제의식이 현재의 사회경제적 정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lt;br /&gt;
&amp;nbsp;&lt;br /&gt;
하지만 필드가 말한 대로 &amp;lt;게 공선&amp;gt; 붐이 표현하는 집단성과 행동주의에 대한 갈증이 노동의 필요성과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잘 사는 사회에 대한 열망에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열망이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에서의 접근이 요망된다. 얼마 전 김종철 &amp;lt;녹색평론&amp;gt; 발행인은 시사주간지 칼럼(&lt;A title=&quot;[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1]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1&quot; target=_blank&gt;시사IN 76호&amp;lt;보수파의 양심을 위하여&amp;gt;&lt;/A&gt;)에서 &amp;lt;게 공선&amp;gt; 의 부활과 일본 우파 학자들의 신자유주의 비판을 예로 들며 선진 자본주의 국가 일본에서의 대전환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향이 곧 파렴치한 거래의 자유에서 벗어난 시민적 결사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lt;br /&gt;
&amp;nbsp;&lt;br /&gt;
1930년대의 세계 경제공황 당시에도 슈펭글러의 &amp;lt;서구의 몰락&amp;gt;을 필두로 한, 기존의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지만 그 귀결은 곧 파시즘이었다. 기타 잇키나 오타와 슈메이 등 당시 일본의 파시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물질에 기반을 둔 천박한 문명이라 비난하며 정신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적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요컨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디로든 튈 수 있는 공이라는 것이다. 구좌파와 신좌파, 신신좌파,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이념의 경계를 어려움 없이 넘나드는 아마미야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투영물을 발견하는 현대 일본 젊은이들의 군상은 민주주의적 권태를 견디지 못하고 군국주의의 환상으로 치달은 미시마 유키오와 겹치며 사회주의 기관지 &amp;lt;전진&amp;gt; 의 편집장이었던 무솔리니의 모습을 어렴풋이 내비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대자적 계급의식을 갖추지 못한 채 즉자적 저항의지만을 표출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은 노동자의 총파업 및 파시즘에 동시에 열광하였던 생디칼리스트 소렐의 모습에 가장 가까워보인다.&lt;br /&gt;
&amp;nbsp;&lt;br /&gt;
특히 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비참할 정도의 정치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상황은 &amp;lt;게 공선&amp;gt; 붐 이후의 상황전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힘들게 만든다. 종잡을 수 없는 거친 바다와 같은 인민의 일반의지와 국가를 직접 접촉시키려는 시도는 대개 데마고그에 의한 파시즘으로 귀결되었다. 정당이 중심이 되는 현대 의회 정치과정은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특수이익들의 갈등을 제도화 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 정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표와 책임성의 원리-즉, 정치인이 그 지지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그 행위에 대해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는-가 필수적이지만 현대 일본 정치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회의 불만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정치가 부재하는 사회에서 억압된 갈등들은 노골적인 힘의 행사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시도는 용산참사와 같이 국지적으로 진압되거나 폭력혁명과 같은 거대한 피바다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lt;br /&gt;
&amp;nbsp;&lt;br /&gt;
그리고 저항의 움직임이 폭력의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그것이 제도화 된 정치의 영역에서 대변되지 못한다면 저항세력이 요구하는 내용들은 실제 제도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오히려 깊은 실망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로는 한국의 촛불시위를 들 수 있다. 한때 주최 측 추산으로 전국에서 100만 명의 시민을 동원한 촛불시위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였으며 역으로 지배블록의 자신감만 키워준 채 시민들에게는 저항에 대한 깊은 회의주의만을 남겨놓았다. 필드의 글에서 묘사하는 일본사회에서는 &amp;lt;게 공선&amp;gt;을 둘러싼 직접 행동적 열망만을 읽어낼 수 있으며 좋은 정치와 제도에 대한 성찰은 읽어내기 힘들다. 정치가 부재하는 일본에서 지속적인 열정의 동원을 필요로 하는 시민간의 연대가 얼마나 국가의 모습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lt;br /&gt;
&amp;nbsp;&lt;br /&gt;
맑스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되며 현재의 모든 운동은 과거의 상징을 빌려온다. 이런 의미에서 &amp;lt;게 공선&amp;gt; 은 현재의 세대가 빌려오는 과거의 상징이다. 근대문학이 종언된 현재에서 진행되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했던 시절의 상징을 빌려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은 위대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였고 보나파르트 역시 삼촌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였듯이, &amp;lt;게 공선&amp;gt; 을 빌려온 세대가 만들어가는 운동은 &amp;lt;게 공선&amp;gt; 이 그려내는 시대의 운동보다 왜소할 것으로 보인다.&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3000293&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국제</category>
			<category>게공선</category>
			<category>고바야지 타끼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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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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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Apr 2009 17:54: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민족주의는 모조품이다 : 단군의 경우</title>
			<link>http://flyingpen.sisain.co.kr/entry/%EB%AF%BC%EC%A1%B1%EC%A3%BC%EC%9D%98%EB%8A%94-%EB%AA%A8%EC%A1%B0%ED%92%88%EC%9D%B4%EB%8B%A4-%EB%8B%A8%EA%B5%B0%EC%9D%98-%EA%B2%BD%EC%9A%B0</link>
			<description>&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quot;window.open(this.src,&#039;&#039;,&#039;resizable=yes,toolbar=no,menubar=no,  width=550,height=290  &#039;)&quot; src=&quot;http://yscec.yonsei.ac.kr/data/20091/bbsimage/140645/12389470452760540889.jpg&quot; width=500 border=0&gt;&lt;br /&gt;

&lt;P&gt;...국가는 이미 진정한 혈통관계로 맺어진 가족국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민족의 시원을 단군으로 보는 시각은 이미 1898년에 관찰되며(「皇城新聞」, 9월 5일), 그리고 같은 신문의 1905년 사설 ‘國家思想論’에서는 국가를 “一致團結의 血性”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2월 16일). 이러한 시각은 이후 더욱 발전되고 넓게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국가관은「大韓每日申報」,「皇城新聞」그리고「西北學會月報」등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皇城新聞」의 1909년 4월 21일 사설은 단군을 “聖祖” 와 “國祖”로 지칭하여, 단군을 기원으로 한 가족국가관을 제시한다. 다른 예로 「西北學會月報」의 한 기사 “國家論의 槪要(續)”는 국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lt;/P&gt;
&lt;P&gt;&lt;br /&gt;
“所謂 民族이라 云者 家의 集合體로 家에 家長이 有과如히 族에도 亦 族長이 宥야 家族이 家長을 崇拜야 此에 服從과 同一의 思想으로 以얏도다. 凡家族은 共同의 始祖로 一族의 長을 崇拜고 其 權에 服從며 族長은 凡家族의 長으로 族 全體를 統御는 地位에 立者라. 此 卽 血族團體라 稱 者라. 國家의 始原은 洋의 東西와 國의 文野를 不問고 可던지 一家一族의 制로 始하야 成고 特히 我邦이 最著야 或은 此를 稱하야 血族的 國家라 稱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족으로서의 국가, 혹은 가족국가는 보편적인, 따라서 자연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민족형식으로 도입되었으며, 이 개념을 통하여 구체적 민족주의 담론이 발생하였다.&lt;U&gt; 이러한 국가관념 및 가족국가관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일본의 천조대신과 대응적으로 단군이 조선 민족의 조상으로 불리게 된 점이다.&lt;/U&gt; 이 점과 관련하여 삿사 미츠아키(佐佐充昭, 2000; 2001)의 독창적 연구들은 어떻게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가 일본의 종족적 민족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해 잘 논증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U&gt;천황의 지위와 권력은 메이지 이전 시대에는 단지 명목적인 것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를 통하여 단군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이 메이지 시기에 새로운 전통으로 “발명” 된 국가종교인 국가 신도의 상징적 중심이 되었듯이, 한국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일본의 전통종교에 비견할 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는 것이다.&lt;/U&gt; “민족 종교”인 단군교(대종교)는 1909년 나철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공포되었는데, 이 때 이들은 이 민족종교가 이미 수천년 전 창설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광”(重光)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lt;br /&gt;
&lt;br /&gt;&lt;FONT color=#318561&gt;채오병, &quot;민족형식과 민족주의&quot;, 2007, 한국사회학 제 41집 4호&lt;/FONT&gt;&lt;br /&gt;
&lt;br /&gt;&amp;nbsp;이상의 내용은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전후맥락을 설명하자면 조선의 초기 엘리트들은 이미 조선과는 달리 국민국가를 완성한 일본(제국)의 민족주의-국가주의에 강한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조선만의 민족주의를 만들지만 &#039;민족&#039;&amp;nbsp;과 &#039;국민국가&#039; 의 구성요소라는 프레임은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모방한다. 예컨대 F15 전투기를 만들기 싫어 라팔을 만들더라도 날개와 콕핏, 랜딩기어 등의 구성 요소들은 꼭 포함시키는 것이다(물론 모양은 다르지만). 논문에서는 이것을 &#039;이데올로기적 반발, 헤게모니적 인각&#039; 이라고 표현한다. 제국의 이념과 식민지의 이념이 이데올로기적인 내용물은 서로 반대되지만 더 큰 사고의 틀인 헤게모니적 차원에서는 양자가 유사하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amp;nbsp;그리고 이러한 헤게모니적 인각이 가장 잘 나타난 사례가 바로 단군신화이다. 독일 국가학의 이론적 대부인 헤겔에 의하면 국가는 &#039;자연적 측면&#039;(탄생, 핏줄, 관습, 전통 등) 에 입각한 강제조직이다. 따라서 독일 국가학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자신들이 창조한 국민국가를 가족국가의 형태로 설정한다. 즉, 국민이 사회계약을 통하여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통해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혈통의 정점은 바로 메이지 이후 새롭게 정치적 상징으로 부상한 천황이다. 메이지 이전까지는 일반 인민은 천황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천황에 대해 민간신앙의 신들과 비슷한 희극적이고 과장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일본의 시조라는 아마테라스 여신(천조대신)에 대한 신화도 보편적이지 않았음은 당연하다.&lt;br /&gt;
&lt;br /&gt;&amp;nbsp;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은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위한 도구로서 천황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천황으로 혈통이 이어지는 창조신 아마테라스 여신의 신화를 내세워 천황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위치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일본인의 혈통적 시조로서의 천황가를 강조하는 것이다. 직접적 자연성에 바탕을 둔 인륜적 정신인 가족의 형태가 더 큰 인륜으로 확장되는 형태인 가족국가 모델에서 국가의 지배자는 계약을 통해 주권을 위임받은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질서를 통해 신에게 권위를 위임받은 가부장이 된다. 따라서 지배자로서의 천황은 국민에게 그 정당성을 승인받을 필요가 없으며 가부장의 권위를 통해 일본이라는 가정을 통치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국가 모델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 메이지 천황의 시찰 당시 사람들은 메이지 천황에게서 위엄있는 근대군주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의 시선까지 느꼈다. 이는 국민들의 충성심 진작과 국가의 통합에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lt;br /&gt;
&lt;br /&gt;&amp;nbsp;당시 제국 일본 및 서구 열강들의 이권침탈에 골머리를 썩히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일본이&amp;nbsp;천황을 중심으로 통합된 가족국가 모델을 통해&amp;nbsp;강한 제국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amp;nbsp;몇가지 문제가 있었다.&amp;nbsp;조선은 기본적으로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마테라스 여신의 혈통을 강조하기 위한 신토(神道) 의례의 발명 및 국가적 장려와 같은 수단이 불가능하였으며, 역성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왕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혈통적 권위를 내세울 수가 없었다. 요컨대 역성혁명이 발생하지 않고 황실이 유교전통에 매몰되지 않은&amp;nbsp;일본에서는 자신들의 혈통적 권위를 종교적 차원에서 내세우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자신들이 조선인의 시조이자 혈통적 아버지라고 자처한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씨왕조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는 점이다. &lt;br /&gt;
&lt;br /&gt;&amp;nbsp;따라서 당시 조선의 일부 엘리트들은 국민통합의 수단으로서&amp;nbsp;이씨왕조를 버리고 새로운 상징을 발굴해낸다. 그것이 바로 단군이다. 단군은 이론상으로(?) 조선 민족의 혈통적 시조이기 때문에&amp;nbsp;가족국가의 구심점이 될 수 있으며 또한 &#039;단군민족&#039; 이라는 경계설정이 가능해진다. 아마테라스의 피를 이어받은 민족과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민족은 서로 구분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구분이 가능해질때 양자는 각자의 독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amp;lt;표 1&amp;gt; 에서 보다시피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에 나타난 &#039;민족적 의식&#039; 의 대다수는 일본의 그것들과 일대일로 대응한다. 이는 이러한 &#039;민족적 의식&#039; 들이 그 당시에 민중들 사이에 이미 퍼져 있었다기 보다는 일본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대한 대응으로써&amp;nbsp;발명 혹은 발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앞에서 간략히 이야기했다시피 일본의&amp;nbsp;민족주의 역시 서구의 가족국가 모델에서 그 형태를 차용한 것이다.&lt;br /&gt;
&lt;br /&gt;&amp;nbsp;현재 한국의 중등과정에서 배우는 윤리교과서에는 상당히 위험한 헤겔적인 가족국가관과 단군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조선은 자신만이 단군의 직계 후계자라고 내세울만한 주체가 없었기에 일본의 천황제와 같이 혈통적 민족주의가 물화되지는 못하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대통령 대신 왕검이 통치하는 입헌군주국이 되는 것은 면하였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민족의 화신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민족주의의 광기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채울 독재자가 나타나기 어렵게 만든다. 2차 대전 당시 천황은 가부장의 권위에 호소하여 신민을 동원하였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붉은악마를 개인을 위해 동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은 상존하는 법. 우리는 그 동안 중등교육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주입되었던 &#039;발명된 민족&#039; 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는 시민적 연대를 통한 사회이지 혈통적 유대를 통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광대의 사회학</category>
			<category>국가주의</category>
			<category>국민국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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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군신화</category>
			<category>대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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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데올로기</category>
			<category>천황</category>
			<category>헤게모니</category>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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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Apr 2009 16:23: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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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고전 그리고 &#039;스포츠 연세&#03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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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ONT color=#318561&gt;&lt;FONT color=#000000&gt;&amp;nbsp;지난 2008년 2학기, 개강 첫 주의 화두는 단연 연고전이었다. &amp;lt;연세춘추&amp;gt;(이하 ‘춘추’) 역시 이에 발맞추어 9월 1일 발간된 &lt;A title=&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number=1593]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number=1593&quot; target=_blank&gt;1593호&lt;/A&gt;에서 연고전 특집을 보도기획으로 다루었다. 종목별로 경기방식, 주목할 선수, 전력분석, 전문가분석과 같은 4개의 세분화된 코너를 만들어&amp;nbsp; 자세한 정보를 소개한 춘추는 이 외에도 연고전에 대한 많은 기사를 &lt;A title=&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number=1594]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number=1594&quot; target=_blank&gt;1594호&lt;/A&gt; 까지 2주 분량에 걸쳐 수록하였다. 연고전은 두 거대사학이 공식적으로 개최하는 행사이며, 응원단에서 개별 학우들까지 수많은 교내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이기에 이에 대해 마땅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교내 언론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하지만 연고전을 보도하는 춘추의 태도는 합당한 정도의 관심을 표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과열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종목별 심화분석은 정론지를 자처하는 교내언론이 특별기사로 내보낼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다. 팀의 전력 분석과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분석, 전문가 평론까지 곁들인 보도기획은 평소 교내의 여러 목소리들에 관심을 보이고 공론장을 만들어주었던 춘추의 평소 행보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 이슈가 되었던 오세철 교수 구속 등의 사건들 역시 다루고 있지만 ‘보도기획’ 이라는 이름하에 연고전이라는 하나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포츠로서의 연고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스포츠 연세’ 가 할 일이지 춘추가 할 일이 아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또한 1593 호의 기사 &lt;A title=&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972]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972&quot; target=_blank&gt;“연·고전에서의 진정한 승리”&lt;/A&gt; 는 연고전에 대한 과열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넘어 전체주의를 방불케 하는 섬뜩함까지 풍긴다. 다음은 이 기사의 몇 구절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EM&gt;&lt;FONT color=#000000&gt;&amp;nbsp;“베이징 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하여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일체감을 부여하고, 승리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한 것처럼, 연·고전은 연세의 이름으로 재학생, 동문, 교직원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이다.” &lt;/FONT&gt;&lt;/EM&gt;&lt;/P&gt;
&lt;P&gt;&lt;EM&gt;&lt;/EM&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EM&gt;“올해에도 연세의 지성들이 단단한 결집력으로 독수리처럼 지축을 박차고 높게 비상하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lt;/EM&gt;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일체감’ ‘자부심’ ‘긍지’ ‘모두가 하나’ ‘단단한 결집력’ 등의 어휘가 난무하는 기사는 스포츠가 시민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기사는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대학생들의 건전한 아마추어 스포츠에 대한 주문으로 끝을 맺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문제의식은 결코 스포츠의 사회적 맥락까지는 이르지 못하며 공동체의 통합이라는 가치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역시 기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미완의 연고전’ 이 아니라 연고전 그 자체이다. 스포츠에서 아마추어리즘의 강조는 제국주의의 국민동원 프로그램과 그 연원이 맞닿아 있다. 물론 일반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생활 스포츠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기획이지만 공동체 통합의 목소리와 맞물리는 순간 섬뜩한 쇳소리를 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기사의 후반부에서 바람직한 예로 제시하는 서구의 체육교육은 식민지 개척에 동원할 수 있는 강한 엘리트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다름 아니었다.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격화되던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던 성장소설은 복싱 등의 스포츠를 통한 자기계발과 남성으로서의 각성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서구의 체육교육이 모델로 삼는 지덕체(智德體)가 합일된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곧 자신의 무기를 갖추고 있는, 폴리스가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전쟁터로 달려갈 수 있는 군인이었다. 기사에서 바람직한 통합의 기제로 간주하는 근대 올림픽 역시 국민을 강한 군인으로 개조하기 위한 쿠베르탱 남작의 신념에서 비롯된 행사에 불과하다. 통합을 강조하는 기사 첫머리에서 나치의 베를린 올림픽을 찬양하는 기록영화 &amp;lt;의지의 승리&amp;gt; 를 촬영하였던 레니 리펜슈탈의 망령이 어른거린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1594호의 기사 &lt;A title=&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056]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056&quot; target=_blank&gt;“응원단,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lt;/A&gt; 는 언론의 사회적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자의 자질 향상이 필수적이라는 고전적 진리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연세대의 상징인 파란색이 일본 응원단 ‘울트라 닛폰’ 의 응원가를 차용한 연세대의 응원가 ‘싸.이.고’&amp;nbsp; 와 얽혀 일본을 연상케 한다는 기자의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빨간색이 위쪽, 파란색이 아래쪽에 있는 태극기는 한일전이 있을 때마다 일본을 발밑에 두자는 제국주의적 사상을 연상케 하는 문제 있는 국기인가? 차라리 기자가 문제 삼은 응원가 ‘싸.이.고’ 의 제목이 정한론(征韓論)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침공 시도까지 한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이름과 같다고 기사를 쓰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였을 것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공동체의 질서와 통합에 대해 수많은 뛰어난 연구결과를 남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그의 마지막 저작 &amp;lt;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amp;gt; 에서 원시상태의 인류가 집단적으로 종교의례를 행하며 느끼는 집단적 열광의 경험이 사회를 하나로 묶게 된다고 보았다. “공통적인 관념을 공통적인 의례로 함께 옮긴다는 사실에 의해 결합되어진 사회“ 와 ”사회는 신의 또 다른 이름“ 이라는 뒤르켐의 언명은 집단적 체험이 집단의 결속에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행하는지를 잘 표현해준다. 그리고 뒤르켐에 따르면 종교적 체험이 기반이 된, 공통의 신념으로 묶인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에 기초한 사회는 개인의 의식이 집단의 의식에 귀속된,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이다. 뒤르켐이 말하는 집단적 열광의 경험과 연고전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아 보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그렇기에 연고전이 학업에 지친 학우들에게 신성하고 흥분되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수행하는 긍정적 기능을 부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순혈적 공동체로의 통합기제의 역할을 수행하는 폭력적 측면 역시 바라보아야 한다. 연고전이 자유로운 지성인들의 자유로운 결사를 촉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연고전은 지성의 도피처에 가깝다. 저 위대한 트리어(Trier)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고전에 대한 열광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도피이다. 연고전은 곤궁한 신입생의 한숨이며, 무정한 대학생활의 감정이고, 또 영혼 없는 상아탑의 정신이다. 연고전은 학우들의 아편이다. 이것은 비단 연고전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모든 사회현상에 적용되는 말이다. 공동체에 대한 열망은 대개의 경우 이질적 주체들을 타자화(他者化) 시키며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직시할 수 없게 만들기 마련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연고전에 대한 필자의 부정적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정론지는 모름지기 사회현상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공론들이 형성되는 것을 도와야지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려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지성인들이 모여 있다는 상아탑의 언론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말마따나 지식인은 단춧구멍에 꽂는 장미꽃이 아니라, 대중이 깨닫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문제들을 들추어내는 것이 그 본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모든 연세대의 학우들은 ‘연세인’ 이기 이전에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지닌 ‘대학생’ 이다. 역시 언론의 임무는 대중의 구미를 잘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불편한 진실’ 을 상기시켜 줌으로서 독자들에게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연고전에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소개하고, 연고전 시즌에 이루어진 오세철 교수의 구속에 대한 취재도 비교적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한 춘추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다소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교내의 유일한 학보로서 춘추의 위치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의 비판은 필수적이다.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어 졌을 때 시소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반대쪽에 의도적으로 무게를 싣어주어야 한다. 이는 춘추의 보도방식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연고전이 연세대의 근간을 이루는 절대적 실재가 아니라 성찰되어야 할 하나의 ‘현상’ 이라면, 그리고 허구적 통합의 열망이 캠퍼스를 지배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수많은 열광의 함성에 묵살되지 않도록 무게를 싣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춘추가 적극적으로 연고전 반대 운동에 나서라는 주문이 아니라 목소리의 크기들을 조절해달라는 주문이다. 1594호의 &lt;A title=&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059]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059&quot; target=_blank&gt;“안티 무관심”&lt;/A&gt; 이라는 칼럼에서 올바르게 제기해준 문제의식을 춘추의 편집의도에도 반영하여야 춘추가 진정으로 지성인들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중앙언론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lt;br /&gt;
&lt;/FONT&gt;&lt;br /&gt;
&amp;lt;연세 언론비평&amp;gt; 에 게재&lt;/FONT&gt;&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2971057&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투덜투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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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스포츠</category>
			<category>언론비평</category>
			<category>연고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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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연세춘추</category>
			<category>전체주의</category>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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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Apr 2009 21:05: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비현실적 여성할당제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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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br /&gt;

&lt;P&gt;&amp;nbsp;최근 진보신당의 당헌 및 당규를 둘러싼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당내에서 일어났던 논쟁들은 고도의 추상성을 담보하는 이념적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제도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집권을 목표로하는 공당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특정 정당이 아무리 좋은 이념을 가지고 있어도 이념을 현실에 반영시킬 좋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현대 정당이론가 사르토리의 지적대로 제도는 우선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제도는 그 자체가 도덕성의 판단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재(制裁)와 보상(報償)으로 구성된 유인체계의 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도덕성 혹은 진정성을 검증하는 종교재판이 되기 쉽다. 아쉽게도 현재 당내에서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사르토리가 말한 구체적인 제도의 작동기제 및 기대효과와 같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제도의 취지라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여성할당제이다. 3월 1일 당 대회에서 논의하게 될 당헌 및 당규 원안에 의하면 전체 선출직과 임명직 중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며 선출직의 할당은 일반명부와 분리된 여성명부에 대한 투표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제도가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선한 동기와는 달리 왜곡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위의 규정에 의거하여 치러진 최근 대의원 선거만 보더라도 제도의 문제점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장 극적인 문제점을 들자면 명부 할당을 맞추기 위해 일반명부가 없이 여성과 장애인 대의원만을 선출해야 하는 일종의 게리맨더링까지 이루어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에 대해 최근 필자와 권병덕, 허건 대의원이 함께 발의한 당헌 및 당규 개정안은 여성 할당 비율을 3명당 1명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합단일명부에 의한 선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의무적으로 배정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당원을 동원하는 폐단 (애초 취지와는 달리 여성의 정치‘참여’ 가 아니라 ‘복무’를 읍소하는 실정) 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할당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쏟아지는 규탄은 발의자들의 지적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교정수단을 제시하지 않으며 제도의 이념적 당위성만을 내세우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성의 정치참여를 당위로 내세워 현행 여성할당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주장의 이면에는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직접통치를 의미하며 모든 ‘민주적 가치(양성평등, 경제적 평등 등)’ 들을 포함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강령적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인민의 직접통치를 강조하며 여성의 목소리는 여성 자신에 의해서만 대변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수의 합의를 통해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당의 목소리와 개개인이 말하는 감성적 체험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낭만적 사고일 뿐이다. 그리고 여성만의 특수이익이 존재한다면 이는 여성 부문 창설 후 이에 대한 할당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전체적 할당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부문으로 조직화된 여성은 오히려 지역과 부문별로 산개된 여성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단일한 목소리로 여성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인민이 피치(彼治)에 대해 동의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단순히 여성정치인의 수를 양성평등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다. 현재 한나라당의 당헌에는 지역 대의원 및 국회의원 지명 대의원의 50%를 여성으로 할당하게 되어 있으며 최고위원과 같은 고위직의 경우는 여성당선자가 한명도 없을 경우 여성 최다득표자에게 한 자리를 배당해주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현재 한나라당에는 박근혜, 나경원, 전여옥 과 같은 스타급 여성 정치인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한나라당이 여성친화적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여성의 수가 아니라 정당 내부의 여성친화적 분위기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기계적 할당이 아닌 선거과정에서의 철저한 검증과 여성친화적 개혁정책의 개발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민주주의에 대한 최대강령적 이해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제도적 절차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대표와 책임의 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전 영역에 걸친 여성할당은 다른 부문할당에 비해 과잉대표 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각 지역과 부문 내의 여성이 여성 스스로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면,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표 가능성 역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어떠한 근거에서 성별만이 전 영역을 포괄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대표되어야 하는 근본모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가. 따라서 근본적으로 보자면, 여성할당은 부문으로 배정되어야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또한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여성할당제로 인해 생겨난 공간을 채울 소명의식 있는 여성 정치가 자체가 극도로 부족한 실정에서 전 영역에서 의무적으로 공간을 비워놓는다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방해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이미 제도권에 안착한 기성정당과는 달리 가용가능한 자원이 매우 적은 신생정당에게 있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은 정당의 집권가능성과 제도권 안착을 가로막는 중대한 질곡으로 작용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단순히 당내 여성정치인의 수가 성평등지수와 연결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그 기회비용을 냉정하게 계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전 영역에 대한 여성할당제는 성별을 막론하고 당직을 희망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여력이 된 이후에야, 그리고 당이 생존의 단계를 넘어 가치를 둘러싼 담론에 공식 행위자로서 들어갈 정도의 위상을 지닌 후에야 검토해 볼 문제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의 저서 &amp;lt;담대한 희망&amp;gt;에서 소수자 우대법(affirmative action)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소수자 우대법이 역사적 과정이 있으며 자원이 풍족한 호황기에는 다수의 관용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자원 자체가 부족한 불황기에는 오히려 다수의 증오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소수자 우대법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소수자의 불이익과 다수의 불안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중재 지점을 찾는 오바마의 문제의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정치인의 희소성이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망자 자체의 희소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컨대 차기 여성 정치인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의 수립과 같은 대안도 가능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이미 많은 문제를 보이고 있는 여성할당제를 고수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당내 여성권익 향상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실제적인 여성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여성할당제가 도덕적 명분 외에 구체적인 실익을 낳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순히 당내 여성정치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넘어 여성이 실제적 권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과도한 도덕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접근에서 벗어나 문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을 통해 현실적인 사고를 제약한다. 사안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끊임없이 도덕적 열정과 규탄을 수반하며 이는 정치과정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들어설 기반을 해체하며 정치를 검증 불가능한 진정성의 경쟁장으로 만드는 나쁜 효과를 낳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여성할당제에 대한 기존의 논의 상당부분이 비이성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동원된 여성주의 이데올로기는 억압과 투쟁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여성에게 배당되어야 할 몫의 양에 대한 합리적 계산 제안마저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이는 매우 감정적인 반발로 표출된다. 하지만 정당은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집단이며 정당의 운영은 일차적으로 집권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이 집권 외의 사안-예컨대 당내 ‘실질적’ 민주주의의 보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자족적 공동체 이상의, 사회 내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의미 있는 세력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통치의 내용이지 통치의 주체가 아니다.&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2643310&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광대의 사회학</category>
			<category>대의원</category>
			<category>선거</category>
			<category>성평등</category>
			<category>여성할당</category>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제도</category>
			<category>진보신당</category>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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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Mar 2009 18:49: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용산 이후의 용산 : 계급, 법, 그리고 정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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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lt;/SPAN&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발터 벤야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ns = &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quot; /&gt;&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1. 들어가는 말&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에는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하여 이민자들의 우두머리 클로팽을 위시한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등장하여 은신처와 자유를 요구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들의 요구는 초기에는 은신처에 대한 일차적 요구에서 출발하지만 억울하게 갇힌 감옥에서 탈출하여서는 보편적인 자유, 평등, 박애를 요구하는 데에까지 이른다(프랑스 작품답다). 이민자들의 투쟁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점거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신부 프롤로와 국왕의 근위대장 페뷔스가 연합한 공권력에 의하여 클로팽이 사망하며 불법체류자들이 진압되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이는 당시 유럽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종교권력과 파리를 통제하던 국왕의 권력-당시는 근대적 형태의 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프랑스 국가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이 연합하여 지배블록의 안정성에 균열을 내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억압한 것이다. 요컨대 극중에서 지속적으로 부각되는 균열축은 무산자들과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 간의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인류가 낳은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은 특정 시대를 다루더라도 모든 시대의 보편적 문제들을 그 안에 투사하여 볼 수 있게 만든다. 불법체류자들을 타도하라는 프롤로와 페뷔스의 코러스, 은신처를 달라는 클로팽의 절규는 14세기 파리가 아닌 21세기 용산 한복판을 무대로 하여 다시 울려 퍼졌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는 현재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열연중이지만 그것의 현대적 변주는 2009년 1월 20일 용산 국제빌딩 4구역에서 전국을 무대로 이루어졌다. 아트센터의 푹신한 좌석과 다채로운 조명, 멋진 연기자들 대신 조잡한 망루와 볼품없는 컨테이너, 험악한 경찰특공대가 출연하였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계급투쟁의 좌절이라는 비극에는 고전적인 품격보다는 현실적인 비천이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 현실적인 비극은 관객들에게 예술적 가공이 만들어내는 숭고미를 선사하는 대신 어떠한 가공도 없는 유혈과 폭력, 그리고 화염이 난무하는 처절한 현실을 볼 것을 요구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기존의 계급 간 갈등이 신의 이름을 빌어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계급투쟁은 그 모든 외피를 벗어버린 채 노골적인 이익의 이름 아래 진행된다. 그리고 용산참사가 대표하는 계급간 갈등은 건설자본으로 대표되는 대부르주아와 영세 상인이 주를 이루는 쁘띠 부르주아간의 갈등이다. 철거민들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그들의 악랄한 정책 때문에 갑자기 생겨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도 용산과 같은 신화적 폭력의 투쟁현상을 뚫고 살아오고 있다. 따라서 용산참사에 대해 야권에서 주장하듯 악랄한 정권의 의도적인 살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과거 그들의 집권기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야만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쁘띠 부르주아의 무산화 경향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요인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권력의 작동방식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2.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쁘띠 부르주아의 무산화 경향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 문제이다. 1970년도의 통계를 보면 자영업주는 54.6%, 임금, 봉급 생활자는 27.5% 이지만 1995년에 이르면 자영업주는 31.5% 로 크게 감소한 반면 임금, 봉급 생활자는 42.1% 로 크게 증가한다. 양극화를 가속화시킨 주범으로 지목당하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도입되기 전부터 계급적 양극화는 진행되어온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이와 같은 경향성은 전통적으로 중소 자영업자들에 의해 점유되어 왔던 사업 영역들에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1995년 5월 말까지 매출액 순위 5,000위내의 대기업에 백화점이 모두 73개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중 100위 내에는 3개, 101위에서 500위 내에는 19개, 501위에서 1,000위 사이에는 18개 업체 등 1,000 위 내에 총 40개 업체가 포함되어 있다. 1996년도에 2,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백화점은 전국적으로 22개에 이르며 순위는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현대백화점 본점의 순이다. 또한 LG 그룹, 롯데그룹 등이 진출해 있는 편의점 체인은 대체로 이익을 점주에게 40%, 본사에 60% 으로 나두고 있으며 외식 산업 역시 롯데리아와 두산과 같은 대자본들에 의해 대부분의 매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위의 통계들은 외환위기 이전의 상황이며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였고 그 자리를 메꾼 것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대자본들이었다. 또한 당시 많은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밑천삼아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업종을 바꾸며 퇴직금을 날려먹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경향은 경기가 침체될수록 더욱 강화되어 지난해 자영업주는 재작년에 비해 7만9000명이 줄어듦으로서 2000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600만 명 밑으로 내려간 가운데 올해 영세 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지수는 38.7 로 작년 9월의 61.4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앞의 통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경기침제로 폐업한 쁘띠 부르주아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팔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뿐이며 그/ 그녀는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된다. 그야말로 위기의 자영업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한국의 경제구조는 기본적으로 대기업 위주로 짜여있으며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영세 상인에 대한 고려 없이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실정이기에 영세 상인들은 단골화를 통한 사회적 자본 형성 외에는 생존을 보장하는 뾰족한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단순히 대기업에 의한 영세 상인의 상권잠식을 방관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국가권력은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영세 상인들이 간신히 형성해놓은, 생존을 위한 사회적 자본을 해체하며 그들의 생산수단까지 빼앗아 대기업에게 건네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국가권력이 개입한 계급간 갈등의 분수령을 이루며 그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이번 용산참사를 야기한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을 뒤에서 주도하는 삼성물산이 역세권 개발 사업에서 얻는 이익은 1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은 포스코, 대림과 함께 재개발 후 주상복합 아파트를 시공하는 데 이 분양가는 1평당 350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반면 개발을 추진하는 재개발 조합에서 세입자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대부분 개인당 5천만원을 넘지 않으며 이는 세입자들이 상가를 분양받기 위하여 투자한 권리금 및 시설 개선비용에 턱없이 못 미치는 비용이다. 상가 세입자가 아닌 단순한 주거 세입자 역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재개발 이후 턱없이 상승한 임대료를 이기지 못해 집값이 싼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실정에서 생계의 수단인 상가 및 모든 단골관계를 해체당한 채 반강제로 내쫓기는 상가 세입자들의 입장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망루에 오른 것에는 보상금 한두 푼을 더 받아내기 위한 경제학적인 동기 이전에 생활터전과 생존기반을 지키고자 하는 존재론적 동기가 작용하였음은 분명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간단한 숫자만 보더라도 용산 재개발 사업은 건설재벌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영세 상인들을 거리로 내모는 무자비한 사업이라는 것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쁘띠 부르주아는 대부르주아가 허용할 때 까지만 계급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방식의 계급 양극화가 전 세계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용산참사를 야기한 잔혹한 개발 사업을 자본주의의 보편적 운동법칙으로 일반화하여 급진적인 체제전복을 대안으로 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영국은 한국과 같이 기존 건물을 모두 파괴하고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아파트를 건설하는 전면 철거 재개발 방식 자체를 지양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주와 개발자 조합에 의하여 철거가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주거재정비 사업이 공공 차원에서 진행되는데다가 소득에 따라 차등 임대료를 부과하여 실질적인 주거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대기업 역시 영세 상인들의 몫에 대한 욕심은 동일할 것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그와 같은 야만적인 계급이익 추구를 저지하고 있다. 한국의 문제는 곧 정치의 문제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대자본이 용산에 눈독을 들이고 깃발을 꽂자마자 정부는 그곳을 치외법권 지대로 선포하였다. 그곳은 폭력과 돈이 지배하는 비열한 거리가 되었으며 자본의 냄새를 맡은 폭력의 사도들이 몰려들어 그곳을 처참과 난무의 장으로 만들었다. 조합이 고용한 철거용역은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쇠파이프와 목검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였다. 신고를 하여도 경찰이 오지 않고, 30대 용역깡패에게 구타당한 70대 노인이 깡패에게 맞고소를 당해 구속영장이 나오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용산 4구역 철거를 맡은 철거회사가 재작년에 올린 매출은 75억 6200만원에 달하지만 철거민들은 법에 호소하여도 돌아오는 것은 생떼 부리지 말라는 엄포뿐이었다. 공권력과 법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의 마지막 수단은 자조(self-help)적 폭력이다. 그리고 자조적 폭력으로서의 망루가 등장하자마자 그동안 용산의 아비규환에 눈과 귀를 막고 있던 정부는 최정예 병력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대자본의 이익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인간’ 들을 신속하게 진압하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이는 정부가 철거민들을 ‘정치’ 의 대상이 아닌 ‘치안’ 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 사이의 타협의 과정이지만 치안은 정치적 시민권-타협의 주체로 인정받는-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민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격리하는 과정이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제 3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누미디아에 개입하였던 억지를 방불케 한다. 애초에 교전권을 박탈한 대상들에 대한 박해를 허용한 뒤 박해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면 그것을 빌미삼아 상대방을 절멸시키는 이러한 억지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통용되기 힘든 문법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시민세계의 안정’을 위한 치안권 행사의 정당성에는 어떠한 의문도 제기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망루의 철거민들을 치안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망루에서 화염 속으로 사라진 7명의 영혼은 모두 그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승천하여야 했다. 정부에 의해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치안의 대상으로 전락한 5명의 영혼과, 헌법적 가치가 아닌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용역깡패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일을 수행하여 폭력수단의 정당성을 잃어버린 1명의 영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국가권력의 노골적인 계급편향적 행태에 의해 이중으로 억압당하는 쁘띠 부르주아의 목소리는 정치의 세계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은 대자본이 만들어내는 쾌적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세계와는 단절되어 있다. 단절되어 있는 세계 간에는 소통이 존재할 수 없으며 소통이 없는 곳에는 노골적인 힘의 대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게다가 단절된 계급 사이의 가교가 되어야 할 정부는 부르주아의 일상사를 처리하기 위한 위원회를 자처함으로서 정치라는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1973년 재개발에 대한 법이 공포된 이후 서울에서 진행된 재개발 사업 977건 중 969건이 조합에게 개발을 맡긴 민영 개발 방식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치의 포기는 한국 국가권력의 고질적 병폐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3. 배반의 인민주권, 기만의 법치주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에서 인민의 권력은 유권자들이 만들어내는 결정의 중요성에 달려 있지, 그들이 행하는 결정의 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용산의 철거민들에게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공직자에 대한 선출권은 주어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삶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공직자들이 철거민 자신의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는 한 이들의 목소리는 정상적인 정치경로를 통해서는 대표될 수 없다. 정치의 의무는 스스로 대표하지 못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정치과정 내로 끌어와 이익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균열축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갈등이란 다수의 지지를 결집해 정부를 통제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투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협애한 이념지형 내에서 대립해온 한국의 정치과정에는 시민들 간의 이익충돌을 정치적 균열축으로 반영할만한 제도가 부재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한국의 정부는 끊임없이 통합을 강조하지만 갈등을 직시하지 않은 채 주장하는 통합이란 실은 아무도 믿지 않는 기만, 혹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한 동원 구호에 그치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그 감소폭이 늘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의 인구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특수하게 높은 편이다.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의 시민권조차 불온시 되는 사회에서 이들의 정치적 시민권이 보장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표로 말하는 정치과정 내에서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들의 발언력이 사회 극소수 지배블록의 발언력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라기보다는 회사의 주주총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회사라는 조직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의 원칙이 통용되는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 속에서 인민주권이라는 말은 허상일 따름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은 갈등에 관여하는 집단과 개인의 성격 및 수에 따라 갈등이 치환되기도 하며 갈등의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대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 탄핵 안건이 제기 되었을 때 운집한 수많은 시민들에 의해 한나라당 및 구 민주당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손쉽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최대한 갈등을 사사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광범위한 여론을 동원하기 위해 갈등을 사회화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사회화 된 갈등축을 중심으로 동원된 전국의 시민들의 합의결과가 정치적 결과로 이어졌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인민의 주권이 보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렇지 않음은 명약관화 하며 기존 정권에서도 사회적 의제가 인민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정규직법 개악과 한미FTA를 둘러싼 논란을 사회화하려는 시도는 모두 시민사회 자신에 의하여 기각되었고, 시민사회는 스스로 버린 인민주권에 의해 배반의 시대를 맞이하는 실정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용산참사 직후 정부와 여당은 도심테러, 알카에다, 불법폭력시위 등의 격한 어휘를 동원해가며 법치 기강 확립을 천명하였다(이러한 어법은 지난 정권에서도 다소 온건한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점을 상기하자). 하지만 국가의 형성과 작동방식을 마피아와 같은 조직범죄단의 활동방식과 비교했던 역사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합법적 폭력과 불법적 폭력의 구분이 사실상 어려움을 지적한다.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매우 중앙집권화 된 강제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확립하고, 그 지역 전반에 걸쳐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 그 같은 수단의 사용에 순응할 것을 명령하는 협박집단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그의 논지는 특정인에게는 정당한 폭력행사가 타인에게는 부당한 폭력행사라는 것이다. 거의 동일한 행동이 불법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 양 측에 모두 걸쳐 있으며, 단지 정치적 판단만이 그것을 구분 짓는다. 요컨대 국가 자체가 본질적이고 신성한 도덕성을 담지하지 않는 이상 국가에 의하여 행사된다는 것 자체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공권력의 행사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합리적인 법에 의하여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하며 법은 사회의 제반 세력들의 이익을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법은 지배블록의 이익을 위한 일방적 규범 이상이 아니게 되며 이에 의해 행사되는 공권력 역시 피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폭력에 의한 타도대상일 뿐이다. 법은 법이기 때문에 준수하여야 한다는 법실증주의자들의 규범적 논리와는 달리 현실에서 법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법을 준수할 때 가지는 인센티브가 존재하여야 한다. 법치주의라는 모호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말은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의 지배가 다원적으로 공존하는 사회집단간의 세력균형에 기반하며 상충하는 이익들 간의 공존틀로서 작동한다면 법에 의한 지배는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확대하고 지배블록의 이익 실현에 복무하는 퇴행적인 형태이다. 법의 지배는 기본적으로 원활한 정치과정을 위한 전제 조건이며 정치는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법이라는 합리적 규칙을 수단으로 하여 조정하는 과정이다. 합의와 소통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과정을 도외시 한 채, 법이라는 물화된 규범만을 강조하며 그에 당위적으로 복종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 아니라 강제적 질서를 부여하는 법에 의한 지배에 불과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용산참사에서 나타난 정부와 사법부의 행태는 전형적인 법에 의한 지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일정 시기 법의 집행자들이 법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탈법적 행위를 저지른 특정인이나 집단에게는 이익이 된다. 용산에 망루가 설치되기 전 치외법권 상태에서 이익을 보았던 세력은 누구였는가. 철거민들의 농성에 대한 법적 규정에 대해 비전문가로서 비판을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겠지만, 최소한 법의 적용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사법부와 경찰에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1918년과 1922년 사이 독일에서 우익 투사들이 308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11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은 반면, 좌익 투사들은 21건의 살인 사건으로 3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9년 검찰의 구형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극우 반동세력의 집권을 열어주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법부를 연상케 한다. 일반적으로 법의 적용 및 판결에는 사법부의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 특수이익으로부터의 자율성, 사회에 대한 책임성이 결정적이다. 그렇다면 용산에 대해, 그리고 사회의 피억압 계층에 대해 위의 세 가지 요소가 최소한 중립적으로 작용하였냐는 질문을 한다면 그 대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법의 지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배자 혹은 지배계급 스스로가 자신의 힘을 법에 종속시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법은 예측 가능한 합리성이라는 속성을 사회 강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권력행사 유혹에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용산참사를 둘러싼 지배블록의 행태는 법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요건들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가난한 자들의 분노는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열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굴욕감을 안겨주고 싶은 유혹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부자들의 오만함으로 인해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지배계급이 합리적이라면 피지배계급에게 일정한 정도의 지분을 양보함으로서 자신들에 대한 분노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부르주아와 이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국가권력은 자신들의 몫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경제적 약자 계층에 대해 정치를 통하여 파이를 나누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혜와 치안 중 양자택일을 강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보이는 무소불위의 오만함은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즉각적으로 폭발하는 증오심을 자극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최근 서울시는 14곳의 뉴타운 사업을 ‘속도전’ 으로 강행한다고 발표하였으며 심지어 참사가 발생한 용산 4지구 개발조합은 세입자를 위해 짓도록 되어있는 임대아파트 건축을 피하고자 하는-수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내기까지 하였다. 이에 비하면 경제적 문제를 확률의 문제로 치환시킨 정부의 철거민 대책은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넘겨 보아줄 수 있을 정도이다. 한국 지배계급의 이와 같은 뻔뻔함은 일종의 기억상실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정부가 관리하는 자원, 즉 토지와 경제적 잉여가 영세 상인들이 제공한 것이며, 자신들 역시 그들이 만들어내는 경제구조 속에서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이러한 기억상실증을 지적해줄 정부 역시 함께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집권은 사회의 대다수 가난한 자들의 투표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월 소득 100만 원 이하의 계층에서 46.9% 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참여정부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계층일수록 그 배신감 역시 큰 법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4. 정부를 찾아 나선 6명의 시민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지금까지 다루었던 문제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의한 쁘띠 부르주아의 무산화 2. 건설자본과 합작한 정부에 의한 강제적 무산화 3.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정치적 배제. 갈등의 범위는 후자로 갈수록 넓어지며 따라서 뒤쪽의 문제일수록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여론의 상당수가 용산참사에 대해 동정적이더라도 용산참사 이후 각각의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역시 정치의 무능에서 기인한다. 지배블록이 제 3자 개입 금지 조항 등을 통하여 갈등의 사사화를 유도한다면 저항블록은 최대한 광범위하며 시민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갈등축을 만들어내어 자원을 동원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제기되는 ‘살인정권’ 등의 주장은 특정 정치세력을 악마화 하여 모든 것을 그의 악의에서 기인한 것으로 치부한 채 특정 정치세력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저항블록이 공허한 최대강령적 구호만을 외치고 있는 사이 대기업은 단가 후려치기 등의 저질 상도덕을 무기로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종래의 재래시장을 괴멸시킨 대형 마트 시장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대기업은 최근 대형 슈퍼마켓 사업에 진출하여 ‘구멍가게’ 의 매출을 50% 이상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매출 감소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은 인근 상가의 임대료를 상승시키고 매출마저 감소하는 처지의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 상승하는 임대료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또한 현재 서울의 뉴타운 상황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 추진한 것만 하더라도 1차 3곳, 2차 12곳, 3차 11곳 등 총 34곳 184개 구역에 이른다. 이 지역들의 세입자는 모두 21만 6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72.4 %를 이루며 이 중 80% 이상이 상가 세입자, 즉 용산의 철거민들과 같은 처지이다. 이미 경기 용인시에는 세입자 15명이 현실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세운 망루가 1년째 서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와 전문성은 다소 의심스러우며 서울시 당국은 적반하장으로 뉴타운을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정치적 대안의 부재와 합법적 소통구의 차단, 죄여오는 생계의 압박은 결국 부르주아와 몰락 위기에 처한 쁘띠 부르주아 간에 노골적이고 격렬한 계급투쟁을 야기할 가능성을 부상시킨다. 이미 지역의 영세상인들 사이에서는 ‘폭동이 왜 일어나는지 알겠다’ 는 한숨 섞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찰스 틸리는 반란이나 혁명과 같은 집합행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탈법적 개인이 아닌,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조직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용산참사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전철연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마지막 대안으로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와는 별개로 맑스는 단순히 불이익에 대한 반발인 즉자적 계급의식이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대자적 계급의식으로 전이되기 위해서는 공장과 같은 모임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철거촌의 좁은 망루들은 이미 훌륭한 계급적 증오의 재생산지이며, 전국적 연락망을 갖춘 전철연과 같은 조직은 각지의 망루들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공유시키고 연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들의 기획이 성공하여 서울은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도시가 된다면, 서울에 거주하던 철거민들이 쫓겨난, 서울 외곽의 지역에서는 자연스레 내쫓긴 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마련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현재 한국의 상황이 노골적인 계급투쟁을 버텨낼 정도의 체력이 되는지도 의심스럽거니와, 계급투쟁을 통해 어떤 계급이 승리하든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 무기력증 및 혐오증이 광범위하게 독처럼 퍼져있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혁명에 참여하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이기에 그래도 좋은 정치를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1929 년 대공황에 직면한 후 절대적인 생존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부상한 미국 사회에서는 계급투쟁이 본격화 되면서 국가와 기업을 무시한 채 노동자들 스스로가 공장의 생산수단과 물물교환을 통해 생존을 유지하는 자조(self-help)운동이 사회 전역을 휩쓸었다. 공화당 행정부는 이러한 운동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강경책을 구사하였지만 이어 집권한 루즈벨트 행정부는 뉴딜 정책을 통해 자조운동이 가지고 있던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그 강력한 에너지를 미국 사회 내부로 통합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한 와그너 법(Wagner act)의 통과는 계급간의 갈등을 정치과정 내에서 조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북부의 공업자본과 남부의 농업자본이 극단적으로 갈라져 무력으로 대립하였던 남북전쟁과 같은 계급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정치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조직하는 과정이다. 손을 놓고 한탄하거나 혁명적 수단을 찾아보기 전에 보아야 할 것은 지난 대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40%의 사람들이다. 투표를 하지 않은 책임을 인민의 무지와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유한 계층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태이며 이는 피지배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던 논리이다. 그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갈등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들이 원하는 선택지와 대안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이들의 억압된 갈등을 가시화 하여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국회의사당에서 들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용산참사가 낳은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기존의 철거투쟁에 대해 과격성을 이유로 외면하던 시민들이 철거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철거민의 수는 전 국민의 수에 비하면 소수이기에 이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정치적 갈등축이 형성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에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의제는 훨씬 광범위해지며 이것은 철거민뿐만 아니라 균열축을 둘러싼 갈등에 동원된 모든 시민들의 이익까지 포괄할 수 있다. 이념적 순결성을 만족시키고 투쟁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최대강령적 운동이 아닌, 대표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실재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세심한 정치가 필요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물론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며 특히 철거가 아닌 대자본의 상권장악에 의한 쁘띠 부르주아 계급 자체의 몰락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는 아직까지는 정치의 힘이 다소 모자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치라 하더라도 그동안 왜곡된 형태로 지속되어 왔던 자본과 정치의 힘의 역학구도를 단번에 뒤바꿀 재간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몰락한 계급이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나서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좋은 정치에 대한 모든 희망과 노력을 포기하고 모두가 냉소의 품으로 도피한다면 언젠가는 주상복합 아파트로 가득 찬 서울에서 나가는 방향의 톨게이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o:p&gt;&lt;/o:p&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나를 지나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여기서 나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lt;/SPAN&gt;&lt;/P&gt;&lt;br /&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2586343&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광대의 사회학</category>
			<category>2MB</category>
			<category>갈등</category>
			<category>계급</category>
			<category>뉴타운</category>
			<category>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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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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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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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Feb 2009 12:14:4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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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강호순의 법철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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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br /&gt;
&amp;nbsp;최근 검거되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연쇄살인범 강호순 씨의 사진 공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지난달 3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필두로 하여 여타 신문과 방송들은 국민의 알 권리 및 추가 제보 가능성, 경각심 고취라는 ‘공익’을 위해 강 씨의 사진을 공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진을 공개하였다.&lt;br /&gt;
&amp;nbsp;&lt;br /&gt;
&amp;nbsp;이들의 논리는 사회의 총이익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입장에 서있다. 형법에 대한 공리주의적 이론은 공공의 이익을 최대화 하는 기제로서의 형법에 의의를 둔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법 자체의 정당성 혹은 도덕성 보다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요소가 범죄자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 동안 재벌 총수들의 범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하여 경제적 타격을 근거로 반대하였던 이들은 일관성 있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 씨의 사진 공개는 최소한 공리주의적 관점 내부에서는 타당하다. 설사 강 씨의 자녀들이 사진 공개로 인해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 손실은 몇 백만 국민들의 감정적 효용에 의해 상쇄되고도 남기 때문이다.&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하지만 사진 공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공리주의적 입장과는 대비되는 전형적인 응보론(應報論), 그것도 적극적 응보론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자는 무릇 그가 행한 범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 응보론은, 만약 범죄자를 처벌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손해가 처벌로 인한 이익보다 크다면 범죄에 대한 처벌을 시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입장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들 수 있다.&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칸트는 고대의 탈리오법(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을 계승할 것을 주장하며 범죄자에게 정확히 그가 행한 죄악만큼의 형을 가할 것을 주문한다. 즉,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최대한의 가혹한 처벌이 공공의 효용을 증진시킨다면 그것을 허용하는 반면, 칸트가 주장하는 응보론은 법은 곧 정의의 실현이기 때문에 형벌은 정의의 원칙으로서 그가 행한 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공리주의와 응보론의 대립은 ‘효율’ 과 ‘정의’ 의 대립이다. 사실 엄격한 응보론적 입장에서 보자면 강 씨에 대한 사진 공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법철학에서 말하는 응보는 피를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닌, 절대적 도덕원리와 범죄자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응보론은 범죄자의 주변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을 정당화 하지는 않는다. &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칸트가 주장하였던, ‘더도 덜도 말고’ 범죄자의 책임만큼의 형벌을 부과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심각한 기술적 문제가 있다. 범죄자의 죄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형법은 이에 대해 죄질과 형량 간의 절대적 대응이 아닌 상대적 대응을 택하고 있다. 예컨대, 2 만큼의 죄질을 가진 범죄에 대하여 2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우선 특정 범죄가 2만큼의 죄질을 가졌다고 수치화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1 만큼의 죄질을 가진 범죄가 3만큼의 형벌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있다면 2 만큼의 범죄에 대해서는 4만큼의 형벌을 내리는 식이다. 위의 수치는 예를 들기 위한 것인 만큼 실제 형법이 운영되는 것은 아무래도 기준이 다소 신축적이기 마련이다.&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이제 수학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개략적으로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범죄에 대하여 범죄자의 인성을 문제삼던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을 반박하며 범죄의 사회성을 주장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범죄라는 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악(惡)을 내재하지 않으며 단순히 사회적 집합의식의 외부에 있는 행위가 범죄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범죄를 규정하는 것은 절대적 도덕원리가 아니라 상대적 사회의식이다. 예컨대 현재 우리가 법과 제도로 이루어진 문명사회가 아닌 물리적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살고 있다면 반듯한 외모와 화술로 피해자를 양산한 강호순의 살인행각은 천인공노할 악마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뛰어난 재능으로 사냥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 된다. 우리는 의태(擬態)로 사냥을 하는 사마귀를 비난하지는 않는다.&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이러한 뒤르켐의 접근을 수용한다고 해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범죄에 대한 우리의 격렬한 감정이 어디에서 유래하는 가를 차분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뿐이다. 뒤르켐의 접근은 현대적 형법이론이 택한 죄질에 대한 상대적 판단마저도 썩 만족할만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살인은 나쁘다. 하지만 우리는 양민학살을 자행한 베트남 참전용사와 노근리 학살을 자행한 미군병사에 대해 각각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연쇄살인은 더욱 나쁘다. 하지만 우리는 여고생 7명을 살해한 것과 건장한 남성 7명을 살해한 것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할까? &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절대적인 명제로 생각되는 ‘살인은 나쁘다’ 는 명제를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내셔널리즘과 젠더, 계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하여 판단의 결과를 제각각으로 만들어 놓는다. 물론 강 씨의 연쇄살인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건강한 도덕적 감성의 반응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흥분한 대중은 ‘당연하게’ 피의자의 인권박탈과 사형, 심지어 고문까지 주장하지만-법철학자 마틴 골딩은 정상적인 법철학 논리로는 가혹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천부인권은 주권자에게 양도할 수 없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공권력에 의해 박탈될 수 없으며(헌법 제 37조 2항 :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범죄에 대한 우리의 분노에는 절대적 정의의 원리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상기하자. 대중은 응보론적 관점에서 피를 원하지만 정작 분노를 선동하는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적 원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lt;br /&gt;
&amp;nbsp; &lt;br /&gt;
&amp;nbsp;저 유명한 미셸 푸코의 &amp;lt;감시와 처벌&amp;gt; 첫머리에는 온갖 신체훼손과 유혈이 난무하는, 루이 14세 암살미수범 다미엥에 대한 잔인한 처벌과 그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이러한 스펙터클(!)을 통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대중에게 재확인 시켰으며 대중은 이러한 잔인한 피의 유희로 정의가 살아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권선언 이전 시대의 프랑스보다 발전하였다고 자부한다면 분노 자체와 그 분노를 선동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성찰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lt;br /&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embed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2473703&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사회</category>
			<category>강호순</category>
			<category>공리주의</category>
			<category>법철학</category>
			<category>사진공개</category>
			<category>연쇄살인</category>
			<category>응보</category>
			<category>인민재판</category>
			<category>형벌</category>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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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Feb 2009 13:49: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골프에 빠진 의원들을 위한 변명</title>
			<link>http://flyingpen.sisain.co.kr/entry/%EA%B3%A8%ED%94%84%EC%97%90-%EB%B9%A0%EC%A7%84-%EC%9D%98%EC%9B%90%EB%93%A4%EC%9D%84-%EC%9C%84%ED%95%9C-%EB%B3%80%EB%AA%85</link>
			<description>&lt;br /&gt;
&amp;nbsp;최근&amp;nbsp;해외에서 골프를&amp;nbsp;치다가 적발(?)된&amp;nbsp;민주당 의원들이 졸지에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여론의 비난부터 시작해서 한나라당의 비난, 설상가상으로 당 지도부의 압력까지 난리도 아니다. 사실 정치권의 비난은 낯부끄럽기는 하다. 국내에서 몇천만원어치의 명품을 사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몇십만원을 내고 골프를 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해외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amp;nbsp;다소 회의적이다.&lt;br /&gt;
&lt;br /&gt;&amp;nbsp;얼마전 수구언론에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한복이 350만원이라는 정보를 흘리며(물론 우리 2MB 대통령의 양복값은 몇천만원이다) &#039;가난한 농민 대표&#039; 의 &#039;가식&#039; 을 비난하는 한편 한나라당의 전여옥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서민을 외치면서도 자식을 해외로 유학보낸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조선일보 사주의 양복값 및 한나라당 의원들의 자녀교육비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제쳐 두더라도 이러한 공방이 오가는 것은 이 공격이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lt;br /&gt;
&lt;br /&gt;&amp;nbsp;민주당 의원들의 골프외유가 만드는 파문의 범위와 위와 같은 공격의 효과는 거의 일치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정치에 대한 과도한 도덕주의적 접근은 정작 정치의 핵심적 쟁점들을 가리는 최면으로서 작동한다.&amp;nbsp;의정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의원들이 하는 행위는 그것이 마약이나 난교파티와 같이 사회의 보편적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이거나&amp;nbsp;대가성 접대만 아니라면 문제될 이유가 없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회사 동료들이 당신의 취미생활을 놓고 왈가왈부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니 그것을 떠나서 그러한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는가? 평범한 샐러리맨이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를 보았다고 해서 회사동료들에게 사죄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amp;nbsp;&lt;br /&gt;
&lt;br /&gt;&amp;nbsp;우리가&amp;nbsp;가정에 일이 생긴다고 24시간 심각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듯이, 그리고 우리의&amp;nbsp;수입 범위 내에서 여가를 즐기듯이&amp;nbsp;민주당 의원들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amp;nbsp;사실 &#039;해외 골프&#039; 의 비용을 따져보면 그리 요란한 규모라고 보기 힘들다(그들의 해명을 믿는다면). 그들이 다소 경솔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도 그들을 어느정도 이해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기에 혈안이 된 것은 결코 자신들이 깨끗해서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행태는 시민들의 건전한 도덕감정을 이상한 쪽으로&amp;nbsp;발산시키기 위한 고전적인 여론몰이에 불과하다.&lt;br /&gt;
&amp;nbsp;&lt;br /&gt;
&amp;nbsp;우리는 저들의 속보이는 술책에 놀아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치인에게 기대해야 하는 덕목은 의정수행 능력과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이지 청렴결백함과 금욕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선출하였지 선지자를 선출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치권에 선지자는 2MB 하나로 충분하다. 물론 그는 가죽을 걸치고 조청과 메뚜기로 연명하였던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최고급 양복을 걸치고 호텔에서 만찬을 즐기는 조용기에 가깝지만 말이다.&lt;br /&gt;
&lt;br /&gt;&amp;nbsp;우리는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능력과 신념에 대한 평가가 되어야지 그들의 금욕성에 대한 평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맑스와 함께 인터내셔널을 이끌며 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했던 엥겔스가 부르주아들의 파티에서 와인을 즐겼다고 해서 엥겔스가 노동자들의 감정을 무시한 더러운 부르주아가 되는 것은 아니잖는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도덕주의적 재단은 진정한 갈등을 보지 못하게 만들며, 정치인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악덕을 증명하는 것을 효과적 무기로 삼게된다. 요컨대 잘못된 정책으로 100억을 날려먹었다면 그것을 해명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지적한 의원이 10년전에 밀라노에서 루이비통 가방을 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여론의 포화에서 벗어나기에 좋은 방법이다.&amp;nbsp;우리가&amp;nbsp;루이비통 가방의 가격에 분노하는 동안 100억의 책임소재는 사라진다.&lt;br /&gt;
&lt;br /&gt;&amp;nbsp;이러한 경향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시민들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익의 침해로 다가온다. 문제를 제기한 주체가 도덕적으로 매장당하면 문제도 함께 매장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리한 것은 상대방의 영수증을 파악할 수 있는 더 나은 정보력을 갖춘 집권세력이다. 집권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영수증과 함께 분쇄기로 들어간다면 누가 그들을 통제하며 일반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도덕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아마 집권세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있는 것은 극소수의 종교인들 뿐일 것이다. 정치는 이상주의적 목표를 가지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2MB 에 대해서 코를 막았다고 해서 그 반동으로 코에 흡입기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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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데학생</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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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5 Jan 2009 13:22: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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