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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케쥴의 가호</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7 May 2012 22:25:51 +0900</pubDate>
		<generator>Tistory 1.1 (http://www.tistory.com/)</generator>
		<managingEditor>syzipus</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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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자꾸 역사가 반복되고 지랄인거냐?</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11</link>
			<description>&lt;P&gt;기억조차 까마닥흔 중딩시절, 우리 동네엔 대단히 다양한 메뉴를 구비하고 있었고 우동 종류가 특히나 맛있었던 분식집이 있었다. 지금은 모 병원의&amp;nbsp;산부인과 의사 선생인 동시에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모 대학 의대의 교수가 된 친구 녀석과 한참 탁구에 미쳐 돌아다니던&amp;nbsp;가슴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그 녀석이 나보다 탁구를 더 잘쳤기 때문이다. 그 어느 날, 바로 그 분식집에서 탁구를 진 사람이 냄비우동을 사기로 하고 내기 탁구를 친 적이 있었더랬다. 3:1로 패배... 그러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땡깡을 부리고 탁구는 계속 되었고 결국 네시간이나 탁구를 치다가 (당시 세트 스코어를 따지면 대략 3:1의 페이스로 내가 뒤지고 있었을 것이다. 네 시간 동안 몇 세트를 쳤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마지막 한 세트를 이기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기로 하고 탁구장을 나서기로 했다. 정말 운 좋게도 내가 이겼고 탁구비는 같이 냈지만 난 돈을 들이지 않고 나름 근처 최고의 맛이었던 냄비우동을 처묵처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난 그 탁구 게임을 &quot;내가 이기는 시점까지 하고 그 때 이긴 사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것&quot;으로 할 생각이었다. 이 이야기인 즛, 어차피 난 땡깡을 써서 그 날의 탁구 경기를 끝내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놈은 그런 내 마음 속의 생각을 알 턱이 없다.&lt;/P&gt;
&lt;P&gt;답은 간단하다. 이석기와 김재연이 사퇴하고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의석을 잃더라도 최소한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면 된다. 물론 그 정도로는 진보의 외연의 확대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진보의 외연의 확대라는 통합진보당이 가지고 있던 목표는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불가능해진 목표였다. 하지만, 주사위들을 제외한 통합진보당의 다른 당원들은 설득할 수 잇을 것이고 극적으로 정파가 뭔지도 모르고 통합진보당에 입당하거나 그들을 지지한 뉴비들은 조금이나마 돌려세울 수 잇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과거부터 주사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나름 극적인 &quot;만화적 해피엔딩&quot;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주사위들은 항상 &quot;이길 때까지 한 번 더!&quot;를 언제 어디서나 전후맥락과 아무 상관없이 외치던 사람들이다. 애초에 룰은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아무리 양보해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중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것이 경선에 들어가기 전에 만든 룰이었다. 그러나, 그 룰을 어긴 것도 그들 자신이다. 그리고는 룰을 안지킨 것이 너희들이라 하니 믿을 수 없단다. 그리고 이젠 또 다른 룰을 제시한다.&lt;/P&gt;
&lt;P&gt;그래! 바로 그 것이다. 그들은 1985년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스포츠 머리를 하고 다니던 중딩 시절에 나보다 탁구 실력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던 친구 녀석과 탁구 게임을 했을 때 내가 했던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어... 하다 결국 내게 냄비우동을 사고야 말았던 한 때 가장 친했던 내 친구녀석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사고체계 하에서 &quot;그런 식의 지 꼴리는 대로의 승부&quot;라는&amp;nbsp;것은&amp;nbsp;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두 가지의 길이 가능하다. 하나는 &quot;내 친구처럼 어리바리하게 결국 당&quot;하거나 &quot;이 색히들 버릇을 고쳐놔야지&quot;라고 그들에게 날선 대응을 하거나... 그러나, 여기서&amp;nbsp;1985년 그 날의 나와 지금의 사태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 &quot;결국 내가 이기는 것&quot;외에 다른 선택지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제 심지어 자기 하나를 위해 총당원 투표를 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쿼바디스 도미네... 니미 어디로 가잔 말이냐? 어차피&amp;nbsp;주사위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 따위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자신들이 지금&amp;nbsp;가지고 있는 만큼의 당내에서의 지분을 잃지 않는 것! 그 것을 위해서라면 이리로 저리로 어디든지 끌고 다닐 각오는 하고&amp;nbsp;있을 것이다. &lt;/P&gt;
&lt;P&gt;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 끊어질 것이냐고? 이미 20년 이상 주사위들을 겪어본 나같은 사람들이나 2000년 이후라도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대립각을 세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quot;그 자식들은 애초 그런 놈들이랴!&quot;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외에 딱히 깔쌈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2000년 민주노동당 입당원서를 쓰던 시점에&amp;nbsp;원서를 가져왔던 그 누군가에게 &quot;무슨 일이 있어도 주사위들은 절대 끌어들이지 말길 바란다&quot;고 이야기했던 것은 선배의 충고나 좀 더 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칙에 의한 권고사항 따위가 아니라 그저 &quot;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은 걔들은 애초부터 그런 놈들인데 뭐...&quot;라는 냉소돋는 넋두리를 하게 될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지금 내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주변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기존의 정당들에겐 별 희망이 보이지 않고 진보를 이야기하는 정당은&amp;nbsp;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통합진보당에 입당한 &quot;뉴비&quot;들 때문이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을 사람들은 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들 같은 &quot;나름 선수&quot;들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다독일 수 잇는 선의 어떤 것일 것이다.&lt;/P&gt;
&lt;P&gt;실망하지 말자느니, 그래도 희망은 있다느니, 언젠간 주사위들도 바뀔 것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은&amp;nbsp;그냥 닥치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이야 말로 &amp;lt;모여라 꿈동산&amp;gt;식의 결말 아니던가? 다만 진보정당이라는 것의 Representation이 가지는 상투성을&amp;nbsp;무엇을 통해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은 가장 큰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니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어렵더라도 지금 통합진보당 내에서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이석기와 김재연을 솎아내는 방식으로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만지감으로 한 가지 이야기하자. 솔직한 내 심정? 그래... 솔직한 내 심정은 노심조가 진보신당을 나갈 때 심정적으로도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일 법적으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라도 통합진보당에 소속감이 잇었다면 겼고 있을지 모르는 악몽을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 세상은 가끔은 내게 우호적인&amp;nbsp;것 같기도 하지 않은가? 빌어먹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일정거사</category>
			<category>땡깡</category>
			<category>민주노동당</category>
			<category>빌어먹을 놈들</category>
			<category>주사위</category>
			<category>탁구의 왕</category>
			<category>탁구의 황제</category>
			<category>통합진보당</category>
			<author>일정거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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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May 2012 21:51: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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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들의 환호를 떠올리는 것이 내겐 악몽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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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꼭 부끄러운 일만을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라도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남들이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면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는 일이 있다.&lt;/P&gt;
&lt;P&gt;&quot;나 서울 LG 트윈스 팬이거든!&quot;&lt;/P&gt;
&lt;P&gt;꼬꼬마였던 시절 당시엔 MBC처청룡으로 불리던 팀이 프로야구 두번째 시즌의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을 때 흔히들 이야기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 &quot;하구라&quot; 하일성을 제외하곤 모든 사람들이 청룡의 승리를 예견했다. 물론 청룡의 팬이던 나는 그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수십년만에 한 번 나온다는 유격수인 김재박이 건재했고 당시 공화국에서 김일권과 함께 가장 빠른 발을 자랑한다던 이해창이 있었고 장명부의 투수 3관왕을 저지했던 ERA 1위인 하기룡과 승률 1위인 이길환이 있었고 오영일도 유종겸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화려한 멤버가 있었다는 것 그 것 뿐이었다. 김인식이 홈런을 치기도 했다. 1차전에서 그래서 진 것인지도 모른다. 평상시 안하던 짓을 하면 좋지 않은 징조일 수 있다니...&lt;/P&gt;
&lt;P&gt;그나마 그 시리즈가 5차전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4차전 다 이긴 경기에서 하기룡이 3점 홈련을 맞고 그 경기를 비긴 덕분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5차전은 8대 1로 박살이 나지 않았던가? 그 후로 KBO에 등록된 팀 명치칭에서 MBC 처청룡이 옶어질 때까지 한국시리즈는 커녕 86년부터 생긴 플레이오프에도 올라간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눈앞에서 한국시리즈를 날려버린 그 해 어디 가서 MBC 처청룡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단히 쪽팔린 범주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20여년이 지난 후에 일어날 일들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닐 줄은 그 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니 꿈도 꾸지 않았다. 그 후로 청룡은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포스트 시즌에 올라갈만한 성적인 3위권은 항상 올렸고 팀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88년과 89년엔 남들 1년 하는 수험생활을 2년 하느라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lt;/P&gt;
&lt;P&gt;그리고 결정적으로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amp;nbsp;청룡이라는 그 멋진 이름이 트윈스라는 다소 표절작 비슷한 이름으로 바뀐 후 한참은 잘 나갔기 때문이다.&amp;nbsp;.라고 해봤자 창단 첫해에 우승한 이후엔 또 2년여를 죽쒔더랬다. 특히나 별다른 문제는 없어보이던 92년 시즌에 감독까지 새로 바뀌고 나서도 결국 6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을 때의 열패감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표현불가능한 것이었다. 90년 우승 후엔 어디 가서도 특정 프로야구 팀의 팬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던 적이 잠시 있었다. 그러나 91년의 엄청난 대삽질-그 해 결국 신생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에게 겨우 상대전적에서 앞서 6위를 한 바로 그 시즌에 정삼흠과 김용수는 시즌 중에 1선발과 마무리의&amp;nbsp;보직을 맞바꾸는 희대의 사건까지 있지 않았나...-해대고 82년에는 그 해 말에 팬으로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주사위를 잘 던져 1차 지명 우선권을 획득하고 그 우선권으로 이상훈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외엔 없었다.&lt;/P&gt;
&lt;P&gt;그 때는 몰랐다. 92년 희망과 함께 시작했던 트윈스의 새 시즌이 종료 후엔 통곡의 강물을 만들 줄을... 그러나 그 것은 또 다른 통곡의 강에 비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92년 3월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91학번의 모씨와 다른 후배들은 오세철의 선거캠프에 전격적으로 합류해 &quot;진보후보&quot;의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영원한 안주거리 주사위들은 신계륜의 선거캠프에 합류하여 그들이 항상 강조하는 &quot;승리적 관점&quot;의 선거를 즐기고 있었더랬다. 방학 때 학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던 이 몸은 그저 후배들의 노고를 &quot;말로만&quot; 치하할 뿐이었다. 결과는? 뭐 설마 그런 걸 진짜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란 건 나도 안다. 예의상이라도 그런 건 반드시 묻지 말아야 한다. 그 것이 당신들의 건강을 위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오세철의 선거는 그 해 흔히들 이야기하는 92년 좌파의 대참패를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 정도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lt;/P&gt;
&lt;P&gt;과 선거에서 91학번 모씨가 생각 외의 큰 차이로 떨어진 것은 애교였다. 문제는 과 선거에서부터 시작해서 학교 선거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학생회 선거가 아니라 주사위들이 이야기하는 범&quot;만주&quot;단일후보와 좌파들이 이야기했던 &quot;민중대통령 후보&quot;의 대통령후보 전술에 대한 투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총학생회장 선거 중에서 그 정도로 완벽하게 깨진 선거는 없었다. 평소에 우리들이 &quot;도서관 PD&quot;라 부르던 &quot;잠재적 우군&quot;들 중 상당수도 &quot;단일후보전술&quot;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amp;nbsp; 하지만 가장 황당했던 것은 겨우 26만표보다는 27만표에 더 가까운 득표를 한 백기완 후보 진영에 김대중의 대통령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라던 주사위들의 우는 아이&amp;nbsp;뺨 때리기였다. 아! 그리고 우리들의 진보정치의 현실정치 입성의 1라운드는 그렇게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1/2의 확률에 미래의 희망을 걸었던 서울 LG 트윈스의 92년 겨울과 우리들의 92년 겨울은 아주 교묘하게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일정거사</category>
			<category>92년 대선</category>
			<category>민중대통령</category>
			<category>빌어먹을 놈들</category>
			<category>서울LG트윈스</category>
			<category>주사위</category>
			<author>일정거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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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Apr 2012 17:30: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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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선의 결과</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9</link>
			<description>&lt;P&gt;불철주야 명랑사회를 위해 애쓰는 동지들과 주변의 지지자들에게-있기는 한걸까?-조금은 미안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선거라는 단어와 항상 짝을 이뤘던 것은 &quot;허무주의&quot; 라는 망령이었다. 물론 지금도 누구들처럼 &quot;너무나도 선명한 목적을 가지고 투표장으로 가열차게 향하는&quot; 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스스로 이 허무라는 것과 나름대로 피나는 사투를 벌였다 생각한다. &lt;/P&gt;
&lt;P&gt;누군가들의 이야기처럼 &quot;4월 11일은 심판의 날&quot;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꼼빠들이나 노빠들의 이야기처럼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에게 심판을 하려면 그 것은 투표라는 행위가 아닌 이명박에 대한 테러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버릇처럼 이야기했듯 &quot;이명박 하나 죽어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그를 처치하겠다.&quot;는 것이 변치않는 내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인 연밍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88년도 도 3 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남한을 뒤덮은 &quot;5공 청문회&quot;를 보며 어리숙한 고삐라의 눈에 &quot;궁회의원이 전부 노무현 같다면 이 세상은 정말 좋아질 것&quot;이라는 환상을 가지기도 했으니...&lt;/P&gt;
&lt;P&gt;그러나,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어떤 상황이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 사이의 노무현은 절대 좋아할 일이 없을 것이다. 누가 때려 죽인다고 하더라도말이다. 노빠들이 마치 태평성대였던 것으로 떠들어대는 그 시기에&amp;nbsp; 대추리의 야만이 있었고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일련의 코미디가 있었으며 노동에 대한 탙ㄴ압은 여전히 존재했고 신자유주의적 패권주의의 완결잉라 할 수 있는 FTA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도 그 때 아니던가? 아마도 노무현의 시대가 우리에게 준 것은 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나 호불호도 있겠지만, &quot;대의 민주주의&quot;라는 것이 가지는 기본적인 한계일 수 있을 것이다. &lt;/P&gt;
&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선거에 대한 개인적인 관념들과 스스로 싸우면서 이번 선거에 대해 부여한 의미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 김순자 후보를 국회에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다소 주의주의적인 기대 때문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최순영도 단병호도 원내에 입성한 적이 있었으나 그들의 경우는 김순자 후보의 경우와 다르다. 최순영이나 단병호는 국회에 들어갔을 당시 이미 &quot;직업적 운동가&quot;였고 운동판에서 나름의 위치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입성이 국회에서 계급정치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이라 한다면 김순자 후보가 국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quot;노동자의 국회 입성&quot;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물론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한두번 해보는 선거도 아니고 진보신당의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김순자후보 자체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를 방기할 수 없는 것이다. 몇 시간 남지 않았다. 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일정거사</category>
			<category>계급정치</category>
			<category>김순자</category>
			<category>진보신당</category>
			<author>일정거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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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Apr 2012 16:58: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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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스케줄에 대한 짧은 이야기</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8</link>
			<description>&lt;br /&gt;
명랑사회를 논함에 있어 스케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함은 말할 필오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팀블로그의 제목이 말하듯 스케줄에 대한 탁월한 이해 수준을 우리의 행구교주나 구리좌사가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0.00000001g도&amp;nbsp;남아있지 않을&amp;nbsp;테지만, 이 팀블로그가 현재 공개로 되어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 한 번 정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생각되는 바, 아주 간략하게&amp;nbsp;이야기하고자 한다.&lt;br /&gt;
&lt;br /&gt;1. 스케줄의 어원&lt;br /&gt;
스케줄이란 단어를 쓰게된 것은&amp;nbsp;어언&amp;nbsp;16년 전인 1996년의 일이다. 일정거사 과도하게 일찍 등교하여 1교시 순업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레닌 선생의 호출이 있었다. 레닌 선생이 생존해 계시지 않은 관계로 레닌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일정거사의 꿈을 통하여&amp;nbsp;선생의 가르침을 현시하시고 긴 뒷머리를 날리시며 사라지셨고 일정거사는 그에 과도하게 감동하여 눈물과 함께 타액까지 흘리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레닌 선생의&amp;nbsp;현시하신 진리를 얻는데는 굉장한 비용이 필오했으니 그 것은 1교시 수업의 결석이었다는 설이 있다.&amp;nbsp;대부분 범인들은 지각이나 결석을 게으름의 산물로 여긴다. 그러나, 그 것은 범인의 이야기이고 때로는 과도한 부지런함이 지각이나 결석의 원인이 된다는&amp;nbsp;점을 일정거사는 그 사건을 계기로 깨달았다 한다. 심지어 일설에 의하면 레닌 선생의 가르침이 바로 그 것이었다고도 한다.&amp;nbsp;&lt;br /&gt;
&lt;br /&gt;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가지 생각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왜 사회적 통념, 혹은 도덕률과도 같이 여겨지던 &quot;게으름이 지각이나 결석의 원인이다.&quot;라는 것이 현실을 100%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가? 만일 일정거사가 그 날 레닌 선생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레닌 선생의 호출을 거부했다면 일정거사는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 사건이 있은 후 무려 일주일간 일정거사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식음에 전념하며 고민했다 한다. 무려 일주일을 식음에 전념하며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quot;그 날의 수업은 어차피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quot;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가 깨달은 것은&amp;nbsp;일정거사의 일생에서 1996년 늦가을의 그 어느 날 아침의 1교시 수업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amp;nbsp;중요한 것은 일정거사는 그 날의 수업이 그 자신에게 없었다는 것을 미리 예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생 전체에서 그 날의 1교시 수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amp;nbsp;지각이라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스케줄은 이 시점에 일정거사의 머리에 들어오기 시자갛ㄴ 것이다.&amp;nbsp;자신의 운명은 &amp;nbsp;밤손님과도 같이 소리소문 없이 대가와 일생의 중요한 순간에 &amp;nbsp;극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그 것을 거스를 수 없다. 평소에도 당연히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이지만 그 누구도 그 중요성은 커녕 존재도 깨닫지 몫하다가 그 어느 순간에 존재의 위대함을 개인에게 알려주는 바로 그 것! 그 것을 일정거사는 스케줄이라 부리그로 했다. 스혹자는 이 걳이 주역을 바탕으로 한 팔자와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라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팔자는 인간의 운명이 여덟가지의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고 보는 반면에 스케줄은 항상 지 꼴리는 바 그대로의 경로를 통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케줄은 운명과는 도대체 무슨 차이점을 가지는가? 라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케줄은 존재 자체가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운명은 문학이나 예술의 소재가 될만한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반면 스케줄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운명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오늘은 여기까지...&lt;br /&gt;
&lt;br /&gt;</description>
			<category>일정거사</category>
			<author>일정거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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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8#entry8comment</comments>
			<pubDate>Wed, 29 Feb 2012 17:22: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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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무현, 인간의 긍지</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7</link>
			<description>&lt;p&gt;&amp;lt;종말 전 10억년&amp;gt;이란 SF소설이 있다. (지금은 더 긴 제목으로 바뀐 개정판이 나와 있는데 예전의 이 짤막한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범우주적이고 초자연적인 어떤 힘 또는 세력에 의해 특정 연구 중단의 외압을 받는 구 소련 과학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도 연결되는 불가해한 압박 속에서 번민한다. '자유'와 '의지'를 버리고 압력에 굴복하는 자신을 스스로 견딜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을지. 나중에는 아내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는다. 여기서 굴종하면 당신에게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걱정스럽다고.&amp;nbsp;&lt;/p&gt;
&lt;p&gt;이런 모습은 한국인이 읽으면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는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것보다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을 아내와 연관시켜 걱정한다. 현대 한국에서라면 양심과 신념을 위해 가정의 안위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가장이 오히려 부인에게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아내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 되어도 이해하고 계속 사랑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긍지'에 대한 두 문화의 태도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여기고 넘어갔었다.&lt;/p&gt;
&lt;p&gt;인간 노무현의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해 보려 하면서 나는 저 소설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노무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구 소련 과학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다른 관점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한국인들과는 '인간의 긍지'에 대한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amp;nbsp;&lt;/p&gt;
&lt;p&gt;살아오면서 그보다 더한 숱한 난관을 견뎌낸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까닭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직접소환조사 후에도 지지부진한 검찰의 수사는 언뜻 그리 불리해 보이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울만한 사람으로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amp;nbsp;&lt;/p&gt;
&lt;p&gt;그러나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노무현의 긍지는 무너진다. 무죄 판결을 받아도 '부인과 자식에게 죄를 떠넘기고 자신은 몰랐다고 하는 구차한 남자'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 비리 규모가 어떻든 '깨끗한 척 했지만 결국 전두환,노태우나 별 차이 없는 인간'으로 조롱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사법처리가 아니라 모욕과 딱지 붙이기에 있었다. 그 딱지는 그를 구별하는 딱지가 아니라 '너도 우리와 똑같잖아'라는 동일화의 딱지였지만 말이다. 법정투쟁으로는 그가 함정을 벗어날 수 없었다.&amp;nbsp;&lt;/p&gt;
&lt;p&gt;결국 그가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살아남는 모든 길은 그 추잡한 동일화의 딱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때, 그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나는 다르다'고 선언하고 인간의 긍지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럼으로써 '더한 놈들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애꿎은 그는 죽었다'는 차별이 완성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그의 선택이다&lt;/p&gt;
&lt;p&gt;노통은 '29만원 밖에 없다'는 뻔뻔한 대머리나 '살아오면서 작은 실수도 했지만 대통령이 되기에 부끄러운 일은 결코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다'는 전과 14범처럼 인간의 긍지가 뭔지 모르는 족속들과는 그 종자가 다른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것을 증거하려 했다. 그는 그렇게 사라진 조선말기 지사적인 죽음, 수치와 굴욕보다는 긍지와 명예를 택하는 죽음을 21세기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재현했다. 부디 영면하시길.&amp;nbsp; &lt;/p&gt;
&lt;div class=&quot;autosourcing-stub&quot;&gt;
&lt;/div&gt;
&lt;p&gt;&lt;/p&gt;
&lt;br /&gt;
&lt;em&gt;&lt;font color=&quot;#7293fa&quot;&gt;*5/24 쓴 글을 다시 올림.&lt;/font&gt;&lt;/em&gt;</description>
			<category>행구교주</category>
			<author>노토리</author>
			<guid>http://schedule.tistory.com/7</guid>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7#entry7comment</comments>
			<pubDate>Mon, 01 Jun 2009 22:59: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모든 것은 그대로인데</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6</link>
			<description>&lt;font size=&quot;2&quot;&gt;1.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827093349&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직도 이 땅에 살려면 '저 지하 땅끝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온몸으로 투쟁'해야 하고&lt;/a&gt;,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820154657&amp;amp;s_menu=%B9%AE%C8%AD&quot; target=&quot;_blank&quot;&gt;메달 땄다고 퍼레이드도 해야하고&lt;/a&gt;,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826161426&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노련이라는 사회주의 조직에 국가보안법 적용도 받아야 하고&lt;/a&gt;. 막걸리 마시다 대통령 욕하면 잡혀가고, 권력 잡으려고 사람 죽이고, 학교다니다 군대 끌려가서 소문없이 죽고, 고문받다 죽고, 지금 당장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만, 계속 옛날 이야기들이 재현되는 걸 보면, 세상은 아직 그대로인 거다. 명랑 사회는 아직도 마음 속에 있나보다. &lt;br /&gt;&lt;br /&gt;글을 재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세상이 그대로이니 어쩔 수 없이, 지난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그 때 그 시절, 딴 로그에 썼던 포스트를 꺼낸다. (세상에나, 국보법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것이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lt;br /&gt;&lt;br /&gt;2.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여수사태의 종결 직후, 1달여 만에 초스피드로 만들어 졌다. 심의중이었던 11월 16일에 이미 국가보안법 폐기동의안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부결되었다.&lt;br /&gt;&lt;br /&gt;당시 찬성론자들은 &lt;br /&gt;&lt;br /&gt;&quot;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반민주분자는 역적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quot; &lt;br /&gt;&lt;br /&gt;&quot;우리를 (이)법을 세밀히 하여서 물샐틈없이 하여야 한다,'&lt;br /&gt;&lt;br /&gt;&quot;공산도배의 발호에 맞서 국가를 보위하지 못하면후대를 볼 낯이 없을 것.&quot;&lt;br /&gt;&lt;br /&gt;&quot;지역민중들의 강력한 여론은 강력한 입법을 통하여 포악한 도배들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 주류&quot;&lt;br /&gt;&lt;br /&gt;&quot;피를 한폭기 뽑자면 나락을 다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피를 안 뽑을수 있겠는가&quot;(박순석)&lt;br /&gt;&lt;br /&gt;&quot;우리는 이 민주정부를 지지하며 육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만일 이 민주정부를 파괴하고 말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취해서라도 그러한 폭력을 배제하는 데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quot;(이주형)&lt;br /&gt;&lt;br /&gt;당시 국회의 반대론자들은&lt;br /&gt;&lt;br /&gt;&quot;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이다&quot;(조헌영)&lt;br /&gt;&lt;br /&gt;&quot;좌익을 막으려면 좌익에 지지않는 민주주의적인 입법을 해가지고 민족정기를 살려야 한다. 이 법률이야 말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법률이나... 일제의 치안 유지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quot;(노일환)&lt;br /&gt;&lt;br /&gt;&quot;민주주의 헌법은 인민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다수 일어나는 반란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헌법정신은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법률을 우리 자신이 만드는 법이 어디 있는가&quot;(신성균)&lt;br /&gt;&lt;br /&gt;&quot;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과 똑같은 비민주적 제국주의의 잔재이다. 우리가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하는 이 마당에 ... 제국주의 잔재폐물은 용납할 수 없다.&quot;(김옥주)&lt;br /&gt;&lt;br /&gt;(이상은 제 1회 국회 속기록, 105호, 107호, 108호)&lt;br /&gt;&lt;br /&gt;3. 놀랍게도, 아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아닌데 환갑이 다되어가도록 이 놈의 법을 둘러싼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가보위법을 주장한 측과 민주주의를 위해 반 민주 악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측의 대립. &lt;br /&gt;&lt;br /&gt;찬성론자나 반대론자나 근거는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였다. 우스개 소리로 80년의 학살자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지난 60년간 이 법이 보여온 모습은 하등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와는 관련이 없었다.&lt;br /&gt;&lt;br /&gt;60년이 흘러 여전히 민주주의는 표류 중이고, 이제는 그 옛날 국회의원들의 사회 인식조차 못가진 셈이 되어 버렸다.&lt;br /&gt;&lt;br /&gt;p.s 첫 문장에서 링크 건 프레시안 기사중, &quot;이 활동가는 오세철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건 연세대 총장을 포함해 연세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quot;이라며 &quot;경찰이 성과를 내려면
왕년에 오 교수만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의 집도 한 번 압수 수색해보라&quot;고 꼬집었다.&quot;고 나오는데, 그 측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편한 책을 한 권 갖고 있는데, 제목은 후기자본주의와 사회운동의 전망-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lt;/font&gt;</description>
			<category>구리좌사</category>
			<category>KTX 여승무원</category>
			<category>국가보안법</category>
			<category>기륭전자</category>
			<category>민주주의</category>
			<category>올림픽 선수 퍼레이드</category>
			<category>제헌의회</category>
			<author>syzipu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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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6#entry6comment</comments>
			<pubDate>Thu, 28 Aug 2008 11:38: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무엇을 할 것인가?</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5</link>
			<description>1. 학부 시절 인상깊게 읽은 글은 최장집-박명림 선생 라인에서 쏟아져 나온 한국 정치에 대한 거시역사적 분석들이었다. 역사의 흐름을 씨줄로 그 안에서 개인의 모습을 날줄로 엮어, 구조적 변동 속에서 개인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 둘의 상호 작용이 어떤지를 보라는 것이 수업시간의 주문이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광기의 순간과 수동혁명', '변형주의', '미국의 경계'와 같이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표현들은 다 그때 배운 것이다.&lt;br /&gt;
&lt;br /&gt;
2. 교주가 말한 '광기의 순간과 수동혁명'은 한국사에서 직접적인 대중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선거 제도를 중심으로 나타났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4.19, 부마항쟁, 서울의 봄, 87년 6월 민주화 운동, 2004년의 대통령 탄핵까지, 대규모 군중의 집결에는 민주적 선거, 특히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전국민적 열망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최장집 선생의 분석으로 이는 심화된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한다.&lt;br /&gt;
&lt;br /&gt;
3. 우선 비교의 대상으로 정치 발전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자. 서유럽은 선거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 구체적으로 사회적 계급에 따른 투표권의 확대 문제, 즉 부유한 남성에서 남성 노동자 그리고 여성으로(미국의 경우 흑인으로) 투표권이 확대되고 각 계급에서 이를 쟁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 주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정치행위를 결정하는 전통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lt;br /&gt;
&lt;br /&gt;
4. 이에 반해 한국의 보통선거제도는 정치주체들의 행위에 의한 만들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48년의 헌법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제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은 강렬하여, 선거제도 혹은 선거공간을 닫아 버리는 정치적 행위는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는 것이 2000년대까지 한국 정치를 관통하는 현상이었다. 1960년 4.19 혁명,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등, 거리의 정치가 활성화 된 사건의 대부분은 선거와 연결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5. 하지만, 국민의 요구는 거기까지였다. 87년 7-8월의 노동자 대투쟁이 6월과 같은 뜨거운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나, 96-7년 노동법 개악에 대한 총파업 투쟁의 동력이 97년 IMF 한 방에 날아갔던 것이나, 거리의 정치가 경제적 갈등을 이슈로 하는 순간, 동력과 파급력은 특정 집단의 문제로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국민은 보통선거를 지지했지만, 시민은 이익정치를 지지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6. 20세기 중반 이후,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서유럽의 정당주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이익 정치에 기반한다. 아무리 변화한다지만, 그 뿌리는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익 정치는 나와는 상충되는 이익을 가진 타인이 존재하고, 그것이 개인 대 개인의 갈등에 국한되지 않고, 유사한 이익 관계를 가진 개인의 집합으로서 집단 대 집단의 갈등으로 전화하는, 분명한 대립의 선을 갖고 출발한다. 정당은 이러한 이익을 집단적으로 대변하는 기구가 된다.&lt;br /&gt;
&lt;br /&gt;
7. 한국사회에도 이러한 대립의 큰 선은 존재한다. 단일민족국가를 수립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민족 갈등, 체제 안정을 위해 활용된 지역갈등, 그리고 경제적 기회가 비대칭적으로 주어진 사회에서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경제적 갈등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 개의 큰 갈등 선이다. 서유럽은 이 문제가 순차적으로 해결되거나 중첩되지만 결국은 주요한 사회의 갈등이 경제 문제로 귀결되었지만, 한국은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동시 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최장집 선생은 이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묘사했다.&lt;br /&gt;
&lt;br /&gt;
8. 물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제국주의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국가간의 경계를 넘어선 노동 이동이 현저해지며서, 민족국가에 기반한 기존의 정치체제는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갈등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우리에게 여전한 민족 갈등은 북한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내 생각에는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는 그 순간, 북한이 남한 체제보다 우월하다거나 대안이라는 인식은 파산하고 말았다.&lt;br /&gt;
&lt;br /&gt;
지역문제는 호남에 대한 억압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보편적인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난 신한국당-민주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권 교체를 통해서 일정 정도 해소되었다고 할 것이다. &lt;br /&gt;
&lt;br /&gt;
9. 그러니 여전히 우리에게 여전히 문제로만 남았을 뿐, 어떤 식으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갈등은 경제 영역에 있다. 결국은 밥그릇의 문제, 사적 이익의 갈등을 해결할 만한 충분한 장치를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서유럽이 이 문제를 정당으로 해결했고, 그랬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적 제약하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이익 갈등에 기반한 정당정치를 최장집 선생은 주장해 온 것이다.&lt;br /&gt;
&lt;br /&gt;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이익 갈등에 기반한 정당 정치가 아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의 선은 명확하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lt;br /&gt;
&lt;br /&gt;
10. 광우병 사태는 한국에서 공식화된 선거 제도의 문제를 벗어나 개인의 의사가 대규모로 제시된 최초의 정치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기록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에게 공화국은 무엇인가?</description>
			<category>구리좌사</category>
			<category>공화국</category>
			<category>광우병</category>
			<category>비동시성의 동시성</category>
			<category>최장집</category>
			<author>syzipu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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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5#entry5comment</comments>
			<pubDate>Thu, 31 Jul 2008 13:26:29 +0900</pubDate>
		</item>
		<item>
			<title>87년 체제의 종언? NL/PD의 종언?</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4</link>
			<description>&amp;nbsp;이번 대선과 함께 이른바 '87년 체제'의 종언을 여기저기서 이야기한다. 최장집, 손호철, 조희연 등등의 학자들이 나름대로 87년 체제를 정의내렸단다. 하지만 무식한 월급쟁이인 내가 그것까지 따라잡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87년 이후 한국사회를 움직인 '체제' 혹은 '질서'가 무엇인가는 대충 감을 잡을 듯 하다.&lt;br /&gt;&lt;br /&gt;&amp;nbsp;87년엔 6월 항쟁(민주화 운동)과 6.29선언(권위주의 세력의 타협) 그리고 7,8,9 노동자 대투쟁(노동운동의 발흥과 제한)이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 주류정치 질서는 '민주화 세력vs권위주의 세력의 대립 구도'와 '지역구도'라는 두가지 축이 겹쳐지면서 흘러갔고, 노동/진보 세력은 장외에 남게 되었다. 이 두 축이 여러번 엇갈리면서 3당합당, DJP연합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lt;br /&gt;&lt;br /&gt;&amp;nbsp;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반민주의 구도는 종언을 고했으며 지역구도도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의 보수적 기류는 변화가 없었고, 호남은 표 결집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오히려 고립이 심화되긴 했다. 그렇지만 전통의 지역맹주들은 사라지거나 위력을 상실했고 앞으로 지역구도가 예전같은 파괴력을 가지진 못하리라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lt;br /&gt;&lt;br /&gt;&amp;nbsp;주류정치질서에서 이 두가지 축이 87년 체제 혹은 질서라 한다면 이른바 진보세력, 운동세력에게 87년 체제란 NL/PD의 대립구도일 것이다. 이 대립구도도 이제 종언을 고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이 대립구도의 격화로 나타날 것이다. 주류질서의 87년 체제에 묻혀 사실 NL/PD의 대립은 격렬한 논쟁으로 만개하지 못하고 억눌리거나 의도적으로 은폐되어 왔다. 비판적 지지와 같은 예들이 민주/반민주의 구도에 진보진영이 묻혀있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잠깐 사구체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진 듯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리그'였다. 마치 무림비급처럼 소수의 인자들에게만 은밀히 전수되면서 제대로 성장,발전하지 못한 것이 진보진영의 노선갈등이었다. 대선 후, 민주노동당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홍은 이 대립구도를 오픈하여 발전적으로 해소(?)시키는 과정의 초입이 아닌가 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description>
			<category>행구교주</category>
			<category>87년 체제</category>
			<category>NL/PD</category>
			<category>민주노동당</category>
			<category>비판적 지지</category>
			<author>노토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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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4#entry4comment</comments>
			<pubDate>Sun, 06 Jan 2008 23:24:3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이 땅에 살기 위하여</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3</link>
			<description>&lt;font size=&quot;2&quot;&gt;여느 해 연말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아, 베토벤 9번 합창을 들으며 세계시민의 꿈을 꾸어보다,&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20071231211927&quot; target=&quot;_blank&quot;&gt;프레시안의 신년 만평을 보고.&lt;/a&gt;&lt;br /&gt;&lt;br /&gt;박노해의 시가 떠오른다.&lt;br /&gt;&lt;/font&gt;&lt;blockquote&gt;&lt;font size=&quot;2&quot;&gt;이 땅에 살기 위하여 &lt;br /&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박노해&lt;br /&gt;&lt;br /&gt;찬 시멘트 바닥에 스치로폴 깔고 &lt;br /&gt;가면 얼마나 가겠나 시작한 농성 &lt;br /&gt;삼백일 넘어 쉬어터진 몸부림에도 &lt;br /&gt;대답 하나 없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 &lt;br /&gt;일본땅 미국땅까지 원정투쟁을 떠나간다 &lt;br /&gt;&lt;br /&gt;이 땅에 발 딛고 설 자유조차 빼앗겨 &lt;br /&gt;지상 수십미터 아찔한 고공농성 &lt;br /&gt;지하 수백미터 막장 봉쇄농성 &lt;br /&gt;식수조차 못 먹고 말라 쓰러져가며 &lt;br /&gt;땅속에다 허공에다 울부짖는다 &lt;br /&gt;&lt;br /&gt;이 땅에 살기 위하여, &lt;br /&gt;햇살 가득한 거리에 숨어 숨어 &lt;br /&gt;수배자로 쫓기고 쇠창살에 갇혀가며 &lt;br /&gt;우리는 절규한다 기꺼이 표적이 되어 &lt;br /&gt;뜨거운 피를 이 땅위에 쏟는다 &lt;br /&gt;&lt;br /&gt;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 &lt;br /&gt;우리의 노동으로 일떠세운 이 땅에 &lt;br /&gt;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lt;br /&gt;저 지하 땅끝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lt;br /&gt;우리는 쫓기고 쓰러지고 통곡하면서 &lt;br /&gt;온몸으로 투쟁한다 피눈물로 투쟁한다 &lt;br /&gt;이 땅의 주인으로 살기 위하여&lt;/font&gt;&lt;/blockquote&gt;
&lt;font size=&quot;2&quot;&gt;아, 시인은 도사가 되어버렸고, 가수는 여기저기 노래를 팔러 다닌다.&lt;br /&gt;&lt;br /&gt;2008년에는 야만과 환멸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을까.&lt;br /&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구리좌사</category>
			<category>새로운 희망</category>
			<category>이 땅에 살기 위하여</category>
			<author>syzipu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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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edule.tistory.com/3#entry3comment</comments>
			<pubDate>Mon, 31 Dec 2007 22:32:11 +0900</pubDate>
		</item>
		<item>
			<title>환멸의 시대, 짱돌의 귀환</title>
			<link>http://schedule.tistory.com/2</link>
			<description>&lt;P style=&quot;FONT-FAMILY: 'Batang','Serif'&quot;&gt;&lt;FONT size=2&gt;&amp;nbsp;이 참담한 패배 앞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명박의 당선이 비참함의 근원은 아니다. 여권의 몰락에 대해 진보세력이 대안으로 떠오르기는 커녕 동반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데 더 깊은 비관이 있다. 원내정당이 되고도 지난 대선보다 더 무능하고 초라한 결과를 나은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여타세력들의 결과물을 보면 내년 총선에 진정한 환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Batang','Serif'&quot;&gt;&lt;FONT size=2&gt;&amp;nbsp;우리 시대의 기품있는 우파 자유주의자는 &lt;/FONT&gt;&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2/h200712192037393978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2&gt;'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lt;/FONT&gt;&lt;/A&gt;&lt;FONT size=2&gt;며 답답한 좌파에게 변화를 위한 충고를 건넸지만, 요원해 보인다. 문제의 뿌리로 볼 때 4월 이전에 희망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떻게든 쇄신의 분위기를 띄우고 당을 추스려도 겨우 몇 석을 확보할지는 비관적이다. 분당이라는 극단의 선택은 내년 4월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여 10년을 우회하는 길일 것이다. 게다가 일반국민들은 그 분당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lt;br /&gt;&amp;nbsp;와넬님이 '희망의 마지노선'이라 표현한 문국현은 그 지지율이 예전의 박찬종 수준에 그쳤기에 향후 영향력은 제한적이 될 것이다. 10%를 넘겼다면 독자노선이든 신당의 변화유도는 보다 파괴력을 지닐 수 있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창조한국당의 앞길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계급정치가 작동하지 않았듯 인물에 대한 바람도 불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의 동력도 없었고 오직 환멸만이 흘렀다. &lt;br /&gt;&amp;nbsp;신당의 지리멸렬은 불 보듯 뻔하다.&amp;nbsp; 비록 신당이 희망의 경계 너머에 있더라도, 상당한 의석수의 제1야당이 되어준다면, 소수 의석을 가진 정당들과 연대라도 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으나 이 또한 어두운 전망이다.&lt;br /&gt;&lt;/FONT&gt;&lt;FONT size=2&gt;&lt;br /&gt;&amp;nbsp;지난 총선에서 여당은 150석을 얻었고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었다. 소위 개혁세력이 최초로 과반을 넘었고 진보정당이 최초로 의회에 진출했다. 이 나라 역사에서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압도적인 숫자로도 사학법 하나 관철시키지 못했다. 주체의 의지 부족이었는지 의회정치 자체의 한계였는지 모르겠으나 암담한 일이다. 그런데 앞으로 다가올 총선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궤멸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처참하다. 이제 당분간 한국에서 의회를 통해 제도적으로 유의미한 사회변화를 꾀하는 길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변화를 이루는 방법은 다시 광장에서 사람을 모으고, 짱돌을 던지는 것 밖에 없을지 모른다.&lt;br /&gt;&lt;br /&gt;노사모가 활약하고, 탄핵사태를 거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희망의 기류가 흘렀었다. 나같은 소시민들도 작은 희망 혹은 위안이 있었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지지하는 정당에 후원금을 내고, 제대로 투표하는 것만 해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 그러나 다가올 총선 이후 도래할 환멸의 시대는 거친 분노를 표현하거나 두 눈을 질끈 감거나 양자택일을 요구할 것이다. 어떻게든 무너져가는 희망의 한 조각을 살려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lt;br /&gt;&lt;br /&gt;&lt;/FONT&gt;&lt;/P&gt;</description>
			<category>행구교주</category>
			<category>대의정치의 위기</category>
			<category>민주노동당</category>
			<category>짱돌의 귀환</category>
			<author>노토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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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9 Dec 2007 13:17: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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