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잉여스러운 오덕 좌파 wannabe</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link>
		<description>사회에 큰 도움 되지 않는 잉여/
일반인과 괴리된 키치적 감각의 오덕/
되다 말아 쓸데없이 양심의 가책만 느끼는 좌파 wannabe/
완벽한 정체성 설명이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5 Dec 2011 15:30:05 +0900</pubDate>
		<generator>Tistory 1.1 (http://www.tistory.com/)</generator>
		<managingEditor>잉여좌파</managingEditor>
		<image>
		<title>잉여스러운 오덕 좌파 wannabe</title>
		<url><![CDATA[http://cfile4.uf.tistory.com/image/137CE3504D6F18B90E3226]]></url>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link>
		<description>사회에 큰 도움 되지 않는 잉여/
일반인과 괴리된 키치적 감각의 오덕/
되다 말아 쓸데없이 양심의 가책만 느끼는 좌파 wannabe/
완벽한 정체성 설명이다.</description>
		</image>
		<item>
			<title>사노위 강령초안에 대하여</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82%AC%EB%85%B8%EC%9C%84-%EA%B0%95%EB%A0%B9%EC%B4%88%EC%95%88%EC%97%90-%EB%8C%80%ED%95%98%EC%97%AC</link>
			<description>한국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계급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오던 사노위가 오랜 내홍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강령초안을 공개했다. 그간 혁명을 외치면서도 혁명의 필수적인 도구로 인식되는 당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분할된 서클로만 존재해 오던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유의미한 당 건설 로드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사노위에 대한 사회 각 분야의 관심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뜨거웠고, 투쟁 현장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은 외곽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에게도 광범위한 흡입력을 행사했다. 이번 강령초안 공개는 이제까지의 활동을 내외에 걸쳐 확인하고 평가받을&amp;nbsp;가슴 떨리는 개막일 것이다. 한국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 단계를 마련한 모든 동지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보낸다.&lt;br /&gt;
&lt;br /&gt;본인 역시 사노위에 가입은 하지 않았으나, 언제나 열심히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멀리서나마 지지하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강령초안을 읽고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다.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하지 않는 관념적 지지자로서 항상 가질 수밖에 없는 관념성에 대한 오류는 본인도 언제나 의식하고 있으며, 혹여나 글 안에서 그러한 오류가 발견된다면 기탄없는 지적을 부탁드린다. 그러나 동시에 조직과 현장에 함께하지 않는다 하여 한 명의 대중이 조심스레 내놓는 의견의 합리적 핵심까지 내치지는 않기를 또한 바란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STRONG&gt;1. 강령초안의 의의&lt;br /&gt;
&lt;/STRONG&gt;&lt;br /&gt;
이번 강령초안은 한국 사회주의 운동, 나아가 한국 민중 전체에 크나큰 의의를 가진다. 큰 틀에서는 무엇보다도 강령초안 그 자체가 하나의 의의이다. 서론에서도 말했지만 한국 혁사진영이 처음으로 당을 건설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것의 현실성을 가시화시켰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향후 한국의 민중운동과 전체 정세에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강령초안의 발표는 그러한 가시화된 현실성이 맺은 결실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사노위는 조직 내외의 당 건설의 현실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실천적으로 반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lt;br /&gt;
&lt;br /&gt;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번 강령초안의 의의는 그 내용에 있어&amp;nbsp;두 가지를 명시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들은 혁명적 사회주의 당의 핵심을 이루는 것들로서, 이것들이 결여된 채 강령초안이 제출되었다면 오히려 한국 최초의 혁사당 건설이라는 큰 틀에서의 의의조차 훼손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내외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노위는 그 핵심을 빠뜨리지 않고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며, 그로써 그 자신의 현실성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lt;br /&gt;
&lt;U&gt;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명시&lt;br /&gt;
&lt;/U&gt;&lt;br /&gt;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가 그것을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혁명적 사회주의의 합리적 핵심이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부르주아 독재로 보고, 여기에서 계급철폐로 이행하기 위해 진정으로 혁명적인 유일한 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는다는 전략은 마르크스 당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영향력을 가졌던 공상적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비현실성을 폭로하며 노동계급의 주체적 역할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토대였다.&lt;br /&gt;
&lt;br /&gt;그러나 러시아 혁명에 의한 20세기 &#039;사회주의&#039; 국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말 그대로 난도질을 당해야만 했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독재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당의 독재로 타락해 간 과정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 자체로 왜곡되었고, 무수한 서구의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앞다투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내팽개치고 거기에 침을 뱉었다. 이 개념은 현존 사회주의 실험 실패를 필연적으로 만든 논리적 근원으로까지 격하되었으며, 이것을 지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졌다.&lt;br /&gt;
&lt;br /&gt;하지만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현실성은 살아있다. 자본주의는 알아서 붕괴하지도 않을 뿐더러, 결코 노동계급의 투쟁을 우회해서 철폐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가 남긴 수 천 년 동안의 계급지배 구조의 잔향은 한 방의 혁명으로 사라질만큼 허약하지도 않으며, 대중에 대한 계몽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폐절될 수 있는 관념의 산물도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떨쳐내기 위해서 우리는 단호하게 노동계급과 함께 부르주아로부터 권력을 탈취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lt;br /&gt;
&lt;br /&gt;사노위 강령초안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명시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다. 첫째, 당의 정치적 원칙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명시함으로써 그것을 단순히 학문적 개념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인 사노위와 만나는 노동대중은 직접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쟁점으로 이끌려 들어오게 되고, 이것은 박제화된 개념에 새로운 대중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둘째, 당의 대원칙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확립됨으로써 당의 모든 정치적 결정에 혁명적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다. 어설프게 대중의 눈을 속이기 위해 핵심적인 원칙을 숨기는 세력은 언제나 대중은 속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속아 넘어가게 마련이다. 혁명적 핵심이 원칙으로 서 있는 한 비혁명적/반혁명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택의 입지는 좁아진다. 이는 당의 계급성을 선명히 함과 동시에 당의 정치적 전망을 일관되게 유지시킬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셋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천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주체화를 이루어낼 유일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계급권력이 실재하는 현실에서 지배계급의 독재에 대항한 대항독재를 구상하지 않고서는 결코 대중을 주체로 만들 수 없다. 왜냐면 주체란 정의상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는 자이며, 이 자결권은 권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계급지배의 권력이란 그 자체로 독재적이며, 따라서 대항독재의 현실적 현상형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에게 권력을 주어 주체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만약 이 개념을 우회한다면 노동계급은 언제까지고 부르주아 독재의 객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진정한 인민주권의 선결조건이다.&lt;br /&gt;
&lt;br /&gt;사노위 강령초안은 이러한 의의를 전취함으로써 유의미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lt;br /&gt;
&lt;br /&gt;&lt;br /&gt;
&lt;U&gt;나. 이행기 요구의 명시&lt;br /&gt;
&lt;/U&gt;&lt;br /&gt;
트로츠키의 이행강령 논의에서 시작한 &#039;이행기 요구&#039;라는 논점은 현대 혁명당에 있어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점차 무르익어 가는 구조적 조건과 이와 유리되어 있는 주관적 조건 사이의 괴리에 대한 인식은 트로츠키가 목도한 20세기 초 파시즘의 형태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고, 이 괴리를 계몽주의적이지 않고 진정 혁명적인 방식으로 뛰어넘기 위한 &#039;목숨을 건 도약&#039;으로서 이행기 요구는 배치된다. 사노위는 강령초안에서 이러한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lt;br /&gt;
&lt;br /&gt;이행기 요구는 그 자체로써 사회주의 운동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경향인 우편향과 좌편향에 대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구조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의 괴리 사이에서 우편향에 빠진 자들은 주관적 조건으로의 후퇴를 외치며, 좌편향에 빠진 자들은 구조적 조건으로의 맹돌을 시도한다. 그러나 전략과 전술의 유기적 배치가 결여된 최소주의와 최대주의는 모두 파멸할 수밖에 없다. 전자는 무르익은 구조적 조건이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하고 폭주함으로써 나타나는 야만적인 반동을 통해 분쇄될 것이며, 후자는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한줌의 모험가들로 고립되어 포위섬멸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행기 요구는 주관적 조건을 구조적 조건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실천적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편향을 극복한다.&lt;br /&gt;
&lt;br /&gt;따라서 이행기 요구를 명시하느냐 마느냐는 단순히 정치공학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혁명당이 혁명적 원칙의 현실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노위는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고 이행기 요구를 강령초안에 포함시킴으로써 이후의 실천에 있어 하나의 로드맵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노동계급과 유리되어 관념으로서의 사회주의에 취해 있는 집단이 아니라 대중의 존재와 의식 속으로 침투할 준비가 된 실천적 당임을 입증했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STRONG&gt;2. 강령초안의 문제점&lt;/STRONG&gt;&lt;br /&gt;
&lt;br /&gt;그러나 강령초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강령의 본질과 그 기능의 완성도에 있어 주요한 결함이 될만한 한계가 눈에 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이 기본적인 강령초안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개중에는 전적으로 주체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만은 없는 부분도 내포되어 있다. 게다가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문제점을 지적할 수만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할 말이 궁색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올바른 답보다는 올바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듯이, 부족한 본인의 사견이라도 올바른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조심스레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해 보겠다.&lt;br /&gt;
&lt;br /&gt;&lt;br /&gt;
&lt;U&gt;가. 현 시기 체제 분석에 있어서의 문제점&lt;/U&gt;&lt;br /&gt;
&lt;br /&gt;강령초안은 1장에서 현 시기 자본주의 체제에 관해 논하고 있다. 각 하위 항목에선 일단 첫째로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론적인 문제점을 열거하고, 둘째로 현 시기 자본주의의 야만적 현상형태와 그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세계적 저항의 흐름을 추적하며, 마지막으로 한국에 적용된 자본주의 모순의 현상형태를 분석한다.&amp;nbsp;당의 강령이라는 것이 단순히 공상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초하여 전략을 제시하는 것인 한, 강령의 대전제로서 이러한 현실 분석이 제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노동계급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당으로서 궁극적인 타격 대상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로 명시한 것 역시 필연적이면서도 또한 필수적인 일임에 틀림없다.&lt;br /&gt;
&lt;br /&gt;문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냐는데 있다. 만약 우리가 19세기부터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에 대한 당위적 비난에 천착하여 &#039;선한&#039;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라면 이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체제의 비합리성을 소리높여 외치고, 그 비합리성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기초로 투쟁하는 유물론자들일 것이다(설마 아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자본주의가 이렇게 나쁘다고 선언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 메커니즘이 현 시기 어떻게 관철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약한 고리가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 우리의 약한 고리를 공격해 오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 즉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체제 분석을 넘어선 레짐 분석이 필요하다.&lt;br /&gt;
&lt;br /&gt;보다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강령초안에서 당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가치법칙의 작동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주요 전략이 무엇인지, 자본 분파 내 가치 재분배 과정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세계 각 지역은 어떤 관계를 맺어 그 과정을 구현하고 있는지, 여기까지의 일관된 논리 속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 및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러한 낮은 추상 수준에 대한 해명이 없이, 최고 추상 수준인 체제에 관한 논의로부터 곧바로 구체적인 당면 현실에 대한 답을 도출한다는 것은 변증법적 체계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lt;br /&gt;
&lt;br /&gt;이러한 비판을 곡해해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본인은 여기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한계나 착취법칙의 불변성을 의문에 부치고자 함이 아니다. &quot;지금의 자본주의는 그 당시(마르크스 당시, 혹은 러시아 혁명 당시)의 자본주의와 다르다&quot;로 시작하는 여러 유사-개량주의를 논하고자 함도 아니다. 본인은 다만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보여준 작업의 재현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보편적 본질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기초한다 하더라도, 그 특수한 형태에 대한 인식 역시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약한 고리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없이는 당의 전략도 상황에 맞춘 우연성의 돌출일 수밖에 없고,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이 없이는 계급대중이 체감하는 매일의 현실에 대해 틀에 박힌 잿빛의 설교밖에 할 수 없다. 당은 이래서는 안 된다.&lt;br /&gt;
&lt;br /&gt;물론 이 부분에 있어 모든 책임을 투쟁 주체들에게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89년 소련 붕괴 이후 정체되고 관념화된 &#039;좌익 인텔리&#039; 그룹의 책임이 훨씬 결정적이다. 그들이 계급적 관점과의 연계를 폐기해 버린 지금, 사실상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과 80년대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 이후 유의미한 레짐 분석의 단초는 전혀 제출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 투쟁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바쁜 동지들에게 되는 대로 이것저것 아무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본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굳이 논하는 이유는 첫째, 완성된 형태의 분석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부분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둘째, 체제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을 당의 구체적인 전략으로 매개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인만큼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어긋날수록 당내 분열과 논쟁이 심각해질 수 있으니 미리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입장을 통일시켜 갈 준비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lt;br /&gt;
&lt;br /&gt;&lt;br /&gt;
&lt;U&gt;나. 현실사회주의 평가에 있어서의 문제점&lt;/U&gt;&lt;br /&gt;
&lt;br /&gt;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 헤게모니의 가장 큰 장애물이자, 한때 고귀한 이상을 품었던 자들이 남긴 가장 끔찍한 유산이라는 점에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령초안은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냉정하게 인정하면서,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규정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설정한다. 분명 무난하고 필연적인 논리 전개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br /&gt;
&lt;br /&gt;그러나 이 논리 전개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현실사회주의 실패의 원인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구조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침은 매우 의지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표현하면 &quot;예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quot;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건 극복방안도 아니고 제대로 된 답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누구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얘기일 뿐이다.&lt;br /&gt;
&lt;br /&gt;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현실사회주의 실패의 원인을 규정하는 부분에서 가장 먼저 강령초안은 이렇게 말한다. &quot;...소련은... 유럽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조건, 낮은 생산력과 내전을 통한 경제력의 붕괴, 노동자계급 내 선진층이 타격받는 주체역량의 손실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했다.&quot; 분명 맞는 말이다. 이어지는 논리도 훌륭하다. &quot;이런 난관 속에서 노동자권력인 소비에트는 무력화되었고, 노동자계급의 직접정치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변질, 파괴되었다.&quot; &quot;소비에트의 무력화와 당/국가관료층의 지배층(계급)화와 맞물려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배정당으로 변질되었다.&quot; 분명 20세기 초 소련이 처했던 구조적 요인에서 귀결되는 실패의 과정을 잘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안이 &quot;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으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권력(평의회권력)의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quot;인가? 초기 소련 혁명가들이 그걸 몰라서 실패했던 것인가? 분명 위에서는 소비에트가 무력화된 조건에 대해 논하지 않았는가?&lt;br /&gt;
&lt;br /&gt;세계혁명이라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련이 &quot;유럽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조건&quot;에 처해 있었음을 분명 인식하고 있으면서 &quot;&#039;세계혁명의 관점─노동자 국제주의&#039;에 바탕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다.&quot;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초기 소련 혁명가들이 세계혁명의 관점을 몰랐나? 세계혁명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으면 세계혁명이 실패하지 않는가? 생산력주의 극복 문제는 또 어떤가? &quot;내전을 통한 경제력의 붕괴&quot;가 일어나도 우리는 생산력주의를 극복한다는 말만 외치고 있을 텐가?&lt;br /&gt;
&lt;br /&gt;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강령초안을 제출한 당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건 기본적인 논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패에 짓눌려 있는 계급대중의 신뢰감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세계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 내전을 통한 경제력의 붕괴와 노동자계급 내 선진층이 타격받는 주체역량의 손실 같은 조건은 러시아 혁명에 고유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혁명에서든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조건이다. 만약 이런 조건이 있어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건을 극복할 방법을 얘기해야 하고, 혹은 이런 조건이 이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본다면 왜 그러는지, 이런 조건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겠다면 어떻게 손을 쓸 것인지를 논했어야 한다. &quot;이런 훌륭한 원칙을 세우겠습니다&quot;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lt;br /&gt;
&lt;br /&gt;&lt;br /&gt;
&lt;U&gt;다. 이행기 요구에 있어서의 문제점&lt;/U&gt;&lt;br /&gt;
&lt;br /&gt;위에서 강령초안의 의의에 대해 논하면서 이행기 요구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으나,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의 이행기 강령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강령초안에 제출되어 있는 이행기 요구의 구체적인 요구 각각은 매우 적절하며,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사회주의자와 당이 반드시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하는 것들이다. 본인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들이 배치되어 있는 논리적인 구조의 문제다.&lt;br /&gt;
&lt;br /&gt;이렇게 얘기해 보자. 이행기 요구와 최소강령은 어떻게 다른가? 이행기 요구를 배치하면서 분명 당은 최소강령이 이행기 요구와 달리 개량적인 것임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행기 요구는 무엇이 다르길래 개량적이지 않단 말인가? 물론 답은 나와 있다. 개량주의자들의 최소강령과 달리 이행기 요구는 자본주의 철폐 및 프롤레타리아 독재 건설이라는 큰 틀의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도출된다. 즉 이행기 요구는 그 자체로서도 물론 매우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 이전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하나의 전술적 경로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강령초안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quot;우리의 요구는... 투쟁요구(정책대안)에 머무르지 않는다.&quot;라고 말하며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lt;br /&gt;
&lt;br /&gt;그러나 제출된 이행기 요구의 실제 형태는 그렇지 않다. 사실 (8) 노동자 통제 하의 몰수 국유화, (11) 자본가 폭력에 맞선 정당방위, (12) 총(대중)파업과 민중봉기, (13) 평의회에 기반한 노동자 직접권력 이 네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느 진보정당이나 급진주의 정당의 최소강령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일까?&lt;br /&gt;
&lt;br /&gt;그것은 이 이행기 요구들이 &quot;어떻게 노동계급과 함께 권력획득으로 나아갈 것인가&quot;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하나의 일관성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령초안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행기 요구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지만, 각 요구는 그저 목록으로 만들어져 나열되고 있을 뿐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로서 유기적으로 배치되고 있지 않다. 이행기 요구로 제출된 각 영역이 어떻게 노동계급을 권력주체로 재편성할 수 있을 것이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동시에 어떻게 적들의 약한 고리를 타격할 것인지, 이에 대한 해명이라는 논리적 흐름 속에 각 구호가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지금의 이행기 요구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행기 요구라기보단 당면 현상에 대한 즉자적 구호라는 인상이 짙은 것이다.&lt;br /&gt;
&lt;br /&gt;혹자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극히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내용적으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맞다면, 그것을 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전략적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지 그걸 꼭 강령에 그럴싸한 논리로 풀어써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반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이행기 요구에 대한 투쟁과 전략적 관점의 헤게모니 투쟁을 분리시킴으로써 당의 활동을 불구화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가 이행기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그 각각의 투쟁을 어떻게 전체 전략적 목표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 그때의 투쟁을 일단 이기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전망이 소실되는 것이다.&lt;br /&gt;
&lt;br /&gt;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행기 요구는 단순히 요구 그 자체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구체적 삶과 계급의 전략적 목표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연결고리로서 제대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선 그 사이를 매개하는 활동가들 자신이 우선 그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명료한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선 우리의 이행기 요구에 있어 &#039;혁명으로 가는 로드맵&#039;이라는 위상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B&gt;3. 결론을 대신하여&lt;/B&gt;&lt;br /&gt;
&lt;br /&gt;이로써 간단하게 사노위 강령초안에 대한 본인의 감상을 정리해 보았다. 개중에는 격하게 찬양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수준 이하라고 비난하고 싶은 것도 있었으나, 본인 자신이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떠들 자격이 있는 입장도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레 정리했다. 본문 중에 사실관계가 다른 것이나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 내용이 있다면 모두 본인의 불철저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기탄 없이 지적해 주되, 불철저하게나마 열심히 이해하고자 했던 시도만큼은 기껍게 봐주길 부탁드린다.&lt;br /&gt;
&lt;br /&gt;이러니 저러니 굉장히 많은 말을 했지만, 뭐가 어찌됐건 지금 사노위의 전진이 한국의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 및 그 지지자들에 있어 극도로 중요한 한 걸음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진정한 노동계급의 당을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동지들에게 본인의 거친 감상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혹여나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를 깎아내리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 그것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오히려 더 강고한 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비록 함께 싸우고 있지는 않지만 이 땅 어디에선가 노동계급 권력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모든 이에 대한 지지의 뜻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건투하시길!&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사노위 자유게시판에 직접 올라가는 글이라 말투가 이렇다.&amp;nbsp;&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24-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24-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24-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category>계급정당</category>
			<category>사노위</category>
			<category>사회주의</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24</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82%AC%EB%85%B8%EC%9C%84-%EA%B0%95%EB%A0%B9%EC%B4%88%EC%95%88%EC%97%90-%EB%8C%80%ED%95%98%EC%97%AC#entry24comment</comments>
			<pubDate>Mon, 05 Dec 2011 13:14: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1 하반기 계급정치 정세에 대한 소고 - 서울시장 재보선 종료에 부쳐</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2011-%ED%95%98%EB%B0%98%EA%B8%B0-%EA%B3%84%EA%B8%89%EC%A0%95%EC%B9%98-%EC%A0%95%EC%84%B8%EC%97%90-%EB%8C%80%ED%95%9C-%EC%86%8C%EA%B3%A0-%EC%84%9C%EC%9A%B8%EC%8B%9C%EC%9E%A5-%EC%9E%AC%EB%B3%B4%EC%84%A0-%EC%A2%85%EB%A3%8C%EC%97%90-%EB%B6%80%EC%B3%90</link>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0. 序&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보궐 선거가 드디어 끝이 났다. 무소속이자 야권 통합 후보로서 상당한 바람을 일으킨 박원순은 결국 그 바람을 타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데 성공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반대투표로부터 안철수 신드롬, 나꼼수 열풍 등을 거쳐 여기까지 온 소위 &#039;민주개혁세력&#039;들은 지금쯤 오랜만의 승리에 한껏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그러나 선거의 종료가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한 후보의 승리에 그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가시적인 몇몇 명망가들의 말잔치와 제스처의 기저에 깔린, 보다 본질적인 정치적 흐름의 연장선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의 승리는 그 흐름의 정치적 중요성과 생명력을 입증하는 하나의 중간결산에 불과하다.&lt;br /&gt;
&lt;br /&gt;따라서 필자는 본문에서 박원순의 승리가 입증한, 2011년 하반기를 지배했던 정치적 흐름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고, 이에 근거해 그 의의와 앞으로의 영향, 향후 전망과 좌파의 대응에 대해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아직 사태의 전말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도되는 초벌적 논의이니만큼, 본문의 분석과 예측에는 실제와 다른 점이나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필자 자신에게 있으며, 기탄없는 지적과 반박을 바란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 2011 하반기의 계급정치: 중산층 정치의 재도약&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2011년은 현 정권에게 있어 악몽같은 해이다. 반값 등록금 운동으로 피어오른 소위 &#039;반MB&#039; 경향의 불씨는 지난 2008년 촛불정국 이후 다시 한번 자칭 &#039;민주개혁세력&#039;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관악, 명동, 강정, 영도에서 일어난 계급투쟁의 불씨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성장한 반MB 불길은 여름 서울을 강타한 대홍수로 다시 한 번 탄력을 받았고, 이에 연달아 터진 무상급식 논란은 결국 서울시장 재보선으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이상의 흐름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상 2011년의 주요 정치적 사건과 흐름은 일관된 하나의 흐름 속에 포섭되어 있다. &#039;반MB&#039;라는 단순한 구호로 대표되는, 현 정권과 집권여당 및 그 기반 세력에 대한 반감에 기초한 대항 세력의 결집 및 주도권 획득이다. 그렇다면 이 대항 세력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선거가 끝난 지금, 사람들은 20~40대의 박원순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단 4개 구를 제외한 모든 구에서 나타난 박원순의 우위 등을 들어, 그 기반이 &#039;범국민적&#039;이었다거나 &#039;시민&#039;이었다거나, 혹은 &#039;세대투표&#039;라거나 하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lt;br /&gt;
&lt;br /&gt;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원순 당선으로 한 차례 매듭을 지은 이 대항 세력 결집의 정체는 결코 국민도, 시민도, 특정 세대도 아니다. 현 시기 급성장하고 있는 이 흐름은 다름아닌 중산층 정치의 재도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역들은 다름아닌 도시 신 중간계급, 즉 대기업의 중견관리직, 의사/교사/변호사 등의 전문직, 중상급 공무원, 중간계급 이상 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자영업자 등이다.&lt;br /&gt;
&lt;br /&gt;어떻게 하여 그렇게 볼 수 있는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근래의 정세를 검토해 보자. 반값 등록금, 비정규직, 철거, 
대홍수, 무상급식 등의 의제는 모두 현 집권 세력의 무능함과 반민중적 성격을 명백히 폭로하는 의제였음에 틀림없다. 이 의제들의 
확장은 분명 집권 세력과 지배계급의 도덕적 헤게모니를 뒤흔드는 데 기여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대중적인 조롱 - 오세이돈, 
전지적 가카시점, 실질적 승리 등 - 의 언술이다. 게다가 유럽발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부르주아 지배체제에도 균열을 발생시켰다. 2008년 하반기부터 2010년까지 후퇴를 강요받았던 민중운동 및 계급투쟁 전선도 올해 
들어 다시 반격을 시작했다. 전국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요구와 갈등은 지배계급의 무능을 지속적으로 폭로했고, 한국 부르주아 
계급은 모든 계급을 대표할 수 있는 선도성을 상실했다.&lt;br /&gt;
&lt;br /&gt;그러나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상실이 자동적으로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 확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불황기의 노동자 계급 운동은 방어적으로 짜여지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며, 
이는 현재 한국에서도 과거 확보했던 단체교섭권이나 노동조건, 고용 안정성을 &#039;지키려는&#039; 운동이 주를 이루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피지배 계급도 적극적으로 헤게모니를 확장할 수 없으며, 대항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의제들은 하나의 자기 긍정적 
로드맵이 아닌, 파편화된 부정적 언술의 총합으로 나타나게 된다.&lt;br /&gt;
&lt;br /&gt;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중산층 정치이다. 
기본계급 양쪽의 힘이 모두 충분하지 못해 나가떨어져 있을 때, 이 하이에나 같은 무리는 잽싸게 주인 잃은 왕홀을 가로챈다. 과거 노무현 열풍으로 그 존재를 각인시키고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등장했으나, 이후 대선 패배와 2008 촛불정국의 패배로 한풀 꺾였던, 이 프티 부르주아 계급의 현대적 핵심이 다시 재기하게 된 것이다.&lt;br /&gt;
&lt;br /&gt;이 
자립성 없는 계층에게 그들 자신의 것으로 주어진 것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작고 유아적(惟我的)인 세계뿐이다. 부르주아의 
강철 통치 하에서 자신들의 작은 토끼굴 같은 터전을 위협받는 그들은 힘빠진 지배계급을 맹렬히 물어뜯는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터전이자 세계 그 자체인 그 작은 토끼굴을 절대화하는 이들에게 있어, 그것을 위협하는 행태에 대한 공격은 다른 무엇보다도 도덕적
 비판으로 나타난다. 허나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 계급은 스스로 자기 계급의 대중운동을 건설하기보단, 
누군가 가만히 있는 자신들을 효과적으로 대변해주길 원한다. 이상의 특징들이 중산층 정치의 핵심적인 요소를 구성하게 된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2. 현 시기 재도약의 특징과 이전 시기의 부르주아 정치와의 차이점&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이러한 중산층들의 결집은 자신들의 유아성과 개인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언술 및 개인의 등장으로 촉발된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필요한 그 언술을 제공한 주체는 다름아닌 민중운동 진영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상대적으로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후퇴기에 놓인 노동자 계급은 파편화된 부정적 언술을 통해 자신을 방어한다. 이 언술의 특징은 자신의 독자적 가치를 긍정함보다 보편적 가치에서 배제됨을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후퇴기에 노동자 계급이 공격받는 영역이 갖는 보편성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타당하고 또 일견 효과적이지만, 보편성의 요구는 대항 주체의 범주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그 언술의 형태도 보편성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지배계급의 비도덕성이 전면에 배치되게 된다. 이 모호성의 빈 자리에 약삭빠르게 끼어들어오는 것이 바로 중간계급이다.&lt;br /&gt;
&lt;br /&gt;그들은 노동자 계급에 의해 폭로된 지배계급의 비도덕성을 전유하여 자신들의 도덕적 언어 체계를 확장한다. 이러한 언어 체계는 중간계급의 문화적 아비투스에 의해 두 모순적인 갈래로 표출되는데, 하나는 자신들의 개별적 도덕성을 공허한 미사여구로 과시하고 공유하는 스노비즘의 형태로, 다른 하나는 자신 이외의 도덕적 파탄을 저속하면서도 휘발성 강한 비속어로 조롱하며 즐기는 키치즘의 형태로 드러난다. 중산층의 스노비즘과 키치즘은 동전의 양면이며, 둘 모두 자기 세계의 절대성에 대한 유아적 확신과 집합적 사상의 결여에 기초해 있다. 인터넷과 SNS에서 안철수와 박원순을 찬양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고상한 어투로 정의를 부르짖다가 돌연 반대파에 대한 욕설과 수준 낮은 조롱에 몰두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또 사회의 기본계급이 아닌 이들은 계급적 독자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만의 정치 세력을 건설/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없음을 메꾸고 은폐하기 위해 개인 숭배가 이루어진다. 새로이 등장한 정치 아이돌에 대한 숭배와 간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광적이었고, 안철수와 박원순은 그 자신들의 고매한 도덕성에 의거해 &#039;한줌의 꼴통들을 제외한 모두&#039;를 &#039;대리&#039;할 수 있는 구원자로 호명되었다.&lt;br /&gt;
&lt;br /&gt;이러한 중산층 중심의 정치적 결집은 안정된 부르주아 지배와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부르주아 지배는 노동자 계급 정치를 억압하고 그 위에 군림하지만 중산층 정치는 노동자 계급 정치를 전유하고 기만한다. 왜냐면 앞서 언급했듯이 중간계급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추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번 흐름을 타면 손쉽게 권력을 잡을 수도 있지만, 실제 국가를 움직이기 위한 추동력을 얻기 위해선 끊임없이 민중에게 구걸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시기 노동자 계급 정치는 반격과 사수의 전술보다도 의제 설정 주도권에 더 집중해야 한다.&lt;br /&gt;
&lt;br /&gt;둘째, 부르주아 지배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움직이지만 중산층 정치는 파괴적인 불안정성을 불러온다. 부르주아 지배의 근간은 자본주의 체제의 법칙적 작동에 있지만 중산층 정치는 거꾸로 그 법칙의 교란에 지배의 근간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적이고 단일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중간계급은 끊임없이 두 기본계급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러한 중간계급이 레짐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는 것은 곧 이러한 진동 자체가 영속화하고 제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을 강제하는 단일한 대중적 기반도, 자기 긍정적 원칙도 없는 이들은 그때그때의 임기응변과 공허한 선언에 휩쓸려 다닌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어디에서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것은 당선 이후 현재까지의 오바마 미 행정부의 행태만 검토해도 일목요연한 점이다.&lt;br /&gt;
&lt;br /&gt;물론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정치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정치에 속해 있으며, 아무리 입으로는 지배계급을 도덕적으로 비난해도 결국 지배계급을 강화하는 경향성을 띠게 된다. 그들의 무능함은 그들 자신의 지배를 가능케 한 자본주의 교란이 불러오는 다른 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게 하며, 따라서 그들은 그 해결을 위해 다시 부르주아에 기대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3. 현 시기에 있어서 중산층 정치가 구성된 구체적 형태&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토대로 다시 구체적인 면면을 살펴보자. 박원순의 승리에 연결된 현실에서의 흐름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안철수/박원순으로 대표되는 정치 아이돌의 등장, &#039;나꼼수&#039;를 중심으로 한 스노비즘과 키치즘의 유통, 기존 정치세력의 재편을 통한 대리주의 지원 기지의 형성.&lt;br /&gt;
&lt;br /&gt;안철수/박원순이 정치 아이돌로 부상하면서 짊어진 중간계급의 욕망은 &#039;유능한 성군&#039;에 대한 욕망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을 통해 한 번 몰락을 경험한 중간계급은 더이상 무능한 성군은 통용되지 않음을 학습했다. 물론 여기서의 유능/무능이란 자본주의적으로 형성된 개념인데,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 &#039;부르주아적&#039; 형태와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자본의 화신으로 표상하는 부르주아의 유능함이란 냉정한 결단과 이윤의 극대화에 있지만, 자기 가정보다 더 큰 세계는 알지 못하는 이 동굴쥐 계급에게 있어 유능함이란 바로 아버지로서의 유능함, 가장으로서의 유능함에 다름 아니다. 즉 안철수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중간계급의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번 동시에 그 돈을 자기 식구들에게 잘 나눠주었고 나아가 아이들에게 모범적이고 존경받는 아버지로서도 행동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부장적 모델링은 곳곳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데, 예를 들어 아버지가 최선을 다해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는 노력을 모르고 아버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자식은 &#039;후레자식&#039;으로 호명된다. 가족적 세계관의 틀 내에선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서로간의 믿음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는 선거운동 기간 박원순을 비판하는 좌파들에 대한 맹렬한 물어뜯기로 주로 드러났는데, 장기적으로 이 경향이 집권까지 갔을 경우 이것은 더 파괴적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lt;br /&gt;
&lt;br /&gt;재미있는 것은 이번 전국 재보궐 선거에서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제외한 나머지 선거구에선 여당이 대부분 승리했다는 것인데, 이는 지방의 후진성이나 고연령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 정치인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중산층 정치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면 스타 정치인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중간계급의 &#039;대표성&#039;, 즉 스스로 이 정치체 내에서 보편성을 담지함을 주장할 수 있는 환상의 근거를 받쳐주는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젊은이들과 서민들이 던진 박원순에 대한 지지는 사실상 4~50대 중산층이 제작/유포한 박원순의 환상적 보편성에 대한 지지이다. 중산층 그 자신에게는 결코 이러한 보편성을 환상적으로나마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대리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lt;br /&gt;
&lt;br /&gt;&#039;나꼼수&#039;가 대표하는 스노비즘과 키치즘의 대량 유통은, 그 근거가 불안한 중간계급 헤게모니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재승인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이 방송에서 출연진은 계속 욕을 입에 올리며 소위 &#039;꼴통&#039;들의 지성과 도덕성의 결여를 조롱하는데, 이처럼 가벼운 형태로 대량 생산된 저속함이야말로 키치의 핵심 요소이다. 이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하층계급의 저속함과 구분되는,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어 걸쳐지는 액세서리로서의 저속함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키치즘은 스노비즘에 딸린 액세서리가 된다. &#039;나꼼수&#039;를 소비하는 중산층은 감자칩 같은 자극적인 언사들을 들으며 그 언사의 대상과 언사 자체의 저속함을 동일시하고, 그를 통해 대비적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한다. 즉 누군가 그를 개새끼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개새끼라는 말의 저속함에 어울릴만한 저속한 인간이란 뜻이고 그것은 나와의 수준 차이를 드러내 준다는, 실로 스노비즘적 자의식이 작동하는 대표 사례인 셈이다.&lt;br /&gt;
&lt;br /&gt;그러나 개인 숭배와 도덕주의 확산을 통해서만은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데, 이 제도권 권력으로의 가교 역할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소위 &#039;범야권&#039;, 즉 기존 정치세력이다. 새로운 중간계급 운동은 기존 정치세력을 입맛대로 재편했는데, 그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민주당의 당내 재편이다. 민주당이 올해 들어 부쩍 진보진영과 민중진영에 러브콜을 늘리고, 정동영이 이곳 저곳을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단순한 정치공학적 계산도 주체의 주관적 결정도 아니다. 본디 하층 부르주아와 중상층 프티 부르주아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던 당내에서 정치적 주도권이 후자로 넘어가는 과정의 필연적 귀결이다. 완전한 부르주아 정당도 프티 부르주아 정당도 아닌 민주당의 모호한 스탠스는 그들의 모순적 행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주도권 경쟁이 이루어져도 결코 한쪽이 당내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인데, 중간계급이 자신들의 무능함에 직면했을 때 다시 부르주아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것도 이해할 수 있다.&lt;br /&gt;
&lt;br /&gt;둘째는 진보정당 진영의 재편이다. 민중진영에서 전유한 도덕적 언사를 이용해 결집한 중산층 세력은 손쉽게 진보정당의 도덕성 자체까지도 전유했다. 진보정당들이 제도권 정치에서 자신들을 보수정당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던 유일한 언어 체계를 탈취당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독자적인 기반으로서의 민중운동에 대한 유기적인 결합력이 부재할 경우 더더욱 그렇다. 사실 민중운동 부문과의 유기성이 없는 진보정당이란 애초부터 하층 프티 부르주아 중심의 정당이자 도덕정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대 진보정당의 박원순 선대위 참여와, 당선 이후 범야권 통합론의 확산 등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재편을 통해 중산층 정치는 자신들을 대리해줄 누군가를 이중 삼중으로 쌓아올린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4. 結&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이쯤에서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1 하반기 계급정치 정세에서 나타나는 흐름은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일보후퇴,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방어적 스탠스, 그 사이에 끼어들어온 신 중간계급 헤게모니의 재도약.&lt;br /&gt;
&lt;br /&gt;향후 정세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제아무리 고명한 정치학자라도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지만, 많은 오류의 여지를 인정하며 개인적인 전망을 밝히자면 이렇다. 이번 박원순 당선을 통해 중산층의 결집은 유례 없이 강고해졌고, 이 결집이 확산시키고 있는 헤게모니는 분명 단시간 내에 무너지진 않는다. 내년 하반기까지 큰 스캔들이 터지지 않는 이상 정세는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그때까지 모든 정치적 결정이 중간계급의 입맛에 맞게 이루어질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도상 여전히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부르주아 세력을 실시간으로 끌어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재도약을 통해 형성된 세력이 큰 굴곡 없이 강화 일로를 걷게 될 것이며 여론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이번 박원순 선대위에 참여한 진보정당들은 원칙을 저버린 야합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주도권이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간 이상, 이 헤게모니가 완전 붕괴할 때까지 진보정당들은 이 세력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진보정당만의 독자적 도덕 언술 체계는 사실상 소멸했으며, 중산층 정치를 우회한 대중적 정당운동은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신당의 경우 새로 대표 후보에 출마한 홍세화를 중심으로 일신이 가능할지 주목되긴 하나, 이 역시 내적 일신에 역량이 소모될 것이며 진보정당운동 전체는 10년 전으로 후퇴함이 거의 필연적이다.&lt;br /&gt;
&lt;br /&gt;2012 하반기까지 중산층 결집을 붕괴시킬 큰 도덕적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다음 대선까지도 대세는 거의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 현 집권세력은 아마 그 도덕적 위기를 불러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덕적 위기가 실제로 찾아오거나, 혹은 이후 그들이 형성할 후속 전선에서 주요한 정치적 패배를 맞을 경우 이 결집은 형성될 때보다 더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 이 붕괴의 시점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느냐, 어떤 준비를 할 수 있겠느냐도 노동자 계급 정치에 있어선 중요한 부분이다.&lt;br /&gt;
&lt;br /&gt;그렇다면 이후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독자적 계급투쟁 전선의 강화. 둘째, 지성주의와 노동자 계급 언술 체계의 확장. 셋째, 확고한 당 건설 사업의 가시화. 첫째와 셋째에 해당하는 내용은 굳이 외부의 지지자일 뿐인 필자가 언급하지 않아도 현장의 활동가들이 더 잘 알 부분이라 생략하겠다. 둘째 내용만 조금 부연하자면, 일단 현재 노동자 계급 정치의 방어적 전술을 구성하는 도덕적 언술을 전술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 아직 힘이 충분치 않은 노동자 계급을 기존의 권위로 쉽게 압도하는 중간계급의 스노비즘과 키치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양면 언술 체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공허한 스노비즘의 정체를 까발리는 지성주의적 언술과, 상품으로서의 저속함에 대립하는 삶으로서의 저속함을 담은 노동자 계급 언술이다. 전자를 보다 세련되고 치밀하게, 후자를 보다 친밀감 있고 호소력 있게 다듬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lt;br /&gt;
&lt;br /&gt;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중간계급 헤게모니가 결코 짧지도 않지만 오래 가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혹시나 그들이 집권이라도 하거나 다수 당이라도 된다면 그들의 몰락은 필연적이다. 책임지지 않는 위치에 있을 때 가장 활발한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몇 번씩 비판을 반복해가며 역량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실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가 할 일을 그저 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것이다.&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23-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23-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23-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23</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2011-%ED%95%98%EB%B0%98%EA%B8%B0-%EA%B3%84%EA%B8%89%EC%A0%95%EC%B9%98-%EC%A0%95%EC%84%B8%EC%97%90-%EB%8C%80%ED%95%9C-%EC%86%8C%EA%B3%A0-%EC%84%9C%EC%9A%B8%EC%8B%9C%EC%9E%A5-%EC%9E%AC%EB%B3%B4%EC%84%A0-%EC%A2%85%EB%A3%8C%EC%97%90-%EB%B6%80%EC%B3%90#entry23comment</comments>
			<pubDate>Thu, 27 Oct 2011 11:35:36 +0900</pubDate>
		</item>
		<item>
			<title>대의제 통치체계에서의 수와 질, 「옥중수고」</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8C%80%EC%9D%98%EC%A0%9C-%ED%86%B5%EC%B9%98%EC%B2%B4%EA%B3%84%EC%97%90%EC%84%9C%EC%9D%98-%EC%88%98%EC%99%80-%EC%A7%88-%E3%80%8C%EC%98%A5%EC%A4%91%EC%88%98%EA%B3%A0%E3%80%8D</link>
			<description>국가의 기관을 선거로 구성하는 체제에 대해, 거듭 되풀이되는...비판 중의 하나는...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백치라 하더라도...가장 뛰어난...사람의 의견과...다름없는 비중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수는 단지 척도와 비교를 제공할 뿐...부차적인...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수로 인해 측정되는 것은 무엇인가? 측정되는 것은 바로...전위들의 의견이 얼마나 유효한가, 그 팽창력과 설득력은 어느 정도인가, 다시 말해 그들의 의견의 합리성의 역사적 타당성과 구체적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 사상과 의견은 각 개인의 두뇌에서 자생적으로 &#039;태어나는&#039;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형성•전파하며...설득하는 중심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 중심이 사상과 의견을 발전시켜 당대의 현실에 알맞은 정치적 형태로 제기한 것이다. &#039;표&#039;를 센다는 것은 기다란 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예식일 뿐이다. ...만약 가치있는 인간들이 되었다는 가설적인 집단이,...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부적격자들이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039;국민적&#039; 이익의 대표자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학습</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21</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8C%80%EC%9D%98%EC%A0%9C-%ED%86%B5%EC%B9%98%EC%B2%B4%EA%B3%84%EC%97%90%EC%84%9C%EC%9D%98-%EC%88%98%EC%99%80-%EC%A7%88-%E3%80%8C%EC%98%A5%EC%A4%91%EC%88%98%EA%B3%A0%E3%80%8D#entry21comment</comments>
			<pubDate>Sun, 16 Oct 2011 23:43: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서울대학교 하반기 대 법인화 투쟁에 대한 소고</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84%9C%EC%9A%B8%EB%8C%80%ED%95%99%EA%B5%90-%ED%95%98%EB%B0%98%EA%B8%B0-%EB%8C%80-%EB%B2%95%EC%9D%B8%ED%99%94-%ED%88%AC%EC%9F%81%EC%97%90-%EB%8C%80%ED%95%9C-%EC%86%8C%EA%B3%A0</link>
			<description>가슴벅찬 본부 점거가 끝나고 무력한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2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관악은 대 법인화 투쟁의 재개를 선언했고, 총학생회는 동맹휴업이라는 전술을 내놓았고, 거기까지 가는 길에&amp;nbsp;원탁회의와 미션×2 같은 전술들이 배치되었다. 그 와중에 법대 오준규 학우는 정문 꼭대기에 올라 법인화 법 철회를 외치며 농성했고, 대 법인화 투쟁의 향방을 둘러싼 전학대회에서의 논쟁도 벌어졌다. 이 글은 전학대회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현재까지의 흐름과 전학대회 의결사항에 대해, 국외자의 시선으로 던지는 하나의 비평이다.&lt;br /&gt;
&lt;br /&gt;&lt;br /&gt;
&lt;STRONG&gt;1. 동맹휴업 - 전술상의 문제&lt;br /&gt;
&lt;/STRONG&gt;&lt;br /&gt;
&lt;br /&gt;역사적으로 동맹휴업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뜻을 알리고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고도의 투쟁 기법으로, 많은 역사적 발자취를 남겨 왔다. 이는 공장을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파업의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기존 질서의 작동을 거부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가장 최근의 동맹휴업 기록인 2003년 이라크전 반대 동맹휴업의 경우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를 불러오기도 했다.&lt;br /&gt;
&lt;br /&gt;사실상 학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과격한 투쟁방식 중 하나인 본부 점거라는 카드를 이미 소모해버린 상황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한 지도부가 동맹휴업이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은 거의 필연과도 같은 것이다. 무릇 투쟁의 전술 배치에 있어서 허용되는 것은 오직 상승 뿐이며, 전술상의 후퇴는 사실상 전략상의 후퇴와 동일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휴업이라는 전술 그 자체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던가 너무 과격하다던가 하는 입장을 가지는 자들은 실질적으로 대 법인화 투쟁 그 자체를 포기하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lt;br /&gt;
&lt;br /&gt;그러나 동맹휴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도부가 전술상의 문제를 내비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도부의 연속적인 전술 오류로 인해 동맹휴업 전술은 현재 식물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lt;br /&gt;
&lt;br /&gt;먼저 지적해야 하는 것은 동맹휴업 자체의 의의와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든 최소화하려 애쓴 지도부의 이율배반적 태도이다. 총학생회는 동맹휴업을 28일 하루 일정으로 국한시켰고, 학우 대중에 대한 선전 과정에서 이를 29일/30일로 이어질 학외 투쟁에의 교두보 정도로 평가절하했다.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투쟁 방식을 낮은 차원의 투쟁으로 정체화하고 종속시킨 것이다.&lt;br /&gt;
&lt;br /&gt;이러한 태도를 통해 다음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먼저 학우 대중에게 동맹휴업을 대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을 시키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동맹휴업의 대중적 참여를 가로막게 된다. 사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있어 수업을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결단을 통해 실천한 일이 아무 것도 아니고 단순히 더 큰 데모판을 나가기 위한 중간 단계라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내가 굳이 그런 판에 수업까지 빠져가면서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총학생회가 내거는 구호에선 &#039;학교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자&#039;고 선전하고 있지만, 전술 상에서 동맹휴업이 가지는 정치적 강제력 자체가 전혀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공문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실제의 격차는 학우 대중에게 무력감을 선사하고, 결국 학교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만을 강화시킨다.&lt;br /&gt;
&lt;br /&gt;물론 그렇다고 80년대처럼 동맹휴업을 일 주일 혹은 한 달씩 끌고 갈 수는 없다. 또한 학내에서 모아낸 힘을 학외로 표출하는 것으로 전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도 대원칙 상에서 옳다. 문제는 이러한 대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각론이다. 동맹휴업이 하루가 무리라면 2일, 3일만이라도, 최소한 시각적으로라도 연속성 있게 전술을 배치했어야 한다. 대중적으로 2~3일에 걸친 전일 휴업이 무리라면 돌아가면서 최대한 참여할 수 있을만큼 참여해 달라고 호소를 하던지, 아니면 휴업 자체의 강도(예를 들면 수업에 불참하는 시간, 형태)를 단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고점에 다다르도록 의도한 날짜에 역량이 폭발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도 좋았다. 동맹휴업 대오를 학외로 이끌어 나가는 흐름에 있어서도 단순히 동맹휴업을 교두보로 격하시킴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왜 휴업하는지를 사회와 국회에 알려야 한다는 식으로 선전했어야 한다. 요는 어떤 방식으로든 동맹휴업이 가지는 자체의 폭발력을 선전상에 있어 고평가하고, 그에 맞춰 전술적으로도 폭발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게다가 동맹휴업까지 이끌어가는 과정에서의 전술배치 역시 나이브하기 그지없다. 원탁회의나 미션×2와 같은 형태의 전술은 본부점거 과정에서 드러난 개별 학우들의 창발성에 기대는 형태의 전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전술을 배치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lt;U&gt;오직&lt;/U&gt; 이 전술들만 있었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형태의 조직선을 통한 선전과 결집, 그리고 그 표현으로서의 집회는 보기엔 구려 보일지 몰라도 저항의 실재성을 감각적으로 나타내기엔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지도부는 9월 28일까지의 과정에서 단 한 번의 학내집회도 주최하지 않았고, 기층단위를 중심으로 한 집중선전전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즉 사실상 학내 대중들에게 있어 본부점거가 끝난 날부터 오준규 학우가 정문 농성에 들어간 날까지 대 법인화 투쟁은 &lt;EM&gt;눈에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lt;/EM&gt;이었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개별 학우들의 창발성과 기존 조직선이 포괄하지 못하는 대중들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지도부는 이벤트성 전술을 통해 학우들의 이목을 모을 선정적인 기획만 내놓았지, 실제로 본부점거 기간 동안 형성된 탈-학생회 체계적 관심과 집단에 대한 어떠한 소통도 시도하지 않았다. 원자모임이나 반지성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이러한 집단화 흐름에 대해 학생회와 소통 창구를 열고 관계를 지속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벤트를 기획하고 참여할 사람은 연락하라고 핸드폰 번호를 찍어놓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lt;br /&gt;
&lt;br /&gt;이러한 기존의 오류들을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마련한 것이 오준규 학우의 정문 농성이었다. 당시 다른 곳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이 전술은 그 동안 불가시화되어 있던 대 법인화 투쟁을 가시화시키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으며, 공간적 명료함과 정치적 상징성이 충분했다. 마땅히 총학생회는 조직 전체의 역량을 집중하여 농성을 방어하고, 농성자의 건강과 투쟁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계획을 내놓았어야 한다. 사안의 중차대함으로 봤을 땐 전학대회를 정문에서 진행하는 정도의 결의까지도 보였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를 통해 투쟁을 다시 실물화시키고, 학우 대중을 농성을 구심점으로 하여 모아내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지도부는 22일 저녁엔 학내 다른 곳에서 전학대회를 진행하며 무의미한 논전(이 평가에 대해선 후술)을 벌였고, 23일 낮엔 밤샘 전학대회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정문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며, 23일 저녁엔 다른 곳에 연대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약식 문화제마저 방기했다. 그 결과 투쟁의 불씨가 될 수 있었던 농성은 이틀만에 안타깝게도 막을 내려야 했으며 오준규 학우는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던 것이다.&lt;br /&gt;
&lt;br /&gt;결국 이런 전술적 오류들을 통해 드러난 것이 원탁회의 참여자 중 40%가 &#039;무력하다&#039;고 답한 결과이다. 지도부는 우리가 어떻게 승리로 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전술적으로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의 참여를 평가절하하고 의례적인 과정에 가두어놓고 있는 것이 현 지도부의 실태이다.&lt;br /&gt;
&lt;br /&gt;&lt;br /&gt;
&lt;STRONG&gt;2. 전학대회 - 전략상의 문제&lt;br /&gt;
&lt;/STRONG&gt;&lt;br /&gt;
&lt;br /&gt;문제는 전술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상에도 있다. 전략상에서의 혼란은 전학대회에서 벌어진 소모적인 노선 논쟁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본문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2011년 하반기 전학대회 논의 및 의결안건(2)의 두 번째,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한 부분이다.&lt;br /&gt;
&lt;br /&gt;여기에서 논의에 부쳐진 입장은 두 가지다. 앞으로의 대 법인화 투쟁에 있어서 노선상의 초점을 법인화 법 폐기에 놓고 갈 것인가(1안), 설립준비위 참여 및 학내 민주주의 쟁취에 놓고 갈 것인가(2안)이다. 현재 1안은 인터넷 상에 공개되어 있지만 2안은 공개되어 있지 않아 그 전문을 읽을 수 없는데, 속기록에서의 논쟁을 통해 2안의 입장과 논리 구조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다.&lt;br /&gt;
&lt;br /&gt;2안을 내놓은 법대 학생회장 홍준기 학우는 속기록상에서 &quot;(비상총회의) 총의가 일방적으로 해석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quot;고 2안 상정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의결안건은 전학대회의 상위기구인 비상총회의 의결사항 및 총의를 해석하는 방향에 대한 것이 된다. 그런데 같은 속기록상에서 법대 학생회장은 &quo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font-width: 9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기본적으로 법인화법 폐기 가능성의 전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학우들도 대학 통제권 맥락을 꺼내게 되면 최소한 이 투쟁을 같이 함으로써 대학통제권 쟁취를 할 수 있겠다&lt;/SPAN&gt;&lt;/SPAN&gt;&lt;/SPAN&gt;&quot;고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안건은 향후 투쟁의 대중적 참여를 담보하기 위한, 다분히 전술상의 논쟁이 된다. 전학대회에서의 논쟁은 이 두 차원의 논쟁이 뒤섞여 정리되지 않음으로 인해 전적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lt;br /&gt;
&lt;br /&gt;물론 총의의 포괄적 해석과 전술의 대중화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논의의 과정에선 개념적으로 다른 문제는 확실히 따로 논의해 줘야 논의상의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 법이다. 저 두 차원을 뒤섞은 상태로 얘기하면 결국 &lt;U&gt;총의의 해석이 전술상의 편의에 종속되는 결과&lt;/U&gt;를 초래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총의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투쟁을 더 편하게(혹은 덜 욕먹게) 진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총의를 &#039;선언&#039;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속기록상의 논의는 계속해서 1안과 2안이 제출된 동맹휴업 전술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실제 비상총회에서의 총의 자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lt;br /&gt;
&lt;br /&gt;이러한 기술상의 문제를 떠나서도, 2안은 그 자체로서도 상당히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전략이다. 2안 발의자 자신이 &quo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font-width: 9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학생의 대학 통제권 쟁취 맥락에서 학생 이사 등도 받을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외부인사 개입이 커질 것이 뻔해서 대학의 자율성도 훼손되고 있는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ont-width: 90%; mso-text-raise: 0.0pt&quot; lang=EN-US&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font-width: 9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학생이 여기서 참여함으로써 대학 통제권이 강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법인화법 폐기가 필요하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ont-width: 90%; mso-text-raise: 0.0pt&quot; lang=EN-US&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1pt; FONT-SIZE: 17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mso-font-width: 9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런 최종 목표를 같이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이 갈 수 있다는 것&lt;/SPAN&gt;&lt;/SPAN&gt;&quot;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대체 1안과 2안의 차이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위 발언은 결국 학내 민주주의와 학생 통제권의 문제가 법인화 법 폐기에 종속된 요소라는 것을 규정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결국 비상총회의 총의와 향후 투쟁 방향은 법인화 법 폐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학생 통제권이라는 &#039;표현&#039;으로 &#039;순화&#039;시켜서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은 원칙이나 진실과 상관없는 단순한 정치공학, 혹은 격하게 표현하면 학우 대중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lt;br /&gt;
&lt;br /&gt;애초에 논점이 이와 같이 &#039;어떻게 동맹휴업에 더 후진적인 대중 부분까지도 끌어들일 것인가&#039; 같은 정치공학적 문제에 맞춰져 있다면 이는 전학대회에서 절대 논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치공학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이 공개된 회의(그것도 명목상 학내 전체 기층을 포괄하는 회의)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은 정치공학 상에 있어서도 파산이다. 밀실에서 지도부가 현명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를 끄집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속기록 상에 나오는 대표자들의 발언도 가관이다. 대중이 현재 무기력하다느니 지도부가 그 동안 열심히 안 해서 이미 학생들은 법인화 법 폐기의 전망을 잃어버렸다느니 하는 말이 전학대회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인가? 국회에서 법안을 상정할 때 의원들이 아직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못 했다느니 국민의식이 아직 여기까지 못 왔다느니 하는 얘길 하는 걸 상상해보자. 얼마나 코미디인가?&lt;br /&gt;
&lt;br /&gt;결국 이는 전술과 전략이라는 상이한 차원을 뒤섞고, 이에 따라 대표자들과 대중에게 혼란만을 안겨주게 된다. 투쟁의 전략은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목표로 해야 하는 거시적인 로드맵이고, 전술은 그 목표를 향한 길을 걷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체크포인트의 설정이다. 따라서 전략에 있어서의 논의는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지, 그 이익이 현실의 어떤 조건과 결부되어 있는지, 그 조건을 포괄하는 단일한 의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해명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할 뿐이다. 하지만 전학대회에서의 논의는 여기에 전술의 문제를 뒤섞음으로써 결국 우리의 이익도 그에 결부된 조건도 불명확하다. 우리가 현 투쟁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의 이익이 학생 통제권인가? 아니면 그 통제권을 이용해 만들고자 하는 자유로운 대학인가? 그에 결부된 조건이 설립위의 학생대표 배제인가? 아니면 법인화 법 그 자체인가? 이는 논리적으로 분석해야 할 문제지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닌데, 전학대회는 전략을 현실적으로 고려함을 통해 결과적으로 &lt;U&gt;우리의 이익을 현실적인 선에서 멈추라고 (전략상에서) 요구하는 형태&lt;/U&gt;를 만들고 말았다.&lt;br /&gt;
&lt;br /&gt;2안 발의자 자신이 말했듯 학생 통제권이라는 이슈조차 현재 상정된 법인화 법에 얽매여 있다. 현재의 법인화 법이 통과되고 그것이 법률에 따라 구성되면 이미 학생 통제권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 상에서 우리의 이익은 당연히 법인화 법 철폐에 있지 학생 통제권 확보에 있지 않다. 이 기본적인 벤 다이어그램 상의 포함 관계도 모르는 대표자들 덕분에 관악의 하반기 대 법인화 법 투쟁은 큰 질곡에 빠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lt;br /&gt;
&lt;br /&gt;이 문제에서 가장 우스운 점은 지도부가 전략과 전술 차원의 혼란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점인데, 분명 전학대회에서 공식적으로 2안, 즉 향후 투쟁의 방향을 학생 통제권 쟁취에 놓고 가자고 의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상에서는 전학대회 이후 대 국회 투쟁으로 나아간다는 로드맵이 그대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목표가 학생 통제권이요 학내 민주주의인데 대체 대 국회 투쟁을 왜 해야 하는가? 현재의 법인화 법이 외부 이사의 통제권을 과도하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가? 학내에서 추진위 참여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고 법률보다 하위에 있는 세칙상으로도 학생 통제권을 확보 못 하고 있는데 대 국회 투쟁이 (상기 전략 하에서 볼 때) 전술적으로 옳은 선택인가? 애초에 학내에서 학내 민주주의를 확보 못 하는 상황이라면 대체 어떻게 학내 민주주의 쟁취가 전략 목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기초적인 차원에서의 모순까지 명백한 상황에서 과연 향후 투쟁에 있어 학우 대중을 설득하고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lt;br /&gt;
&lt;br /&gt;&lt;br /&gt;
&lt;STRONG&gt;3. 소결 - 향후 대 법인화 법 투쟁을 위한 제언&lt;br /&gt;
&lt;/STRONG&gt;&lt;br /&gt;
&lt;br /&gt;분명 총학생회의 판단대로, 현 10월 국회를 넘기면 당분간 대 법인화 법 투쟁의 대중적 국면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일단 한 번 발효된 법안을 철회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철회를 위한 투쟁 와중에도 법률에 따른 집행은 착착 진행되어 결국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 따라서 법안 철회의 필요성이 대중적으로 공유된 지금 시점이 어떻게 보면 실질적으로 국립 서울대학교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하지만 위에서 논의한 여러 오류들의 누적 결과, 냉정하게 봤을 때 투쟁의 향방은 상당히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대중의 무력감은 금방 기층 활동가들에게 전염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동맹휴업을 이틀 앞둔 이 시점에서 될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기층 대중 조직을 사실상 방기한 기층 대표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맹휴업 자체에 대한 대중적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아, 과연 이것을 실질적인 대 국회 투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팽배해 있다.&lt;br /&gt;
&lt;br /&gt;하지만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현실의 정치과정은 단순하게 도표화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며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지금까지의 오류 때문에 어려워진 투쟁을 방기하겠다는 것은 그저 지금까지의 오류 위에 더 많은 오류를 누적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lt;br /&gt;
&lt;br /&gt;일단 향후 투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 그 자체를 가시화시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동맹휴업을 성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대 국회 투쟁과 병행하여 학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대 법인화 법 투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 가시화 작업에 있어 가장 쉬운 방법은 공간적/시각적으로 명확한 구심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천막농성이건 단식투쟁이건 상설집회건 뭐든 좋다. 구체적인 것은 지도부가 전술적으로 잘 판단할 일이다.&lt;br /&gt;
&lt;br /&gt;또한 빠른 시일 내에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의 혼란을 바로잡고 명확한 투쟁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10월 국회를 넘기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차피 그 짧은 시간 동안 국회 앞에 투신하는 것 이외에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우리는 승리를 목표하면서도 동시에 패배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10월 국회에서 법인화 법을 폐기시켜내지 못했을 때, 다시 다음 정기 국회까지 혹은 실질적인 추진위 활동 시점까지 반대 여론과 동력을 온존시켜 나가기 위해선 장기적인 계획이 필수적이다.&lt;br /&gt;
&lt;br /&gt;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사회의 여론을 선도한다는 지도부가 그 &#039;지도&#039;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정치에 있어서 지도란 단순히 사람들에게 이리 모여라 저리로 가자 지시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들의 모순적인 욕망을 명확한 논리와 언어로 정리하고, 그 정리한 것을 그들 자신에게 의제라는 형태로 돌려주는 과정이다. 즉 대중정치에 있어서의 지도란 간접적인 것이며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이해 없이 단순히 대중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뒤치다꺼리 하기에 급급하거나, 자의적으로 대중을 재단하여 &#039;이것이 가장 대중적이다&#039;라고 선언하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 불과하다.&lt;br /&gt;
&lt;br /&gt;지금 일선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대표자들과 간부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필자가 국외자라는 이유로 내부에서의 여러 갈등과 아픔, 어려움을 다 알아주지 못해 부분적으로는 과하게 비난한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혹여나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드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는 여러분의 아픔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는 역사적 싸움에서 여러분이 처한 위치와 막중한 책임을 부디 자각해주길 바라며, 앞으로의 건투를 빌면서 글을 마친다.&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20-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20-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20-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20</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84%9C%EC%9A%B8%EB%8C%80%ED%95%99%EA%B5%90-%ED%95%98%EB%B0%98%EA%B8%B0-%EB%8C%80-%EB%B2%95%EC%9D%B8%ED%99%94-%ED%88%AC%EC%9F%81%EC%97%90-%EB%8C%80%ED%95%9C-%EC%86%8C%EA%B3%A0#entry20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Sep 2011 12:48:07 +0900</pubDate>
		</item>
		<item>
			<title>&lt;사노위의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gt;에 대하여</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word1</link>
			<description>전지윤 - &lt;a title=&quot;[http://marx21.or.kr/article/allView.marx?articleNo=130]로 이동합니다.&quot;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marx21.or.kr/article/allView.marx?articleNo=130&quot;&gt;&amp;lt;사노위의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amp;gt;&lt;/a&gt;&lt;span style=&quot;color: rgb(0, 0, 0);&quot;&gt;,&lt;/span&gt; 마르크스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능한 비판 지점에도 불구하고 전지윤 씨의 이러한 운동사적 정리는 장기적으로 우리 운동에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야만 하겠다.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좌파 정치운동의 흐름은 아직까지 구전적으로밖에 계승되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제반 연구를 위한 1차 사료조차 확보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지윤 씨의 정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구전적 계승에 끼지 못하고 항상 정리된 문서로만 현장에 다가갈 수밖에 없는 주변인으로서 전지윤 씨에게 감사드린다.&lt;br /&gt;
&lt;br /&gt;
사실 과거 사노련계라 할 수 있는 학생운동과 잠시 호흡을 맞췄었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배 몇과 연락이 닿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부의 정리를 통해서 전체 흐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로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일이다. 어쨌든 이런 기회가 주어진만큼, 일단 이 글에 초점을 맞추어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몇 가지 첨언을 해보고자 한다. 본문에서 다루는 내용은 정확히 사노위의 건설과 분열 과정 그 자체가 아니라, 전지윤 씨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과정의 묘사이다. 외부의 정리 하나에 천착하여 쓰는 것인만큼 실제 사실과 상이한 부분이 있다 해도 양해 바라며, 추가적인 지적과 수정을 부탁드린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사노련 다수파와 사노련 소수파, 사노련파와 사노련 이탈파&lt;/span&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원문에서 보여주는 사노위 건설부터 &#039;실패&#039;까지의 전 과정은 사실상 사노련이라는 하나의 조직이 지속적으로 분열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분명 강고한 소수로 통합 세력 내에 침투하여 다수파를 분열시키고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장시켜야 했을 이들이 오히려 역으로 다수파의 벽 앞에서 내분을 일으키는 모습은 차라리 한 편의 채플린 희극이다.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모호한 중도주의자들은 현실적 정세가 급변하지 않는 이상 특별히 큰 난리를 피우거나 서로 물어뜯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확고한 노선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욕구와 어떻게든 당 건설을 달성해야 한다는 소망이 혼재된 사노련이야말로 출발부터 자기분열적인 조직이었을지도 모른다.&lt;br /&gt;
&lt;br /&gt;
쟁점을 정리하자면 사노련 다수파와 소수파의 분열, 즉 건설 당시의 1차 분열에서 다수파는 사노준의 중도주의와 개량주의적 성격을 문제삼아 사노위 건설에서 발을 빼기로 했고, 소수파는 그러한 다수파의 결정을 &#039;서클주의로의 후퇴&#039;로 규정했다. 실제로 건설 이전 불거지고 있었다고 제시되는 부분들은 정치적으로 절대 사소한 의제들이 아니다. 특히 현장분회 문제는 어찌보면 사노련계의 정치원칙 그 자체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파는 그러한 차이들을 실제 당 건설 과정 속에서 견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lt;br /&gt;
&lt;br /&gt;
그러한 관점이 파산했는가 아직 그렇지 않은가를 놓고 2차 분열이 일어난다. 강령 통일 과정에서 사노준계와 사노련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넓어지는 상황에서, 3차 총회 후 사노련계 다수는 사노위 운동의 실패를 선언하고 퇴장했고, 사노련 이탈파는 그들과 결별하여 사노위에 남았다. 이 과정에서 사노위와 결별한 사노련계가 다시 이전의 사노련 다수파와 합쳐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노위 운동이 실패한 것이건 아니건 이로써 그 내부에서 사노련계의 의미란 사실상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할듯 싶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절박한 욕망 -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lt;/span&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분열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정치적 원칙 차원의 갈등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욕망의 차원, 얼마나 더 큰 절박함을 느끼느냐에 따라 나뉘는 차원의 갈등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대상은 노동자 계급정당이다.&lt;br /&gt;
&lt;br /&gt;
왜 사노련계의 분열이 정치적 원칙의 갈등이 아니라고 하는가? 그것은 양차에 걸친 분열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사실 사노련계 활동가 중 그 누구도 사노준이 중도주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마 사노련의 원칙을 그들이 영 기껍잖아 한다는 것도, 양자 간의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못할 만큼 본질적인 차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련계는 최초 사노위 건설에 동참하겠다고 나섰으며,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내분을 거치며 그 자리에 일부를 남겨두고 왔다. 이러한 과정이 공동전선이나 개량주의 노선에 대한 원칙적 차이 때문에 일어났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실제로 사노련계가 원래부터 급진 좌파 정파 사이의 연합을 통한 당 건설이라는 복안을 갖고 그것을 추구해 왔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필자가 그 활동가들 근처에서 어정거리던 2007~2008 시기까지만 해도 사노련계는 정파연합을 통한 당 건설이라는 구상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 비판에는 과거 2005년에 있었던 정파연합 투쟁체의 파국 경험이 짙게 묻어나 있었다(하도 오래 발을 빼고 있었더니 그 투쟁체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시는 분은 제보 바란다). 당시에도 노힘-민투위의 배신행위와 관련된 분열로 뜨거운 맛을 본 바, &quot;혁명적 소수가 정치적 원칙을 유지하면서 참을성 있게 계급에 뿌리내리는 과정&quot;(원문 21페이지)이 당 건설의 원칙이라는 점은 사노련계도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을 터였다(원문에서 제시하는 &#039;사노련도 원래 정파연합으로 출발했다&#039;는 것은 근거가 아니라 인신공격에 가깝다. 게다가 정파연합으로 정파를 만드는 것과 정파연합으로 당을 만드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위 참가와 그 이후의 분열이 일어난 원인은 결국 그러한 원칙에도 &#039;불구하고&#039; 당 건설을 우선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절박함의 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 건설의 욕구와 자기 보존의 욕구가 맞부딪히는 장이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는 현 남한 좌파 정치운동의 현실에서 사노련계가 처한 입지 상 필연적인 것이다. 현장투쟁을 가장 강조하는 정파지만 정작 현장에서 소수파라는 것, 레닌주의적 당 건설을 가장 강조하는 정파지만 정작 당은 없다는 것, 한 당의 소수 분파는 될 수 있을만한 규모지만 자력으로 당을 건설하기에는 모자란 애매한 규모라는 것 등이 추동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현 시기 좌파에게 당 건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lt;/span&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이런 절박함에 젖어 달려온 만큼 이제라도 분명 다시 한 번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현 시기 좌파에게 있어 당 건설이 가지는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토록 당에 매달리는 것이며, 하다못해 사노준 같은 중도주의 조직마저 지금 당장 당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lt;br /&gt;
&lt;br /&gt;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 전통에서 당이 가지는 의미 그 자체를 자문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것은 본문의 주제도 아니거니와, 이미 필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들 언급해 주었으므로 딱히 여기서 더 첨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묻고자 하는 것은 현 시기 남한 좌파 운동에 있어 당 건설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경, 그리고 그 과제의 우선순위다.&lt;br /&gt;
&lt;br /&gt;
사실 사노련을 비롯한 좌파들이 당 건설에 매달리는 이유는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당과 개량주의 정당에 대항하여 계급적 세력의 정치적 실체를 사회적으로 공인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평소 활동에서 만나는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이 그저 일개 노조 서기나 연대 셔틀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러한 절박함은 갈수록 가속화되는 착취와 노동 불안정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계급적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과제의 필요성이 크고 시급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과제가 최우선 당면 과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과제를 풀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도 있다.&lt;br /&gt;
&lt;br /&gt;
사노위 건설 과정에서 보더라도, 현재 남한 좌파 진영이 인정해야 할 차가운 현실은 바로 그 어떤 좌파 정파도 단독으로 당을 건설할 수 있을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사노준조차 다른 정파들에게 손을 벌리는 판국이다(물론 이쪽은 규모보다도 무조건 다른 정파들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멘셰비키적 싸구려 민주주의론이 더 큰 원인이겠지만, 자격이 없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원문 각주에서 &quot;따라서 다함께가 민주노동당에 개입하고 관계 맺는 것은 개혁주의 대중 속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혁명조직이라는 것을 뜻할 뿐이고 자랑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quot;(원문 각주 140번) 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는(이라고 쓰고 자뻑 쩌네 라고 읽는다) 다함께조차 당 건설의 건 자도 꺼내고 있지 못하다.&lt;br /&gt;
&lt;br /&gt;
이런 상황에서라면 오히려 당 건설이라는 과제를 그렇게 신격화할 필요는 없다. 지금 무리하게 계급정당을 건설한다 한들 대체 우리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 건설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 - 급진 좌파 정치세력의 사회적 가시화, 투쟁 동력의 결집, 개량주의의 실체 폭로 등 - 는 확실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제대로 당을 건설할 수 있었을 때의 얘기다. 당을 건설할 깜냥도 안 되는 상황에서 레닌의 &quot;당이 필요하다&quot;는 명제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서클을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다 보니 사노위와 같은 &#039;무리수&#039;가 두어지는 게 아닐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어떤 활동이 필요한가&lt;/span&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물론 &#039;제대로 된 당&#039;이라는 것에 대한 신격화 역시 곤란하다. 사실 레닌 때만 하더라도 사회민주노동당 역시 첫 강령 통일 과정에서 조직론 하나 제대로 통일이 안 되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갈라진 케이스고, 1905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진 제대로 된 영향력은커녕 신문 하나 팔기 힘들었던 것이 볼셰비키였다. 심지어 1917년 10월 혁명의 목전에 가서까지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조차 의견통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레닌과 트로츠키의 지도력이 이를 겨우겨우 극복했을 따름이다. 통일된 레닌적 전위당이 혁명을 &#039;만든&#039; 케이스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전위당은 혁명이 올 때 그것을 견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고 레닌주의적 당을 이상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면 영영 남한에서 당을 건설하기란 요원할 것 역시 사실이다.&lt;br /&gt;
&lt;br /&gt;
그렇다면 적절한 시점 내에 적절한 역량을 갖추어 적절한 형태로 적절한 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문 저자인 전지윤 씨는 &quot;이렇게 공동전선을 통해 대중투쟁에 함께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일반화해 전체 투쟁의 일부인 각 투쟁을 서로 연결시키려 할 때, 
사회주의적 분석과 대안을 투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이용할 때, 그럴 때 사회주의자들은 계급 대중 속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며 혁명정당 건설의 길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quot; 라고 쓰고 있다. &quot;노동계급은 학년이 높아지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단을 혐오하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혁명의식으로 나아간다. 투쟁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은 단결해야 한다.&lt;a class=&quot;footnote-link&quot; href=&quot;http://marx21.or.kr/article/allView.marx?articleNo=130#footnote-367-148&quot; id=&quot;footnote-367-148-backlink&quot; name=&quot;footnote-367-148-backlink&quot;&gt;&lt;/a&gt;&quot; 라는 트로츠키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lt;br /&gt;
&lt;br /&gt;
&#039;투쟁 속에서 당을 만든다&#039;는 낡은 원칙을 되풀이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다함께의 오만과 달리 &#039;투쟁&#039;이 사노련 외 남한 좌파 진영에 부족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공동전선이 능사라는 식의 신격화는 당 신격화보다 더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당 건설의 방법이 … 고정불변한 것은 아니”라던 클리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1900년대 러시아의 공동투쟁 파트너와 현대 남한에서 상정된 공동투쟁 파트너의 본질적인 차이는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투쟁이란 건 일단 투쟁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상대와 하는 것이다. 2005년의 경우처럼 공동투쟁 파트너가 투쟁을 방해한 나머지 악감정만 남기고 실패할 때 공동전선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lt;br /&gt;
&lt;br /&gt;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039;적절한 당&#039;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적 목표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남한 좌파 진영의 당에 대한 규정은 항상 이상화된 당에 그쳐 있었다. 실제로 당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재기 위해서라도 현실화된 당의 이미지는 필수적이다. 건설되는 순간 홍길동처럼 조선 팔도를 누비며 모든 노동계급을 구원하고 혁명을 불러올 당 따위는 현실에 있지도 않으며 쓸모도 없다. &#039;적절한&#039; 당이라는 것의 그 적절함을 공개적인 논쟁을 통해 규정함으로써 비로소 그 적절함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동의가 안 되면 서로 묻어놔도 상관없는 부분을 확실히 하여 진행하는 정파통합이거나, 아니면 약간 역량이 부족해도 일단 형태를 갖추고 시작하는데 의의를 두는 규모 측면에서의 타협이거나 어느 쪽이건, 얼마까지가 &#039;적절하다&#039;는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lt;br /&gt;
&lt;br /&gt;
또한 당의 형태가 아니라도 전개할 수 있는 계급정치 실천 양태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당 건설 이후에도 중요한데, 왜냐면 이것이 곧 당의 현장분회와 노동자 평의회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출처인 모모 조직처럼이라고까진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노상에서 신문팔이에 나서고 부르주아 언론의 뉴스에 뜨는 사건을 쫓아다니며 피켓팅하는 것만이 정치활동이고 정치투쟁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현재 좌파 진영이 제도권 정당과 부르주아 언론의 영역을 해바라기하는 것 이외의 유효한 대안적 정치를 고안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며, 이 때문에 경제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의 본질은 대중의 인민으로의, 따라서 계급으로의 결집에 있음을 이해하고 이로부터 출발하는 현장정치/계급구성의 정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당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어떤 제도적 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곧 계급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사노위 4차 총회를 기다리며&lt;/span&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어쨌든 이 사노위라는 실험의 종막은 십여일 후로 다가온 4차 총회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사노련 이탈파마저 허무하게 자리를 박차고 뜨느냐, 아니면 떠난 자들을 다시 붙잡을 명분이라도 주느냐는 사실상 사노준계 쪽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건 이미 사노위라는 조직이 &#039;연합&#039;으로서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고, 사노준의 중도주의와 정파패권주의에 대한 불신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lt;br /&gt;
&lt;br /&gt;
서로가 실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도 아니고, 이미 알 것 다 아는 상황에서 불신을 일소하고 조직을 통합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런 시도는 거의 대부분 실패해 왔다(나눠먹을 달콤한 떡고물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게다가 거기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뭔가 혼자 해 볼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스스로 영토를 지킬 수 없는 군주가 외국군을 불러들이는 것은 재앙에 불과하다.&lt;br /&gt;
&lt;br /&gt;
현장정치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한 명의 주변인으로서 사노위의 &#039;실패&#039;는 안타까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남한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조직이 생겼다 사라졌음은 분명 큰 의미를 가지며, 아직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에 대한 의지 역시 꺾이지 않았을 터다. 필자의 헛소리에 가까운 첨언이 우연히라도 작은 힌트나마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언젠가 들려올 역사적인 당 건설의 소식을 기다려 본다.&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9-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9-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9-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category>계급정당</category>
			<category>사노위</category>
			<category>사회주의</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9</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word1#entry19comment</comments>
			<pubDate>Thu, 11 Aug 2011 11:01: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노무현 2주기를 맞은 사회당 논평에 대한 논평</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85%B8%EB%AC%B4%ED%98%84-2%EC%A3%BC%EA%B8%B0%EB%A5%BC-%EB%A7%9E%EC%9D%80-%EC%82%AC%ED%9A%8C%EB%8B%B9-%EB%85%BC%ED%8F%89%EC%97%90-%EB%8C%80%ED%95%9C-%EB%85%BC%ED%8F%89</link>
			<description>&lt;br /&gt;
&lt;a title=&quot;[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2_2&amp;amp;wr_id=1948]로 이동합니다.&quot;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2_2&amp;amp;wr_id=1948&quot;&gt;원문은 여기에&lt;/a&gt;&lt;br /&gt;
&lt;br /&gt;&lt;br /&gt;
사회당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남한 운동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의회주의 정당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런 구석도 있기 때문에 퍼진 위명이겠지만서도, 그러한 위명이 의회주의에 대한 또다른 형태의 환상을 퍼뜨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해지곤 한다.&lt;br /&gt;
&lt;br /&gt;그런 사회당에서 노무현 2주기를 맞아 논평을 냈다. 짧은 논평에 대한 짧은 논평을 달아 본다.&lt;br /&gt;
&lt;br /&gt;&lt;br /&gt;
사회당 논평은 이렇게 말한다 - &quo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 class=&quot;ct lh&quot;&gt;노무현 전 대통령은 삶의 마지막까지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넘어서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lt;/span&gt;&quot;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도 말한다. &quo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 class=&quot;ct lh&quot;&gt;그러나 민주정부 10년 동안 한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고단하기만 했다. 제도적 민주화는 발전했지만, 가난한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lt;/span&gt;&quot;&lt;br /&gt;
&lt;br /&gt;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의회주의 정당을 견고하게 속박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이라는 망령이다. &quot;노무현은 사회경제적으로는 과가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공이 있다&quot;고 말하는 것과 &quot;박정희는 정치적으로는 과가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공이 있다&quot;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lt;br /&gt;
&lt;br /&gt;이러한 망령은 제도권 정치, 즉 공식적 국가기구가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존재한다는 일종의 물신화 경향에서 기인한다. 사회체제 내부의 계급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기구의 독자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그들을 의회주의로 이끄는 동시에 그 독자적 메커니즘을 &#039;정상화&#039;시켰다고 판단되는 노무현에 대한 소위 &#039;추모&#039;를 가능케 한다.&lt;br /&gt;
&lt;br /&gt;&lt;br /&gt;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전적으로 오류에 근거해 있다. 그 어떤 제도권 정치도 계급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넘어섰다고? 과연 1990년대 이후 계급대중에 대한 새로운 파편화 전략 없이 탈권위주의가 이 땅에서 가능했을까? 계급대중 스스로에 의해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지역별 분할 전략에서 새로운 노동귀족론과 중산층론에 근거한 분할 전략으로의 이행이 없었다면 탈지역주의가 이 땅에서 가능했을까?&lt;br /&gt;
&lt;br /&gt;이 이분법에 근거한 그들이 말하는, 노무현이 발전시켰다는 한국 &#039;민주주의&#039;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그 &#039;민주주의&#039;의 개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quot;가난한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quot;고 말하면서 &quot;한국 민주주의를 발전&quot;이라니, 권리 없는 민주주의라는 이 괴상망칙한 형용모순은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이란 말인가?&lt;br /&gt;
&lt;br /&gt;제도와 절차의 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거기에 민주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경선으로 당대표를 뽑으면 그것이 민주주의인가? 청와대에 기자실이 없어지면 그것이 민주주의인가? 애초에 실질적 민주화 없는 제도적 민주화라는 것이 개념적으로 성립 가능한 것인지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실질적 민주화의 일부분을 이루는 제도적 특징들을, 마치 신문에서 오려낸 글자로 협박장 만들듯 갖다 붙이는 것을 제한적으로라도 &#039;민주화&#039;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관계의 일부분을 이루는 행동적 특징들을 폭력적으로 갖다 붙인 스토킹도 &#039;형식적 연애관계&#039;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lt;br /&gt;
&lt;br /&gt;결국 토대가 되는 사회에서 계급대중의 실질적 권력 획득 없이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공염불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독립적 국가기구에 권력이 있다고 &#039;상상&#039;하며, 이 상상 속의 권력에 대한 접근 경로를 닦아놓은 것을 &#039;민주화&#039;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찍이 루소가 간파했듯이 주권은 결코 정부를 포함한 특정 개인 혹은 단체의 것이 될 수 없다. 권력은 언제나 집합적 주체에게 귀속되며, 자본주의 현실에서 그것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서 진동할 수밖에 없다.&lt;br /&gt;
&lt;br /&gt;&lt;br /&gt;
백번 양보해서 그들이 말하는 제도와 절차의 민주화를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노무현이 이룩한 절차적 민주화가 그리 대단한가? 근로복지공단에서 한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여야 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권리를 절차적으로 보장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그의 말마따나 &quot;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quot;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나? &#039;침략전쟁을 반대&#039;한다고 명시된 저 신성한 헌법을 &#039;국익&#039;이라는 입발림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고 피를 팔던 것은 절차적으로 대단한 민주화인가?&lt;br /&gt;
&lt;br /&gt;&lt;br /&gt;
이 논평에서 가장 역겨운 것은 노무현이 &quo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 class=&quot;ct lh&quot;&gt;대통령 재임 시절에 양극화 극복의 필요성을 여러번 언급&lt;/span&gt;&quot;했다는 내용이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공허한 레토릭을 대단하다는 듯 갖다 붙임으로써, 노무현은 이 글에서 한순간에 &#039;양극화를 극복하려 했으나 방법을 잘못 선택한 인물&#039;이 된다. 하긴 기타를 치고 눈물을 흘리던 아저씨의 진정성을 의심이라도 했다간 혹여 표 하나라도 잃을까 걱정이 되었다면 이해는 간다.&lt;br /&gt;
&lt;br /&gt;덕분에 사회당은 노무현 정권이 왜 신자유주의적 정권일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그들이 구조적으로 자본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노동자 계급대중이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자리를 자기 손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 대신 거기에 개인화된 우상을 가져다 놓고 진정성이라는 화환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쇠사슬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꽃과 함께 쇠사슬 자체를 뜯어내어 버리는 것이다.&lt;br /&gt;
&lt;br /&gt;&lt;br /&gt;
이 논평을 보는 선진적 계급대중은 이것을 기회로 부르주아 정치세력뿐 아니라 개량주의/의회주의 세력에 대한 환상도 벗어던져야 한다. 그들이 얼마나 뼛속까지 자신들의 무대 - 공식적 국가기구 - 와 우리의 삶의 현장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는지 명백히 깨우쳐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대안은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유기적으로 권력을 정립할 혁명적 계급정당을 건설하는 것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가 경기장 이편에 있을 때 저들은 노무현의 영정과 함께 경기장 저편에 있을 것이다.&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7-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7-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7-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category>노무현 2주기</category>
			<category>민주주의</category>
			<category>사회당</category>
			<category>의회주의</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7</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85%B8%EB%AC%B4%ED%98%84-2%EC%A3%BC%EA%B8%B0%EB%A5%BC-%EB%A7%9E%EC%9D%80-%EC%82%AC%ED%9A%8C%EB%8B%B9-%EB%85%BC%ED%8F%89%EC%97%90-%EB%8C%80%ED%95%9C-%EB%85%BC%ED%8F%89#entry17comment</comments>
			<pubDate>Tue, 24 May 2011 19:08: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1.5.21 격조했다</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2011521-%EA%B2%A9%EC%A1%B0%ED%96%88%EB%8B%A4</link>
			<description>휴가, 훈련 등을 거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데 왜 시간은 이렇게 안 가지.&lt;br /&gt;
&lt;br /&gt;앞으로 말년휴가까지는 33일이 남았다. 한 달여만 버티면 이제 다시 그리운 관악으로 돌아갈 날이 온다.&lt;br /&gt;
&lt;br /&gt;계절학기 등록은 마쳐 놨고, 과외를 구하고 학교 다니면서 졸업논문 준비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잘 될지.&lt;br /&gt;
&lt;br /&gt;아니,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lt;br /&gt;
&lt;br /&gt;전역하고 몇 년 동안 허송세월하고 있는 형 같은 꼴이 되면 안 된다.&lt;br /&gt;
&lt;br /&gt;중요한 건 와우를 끊는다거나 담배를 끊는다거나 하는, 무리한 의지력을 필요로 하는 금지가 아니라, 몸을 천천히 그러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성실한 일과에 맞추는 것이다.&lt;br /&gt;
&lt;br /&gt;수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들어가고,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버는 일만 시작해도 일단 충분하다.&lt;br /&gt;
&lt;br /&gt;집을 나오는 문제는.... 여러모로 궁리해봤는데 역시 집에서 놔주지 않으면 답이 없다. 그렇다고 이 나이 먹고 예전처럼 대판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lt;br /&gt;
&lt;br /&gt;집에 내 방도 없고 내 책상도 없어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반 년은 참아야지 별 수 없다. 대학원 입학하면 대학원 기숙사든 자취방이든 무조건 나가겠지만.&lt;br /&gt;
&lt;br /&gt;그 때까지 과외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지... 데스크탑도 좀 뽑고.&lt;br /&gt;
&lt;br /&gt;졸업논문은 일단 홉스와 루소의 교차비교나, 루소를 중심으로 보는 근대 정치체계의 내적 모순 정도를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lt;br /&gt;
&lt;br /&gt;문제는 언제나 자료 수집인데, 이건 좀 도움을 받을 곳이 없을까 싶다. 매번 학교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긴 하지만 별반 마음에 드는 논문을 제대로 발견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당장 영어논문이나 불어논문(이건 읽지도 못한다!)을 가져다가 쓰기엔 또 실력이 딸리고.&lt;br /&gt;
&lt;br /&gt;외국어 하니까 생각나는데 영어공부도 해야 한다. 토플을 준비할지 IELTS를 준비할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lt;br /&gt;
&lt;br /&gt;&lt;br /&gt;
뭔가... 계획을 무진장 세운다는 점에선 나도 결국 다른 말년병장들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lt;br /&gt;
&lt;br /&gt;솔직히 이걸 다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크다. 내가 아는 나는 이렇게 의지력이 굳건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니까.&lt;br /&gt;
&lt;br /&gt;하지만 닥치지 않은 일을 지금부터 걱정해봐야 소용도 없고, 해야 하는 일을 어렵다고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테니...&lt;br /&gt;
&lt;br /&gt;33일 동안 마음을 잘 다잡아야 한다.&amp;nbsp;&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6-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6-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6-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일기</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6</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2011521-%EA%B2%A9%EC%A1%B0%ED%96%88%EB%8B%A4#entry16comment</comments>
			<pubDate>Sat, 21 May 2011 12:30: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자식사랑은 직위 세습이 아닌 연대 투쟁으로!</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9E%90%EC%8B%9D%EC%82%AC%EB%9E%91%EC%9D%80-%EC%A7%81%EC%9C%84-%EC%84%B8%EC%8A%B5%EC%9D%B4-%EC%95%84%EB%8B%8C-%EC%97%B0%EB%8C%80-%ED%88%AC%EC%9F%81%EC%9C%BC%EB%A1%9C</link>
			<description>현대차 노조는 지난 임시 대의원회의에서 현대차 장기근속자 자녀의 정규직 우선채용을 요구하는 안을 올해 단협의 공식 요구안으로 통과시켰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은지 오래고,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본의 총공세가 몰아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결정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짓이거나, 아니면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배신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lt;br /&gt;
&lt;br /&gt;
사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나날이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모든 인민의 삶이 불안정해지는 이 시대에, 노동자이기 이전에 자식 가진 한 명의 부모로서 자식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안전판을 깔아 주고자 하는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더욱이 그 오랜 시간 동안 현대차 자본에게 잉여가치를 착취당해 가면서 살아온 그들이, 자신들이 지금껏 바친 만큼의 대가를 내가 아닌 내 자식들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분명 그들 - 현대차 자본에 대해서만큼은 부당한 것이 아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현대차 노조와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정규직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모든 곳에서 패배하여, 자본의 어떠한 착취와 핍박에도 손쓸 수 없을만큼 분쇄된다면, 그 때가 되어서도 현대차 노조와 정규직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섬처럼 남아 있을 것 같은가? 그 누구도 노동해방을 말할 수 없고, 도대체 어떻게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호해진 비정규직의 지옥 속에서 현대차 정규직만큼은 반석 같은 방주로 남아 있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고립된 노동자들은 비록 집단일지라도 결국 우월한 역관계에 있는 자본의 지칠 줄 모르는 공세에 해체되어 갈 것이다. 정규직 우선채용이라고? 그 채용되는 정규직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노동자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서지 않는 한 절대 승리할 수도, 인간답게 살 수도 없다.&lt;br /&gt;
&lt;br /&gt;
따라서 그들이 이번 결정을 통해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은 결코 안정적인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노예의 사슬이며, 그것도 그 자식들과 함께 싸워줄 미래의 동지들의 목을 조르는 사슬이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투쟁할 수 없는 미래를, 동지가 없는 미래를, 해방을 꿈꿀 수 없는 미래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사슬에 묶인 노예로서의 미래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울산에서, 전주에서, 전국 곳곳에서 가열찬 투쟁을 만들어 가고 있는 비정규직 동지들을 보라! 그들에겐 누구처럼 세습되어 주어진 안정 같은 것은 없지만, 자기 자신과 동지들을 믿고 노예의 사슬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이 자본이 주인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스스로 주인되는 길을 택했다. 마르크스가 &amp;lt;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한 서설&amp;gt;에서 말했듯이, &quot;우리는 단지 사슬에 꽃을 장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슬 그 자체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quot;&lt;br /&gt;
&lt;br /&gt;
현대차 노조 대의원과 그들을 지지하는 정규직들이 진정 자신들의 고단한 노동과 기름밥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그것은 꽃으로 장식한 사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한때 그 이름도 찬란했던 민주노조를 건설하면서 얻은 귀중한 교훈, 즉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사슬을 끊고 벗어던져야 한다는 그 깨달음이어야만 한다. 당신들의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선물하고 싶다면, 그것은 직위세습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방을 위한 연대투쟁이어야만 한다.&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5-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5-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5-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논평</category>
			<category>계급투쟁</category>
			<category>노동자</category>
			<category>비정규직</category>
			<category>연대</category>
			<category>현대차</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5</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C%9E%90%EC%8B%9D%EC%82%AC%EB%9E%91%EC%9D%80-%EC%A7%81%EC%9C%84-%EC%84%B8%EC%8A%B5%EC%9D%B4-%EC%95%84%EB%8B%8C-%EC%97%B0%EB%8C%80-%ED%88%AC%EC%9F%81%EC%9C%BC%EB%A1%9C#entry15comment</comments>
			<pubDate>Thu, 21 Apr 2011 20:21:09 +0900</pubDate>
		</item>
		<item>
			<title>4월 신작 잡담</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4%EC%9B%94-%EC%8B%A0%EC%9E%91-%EC%9E%A1%EB%8B%B4</link>
			<description>1. &amp;lt;일상&amp;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 line-through;&quot;&gt;제목은 훼이크다 병신들아&lt;/span&gt;&lt;br /&gt;
&lt;br /&gt;일상은 일상인데 어딘가 맛 간 일상. 개그만화의 전설 &amp;lt;보기 좋은 날&amp;gt;에서 익숙하던 연출법이 차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쿄애니는 쉬어가도 쉬어가는 게 아니야!!!&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2. &amp;lt;비탄의 아리아&amp;gt;&lt;br /&gt;
&lt;br /&gt;좀 미묘. 작화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다. 설정도 원작의 호평이 의아하게 여겨질만큼 무리수고...&lt;br /&gt;
&lt;br /&gt;일단 아직 1화니까, 좀 더 보면서 판단하자. 개인적으로 쿠기밍을 좋아하지만 아리아 역은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3. &amp;lt;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amp;gt;&lt;br /&gt;
&lt;br /&gt;Viva!!! &amp;lt;토라도라&amp;gt; 제작팀!!!! 그들의 선, 그들의 색감, 그들의 연출, 그들의 색감이 다시 돌아왔다!!&lt;br /&gt;
&lt;br /&gt;1화부터 가슴이 아리게 만들어주는 포스는 노이타미나의 위명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4월의 명작 예감!&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4. &amp;lt;전파녀와 청춘남&amp;gt;&lt;br /&gt;
&lt;br /&gt;샤프트 특유의 연출법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고 있는데, 여주인공 작화가 깜짝 놀랄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lt;br /&gt;
&lt;br /&gt;근데 그것밖에 볼 게 없는 1화.&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5. &amp;lt;A 채널&amp;gt;&lt;br /&gt;
&lt;br /&gt;일상물일 줄 알았던 &amp;lt;일상&amp;gt;이 사실상 일상물이 아닌 상황에서 현재 4월 유일한 일상물. 귀엽고, 재밌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6. &amp;lt;롯테의 장난감!&amp;gt;&lt;br /&gt;
&lt;br /&gt;이건 뭐 눈정화용+타임킬링용이다. 작화는 확실히 A랭크. 쿠기밍은 아리아보다 롯테에 더 잘 어울리네.&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7. &amp;lt;슈타인즈:게이트&amp;gt;&lt;br /&gt;
&lt;br /&gt;카오스로 달려가는 전개.... 니트로플러스, 전설을 만들 것인가.&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4-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4-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4-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Animation</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4</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4%EC%9B%94-%EC%8B%A0%EC%9E%91-%EC%9E%A1%EB%8B%B4#entry14comment</comments>
			<pubDate>Sat, 16 Apr 2011 12:55:4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보호기사 아이템 파밍 계획안 - 부위별</title>
			<link>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B3%B4%ED%98%B8%EA%B8%B0%EC%82%AC-%EC%95%84%EC%9D%B4%ED%85%9C-%ED%8C%8C%EB%B0%8D-%EA%B3%84%ED%9A%8D%EC%95%88-%EB%B6%80%EC%9C%84%EB%B3%84</link>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 머리&lt;/span&gt;&lt;br /&gt;
&lt;br /&gt;
세테쉬의 투구: 방어도 2542, 힘 191, 체력 401, 회피 숙련도 208, 숙련도 97, 얼개+빨강(체력 45) - 시초의 전당[세테쉬]&lt;br /&gt;
세테쉬의 투구(상급): 방어도 2680, 힘 216, 체력 454, 회피 숙련도 242, 숙련도 117, 얼개+빨강(체력 45) - 시초의 전당(영웅)[세테쉬]&lt;br /&gt;
안개의 면갑(상급): 방어고 2680, 힘 196, 체력 454, 무기 막기 숙련도 242, 적중도 137, 얼개+노랑(적중도 30) - 소용돌이 누각(영웅)[대장로 에르탄]&lt;br /&gt;
드러낸 송곳니 투구: 방어도 2680, 힘 196, 체력 454, 회피 숙련도 242, 숙련도 137, 얼개+빨강(회피 숙련도 30) - 용아귀 부족[매우 우호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2. 목&lt;/span&gt;&lt;br /&gt;
&lt;br /&gt;
어둠울음 아뮬렛: 힘 114, 체력 224, 회피 숙련도 149, 숙련도 76 -&amp;nbsp; 시초의 전당[사원 수호자 안후르]&lt;br /&gt;
산어귀: 힘 149, 체력 224, 무기 막기 숙련도 100, 특화도 100 - 하이잘의 수호자[우호적]&lt;br /&gt;
어둠울음 아뮬렛(상급): 힘 12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68, 숙련도 85 - 시초의 전당(영웅)[사원 수호자 안후르]&lt;br /&gt;
반송파 펜던트(상급): 힘 168, 체력 252, 특화도 120, 무기 막기 숙련도 98 - 검은바위 동굴(영웅)[승천 군주 옵시디우스]&lt;br /&gt;
엘레멘티움 수호목걸이: 힘 14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07, 숙련도 96, 파랑(적중도 10) - 보석세공&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3. 어깨&lt;/span&gt;&lt;br /&gt;
&lt;br /&gt;
대지창조 견갑: 방어도 2346, 힘 199, 체력 298, 회피 숙련도 133, 특화도 133 - 그림 바톨[드라가 섀도버너]&lt;br /&gt;
대지창조 견갑(상급): 방어도 2474, 힘 225, 체력 337, 회피 숙련도 130, 특화도 130, 파랑(회피 숙련도 10) - 그림 바톨(영웅)[드라가 섀도버너]&lt;br /&gt;
라즈의 견갑(상급): 방어도 2474, 힘 205, 체력 337, 특화도 161, 적중도 111, 빨강(적중도 10) - 검은바위 동굴(영웅)[승천 군주 옵시디우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4. 등&lt;/span&gt;&lt;br /&gt;
&lt;br /&gt;
어두운 기억의 쓰개: 방어도 572, 힘 114, 체력 224, 회피 숙련도 149, 숙련도 76 - 그림 바톨[일반몹]&lt;br /&gt;
피어오르는 단망토(상급): 방어도 580, 힘 168, 체력 252, 무기 막기 숙련도 98, 특화도 120 - 소용돌이 누각(영웅)[아사드]&lt;br /&gt;
타버린 주름망토(상급): 방어도 580, 힘 120, 체력 252, 적중도 98, 특화도 168 - 검은바위 동굴(영웅)[카쉬 스틸벤더]&lt;br /&gt;
위대한 거북이의 등싸개: 방어도 625, 힘 190, 체력 286, 특화도 127, 회피 숙련도 127 - 하이잘의 수호자[확고한 동맹]&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5. 가슴&lt;/span&gt;&lt;br /&gt;
&lt;br /&gt;
아름이의 판금 접시(상급): 방어도 3298, 힘 282, 체력 454, 무기 막기 숙련도 182, 특화도 162, 빨강+파랑(무기 막기 숙련도 20) - 검은바위 동굴(영웅)[아름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6. 손목&lt;/span&gt;&lt;br /&gt;
&lt;br /&gt;
알파 팔보호구: 방어도 1369, 힘 129, 체력 224, 적중도 80, 특화도 100, 노랑(특화도 10) - 시초의 전당[안라펫]&lt;br /&gt;
초자연적인 빛의 손목보호대: 방어도 1369, 힘 114, 체력 224, 회피 숙련도 149, 적중도 76 - 시초의 전당[이시세트]&lt;br /&gt;
알파 팔보호구(상급): 방어도 1443, 힘 148, 체력 252, 적중도 92, 특화도 112, 노랑(특화도 10) - 시초의 전당(영웅)[안라펫]&lt;br /&gt;
초자연적인 빛의 손목보호대(상급): 방어도 1443, 힘 12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68, 적중도 85 - 시초의 전당(영웅)[이시세트]&lt;br /&gt;
모래수호 팔보호구: 방어도 1499, 힘 136, 체력 286, 회피 숙련도 190, 숙련도 111 - 람카헨[확고한 동맹]&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7. 손&lt;/span&gt;&lt;br /&gt;
&lt;br /&gt;
빛의 손가락장갑: 방어도 1955, 힘 199, 체력 298, 무기 막기 숙련도 133, 특화도 133 - 시초의 전당[라지]&lt;br /&gt;
그레이메인 성벽 장갑(상급): 방어도 2061, 힘 151, 체력 337, 무기 막기 숙련도 205, 숙련도 114, 빨강(특화도 10) - 그림자송곳니 성채(영웅)[남작 애쉬버리]&lt;br /&gt;
빛의 손가락장갑(상급): 방어도 2061, 힘 215, 체력 337, 무기 막기 숙련도 130, 특화도 140, 빨강(특화도 10) - 시초의 전당(영웅)[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8. 허리&lt;/span&gt;&lt;br /&gt;
&lt;br /&gt;
모래언덕 허리띠: 방어도 1760, 힘 151, 체력 298, 숙련도 101, 회피 숙련도 199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톱니아귀]&lt;br /&gt;
결의 요대(상급): 방어도 1855, 힘 171, 체력 337, 회피 숙련도 185, 적중도 114, 노랑(회피 숙련도 10) - 그림자송곳니 성채(영웅)[월든 경]&lt;br /&gt;
모래언덕 허리띠(상급): 방어도 1855, 힘 171, 체력 337, 숙련도 114, 회피 숙련도 185, 빨강(체력 15)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영웅)[톱니아귀]&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9. 다리&lt;br /&gt;
&lt;br /&gt;
&lt;/span&gt;돌로 뒤덮인 경갑: 방어도 2737, 힘 248, 체력 401, 회피 숙련도 138, 무기 막기 숙련도 158, 빨강+파랑(무기 막기 숙련도 20) - 대지 고리회[우호적]&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br /&gt;
&lt;/span&gt;해신의 다리갑옷(상급): 방어도 2886, 힘 210, 체력 454, 무기 막기 숙련도 262, 숙련도 133, 노랑+빨강(체력 30) - 파도의 왕좌(영웅)[오주마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0. 발&lt;/span&gt;&lt;br /&gt;
&lt;br /&gt;
실버레인 남작의 경갑(상급): 방어도 2268, 힘 225, 체력 337, 회피 숙련도 130, 무기 막기 숙련도 130, 노랑(체력 15) - 그림자송곳니 성채(영웅)[남작 실버레인]&lt;br /&gt;
음침한 바위 장화: 방어도 2355, 힘 253, 체력 380, 무기 막기 숙련도 139, 특화도 159, 노랑(무기 막기 숙련도 10) - 용아귀 부족[확고한 동맹]&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1. 손가락&lt;/span&gt;&lt;br /&gt;
&lt;br /&gt;
사원 고리: 힘 149, 체력 224, 회피 숙련도 100, 특화도 100 - 소용돌이 누각[일반몹]&lt;br /&gt;
세 빛의 반지: 힘 149, 체력 224, 무기 막기 숙련도 100, 특화도 100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시아마트]&lt;br /&gt;
움브리스 고리: 힘 114, 체력 224, 적중도 76, 특화도 149 - 그림 바톨[장군 움브리스]&lt;br /&gt;
휘감은 갯지렁이(상급): 힘 128, 체력 253, 회피 숙련도 167, 적중도 86 - 파도의 왕좌(영웅)[여군주 나즈자르]&lt;br /&gt;
세 빛의 반지(상급): 힘 168, 체력 252, 무기 막기공 숙련도 113, 특화도 113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영웅)[시아마트]&lt;br /&gt;
빛을 발하는 반지(상급): 힘 120, 체력 252, 무기 막기 숙련도 168, 숙련도 98 - 바위 심장부(영웅)[코보루스]&lt;br /&gt;
움브리스 고리(상급): 힘 128, 체력 252, 적중도 85, 특화도 168 - 그림 바톨(영웅)[장군 움브리스]&lt;br /&gt;
펠젠의 결의에 찬 반지: 힘 16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12, 특화도 112 - 테라제인[매우 우호적]&lt;br /&gt;
붉은 바위 고리: 힘 120, 체력 252, 특화도 168, 숙련도 98 - 람카헨[매우 우호적]&lt;br /&gt;
엘레멘티움 뫼비우스 고리: 힘 14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28, 특화도 65, 빨강(체력 15) - 보석세공&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2. 장신구&lt;/span&gt;&lt;br /&gt;
&lt;br /&gt;
트롱구스의 손가락: 무기 막기 숙련도 252, 무기 막기 성공 시 12초 동안 회피 숙련도가 1512만큼 증가 - 그림 바톨[제련장인 트롱구스]&lt;br /&gt;
바라딘 그런트의 부적: 특화도 252, 그런트 소환 - 헬스크림 세력단[우호적]&lt;br /&gt;
티아의 은총: 특화도 252, 근접 공격 성공 시 민첩성 30만큼 증가, 15초 동안 지속되며 10번 중첩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시아마트]&lt;br /&gt;
트롱구스의 손가락(상급): 무기 막기 숙련도 285, 무기 막기 성공 시 12초 동안 회피 숙련도가 1710만큼 증가 - 그림 바톨(영웅)[제련장인 트롱구스]&lt;br /&gt;
납빛 절망(상급): 체력 427, 근접 공격으로 생명력이 35% 아래로 내려가면 10초 동안 방어도 3520만큼 증가 - 바위 심장부(영웅)[대여사제 아질]&lt;br /&gt;
도자기 게(상급): 회피 숙련도 285, 근접 공격 시 일정 확률로 특화도가 1710만큼 증가 - 파도의 왕좌(영웅)[환각술사 구르샤]&lt;br /&gt;
티아의 은총(상급): 특화도 285, 근접 공격 성공 시 민첩성 34만큼 증가, 15초 동안 지속되며 10번 중첩 - 톨비르의 잃어버린 도시(영웅)[시아마트]&lt;br /&gt;
깨진 형상의 거울: 특화도 321, 10초 동안 저항력이 400만큼 증가, 1분 후 재사용 가능 - 헬스크림 세력단[확고한 동맹]&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3. 무기&lt;/span&gt;&lt;br /&gt;
&lt;br /&gt;
변형된 뼈 철퇴: 공격력 660-1227(초당 공격력 326.8), 속도 2.60, 힘 87, 체력 172, 회피 숙련도 115, 적중도 58 - 그림 바톨[에루닥스]&lt;br /&gt;
태양의 일격: 공격력 660-1227(초당 공격력 326.8), 속도 2.60, 힘 115, 체력 172, 적중도 76, 특화도 76 - 시초의 전당[라지]&lt;br /&gt;
변형된 뼈 철퇴(상급): 공격력 745-1385(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60, 힘 98, 체력 194, 회피 숙련도 129, 적중도 66 - 그림 바톨(영웅)[에루닥스]&lt;br /&gt;
엘레멘티움 송곳니(상급): 공격력 745-1386(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60, 힘 129, 체력 194, 무기 막기 숙련도 86, 특화도 86 - 바위 심장부(영웅)[대여사제 아질]&lt;br /&gt;
쿠키의 밀방망이(상급): 공격력 802-1491(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80, 힘 129, 체력 194, 적중도 86, 특화도 86 - 죽음의 폐광(영웅)[&quot;선장&quot; 쿠키]&lt;br /&gt;
태양의 일격(상급): 공격력 745-1386(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60, 힘 129, 체력 194, 적중도 86, 특화도 86 - 시초의 전당(영웅)[라지]&lt;br /&gt;
해가림 도끼(상급): 공격력 745-1386(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60, 힘 129, 체력 194, 특화도 98, 적중도 66 - 소용돌이 누각(영웅)[알타리우스]&lt;br /&gt;
어둠심장 톱날도끼: 공격력 745-1386(초당 공격력 409.6), 속도 2.60, 힘 129, 체력 194, 특화도 91, 숙련도 78 - 헬스크림 세력단[매우 우호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4. 방패&lt;/span&gt;&lt;br /&gt;
&lt;br /&gt;
태고의 고분 보루 방패: 방어도 11504, 힘 114, 체력 224, 회피 숙련도 149, 적중도 76 - 시초의 전당[대지전복자 프타]&lt;br /&gt;
태고의 고분 보루 방패(상급): 방어도 11696, 힘 12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68, 적중도 85 - 시초의 전당(영웅)[대지전복자 프타]&lt;br /&gt;
쇠고문 방패(상급): 방어도 11696, 힘 168, 체력 252, 회피 숙련도 120, 특화도 98 - 검은바위 동굴(영웅)[해골분쇄자 롬오그]&lt;br /&gt;
&lt;span style=&quot;color: rgb(128, 31, 191);&quot;&gt;엘레멘티움 대지수호 방패&lt;/span&gt;: 방어도 11896, 힘 190, 체력 286, 특화도 127, 적중도 127 - 대장기술&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15. 성물&lt;/span&gt;&lt;br /&gt;
&lt;br /&gt;
석순 용: 힘 72, 체력 108, 회피 숙련도 51, 특화도 43, 다색 - 바위심장부[돌거죽]&lt;br /&gt;
석순 용(상급): 힘 95, 체력 143, 회피 숙련도 67, 특화도 57, 다색 - 바위심장부(영웅)[돌거죽]&lt;br /&gt;
톱니모양 턱뼈: 힘 95, 체력 143, 특화도 63, 적중도 63, 다색 - 주문각인&lt;br /&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13-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13-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lt;img id=&quot;ccl-icon-13-2&quot; class=&quot;entry-ccl-sa&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4.png&quot; alt=&quot;동일 조건 변경 허락&quot;/&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
		&lt;/License&gt;
	&lt;/rdf:RDF&gt;
	--&gt;
&lt;/div&gt;
&lt;div class=&quot;tt-plugin ttShareEntryWithSNS tt-sns-icon-alignment-right tt-sns-icon-size-small&quot;&gt;
	&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Yozm&quot; id=&quot;ttServiceYozm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yozm&#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요즘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Twitter&quot; id=&quot;ttServiceTwitter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twitter&#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트위터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Facebook&quot; id=&quot;ttServiceFacebook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facebook&#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페이스북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lt;button
	class=&quot;ttShareEntryWithMe2day&quot; id=&quot;ttServiceMe2day_&quot; onclick=&quot;ShareEntryWithSNS.share(&#039;me2day&#039;, &#039;&#039;, &#039;&#039;);&quot;&gt;&lt;span&gt;미투데이에 보내기&lt;/span&gt;&lt;/button&gt;
&lt;/div&gt;
</description>
			<category>WoW</category>
			<author>잉여좌파</author>
			<guid>http://leftside125.tistory.com/13</guid>
			<comments>http://leftside125.tistory.com/entry/%EB%B3%B4%ED%98%B8%EA%B8%B0%EC%82%AC-%EC%95%84%EC%9D%B4%ED%85%9C-%ED%8C%8C%EB%B0%8D-%EA%B3%84%ED%9A%8D%EC%95%88-%EB%B6%80%EC%9C%84%EB%B3%84#entry13comment</comments>
			<pubDate>Fri, 15 Apr 2011 19:40:00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