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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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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5 May 2012 13:41: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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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무한한 연습</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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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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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3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8; FLOAT: none; CLEAR: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inline-block;width:600px;&quot;&gt;&lt;img src=&quot;http://cfile25.uf.tistory.com/image/1177FB4F4FB1DB35104F5A&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579459705.jpg&quot; height=&quot;2024&quot; width=&quot;600&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야근만 없다면 가고 싶다. 앙리 랑글루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아직 못봤고, 시네마테크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과&amp;nbsp;함께 있고 싶기도 하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보기</category>
			<category>서울아트시네마</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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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May 2012 13:34: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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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음악에 관한 두서없는 이야기.</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3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EMBED height=36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640 src=https://www.youtube.com/v/ikbQ4lThJGo?version=3&amp;amp;hl=ko_KR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EMBED&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 혼자 술을 마시면서 글렌 굴드Glenn Gould가 연주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과 굴드와 줄리어드 사중주단Juilliard String Quartet이 함께 연주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현악 사중주]를 듣고 있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고(작년 봄엔가 마시고는 처음인 것 같다), 굴드의 연주로 음악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다(바흐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은 로잘린 투렉Rosalyn Tureck의 연주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의 '인스부르크 실황'으로, 슈만의 [현악 사중주]는 페터 뢰젤Peter Rösel과 게반트하우스 사중주단Gewandhaus-Quartett의 연주로 주로 들었다).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들으니 어둑했던 마음이 조금은 밝아지는 것 같고, 한동안 소홀했던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글로 정리를 하면 좋을 것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메모조차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내고는 했고, 무언가 조금씩이라도 글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날들과는 다르게, 오늘은 비록 두서없는 것일지언정 음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겨보고 싶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고(혈압이 높아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한 번 올라간 혈압을 내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음도 좋지 않았기에(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실망스럽게도 나에 관한 자학이었다), 일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일이 제 때 끝나 늦지 않게 집에 들어오거나 일을 하지 않는 날임에도 밖에 나가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는 했는데,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던 지난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은 다른 무엇보다 음악을 많이 접했다. 장기간 가지고 있어도 좋다는 조건으로 빌려 놓은 CD와 블루레이 그리고 여러 경로를 거쳐 200GB 가까이 구해 놓은 FLAC 파일과 APE 파일로 된 음원들을 시간이 나지 않을 때는&amp;nbsp;무리를 해서라도 몰아치듯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집중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그랬는지 다른 때에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감동을 받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여기에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해준 음반과 영상물 목록을 나열해 보고 싶다. 리카르도 샤이Ricardo Chailly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연주하여 완성한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교향곡 전집]과 루돌프 바르샤이Rudolf Barshai가 서독일 방송 교향악단을 연주하여 완성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교향곡 전집]은 각각의 교향곡을 전집으로 듣는 즐거움을 새삼 일깨워준 음반들이다. 에두아르도 파니아가Eduardo Paniagua의 주도로 PNEUMA에서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알-안달루스의 정원: 아랍의 영향을 받은 중세 세비야 음악]을 포함하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음악과 욘 발케Jon Balke의 음반 [Siwan]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후 ECM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담긴 솔로 음반을 낸 아미나 알라위Amina Alaoui의 [Arco Iris]는 나에게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가 교차한 역사의 편린을 음악적으로 감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었다.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가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마르틴 쿠제이Martin Kušej가 연출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물과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을 연주한 실황을 담은 영상물은 다시 보아도 감동적인 영상물이었다.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던 죄르지 리케티György Ligeti의 [György Ligeti Edition]과 DG에서 녹음한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벨라 바르톡Béla Bartók 연주를 컬렉션으로 모아놓은 [Pierre Boulez Conducts Bartók]을 이번 기회에 모두 들은 것은 생각만 해도 뿌듯한 일이다. 그동안 여러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을 한 장씩 구해서 간헐적으로 들었던 타케미츠 토루武満徹의 음악을 쇼가쿠간小學館에서 나온 전집으로 (다시) 듣기 시작한 것과 최근 수 년 사이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현대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모치즈키 미사토望月京의 음악을 들은 것은 동아시아 출신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게 관심은 있었으나 자주 듣지는 않았던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물론 이러한 목록이 클래식 음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재즈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Ahmad Jamal의 [A Quiet Time]은 79세나 된 노대가의 연주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연주력으로 그의 음악을 듣는 나를 거의 죽여 놓았다. 키스 자렛 트리오Keith Jarrett Trio의 [My Foolish Heart, Live at Montreux]는 재즈 트리오를 결성한 지 무려 25주년이 되었음에도, 아니, 25년을 함께 연주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정교하고 매력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음반이었다.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의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의 사운드트랙을 맡기도 했던 쿠바 라틴 재즈계의 거장 베보 발데스Bebo Valdés의 음반들은 이제는 더 이상 이 거장의 새로운 연주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오니시 준코大西順子의 [Musical Moments]는 이 음반의 첫 곡을 장식하고 있는 에릭 돌피Eric Dolphy의 [Hat and Beard]을 포함하여 그녀의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인상적인 음반이었다. 일본의 무도관에서 2010년에 열렸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프런티어]의 라이브 음악 공연 [마크로스F 초시공 Super Live Cosmic Nyaan]의 영상물은 칸노 요코菅野よう子가 작곡한 [射手座☆午後九時Don't be late]와 [星間飛行] 등의 음악을 들으며 May'n과 나카지마 메구미中島愛와 더불어 엔도 아야遠藤綾와 셰릴 놈Sheryl Nome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2006년부터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애니메이션 음악 콘서트인 Animelo Summer Live의 2011년 콘서트 영상물인 [Animelo Summer Live 2011 -rainbow-]는 나의 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이 영상물로 성우겸 가수인 호리에 유이堀江由衣, 타무라 유카리田村ゆかり, 하나자와 카나花澤香菜 그리고 미즈키 나나水樹奈々의 노래를 들으며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목록을 나열하는 것을 그만두고, 내 방 주위를 둘러보고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면,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음악 디스크와 저장해놓은&amp;nbsp;음악 파일 때문에 정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빌려온 음악 디스크를 모두 듣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거의 반년 가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돌려주어야 하는 CD와 블루레이를 먼저 감상하느라 음악 파일의 대부분은 여전히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 CD를 한두 장씩 구해서 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될 지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다량의 음악 디스크를 빌려놓거나 음악 파일을 구해 놓았더니, 마치 도서관에서 무더기로 책을 빌려와서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표지와 목차만 구경하다 대부분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다. CD와 블루레이를 빌릴 때는 많은 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지인의 차로 운반을 부탁할 정도로 의욕에 넘쳤고, 음악 파일을 구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두 듣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일념으로 끓어올랐었는데, 정작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으려고 할 때는 듣거나 보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떤 것부터 접해야 할 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으나 순간적으로 아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올해 안에 한 번씩이라도 감상을&amp;nbsp;할 수&amp;nbsp;있을까? 무엇하러 이렇게 많이 구해 놓았을까? 쓸데없는 욕심을 너무 부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 글의 서두에 언급한 굴드의 연주도 지인에게서 빌려온 음반으로 듣고 있다. 'Glenn Gould: The Original Jacket Collection'이라는 타이틀로 SONY BMG에서 나온 것인데, 기존에 녹음된 굴드의 연주를 CD 80장 분량으로 정리하고 각각의 음반이 처음 나왔을 때 사용한 오리지널 재킷을 복원하여 새로 나온 컬렉션의 CD 커버로 사용한 기획물이다(그래서 타이틀에 'Original Jacket'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사실 'Glenn Gould: The Original Jacket Collection'을 지인에게 빌릴 때는 토렌토로 구하려는 마음만 먹었다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 컬렉션의 음악 파일은 물론이거니와 음반 재킷과 북클릿도 모두 구할 수 있었다(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내가 확인한 것이 작년 연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컬렉션을 굳이 실물로 빌렸는데 이렇게 한 이유는 불법 다운로드를 반대하는 정의감이 극에 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컬렉션의 실물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컬렉션의 박스를 들어서 안아보고, 각각의 CD 케이스를 꺼내어 열어보며, 북클릿을 일일이 넘겨보면서 글을 읽는 것.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음악가나 음악의 음반을 열정적으로 모아본 사람이라면 컬렉션의 실물을 직접 만져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고사하고 중가中價 오디오도 아니며 그저 평범한 노트북 컴퓨터에 오디오 부속기기를 연결하여 음악을 듣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반드시 CD로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오랜 습관 때문인지 음원을 찾는 것과 동시에 CD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무손실 (압축) 파일로 음악을 들으면서 모니터로 음반 재킷과 북클릿을 보아도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도 말이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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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 굴드는 워낙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우연으로라도 그의 연주를 들었을 수는 있지만, 내가 굴드라는 피아니스트를 의식하면서 그의 연주를 처음으로 들은 것은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당시에 한창 열심히 읽던 음악 저널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음반을 구입해서 들었던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굴드가 연주한 여러 작품 중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피아노 소나타]나 베토벤의 [초 · 중기 피아노 소나타]가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먼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운이 따랐던 선택이었다. 굴드의 모짜르트와 베토벤 연주는 너무 독특한 나머지 이 두 명의 작곡가들의 [피아노 소나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만한 연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굴드가 남긴 바흐 녹음은 그렇지 않은데 특히나 그가 남긴 바흐 녹음 중 가장 유명한 연주라고 할 수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예나 지금이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굴드는 모두 두 번에 걸쳐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남겼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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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하나는 1955년에 나온 것으로 이 음반으로 굴드는 클래식 음반계에 전설적인 데뷔를 했으며 1955년에 나온 이 음반은 6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BMG와 합병하기 이전의) SONY에서 나온 음반에는 재킷에는 이 연주를 가리켜 &quot;Birth of a Legend&quot;라고 표현해 놓았는데 실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1981년에 굴드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 남긴 음반으로 한 번 녹음한 곡은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다시 녹음하지 않기로 유명한 굴드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녹음을 남긴 것인데 이 음반 역시 1955년에 낸 첫 번째 음반만큼이나 사랑을 받고 있다(내가 처음으로 구입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바로 이 음반이다). 이 두 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연주 스타일에 있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으나 둘 다 굴드의 개성이 멋지게 드러나고 있는 아름다운 연주여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1955년과 1981년 연주를 모두 소장하게 된다. 피터 F. 오스왈드Peter F. Ostwald가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1955년과 1981년의 연주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가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 두 개의 연주는 모두 매력이 넘쳐흐르는 연주여서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논쟁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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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나 역시 이 두 개의 음반을 모두 좋아한다. 내가 굴드의 팬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투렉을 포함하여 예브게니 코롤료프Evgeni Koroliov,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ï 등의 훌륭한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으나 굴드의 연주를 잊은 적은 없다. 오랜 기간 굴드는 나에게 바흐 전문가로 인식되고 있었고 아마도 굴드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바흐 이외의 작곡가와 굴드를 연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굴드를 바흐 이외의 다른 작곡가들과 연결짓는 것이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는 어색한 일이었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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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그런데 굴드가 남긴 녹음 목록을 살펴보면 그의 연주 레퍼토리는 상당할 정도로 방대했고, 그 방대한 연주 레퍼토리 중에는 흥미롭게도 20세기에 작곡된 클래식 음악에 관한 녹음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지인에게 'Glenn Gould: The Original Jacket Collection'을 빌려와서 CD를 한 장씩 살펴보면서 새삼 놀란 것도 이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바흐 음악의 연주로 기억되는 굴드가 자신이 살고 있는 20세기 클래식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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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음악 강연집 [Musical Elaborations]에서 굴드의 피아노 연주 레퍼토리가 보여주는 인상적인 측면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굴드는 일반적인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 연주 레퍼토리의 핵심으로 삼았을 작곡가들의 음악, 이를테면 프레데릭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이나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등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음악이나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이지만 낭만주의적인 음악적 감수성을 보여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의 음악을 자신의 주력 레퍼토리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굴드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관하여 평생에 걸쳐 비판했고 연주회에서 낭만주의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쇼팽이나 슈만의 작곡가로서의 자격을 의문시하기까지 했는데 각종 영상물과 방송자료로 남아 있는 굴드에 관한 기록물을 브뤼노 몽생종Bruno Mosaingeon이 책으로 구성하여 펴낸 [글렌 굴드: 나는 괴짜가 아니다]를 보면 굴드의 단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quot;나는 항상 피아노를 위한 레퍼토리의 대부분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구성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화법에는 쇼팽이나 리스트, 슈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곡가들의 대다수는 실제로 피아노를 위해서 바르게 작곡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quo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굴드는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에른스트 크셰넥Ernst Krenek,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등의 20세기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공들여 녹음했고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이런 굴드의 경향을 생각해 볼 때 내가 가장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그토록 사랑한 작곡가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형성된 통일제국인 독일 제2국이 성립하기 이전인 1864년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이 동서로 분단된 해인 1949년에 죽은 슈트라우스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인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굴드의 이런 면모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정말로 신기하게 여겼다. 굴드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의 소유자였고 피아노로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굴드가 비르투오조virtuoso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대중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면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그러한 면모를 드러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기절할 정도의 음악성과 테크닉으로 연주해 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돋움; FONT-SIZE: 10pt&quot;&gt;그러나 1964년 31살의 나이로 무대 연주에서 자발적인 은퇴를 한 후, 피아노 연주 녹음은 계속해 나가면서도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낭만주의 음악에 굴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연주가가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기는 고사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음악들은 잘 연주되지 않는 곳이 다름 아닌 클래식 음악계이다. 또는 클래식 음악계에 관한 뛰어난 성찰을 담고 있는 [뮤지킹: 음악하기]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스몰Christopher Small에 따르면 오늘날 클래식 음악 회장에서 연주되는 대다수 작품들의 작곡가들은 그들의 연주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이며, 오늘날까지 살아 있거나 심지어 20세기 초반 20년 이후에 살았던 어떤 음악가도 대체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죽었거나 전성기를 맞이했던 작곡가들만큼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연주회장에서 갖고 있지 못한 곳이 또한 클래식 음악계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계는 현대 내지는 동시대 음악을 향한 관심이 미약한 곳이다. 20세기 초까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콘서트 연주가 중에서도 작곡가를 겸하지 않는 연주가들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는 했지만, 굴드가 무대 연주를 은퇴할 즈음에는 그런 연주가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바흐의 연주로 명성을 떨친 피아니스트가 다른 음악도 아닌 20세기 클래식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 특기할 만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굴드를 처음 알았을 때는 그의 바흐 연주에만 관심이 가고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20세기 클래식 음악이라는 동시대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굴드의 면모를 생각해 보게 된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듣기</category>
			<category>Glenn Gould: The Original Jacket Collection</category>
			<category>[평균율 피아노 곡집]</category>
			<category>글렌 굴드</category>
			<category>애니메이션 음악</category>
			<category>에드워드 사이드</category>
			<category>요한 제바스티안 바흐</category>
			<category>음악</category>
			<category>재즈</category>
			<category>크리스토퍼 스몰</category>
			<category>클래식</category>
			<category>현대 클래식 음악</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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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May 2012 03:57: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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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ebo Valdés &amp; Chucho Valdés, [Tea for Tw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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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FRAME height=315 src=&quot;http://www.youtube.com/embed/cdSFZ-_rpi4&quot; frameBorder=0 width=600 allowfullscreen&gt;&lt;/IFRAME&gt;&lt;/SPAN&gt;&lt;/SPAN&gt;&lt;/SPAN&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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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찍 자려했는데 벌써 시간이&amp;nbsp;새벽 4시가&amp;nbsp;되었다. 이제 자야지. 좋은 꿈을 꾸며 자고 싶다. 밝고 즐거운 음악을 듣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음악은 Bebo Valdés &amp;amp; Chucho Valdés의 [Juntos Para Siempre&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에 수록된 [Tea for Two&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살기</category>
			<category>Bebo Valdés &amp; Chucho Valdés</category>
			<category>[Juntos Para Siempre]</category>
			<category>[Tea for Two]</category>
			<category>좋은 꿈</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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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Feb 2012 04:07: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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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친구들, 친구의 애인 그리고 [북촌방향].</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31</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objec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id=&quot;jvQZnnRliXI$&quot; width=&quot;642&quot; height=&quot;390&quot; align=&quot;middle&quo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jvQZnnRliXI$&quot; /&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 /&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 /&gt;&lt;param name=&quot;bgcolor&quot; value=&quot;#000000&quot; /&gt;&lt;param name=&quot;wmode&quot; value=&quot;opaque&quot; /&gt;&lt;embed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jvQZnnRliXI$&quot; width=&quot;642&quot; height=&quot;390&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 &gt;&lt;/embed&gt;&lt;/object&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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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어제는 친구의 애인을 소개받는 자리에 나갈 약속이 있었다. 나와 내 친구 세 명 그리고 친구의 애인 이렇게 다섯 명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함께 홍상수의 [북촌방향]을 보고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친구들을 만나고 그 중 한 친구의 애인을 소개받고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날, 그러니까 이변이 없다면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그리하여 이 날 나는 조금 흥분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든 가깝게 지낸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이든 하여튼 친구들이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자리에 나갈 때면 항상 약간 들뜬 상태가 되곤 하는데, 이것은 어제도 마찬가지였다(친구들이 애인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친구들 중에는 나의 이런 반응을 보고 &quot;친구들 사귀는 거 보고 좋아하지 말고 이젠 무연이 애인을 사귀는 모습을 보면 좋겠어&quot;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디 연애가 쉽게 되는 일인가). 게다가 홍상수의 [북촌방향]은 어제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정말 즐거워서 나의 흥분 상태는 더욱 심화되기까지 했다. 한 번 올라간 텐션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아서 속으로 &quot;흥분하지 말아야 해&quot;라고 제동을 걸고는 했던 날. 하루가 지나 생각해보니 기묘하게 흥분한 날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들 즐겁게 놀았으니 기묘하든 이상하든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처음 볼 때도 기이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지만 두 번째 보고 난 후에도 [북촌방향]은 역시 기이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주위의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본 후 &quot;이제 홍상수의 영화는 항상 똑같은 것 같아서 질린다&quot;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지만(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아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군상들을 보면 그 밥에 그 나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래 전에 샤를 테송Charles Tesson이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을 두고 육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은 어린아이의 미숙함을 가진 인물들이 제도화된 사회에서 만날 때 생겨나는 불편한 유머를 다룬다고 말한 것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도를 제외한다면 홍상수의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날이 갈수록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캐릭터와 관련된 영화의 내용보다 서사를 진행시키는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이다. 무엇보다 [북촌방향]은 시간의 순서대로 영화의 장면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이다. 영화 속의 시간을 단순히 복잡하게 구성했다는 의미에서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화에서 시간의 축이 될 만한 구조가 명확하게 붙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장면을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혹시 누군가 나에게 &quot;[북촌방향]은 어떤 영화야?&quot;라고 물어보았다면 나는 난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북촌방향]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영화를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quot; lang=EN-US&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북촌방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며, 그렇다고 같은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영화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북촌방향]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에 나오는 장면과 대사를 줄거리를 요약하듯이 정리하는 것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주인공 성준(유준상)과 그의 선배 영호(김상준)가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의 장면과 여기에서 나오는 이들의 대사를 구체적으로 인용해가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북촌방향]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글을 남길 기회가 되었을 때로 미루었으면 하고, 일기를 쓰듯이 남기려는 이 글에서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만을 간략하게 남기고 싶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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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quot; lang=EN-US&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북촌방향]은 영화에 흐르는 시간의 순서를 하나하나 맞추기 어려운 숏들을 여럿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날이 바뀌었음을 순차적으로 알려주는 숏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대구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영화감독 성준이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서울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 자기 혼자 내지는 친한 선배인 영호와 함께 북촌 근처를 배회하고 술을 마시는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북촌을 배회하고 술을 마시는 성준의 일정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며칠 동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기보다는,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오는 대신 다시 첫날의 일정이 다음 날 하루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어느 곳엔가 여행을 오거나 놀러온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거나 숙소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이 시작해서 마감하거나 오늘이 끝나고 내일로 접어드는 것을 인지하게 되지만, [북촌방향]에는 그런 장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누군가의 집이나 방에 들어가 낮에 나오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장면들이 시간의 매듭을 지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시간의 순서를 헷갈리게 만들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성준이 아주 잠깐 동안 졸고 있는 모습을 제외하면 자고 일어나는 숏을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하며 그에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의미의 장면이 주어지지 않는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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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성준은 낮이 되면 북촌 근처를 배회하다 술을 마시고 밤이 되면 낮에 술을 마시던 장소에서 자리를 옮겨 북촌의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신다. 그런데 [북촌방향]에는 정확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성준이 배회하고 술을 마신 시간을 알 수 없으며 낮과 밤으로 분할되는 시간에서 북촌을 배회하며 술을 마시는 성준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오로지 낮과 밤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낮과 밤의 시간은, 낮 시간의 북촌에 있는 다정이라는 음식점과 밤 시간의 북촌에 있는 소설이라는 술집이 반복해서 나오고 여기에 더하여 인물들의 대사와 행위가 약간의 차이를 두고 반복해서 나오기까지 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북촌방향]의 주인공인 성준은 현재의 시간에서만 활동하거나 또는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하루 안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그렇게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그는 영원히 북촌 근처를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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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돌이켜 생각해 보면 [북촌방향]의 영어 제목인 [The Day He Arrives]는 영화에서 성준이 처한 상황을 매우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면서 영화에서의 시간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에 오랜 만에 놀러온 성준에게 그의 지인들은 서울에 며칠 동안 머물다 갈 것인가를 물어보았을 때, 그는 &quot;한 3, 4일 쯤&quot;이라고 답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같은 질문을 (서울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자 예전에 사귄 여성의 영혼이 덧 씌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예전/경진(김보경)에게 다시 받게 되었을 때 성준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quot;이젠 잘 모르겠어.&quot; 성준은 당연히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분할만이 존재하는 시공간에서, 다시 말해 시간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의 변화가 쌓여가기만 할뿐 앞으로는 흐르지 않는 시공간에서 &quot;며칠 동안 있다 갈 거야&quot;라는 물음에 답으로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quot;모른다&quot;일 것이기 때문이다. [북촌방향]은 시간의 변화가 영화 안에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반복되는 장면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나 어제와 다른 오늘이라기보다는 성준이 서울에 도착한 그날 하루를 미묘한 차이를 두고 다시 또 다시 반복하면서 영화 안의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영화로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내일이 마치 '그가 도착한 바로 그 날'인 것처럼. 정말이지, [북촌방향]은 말 그대로 기이한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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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이쯤에서 다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조금 더 잡담을 이어보고 싶다. 어제 만난 친구들은 나와의 관계에 있어 심각한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사이이고 그런 만큼 서로의 이런저런 모습을 참 많이 보아왔기에 죽마고우이자 막역지우라는 고색창연한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친구들과는 대학생 때도 극장이나 비디오로 영화를 함께 보곤 했지만, 졸업을 해서 직장을 다니는 가운데에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영화를 함께 보고는 했다. 이를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그랜 토리노],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스파이더], 왕가위王家衛의 [2046]과 [그녀의 손길], 김기덕의 [빈집]과 [숨], 임권택의 [하류인생], 유위강劉偉强과 맥조휘麥兆輝의 '무간도 3부작' 중 [무간도]와 [무간도: 종극무간],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킬 빌 2부작' 중 [킬 빌]2, 우디 앨런Woody Allen의 [환상의 그대] 그리고 가와세 나오미河瀬直美의 [너를 보내는 숲] 등등.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본 영화에는 당연히 홍상수의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적어도 [극장전]부터 이어지는 홍상수의 영화 중 중 절반은 이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친구를 제외하면 다들 일반적인 직장인이고 영화로 밥을 먹고 살거나 특별히 전공을 한 사람도 없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운 좋게도 모두들 영화 보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런 만큼 홍상수의 영화도 좋아하거나 재밌게 보는 친구들이어서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는 &quot;같이 봐야 하지 않을까&quot;라는 문자를 주고받기도 한다. 물론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고(사실 어제 나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방언을 자제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그래서 올해의 어느 날에도 홍상수의 영화가 개봉하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친구들과 그의 신작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2012. 2. 5. 일요일에 쓴 글)&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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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탬: 이전 써 둔 글을 올리면서 몇 마디 덧붙인다. 위에 올린 영상은 [북촌방향]의 예고편 영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거꾸로 감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영화를 보고나면 이 예고편 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 예고편 영상에 관한 애정마저 생기게 된다. 본편에 나오는 추운 겨울 날 아침 무렵까지 술을 마신 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집에 갈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이 조금 나올 뻔 했었다. 아마도 친구들과 친구의 애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지 못한 것은 [북촌방향]의 모든 장면에서도 바로 이 장면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예고편도 본편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인 것 같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보기</category>
			<category>[북촌방향]</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category>친구들</category>
			<category>친구의 애인</category>
			<category>홍상수</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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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Feb 2012 16:44: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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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런저런(1).</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30</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FRAME height=400 src=&quot;http://www.youtube.com/embed/oDMHQqlky20&quot; frameBorder=0 width=640 allowfullscreen&gt;&lt;/IFRAME&gt;&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
&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블로그를 일기장처럼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기장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친구들은 짧은 문장이든 긴 글이든 그날그날의 일과를 블로그에 기록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런데 작년 연말과 올해를 거치면서, 매일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내 생활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아무 것도 아닌 하루였더라도 글로 대면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작 그날 읽은 책의 몇 문장을 옮겨놓는 것에 그치더라도, 완결된 형식의 글로 지나간 하루를 남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생활의 흔적을 글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2012. 1. 2. 월)&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명절이 올 때마다 매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지난 설에도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큰 집에 갔었다. 아마도 내 친구들은 나와 내 친척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친척들이 특별히 나를 못살게 구는 것도 아니 건만 정작 나는 그들과의 자리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설과 추석이 올 때마다 어떻게 하면 친척들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궁리를 했고, 어쩌다 안 갈 수 있는 변명거리를 찾게 되면 말 그대로 쾌재를 불렀는데,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불편한 마음이 들게 된 이유가 없지 않고 그것은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있지만, 이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니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말이 좋아 친척이지, 나는 감정적으로 그들을 전혀 가깝게 느끼지 않는다. 굳이 가깝게 지낼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더 무던해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친척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즐겁게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인다. (2012. 1. 25. 수)&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모로호시 다이지로諸星大二郎의 만화 [사가판 조류도감]과 [사가판 어류도감]을 보면서, 내가 모로호시라는 작가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오해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작년에 [서유요원전]을 보면서 &quot;아, 나는 이 작가를 오해하고 있었어&quot;라는 생각을 했는데, 저 두 권의 동물도감 만화를 보면서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작가를 이토 준지伊藤潤二와 같은 계열의 만화가로 생각했던 것일까? 이토의 만화를 좋아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몇 년 전에 그의 만화를 접한 후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토의 만화를 보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던 적이 있다(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내가 이토의 만화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의 만화를 낮게 평가해서가 아니라 그가 표현하는 공포의 풍경과 정서가 내 취향과 너무 안 맞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모로호시의 만화는 전혀 다르게 느껴져서 보면 볼수록 그의 다른 만화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의 만화스타일이 내 취향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나는 아직 보지 못한 그의 만화가 매우 궁금하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저 둘을 비슷한 계열의 작가로 생각했던 것일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고 보면 작년에는 내가 오해하고 있던 만화 작가만이 아니라 장르에 관한 인식도 고쳐 생각할 기회를 얻었던 해였다. 모로호시의 만화를 다시 본 것이 한 명의 만화 작가에 관한 나의 오해를 고쳐 생각할 기회를 얻은 경우라면, 그래픽 노블을 다시 본 것은 하나의 만화 장르를 고쳐 생각할 기회를 얻은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내가 본 그래픽 노블 중에는 데이비드 마추켈리David Mazzucchelli의 [유리의 도시]가 있다. 마추켈리의 [유리의 도시]는 2006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가 작년에 장정을 바꿔 다시 출간된 것인데, 이 만화는 폴 오스터Paul Auster의 초기 소설인 [뉴욕 삼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 [유리의 도시]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만화책의 앞부분에는 [쥐]의 만화가로 유명한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글이 실려 있다. 사실 내가 마추켈리의 [유리의 도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오스터와 슈피겔만 때문이었고, 작년에 마추켈리의 작품을 볼 때까지만 해도 마추켈리라는 작가는 이름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반면에 한 때 나는 국내에 출간된 오스터의 소설을 모두 챙겨 읽었을 정도로 그의 팬이었으며 [뉴욕 삼부작]은 그의 문학 세계의 원형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되곤 하는 작품이어서 이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를 만화로 작업한 작품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대체 어떤 작가가 [뉴욕 삼부작]을 만화로 작업한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슈피겔만이 만화의 [머리말]을 썼다니, 도대체 그 만화가가 누구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만화의 형식이 그래픽 노블임을 안 순간 나의 흥미는 급속도록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작년 가을이 지나기 전까지 그래픽 노블에 관한 쓸데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그래픽 노블은 거의 미국에서 출간된 수퍼/안티히어로들이 나오는 것들이었는데 나에게 이 그래픽 노블들은 잘 맞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작품들이 저열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좋은 작품들을 보기도 했고, 내용상으로는 동의를 할 수 없더라도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보기도 했지만, 말하자면 나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작품들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가 한동안 그래픽 노블에 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은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았다. 작년 가을이 지나면서 보게 된 몇 권의 그래픽 노블은 이전에 보았던 것들과는 매우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고, 그 중에서도 제프 르미어Jeff Lemire의 [에식스 카운티]와 마누엘레 피오르Manuele Fior의 [초속 5000킬로미터] 그리고 마추켈리의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그래픽 노블에 관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하게 부수어 놓았다. 작년에 했던 일 중 모로호시의 [서유요원전](을 포함하는 그의 다른 만화들)이나 여러 그래픽 노블을 읽은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내가 모로호시의 만화나 그래픽 노블을 오해했던 이유가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작가나 장르에 관하여 일정 정도의 견해를 가질 만한 독서량을 축적하지 않았던 데에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분량의 작품만을 읽은 후에 얻게 된 감상에 기반 하여 어떤 작가나 장르를 판단하기보다 그저 성실하게 읽어나갔다면, 모로호시에 관해서든 그래픽 노블 관해서든 쓸데없는 오해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보다는 더 빨리 좋은 작품들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팔레스타인에 가 있는 내 만화광 친구가 돌아와야 [서유요원전]5-6권을 빌릴 수 있을 텐데. (2012. 1. 27. 금)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Theodoros Angelopoulos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의 [유랑극단]이 국내에 DVD로 출시된 것을 우연히 발견한 후 기쁜 마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본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그것도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니,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1세기 들어 서구 모던영화의 거장 감독들이 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자각하게 되었을 때 서구 모던영화의 거장들은 나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물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영화가 그저 문화산업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었고 영화를 통해 세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영화적으로 계몽해주는 사람들이었고, 이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앙겔로풀로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화는 나에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영화들은 역사의 시간을 영화의 시간으로 변환한 것 같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들이었고 역사와 세상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결합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과도 같은 작품들이었다. [유랑극단]과 [율리시즈의 시선]과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랑극단]이나 [율리시즈의 시선]과 같은 앙겔로풀로스의 걸작들뿐만 아니라 해외영화제를 가지 않고도 2004년까지 나왔던 그의 모든 영화를 서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었을 때 나는 정말로 기뻐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낙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앙겔로풀로스의 전작을 볼 수 있었을 때, 앞으로는 신작을 기대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오로지 그가 남긴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것만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올해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다시 보며 그가 남긴 영화적 유산을 생각해 볼 것이다.&lt;br /&gt;
&lt;br /&gt;고인을 명복을 기리는 의미에서 여기에 [율리시즈의 시선]에서의 한 장면을 남긴다.&amp;nbsp;영화에 나오는 음악은 엘레니 카라인드루Eleni Karaindrou가 작곡한 것이다. (2012. 2. 3. 금)&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살기</category>
			<category>[율리시즈의 시선]</category>
			<category>그래픽 노블</category>
			<category>기록</category>
			<category>데이비드 마추켈리</category>
			<category>만화</category>
			<category>모로호시 다이지로</category>
			<category>친척</category>
			<category>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guid>http://muhanhan.tistory.com/430</guid>
			<comments>http://muhanhan.tistory.com/430#entry430comment</comments>
			<pubDate>Tue, 07 Feb 2012 15:34: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쓰카 에이지를 경유하여 테즈카 오사무의 전쟁 체험과 그의 만화를 생각함(2).</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29</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8.uf.tistory.com/image/1717D0474F2768D30A8428&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手塚治虫.jpg&quot; height=&quot;399&quot; width=&quot;613&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
&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글은 작년 연말에 쓴 &lt;/SPAN&gt;&lt;A title=&quot;[http://muhanhan.tistory.com/427]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muhanhan.tistory.com/427&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쓰카 에이지를 경유하여 테즈카 오사무의 전쟁 체험과 그의 만화를 생각함](1)&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에 이어 두 번째로 쓰는 글이다(본래는 바로 쓰려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러지를 못했다). 앞선 글에서 나는 애니메이션 동호회 멤버들과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아돌프에게 고한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언급하면서,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포함해 테즈카 만화 전체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평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그의 '평화주의'에 관해 일정 정도 유보적인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내가 테즈카의 '평화주의'를 두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평화주의'가 아시아 ·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전후 책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한 결과인 것인지, 아니면 전후 책임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않은 채 전쟁 일반에 관한 반대에서 멈추어 버린 일본의 여러 '평화주의자'와 이른바 '올드 리버럴'의 오류를 반복한 결과물인지,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돌프에게 고한다]에 담겨 있는 테즈카의 '평화주의'를 생각해보기 위한 예비적인 작업으로 그의 전쟁 체험과 만화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제안을 했고,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의 두 권의 책인 [아톰의 명제: 테즈카 오사무와 전후 만화의 주제アトムの命題: 手塚治虫と戦後まんがの主題]와 사사키바라 고ササキバラゴウ와 함께 쓴 [망가 · 아니메: 아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까지]를, 이 중에서도 특별히 [망가 · 아니메]에서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만화를 논하는 오쓰카의 비평을 길잡이 삼아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만화의 관계를 정리해 보기도 했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오쓰카의 논의를 간략하게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테즈카는 생애 말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만화기호설'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만화를 정의한 적이 있다. 자신의 만화를 기호적인 것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적인 작화가 필요한 만화를 그릴 때는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쓰카는 테즈카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기호적인 작화가 만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한계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가정 하에 테즈카가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 시기에 그린 습작 만화인 [승리의 날까지]를 분석한다. [승리의 날까지]는 옴니버스 형태의 미완성 개그만화로 당시의 테즈카가 알고 있던 인기 캐릭터들이 총출연하는 만화인데, 이 만화는 기본적으로 기호화된 작화로 만화의 배경과 캐릭터를 그리면서도 미군의 공습과 직접 연관된 상황을 그릴 때는 테즈카의 대표적인 만화 기법으로 알려져 있는 영상기법까지 적용한 사실적인 작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테즈카의 [승리의 날까지]에는 폭탄의 직격을 받아도 죽기는커녕 어떤 상처도 생기지 않는 기호적인 육체의 캐릭터와 미군 전투기를 조종하는 미키마우스가 쏘아대는 기관총에 육체가 관통되어 피를 흘리는 사실적인 육체의 캐릭터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오쓰카는 이러한 사태, 그러니까 기호화된 육체만을 가지고 있던 만화의 캐릭터가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라는 사실적인 육체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된 사태를 두고 소년 테즈카가 자신이 그려야 할 만화의 대상으로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그는 테즈카 만화의 진정한 탄생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전후 일본 만화의 탄생을 보고 있기도 하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쓰카가 [승리의 날까지]에서 테즈카 만화의 진정한 탄생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 만화의 탄생까지 보는 이유는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만화적 감각이 전후 일본 만화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인 캐릭터의 성장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테즈카가 [승리의 날까지]에서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그릴 수 있게 된 후, 그가 전후에 그린 만화인 [아톰대사](1951)와 [철완아톰](1952-1968, TV 애니메이션은 1963-1966)으로부터 시작하는 아톰이라는 캐릭터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성장하지 않는 육체였음을 생각해본다면(아톰을 만든 텐마 박사는 로봇 공학의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아톰이 육체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와 절망을 감추지 못한다),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로 변화를 할 수 있게 된 캐릭터의 육체는 또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육체로도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기호화된 육체는 생사와 연관된 변화와 관계가 없지만 사실적인 육체는 생사와 연관된 변화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육체는 테즈카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의 만화가들에게 캐릭터가 겪을 수밖에 없는 성장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이 성장의 문제는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과 관련한 성숙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오쓰카의 논의에 따른다면, 전후 일본 만화(뿐만 아니라 서브컬처)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인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탐구하려면 테즈카가 전쟁 체험으로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그릴 수 있게 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쓰카의 논의는 만화를 포함해 전후 일본 서브컬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육체에 관한 논의로 확장되어 이른바 '만화&amp;nbsp;·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으로 정리되기에 이른다. 오쓰카의 '만화&amp;nbsp;·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일본 서브컬처를 연구하는 여러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참조가 되는데, 이를테면 우리는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라이트 노벨을 '캐릭터 소설'로 명명하며 라이트 노벨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육체를 이야기하는 오쓰카에게서 테즈카의 만화에서 출발했던 육체의 리얼리티에 관한 논의를 볼 수 있지만, 또한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ゲーム的リアリズムの誕生: 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2]에서 라이트 노벨에 관한 논의를 전개할 때도 한편으로는 오쓰카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참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만화비평가 이토 코우伊藤剛의 [테즈카는 죽었다デヅカ イズ デッド]를 경유해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본의 서브컬처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을 짚어 준 오쓰카의 비평은 당연히 나에게도 필수적인 참조가 되었다. 특히나 테즈카의 만화를 그의 전쟁 체험과 연결하여 탐구하는 오쓰카의 비평은 일본 근현대사와 서브컬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 테즈카의 만화에 담겨 있는 '평화주의'를 그의 전쟁 체험과 긴밀하게 연결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만들었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가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오쓰카는 테즈카가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을 인식하고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그의 기호적인 만화 세계에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이 들어와 만화의 캐릭터에게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테즈카의 만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현실적 조건을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로 규정할 경우 그의 만화에서 발현되었던 다양한 면모를 제한적으로 보게 만들 수 있으므로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보다는 &quot;현실&quot;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규정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쓰카의 이러한 제안은 테즈카가 오로지 전쟁을 직접 다루는 만화만을 그린 사람이 아님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은 테즈카의 '평화주의'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경로를 탐색해 보는 것이므로, 오쓰카의 제안과는 다르게 &quot;현실&quot;이 아닌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에 더 머무르면서 테즈카의 만화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의 탄생, 다시 말해 기호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기도 한 육체를 만화에서 감각할 수 있는 길을 테즈카가 열어놓았다고 할 때, 나는 전쟁의 '어느 시기'에 과연 그런 감각이 열렸는가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테즈카는 1928년에 태어났으며 [승리의 날까지]를 그렸던 1945년에도 그의 나이는 아직 17살이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부터 계산을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절반을 전쟁 시기에 보낸 셈이지만, 미군의 공습이 있기 전까지 일본 본토는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군대에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가는 군인이 아니었던 그가 전쟁을 리얼하게 체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이 테즈카의 만화 세계에 들어오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져야했던 것일까? [승리의 날까지]를 분석하는 오쓰카의 글을 읽으며 내가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미군의 공습'과 연관된 장면을 그릴 때 테즈카가 사실적인 작화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테즈카가 [승리의 날까지]를 그린 1945년 6월은, 이미 미군에 의한 일본 본토 대공습이 벌어졌던 시기이다. 이 대공습이 목표로 한 도시에는 오사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의 한 장인 [오사카 대공습]에서 당시의 대공습을 회고하고 있다. 테즈카는 근로 동원으로 나가던 군수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때로는 망루에서 보초를 서는 임무도 맡고는 했는데, 어느 날 공습 경계경보가 제대로 울리지 않아 (아래 인용한 만화에 보이는 것처럼) 보초를 서던 망루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해 미군의 대규모 폭격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다(인용한 만화는 테즈카가 1974년에 그린 [종이 요새]라는 단편 만화로 이 만화에는 테즈카의 전쟁 체험이 상당 부분 들어 있다). 또한 그는 공습으로 군수 공장의 대피소에 소이탄이 떨어져 죽은 사람들을 목격하는 것만이 아니라 폭격당한 군수 공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lt;/SPAN&gt;&lt;br /&gt;
&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10.uf.tistory.com/image/17364F4F4F276D23100130&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테즈카 오사무, [종이 요새](1974).jpg&quot; height=&quot;917&quot; width=&quot;64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사카 대공습이 있었음에도 다행히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테즈카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군수 공장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자 집에 틀어박혀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까지 무려 2000장에 달하는 만화를 그렸다. 아마도 소년 테즈카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매일같이 느끼며 필사적인 심정으로 만화를 그렸을 것인데, 여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테즈카에게 &quot;전쟁이라는 현실&quot;이 육체적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것으로 들어와 그의 만화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 된다는 것은 자국의 영토가 직접적인 전쟁터가 되었을 때라야만 비로소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나 연이어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서 전황이 불리해져 갔던 일본은 어린 학생들에게도 근로 동원을 요구하지만, 아무리 전쟁 때문에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미군의 공습을 방어할 여력이 없어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테즈카의 만화 캐릭터는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부여받을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공습으로 인해 그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할 일 없이 또한 폭탄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보는 일 없이 근로 동원만 하다 전쟁이 종결되었다면 테즈카에게 전쟁은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만화로 그려야 할 만큼 절박한 무엇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테즈카가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 시기에 그린 만화 중에는 일본의 전쟁을 미화하기 위해 그린 선전 만화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구도와 내용의 만화들도 다수 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징집을 당해 전선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테즈카에게 전쟁이란 공습이 벌어지기 이전까지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테즈카가 [승리의 날까지]에서 아무리 기호적인 육체를 가진 캐릭터로 전쟁에 저항하려고 해도, 그에게 몰아닥친 공습이라는 상황은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 침략을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무라타 야스지村田安司의 애니메이션 [하늘의 모모타로空の桃太郎](1931)나 시마다 게이조島田啓三의 만화 [모험 단기치冒険ダン吉](1933-1939)처럼 희망찬 전망으로 가득한 제국주의적 모험활극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승리의 날까지]에 실려 있는 (앞선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다른) 만화에서처럼 독가스탄이 투하되어도 격추당한 전투기의 프로펠러로 바람을 일으켜 독가스를 날려버리면 된다는 식의 개그가 가미된 대항 의식은 공습으로 죽기 직전까지 몰린 경험을 하게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일관되게 고수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시점에서 테즈카의 [승리의 날까지]에 실려 있는 만화 중 하나인 [기관총 연사]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관총 연사]에서 돈기치에게 기관총을 쏘아대는 캐릭터는 다른 누구도 아닌 미키마우스였다. 어린 시절에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과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의 영화와 함께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던 테즈카는, 디즈니가 만들어놓은 애니메이션 세계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미키마우스는 아톰의 캐릭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그러나 진심으로 좋아한 캐릭터였던 미키마우스가 말 그대로 적국의 비행기 조종사로 등장하여 자국민 소년 캐릭터인 돈기치에게 기관총을 쏘아대는 만화이면서 만화의 캐릭터인 돈기치의 자리에 테즈카 자신을 대입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기관총 연사]라는 만화는 테즈카가 전쟁을 인식했던 맥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기관총 연사]에서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부여받은 일본인과 다르게 비행기를 타고 일본인을 살상하는 미군이 테즈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전쟁의 시기, 더 정확하게는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에게 공습을 당하는 일본이라는 특정한 상황의 시공간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하더라도 가능한 설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관총 연사]가 실려 있는 만화의 제목은 [승리의 날까지]이지만 이 만화의 핵심에는 승리에 관한 감각이 아닌 패배에 관한 감각이 들어 있다. 소년 테즈카에게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그릴 수 있게 된 감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전쟁에서의 패배를 예감하는 감각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며, 일본을 초토화시킨 미군의 공습은 테즈카의 기호화된 만화세계의 인물들에게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테즈카의 전쟁 시기의 습작 만화인 [승리의 날까지]를 생각해 본다는 것, 다시 말해 그에 의해 만화에서의 인물의 육체가 기호화된 육체뿐만 아니라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로도 표현하는 감각이 열리게 된 것이 그의 전쟁 체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전쟁과의 관련성을 전쟁 일반이 아닌 특정한 전쟁 상황으로 한정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승리의 날까지]는 미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만화의 전체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만화는 전쟁 시기를 부르는 여러 이름들, 이를테면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 15년전쟁,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이라는 이름들에서 나로 하여금 태평양전쟁이라는 전쟁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태평양전쟁은 전쟁 시기에 대동아전쟁으로 불렸던 전쟁을 GHQ에서 일본인의 전쟁관을 교정하기 위해 사용하여 정착시킨 전쟁명으로, 이 전쟁명에 담겨 있는 전쟁 사관의 기본 목적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일본이 패전했다는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한편으로는 전쟁 시기 중국의 항일전쟁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항일투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한 최저의 역사적 기억으로 축소시키는 것과 동시에 조선과 타이완에 관한 식민지 지배 문제는 전후 반성의 가시권에서 제외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책임의 문제를 군부에 집중시키는 방식을 통해 천황이 짊어져야할 전쟁 책임을 면책시키고 민중들에게는 군부에 속아서 전쟁에 가담했다는 서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이 글에서는 태평양전쟁 사관에 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나는 블로그에 태평양전쟁 사관에 관해 긴 글을 쓰면서 도움이 될 만한 참고문헌을 남겨 놓은 적이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lt;/SPAN&gt;&lt;A title=&quot;[http://muhanhan.tistory.com/282]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muhanhan.tistory.com/282&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태평양전쟁이라는 전쟁명]&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을 참고하기 바란다). 태평양전쟁 사관은 전쟁에서의 미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아시아의 역할과 피해는 축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아시아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일본의 입장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전쟁의 기억을 전후 책임과는 관계가 없는 방향으로 대체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그 결과 태평양전쟁 사관은 아시아에 관한 전후 책임을 깊이 고려하면서 전쟁에 관한 기억을 비판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의 공습과 원폭투하를 강조하는 가운데 전후 '피해자의식'을 내면화하면서 전쟁에 관한 기억을 상상적으로 대면하는 태도를 낳게 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적인 태도는 이마이 타다시今井正의 [히메유리의 탑](1953), 오카모토 기하치岡本喜八의 [격동의 쇼와사 오키나와 결전](1971) 그리고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의 [반딧불의 묘](1988) 등과 같은 전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여러 예술 작품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이 되었다(나는 여기에서 일정 정도 예술성을 인정받은 소수의 영상물만 거론했지만 장르와 미학적 성취를 가리지 않고 거론한다면 훨씬 많은 작품들을 열거해야 할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테즈카가 전쟁 시기에 그린 습작 만화 [승리의 날까지]는 일본이 미군의 공습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보다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는 만화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결핍이 당시 일본에서 테즈카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때 40대의 나이였고 이미 1930년대에는 동시대 서구영화계의 뛰어난 영화감독들의 작품과 나란히 놓을 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기온의 자매』(1936)와 『잔기쿠 이야기』(1939)를 만들었던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의 전쟁 시기의 행적을 두고 &quot;중학교 2학년 수준의 정치의식&quot;밖에 갖지 못했다며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가 가차 없이 비판했던 것을 보면, 중학생 시절에 &quot;유감스럽게도 적군은 수적으로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국민의 정신력은 우리가 수천 배나 강하다. 따라서 우선 적의 인적자원에 손실을 입혀야 한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면, 물리적 위협 따위는 두렵지 않다&quot;라는 내용의 일기를 썼던 소년 테즈카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lt;/SPAN&gt;&lt;br /&gt;
&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돌프에게 고한다]에 담겨 있는 '평화주의' 더 나아가 테즈카 만화의 가장 큰 주제인 생명존중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평화주의'를 제대로 생각해 보려 한다면, 그가 전쟁 시기에 그린 습작 만화인 [승리의 날까지]로부터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승리의 날까지]가 전쟁 시기에 그린 만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테즈카가 겪은 전쟁, 다시 말해 전쟁 시기에는 대동아전쟁으로 불렀고, 패전 후 미군정 시기에 태평양전쟁으로 전쟁명이 정착되었으며, 그 후 일본의 침략 전쟁이 아시아에 미친 파괴적인 결과를 성찰한 결과로 15년전쟁과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이라는 전쟁명이 나타나게 된 바로 그 전쟁은, 일본을 폐허로 만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파괴와 살육이 넘쳐나는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며 '평화주의'를 생각한다는 것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라는 역사와 전후 책임의 문제를 회피해서는 추상적인 '평화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테즈카는 [승리의 날까지] 이후, 전후에 작가로 데뷔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과연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과 아시아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해서 상상했을까? 그는 과연 [승리의 날까지]에서 보였던 태평양전쟁 사관을 넘어서 더 나은 역사인식의 방향으로 자신의 '평화주의'를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하려면, [아돌프에게 고한다]와 [승리의 날까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뿐만 아니라, [종이 요새]나 [뮤](1976-1978)에서 볼 수 있듯 민중의 안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히려 민중을 학살당하는 상황으로 내몰면서까지 전쟁이라는 극악한 수단을 포기하지 않는 국가 권력을 비판하고 있는 만화들 그리고 [고블린 공작ゴブリン公爵](1985-1986)이나 [불새: 태양편](1986-1988)에서 볼 수 있듯 중국과 한국의 역사와 인물에게서 소재를 취하는 수준을 넘어 때로는 서사 전개의 핵심적인 동력을 얻기도 하는 만화들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테즈카의 '평화주의'를 생각해보기 위한 하나의 경로를 탐색할 목적으로 쓰는 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 글은 여기서 끝맺는 것이 좋을 것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읽기</category>
			<category>[기관총 연사]</category>
			<category>[승리의 날까지]</category>
			<category>만화</category>
			<category>아시아 · 태평양전쟁</category>
			<category>오쓰카 에이지</category>
			<category>전쟁 체험</category>
			<category>전후 책임</category>
			<category>죽을 수 있는 육체</category>
			<category>태평양전쟁</category>
			<category>테즈카 오사무</category>
			<category>평화주의</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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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1 Jan 2012 13:46:41 +0900</pubDate>
		</item>
		<item>
			<title>W. G. 제발트의 소설을 읽고.</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28</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26.uf.tistory.com/image/16698E4E4F13C833235E67&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W. G. Sebald(1).jpg&quot; height=&quot;640&quot; width=&quot;64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br /&gt;
W. 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의 [토성의 고리]를 읽었다(미리 말하면 이 글은 [토성의 고리]에 관한 서평이 아니며 제발트 소설에 관한 이런저런 소회를 풀어놓는 것이다). 제발트의 소설은 읽은 사람에게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인데, 이것은 [토성의 고리]를 읽은 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발트라는 작가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번역본이 나오는 순서대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는 그의 번역되지 않은 나머지 소설도 하루빨리 한국어로 번역되기를 고대하는 한 사람의 독자가 되어버렸다(여기에 더해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충실한 독자가 되고 싶다). 제발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1990년부터 2001년에 걸쳐 모두 네 권의 소설을 남겼고 그 중 [이민자들]이 2008년에 [아우스터리츠]가 2009년에 각각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바 있다. [토성의 고리]는 작년 8월에 번역본이 나왔지만, 얼마 전까지도 나는 이 소설이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년 연말에 종로도서관에서 우연히 번역본을 발견하게 되어 대출을 할 수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일찍 일어난 일요일에 도서관에 가서 책 구경을 하느라 문학 서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토성의 고리]를 읽기는커녕 번역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특별히 찾을 책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도서관의 서가 주위를 어슬렁거릴 때는 공부가 잘 되지 않거나 책을 읽으면서 딴 생각이 수시로 떠올라 읽던 책에 집중을 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인데, 책 구경으로 그저 시간만 보낸 것이 아니라 제발트 소설의 새로운 번역본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공부할 시간에 딴 짓 하면서 얻어 걸린 것 치고는 정말 큰 수확이었던 셈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제발트에 관한 소개를 보면 &quot;현재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독일 (문학) 작가&quot;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지만, 그의 소설은 독일에서는 뒤늦게 주목받았고 오히려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제발트의 소설이 독일보다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데는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소개가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실은 나도 그녀의 글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제발트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려준 손택의 글은 [비탄에 잠긴 정신]으로 이 글은 2000년에 [Times Literary Supplement]에 쓴 글을 그녀의 예술 에세이 모음집인 [강조해야 할 것]에 재수록 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강조해야 할 것]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2006년에야 읽었지만, 그녀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제발트도 아직 살아있던 시기였다(제발트가 앞서 말한 교통사고를 당한 해는 2001년이고 손택은 2004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이 글은 손택이 쓴 제발트에 관한 글로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것이지만 아마도 이 글이 제발트에 관한 그녀의 유일한 글일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서 제발트가 주목을 받는데 손택이 일정 정도 역할을 했으며 [비탄에 잠긴 정신]이 제발트의 [현기증]이 영어로 번역된 것에 맞추어 쓴 글임을 생각해본다면, 그 이전에 영어로 번역된 제발트의 다른 소설에 관한 글을 썼거나 그의 문학 세계에 관한 종합적인 소개 글을 썼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손택의 [비탄에 잠긴 정신]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작가를 소개하면서 (그녀가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소설인 [아우스터리츠]를 제외한) 제발트의 세 권의 소설에 관한 비평을 전개하고 있는데,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도 나에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제발트에 관한 그녀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quot;문학의 위대함이란 지금도 가능할까? 문학적 야심이 사라져가고 열의는 없으면서 입심만 좋으며 무자비하게 냉혹한 인물이 소설의 일반적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문학에 대한 고귀한 기획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영어권 독자들에게 이것에 대해 답해주는 몇 안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 제발트이다.&quot; 인용한 문장은 [비탄의 잠긴 정신]의 첫 문단인데,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한 명의 소설가를 두고 과연 이보다 더한 칭찬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손택의 이런저런 글을 어느 정도 읽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예술적 감식안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잘 알고 있었다. 알다시피 손택은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한 글을 썼고 그 중에는 훌륭한 글이 많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매개로 새로운 예술 작가의 세계에 입문 하거나 이미 알고 있던 예술 작가에 관한 새로운 성찰을 얻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를테면 [해석에 반대한다]에 실려 있는 [로베르 브레송 영화의 영적 스타일]이라는 글로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영화에 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손택이 &quot;문학의 위대함이란 지금도 가능할까?&quot;라는 질문에 관한 응답으로 제발트의 소설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그는 위대한 작가였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에게도 제발트의 소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소설은 누구의 것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quot;제발트!&quot;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작가의 소설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다는 것이 반드시 그 작가의 소설을 매끄럽게 잘 읽었다는 의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 제발트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그의 소설을 단 번에 읽어내지 못했고 이것은 가장 최근에 읽은 그의 소설인 [토성의 고리]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누가 그의 소설을 매끄럽게 읽어나갈 수 있을까? 제발트의 소설을 읽을 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매번 같은 과정을 반복하곤 했다. 다시 말해 제발트의 소설을 읽을 때는 목적지에 도달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처럼 그렇게 문장의 흐름을 놓치고 머뭇거리곤 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부터 길을 잃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왔던 길을 더듬어 되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미 읽었던 부분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더 심하게는 중간까지 읽은 소설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기도 한다(나는 [아우스터리츠]를 읽을 때 중간 부분까지 읽던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물론 제발트의 서술 방식이 쉬운 독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제발트 자신이 &quot;어떤 독일인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인공언어&quot;로 그의 소설에서의 언어구사를 표현한 적이 있지만, 무수한 관찰과 지식이 열거 되는 그의 문장과 때로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문장 그리고 구술하듯이 이어지는 서술은 독서의 흐름을 이어가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발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길을 읽게 되는 것이 그의 소설 세계가 쓸데없이 뒤틀린 서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제발트의 소설을 읽으며 길을 읽고 문맥을 놓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역사 속으로 죽어 사라진 존재들을 떠올리고, 그 떠올린 존재들에 관한 기억의 파편을 복원하는 것은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제발트가 펼쳐놓은 소설의 세계에서 등장인물은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독일군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한 유태인 어린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실시되었던 탈출 작전인 '어린이 수송Kindertransport'과 관련된 기억과 연관된 것일 때도 있고([아우스터리츠]), 한 개인에게 맡겨진 커다란 작업을 끝낸 후에 마음속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보여행을 떠나는 것일 때도 있다([토성의 고리]). 그런데 이 여행자의 여행은 정해진 목적지에 직선적으로 도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이러한 여행자의 여정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죽은 존재들의 흔적을 더듬어 나가거나 불현듯 만나게 되는 과정과 겹쳐 있다. 등장인물이 여러 경로로 이어지는 여행의 동선에서 죽은 존재들의 흔적을 마주치는 것은, 마치 사라진 존재들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나간 시간의 파편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등장인물이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 여행의 끝에서 죽은 존재들이 기억의 복원이라는 작업을 매개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제발트의 소설에서는, 죽은 존재들과 그 죽은 존재들과 관련 있는 살아있는 존재들을 서술하기 위해 종종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동원되지만, 그 많은 설명을 읽고 나서도 우리는 그렇게 설명된 존재들이 기억하기의 과정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얻지 못한다. 제발트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여행은 황폐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우울한 정서가 지속되는 여정이다. 손택은 [비탄에 잠긴 정신]에서 [토성의 고리]를 언급하면서 &quot;우울의 상징인 토성을 따라가는 여행은 제발트가 1990년대 전반에 썼던 세 작품의 공통된 중심 소재&quot;이며 &quot;'파괴'는 그가 주로 다루는 주제&quot;라는 핵심적인 지적을 하고 있다. 제발트의 소설은 손택의 말처럼 '파괴'를 다루는 데 그가 '파괴'를 다루는 것은 '파괴' 자체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파괴당한 존재들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위력으로 파괴당하는 동&amp;nbsp;· 식물에 이르기까지, 파괴당한 존재에 관한 지대한 관심으로 역사에 묻혀 있는 죽은 존재들의 복원을 시도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제발트의 소설은 죽은 존재들의 무덤 앞에 있는 하나의 비문 더 나아가 그의 소설 자체가 죽은 존재들이 묻혀 있는 역사의 무덤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죽은 존재들을 피해갈 수 없고 그들의 여정은 파괴로 인해 사라진 존재들의 파편들과 마주치는 것으로 시종일관하는데, 여기에서 제발트는 죽은 존재들을 기억의 차원으로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그렇게 소설에 서술된 존재들을 손쉽게 애도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제발트가 자신의 소설에서 수행하는 기억하기를 매개로 하는 복원의 작업은, 죽은 존재와의 분리를 이루어내는 애도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죽은 존재와의 분리가 완결되지 않은 우울에 가까운데, 이것은 죽어 사라진 존재를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필사적으로 복원해 낸다 하더라도 파괴당한 존재의 구원을 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아마도 제발트의 소설이 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고도의 윤리가 내재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은 존재들과 연관된 역사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한 우리는 애도라는 형식으로 과거의 죽은 존재들에게 손쉬운 작별을 고하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나는 제발트의 소설에서 감각하게 되는, 뛰어난 미학과 고도의 윤리를 내재하고 있는 그 우울함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비판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우울한 정서를 담고 있지만 결코 자기 연민과 냉소에 빠지지 않는 놀라울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는데, 제발트가 보여주는 이러한 우울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에 필적할 만한 부정의 역사인식, 곧 손쉬운 구원과 강요된 화해를 거절하는 작가의 역사인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발트가 보여주는 우울함이 나에게는 버겁고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버겁다고 해서 그의 소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에 담겨 있는 우울함이 주는 버거움은 파괴당한 존재의 역사를 생각할 때에 느낄 수밖에 없는 죽어 사라진 존재들의 무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br /&gt;
보탬: 나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소설인 [현기증]도 하루빨리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그의 소설이 2008년부터 매년 한 권씩 출간된 것을 보면 [현기증]의 번역본을 올해 안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기증]이 나오면 먼저 이 소설을 읽은 후, 제발트의 네 권의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된 순서가 아닌 원서가 출간된 순서에 맞추어 모두 다시 읽어 보고 싶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읽기</category>
			<category>W. G. 제발트</category>
			<category>[비탄에 잠긴 정신]</category>
			<category>[토성의 고리]</category>
			<category>기억</category>
			<category>소설</category>
			<category>수전 손택</category>
			<category>역사인식</category>
			<category>우울</category>
			<category>책</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guid>http://muhanhan.tistory.com/428</guid>
			<comments>http://muhanhan.tistory.com/428#entry428comment</comments>
			<pubDate>Mon, 16 Jan 2012 15:54:3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쓰카 에이지를 경유하여 테즈카 오사무의 전쟁 체험과 그의 만화를 생각함(1).</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27</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25.uf.tistory.com/image/18172D394EF94D65068764&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망가아니메].jpg&quot; height=&quot;400&quot; width=&quot;27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
&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얼마 전에는 내가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동호회의 멤버들, 그리고 같은 동호회의 멤버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 다른 분들과 함께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과 전후戰後 일본 역사와의 관계를 배경으로 일본현대사와 서브컬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나갈 일이 있었다(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학술 대회 같은 데 간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건 아니고 동호회 모임을 조금 넓혀서 한 것이었다). 본래는 이야기를 듣는 선에서 참여하려고 했던 자리에 뜻하지 않게 이야기를 주도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나가게 되어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끝난 후에는, 역시 뒤풀이를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일본 서브컬처, 그러니까 애니메이션과 만화 그리고 라이트 노벨을 향한 나름의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자리를 옮겨서도 그런 쪽의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갔는데, 돌이켜보면 훈훈함을 지나 말 그대로 뜨거운 뒤풀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뒤풀이에서의 시간 중 하나는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일본현대사와 서브컬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지나가듯이 언급한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의 테즈카 만화 비평에 관하여, 같은 애니메이션 동호회 멤버이자 테즈카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어떤 분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고 여기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이야기에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은 의견이 오고 간 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테즈카의 작품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인상적인 것이었고 테즈카를 향한 무한한 존경을 품고 있는 분은 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그의 글도 많이 읽은 분이어서 나로서는 들을 이야기가 많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포함하는 서브컬처)의 사무치는 팬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테즈카를 향한 기본적인 예의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해서, 술기운이 오름에 따라 오가는 말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테즈카를 중심으로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술자리의 분위기에 푹 잠긴 나도 그 자리에서 적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뒤풀이 자리에서 테즈카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하여 내가 힘주어 말한 것은 세 가지 층위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한 개인의 역사, 예술가가 몸담고 있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역사 그리고 예술가와 장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역사. 나는 그 어떤 예술가와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든 하여튼 예술에 관한 것을 논하는 데 있어 역사를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역사 공부는 필수이므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데즈카와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자리에서 세 가지 층위의 역사를 힘주어 말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실 뒤풀이 자리에서는 테즈카의 작품에 관한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조금은 딱딱한 말들이 오고 가기도 했다. 고성이 오가거나 서로에게 앙금이 남을 정도로 거친 말들이 오고 간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기에 때로는 분위기가 과열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말이 오갔던 순간은 단연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주제로 올랐을 때였다.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을 때, 그 자리는 이 만화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이 만화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소수의 사람들로 양분되었고,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서는 서로의 거리가 꽤나 벌어져 있기도 했다. 나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 자리에서도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테즈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에서 받은 감동을 피력하면서 그의 '평화주의'를 별다른 유보 없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의 말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을 때 이 만화를 그해의 만화로 선정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해의 책으로 선정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지만,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아직은 정리를 하지 못한 생각이어서 지금 무어라 발언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앞서 말한 뒤풀이 자리에서도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이야기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테즈카의 '평화주의'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머뭇거리고는 한다. 왜냐하면 테즈카의 '평화주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전후 책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한 결과인 것인지, 아니면 전후 책임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는 별 관계없이 전쟁 일반에 관한 반대에서 멈추어 버린 일본의 여러 '평화주의자'와 이른바 '올드 리버럴'이 반복한 오류를 반복한 결과물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다고 이러한 머뭇거림을 여기에서 확정지으려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면 테즈카와 일본현대사에 관한 사회문화사적인 공부가 나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다만, 테즈카는 1928년에 태어났으며 중일전쟁으로부터 계산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전쟁 시기에 보냈음을 생각해본다면,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두고 테즈카의 '평화주의'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을 포함하는 일본현대사에 관한 이해를 배경으로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만화가로서의 데즈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하여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 테즈카를 잘 아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본 서브컬처를 향한 애정을 품고 있는 한 명의 팬으로서,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그의 만화에 관하여 약간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앞서 말한 뒤풀이에서 했던 말을 조금 보완하여 남기는 글이 될 것이고, 일본 서브컬처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전후戰後민주주의론을 펼친 비평가인 오쓰카의 두 권의 책인 [아톰의 명제: 테즈카 오사무와 전후 만화의 주제アトムの命題: 手塚治虫と戦後まんがの主題]와 사사키바라 고ササキバラゴウ와 함께 쓴 [망가&amp;nbsp;· 아니메: 아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까지]를, 이 중에서도 특별히 [망가&amp;nbsp;· 아니메]를 길잡이 삼아 남기는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만화에 관한 글이 될 것이다. 뒤풀이에서 했던 말뿐만 아니라 오쓰카의 논의에 기대어 글을 남기려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본현대사와 서브컬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오쓰카의 테즈카 만화 비평을 언급한 것이 뒤풀이 자리에서 테즈카의&amp;nbsp;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게 만든 도화선이 되었으나 정작 오쓰카의 논의에 관해서는 간략하게라도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고, 둘째 오쓰카는 서브컬처를 비평하는 데 있어 역사적인 맥락을 참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비평가이기 때문에 역사와 서브컬처를 연결하여 생각하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한 비평가이기도 하며, 셋째 테즈카의 만화를 비평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의 전쟁 체험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오쓰카의 비평은 테즈카의 전쟁 체험과 만화를 생각하려는 사람에게는 최적의 비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운 나쁘게도 내가 위에 언급한 오쓰카의 책 두 권을 읽기는 했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인적으로 필요할 일이 있어서 [망가&amp;nbsp;· 아니메]의 일본어 원서인 [교양으로의 '망가&amp;nbsp;· 아니메'教養としての&amp;lt;まんが・アニメ&amp;gt;]에서 만화 컷을 오래 전에 스캔한 것이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곁에 책이 있는 것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쓰카는 저 두 권의 책에서 테즈카 이전의 일본 만화와 테즈카의 만화에 관하여 논한 다음 전후 일본 만화로 자신의 논의를 확장하는데, 전후 일본 만화로 확장된 만화에 관한 그의 논의는, 한편으로는 전후민주주의와 반전反戰에 관한 논의로 나아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그리고 아즈마 히데오吾妻ひでお 등의 작품을 매개로 테즈카 이후의 만화에서 캐릭터의 육체와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로 나아가기도 해서,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쓰카의 논의를 전반적으로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오쓰카의 저 두 권의 책에 집중하여 부분적으로라도 정리를 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고, 지금은 이 글의 관심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 시기의 테즈카의 만화에 관한 것만을 다루는 방식으로 그의 논의를 참조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테즈카는 생애 말년에 했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만화를 '기호記號'적인 것으로 정리한 적이 있다. 여기서 '기호'적이라는 것은, 만화에서의 인물을 그릴 때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 놀라는 것을 표현하기위해 눈을 비정상적으로 크고 동그랗게 그린다거나, 만화에서의 인물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 인물이 불현듯 어떤 생각을 떠올리면 머리 위에 불이 들어온 전구를 그려 넣는다거나, 만화에서의 인물이 폭탄에 맞았을 때 갈가리 찢기는 육체를 보여주기보다 인물의 머리에 회오리 문양을 그려 넣어 폭탄이 터졌음을 표시하는 등,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가리키는 일정한 '기호'를 만화를 그릴 때 만화가가 설정한 내용에 따라 조합해서 표현하는 작화 방식, 곧 특정 상황이나 감정을 표시하는 일정한 '기호'들의 패턴을 조합해서 그리는 작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기호'적인 방식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만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이나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이나 감정을 지시하는 '기호'를 이용하여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자신의 만화를 '기호'적인 것으로 정의한 테즈카는, 회화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극한으로 생략된 '기호'이자 암호에 가까운 것 또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특수 문자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만화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테즈카가 자신의 만화를 '기호'적인 것으로 정의한 것은 그 혼자만이 '기호'적인 만화를 그렸기 때문은 아니다. 타가와 스이호田河水泡 같은 테즈카 이전의 만화가의 그림도 '기호'적인 요소가 다분했고 '기호'적인 작화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이 아니더라도 만화의 장르에 따라서 '기호'적인 그림으로 그린 만화를 보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테즈카는 자신의 데생 실력에 관한 콤플렉스를 여기저기서 토로한 적이 있으며 그를 향한 여러 비판 중에는 '데생 실력이 부족한 만화가'라는 것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만화를 '기호'적인 것으로 정의할 때 이것을 그의 만화에 들어 있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극한으로 생략된 '기호'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반대로 사실적인 작화가 어울리는 만화에서조차 '기호'적인 작화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며 이것은 그리고자 하는 만화에서의 표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데 오쓰카는 이른바 '만화 기호설'로 알려졌으며 테즈카 만화의 한계로 생각되는 지점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하고 하고 있다. 왜 그는 테즈카가 한계로 생각하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오쓰카는 테즈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테즈카의 만화가 가지고 있는 '기호'적인 측면이 '만화의 신'으로 불리면서도 데생 실력에 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한 만화가에게 한계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쓰카는 '만화기호설'과 관련하여 테즈카의 만화를 논하기 위해 그의 데뷔작인 [마아 짱의 일기장マアチャンの日記帳](1946)보다도 더 이전에 그린 작품인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 시기의 습작 만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즈카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즐겨 그렸고 전쟁 시기에 그린 만화의 양도 상당하다. 그 중에는 그의 동생인 테즈카 미나코手塚美奈子가 말한 것처럼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것도 있지만, 전쟁 시기를 무사히 넘겨 테즈카에 관한 중요한 연구 자료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테즈카는 그의 나이 이제 막 10대가 되었던 1930년대 말에 백화점에서 판매하던 당대 서구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필름을 구입하여 집에서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이 심화되어 중고등학생들도 학교에 출석하는 대신 근로 동원으로 노동현장에 나가는 정책이 시행되자 1944년부터는 군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테즈카는 근로 동원으로 차출되어 공장에서 일을 하던 시기에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편의 습작 만화를 그리는 데 이 습작 만화 중에는 데뷔 이전에 연습 삼아 그린 작품이라거나 만화를 좋아하는 어린 소년이 심심풀이로 그렸다고 넘겨버리기에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만화가 들어 있다. 그래서 테즈카 만화의 기원을 생각하는 데 있어 이 시기의 습작 만화는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습작 만화 중에는 전쟁과 관련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미완성 중편 만화가 있다. 그것은 1945년 6월경에 그린 [승리의 날까지勝利の日まで]라는 만화로 오쓰카는 테즈카의 다른 습작 만화보다도 이 만화에 주목한다.&lt;/SPAN&gt;&lt;br /&gt;
&lt;br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7.uf.tistory.com/image/120613354EF94DB5021B5C&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cfile7.uf@120613354EF94DB5021B5C.jpg&quot; height=&quot;354&quot; width=&quot;27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artFragmen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승리의 날까지]는 60여 편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 옴니버스 형태의 개그만화로 이 만화에는 미국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인 1941년 이전부터 인기 있었던 코믹 캐릭터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런데 [승리의 날까지]는 의미심장하게도 두 종류의 작화기술로 그렸다(앞으로 이 글에서 만화의 컷을 직접 인용하면서 출전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앞서 말한 [망가&amp;nbsp;· 아니메]의 일본어 원서에서 오쓰카가 [승리의 날까지]에 있는 만화를 인용한 것을 가져온 것이다). 하나는 만화에서의 캐릭터와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승리의 날까지]에서의 캐릭터는 대체로 공간적 깊이가 없는, 다시 말해 원근법이 부재한 배경에 '기호'적인 방식으로 그려져서 전쟁을 사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가상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위에 보이는 만화 [그림 8]은 꿈에서 후쿠 짱이라는 캐릭터가 뉴욕을 공습한다는 내용을 만화로 그린 것이다. 만화를 보면 첫 번째 컷에서 후쿠 짱의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폭탄이 터지면 그 사람은 갈가리 찢겨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폭탄이 터진 컷 다음에 이어지는 컷을 보면 우리는 이 만화에서 후쿠 짱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며 그저 재가 묻어서 얼굴이 검게 그을렸을 뿐임을 알 수 있다. 테즈카는 이 만화에서 '얼굴이 검게 그을렸으며 재가 묻어 있다'는 '기호'적인 방식으로 폭탄의 폭발과 후쿠 짱을 연결하고 있다(이러한 표현은 앞서 '만화 기호설'과 관련하여 말한 것처럼 테즈카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그 이전의 일본 만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테즈카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것이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폭탄이 터져서 후쿠 짱에게 충격이 있었음을 그의 육체가 다치거나 부서지는 것으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폭발이 있었음을 지시하는 '기호'를 얼굴에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할 때, 그것은 후쿠 짱이라는 캐릭터가 다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나 더 나아가 죽지 않는 캐릭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쿠 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날까지]에서 '기호'적으로 표현된 다른 캐릭터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반면에 테즈카는 [승리의 날까지]에 있는 만화 중 미국에 의한 공습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만화는 '기호'적이라기보다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amp;nbsp;아래 보이는 [그림 3-5]는 미군의 일본 공습을 그린 만화인데 보이는 것처럼 이 만화는 세 개의 컷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눈에 보아도 앞서 말한 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는 물론이거니와 구도도 제대로 갖춘 그림임을 알 수 있는데, 같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미군의 공습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만화는 그 상황 자체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24.uf.tistory.com/image/1358173B4EF951B318427A&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cfile24.uf@1358173B4EF951B318427A.jpg&quot; height=&quot;572&quot; width=&quot;27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실제의 전쟁은 앞서 살펴본 테즈카의 만화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에 따라 '기호'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을 구분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전쟁을, 그 전쟁이 벌어진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는 입장이라면 '기호'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곧바로 파괴와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앞에서 총탄이 날아다니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배경으로 만화를 그리는 데 있어 '기호'적인 작화에 의지한다면 전쟁이 가지고 오는 참혹한 현실로 인한 일정한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호'적인 육체와 부서지는 육체 사이에서의 괴리감 또는 '기호'적인 현실과 부서지는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 테즈카는 이러한 괴리감을 의식하지 못한 것일까? 소년 테즈카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기호'적인 육체를 가진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가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승리의 날까지]에 있는 또 다른 만화인 [기관총 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lt;/SPAN&gt;&lt;br /&gt;
&lt;br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8.uf.tistory.com/image/190B9D394EF9524A257238&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勝利の日まで](3).jpg&quot; height=&quot;691&quot; width=&quot;27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위에 보이는 [기관총 연사]의 [그림 9-11]까지는 공습을 피하려 학생들과 함께 방공호에 숨은 교사가 전투기의 파공음으로 과연 몇 대의 전투기가 하늘에 떠 있는지를 맞추어보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내고, 그 과제에 관한 답을 내기 위해 방공호에서 전투기가 몇 대인지를 세기 시작한 돈기치라는 소년이 전투기의 대수를 더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아예 방공호 밖으로 나갔다가 폭탄을 맞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돈기치는 폭탄에 맞아 그 충격으로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폭탄이 몇 킬로그램인지에 관심을 둘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그림 11]의 첫 번째 컷의 대사는 전투기의 대수를 세는 것이고, 두 번째 컷의 대사는 자신이 맞은 폭탄이 몇 킬로그램인지를 교사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림 9-10]의 대사도 모두 전투기 수를 세는 내용이다), 폭탄이 터졌음을 지시하기 위해 돈기치의 머리에 회오리 모양의 '기호'를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캐릭터의 '기호'적인 육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는 다치거나 죽지 않는 것이다.&lt;/SPAN&gt;&lt;br /&gt;
&lt;br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30.uf.tistory.com/image/141FA1344EF952DF2D1537&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勝利の日まで](4).jpg&quot; height=&quot;706&quot; width=&quot;27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만화는 계속 이어진다. [그림 12]는 돈기치가 미군 전투기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연사를 필사적으로 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놀랍게도 그에게 기관총 연사를 가하는 미군 전투기의 조종사는 미키마우스이다!).&amp;nbsp; 세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의 작화는 원근법은 물론이거니와 컷의 분할은 정확하게 영화에서의 편집처럼 되어있어서, 테즈카의 만화에서 혁신적인 영상기법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되는 [신 보물섬](1947)보다도 2년이나 앞선 장면 연출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같은 만화의 앞선 장면에서 폭탄에 맞는 돈기치와는 다르게 이 부분에서의 상황 묘사는 매우 긴박하게 보이게끔 연출되었는데, 하늘에서 퍼부어대는 공격을 결사적으로 피해보려 하지만 이어지는 [그림 13]에서 볼 수 있듯 결국에는 미키마우스가 쏘아대는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만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데 이번에는 총탄에 맞은 캐릭터가 피를 흘리고 상처가 난 곳을 손으로 막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테즈카는 총탄이 쏘아졌음을 지시하는 '기호'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지 않고 육체의 변화 그 자체로 피가 나는 것을 직접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총 연사]의 마지막 컷은 '기호'적인 육체와 '부서지고 피 흘릴 수 있는' 육체가 같은 만화의 컷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표현된 것을 보여준다. 오쓰카는 이것을 가리켜 테즈카의 만화에 '기호'적인 세계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들어와 그의 만화에서 비로소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테즈카 이전의 만화가들이 현실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오쓰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을 어떻게 감각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테즈카 이전의 만화가들도 현실을 그렸지만, 그들은 현실을 리얼하게 그린다는 자각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타지 만화나 코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개그 만화뿐만 아니라 그 어떤 판타지적 설정이나 코믹한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은 채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실을 토대로 그리는 만화들, 이를테면 신문에 실리는 만화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육체는 리얼리티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테즈카는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전쟁 시기의 다른 만화가들과는 다른 감각을 보이고 있다. 테즈카는 '기호'적인 육체로 표현된 캐릭터에 전투기에서 쏘아대는 총탄을 맞고 부서지고 피 흘릴 수도 있는 육체를 부여함으로써 만화에서의 인물이 '죽을 수 있는' 방식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기존의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만화적 감각을 열어놓고 있다. 인물의 육체가 가상적인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가진 것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승리의 날까지]에서 볼 수 있는 전쟁 묘사의 일부는 데즈카의 실제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근로 동원에 차출되어 군수 공장에서 일을 할 때 그는 미군의 폭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으며, 그의 회고에 의하면 바로 옆에 소이탄이 떨어져 폭발한 적도 있었다. [기관총 연사]에서 돈기치가 폭탄에 맞는 상황은 그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폭탄에 맞아 죽는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을 만화에서의 캐릭터를 그리는 데 있어 '기호'적인 작화를 이용하여 폭탄에 맞아도 끄떡없는 육체로 표현했을 때, [승리의 날까지]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만화를 통하여 거부하겠다는 테즈카의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만화의 제목이 &quot;승리의 날까지&quot;임을 생각해본다면 이 만화에는 '기호'적인 육체를 갖고 있는 캐릭터로 미군의 공습이라는 현실에 저항하려는 &quot;애국 소년&quot;(이 표현은 테즈카 오사무의 동생인 테즈카 미나코가 전쟁 시기의 자기 오빠를 회고하며 쓴 것이다)의 의지가 들어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은 소년 테즈카로 하여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기호'적인 가상으로 끝까지 받아 넘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quot;죽을 수 있는 육체&quot;를 만화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를 몰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오쓰카는 소년 테즈카가 자신이 그려야 할 만화의 대상으로 전쟁이라는 '현실'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테즈카 만화의 진정한 탄생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전후 일본 만화의 탄생을 보고 있기도 하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읽기</category>
			<category>[기관총 연사]</category>
			<category>[망가 · 아니메]</category>
			<category>[승리의 날까지]</category>
			<category>만화</category>
			<category>아시아 · 태평양전쟁</category>
			<category>오쓰카 에이지</category>
			<category>테즈카 오사무</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guid>http://muhanhan.tistory.com/427</guid>
			<comments>http://muhanhan.tistory.com/427#entry427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Dec 2011 14:36:03 +0900</pubDate>
		</item>
		<item>
			<title>휴가 이후와 송년회.</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26</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FRAME height=369 src=&quot;http://www.youtube.com/embed/WbL2AL0elhA&quot; frameBorder=0 width=600 allowfullscreen&gt;&lt;/IFRAME&gt;&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Samuel Barber, [Knoxville: Summer of 1915], 1947.&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Soprano, Dawn Upshaw, Orchestra of St. Luke's, David Zinman, 1989.&lt;/SPAN&gt;&lt;br /&gt;
&lt;br /&gt;&lt;br /&gt;
&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휴가를 보내고 났더니, 어느 새 12월 중순을 넘어 하순이 다 되었다. 휴가가 이번 달 초로 결정되었을 때, 휴가를 연말에 보내게 되어서 이번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그러나 꼭 휴가만으로 이번 연말이 다른 해의 연말에 비해 빨리 지나 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몇 주 전에 있었던 애니메이션 동호회 뒤풀이 자리에서 받은 어떤 제안에 관한 답을 애매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완곡하게 거절을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으나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완곡하게 수락하는 의미로 받아들인 나의 확실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애니메이션 동호회와 연관된 일로 연말의 남은 날들을 바쁘게 보내게 될 것 같다. 물론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몇 개의 예술 장르와 일본현대사를 연결하여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 질 것 같으니 일단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하는 일이 예술/문화/역사와 무관하다보니, 저런 방면으로 무언가 준비를 하려고 할 때면 효율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잠을 줄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나 지금도 피곤해서 잇몸 안쪽이 갈라지고 터지고 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왕에 함께 이야기 해 보기로 한 거,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읽은 것도 있고 하니까 부담을 크게 느낄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와 테사 모리스-스즈키テッサモーリス-スズキ 등이 책임 편집을 맡아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에서 나온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 시리즈'에서 몇 권을 참고할 만한 시간이 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5번째 권에 해당하는 [아시아&amp;nbsp;· 태평양전쟁(5): 전장의 제상アジア・太平洋戦争(5): 戦場の諸相]을 통독할 시간이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이전에 발췌독을 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통독하리라 생각하고 있던 책이니 이번 기회에 무리를 해서라도 다 읽어보기로 할까? 하여튼 열심히 준비하되 너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임해 보아야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오늘은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의 송년회가 있는 날이다. 바쁘고 피곤하지만 이런 자리를 안 나갈 수는 없다. 저녁에 있을 송년회에서 나의 목표는 정다운 이야기는 많이 나누고, 술은 많이 마시지 않는 것. 날도 추운데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살기</category>
			<category>Dawn Upshaw</category>
			<category>Samuel Barber</category>
			<category>[Knoxville: Summer of 1915]</category>
			<category>바쁨</category>
			<category>송년회</category>
			<category>친구</category>
			<category>휴가 이후</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guid>http://muhanhan.tistory.com/426</guid>
			<comments>http://muhanhan.tistory.com/426#entry426comment</comments>
			<pubDate>Mon, 19 Dec 2011 16:24: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관객들의 선택'과 휴가.</title>
			<link>http://muhanhan.tistory.com/425</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 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uf.tistory.com/image/16161E484ED5B9351D1B8B&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20111117_mc.jpg&quot; height=&quot;1571&quot; width=&quot;640&quot;/&gt;&lt;/div&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
&lt;!--StartFragment--&gt;&lt;!--StartFragment--&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내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으로 상영할 영화가 결정되었다. '관객들의 선택'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기 전에 실시하는 투표를 통해 관객들에게 최다 득표를 얻는 영화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섹션으로 이번에는 최다 득표를 얻은 영화가 동표로 두 편이 나왔기에 상영하게 될 영화도 두 편이 선정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와 장-마리 스트라우브Jean-Marie Straub와 다니엘 위예Daniele Huillet의 [화해불가](1965). 나는 이 두 편의 영화가 선정됐다는 것이 진심으로 기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는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두 번을 보았지만, 모두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항상 챙겨 보는 나로서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고는 했는데, 특히나 작년에 썼던 [삶의 감각](2)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잠 못 이루는 밤에 [용서받지 못한 자]를 다시 보고 맛이 간 적이 있기도 해서 이 영화를 꼭 한 번은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감동적인 영화. 물론 이스트우드는 21세기 들어 [미스틱 리버](2003)와 [아버지의 깃발](2006)/[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같은 그의 영화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만한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용서받지 못한 자]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보고 말 것이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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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반면에 스트라우브와 위예의 [화해불가]는 영화제에서만 본 영화이다. 나는 [화해불가]를 비롯한 이 부부의 영화를, 최근 수 년 동안의 내 상황과는 다르게 그래도 국내영화제 정도는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시절인 2004년에 광주영화제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한 몇몇 아트하우스에서만 이 부부의 영화를 보았는데, 나는 이 부부의 영화들이 국내에 DVD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스트라우브와 위예의 영화를 DVD로 내는 것이 배급업자 입장에서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아예 찾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스트라우브와 위예는 관객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엄청난 밀도의 영화를 만들었고, 이것은 [화해불가]도 마찬가지여서 이 영화의 원작인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9시 반의 당구]를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하더라도, 스트라우브와 위예의 영화를 보는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다른 분들은 훨씬 수월하게 보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미학에서의 정치 내지는 영화미학에서의 물질성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최고最高/苦의 교육이 될 만한 영화들 중 하나는 바로 스트라우브와 위예의 영화들일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화해불가]를 다시 보고 싶은데, 만일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영화를 8년 만에 다시 보는 셈이 된다. 과연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어떤 감각을 새로 배우게 될까?&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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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올해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거의 가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르지 않게 되어서 '관객들의 선택'으로 상영할 영화를 투표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겼는데, 결과를 확인해 보니 그럴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와 언제고 다시 보아야 할 영화를 모두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화해불가]가 동표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신기하게 느껴지고, (억지를 써서라도) 여기에 무언가 의미부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만큼 시네필의 입장에서 내 마음이 흐뭇하다는 것인데, 하여튼 내년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할 때에 이 두 편의 영화를 꼭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바람을 덧붙인다면 이 두 편의 영화를 보는 자리에 내 친구들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친구들과 영화를 함께 본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저 두 편의 영화를 보는 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말 그대로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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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이변이 없다면 오는 12월 첫 주에는 휴가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12월 5일 월요일부터 휴가가 시작되는 것이고, 비공식적으로는 12월 3일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일전에 썼던 포스트에서는 휴가가 밀렸다고 툴툴대면서 11월 마지막 주에 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예상보다 조금 밀렸다. 그래도 낼 수 있는 게 어딘가? 짧게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평일에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휴가 기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울에 있을 것이니 읽고, 보고, 들을 것을 생각해놓고, 몇 명의 친구들과는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할 것이다. 휴가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집에 있는 날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아침에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에는 출근한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시 어딘가에 들어가서 책을 읽거나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다가 저녁에는 퇴근한 친구와 술을 마시는 정도나 하지 않을까 싶다. 쓰고 보니 정말 별 거 없네. 그러나 이런 소소한 부분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하여튼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살기</category>
			<category>관객들의 선택</category>
			<category>서울아트시네마</category>
			<category>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ategory>
			<category>휴가</category>
			<author>무한한 연습</author>
			<guid>http://muhanhan.tistory.com/425</guid>
			<comments>http://muhanhan.tistory.com/425#entry425comment</comments>
			<pubDate>Wed, 30 Nov 2011 14:07: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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