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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멀티튜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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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7 Nov 2011 07:33: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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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멀티튜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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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가라타니 고진, &quot;정치를 말하다&quot; 발췌</title>
			<link>http://multitude.co.kr/348</link>
			<description>가라타니 고진의 &amp;lt;정치를 말하다&amp;gt; 발췌&lt;br /&gt;
&lt;br /&gt;
&lt;br /&gt;
1.&amp;nbsp;“오늘날 ‘68년’이라고 하면, 전세계 어디서든 공통된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동일시를 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그 내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구좌익 운동은 1950년대에 매카시즘으로 괴멸당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 공민권운동(흑인해방)과 베트남반전운동을 계기로 하여 좌익운동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구좌익과 관계가 없는 신좌익이었습니다.”(p. 12)&lt;br /&gt;
&lt;br /&gt;
2.&amp;nbsp;“그런데 일본의 ‘68년’에는 이런 다의성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동시성이랄까, 서양과 공통된 문제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0년의 안보투쟁은 1955년부터 시작된 고도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생긴 것입니다. 64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사이에 농업인구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전까지 일본은 절반은 농업국가였습니다. 60년 이후 대학 진학률이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대학생이 엘리트였던 시대가 없어졌습니다. 포스트-산업사회로 이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68년’은 이런 변화의 결과로 생겼던 겁니다.”(pp.16-17)&lt;br /&gt;
&lt;br /&gt;
3.&amp;nbsp;“문학에는 재능과 동시에 노동이 필요했다. 재능과 동시에,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p.24)&lt;br /&gt;
&lt;br /&gt;
4.&amp;nbsp;“프랑스의 ‘현대사상’은 어떤 의미에서 68년 5월 혁명의 좌절 때문에 문학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문학적인 것이었습니다.”(p.25)&lt;br /&gt;
&lt;br /&gt;
5.&amp;nbsp;“또한 그때까지는 계급투쟁이 중시되었고, 젠더와 소수자 등의 문제는 이차적, 부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68년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부정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와 같은 거시 정치나 권력이 중시되었는데, 미시 권력 또는 미시 정치학이라는 영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것은 68년 이후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환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거시 차원, 국가나 네이션이라는 차원을 간단하게 정리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그 한 사람은 푸코죠. 푸코는 알튀세르라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라는 개념으로부터 배웠다고 생각합니다만, 국가를 폭력장치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맑스주의자들과는 다르며, 국가가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성립한 권력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교육적 장치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은 오히려 동의에 기반한 힘(헤게모니)로서 있다고. 그래서 그는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한 권력, 보이지 않는 미시 권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거시 정치를 대신하여 미시 정치학을 강조했던 셈입니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이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투쟁의 역점이 계급투쟁에서 페미니즘, 게이, 그 밖의 소수자 문제로 이행했을 때, 이런 견해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국가에 관한 견해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도 그렇습니다만,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맞서 존재한다는 점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성립했던 것은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계속적으로 지배함으로써입니다. 공동체가 확대하여 국가로 전화하거나 그 내부에서 계급투쟁이 생겨 국가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pp.30-32)&lt;/p&gt;
&amp;nbsp;&lt;br /&gt;
6.&amp;nbsp;“즉, 한 국가가 어떤 의지를 가진 주체라는 것은 바깥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p.33)&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br /&gt;
7.&amp;nbsp;“예를 들어 ｢의미라는 병｣이라는 에세이(1972년)는 맥베스론인데, 연합적군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60년대 초부터 생각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안보투쟁 후에, ‘맑스주의는 끝났다’는 합창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이후에도 역사에 목적은 없다, 의미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80년대에는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풍미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는 그것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미라는 병｣은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종교적 원리주의가 있겠죠. 향후에도 ‘의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p.49)&lt;br /&gt;
&lt;br /&gt;
8.&amp;nbsp;“이념을 필요로 한 시대는 전혀 끝나지 않았습니다.”(p.70)&lt;br /&gt;
&lt;br /&gt;
9.&amp;nbsp;“이 시기의 ‘현대사상 붐’은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프랑스 철학의 붐입니다. 왜 그것이 유행했는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현대사상은 일종의 정치적 좌절의 표현이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관념에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가. 1968년 파리의 5월 혁명에서 화장실에 쓰여진 낙서에, ‘상상력이 권력을 잡는다’라는 슬로건이 유명해졌는데, 오히려 상상력이 권력을 잡았던 것은 5월 혁명이 패한 뒤입니다.&lt;p class=&quot;바탕글&quot;&gt;어떤 상상력인가? 문학이 아닙니다. 문학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철학이 문학에 접근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데리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중략) … 이미 전쟁 전의 하이데거가 그랬습니다. 그는 시를 철학보다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랬던 것은 나치에 참가하고 그것에 실망했던 후였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혁명은 나치 정치가 아니라 문학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이처럼 정치적 좌절·불가능성 때문에 문학으로 향하는 것은 그다지 보기 드문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 말의 힘에 빈다는 것이 됩니다. … (중략)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그러나 이것은 독일관념론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18세기 말에, 영국에는 발달한 자본주의가 있으며, 프랑스에는 정치적 부르주아 혁명이 있었지만, 독일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생겼던 것은 관념적 혁명입니다. 이것은 어중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독일 관념론은 그 이후 철학적 혁명의 모델로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칸트, 피히테, 헤겔, 맑스 등과 같은 철학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정치적 좌절과 무력감 때문에 관념론적 혁명으로 향하는 예는 다름 아닌 일본에도 있습니다. 교토학파가 그렇습니다. … (중략)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사실 프랑스에서는 전후에, 독일의 하이데거를 도입함과 더불어 독일 관념론을 도입했습니다. 독일은 전쟁에 졌지만 철학적으로는 전후 프랑스를 점령했던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의 언어와 스타일이 기존의 프랑스적인 철학·문학(발레리로 대표되는)을 대신했습니다. 일본에 들어왔던 프랑스의 ‘현대사상’은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의외로 일본의 과거의 담론과 친화성이 있습니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어쨌든 이런 사상이 유행할 때에는, 현실의 정치적 좌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근본에는 무력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소 냉전 구조 속에서는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이 없다. 때문에 그것을 사변적인 상상력에서 찾게 된다. 그 때문에 철학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문학적인 것이 됩니다. 일본에서도 70년대 이후,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가 우위에 섰던 것은 그 때문이죠.”(pp. 58-60)&lt;/p&gt;
&lt;br /&gt;
10.&amp;nbsp;“그래서 91년에 소련이 현실에서 붕괴하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은 오히려 소련의 존재에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소련의 붕괴로 구좌익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은 신좌익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때까지 신좌익은 소련이나 구좌익을 비판하면 되었다.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이라든가, 관념적 논의를 하면 되었다. 즉, 신좌익은 소련 또는 구좌익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것이 붕괴할 것 같지 않았기에 편했다. 그것을 비판하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 붕괴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lt;br /&gt;
80년대에 풍미했던 ‘현대사상’이 급격하게 리얼리티를 잃었던 것도 그 때문이죠. 예를 들어 데리다는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또는 이항대립의 탈구축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서양의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웅대한 물음처럼 보입니다만, 이것이 리얼리티를 가졌던 것은 현실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라는 이항대립, 즉 냉전구조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pp. 65-66)&lt;br /&gt;
&lt;br /&gt;
11. &amp;nbsp;“저는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는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지향하는가)?”(p. 71)&lt;br /&gt;
&lt;br /&gt;
12. &lt;font class=&quot;Apple-style-span&quot; color=&quot;#c8056a&quot;&gt;&lt;b&gt;&amp;nbsp;“대학의 민영화라는 것은 실제로는 국영화입니다. 그때까지의 대학은 국립이면서도 실제로는 문부성에서 독립했습니다. 즉, 중간세력이었습니다. 민영화에 의해 이러한 자치가 박탈당했습니다. 사립대학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국가의 재정적 원조의 증대와 더불어, 국가에 의한 통제가 강화되었던 것입니다.”(p. 82)&lt;/b&gt;&lt;/font&gt;&lt;br /&gt;
&lt;br /&gt;
13. &amp;nbsp;“근대의 주권국가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소수의 대국(大国)에만 들어맞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다른 국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국가는 존속하기 위해서라면 연합이나 종속을 마다하지 않습니다.”(p. 129)&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 /&gt;
14. &amp;nbsp;“공동체로부터 일단 분리된/벗어난 개인이 아니라면 타자와 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고립의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다만, 그런 생각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던 것은 1990년대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당시까지 있었던 다양한 공동체, 중간단체와 같은 것이 일제히 해체되거나 송두리째 뿌리뽑혔기 때문입니다. … (중략)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개인이라는 것은 일정한 집단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사태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집단인가가 중요합니다.”(pp. 145-146)&lt;/p&gt;
&lt;br /&gt;
15. 역사의 120년 주기설 도표.&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근대세계체제의 역사적 단계’ 또는 ‘세계자본주의의 단계들’&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collapse;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gt;
&lt;tbody&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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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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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바탕글&quot;&gt;1810&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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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바탕글&quot;&gt;1870&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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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바탕글&quot;&gt;1930&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1930~&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1990&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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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세계자본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후기중상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자유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제국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후기자본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신자유주의&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헤게모니국가&lt;/p&gt;
&lt;/td&gt;
&lt;td colspan=&quot;2&quot; style=&quot;width:139.84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영국&lt;/p&gt;
&lt;/td&gt;
&lt;td colspan=&quot;3&quot; style=&quot;width:209.76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미국&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경향&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제국주의적&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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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제국주의적&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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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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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자본&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상인자본&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산업자본&lt;/p&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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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국가독점자본&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다국적자본&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세계상품&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섬유산업&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경공업&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중공업&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내구소비재&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정보&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국가&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절대주의왕권&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국민국가&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제국주의&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복지국가&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지역주의&lt;/p&gt;
&lt;/td&gt;
&lt;/tr&gt;
&lt;tr&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none;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789&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프랑스혁명&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795&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칸트 영구평화를 위해&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848&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917&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러시아혁명&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920&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국제연맹&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solid #000000 0.28pt;&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1968 &lt;/p&gt;
&lt;/td&gt;
&lt;td style=&quot;width:69.92pt;height:2.82pt;padding:-0.01pt -0.01pt -0.01pt -0.01pt;border-top:solid #000000 0.28pt;border-left:solid #000000 0.28pt;border-bottom:solid #000000 0.28pt;border-right:none;&quot; valign=&quot;center&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p&gt;
&lt;/td&gt;
&lt;/tr&gt;
&lt;/tbody&gt;&lt;/table&gt;
&lt;br /&gt;
16.&amp;nbsp;“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개별사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것과 같은 것을, 몽테스키외에게서 빌려 중간세력이라고 불렀습니다. … (중략) … 그는 서양에서 ‘학문의 자유’라는 전통을 만들었던 것은 진보파가 아니라 오래된 세력, 중간세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국가가 교육의 권리를 장악하는 것에 교회가 저항했기 때문에, 학문의 자유가 성립했다. … (중략) …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화 속도의 비밀은 봉건적=신분적 중간세력의 저항이 천박하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중간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개인도 약합니다. 1990년대에 일본 속의 중간세력, 중간단체가 소멸했습니다. 국노(国労), 창가학회, 부락해방동맹 …. 교수회 자치를 가졌던 대학도 그렇습니다. 이런 중간세력은 어떻게 으깨진 것인가? 미디어의 캠페인에서 일제히 비난받았던 것입니다. 봉건적이고 불합리하며 비효율적이다, 이것으로는 해외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pp. 148-149)&lt;br /&gt;
&lt;br /&gt;
&lt;br /&gt;
17.&amp;nbsp;“일본에서 중간세력이 거의 소멸했던 것은 2000년입니다. 그래서 고이즈미 정권이 나온 것입니다. 더 이상 적은 없다. 그는 중간세력의 잔당을 ‘수구세력’이라고 부르며 일소했던 것입니다. 몽테스키외가 중간세력이 없는 세계는 전제국가가 된다는 것을 언급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전제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그 한 가지 예가 일본에는 시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 (중략) … 주권자인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대의제에서 국민은 이른바 ‘지지율’이라는 형태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통계학적으로 처리되는 ‘유령’적 존재이다. … (중략) … 대의제가 귀족정이라는 것은 오늘날,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정치가의 유력자는 2세, 3세, 또는 4세입니다. 그들은 각 지방의 영주와 같은 것입니다. … (중략) … 현재의 일본은 국가관료와 자본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제국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의제 이외의 정치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죠. … (중략) … 민주주의는 의회에서가 아니라 의회 밖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시위와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pp. 150~152)&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lt;br /&gt;
18.&amp;nbsp;“어소시에이션의 전통이 있는 곳에서는, 인터넷은 그것을 조장하는 것처럼 기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같은 곳에서는, 인터넷은 ‘원자화하는 개인’의 유형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 (중략) … 일단, 시위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어소시에이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옛날, 시위가 있었던 것은 결국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죠. … (중략) … 그래서 어소시에이션을 창출하는 것, 그것이 특히 일본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단독자)는 그 속에서 단련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창출되면 좋습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죠. 부족이 강하고 종파가 강하다. 에스닉 조직도 강하다. 거꾸로 일본에서는 좀 더 ‘사회’를 강하게 할 필요가 있죠.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p. 155-157)
&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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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닥치는 대로 읽기</category>
			<category>가라타니</category>
			<category>가라타니 고진</category>
			<category>고진</category>
			<category>정치를 말하다</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guid>http://multitude.co.kr/348</guid>
			<comments>http://multitude.co.kr/348#entry348comment</comments>
			<pubDate>Sun, 27 Nov 2011 07:33: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조르조 아감벤, &lt;운동&gt;</title>
			<link>http://multitude.co.kr/347</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margin-left:29.9pt;&quot;&gt;* 출  처 :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agamben3.htm&lt;br /&gt;
* 원래 &amp;lt;자율평론&amp;gt;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지금 자율평론의 경우 웹상에서 이 글을 확인할 수 없고 다운로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시 수록한다. 원래 교정을 거쳐야 하지만, 나중으로 미룬다. 중요한 글이라서 올리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font-size:20.0pt;&quot;&gt;운동&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나의 성찰은 &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quot;&gt;불편한 마음&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malaise&lt;/span&gt;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내가 얼마 전에 베니스에서 또니 네그리, 카사리니 등과 만나는 동안에 내게 제기되었던 일련의 질문들을 따르고 있다. 이 모임에서 제기되었던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단어는 우리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니 네그리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책에서도 이 단어는 다중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때마다 매번 전략적으로 노출된다. 가령 다중 개념이 주권과 아나키라는 그릇된 선택지와는 분리되어야 할 때 그렇다. 내가 가진 불편한 마음은 이 단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이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생겨났다. 나 자신도 이에 관해 정의할 수 없었다. 과거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내 사고 관행의 암묵적인 규칙rule으로 사용했었다. 즉 ‘운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없으며, 운동이 거기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있다’는 공식을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운동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이지만 그 누구도 정의하지 않았던 단어이다. 가령, 이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왜 정치적이고 결정적인 심급instance이 운동이라고 불리는가? 내 물음은 이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이 개념이 우리의 비사유이기 때문에 운동에 관해 사고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게 되면 이는 우리의 선택과 전략들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그저 용어가 사유의 시적이고 따라서 생산적인 계기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문헌학적인 양심의 가책scruple만도 아니고, 또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내 일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이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정말로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많은 패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단어를 정의하려는 연구를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따라서 나도 미래의 연구에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서 몇 가지 기초적인 고려사항을 가지고 이를 시작하고자 할 것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우선 몇 가지 진부한 역사적 자료들. 과학과 철학에서 운동 개념은 오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정치학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전문적으로technically 적절한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가 처음 출현했던 날짜 중 하나는 1830년의 프랑스 6월 혁명으로 소급되는데, 이 당시 변화의 행위자들은 스스로를 &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quot;&gt;운동의 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partie du mouvement&lt;/span&gt;이라고 부른 반면 상대방을 &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quot;&gt;질서의 편&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partie du l&#039;ordre&lt;/span&gt;이라고 불렀다. 맑스와 슈미트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던 저자인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과 더불어서만 이 개념은 보다 정확하게 정의되었으며, 이 개념의 전략적인 적용 영역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회운동사』&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The History of Social Movement in France&lt;/span&gt;(1850)에서 그는 운동 개념을 국가 개념에 대한 변증법적인 대척점contrapposition으로 설정한다. 국가는 정적이고 법적인 요소인 반면, 운동은 사회의 역동적 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항상 사회적이며, 국가에 대해 반목하며, 또 법적-국가적 제도보다는 사회의 역동적 선차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폰 슈타인은 운동에 관해 정의하지 않는다. 즉 그는 운동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그것의 기능을 가리킬 뿐, 정의를 제시하지도 않고 이를 위한 자리topos도 제공하지 않는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line-height:120%;layout-grid-mode:char;margin-bottom:4.0pt;&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운동의 역사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역사적 지적indication은 전체주의에 관한 아렌트의 책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녀는 운동에 관해 정의하지 않았지만, 1차 대전 무렵, 그 직전과 그 직후에, 유럽의 운동이 정당들과 전략적인 대척점 속에서 예외적인 발전을 겪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당이 위기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말이다. 이 시기에는 운동 개념 및 운동 현상의 폭발이 있었으며, 이 용어는 우파와 좌파 모두가 사용했다. 즉 파시즘과 나치즘은 항상 자신들을 무엇보다 먼저 운동으로 정의했고 그 다음에서야 자신들을 정당들로 정의했던 것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하지만 이 용어는 정치의 영역을 초과한다. 프로이트가 1914년에, 그 자신이 그것의 일부이기도 한 것을 서술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을 때, 그는 이를 정신분석적 운동이라고 불렀다. 여기에도 여전히 정의는 없지만, 분명히 어떤 역사적 순간들에서, 어떤 암호명들이 그들 자신에게 거스를 수 없이 부과되며,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않은 채 이를 채택하게 되었다. 내 연구의 당황스러운 지점은, 개념에 대한 맹목이 가시적으로 되는 곳에서, 이 용어를 정의하고자 했던 유일한 사람이 어떤 나치 법학자였다는 점을 내가 깨달았을 때이다. 그가 바로 칼 슈미트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1933년, 『정치적 통일성의 삼분할』&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The Tripartition of Political Unity&lt;/span&gt;이라는 부제가 붙은 『국가, 운동, 인민』&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State, Movement, People&lt;/span&gt;이라는 어떤 논문에서 그는 운동 개념의 정치적이고 헌법적인constitutional 기능을 정의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당황스러운 까닭은 이 글에서 슈미트가 나치 제국의 헌법 구조를 정의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나치즘의 사상가와 이렇게 불장난promiscuity을 치는 것은 명료함을 요구한다고 전제하면서, 그의 테제를 요약해 보겠다. 슈미트에 따르면 나치 제국의 정치적 통일성은 세 가지 요소나 성분member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 운동, 그리고 인민이다. 제국의 헌법적 분절articulation은 이 세 가지 요소들의 분절과 구별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요소는 국가인데, 이는 정적인 정치적 측면이다. 즉 관공서의 장치들이다. 다른 한편 인민은, 잘 들어두길 바라는데, 운동의 그림자와 보호 하에서 자라나는 &lt;span style=&quot;font-weight:bold;&quot;&gt;비정치적인&lt;/span&gt; 요소이다. 실제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역동적인 정치적 요소는 운동인데, [슈미트에게] 운동의 특정한 형태는 국가사회주의당 및 이 당이 지닌 방향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슈미트에게 총통Fuhrer은 운동의 인격화일 뿐이다. 슈미트는 이러한 삼분할이 소비에트 국가의 헌법적 장치에서도 현전한다고 주장한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내가 첫 번째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운동 개념의 선차성이 인민의 비정치적이-되기라는 기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인민이 운동의 그림자와 보호 하에서 자라나는 비정치적인 요소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운동은 정치체로서의 인민에 관한 민주주의적 개념이 쇠퇴하고 있을 때 결정적인 정치적 개념이 된다. 민주주의는 운동이 출현할 때 끝난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운동들이란 없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말로, 인민을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체로 간주했다는 것을 가리키고자 했다면 말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좌파의 혁명적 전통은 나치즘 및 파시즘과 일치한다. 새로운 정치체를 사고하고자 하는 현대 사상가들, 가령 또니 네그리 같은 사람들이 인민과 거리를 두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주변에는 결코 (인민에 대한 전문적인technical 용어인) 라오스laos나 데모스demos가 없었으며, 오로지 오클로스oclos(대중, 트루바truba, 다중)만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운동 개념은 구성적인constitutive 정치체로서의 인민 개념의 몰락을 전제한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이러한 슈미트적 운동 개념이 지닌 두 번째 함의는 인민이 비정치적인 요소라는 것으로, 운동은 이들의 성장을 보호해야만 하며 지속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wachsen&lt;/span&gt;이라는 용어, 즉 생물학적인 성장을 뜻하는 용어를 쓴다.) 이러한 비정치적 인민에 일치하는 것은 행정의 비정치적 영역이며, 그는 또한 파시즘의 코포라티즘적 상태state를 주창했다. 오늘날 이를 살펴보면, 우리는―인민을 비정치적이라고 이렇게 결정화하는 것에―슈미트가 감히 분절하지 못했던 것, 즉 이것이 지닌 삶정치적인 성격에 관한 암묵적인 인식을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민은 구성적인 정치체에서 주민[인구]으로 바뀌었다. 즉 비정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구학적인 생물학적 실체entity로 바뀐 것이다. 보호하기 위한 실체, 양육하기 위한 실체. 19세기 동안 인민이 더 이상 정치적인 실체가 아니게 되었을 때, 또 인민이 인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주민[인구]로 바뀌었을 때, 운동은 필연성이 되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는 인민이 주민[인구]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확고한 사실로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인민은 푸코의 의미에서는 삶정치적 실체이며, 그리하여 이것은 운동 개념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또니 네그리가 그렇게 하고 있듯이, 우리가 삶정치 개념을 다르게 사고하길 원한다면, 또 우리가 이미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따라서 운동을 통해서 정치화될 필요가 없는 삶정치적인 것의 고유한intrinsic 정치화에 관해 사고한다면, 우리는 운동 개념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정의를 내리는 이러한 작업은 필수적인데, 이는 우리가 슈미트를 읽고 있을 때에도 위협적인 아포리아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즉 결정적인 정치적 요소, 자율적 요소는 운동이고 인민은 비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운동은 인민의 비정치적 신체에 인민의 정치화를 허용하는 내적인 유예[중지]caesura를 부여함으로써만 자신의 정치적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슈미트에게 이러한 유예는 그가 종의 동일성이라고 불렀던 것, 즉 인종주의이다. 여기에서 슈미트는 인종주의와의 최고도의 동일화에, 나치즘과의 가장 거대한 일치에 도달한다. 이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선택, 즉 인민이라는 비정치적 신체에서 유예를 명확하게 해야만 했던 이러한 선택이 그의 운동 기능 개념이 지닌 즉각적인 결과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운동이 자율적 실체로서의 정치적 요소라고 한다면, 운동의 정치적 형태는 어디에서 끌어올 수 있을까? 그 정치학은 인민 내부에서 적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능력에만 정초하고 있을 뿐인데, 이는 슈미트의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extraneous 요소이다. 운동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인민을 자르고 분할하는 유예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우리가 운동 개념을, 또 이 개념이 인민 및 다중과 맺는 관계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본다. 슈미트에게서 우리는 결정되어야만 하는 것, 즉 정치적인 것이 비정치적인 것을 결정하듯이, 운동에서 배제된 요소들이 회귀한다는 점을 보게 된다.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비정치적인 것을 결정한다. 그것은 인종적일 수 있으며, 또한 오늘날에는 인구[주민]에 대한 정부의 관리일 수도 있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내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우리가 운동 개념을 계속 사용해야만 할까? 만일 운동이 가리키는 바가, 비정치적인 것이 정치화되는 문턱이라고 한다면, 내전과는 다른 운동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우리는 운동 개념 및 이것이 삶정치와 맺고 있는 관계를 어떤 방향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가?&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여기에서 나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고 싶지 않으며, 그것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연구 프로젝트일 것이지만, 하여간 그럼에도 다음과 같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운동 개념은, 가능태potenza와 현실태act의 관계에서 운동성kinesis이 그러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핵심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현실태act로의 이행이라기보다는 가능태potenza로서의 가능태potenza의 현실태라고 정의한다. 둘째, 그는 운동을 alteles, 불완전한 현실태, 목적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의 견해에 변경을 가하고 싶고, 어쩌면 또니 네그리도 이 점에 관해서는 나와 의견이 같을 것이다. 즉 운동은 가능태potenza로서의 가능태potenza의 구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운동을 다중과의 관계에 외부적이거나 자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결정이나 조직화의 주체일 수 없고, 인민이 나아갈 방향일 수 없으며, 다중이나 인민의 정치화의 요소일 수 없다.&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또 다른 흥미로운 측면은 운동이 미완의 현실태라는 것, 즉 텔로스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운동이 텔로스의 결핍privation이나 부재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운동은 항상 목적이나 에르곤ergon, 또는 텔로스와 오페라opera의 결핍, 부재와의 구축적인 관계이다. 내가 항상 또니 네그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가 생산성을 강조한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심으로서의 오페라opera의 부재를 제창해야만 한다. 이것은 정치학에서는 텔로스와 에르곤의 불가능성을 표현한다. 운동은 모든 정치학의 불명확함indefiniteness이자 불완전함이다. 그것은 항상 찌꺼기를 남겨둔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규칙으로서 인용했던 모토는 다음과 같이 존재론적으로 재정식화되어야 한다. 즉 운동은 이것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치 그것이 없다는 듯이 있는 것이자 스스로를 결여(manca a se stesso)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없는데도 마치 그것이 있었다는 듯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스스로를 초과한다. 그것은 이것이 지닌 구성적 불완전함 속에서 모든 정치학의 구성적 한계를 표식하는 초과와 결핍 사이에 있는 결정불가능성의 문턱이다. &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영역자 : 아리안나 보브Arianna Bove (http://www.globalproject.info/IMG/mp3/03_agamben.mp3)&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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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아감벤</category>
			<category>운동</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guid>http://multitude.co.kr/347</guid>
			<comments>http://multitude.co.kr/347#entry347comment</comments>
			<pubDate>Tue, 22 Nov 2011 23:38: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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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3세기에 그려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title>
			<link>http://multitude.co.kr/34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ile1.uf.tistory.com/original/1357163F4D9127522BE3E1&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ile1.uf.tistory.com/image/1357163F4D9127522BE3E1&quot; alt=&quot;&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filename=&quot;plato-and-socrates 0.jpg&quot; height=&quot;556&quot; width=&quot;405&quot;/&gt;&lt;/a&gt;&lt;/div&gt;&lt;/P&gt;&lt;br /&gt;
데리다가 옥스포드에 체재할 때 도서관에 봤던 13세기의 그림. 소크라테스가 쓰고 플라톤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Bodleian Library, University of Oxford, ms, Ashmole 304). &lt;br /&gt;
&lt;br /&gt;만일 플라톤의 책이 없었다면, 그것에 대한 &#039;주석의 역사&#039;로 간주된 서양철학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플라톤주의(니체)로 간주된 서양정신사는 어떻게 되었을까?&lt;br /&gt;
만일 플라톤의 책이, 텍스트가, 에크리튀르가 쓰여지지 않았다면?&lt;br /&gt;
아감벤도 &amp;lt;사유의 역량&amp;gt;에서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039;7번째 편지&#039;와 데리다가 이것 외에도 인용한 &#039;2번째 편지&#039;. &lt;br /&gt;
플라톤에 의한 에크리튀르(문자, 그리고 글쓰기)의 배제는 &amp;lt;플라톤의 책은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다&amp;gt;라는 부정에서 극에 달한다. 플라톤의 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플라톤의 책은 &#039;소크라테스의 것&#039;이지 않으면 안 된다!&lt;br /&gt;
플라톤이 쓰기 시작했던 것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후다. 따라서 만일 플라톤의 책이 플라톤의 책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책이라면, 그것은 처음부터 죽은 자에 의해, 또는 유령에 의해 쓰여진 책이게 된다. &#039;아버지이자 쓴 본인의 도움&#039;을 원칙적으로 얻을 수 없다면, 가장 &#039;사생아적&#039;인 에크리튀르이게 된다. 이때 서양의 철학사, 정신사는 어떻게 될까? 플라톤의 책이 플라톤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에 의해 쓰여졌다고 한다면, 그때 &amp;lt;소크라테스, 이 쓰지 못한 사람&amp;gt;이라고 쓴 니체의 서양정신사 해석은 어떻게 될까(&amp;lt;우편엽서&amp;gt;)? 소크라테스는 &#039;서양의 가장 순수한 사유가&#039;이며 &#039;바로 그렇기에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039;고 썼던 하이데거의 서양정신사 해석은 어떻게 될까?&amp;nbsp;&lt;br /&gt;
플라톤의 책에 기입된 &#039;플라톤&#039;이라는&amp;nbsp;서명, 고유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039;플라톤&#039;의 서명이 들어간 텍스트는 소크라테스(의 유령)의&amp;nbsp;목소리를 빌려 플라톤이 썼던 책인가, 플라톤의 손을 빌려 소크라테스(의 유령)이 쓴 책인가? 그리고 플라톤은 자신의 사유에 의해서 스스로 그 존재를 전면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을 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amp;nbsp;&lt;br /&gt;
플라톤은 많은 책을 쓰고, 그것을&amp;nbsp;썼다는 것을 부인하기 위해 또한 편지=문자(lettre)를 쓰고, 그리고 그 편지를 &#039;불태워버릴 것&#039;을 요구한다(&amp;lt;두번째 편지&amp;gt;). 파르마콘으로서의 에크리튀르는 파르마코스의 사체와 마찬가지로 소각되어야만 한다. 사체나 에크리튀르가 소각된 후에는 재가 남는다. Il y a la cendre. 거기에 재가 있다. 이 기묘한 문구를 데리다는 기입하며, 이 글을 둘러싸고 약 20년 후에 &amp;lt;Feu la cendre&amp;gt;가 쓰여졌다. &amp;nbsp;파르마코스의 남겨진 재는 바다로&amp;nbsp;흩어지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리기도 했는데,&amp;nbsp;이렇게 재조차도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 &amp;lt;재&amp;gt;는 데리다에게&amp;nbsp;&amp;lt;재조차도 남기지 않은 형상&amp;gt;이 되며, &amp;lt;에크리튀르&amp;gt;를 대신할 정도로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이다. &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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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타인의 사유</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guid>http://multitude.co.kr/343</guid>
			<comments>http://multitude.co.kr/343#entry343comment</comments>
			<pubDate>Tue, 29 Mar 2011 09:48: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아감벤의 &#039;스놉&#039; - The Open 3장</title>
			<link>http://multitude.co.kr/341</link>
			<description>&lt;br /&gt;
* 인간과 동물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있다. 코제브의 스노비즘을 옮긴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데리다의&amp;nbsp;Donner la mort를 읽고 있는데(분량이 짧다), 가라타니 고진의 &amp;lt;탐구 1, 2&amp;gt;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 방향은 상당히 다르지만. 하여간 데리다의 &amp;lt;법의 힘&amp;gt;, &amp;lt;죽음의 부여&amp;gt; 등을 폭력과 타자, 법 등의 문제와 엮어볼 작정으로 읽고 있다. 데리다에 관한 중간 정리는 곧 여기에 올릴 것이지만, &#039;인간과 동물, 정치&#039;에 관해서는 데리다의 &amp;lt;짐승과 주권자&amp;gt;, 아감벤의 &amp;lt;군림과 통치&amp;gt;를 다 읽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중간 중간에 &amp;lt;노트&amp;gt;는 하겠지만...&lt;br /&gt;
&lt;br /&gt;* 다음은 아감벤의 &amp;lt;열림&amp;gt;에 있는 글을 옮긴 것이다. 영한대역이고(불어판도 이탈리어아판도 내겐 없다. 젠장) 주석은 쪽수 표기를 한 것이라 뺐다. &lt;br /&gt;
&lt;br /&gt;&lt;br /&gt;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3장. 스놉Snob&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다.&lt;/P&gt;
&lt;P class=바탕글&gt;No animal can be a snob.&lt;/P&gt;
&lt;P class=바탕글&gt;—Alexandre Kojève&lt;br /&gt;
&lt;br /&gt;&lt;br /&gt;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코제브는 제자이자 라이벌인 바타이유가 죽은 지 6년이 된 1968년, &amp;lt;&amp;lt;헤겔철학입문&amp;gt;&amp;gt;의 2판 간행을 기회로 삼아 인간의 동물되기&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man’s becoming animal&lt;/SPAN&gt;라는 문제로 되돌아갔다. 더욱이 이 두 번째의 재검토는 1판의 주석에 또 다시 주석을 덧붙이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만일 &amp;lt;&amp;lt;헤겔철학입문&amp;gt;&amp;gt;이라는 텍스트가 본질적으로 레이몽 크노&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Queneau&lt;/SPAN&gt;가 수집한 노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면, 이 책에서 주석은 분명히 코제브가 자신의 손으로 집필한 유일한 부분이다). 코제브는 첫 번째 주석이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의 종언에서 ‘본래적 의미에서의&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properly so called&lt;/SPAN&gt;’ 인간이 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사라져야만 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나머지 모든 것’(예술, 사랑, 놀이)이 무한정하게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합성이 없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In 1968, on the occasion of the second edition of the Introduction, by which time his disciple-rival had been dead six years, Kojève returns to the problem of man’s becoming animal. And once again, he does so in the form of a footnote added to the footnote in the first edition (if the text of the Introduction is essentially composed from the notes collected by Queneau, then the footnotes are the only part of the text surely from Kojève’s hand). That first note, he observes, was ambiguous, because if we accept that at the end of history man “properly so called” must disappear, then we cannot coherently expect that “all the rest” (art, love, play) can remain indefinitely.&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본문&gt;&lt;br /&gt;
&quot;만일 &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중고딕;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중고딕; mso-ascii-font-family: 한양중고딕&quot;&gt;인&lt;/SPAN&gt;간이 또 다시 동물로 된다면, 인간의 예술, 사랑, 놀이도 또 다시 순전히 ‘자연적’이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중고딕;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중고딕; mso-ascii-font-family: 한양중고딕&quot;&gt;역&lt;/SPAN&gt;사의 종언 이후 마치 새가 둥지를 틀고 거미가 그물을 짜듯이 인간도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구축할 것이라고 인정해야만 할 것이며, 또한 개구리와 매미의 방식을 쫒아 음악회를 열 것이고, 새끼 동물들이 노는 꼴대로 놀 것이며, 성숙한 짐승처럼 사랑&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성교&lt;/SPAN&gt;에 탐닉하게 될 것이라고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모든 것이 “&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중고딕;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중고딕; mso-ascii-font-family: 한양중고딕&quot;&gt;인&lt;/SPAN&gt;간을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행복&lt;/SPAN&gt;하게 만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풍요로 넘쳐나고 완전한 안전 속에서 살아갈)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호모 사피엔스&lt;/SPAN&gt; 종이라는 포스트 역사/역사 이후의 동물들은 예술적이고 에로틱하며 놀이와 관련된 행태의 결과에 만족하게 되리라는 것과 정의상 마찬가지로, 그러한 행태로 만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quot;&lt;/P&gt;
&lt;P class=본문&gt;If Man becomes an animal again, his arts, his loves, and his play must also become purely “natural” again. Hence it would have to be admitted that after the end of History, men would construct their edifices and works of art as birds build their nests and spiders spin their webs, would perform musical concerts after the fashion of frogs and cicadas, would play as young animals play, and would indulge in love like adult beasts. But one cannot then say that all this “makes Man happy.” One would have to say that post-historical animal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which will live amidst abundance and complete security) will be content as a result of their artistic, erotic, and playful behavior, inasmuch as, by definition, they will be contented with it.1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하지만 고유한&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본래적인&lt;/SPAN&gt; 의미에서 인간의 결정적인&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명확한&lt;/SPAN&gt; 절멸은 인간 언어의 소멸을, 그리고 꿀벌의 언어에 견줄 수 있는 음성신호나 동작신호로 인간의 언어가 대체됨을 수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경우에 코제브는 철학 ― 즉 지혜의 사랑 ― 만이 아니라 그 어떤 종류의 지혜의 가능성 자체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The definitive annihilation of man in the proper sense, however, must also entail the disappearance of human language, and its substitution by mimetic or sonic signals comparable to the language of bees. But in that case, Kojève argues, not only would philosophy— that is, the love of wisdom—disappear, but so would the very possibility of any wisdom as such.&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바로 이 지점에서 [코제브의] 주석은 역사의 종언과 세계의 현재 상태에 관해 일련의 테제를 분절하는데, 이 테제에서는 절대적인&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흔들림 없는&lt;/SPAN&gt; 진지함, 그리고 이와 동일한 정도의 절대적인 아이러니를 구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판의 주석(1946년)을 쓴 직후에 곧바로 이 저자가 “헤겔-맑스주의적 역사의 종언”을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어떤 것으로 이해했음을 배운다. 예나전투(1806년) 이후, 인류의 전위는 실질적으로&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virtually&lt;/SPAN&gt; 인간의 역사적 진화의 종언에 도달했다. 그 후에 일어난 모든 것 ― 양차 세계대전, 나치즘, 러시아의 소비에트화를 포함하여 ― 은 가장 선진화된 유럽 나라들의 입장에 세계의 나머지 부분들더러 발맞추어 나가게끔 가속화했던 과정&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a process of accelerated alignment&lt;/SPAN&gt;에 다름 아니었다&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아니라는 점을 대표했다&lt;/SPAN&gt;. 하지만 (코제브가 프랑스 정부의 고위인사가 되었던 때인) 1948년부터 1958년 사이에, 미국 여행과 소련 여행을 거듭하면서 그는, 포스트 역사의 상황에 도달하는 길에 있어서 “소련인이나 중국인이 아직은 가난하지만 급속도로 풍요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인인” 반면에, 미국은 “맑스주의적 ‘공산주의’의 최종단계”에 이미 도달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이 확신으로 인해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 것으로 나아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t this point the note articulates a series of theses on the end of history and on the present state of the world, in which it is im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absolute seriousness and an equally absolute irony. We thus learn that in the years immediately following the writing of the first note (1946), the author understood that the “Hegelo-Marxist end of history” was not a future event but something already completed. After the battle of Jena, the vanguard of humanity virtually reached the end of man’s historical evolution. Everything that followed—including two world wars, Nazism, and the sovietization of Russia—represented nothing but a process of accelerated alignment of the rest of the world with the position of the most advanced European countries. Yet now, repeated trips to the United States and Russia, taken between 1948 and 1958 (by which time Kojève had become a high functionary in the French government), convinced him that, on the road toward reaching the posthistorical condition, “the Russians and the Chinese are only Americans who are still poor but are rapidly proceeding to become richer,” while the United States has already reached the “final stage of Marxist ‘communism.’”2 This then led him to the conclusion that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본문&gt;&lt;br /&gt;
‘미국식 생활방식’은 역사 이후의 시대에 특유한&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고유한&lt;/SPAN&gt; 생활유형이며, &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중고딕; FONT-SIZE: 11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중고딕; mso-ascii-font-family: 한양중고딕&quot;&gt;세&lt;/SPAN&gt;계에서의 미국의 현전은 모든 인류의 미래에 걸친 ‘영원한 현재’를 예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성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미래의]&lt;/SPAN&gt;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 lang=EN-US&gt;[현재의]&lt;/SPAN&gt; 확실성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class=본문&gt;the “American way of life” was the type of life proper to the post-historical period, the current presence of the United States in the World prefiguring the future “eternal present” of all humanity. Thus, man’s return to animality appeared no longer as a possibility that was yet to come, but as a certainty that was already present.3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그러나 1956년에 간 일본 여행은 [그가 품고 있었던] 전망을 더욱 변화시켰다. 일본에서 코제브는 자신의 눈으로, 비록 포스트 역사성이라는 조건에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를 그치지 않았던 어떤 사회[일본]를 볼 수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In 1959, however, a trip to Japan brought about a further shift in perspective. In Japan, Kojève was able to see with his own eyes a society which, though living in a condition of posthistory, had nevertheless not ceased to be “human.”&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본문&gt;&lt;br /&gt;
‘포스트역사의’ 일본문명은 ‘미국식 생활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 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 형태에서의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속물들(스노비즘)&lt;/SPAN&gt;은 ‘자연적’이거나 ‘동물적인’ 소여(주어진 바)를 부정하는 규율을 창출했다. 이것은 효과라는 면에 있어서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역사적’ 행동을 통해 생겨났던 것, 즉 전쟁과 혁명적 투쟁 또는 강제노동에서 생겨났던 것을 훨씬 능가했다. 확실히 노가쿠(能樂)나 다도(茶道)나 꽃꽂이(華道)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귀족과 부유층의 배타적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완전히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형식화된&lt;/SPAN&gt; 가치에 기초하여, 즉 ‘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일본인은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아무 대가도 없는’ 자살을 행할 수 있다(사무라이의 고전적 칼épéee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자살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을 가진 ‘역사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수행되는 투쟁 속에서 무릅쓰게 되는 생명의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위험&lt;/SPAN&gt;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일본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최근 시작된 상호교류는 결국 일본인의 재야만인화(일본인을 야만인으로 다시 간주하는 것)가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포함하여) 서구인들의 ‘일본인화’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그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화된’ 포스트-역사적 시대는 분명히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것의 ‘자연스런’ 뒷받침 역할을 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라는 동물들이 있는 한, “고유하게 그렇게 불리는 인간의 경정적인 무화”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자연이나 주어진 존재와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조화를 이루고 있는&lt;/SPAN&gt; 동물”은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살아 있는&lt;/SPAN&gt; 존재이되 결코 인간적이지는 않다.&lt;/P&gt;
&lt;P class=본문&gt;“Post-historical” Japanese civilization undertook ways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American way.” No doubt, there were no longer in Japan any Religion, Morals, or Politics in the “European” or “historical” sense of these words. But Snobbery in its pure state created disciplines negating the “natural” or “animal” given which in effectiveness far surpassed those that arose, in Japan or elsewhere, from “historical” Action—that is, from warlike and revolutionary Struggles or from forced Work. To be sure, the peaks (equalled nowhere else) of specifically Japanese snobbery—the Noh theatre, the ceremony of tea, and the art of bouquets of flowers—were and still remain the exclusive prerogative of the nobles and the rich. But in spite of persistent economic and social inequalities, all Japanese without exception are currently in a position to live according to totally formalized values— that is, values completely empty of all “human” content in the “historical” sense. Thus, in the extreme, every Japanese is in principle capable of committing, from pure snobbery, a perfectly “gratuitous” suicide (the classical sword of the samurai can be replaced with an airplane or a torpedo),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the risk of life in a Struggle waged for the sake of “historical” values that have social or political content. This seems to allow one to believe that the recently begun interaction between Japan and the Western World will finally lead not to a rebarbarization of the Japanese but to a “Japanization” of the Westerners (including the Russians). Now, since no animal can be a snob, every “Japanized” post-historical period would be specifically human. Hence there would be no “definitive annihilation of Man properly so called,” as long as there were animal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that could serve as the “natural” support for what is human in men.4&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코제브가 포스트 역사/역사 이후의 상황을 기술하고자 할 때마다 매번 바타이유는 웃음거리가 된 어조 때문에 자신의 스승을 비난하곤 했는데, 그 어조는 이 주석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여기서는 “미국식 생활양식”이 동물적인 생명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며/등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식 스노비즘이라는 형태로 인간이 역사에 실존하는 것 자체가 보다 세련된 판본의 “아무 쓸모없는 부정성”(설령 패러디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과 닮았다고 한다. 이러한 “쓸모없는 부정성”은 바타이유가 확실히 더 천진난만한 방식으로 정의하고자 노력했고 코제브의 눈에는 나쁜 취향으로 비춰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The farcical tone, for which Bataille reproached his teacher every time Kojève attempted to describe the posthistorical condition, reaches its peak in this note. Not only is the “American way of life” equated with an animal life, but man’s survival of history in the form of Japanese snobbery resembles a more elegant (if, perhaps, parodic) version of that “negativity with no use” that Bataille sought to define, in his certainly more ingenuous way, and that to Kojève’s eyes must have seemed in bad taste. &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인간의 이 포스트 역사적 형상이 지닌 이론적 함의에 관해 성찰해 보자. 무엇보다 우선, 역사적 드라마에서 인류의 생존은, 유대교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 둘 다에서 최후의 메시아적 사건과 영원한 생명/삶 사이에서 지상에서 수립될 것인 메시아의 천년왕국을 상기시키는 초역사라는 주변부를 ― 역사와 그 종언 사이에 ― 도입하는 것처럼 보인다(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테마로 가득 찬 솔로비예프의 철학에 자신의 첫 번째 저서를 헌사했던 어떤 철학자[코제브]에게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이 포스트 역사적 형상이 어떤 이론적 함의를 갖고 있는지 성찰해 보자. 무엇보다 우선, 역사라는 드라마에서 인류가 생존한다는 것은 역사와 그 종언 사이에서 메시아의 천년왕국을 상기시키는 초역사라는 주변부를 도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천년왕국은 메시아의 최후의 사건과 영원한 생명 사이에서 수립될 것이라고 말해진다(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테마로 가득 찬 솔로비예프의 철학에 자신의 첫 번째 저서를 헌사했던 어떤 철학자[코제브]에게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Let us try to reflect on the theoretical implications of this posthistorical figure of the human. First of all, humanity’s survival of its historical drama seems to introduce—between history and its end—a fringe of ultrahistory that recalls the messianic reign of one thousand years that, in both the Jewish and Christian traditions, will be established on Earth between the last messianic event and the eternal life (which is not surprising in a thinker who had dedicated his first work to the philosophy of Solov’yev, itself imbued with messianic and eschatological themes). &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하지만 결정적인 점은 이 초역사라는 주변부에서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다&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인간일 수 있다&lt;/SPAN&gt;는 것은 인간의 뒷받침&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지렛대&lt;/SPAN&gt;으로서 기능해야만 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이라는 동물의 생존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코제브의 헤겔 독해에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종이 아니며, 또한 확실하게 주어진 실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은 ‘인간학적인&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인간화된&lt;/SPAN&gt;’ 동물성과 이 동물성으로부터 신체를 취하는 인간성을 매번 ― 적어도 잠재적으로 ― 분리하는 내적 휴지기&lt;SPAN style=&quot;VERTICAL-ALIGN: super&quot;&gt;중간지대, caesurae&lt;/SPAN&gt;에 의해 항상 이미 절단되어 있는 변증법적 긴장의 장이다. 인간은 이 긴장에서만 역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을 떠받치는 인간학적 동물을 초월하고 변형하는 정도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부정의 행위를 통해서긴 하지만, 자신의 동물성을 지배하고 결국에는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바로 이런 의미에서 코제브는 “인간은 동물의 치명적 질병이다”고 쓸 수 있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But what is decisive is that in this ultrahistorical fringe, man’s remaining human presumes the survival of animal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that must function as his support. For in Kojève’s reading of Hegel, man is not a biologically defined species, nor is he a substance given once and for all; he is, rather, a field of dialectical tensions always already cut by internal caesurae that every time separate— at least virtually—“anthropophorous” animality and the humanity which takes bodily form in it. Man exists historically only in this tension; he can be human only to the degree that he transcends and transforms the anthropophorous animal which supports him, and only because, through the action of negation, he is capable of mastering and, eventually, destroying his own animality (it is in this sense that Kojève can write that “man is a fatal disease of the animal”).5&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 /&gt;
그렇지만 포스트 역사에서 인간의 동물성은 무엇이 되는가? 일본식 스놉과 그의 동물로서의 신체 사이에, 그리고 이 스놉의 신체와 바타이유가 힐끗 본 무두(無頭)의 생명체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지만 코제브는 인간과 인간학적 동물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부정이나 죽음의 측면을 특권시하며, 근대성에서 인간(또는 코제브에게는 ‘국가’)이 자신의 고유한 동물적인 생명을 배려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간과하고, 그와 반대로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불렀던 것, 즉 자연적 생명이 관건이 되는 과정을 간과하는 듯이 보인다. 어쩌면 인간학적 동물의 신체(노예의 신체)는 관념론이 사유에 그 유산을 남겨준 해결할 수 없는 잔여이며, 우리 시대의 철학의 아포리아는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에 환원할 수 없이 그어져 있고 이 둘 사이에서 분할되어 있는 이 신체의 아포리아와 부합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But what becomes of the animality of man in posthistory? What relation is there between the Japanese snob and his animal body, and between this and the acephalous creature glimpsed by Bataille? Kojève, however, privileges the aspect of negation and death in the relation between man and the anthropophorous animal, and he seems not to see the process by which, on the contrary, man (or the State for him) in modernity begins to care for his own animal life, and by which natural life becomes the stakes in what Foucault called biopower. Perhaps the body of the anthropophorous animal (the body of the slave) is the unresolved remnant that idealism leaves as an inheritance to thought, and the aporias of the philosophy of our time coincide with the aporias of this body that is irreducibly drawn and divided between animality and humanity.&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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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타인의 사유</category>
			<category>동물화</category>
			<category>스노비즘</category>
			<category>스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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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코제브</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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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10:53:3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스노비즘에 관해 :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lt;헤겔독해입문(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gt;1968년도 수정판의 한 각주</title>
			<link>http://multitude.co.kr/340</link>
			<description>&lt;br /&gt;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Now, several voyages of comparison made (between 1948 and l958) to the United States and the U.S.S.R. gave me the impression that if the Americans give the appearance of rich Sino-Soviets, it is because the Russians and the Chinese are only Americans who are still poor but are rapidly proceeding to get richer. I was led to conclude from this that the “American way of life” was the type of life specific to the post-historical period, the actual presence of the United States in the World prefiguring the “eternal present” future of all of humanity. Thus, Man&#039;s return to animality appeared no longer as a possibility that was yet to come, but as a certainty that was already present.&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나는 (1948년에서 1958년 사이에) 미국과 소련을 여러 번 여행하고 비교해 본 결과, 미국인에게서 부유한 중국-소련의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소련인이나 중국인이 아직은 가난하지만 급속도로 풍요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나는 이런 결론을 끌어냈다. 즉, ‘미국식 생활양식’은 포스트역사 시대의 고유한 생활양식이라는 것, 미국이 현실로서 세계에 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전체의 ‘영원히 현존하는’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결론. 따라서 인간이 동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전하는 확실성으로서 나타났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It was following a recent voyage to Japan (1959) that I had a radical change of opinion on this point. There I was able to observe a Society that is one of a kind, because it alone has for almost three centuries experienced life at the “end of History” ― that is, in the absence of all civil or external war (following the liquidation of feudalism by the roturier Hideyoshi and the artificial isolation of the country conceived and realized by his noble successor Yiyeasu). Now, the existence of the Japanese nobles, who ceased to risk their lives (even in duel) and yet did not for that begin to work, was anything but animal.&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이에 대한 견해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최근(1959년) 일본을 여행한 후이다. 나는 거기서 유일무이한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왜 유일무이한가 하면, 일본이 (농민/평민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봉건제’가 청산되고, 그의 후계자이자 원래 무사/귀족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쇄국이 구상되어 실현된 후) 거의 3세기 동안 ‘역사의 종말’에서 삶을 경험했던 ― 즉 어떤 내전도 대외전쟁도 없는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무사/귀족은 자신의 목숨을 (심지어 결투에서조차) 위험에 빠뜨리길 멈췄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들의 실존은 완전히 동물적이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Post-historical” Japanese civilization undertook ways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American way.” No doubt, there were no longer in Japan any Religion, Morals, or Politics in the &quot;European&quot; or &quot;historical&quot; sense of these words. But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snobbery&lt;/SPAN&gt; in its pure form created disciplines negating the “natural” or “animal” given which in effectiveness far surpassed those that arose, in Japan or elsewhere, from “historical” Action ― that is, from warlike and revolutionary Fights or from forced Work. To be sure, the peaks (equalled nowhere else) of specifically Japanese snobbery ― the Noh Theater, the ceremony of tea, and the art of bouquets of flowers ― were and still remain the exclusive prerogative of the nobles and the rich. But in spite of persistent economic and political inequalities, all Japanese without exception are currently in a position to live according to totally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formalized&lt;/SPAN&gt; values ― that is, values completely empty of all “human” content in the “historical” sense. Thus, in the extreme, every Japanese is in principle capable of committing, from pure snobbery, a perfectly “gratuitous” suicide (the classical épée of the samurai can be replaced by an airplane or a torpedo),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the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risk&lt;/SPAN&gt; of life in a Fight waged for the sake of “historical” values that have social or political content. This seems to allow one to believe that the recently begun interaction between Japan and the Western World will finally lead not to a rebarbarization of the Japanese but to a “Japanization” of the Westerners (including the Russians).&lt;/P&gt;
&lt;P class=바탕글&gt;‘포스트역사의’ 일본문명은 ‘미국식 생활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 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 형태에서의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속물들(스노비즘)&lt;/SPAN&gt;은 ‘자연적’이거나 ‘동물적인’ 소여(주어진 바)를 부정하는 규율을 창출했다. 이것은 효과라는 면에 있어서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역사적’ 행동을 통해 생겨났던 것, 즉 전쟁과 혁명적 투쟁 또는 강제노동에서 생겨났던 것을 훨씬 능가했다. 확실히 노가쿠(能樂)나 다도(茶道)나 꽃꽂이(華道)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귀족과 부유층의 배타적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완전히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형식화된&lt;/SPAN&gt; 가치에 기초하여, 즉 ‘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일본인은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아무 대가도 없는’ 자살을 행할 수 있다(사무라이의 고전적 칼épéee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자살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을 가진 ‘역사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수행되는 투쟁 속에서 무릅쓰게 되는 생명의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위험&lt;/SPAN&gt;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일본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최근 시작된 상호교류는 결국 일본인의 재야만인화(일본인을 야만인으로 다시 간주하는 것)가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포함하여) 서구인들의 ‘일본인화’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Now, since no animal can be a snob, every “Japanized” post-historical period would be specifically human. Hence there would be no “definitive annihilation of Man properly so-called,” as long as there were animals of the species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Homo sapiens&lt;/SPAN&gt; that could serve as the “natural” support for what is human in men. But, as I said in the above Note, an “animal that is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in harmony&lt;/SPAN&gt; with Nature or given Being” is a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iving&lt;/SPAN&gt; being that is in no way human, To remain human, Man must remain a “Subject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opposed&lt;/SPAN&gt; to the Object” even if “Action negating the given and Error” disappears. This means that, while henceforth speaking in an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adequate&lt;/SPAN&gt; fashion of everything that is given to him, post-historical Man must continue to detach “form” from “content,” doing so no longer in order actively to transform the latter, but so that he may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oppose&lt;/SPAN&gt; himself as a pure “form” to himself and to others taken as “content” of any sort.&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 그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화된’ 포스트-역사적 시대는 분명히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것의 ‘자연스런’ 뒷받침 역할을 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라는 동물들이 있는 한, “고유하게 그렇게 불리는 인간의 경정적인 무화”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자연이나 주어진 존재와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조화를 이루고 있는&lt;/SPAN&gt; 동물”은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살아 있는&lt;/SPAN&gt; 존재이되 결코 인간적이지는 않다. 인간적인 채로 머물러 있으려면, 인간은 설령 “소여(주어진 것)를 부정하는 행동과 오류”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대상과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대립된&lt;/SPAN&gt; 주체”로서 남아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다음을 뜻한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적합한 방식으로 말을 동안에도 포스트-역사적 인간은 ‘내용’으로부터 ‘형식’을 계속해서 떼어내야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용’을 적극적으로 변형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형식’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대립시킬 것이며, 모든 종류의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진 타인에게 대립시켜야만 한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class=바탕글&gt;(영어판, 160~161쪽) &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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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00:34: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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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title>
			<link>http://multitude.co.kr/339</link>
			<description>&lt;DIV&gt;
&lt;P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gt;*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김경희·김동규 옮김, 인간사랑 &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amp;nbsp;Maurizio Viroli 2002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Republicanism &lt;/SPAN&gt;Hill and Wang (New York)&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1. 들어가며 &lt;/P&gt;
&lt;P class=HStyle0&gt;이 글은 근래 들어 자유주의를 대신할 공공철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화주의의 사상을 비롤리의 『공화주의』에 입각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시민혁명의 시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의 시대 등 서구 역사의 곳곳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최근에는 존 포콕(John Pocock)과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를 중심으로 한 캠브리지학파의 연구에 의해 그 의의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지닌 특색은 사상을 역사적 맥락(context)에서 읽는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스키너는 이런 기법을 통해 영국의 시민혁명 시대를 검토하면서, 이 시대에는 현재의 자유주의와는 상이한 이론(신로마이론)&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1&quot;&gt;&lt;SUP&gt;1)&lt;/SUP&gt;&lt;/A&gt;이 있었다고 지적했다(Skinner 1998). 또한 이들이 공화주의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2&quot;&gt;&lt;SUP&gt;2)&lt;/SUP&gt;&lt;/A&gt; 스키너 등의 역사연구에 정치철학적 관점을 덧붙여 이것의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논자로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때 그는 이른바 분석철학의 기법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적 자유’를 대신할 ‘공화주의적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Pettit 1997).&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3&quot;&gt;&lt;SUP&gt;3)&lt;/SUP&gt;&lt;/A&gt; 이처럼 스키너의 흐름은 ‘자유’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HStyle0&gt;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도 이 스키너의 흐름과 연관된 이론가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철학 학위를, 피렌체에 있는 유럽대학에서 사회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는 마키아벨리와 루소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 연구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공화주의의 논점들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의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를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키너나 페팃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들과는 다른 점으로는 이탈리아의 역사(특히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사상이나 제도를 분절한다는 점, 그리고 ‘정념’(passion)에 관한 테마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래에서는 그의 논의를 각 장별로 소개할 것이다. &lt;/P&gt;
&lt;P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class=HStyle0&gt;2. 공화주의의 역사&lt;/P&gt;
&lt;P class=HStyle0&gt;이 책의 목적은 ｢영어판 저자 서문｣에 잘 서술되어 있다. 그 목적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더 큰 이론의 부록과도 같은 민주주의 이론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을 바꾸는 것, 즉 오히려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보다 시대상 앞설 뿐만 아니라 가치 면에서도 우월한 이론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lt;/P&gt;
&lt;P class=HStyle0&gt;이를 위해 이 책은 이탈리아 공화주의의 역사부터 설명해 나간다. 1장에서 비롤리는 14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의 자유 공화국들에서 구축된 공화주의의 정치이론에 관해 서술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가 일찍이 근대성에 주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공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공화국들은 부유하고 힘센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많은 인민들은 정부 및 주권적 권한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공화국들은 대공회(consiglio grande)에 기초한 대의제 정부이며, 그 전체로서 인민 또는 도시를 대표했다. 특히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특색 중 하나인 혼합정(mixed government) 이론이 이 시대에 세련되게 가다듬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혼합정이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다. 당시 이론가들(여기에는 마키아벨리, 프란체스코 귀챠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도나토 지아노티Donato Giannoti의 이름이 거론된다)은 이러한 혼합정의 다양한 기관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줘야 할 것인지(즉 혼합정부를 어떻게 제도화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일인(전제자) 하에서든, 다수자(민중) 하에서든 한 곳에서 무제한의 자의적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분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해 동의했다고 말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이 서서히 외국세력 등의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공화주의 이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정신은 이후 유럽 속에 널리 퍼진 계몽주의의 한 가지 원천이 되며, 영국시민혁명이나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이탈리아 독립의 이론적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공화주의가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서술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class=HStyle0&gt;3. 공화주의의 자유&lt;/P&gt;
&lt;P class=HStyle0&gt;그렇다면 공화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롤리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그 핵심은 ‘자유’라고 파악한다. 이런 공화주의의 자유 개념을 설명한 것이 2장이다. 비롤리는 우선 정치적 자유를 간섭(interference)의 결여로서의 자유와 지배(domination)의 결여로서의 자유로 구별한다. 여기서의 ‘간섭’이란 어떤 사람의 행위를 방해하는 다른 누군가의 행위를 가리키는 반면에, ‘지배’란 자신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의존하는(depend on)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자유를 ‘간섭’의 결여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는 간섭과 지배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간섭 없는 지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그는 폭군에 의한 시민의 지배, 남편에 의한 아내의 지배, 고용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배 등을 거론한다. 여기서는 ‘간섭이 행해지는가 여부’가 아니라 ‘설령 지금 간섭이 행해지지 않더라도 간섭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나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상태인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lt;/P&gt;
&lt;P class=HStyle0&gt;다른 한편, ‘지배 없는 간섭’도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의한 제약’이다. 이 제약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개인의 자의적 이익을 위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또는 공공선public good을 지향한다는) 점으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다.&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4&quot;&gt;&lt;SUP&gt;4)&lt;/SUP&gt;&lt;/A&gt; 따라서 지배의 결여로서의 공화주의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지하는 논리를 도출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HStyle0&gt;3장은 공화주의의 자유와 법이 맺는 관계를 더욱 자세히 논한다. 그는 과거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공화주의자가 법의 지배를 자유의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점,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제약을 개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유일하게 타당한 방어로 간주되었음을 분명히 밝힌다.&lt;/P&gt;
&lt;P class=HStyle0&gt;이 논점에 관해서는 벤담처럼 “모든 법은 자유의 침해이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른바 자유주의)에서 나오는 반론이 있다. 홉스와 공화주의자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논쟁은 이 점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홉스는 법에 복종하는 이상, 루카(Lucca) 같은 공화국의 시민들도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같은 술탄의 신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해링턴은 루카의 경우 통치자와 시민이 공히 동일한 법률과 헌법에 복종하는 데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경우 술탄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제 맘대로, 즉 자의적으로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처분하기 때문에 루카의 시민이 더 자유롭다는 반론을 펼쳤다. &lt;/P&gt;
&lt;P class=HStyle0&gt;해링턴 같은 논의는 초기 자유주의의 이론가인 존 로크에게서도 발견된다. 로크의 책에는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비롤리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속박(제약)과 개인에게 자의적으로 가해지는 속박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자를 후자의 상위에 두는 것이 자유의 조건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이처럼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에 관해 간섭과 지배의 구별이나 자유와 법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논한다. 이것들은 페팃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는 논점이며, 비롤리와 페팃은 모두 현대 공화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스키너로부터 이러한 논점을 받아들였다. &lt;/P&gt;
&lt;P class=HStyle0&gt;다음으로 비롤리는 ‘논쟁’과 ‘수사학’이라는 관점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이해한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엇이 자의적인 행위를 구성하는지, 개인의 자의적 의사에 예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소득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시민들에게는 완전한 자의적 간섭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당한 간섭의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비롤리는 여기서 당파적 논쟁의 발생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을 과학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의미에서의 수사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그는 어떠한 사실도 논쟁을 결정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용될 수는 없으며, 또한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파가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그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사실이 수립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공선이나 법이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된다는 예정조화적인 비전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지적이며, 바로 여기서 역사연구에 뿌리를 둔 그의 현실적인real 인식이 빛난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4.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lt;/P&gt;
&lt;P class=HStyle0&gt;4장에서는 다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가 논의되고,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역사적 우선성이 주장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스키너의 주장(‘자유주의에 선행하는 자유’)을 따른 것인데, 여기서 비롤리가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은 그의 논의가 지닌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공화주의에서 파생된 원리가 보다 타당한 원리이고,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비롤리는 이러한 원리의 사례로 정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데 둔다는 점, 획일성에 대한 비판과 다양성에 대한 찬미, 권력분할의 권고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원리들은 J.S. 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미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가 지닌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는 ‘자연적 권리’라는 학설이 ‘권리는 관습이나 법에 의해 인정될 때에만 권리가 된다’는 사실과 충돌한다는 문제를 품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공공봉사(공익에의 헌신)를 자유의 자연적 반려자로 파악하지만, 자유주의는 그것을 자유의 제한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롤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강조한다.&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5&quot;&gt;&lt;SUP&gt;5)&lt;/SUP&gt;&lt;/A&gt;&lt;/P&gt;
&lt;P class=HStyle0&gt;또 4장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일반적으로 공화주의를 공동체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논의도 있지만, 비롤리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공화주의의 공동체가 민족적·문화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 어떠한 도덕적 선보다도 ‘정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가장 중요한 공통선/공공선은 정의라고 한다)을 거론한다. 이처럼 그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를 완전히 상이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전자의 차이는 구별의 축이 ‘자연-인위’에 있으며, 루소 연구를 배경으로 한 비롤리의 입장이 여기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lt;A href=&quot;file:///D:/앎과함/작업자료/프로젝트%20및%20주제별/현대정치철학/공화주의/자유와%20애국심의%20공화주의론%20-%20모리치오%20비롤리의%20공화주의%20읽기.htm#FOOTNOTE6&quot;&gt;&lt;SUP&gt;6)&lt;/SUP&gt;&lt;/A&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5. ‘시민의 덕’과 ‘애국심’&lt;/P&gt;
&lt;P class=HStyle0&gt;다음으로 그는 스키너나 페팃이 그다지 충분하게 논하지 않은 ‘정념’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5장은 자유주의의 경우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고 공화주의의 경우에는 중심테마의 하나로 간주된 ‘시민의 덕’(civic virtue)을 고찰한다. 그리고 6장은 시민의 덕(또는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애국심’(patriotism)을 논한다. 이런 점들을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이고, 사실 이것들에 대해 논하는 두 개의 장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하겠다. &lt;/P&gt;
&lt;P class=HStyle0&gt;그렇다면 ‘시민의 덕’에 관한 비롤리의 논의를 살펴보자. 우선 그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시민의 덕, 즉 공동선에 봉사하길 마다하지 않는 ‘정서/기분’과 능력에 기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이론가들(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덕이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덕이 불가능한 이유로는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집단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선에 봉사하는 동기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또한 시민의 덕이 위험한 이유로는 만일 우리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시민이 보다 덕스럽게 된다면, 시민은 보다 불관용하고 보다 광신적으로 될 것이며, 결국 덕의 지배가 시민의 자유를 보다 제한할 것이라고 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이런 주장의 배경에 놓여 있는 것은 시민의 덕을 욕망의 단념과 희생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반하여 비롤리는 사적인 삶을 단념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형태의 시민의 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해 설명한다. 거기서 시민의 덕은 사적인 삶의 기초로서 파악되며, 부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시민의 덕은 이성에 의한 정념의 압박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정념(시민적 자선)이 다른 정념을 지배하는 걸 허용하고, 시민의 덕이나 공화국에 대한 봉사가 사적인 삶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lt;/P&gt;
&lt;P class=HStyle0&gt;이런 성질의 시민의 덕은 18세기의 프랑스 시민생활 속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가령 여기서는 시민들이 불법적인 이익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타자의 필요성이나 약함 때문에 이익을 얻지도 않으며,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 부정의한 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또한 공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지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 들어가 활동한다는 것.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를 바라는 것. 국가의 역사에 관해서 알고 논의하고 반성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들이 시민의 덕의 내용이며, 이것을 행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로는 도덕감정(환대, 차별, 추락, 방만, 야만에 대한 보상)이나 양질의 상품과 의례에 대한 미적인 욕구, 특정한 것에 관한 고려(안전한 도로, 쾌적한 공원, 잘 정비된 광장, 존경할 수 있는 기념비, 좋은 학교와 병원 등), 명성(공적인 명예를 얻고, 의장의 자리에 앉고, 연설을 하며, 예식에서 맨앞에 서는 것)이 거론된다. 그리고 비롤리는 이런 형태를 취한 시민의 덕은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그리고 비롤리에 따르면 이러한 시민의 덕, 즉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한다. 6장에서는 다른 현대공화주의의 이론가들이 그다지 다루지 않았던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논의된다. 우선 비롤리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대상이 ‘조국-자유로운 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조국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났던 장소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관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루소의 말을 인용한다. “조국을 만드는 것은 장벽도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법, 관습, 습관, 정부,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삶의 존재방식이다”. 또한 그는 “18세기의 정치학의 저술가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연적인 심정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또한 한층 더 좋은 경우에는 좋은 정부와 공공의 생명에의 참여에 의해 육성되는, 인공적인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여기서 그의 ‘자연-인위’의 축이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이처럼 그가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인위’라고 파악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이해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의 ‘나라사랑’은 ‘자연적인 정서’이며 사람들의 문화적·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인위적 감정’이고 이것의 중심 가치는 정치적 가치에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비롤리도 기본적으로는 이것에 기초하여(이런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구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화주의적 애국심에 의해서 국내의 통합은 문화·민족·종교의 동질성을 요구하지 않고서도 행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애국심이 있으면 종교적 정신이 없더라도 시민의 덕을 육성할 수 있다는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롤리는 종교적 신앙에서 불관용을 발견하고, 그것보다도 오히려 균형의 감각이나 회의의 감각을 중시한다. &lt;/P&gt;
&lt;P class=HStyle0&gt;그리고 그는 현대에서의 시민의 덕의 육성, 나아가 애국심의 재생과 보급을 위해 조국의 역사에서 의의를 찾아내는 것(기억과 기념축제의 중시)이나 정의와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것(이런 관점에서 복수·용서의 금지, 후견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을 강조한다. 또한 시민이 자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장려된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6.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lt;/P&gt;
&lt;P class=HStyle0&gt;이상으로 ‘시민의 덕’이나 ‘애국심’에 관한 그의 논의를 따라가 봤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것들은 자유주의의 주요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예상된 비판의 칼날을, 시민의 덕을 희생이라고 파악하는 입장이나,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을 파악하는 종류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하고, ‘시민의 덕’ 및 ‘애국심’의 적극적이고 온건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HStyle0&gt;또한 그는 자신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정의를 기저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 한 가지 모습인데,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다. 그는 조국은 ‘공통의 집’인데, 그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집과 나란히 서 있는 집’이라고 말하고, 조국의 바깥 세계를 암시한 후에,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우리의 조국에 대한 의미보다 선행한다. 어떤 특정한 조국의 시민이기 전에, 우리는 인간이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장벽이 도덕적으로 귀를 막는 구실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성이라는 심급을 고려하면서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를 사고한다. 그렇다면, 개인과 인간성 사이에 조국이라는 심급을 집어넣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과 인간성 일반의 중개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개 역할을 맡은 것이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이다. 이처럼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은 그 외부로부터도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 점에서도 그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와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lt;/P&gt;
&lt;P class=HStyle0&gt;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에 관한 그의 이해나 자치에 대한 참가의 위상에 관해서는 논의가 갈라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자치에 참여함으로써 시민이 공공선에 애착(attachment)을 느낀다는 점을 거론하고, 또한 토크빌에 의거하면서 “시민들이 참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말할 기회를 갖고 있는 경우나, 논의하는 문제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권한을 도시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그의 의도를 넘어서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개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이른바 문제를 자각하는) 데에 있어서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말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초에 토대를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다. &lt;/P&gt;
&lt;P class=HStyle0&gt;이처럼 이 책은 공화주의의 논점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들을 숨겨놓은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에 일독을 할 경우 큰 도움이 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br /&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amp;lt;참고문헌&am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Maurizio Viroli（2002）&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TYLE: italic; FONT-SIZE: 8pt&quot;&gt;Republicanism&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 New York: Hill and Wang&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Quentin　Skinner（1998）&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TYLE: italic; FONT-SIZE: 8pt&quot;&gt;Liberty Before Liberalism&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 Cambridge University Press&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Michael Sandel (1996) &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TYLE: italic; FONT-SIZE: 8pt&quot;&gt;Democracy’s Discontent&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Philip Pettit (1997)　&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TYLE: italic; FONT-SIZE: 8pt&quot;&gt;Republicanism&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Philip Pettit (1998) “Reworking Sandel’s Republicanism” Anita L. Allen &amp;amp; Milton&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C. Regan Jr. (ed.) &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TYLE: italic; FONT-SIZE: 8pt&quot;&gt;Debating Democracy’s Discontent&lt;/SPAN&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 FONT-SIZE: 8pt&quot;&gt;, New York: Oxford University&lt;/SPAN&gt;&lt;/P&gt;&lt;/DIV&gt;
&lt;HR align=left width=300&gt;
&lt;A name=#FOOTNOTE1&gt;
&lt;P style=&quot;TEXT-INDENT: -11.6pt; MARGIN-LEFT: 11.6pt&quot; class=HStyle11&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30%; LETTER-SPACING: 0.4pt; FONT-SIZE: 7.6pt&quot;&gt;1)&amp;nbsp;스키너는 흔히 ‘공화주의’라고 불리는 이 이론을, 이 이론가들이 반드시 왕정의 폐절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고대 로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 때문에 ‘신로마이론’이라고 부른다.&lt;/SPAN&gt; &lt;/P&gt;&lt;/A&gt;&lt;br /&gt;
&lt;A name=#FOOTNOTE2&gt;
&lt;P style=&quot;TEXT-INDENT: -11.2pt; MARGIN-LEFT: 11.2pt&quot; class=HStyle11&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30%; LETTER-SPACING: 0.4pt; FONT-SIZE: 7.6pt&quot;&gt;2)&amp;nbsp;공화주의에 관해서는 제도(혼합정체론), 덕(시민의 덕)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스키너나 페팃,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화주의론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lt;/SPAN&gt;&lt;/P&gt;&lt;/A&gt;&lt;br /&gt;
&lt;A name=#FOOTNOTE3&gt;
&lt;P class=HStyle11&gt;3)&amp;nbsp;그밖에 공화주의에 주목한 정치철학자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있다. 그는 미국 공화주의의 전통을 파헤쳐 이것을 현대에 부활시키고자 한다(Sandel 1996). 페팃은 한편으로는 샌델의 논의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공화주의 이론과는 다르다고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적’ 공화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시민참여가 공화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Pettit 1998). 이런 관점은 스키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페팃의 논의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비롤리의 논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lt;/P&gt;
&lt;P class=HStyle11&gt;&lt;br /&gt;
&lt;/P&gt;&lt;/A&gt;&lt;br /&gt;
&lt;A name=#FOOTNOTE4&gt;
&lt;P class=HStyle11&gt;4)&amp;nbsp;또한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유의 차이에 관해서도 말한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율, 자유의지, 강제에 대한 반대 등을 주장한다(벌린이 말한 ‘적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자유는 자율보다는 강제에 예속될 항구적인 위험(constant danger)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법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시민의 욕구에 들어맞는가가 아니라 법이 자의적이지 않는가, 공공선을 지향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쓴다. 여기서 자기결정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lt;/P&gt;&lt;/A&gt;&lt;br /&gt;
&lt;A name=#FOOTNOTE5&gt;
&lt;P class=HStyle11&gt;5)&amp;nbsp;이 점은 오히려 ｢서장｣에서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요소로서 법의 지배와 인민주권을 거론하고,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에만,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에만 특화된 빈약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lt;/P&gt;&lt;/A&gt;&lt;br /&gt;
&lt;A name=#FOOTNOTE6&gt;
&lt;P class=HStyle11&gt;6)&amp;nbsp;또한 6장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구별도 같은 축에서 이뤄지며, 이런 점에서 비롤리의 관점의 일관성을 볼 수 있다. &lt;/P&gt;&lt;/A&gt;&lt;br /&gt;
&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339-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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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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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닥치는 대로 읽기</category>
			<category>공화주의</category>
			<category>비롤리</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guid>http://multitude.co.kr/339</guid>
			<comments>http://multitude.co.kr/339#entry339comment</comments>
			<pubDate>Tue, 01 Feb 2011 00:34:1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루소와 생명권력 (노트)</title>
			<link>http://multitude.co.kr/338</link>
			<description>&lt;br /&gt;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루소는 &amp;lt;사회계약론&amp;gt;의 2부 5장 ｢생살권에 관하여/삶과 죽음에 대한 법권리에 관하여｣라는 적절한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인용&gt;&quot;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보존을 위해 생명을 걸 권리가 있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을 자살범이라고 누가 말한 적이 있는가? … 사회계약은 계약자들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한다. … 남을 희생하고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원하는 사람은 필요할 때엔 마찬가지로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시민은 더 이상 법률이 그로 하여금 무릅쓰기를 요구하는 그 위험의 판단자가 아니다. 그리하여 &amp;lt;군주/통치자&amp;gt;가 그에게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라고 말할 때, 그는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그때까지 그 계약에 의해 안전하게 살아왔기에 그의 생명은 단지 자연의 은혜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건부 선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amp;lt;&amp;lt;사회계약론&amp;gt;&amp;gt;, 김중현 옮김, 웅진펭귄클래식, 2010, 67~68쪽)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루소는 여기에서 우선 첫째로, 자기 방어권을 양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즉 생명의 긍정이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린 결과, 운 나쁘게도 죽어버린 경우처럼) 생명의 부정일 수도 있다고 역설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둘째로, 홉스의 경우 방어권이나 안전성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한 반면에, 루소는 이를 집단적인 것으로 정정한다.&amp;nbsp;“계약자들의 보존”이라고 루소가 복수형으로 말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계약자들 한 명 한 명의&amp;nbsp;생명의 보존이 아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서 루소는 셋째로, 어떤 사람의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부정할 수도 있으며,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역설한다.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언명에 대해, 홉스는 그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계속 인정하지만, 루소는 그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생명을 위해 죽음을 초래한다는 생명권력을 떠받치는 이론은 이미 루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루소는 친구와 적이라는 사회에 관한 이분법과, 전쟁이라는 문제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본문&gt;&quot;게다가 사회적 권리를 침해한 악당은 자신의 중죄로&amp;nbsp;조국에 대한 반역자이자 배신자가 된다. 그는 법을 위반함으로써 조국의 일원이기를 멈추는 것이 되며,&amp;nbsp;조국과 싸우기까지 하는 것이 된다. 그때 국가의 보존은 그 악당의 보존과 양립할 수 없기에,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죄인은 시민으로서보다는 적으로 간주되어 처형되는 것이다&quot;&lt;br /&gt;
.(68쪽) D&#039;ailleurs tout malfaiteur attaquant le droit social devient par ses forfaits rebelle et traître à la patrie, il cesse d&#039;en être membre en violant ses lois, et même il lui fait la guerre. Alors la conservation de l&#039;Etat est incompatible avec la sienne, il faut qu&#039;un des deux périsse, et quand on fait mourir le coupable, c&#039;est moins comme citoyen que comme ennemi.&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여기서 마지막 구절은 조금 모호하게 번역되어 있다. “죄인을 죽음에 이르게faire mourir 할 때, 죄인은 시민이라기보다는 적으로 간주되어 살해되는 것이다”의 의미가 적합하다. 어쨌든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규율/조절하는 제3자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대립하는 이질적인 두 집단 또는 범주 중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적으로 간주하는 형태로 여겨진다. 더욱이 동일한 국가(커먼웰스)의 내부에서도 그러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아가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인용&gt;&quot;비록 본보기로 처형을 한다 할지라도, 살려 둘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처형할 권리가 없다./그대로 계속 살아갈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을 빼면, 설령 본보기로 처형을 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quot;.(69쪽) &lt;/P&gt;
&lt;P class=인용&gt;
&lt;P class=바탕글&gt;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인정되지 않지만,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위험한 인간”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생명권력이 왜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해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것이다.”(&amp;lt;앎의 의지&amp;gt;) ‘생물학적’이라는 형용사가 없더라도 타자에게 위험한 것이기&amp;nbsp;때문에 어떤 생명을 말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는 이미 루소에게서 충분히 볼 수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강력한 호흡을&amp;nbsp;불어넣은 최초의 사람인 루소는, 그러나 푸코가 ‘고대의 법권리’의 원형으로 본 홉스의 정치철학과는&amp;nbsp;다양한 의미에서 거리를 두며,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쫓아내는 ‘권력’으로 크게 다가섰다. &lt;/P&gt;&lt;br /&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lt;img id=&quot;ccl-icon-338-0&quot; class=&quot;entry-ccl-by&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1.png&quot; alt=&quot;저작자 표시&quot;/&gt;
	&lt;img id=&quot;ccl-icon-338-1&quot; class=&quot;entry-ccl-nc&quot; src=&quot;http://i1.daumcdn.net/cfs.tistory/v/0/static/admin/editor/ccl_black02.png&quot; alt=&quot;비영리&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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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푸코</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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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00:33: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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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화주의에 있어서 ‘철학’과 ‘정치’ ― 마이클 J. 샌델의 &lt;민주주의의 불만들&gt;을 읽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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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class=&quot;개요 1&quot;&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1. 롤즈의 전환에 대한 응답&lt;br /&gt;
이른바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출발점으로 간주되곤 하는 마이클 샌델의 &amp;lt;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amp;gt;(1982)의 독자가 그의 두 번째 저작인 &amp;lt;민주주의의 불만 : 미국에서 공공철학의 연구&amp;gt;(1996)를 읽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선 글쓰기 스케일에 큰 변화가 있다는 점 때문에 크게 놀랄 것이다.&amp;lt;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amp;gt;는 철학적인 개념 분석을 중심으로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을 시도한 책이다. 고찰 대상은 존 롤즈의 &amp;lt;정의론&amp;gt;(1971)이라는 단 한 권의 책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더욱이 논의의 대부분은 롤즈의 ‘자기’(self) 개념―샌델이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라고 비판했던 것―의 타당성과 한계를 묻고 있다. 이에 비해&amp;lt;민주주의의 불만들&amp;gt;의 경우, 철학적인 분석은 뒤로 물러나고 롤즈에 대한 직접적 언급 역시 별로 없다. 오히려 미국의 대법원 판례나 연방정부의 경제정책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법적․정치적․도덕적 문제를 중요한 고찰대상으로 삼으며, 이것들의 변천과 해석을 둘러싸고 건국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는 장대한 (두 가지) 역사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lt;br /&gt;
이 변화를 초래한 것이 &amp;lt;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amp;gt;에서 샌델의 주요 비판대상이었던 롤즈의 이론적 전환이었음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롤즈는 1980년대에 자기론(자아론)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amp;lt;정의론&amp;gt;의 ‘칸트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 논리적 전환을 감행했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정통성의 기반을 자기(자아)의 존엄이나 개인의 선택 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철학적인 자기(자아)에 관한 논의를 회피하고, 오히려 서구 입헌민주주의 전통의 ‘정치’ 문화 자체에서 그 정통성의 근거를 찾는 것이었다. 샌델의 이 책은 이러한 롤즈의 방향전환에 대한 극히 대담한 반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샌델은 롤즈의 ‘이론으로서의 자유주의’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문화 전통에서의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으로서의 자유주의’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롤즈의 시도가 최종적으로 실패했음을 증명하고자 하며, 현실의 법적․정치적 제도와 실천을 뒷받침하는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나아가 그 대안까지도 제시하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lt;br /&gt;
&lt;/P&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2. 두 개의 공공철학, 두 개의 역사&lt;br /&gt;
그렇다면 이제 &amp;lt;민주주의의 불만들&amp;gt;에서 샌델이 제시하는 두 개의 공공철학과 두 개의 역사적 이야기의 이론적 틀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자. 샌델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자유주의는 결코 유일한 공공철학이 아니었다. 그가 자유주의의 경쟁자로 제시하는 것은 공화주의(republicanism)이다.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1) 자유의 이념을 목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자기/자아의 선택의 자유로 이해하고, (2) 옳음(正)을 항상 선(善)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파악하며(선에 대한 정의 우선성, priority of rights over goods), (3) 정부는 항상 다양한 선(善)에 대해 중립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공화주의는 (1) 자유를 자기통치(self-government)로 이해하고, (2) 공동체에서 공유될 수 있는 공동선(common goods)을 중시하며, (3) 시민의 덕(徳)을 육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간주한다. &lt;br /&gt;
샌델은 미국의 역사를 이러한 두 개의 공공철학의 투쟁, 그리고 어느 한쪽(자유주의)의 승리와 다른 쪽(공화주의)의 쇠퇴의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lt;br /&gt;
그리고 이 책의 중심부분에서는 두 개의 역사적 이야기가 언급된다. 제1부인 &quot;절차적 공화국의 헌법&quot;(The Constitution of the Procedural Republic)에서는 미국 헌법을 둘러싼 논의와 판례의 변화 ― 헌법에 대한 공화주의적 해석으로부터 자유주의적 해석으로의 변화 ― 가 분석된다. 건국 당시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신앙이나 언론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권리 등은 시민의 자기통치를 위해 필요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관점에서 제한되거나 옹호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재판소는 이러한 자유나 권리를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절차적인’(procedural) 차원에서 해석하고, 정부는 선에 대해 중립적일 것을 요구했으며, 그리하여 도덕적 판단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예를 들어 1973년 연방재판소 Roe vs. Wade 판결). &lt;br /&gt;
제2부 &quot;시민권의 정치경제&quot;(The Political Economy of Citizenship)에서는 실제의 정치․경제적 논의나 연방정부의 정책에서의 변화가 다뤄진다. 혁명 당시부터 혁신주의의 시대, 나아가 뉴딜 초기만 하더라도 정치적․경제적 정책에서는 여전히 시민의 덕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예를 들어 제퍼슨의 농본주의․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의). 또한 민주적 자치의 장애물이 된 권력 집중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가 정치경제학의 중심적 논점이었으며, 건국 초기부터 19세기 중반에는 연방정부로의 권력집중 대신에 주(州)로의 분권이, 혁신주의의 시대에는 대기업(big business)에 의한 자본 집중에 맞서는 반(反)트러스트법으로 대표되듯이 권력과 자본의 분산이 목표였다. 그러나 뉴딜 후기에 도덕적 문제를 괄호에 넣고, 그 대신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해 정치․경제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케인지안 혁명’이 출현함으로써 덕의 육성과 권력의 분산을 목표로 한 공화주의적 공공철학과 정책은 폐기되고, 정치경제학의 초점은 ‘시민권의 유지와 육성’에서 ‘성장과 분배적 정의’로 이행하게 된다. 이리하여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양자의 역사적 이야기에서 공화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가 거의 결정적이게 된다. &lt;br /&gt;
그러나 그것은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한계가 노정된 것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불만’의 시작이기도 했다. 자유를 개인의 선택의 자유로만 이해하고, 공동체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는 공화주의적 전통이 패배함으로써 초래된 시민의 자기통치의 상실과 공동체의 쇠퇴에 대한 ‘민주주의의 불만’에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70년대 이래, 미국의 내적․외적인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고조된 ‘민주주의의 불만’에 편승해, 공화주의적 수사학에 호소하여 도덕적․정치적 공간을 지배했던 것은 조지 왈라스(George Wallace),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제리 팔웰(Jerry Falwell) 등으로 대표되는 강고한 보수주의였다. 이러한 근래의 자유주의의 혼미와 보수주의의 대두에 대해 샌델은 공공철학으로서의 공화주의를 보다 다원적인 형태로 소생시킬 필요성을 역설한다. &lt;/P&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lt;br /&gt;
3. ‘롤즈 비판’을 넘어서는 시도&lt;br /&gt;
이 글의 분량상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는 그의 실증적 분석을 낱낱이 검증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 책에 대해 평가와 비판을 해 보자.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에서는 철학적 논의(예를 들어 자기/자아와 선, 또는 자기/자아와 공동체의 관계성에 관한 고찰)와 정치적 논의(예를 들어 시민의 덕의 육성이나 문화의 보호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에 관한 문제)라는, 두 가지 차원의 논점이 혼재되어 있음이 자주 지적되었다(Taylor, 1995, pp.181-203). 이에 대해 롤즈는 자유주의의 정당성의 기반을 ‘철학’에서 ‘정치’로 전환시킴으로써 대응하고자 했다. 즉, 자기/자아나 공동체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피하고, 정치적 전통에 의거한 ‘상호중첩된 합의(overlapping consensus)’로 논의의 초점을 이행시킨 것이다. 그러나 샌델이 비판하듯이, 실제로는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상호중첩된 합의’와 사회의 기본구조에 있어서의 ‘안전성’이라는 이름하에 종교적 관용, 낙태의 권리, 또는 재화의 분배와 차등원리의 문제 등 극히 정치적인 논의까지도 피해 버렸다.&lt;br /&gt;
이에 반하여 샌델은 철학적 논의와 정치적 논의, 이론적 고찰과 실증적 분석을 연관시킴으로써 ‘철학에서 정치로’라는 롤즈가 본래 목표로 삼았던 논쟁 영역의 전환을 충실하게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자아나 자유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개념분석과 가족법의 판례나 노동정책에 관한 역사실증적 분석, 또는 칸트, 아렌트, 롤즈 등의 이론에 대한 해석과 제퍼슨, 잭슨, 로버트 케네디 등의 정책에 대한 해석을 맞물려 논의하는 샌델의 자세는 과거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논쟁 영역을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롤즈가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한 미국의 정치문화에서의 다양한 갈등을 분절화함으로써, 그 전통에 정당성의 근거를 둔 롤즈 등의 자유주의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저작이 발간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에 관한 고찰은 칸트 해석이나 프라이버시의 권리의 범위 등 ‘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현실의 판례나 정책을 대상으로 하여 시민의 덕이나 가족의 역할 등과 같은 ‘정치’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행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lt;br /&gt;
4. 공화주의는 현대의 공공철학이 될 수 있는가?&lt;br /&gt;
이처럼 샌델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시도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관점이 교착하는 새로운 논쟁의 차원을 개척했다는 것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를 공공철학으로서 부흥시킨다는 그의 정치적․실천적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lt;br /&gt;
그 첫 번째 원인은, 마이클 린드가 지적하듯이(Lind, 1996), 70년대 이래, 어쩌면 공화주의를 대신하여 새로운 공공철학으로서 출현한 보수주의와의 차이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있다. ‘철학에서 정치로’라는 논쟁의 전환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형이상학적 논의를 전개했던 아카데믹한 영역으로부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전개했던 현실정치Real Politik의 세계에 발을 담궜다는 것도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미국의 보수주의는 자유지상주의와 도덕주의를 동시에 주장하는 특이한 보수주의인데, 공민권 운동에서 공화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고, 재화의 분배와 복지를 옹호한다는 점 등에서 그의 ‘비-보수주의적인’ 공화주의의 독창성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샌델의 공화주의, 또는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대립을 극복하는 제3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상으로서도 인식되고 있다(Etzioni, 1996).&lt;br /&gt;
그러나 샌델의 이 책에서는 현대적인 정치적 문제이자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논의에서 가장 중대한 초점이 되고 있는 젠더와 에스니시티의 문제에 관해 공화주의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은 거의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치명적 결함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샌델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하는 존재(storytelling beings)’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공화주의가 그랬듯이, 공공철학은 늘 당대의 현실적인 정치적 문제에 응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샌델이 킹 목사의 사상을 공화주의적인 것으로 인용하고 있듯이, 젠더나 에스니시티를 둘러싼 담론이나 운동에 일종의 ‘적극적 자유’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가치를 “권리-이야기rights-talk”로 환원시켰던 자유주의자의 전략은 그 도덕적․정치적 가능성을 왜소화해 왔다는 그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더 젠더나 에스니시티의 문제에 관해 민감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샌델 자신도 인정하듯이, 역사적으로 공화주의는 인종․성별․계급에 의한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도 기능해 왔으며, 샌델이 쇠퇴의 역사로서 그린 공화주의의 패배와 자유주의의 승리의 역사는 여성이나 소수자에게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방의 역사이기도 했다. 오히려 공화주의에는 샌델이 제시하는 위의 세 가지 특질에 덧붙여 (4) 퍼블릭-프라이버시(공과 사)의 편협한 구별, (5) 정치문화의 동질성의 전제라는 특질이 있으며, 이러한 특질에 의해 역사적으로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한 이념으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 아닐까? &lt;br /&gt;
샌델은 배타적․강제적인 루소적 공화주의와 구별된 다원적인 토크빌적 공화주의를 현대적인 공화주의로 제시하고,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월마트Wal-Mart와 같은 거대쇼핑몰의 진출에 반대하는 sprawlbusters 운동 등, 현대에서 공화주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운동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도 공화주의의 특질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분절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공민권 운동의 성과인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공동선이라며 옹호하는 것이 가능할까? 싱글맘 가정에서 시민의 덕은 육성될 수 있을까? 보수주의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명쾌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편, 자유주의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이를 변호하는데 주력할 것이며, 공동선이나 시민의 덕과 같은 개념을 폐기할 것이다. 샌델이 말하는 토크빌적 공화주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보수주의자와도 자유주의자와도 다른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공화주의가 현대에서 자유주의와도 보수주의와도 다른 공공철학으로서 부흥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현대적 문제에 대한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 때에야 부흥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공화주의의 특질, 특히 위에서 서술한 (4), (5)의 특질에 관한 ‘정치․철학’적 고찰이 다시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lt;br /&gt;
그렇지만 공동체주의를 한편으로 단순히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는 철학적 이론으로서만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방식의 보수적인 정치사상으로 찬양 또는 비판하는 경향이 아직 강한 한국의 많은 논자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철학적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그의 대담한 시도는 실천적 정치이론의 참된 가능성이라는 것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lt;/P&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lt;br /&gt;
Michael J. Sandel (1996), Democracy’ Discontent: America in Search of a Public Philosophy, Cambridge: Belknap Press.&lt;/P&gt;
&lt;P class=&quot;개요 1&quot;&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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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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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닥치는 대로 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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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민주주의의 불만들</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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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00:32: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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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옮김] 베르나르 스티글러 인터뷰, &lt;&#039;상징적 빈곤&#039;이라는 포퓰리즘의 토양&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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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 빈곤’이라는 포퓰리즘의 토양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본문&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t&quot;&gt;― ‘의식의 시장화’로부터 벗어나기&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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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본문&gt;
&lt;P class=본문&gt;195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연구개발 디렉터. 콩피엔느 대학의 지식․조직․기술시스템 연구부 부장 및 교수, 국립 시청각 연구소 부소장, 음향/음악 연구 소장을 역임하고 있음. ‘자본주의의 변혁’을 목표로 한 운동단체인 Ars Industrialis를 주관하고 있다. &lt;/P&gt;
&lt;P class=본문&gt;
&lt;P class=질문&gt;&lt;STRONG&gt;― ‘상징적 빈곤’ 개념을 설명해 주십시오. &lt;/STRONG&gt;　&lt;br /&gt;
‘상징적 빈곤’을 저는 기술철학의 관점에서, ‘생산에서의 빈곤’과의 대비에서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겪은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큰 결과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했습니다. 기술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미 자신의 ‘제작 지식’에 의해 생산을 하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산과 관련된 지식이 기계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생산자의 신체적 행동은 기계의 자동운동으로 변형되었고 그리하여 개별 생산자의 ‘제작 지식’은 빼앗기게 됩니다. &lt;br /&gt;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것으로, 내가 자주 참조하는 기술철학자인 시몽동이 ‘비개체화 과정’이라고 불렀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생산에 있어서의 빈곤’입니다. 두 번째 귀결로서, 19세기의 말이 되자 자본주의는 기계화 때문에 생산성이 확대되었고, 맑스가 ‘이윤율 저하’라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사회가 생산물을 모두 다 소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맑스가 이미 1865년부터 1870년 무렵에 예고했듯이,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졌고, 그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자본주의의 제1기의 특징입니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본문&gt;
&lt;P class=질문&gt;미국형 자본주의, 문화산업, 마케팅&lt;br /&gt;
그런데 20세기에는 자본주의의 중심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로 이동합니다. 20세기 초반, 미국형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lt;br /&gt;
첫 번째는 포드주의의 등장입니다. 생산자란 동시에 소비자이며,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이 소비자로서의 생산자의 수입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소비자가 됩니다. 유명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바로 이것을 생산한 노동자를 겨냥한 것입니다. &lt;br /&gt;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으로, 유럽형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형 자본주의의 혁명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20세기의 미국형 자본주의는 목표로 했던 생산성의 향상과는 다른 과제에 임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보증하는 것은 시장의 확대이기에 미국형 자본주의는 광대한 시장의 획득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국내 시장을, 이어서 세계시장을, 20세기 초반 이래 미국형 자본주의는 세계 규모의 시장 확대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제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lt;br /&gt;
이것과 연동된, 두 번째의 아주 중요한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영화의 등장이자, 미국형 ‘문화산업’의 탄생입니다. 1905년부터 1907년에, 미국 영화는 산업 모델에 근거하여 발달을 시작하게 되었고 1912년에는 영화의 전략적 중요성이 정치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영화로 이익을 올리는 것과도 관련됩니다만, 특히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이 대중 소비에 의해 조건지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영화산업의 발달을 통해 1930년대에는 ‘미국적 생활방식’이라 불리게 된 행동양식이 미국 내부와 세계적 규모로 촉진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lt;br /&gt;
이 점이 극히 중요한 것은, 이것이 포드주의를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포드가 T형을 생산함으로써 목표로 했던 광대한 시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산업 제품을 사람들이 차지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양식을 동시에 발달시켜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산업 제품을 스스로 발전시켜 채택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건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조건 부여의 주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영화의 영상입니다. &lt;br /&gt;
영화는 문학, 음악 등의 전통적인 상징표현보다 훨씬 큰 모방 환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코드라는 음악적 산업제품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였고, 이어서 라디오가,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전후에는 드디어 텔레비전이 등장함으로써 구현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내가 ‘산업적 시간 대상’[그 자체 속에 시간성을 구비한 산업 제품, ‘시간의 패키지 제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한 사회의 통제입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휴대 전화 등에 의해 사람들의 생활의 틈새 시간까지도 이러한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lt;br /&gt;
세 번째 차원은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마케팅의 등장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조카인 이 사람은 당시에는 ‘PR(Public Relation)’이라고 불렸고 나중에는 ‘마케팅’으로 불리게 된 것을 발명한 사람입니다만, 그는 1917년 이후 자본주의의 문제란 여론(opinion)을 조작하는 것에 있다고, 미국의 또는 세계의 소비자 개인 및 집단 수준에서의 리비도(무의식의 욕망)를 제어하여 방향을 부여하여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팜애에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판매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욕망, 즉 리비도 에너지를 부모나 연인, 종교나 정치라는 이상적인 ‘승화’의 대상으로부터 소비의 대상으로 되돌려 고정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은, 맑스의 말을 빌리자면(원래 맑스와는 다른 의미입니다만), 상품의 물신주의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lt;br /&gt;
[* 프로이트는 주식시장에서 배운 원리를 “무의식의 욕망 에너지(리비도 에너지)”의 작동으로 진단하고 ‘리비도 경제’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수립했다.]&lt;/P&gt;
&lt;P class=본문&gt;
&lt;P class=본문&gt;
&lt;P class=질문&gt;‘상징적 빈곤’ ―‘삶의 지혜’의 상실&lt;br /&gt;
이러한 과정은 미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만,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텔레비전의 보급에 의해 급속히 발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의 텔레비전 보급률은 1950년에는 0.1%였으나 1960년에는 13%, 1970년에는 70%, 그리고 현재에는 98%에 이르렀습니다. 즉 50년 사이에 모든 개인이 텔레비전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또 평균 시청 시간도 3시간 반에 이르러, 일하고 출퇴근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빈곤’이라고 제가 부른 사태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사람들은 이처럼 ‘시간’을 텔레비전과 같은 문화 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구성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레코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상상하거나 추억을 마음 속에서 떠올리거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낳기도 하는 ‘삶의 에너지’, 즉 프로이트의 용어로 하면 ‘리비도’가 문화산업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리비도를 고유한 ‘욕망’으로서 표현하고 구성해 나가기 위한 상징적 자원을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적 빈곤’의 진행입니다. &lt;br /&gt;
19세기의 산업자본주의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생산수단의 기계화에 의해 ‘생산자’에게서 ‘제작 지식’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 20세기의 소비자본주의에서의 전반적인 프롤레타리아화는 소비자에게서 ‘삶의 지혜’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파악하고 행동을 표준화함으로써 20세기의 소비자는 ‘삶의 지혜’를 잃는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있어서의 ‘삶의 지혜’는 이제 자신의 삶의 현장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리 결정된 매뉴얼이나 취해야 할 행동을 미리 정한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하며,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의 상징적 괴로움, ‘살기 힘들다’는 것을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괴로움이야말로 여러 가지 사건이나 흉측한 사건으로 나타나는 ‘결행(acting out)’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습니다. &lt;br /&gt;
그리고 (라디오나 네트워크도 덧붙여야 합니다만) 텔레비전을 필두로 한 문화산업이 보급한 문화 콘텐츠에 의한 대중의 리비도 포착은 궁극적으로 리비도 자체의 파괴로까지 나아갑니다. 리비도를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그것을 위해서 기능해야만 하는 것이 오히려 리비도를 파괴해 버립니다. 이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lt;br /&gt;
하나는 리비도의 담지자가 개체로서의 단독성을 가진 개인이며, 자신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단독성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만을 ‘욕망의 대상’으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lt;br /&gt;
이러한 개체의 단독성에 의거한 욕망의 투영 구조는 프로이트가 ‘원-나르시시즘’(원-자기애)라고 부르고, 또 라캉이 ‘거울상 단계’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 개체는 문화산업이 유통시키는 이미지를 손에 넣어 내면화합니다만, 내면화된 이미지는 더욱 더 표준화되며, 개인의 과거는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한 사람의 개인에게는 고유의 ‘과거’ 따위란 이미 없으며, 산업적인 ‘한철’(즉 유행)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개인의 단독성의 의지처는 그의 개인으로서의 경험에 있습니다만, ‘개인이다’는 것은 근처에 있는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lt;br /&gt;
포드주의에서 보여졌듯이, 생산의 경우 개인은 노동에서는 완전히 과학적인 조직화와 관리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표준화된 작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에 있어서도 문화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통제를 받고 표준화된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개인적 경험을 갖는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경험의 상실’이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lt;br /&gt;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문화산업에 의한 ‘과거 파악’[‘산업적 시간 대상’에 의해서 ‘시간’을 산출하여, 공통의 ‘과거’를 사람들의 의식에 의해서 구성하는 것], 즉 ‘기억의 통제’입니다.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휴대 전화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보급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상시적으로 통제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질 들뢰즈가 ‘통제 사회’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lt;br /&gt;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화산업에 의해서 리비도가 포착되고, 상징적 빈곤이 진행됨에 따라서 리비도 자체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리비도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단독적인 욕망의 대상이 주어질 때에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비도가 요구하는 대상의 단독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리비도 자체가 단 하나 밖에 없는 개인의 단독성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또한 타자를 욕망할 수 있는 것도 이 개인의 과거의 단독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lt;br /&gt;
그런데 개인이 표준화된 것을 소비하기 시작하고 표준화된 과거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단독성을 잃게 되면 이것과 동시에 대상의 단독성에 대한 감성도 잃어버립니다. 리비도가 리비도인 것은 둘 도 없는 단독성을 요구하는 한에서이기 때문에, 이리하여 리비도 자체가 파괴됩니다. 그리하여 제가 ‘리비도 에너지의 체감[감소]’이라고 부른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두 번째 위기에 다름 아닙니다. &lt;br /&gt;
&lt;br /&gt;산업 포퓰리즘이 산출한 정치 포퓰리즘&lt;br /&gt;
저는 근래 프랑스에서 특이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쏟아 왔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극단적이거나 원리주의적이거나 일본의 옴 진리교에서 보았듯이 종교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나 흉측한 행동 하에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하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마케팅의 표적이 되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실감의 상실 때문에 자신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존재의 증명을 위해서 흉측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lt;br /&gt;
그런데 그 결과, 이번에는 여론이 패닉상태에 빠지며, 이것이 사회의 퇴행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정치의 수준에서는 ‘질서’나 ‘권위’ 등이 소리 높이 요구되며, 결국 ‘정치 포퓰리즘’의 기초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 포퓰리즘’ 자체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현상을 낳는 것은 ‘산업 포퓰리즘’으로서의 마케팅입니다. &lt;br /&gt;
소비자로서의 삶의 단독성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의식의 시간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장악되게 됩니다. 리비도가 자꾸 파괴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제 ‘욕망’이 아니라 ‘충동’에 호소하게 됩니다. &lt;br /&gt;
실제로 15년 정도 전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헐리우드 영화는 정의, 이상, 영웅 같은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표현이나 폭력, 게다가 리얼리티 쇼와 같은 모방 행동을 야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접적인 ‘충동’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정치에서는 죽음의 충동이든 파괴 충동이든, 어쨌든 충동에 호소하는 극우세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산업 포퓰리즘과 정치 포퓰리즘은 똑같은 마케팅 논리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가들의 행동은 점점 더 문화산업의 마케팅과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lt;br /&gt;
&lt;br /&gt;미디어 정치가들이 태어나는 메커니즘&lt;br /&gt;
&lt;br /&gt;&lt;STRONG&gt;― 사르코지, 베를루스코니, 고이즈미 같은 정치적 인물이 미디어화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합니까?&lt;br /&gt;
&lt;/STRONG&gt;사르코지는 기묘할 정도로 고이즈미와 닮아 있으며, 이것은 부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르코지는 부시처럼 연설이나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과정이 일반화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심리적 구조가 어디서든 같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말한, 산업 포퓰리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또 테크놀로지 환경도 같습니다. 텔레비전, 휴대전화, 컴퓨터를 통해 미디어가 리비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정신의 산업 에콜로지’라고 제가 부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디에서든 동일한 정치적 오작동(malfunction), 정치 포퓰리즘이 산출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리비도의 문제가 지구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유럽이든 미국, 아시아든 선진 산업 국가들의 공통의 문제이며, 똑같은 메커니즘이 똑같은 결과를 무서운 형태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예를 들어 일본의 오모테산도의 거리를 걸으면 막스 마라의 부띠끄를 볼 수 있습니다. 막스 마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브랜드를 개입시켜서 리비도의 집단적 개별화를 행합니다. 리비도의 개별화는 이미 국가, 문명, 종교라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적 논리를 개입시켜 행해지고 있습니다. &lt;br /&gt;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각 지역에 특유한 언어, 이념이라는 승화의 대상을 통해서 개별화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더불어 지구화된 브랜드, 제품의 논리에 의한 사람들의 동일화, 개체화입니다. 작금의 자본주의는 영토화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히 탈영토화된 자본주의입니다. 이 자본의 탈영토화가 지역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정치가는 자본주의의 탈영토화 논리와 영토적인 지역적 현실 사이의 조정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포퓰리즘의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lt;STRONG&gt;― 지난해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을 어떻게 봅니까?　&lt;br /&gt;
&lt;/STRONG&gt;그 질문에 답하려면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겠죠. 말하자면 프랑스에서 ‘바보 바보’라는 것이 소리 높여 외쳐졌기 때문입니다. 이 폭발은 미디어가 전하는 영상에 의해서, 마치 프랑스가 완전한 혁명상태에 들어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만, 불에 탄 자동차는 1대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만 합니다. &lt;br /&gt;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상징적 빈곤, 정신적 빈곤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단순히 이슬람계 이민자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의 프랑스인도 살고 있는 지극히 빈곤한 외곽에서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저 텔레비전뿐입니다. 즉 텔레비전이 사회와 맺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사회관계를 파괴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주하는 단지의 구조는 너무도 심각해서 사람이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로, 소비하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비자가 되는 것뿐인데, 소비하기 위한 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lt;br /&gt;
그들은 프랑스 사회의 모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비하는 것 외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를 실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도둑질을 함으로써만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처지에 빠져듭니다. 존재상실을 모순 속에서 강렬하게 체험하고, 그들 자신의 분명히 말하듯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도둑질을 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lt;br /&gt;
지난 해 말 라디오에서는 파리의 감옥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말했습니다만, 이번 폭동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년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다루어지고 사회에서 일정하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고, 정치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불을 붙이는 자신들의 모습을 휴대 전화로 촬영해서 영상을 방송국에 팔았습니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행동입니다만, 정치적인 수준에서 리얼리티 쇼를 재현해 보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lt;br /&gt;
&lt;br /&gt;‘상징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lt;br /&gt;
&lt;STRONG&gt;― 소비사회에 편입되어 단독성을 잃게 되는 상황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결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상징적 빈곤’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lt;br /&gt;
&lt;/STRONG&gt;우리 사회가 ‘상징적 빈곤’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말하자면 이대로는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저는 몇 명의 철학자, 지식인, 그리고 산업가들과 함께 ≪Ars Industrialis≫(산업의 방법)이라는 국제적인 운동 조직을 세웠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결이 될 새로운 산업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포드가 이윤율의 체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던 것처럼,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리비도의 체감’에 대해 새로운 산업모델을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식인, 예술가의 역할이란 오늘날에서는 ‘정신의 테크놀로지’로 된 테크놀로지의 문제에 골몰함으로서,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사회화 모델을 자본주의에 대해 제안하는 것에 있습니다. &lt;br /&gt;
그 새로운 산업모델은 ‘소비’와 ‘생산’의 대립이 아니라 지식 테크놀로지, 정신의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개체화 과정에 의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휴대 전화 등의 기술은 현재 상태로서는 개인의 개성을 잃게 하는 과정을 낳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새로운 개인의 개별화를 산출할 수도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마케팅에 의한 사회적 조직화를 의문에 부치고,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입니다. 원래 마케팅 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말하자면 이대로는 소비자는 막스 마라에 코트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가게 되겠지요. 자본주의는 소비자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는 반소비 운동이 있습니다만, 반소비 운동이 공격하는 것은 부띠끄가 아니라 광고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대중운동으로, 지하철에 있는 광고를 폐기하자는 인터넷에서의 요청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광고 공간을 판매함으로써 수입을 얻고 있는 파리지하철공사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또 SUV 자동차에 대한 습격이라는 현상도 있습니다. SUV의 타이어를 펑크내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결국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차의 소유자가 엽총을 꺼내게 되는 폭력이 일어나겠지요. 또는 ‘반소비 운동’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소비를 바라지 않는 소비자들의 운동인 것이죠. &lt;br /&gt;
물론 소비를 안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비가 마음을 괴롭게 하고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에 의한 운동입니다. 소비는 헤로인 중독과 같아서 괴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마케팅 회사는 재작년에, 이대로라면 프랑스가 소비의 붕괴에 휩쓸려 버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의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소비와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lt;/P&gt;&lt;br /&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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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에드워드 버네이즈</category>
			<category>의식의 시장화</category>
			<category>포드주의</category>
			<category>프로이트</category>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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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00:31: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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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옮김] 베르나르 스티글러 - 욕망, 문화산업, 개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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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본문&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 FONT-WEIGHT: bold&quot;&gt;욕망, 문화산업, 개인&lt;/SPAN&gt;&lt;/P&gt;
&lt;P class=본문&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aramond; mso-hansi-font-family: Garamond;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text-shadow: auto&quot; lang=EN-US&gt;베르나르 스티글러&lt;br /&gt;
http://www.monde-diplomatique.fr/2004/06/STIEGLER/11261&lt;/SPAN&gt;&lt;/P&gt;
&lt;P class=본문&gt;
&lt;P class=본문&gt;수십 년 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우화가 있다. 적지 않은 정치사상이나 철학이 그러한 환상의 포로가 되어 왔다. 이 우화에 따르면 1968년을 거쳐서 시대는 ‘여유로운 사회’나 ‘톨레랑스의 사회’, ‘유연한 구조의 사회’ 등, 이른바 여가 사회,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했다고 한다. 탈산업사회론으로 불리는, 이 우화의 이론으로부터 ‘포스트모던’ 철학은 큰 영향을 받았다. 그것이 이 철학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시민사회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이 우화를 믿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로부터 중간계급의 사회로 시대가 이행했다고 주창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lt;br /&gt;
통계를 보면 프롤레타리아트 숫자는 더욱 많다. 임금노동자의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화하고 있는 현상에서 보면, (직장의 기계화에 따른 결과, 자발성을 발휘할 기회도, 전문직으로서의 지식도 지금 빼앗기고 있다) 오히려 전체적인 숫자는 증가했다. 중간계급도 빈곤화되고 있다. 사전에 따르면 여가, 즉 ‘레저’란 질곡으로부터의 자유, ‘절대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전상의 의미에서 여가가 발달했는지 여부는 극히 의심스럽다.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이 증가하기는커녕, 반대로 더욱 더 시간의 관리와 하이퍼 매스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는 자발적 예속의 새로운 형식을 낳았다. 문화산업과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 여가의 상업화와 조직화를 추동한 결과, 일찍이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했던 ‘통제사회’가 완성되었다. 통제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문화․서비스 자본주의가 급격히 성장하여 라이프스타일의 세부사항을 만들어내고, 일상생활을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장으로 바꾸었다. ‘마케팅 지향’을 통한 인간의 평준화 역시 진행되었다. 경제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개인의 삶의 시간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삶의 가치’는 이러한 움직임의 전형일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본질은 특이화와 개체화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lt;br /&gt;
들뢰즈가 혜안을 가지고 간파했듯이, ‘마케팅’이란 ‘사회의 통제를 위한 도구’[질 들뢰즈, ≪대담≫(&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Pourparlers&lt;/SPAN&gt;), Editions de Minuit, Paris, 2003]이며, ‘탈산업’ 사회라고 칭하는 사회의 실태는 하이퍼산업사회이다.[≪상징직 빈곤에 관하여 1―하이퍼 산업시대≫(&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De la misère symbolique.1―L’époque hyperindustrielle&lt;/SPAN&gt;), Galilée, Paris, 2004를 참조.] 개인주의가 우선시되었기보다는 오히려 개체는 무리를 이뤄 행동하고, 개체화의 기회는 완전히 소멸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lt;br /&gt;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이 개체화의 상실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것은 기계의 지배 하에 있는 19세기의 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노동자는 우선 직능을, 그 다음으로 인격을 상실하고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갔다. 이제는 소비자의 행동이 욕망을 포맷하고 개선하여 평준화할 차례이다. 현대의 인간은 살아갈 힘, 다양한 삶을 살 가능성을 잃고 있다. 규격이라는 사고방식이 그 대신 나타났다. 하지만 규격이란 시인인 말라르메가 잡지 ≪최신유행≫에서 논했듯이, 유행에 대한 끝없는 눈짓에 다름 아니다. 현대의 규격은 마케팅 기술이 ‘합리적’으로 촉진하고 있다. 외식산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매뉴얼’과 아주 비슷하다. 계약의 파기나 소송을 살짝살짝 언급하면서 프랜차이즈 체인점 산하의 소매사업자들을 굴레에 묶어두는 성스러운 계율과 비슷한 것이다. &lt;br /&gt;
‘개체화의 상실’이 ‘삶의 상실’도 의미하고 있다는 것에는 심각한 위험이 들어 있다. 시의회 의원 8명이 희생되었던 낭테르 시의회 총격 사건의 범인인 리샤르 뒤른느는 “한번이라도 살아 있다는 실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일기에 기록했다.[&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e Monde&lt;/SPAN&gt;, 10 avril 2002. 또한 ｢9․11에서 4․21에 걸친 사랑과 자기애, 우애≫(&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Aimer, s’aimer, nous aimer, du 11 septembre au 21 avril&lt;/SPAN&gt;), Galilée, Paris, 2003를 참조.]&lt;br /&gt;
1930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산업기술이 신에게 어울리는 속성을 인간에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과 닮기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의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Malaise dans la civilisation&lt;/SPAN&gt;), PUF, Paris, 1992.] 이것이야말로 하이퍼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앗아 가축떼로 바꾸어 버렸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되지 않은, 요컨대 미래가 없는 가축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비인간적인 가축떼는 광기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1920년에 집필한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에서 프로이트는 집단 광기에 빠지는 군중심리에 대한 분석에 처음으로 임했다.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집단 광기의 배후에 잠복해 있는 죽음의 충동 문제를 채택하여 전체주의나 나치즘, 반유태주의가 유럽에서 발호된 1930년에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을 저술하여 다시 한 번 같은 주제로 돌아갔다. &lt;br /&gt;
≪문명 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는 사진, 레코드, 전화 기술에 관해 논하고 있지만 라디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무솔리니나 스탈린에 이어 히틀러가 빈번히 사용한 영화에 대해서도 한 마디로 거론하지 않았다. “상업은 영화의 뒤를 쫓는다”[장-미셀 프로동(Jean-Michel Frodon), ≪국민적 기획―영화와 국민≫(&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a Projection nationale. Cinéma et nation&lt;/SPAN&gt;), Odile Jacob, Paris, 1998.]고 미국 상원의원이 발언한 것이 1912년이니까 기묘하다고 하면 역시 기묘하다. 나치가 첫 텔레비전 공개방송을 단행한 것은 1935년 4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텔레비전의 발명을 예상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와 똑같은 시기에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은 전체주의 권력이 어떻게 미디어를 장악하는가라는 문제를 ‘대중의 나르시시즘’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벤야민도 여명기의 문화산업이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장래 모든 나라에서 ‘기능’에 관해서 어떤 신지평을 열게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lt;br /&gt;
이 점을 이론화한 것은 프로이트의 친조카인 에드워드 버네이즈였다. 리비도 경제와 숙부인 프로이트가 명명한 것을 잘 활용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열 것이라고 버네이즈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의 결실이 PR이라는 설득 기법이었다. 1930년 무렵, 버네이즈는 무의식 이론을 기초로 편집한 PR기법을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사를 위해 현장에 적용했다. 확실히 이때는, 프로이트의 눈에는 문명에 대항한 죽음충동이 유럽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던 시기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는 미국에 관해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음과 같은 아주 기묘한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amp;lt;대중의 심리적 빈곤&amp;gt;이라고도 불러야할 상태가 생겨날 위험이 임박했다. 이 위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도자가 될 인재가 지도자이지 않고 사회의 관계가 오로지 구성원 상호간의 동일시에 의해 생겨날 때이다. 이러한 인재가 지도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필요는 대중이 형성되는 곳에서야말로 특히 클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현재 미국의 문화상태는, 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화의 해로움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대의 미국 문화를 비판하고 싶다는 유혹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미국적 방법을 취하려고 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lt;br /&gt;
&lt;br /&gt;리비도적․정서적 빈곤&lt;br /&gt;
문화산업의 기능을 진정한 의미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사상가인 테오도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로, 이들은 칼 크라우스가 1910년부터 행했던 미디어 비판보다 깊이 파고 들어가 ‘미국식 방법’을 고발했다. &lt;br /&gt;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나는 ≪기술과 시간≫(&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a Technique et le Temps&lt;/SPAN&gt;)의 3권인 ≪영화의 시간과 나쁜 존재의 문제≫(&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e temps du cinéma et la question du mal-être&lt;/SPAN&gt;), Galilée, 2001의 1장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이 어떤 점에서 불충분한가를 지적해 두었다. 칸트 사상의 도식론을 원용하면서 이들은 문화산업이 확실히 칸트주의의 비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아도르노 등이 분명히 한 것은 문화산업이 산업전반과 독립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대중화를 통해서 소비행동을 일정하게 방향짓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활동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다수의 신상품을 만들어낸다. 원활한 유통은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확보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과잉생산이나 경제공황의 만성적 위기가 문화산업에서도 생긴다. 시스템 자체를 근저에서부터 살펴보지 않는 한, 위기를 뛰어넘으려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말한 야만 자체를 계속 성장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lt;br /&gt;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평화 부흥기에 생산과잉은 전체의 40%에 달한다는 예측을 받아들여 PR이론에 이어 ‘구매동기 조사법’이 과잉생산의 해소를 위해 확립되었다. 당시의 광고 대리점이던 한 회사는 1955년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수요와 욕망을 새롭게 만들어낸 동시에, 오래된 것, 구식으로 된 것에 대해 혐오감을 품게 하는 것”을 북미는 자랑해도 좋다고 말이다. 기호와 혐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혐오감을 잘 키워낼 수 있으며 기호 그 자체도 저절로 바뀐다. 요점은 얼마나 “밑의 정서”에 호소력을 갖고 있는가이다. 특히 산업계에서 이 방법은 미국내 공장 제품에 대해 어떻게 하면 시민의 구매욕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능숙한 해결책이 되었다.[방스 파카르(Vance Packard), ≪비합법적인 설득≫(&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La Persuasion clandestine&lt;/SPAN&gt;), Calmann-Lévy, Paris, 1958.]&lt;br /&gt;
프랑스에서도 19세기 이래 적지 않게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산업 제품의 도입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라이프스타일이 격변했다. 에밀 드 지라드당의 광고회사, 루이 압바스에 의한 통신사의 설립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시간 소비 제품이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문화산업(영화, 레코드), 특히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한 후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청취자 및 시청자들은 영화와 달리 스피커나 브라운관 앞에 혼자 있기 때문인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간 소비 제품을 통해서 개인의 행동은 대중의 행동으로 바뀌며 개인의 ‘내면’까지도 거뜬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lt;br /&gt;
‘자유시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활동영역이 소비자에게 특유한 충동적이고 모방적인 행동으로 가득 채워진다. 세지나 껌처럼 교육이나 문화, 건강도 소비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개인 소비라는 환상이 욕구 불만이나 의혹, 파괴본능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신이 개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무심코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에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lt;br /&gt;
산업활동이 지구 전역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산업계는 규모의 경제의 대규모적인 실현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소비 행동의 기술적 관리와 균질화는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다. 시간 소비 제품을 마구 사들이고 세상에 넓게 유포시키고 사람들의 시간을 사로잡는다. 포수로 간주된 시간에서 시청자가 생겨나고, 광고주에게 강매하는 상품도 생겨난다. &lt;br /&gt;
멜로디나 영화, 라디오, 방송 등 시간의 경과를 주축으로 하는 사물의 본질은 시간 속에 있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유출’이라고 부른 시간인 것이다. 시간은 바뀌고 지나간다. 우리의 의식은 시간적인 사물이 통합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사물도 나타나자마자 금새 사라진다. 1920년의 시민 라디오의 탄생, 1947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방영 개시를 경계로,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 우리의 의식의 시간에 딱 들어맞는 사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간적인 사물은 의식의 시간과 겹쳐져 우리의 의식 속에도 집어넣어진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이 발송하는 것은 치약이나 소다, 구두나 자동차를 소비하는 시간을 대규모의 소비자의 의식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문화산업이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거의 100% 이런 상태이다. &lt;br /&gt;
의식이란 본질적으로 ‘자기’ 의식이며, 이 자기의식을 특이성이라고 한다. ‘나’라고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만의 고유한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만년에 자기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해명에 착수했다. 하지만 문화산업, 특히 텔레비전은 거대한 동기화(同期化) 장치가 되어서 자기를 손쉽게 쳐부숴버린다.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가 어떤 실시간 중계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고 있는 순간에,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같은 하나의 시간 소비 제품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매일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AV 소비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사람들의 ‘의식’은 최종적으로는 동일한 ‘혼자’의 의식이된다.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닌 의식으로 되는 것이다. 가축떼의 무의식은 심층의 욕망을 해방시킨다. 그것을 제지하여 욕망의 심층과 연결시키는 것이 욕망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불가능하다. 욕망이 생겨나려면 ‘특이성’이 우선 필요하기 떄문이다. &lt;br /&gt;
마케팅 기술은 1940년대에 미국의 산업계에서 실행 단계에 들어갔으며 이후 더욱 더 고도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상징적 빈곤과 리비도적․정동적 빈곤이다. 리비도적․정동적 빈곤은 일찍이 내가 본원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명명한 것의 상실을 초래한다. &lt;br /&gt;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장악하여 대중의 행동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지닌 장점이 있다. 탈산업사회론의 우화에는 그런 관점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개인을 집단과 대립시켜 파악하는 그릇된 의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몽동이 완벽하게 분명히 했던 것은 개인이란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며 존재를 향한 ‘생성’ 과정에 있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사태인 것이다. 개인이 마음의 수준에서 개인으로서 성립하려면 집단 속에서 개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집단은 개체화 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어떤 특이성이든 ‘전-개체적 저류’라고 시몽동이 부른 공통의 층으로부터 각각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lt;br /&gt;
‘전-개체적 저류’는 몇 세대에 걸쳐 경험이 축적된 것으로부터 생겨난 과거의 유산이다. 특이성은 이로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길러내지 않는 한, 그리고 심적인 개체가 그 저류를 서로 공유하여 자기에게 덧붙이면서 바뀌어가지 않는 한, 다음 세대에 그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하지만 각각의 개체가 그 저류에 개별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면, 서로 공유한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개별적으로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렇게 관련된 방식은 타인과는 다른 특이한 것이어야만 한다. 사회 집단은 공통의 저류 속에서 자기를 재인식한다는 의미에서 독자적으로 길러낸다는 의미에서 통시적인 결합체이다. &lt;br /&gt;
하지만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은 공시성과 통시성의 공존을 모순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이퍼 싱크로나이제이션, 즉 초동기화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매스미디어 프로그램이 전-개체적 저류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개체가 특이하게 그 내용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인류학자인 앙드레 르루와-구랑(Andre Leroi-Gourhan)이 사회․민족적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한 것은 오늘날 프로그램 표로 대체되었다. 나는 이웃들과 쏙 빼닮은 체험을 하며, 우리는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다. &lt;br /&gt;
&lt;br /&gt;나르시시즘의 붕괴&lt;br /&gt;
후설은 ‘나’를 ‘일차적 파악(rétentions primaires)’이라고 불렀지만, 시간적인 ‘유출’이 만들어내는 의식이다. ‘일차적 파악’이란 의식의 ‘지금’으로부터 의식이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의 선율 속에서 어떤 음에 잔향되어 있는 바로 직전의 소리는 나의 의식에 경과음으로서 나타난다. 먼저 울린 소리는 선율 속에 영향을 주며, 지금은 지금 속에서, 선율 속에서 유지된다. 바로 앞의 소리가 이어진 소리와 어떤 관계를 만들며, 음정을 만들어 내고, 이어진 음을 ‘구성’한다. 내가 ‘수용하고’,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상과 마찬가지로 (내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청취하는’ 선율이나 ‘소리를 내기도’ 하고 ‘귀로 듣는’ 문장, 또는 ‘행하기도’ 하며 사람에게서 ‘받아들이는’ 행위 등), 나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일차적 파악으로부터 성립된다. &lt;br /&gt;
의식에서의 파악은 ‘선택’을 한다. 나는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일차 파악은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선율(멜로디)에서 아르페지오로 연주한 소리의 연속에서 화성이나 음계가 생겨난다. 글 속의 의미론적(sémantiques)․통사론적(syntaxiques)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알기 쉽게 반복되는 것이 나타나는 흐름 속에서 의식은 각각의 파악에 고유한 방식으로 선택한다. 똑같은 선율을 두세 번 계속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내 의식은 바로 그 선율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종의 ‘여과’를 통해 선택하는 것이다. 이 여과 행위가 ‘이차 파악’이다. 이차 파악은 기억이 보존하는 일차 파악의 상기이며, 일차파악은 상기를 위한 경험의 토대를 만들어낸다. &lt;br /&gt;
의식은 일차 파악과 이차 파악에 의한 여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일차 파악과 이차 파악의 관계는 중층적으로 결정된다. 결정에 관련된 것이 삼차 파악이다. 삼차 파악이란 기억의 버팀목인 사물이나 기억 기술과 같은, 흔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진이나 녹음, 영화나 비디오, 또 하이퍼 산업 시대의 통제사회의 통제적인 인프라가 되는 디지털 기술이다. &lt;br /&gt;
삼차 파악은 예를 들어 알파벳 표기처럼 개인이 마음 내부와 집단 내부의 양쪽에서 개체화하는 과정에서 전-개체적인 저류에 도달하기 위한 버팀목이다. 인간 사회에는 예외없이 이러한 삼차 파악이 발견된다. 개체화를 방향짓는 것이 삼차 파악이다. 개체화란 상징적인 공유이며, 개인의 경험이 흔적에 외재하여,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화된 경우, 삼차 파악은 통제를 위한 기술로 되며, 상징교환은 심대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생산하는 측과 소비하는 측에 어디까지든 하나의 선분이 그어지며, 다양한 의식 시간이 남김없이 초동기화(超同期化)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lt;br /&gt;
사람들의 의식 시간은 엇비슷한 이차 파악이 차지하고 있으며, 마침내 동일한 일차 파악을 선택하게 된다. 모든 것이 더 이상 크게 바뀌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일부러 자기에 대해 말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드물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된다. 집에 틀어 박혀 TV 화면 앞에 앉아 고독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여가라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은 화면을 통해 입수하게 되기에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lt;br /&gt;
위의 상징적 빈곤이 진행된 결과, 나르시시즘이 붕괴하여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는 무질서가 격증한다. 나르시시즘은 병리적 상태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나 우선 일차적으로는 마음, 욕망, 특이성의 기능을 조건짓는 메커니즘이다.[Ce terme s’applique « à la découverte du fait que le Moi lui aussi est investi de libido, en serait même le lieu d’origine et dans une certaine mesure en demeurerait le quartier général », &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Malaise dans la civilisation&lt;/SPAN&gt;, op. cit.] 마케팅은 생산자 측이 제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을 질리지 않고 조장하며, 소비자 측의 욕구도 처음부터 생겨나 욕구의 재생산, 다양화, 계층화의 과정에 끊임없이 조정역할로서 관여한다. 이때 시스템의 기능의 윤활유가 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각각이 품고 있는 욕망의 발현인 ‘실존적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노동이나 소비의 리비도는 제3자가 지배하고 이끈다. 본래 노동이란 승화이며 현실 원리였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분업화된 노동에서는 승화의 쾌락이나 나르시시즘의 쾌락을 맛볼 기회는 감소하며, 타인에게 리비도를 빼앗긴 소비자가 소비에서 쾌락을 느낄 기회도 더군다나 줄어든다. 소비자는 반복강박으로 마비되며 욕망은 어찌할 수 없이 ‘쇠약’해진다. &lt;br /&gt;
통제사회는 규제사회이며[&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Pourparlers&lt;/SPAN&gt;, op. cit. 참조.], AV기술이나 디지털 기술 등, 미적인 감성(aisthesis, 그리스어로 경험을 구성하는 감성을 뜻한다.)에 호소하는 기술을 구사하여 의식 시간이나 심신의 무의식을 제어한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는 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이 전면에 나서게 되며, 하이퍼 대중을 조작하여 개인이 마음 속이나 사회에서 맛보는 감각의 경험을 대체해 버린다. 오늘날 경제 전쟁의 무기에서도 무대가 된 것은 상징적 차원이다. 초동기화 탓에 본원적 나르시시즘이나, 개인이 마음과 사회의 양방향에서 개체화해 가는 과정이 완전히 뿌리 뽑혀지며, 사람들의 과거는 균질화되고 그리하여 개체화의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일인칭 단수형의 ‘나’와 복수형인 ‘우리’의 구별은 상징적으로 취약한 무정형의 비인칭 ‘사람’ 속에서 애매하게 된다. 누구나 똑같은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치 ‘우리’가 두 가지 층으로 나뉘어져 있듯이, 감성의 단층을 우리는 살아 있게 한다. 하지만 상황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모든 것’이 음울한 운명을 어찌할 수 없이 겪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lt;br /&gt;
20세기는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을 최적화한 시대였다. 생산 관리와 투자 관리에서는 정보 컴퓨터 기술이, 소비 관리 및 정치면도 포함한 사회행동 관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각각 개발되었다. 오늘날 두 개의 영역은 서로 융합하고 있다. 소리 높여 주창되고 있는 것은 이미 ‘여가 사회’가 아니다. 개개의 인간의 욕구를 ‘개인화’하는 것이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펠리스 가타리는 개인이 더 한층 하위로 분할되어 가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이성은 인지과학이나 계측공학을 응용한 기술의 지배 하에서 특수성으로 바뀌어 간다. &lt;br /&gt;
이러한 기술은 ‘사용 내용 검색’(user profiling) 등 새로운 수법을 통해서,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파블로프의 방법론도 원용하여 교묘한 조건부여의 수법을 짜고 있다. 어떤 책의 독자에게,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를 알려 주면서 그 사람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검색 엔진이 검색 결과 화면의 맨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조회 빈도가 많은 사이트를 내거는 것도 사이트 조회수를 더 늘리려는, 사이트 조회율을 고도로 높이는 것을 촉진하는 기술이 되었다. &lt;br /&gt;
&lt;br /&gt;특이성의 문제 &lt;br /&gt;
산업 자동화가 생산 공정의 기억 기술의 중추를 차지하게 된 오늘날, 동종의 디지털 기기가 동일한 규격으로 생산라인의 모든 장면을 관리하게 되었다. 마이크로컴퓨터 방식의 제품도, 통신판매로 고객과 공장을 직접 연결하여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원격 조작에 의한 공장 생산 관리도, 언제 어디서든 같은 기기, 같은 규격이다. 디지털 기기는 마케팅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 소비의 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벤야민이 상상한 것과는 반대로 하이퍼 대중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것은 대중의 나르시시즘의 광범위한 전개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집단의 나르시시즘의 대규모 붕괴이다. 이러한 사태가 의미하는 것은 단적으로 “예외자의 파괴”이다. 본원적 나르시시즘을 일소한 결과 도처에서 무리(떼)의 생활방식이 횡행하고 있다. &lt;br /&gt;
개인이 마음의 수준과 집단 내의 쌍방향에서 개체화하는 과정에서는 집단의 상상력이나 개체의 다양한 역사가 서로 묶이게 된다. 시간 소비 제품은 대중 규격을 대리품으로서 강요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의 실천의 특이성이나 개체의 실천에 머무는 예외적인 성격이 조금씩 축소되어 간다. 또한 예외도 하나의 규칙이다. 다만 입으로는 아무 것도 언표하지 않는 규칙인 것이다. 예외는 변칙적인 장면과 조우할 때 처음으로 예외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즉 매뉴얼로 만들 수도, 예측도 할 수 없다. 세부적 차이에는 눈을 감고 무엇에든 대응할 수 있는 규칙을 행하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예외자를 신으로 귀속시켰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이야말로 특이한 것은 서로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규칙 그 자체이며, 규칙을 절대적으로 초월한 존재였다. 그런데 마케팅 덕분에 특이성은 핵심이 빠져 버려, 바라는 대로 비교나 분류할 수 있는, 내용물이 텅 비어 있는 특수성으로 바뀌어 버렸다. 소비의 하이퍼 대중화와 소비 기호의 분화를 통해 리비도 에너지를 농락했던 지금에서는 이제 완전히 다루기 쉬운 존재가 되어 버렷다. &lt;br /&gt;
여기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리비도 경제와는 완전히 반대의 사태이다. 원래 특이성, 예외자만이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게 예외라고 비치는 것만이 나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범용성은 욕망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강박만이 범용성을 지향한다. 마음은 에로스와 죽음 충동이라는 서로 끊임없이 뒤섞이는 두 가지 경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산업과 마케팅은 소비 욕망의 발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 충동을 강하게 하고, 반복강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자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문화산업과 마케팅은 삶의 욕망에 있어서 큰 장벽이 된다.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에서의 소비 행동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과정은 자멸적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기 면역 이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lt;br /&gt;
어떤 사물의 특이성을 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 물건이 나라는 특이성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하는, 나의 특이성이 무엇인지를 사물이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다. 자본이 우리들의 행동을 하이퍼 매스화한다면, 자본은 당연히 욕망의 하이퍼 매스화를 목표로 할 것이다. 개인도 어쩔 수 없이 무리가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예외자는 전적으로 타도해야 할 적이 될 것이다. 이 점은 산업 민주주의 덕분에 가축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갈파한 니체가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것이다. 산업 사회의 정치구조가 품은 진정한 곤란인 것이다. 예외자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는 스크린을 엄중한 관리 하에 두었을 때 타나토스[죽음]의 논리, 즉 엔트로피의 그림자가 세계를 넓게 에워싸기 시작한다. 타나토스란 질서가 무질서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나토스는 열반의 상태이며, 모든 것이 평준화로 향한다. 예외자가 ‘욕망의 욕망하는’ 대상인 한, 타나토스는 모든 예외자를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lt;br /&gt;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의 근본부분이 프랑스가 주창하는 ‘문화적 예외’[WTO 창설에 도달한 우루과이 라운드 이래, 문화산업을 무역 자유화의 예외로 할 것을 주창해 온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가리킨다.] 논의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조치를 서둘러 강구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천박한 정치구호 때문에 초점을 희미해질 뿐이다. 이 논의의 주창자들은 예외라는 문제를 좁은 시야에서만 고찰할 뿐, 하이퍼 산업사회의 진전이나 그 귀결인 상징적 빈곤으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과제에 제대로 임하려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예외를 둘러싼 문제는 내일의 지구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예외’라는 논의는 예외 조치를 국제통상 협정의 틀에서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이러저러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산업 부문, ‘이익 단체’의 문제만을 채택할 뿐, 본질적인 문제에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다. &lt;br /&gt;
이것은 문화부가 관할하는 이른바 ‘문화’의 미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이퍼 산업사회는 일상생활의 존재방식에 아주 상세하게 지시를 내리며, 일상생활을 모든 측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업사회의 생태계가 품은 최대의 불안 요인이 있다[또한 ≪우연의 철학. 엘리 뒤렝과의 대화≫(&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 lang=EN-US&gt;Philosopher par accident. Entretiens avec Elie During&lt;/SPAN&gt;), Galilée, Paris, 2004을 참조]. 인간 집단이 전에 없었던 규모의 대량 파괴를 초래하는 방법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인류의 정신이나 지성, 정동이나 감성은 전면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lt;br /&gt;
리비도 붕괴의 원인인 혼란은 정치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가들은 자신들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정치에 마케팅 기술을 도입했다. 그 점에서 투표자들은 다른 상품에 싫증을 내듯이 깊은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lt;br /&gt;
시민과 시민 대표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눈을 떠야 한다. 특이성의 정치가 지닌 문제의 비중은 지금 결정적인 것으로 되었다. 특이성의 정치가 없으면 정치에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특이성의 정치만이 극우 내셔널리즘이나 모든 원리주의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장래의 하이퍼 산업사회에 욕망을 복권시키는 것. 혼란의 확대를 미리 저지하는 것. 이것을 위해서는 정치 스스로가 욕망을 솔선하여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3월 28일의 통일지방선거에서 현정권에 반대표를 던지고, 어떤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정당에게 비판의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은 리비도 경제의 전면적인 파괴를 우려하여 전혀 충족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을 갈망했던 사람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말했던 ‘우애’는 리비도 경제라는 나무에서&amp;nbsp;향긋하고 잘 익은&amp;nbsp;과실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lt;br /&gt;
2002년 4월 21일의 대통령 선거부터 2004년 3월 28일의 통일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진 운동에서는 정치계급 전체가 상징적․심리적 빈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정치적 빈곤을 상대로 하여 단호하게 싸우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특히 문화와 연구에 관한 문제에서, 정부가 괴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는 부차적인 정치적 문제 등이 결코 아니며, 바야흐로 정치의 진수이다. 리비도와 마찬가지로 문화야말로 산업이 궁극적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요새이다. 때문에 정치는 무엇보다도 우선 문화의 정치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것은 문화부가 문화로 생계를 영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는가 아닌가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하이퍼 산업자본주의는 사회조직이라는 개체가 마음과 집단의 양 측면에서 개체화하기 위한 기반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해 버린다. 문화의 정치는 그 파괴에 대해서 근본적인 비판을 들이댄다. &lt;br /&gt;
&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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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카이로스 상겔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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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Feb 2011 00:30: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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