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슈퍼로봇대전 연구소</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link>
		<description>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 Helen Keller / Reviewer</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10 May 2012 20:49:25 +0900</pubDate>
		<generator>Tistory 1.1 (http://www.tistory.com/)</generator>
		<managingEditor>시북</managingEditor>
		<image>
			<title>슈퍼로봇대전 연구소</title>
			<url>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zMzg1NU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AzMDAwMDAwMDAwMy5qcGc%3D</url>
			<link>http://suparobo.tistory.com</link>
			<description>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 Helen Keller / Reviewer</description>
		</image>
		<item>
			<title>2012년5월6일/실패하는 사람들의 습관(사사기16:1-20)/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22</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5월 6일 주일 예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실패하는 사람들의 습관 (사사기16:1-20)&lt;/P&gt;
&lt;P&gt;오늘은 신년이나 음력으로 구정이 아닙니다. 심지어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9월달도 아닙니다. 단지 5월 첫 주일 따름입니다. 물론 5월달은 가정의 달이고 그래서 인지 어린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 청소년의 날 같은 가정과 관련된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삶을 사는 중에 쉬어가는 여유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lt;/P&gt;
&lt;P&gt;코비라는 사람이 지은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lt;br /&gt;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에게만 습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사람에게도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구체적인 습관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lt;/P&gt;
&lt;P&gt;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단호하지 못하다는 것, 독하지 않다는 것이 실패자들의 특징입니다.&lt;br /&gt;이러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amp;nbsp; 특히 육체의 욕망을 끊는데 있어서 단호하지 못합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자기를 실패로 이끄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합니다. &lt;/P&gt;
&lt;P&gt;머리 속으로는 분명히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일단 실천에 옮겼다가도 오래도록 실행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실패로 이끄는 중요한 습관인 것입니다. 뭐 이게 좀 더 심해지면 우리는 이를 습관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독이라고 부르지요. 이쯤 되면 말로 해결할 시기가 지났습니다. 물리적인 조치가 취해져야만 합니다. 왜냐면 실제로 뇌에서 호르몬 물질이 분비되거든요. 우리가 잘아는 아드레날린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중독은 독서나 등산이나 마라톤 같은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lt;/P&gt;
&lt;P&gt;그러나 일단은 여기서 나쁜 습관, 나아가 중독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lt;br /&gt;성경적으로 말하면 ‘성령을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을 좇는’ 그런 행위 말입니다.&lt;br /&gt;술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초등 3학년 때 제사가... 술을 금하게 된 전통은...&amp;nbsp;(에피소드 중략)&lt;br /&gt;담배이야기- 시골교회 회계집사가 부흥회 도중 교회 화장실에서 담배피다 화장실이 펑... (에피소드 중략)&lt;br /&gt;늦잠이야기- 잠 24:33&amp;nbsp;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lt;/P&gt;
&lt;P&gt;그럼 이제 여자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lt;br /&gt;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잘못입니까?&lt;br /&gt;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며 자녀를 낳은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도입니다.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lt;br /&gt;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여자를 좋아한다면…&lt;br /&gt;이 정도면 이건 습관이 아니라 중독입니다. 그런데 중독은 보통 습관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습관은 좋고 중독은 나쁜것도 아닙니다. 좋은 것도 사실상 중독과 같은 뇌반응을 일으킵니다. &lt;/P&gt;
&lt;P&gt;우리가 잘 아는 사람 중에 삼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비극적인 영웅입니다. 좋아요, 영웅이라는 말도 빼고 그냥 비극적인 용사라고 합시다.&lt;br /&gt;하나님이 괴력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셨지만 여자 때문에 결국은 두눈을 뽑히고 죽고 마는 비운의 용사.&lt;br /&gt;4절에 보면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amp;nbsp;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lt;/P&gt;
&lt;P&gt;우리는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을 느낍니다. 그것이 무언고 하니 바로 들릴라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lt;br /&gt;여자의 이름이 나온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고요?&lt;br /&gt;앞에 보면 삼손이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lt;br /&gt;또 가사의 기생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여자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두여인과 얽힌 많은 일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삼손은 그 두여자 때문에 죽을뻔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두 여인은 삼손의 생애에서 별로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이 여인 들릴라에 비해.&lt;/P&gt;
&lt;P&gt;웃기지 않습니까? 정식으로 결혼하고 이혼하였으며, 그 때문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났는데도 그 부인의 이름은 여기 나와있는 ‘들릴라’란 이름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부인도 아니고 첩도 아니고 오다 가다 만난 이 여인의 이름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lt;/P&gt;
&lt;P&gt;1.들릴라&lt;br /&gt;들릴라는 ‘매달린자. 혹은 약한자, 약하게 하는 자’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lt;br /&gt;만일 ‘매달린자’를 의미한다면 들릴라가 끝까지 삼손에게 울며불며 매달려서 삼손의 약점을 알아내는 자라는 암시가 될 것입니다.&lt;br /&gt;그렇지 않고 ‘약하게 하는 자’라면 자기의 연약하고 가녀린 여성적인 매력을 이용해 삼손의 약점을 알아내고는 머리털을 잘라내서 삼손을 약하게 하는 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그런 이름입니다. &lt;br /&gt;또 들릴라라는 이름을 아람어로 해석한다면 ‘밤의 여인’이란 뜻을 가진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직업을 나타낼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들릴라가 본명인지 별명인지 직업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amp;nbsp; &lt;/P&gt;
&lt;P&gt;만일 그렇다면 ‘작은 태양’이라는 뜻의 이름인 삼손하고는 상극입니다. 태양은 밤에는 뜨지 않습니다. 태양빛을 밤의 어둠으로 감싸 버리는 여인. 대부분의 경우에 태양은 밤을 몰아냅니다. 어둠을 이기며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태양은 만물을 생동케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밤의 여인에게 휩싸여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lt;br /&gt;그러므로 이 ‘들릴라’란 이름은 삼손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lt;br /&gt;들릴라라는 이름은 그 여자가 삼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대로 나타냅니다.&lt;/P&gt;
&lt;P&gt;만일 영적인 사람이라면 들릴라 라는 이름을 들을 때 ‘아 이 여인이 장차 나를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경계할 수 있었을 터인데…&lt;br /&gt;불행히도 삼손의 영은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여자를 너무 지나치게 밝혔기 때문입니다. &lt;br /&gt;실패하는 사람은 단번에 실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실패를 향하여 다가가는 것입니다.&lt;br /&gt;그의 실패에 이르게 하는 습관은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다른 모든 것에 눈멀었던 것입니다.&lt;/P&gt;
&lt;P&gt;삼손은 이전에도 여자 때문에 두번이나 죽을뻔했습니다. 뿐입니까, 그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사의 사명을 망각하고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이방여인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사실 블레셋 사람들은 크레테섬에서 건너온 그리스인의 후예들입니다. 게다가 유목민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달리 도시문명을 건설하고 사는 그네들의 여인은 유목민의 사사인 삼손의 눈에는 너무 세련되었고 아름답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반식민지상태입니다. &lt;/P&gt;
&lt;P&gt;삼손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의 독립과 부족의 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사사의 직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들릴라에게 걸려서 죽게 됩니다. 삼손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자를 밝히는 습관에 젖어 있다가 결국은 그 습관 때문에 명을 재촉하게 됩니다.&lt;br /&gt;사랑에 눈이 먼 한 사내가 마침내 진짜로 두 눈을 잃어버리고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lt;/P&gt;
&lt;P&gt;2.음모는 진행되다&lt;br /&gt;들릴라가 삼손의 사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은 급거 들릴라를 찾아옵니다. 삼손이 그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왕들이 들릴라를 찾아 온 것입니다. 물론 삼손은 자기가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 즉 이스라엘의 독립군 사령관이자 통치자라는 자각은 없었습니다.&lt;/P&gt;
&lt;P&gt;당시 블레셋은 다섯개의 도시국가 연맹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방백’이라고 나와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모두 각 나라의 왕입니다. 블레셋을 다스리는 이들 다섯명의 왕들은 놀라운 제의를 합니다. 은 5500세겔을 줄 테니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lt;br /&gt;은 5500세겔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대 어른 노예의 몸값이 은 삼십세겔이라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엄청난 금액임은 확실합니다.&lt;/P&gt;
&lt;P&gt;그러면서 무어라고 이야기 합니까?&lt;br /&gt;”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lt;br /&gt;돈을 제의한 다섯 왕들은 노골적으로 들릴라에게 삼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두말없이 이를 승낙한 들릴라는 이제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유심히 그를 살핍니다. 이를 보면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만일 그녀가 진심으로 삼손을 사랑했다면 돈을 받고 연인을 넘겨주는 일이 있을 수가 없을테니까요.&lt;/P&gt;
&lt;P&gt;어찌보면 삼손의 불행은 이방여인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사랑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밤의 여인이란 이름의 들릴라는 어쩌면 창녀일수도 있다고 많은 성경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남자를 홀리도록 되어있는 여인에게 유목민인 이스라엘의 촌놈 사사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lt;br /&gt;제3자인 우리가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lt;/P&gt;
&lt;P&gt;평소와는 거동이 달리진 들릴라의 행동은 조금만 경각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터인데도 삼손은 전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 골짜기의 누구도 삼손의 편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삼손이 자기땅에서 사사로서의 직무를 행했다는 기록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주로 여자와 관련해서 사고만 친 걸로 나와있습니다. 그것도 주로 적국인 블레셋땅에서. 그리고 그러한 적지에 들어가서 자기의 파멸을 초래한 것도 삼손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왜냐면 삼손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3.푸른 칡 일곱으로&lt;br /&gt;처음에는 들릴라란 여인도 조심을 합니다.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비밀리에 삼손을 살펴봅니다. 삼손이 모르도록.&lt;br /&gt;그러나 아무리 결에서 지켜보아도 삼손의 비밀을 알아낼 수 없자 마침내 들릴라는 삼손에게 울며 매달립니다. &lt;br /&gt;‘당신이 만일 나를 사랑한다면 나에게 그 비밀을 가르켜주세요’ 너무 노골적이지요.&lt;/P&gt;
&lt;P&gt;이 정도면 누구라도 , 아니 희대의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들릴라’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들릴라가 물어 보았다는 것은 여자에 대한 삼손의 맹목적인 사랑이 그를 얼마나 바보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들릴라가 볼 때 삼손은 자기에게 미쳐있기 때문에 이정도는 물어도 된다는 믿음을 준 것일까요? 아니면 삼손은 바보기 때문에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를 구슬리듯이 구슬리면 털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lt;/P&gt;
&lt;P&gt;삼손의 이 비밀이 어디 보통 비밀입니까?&lt;br /&gt;블레셋의 여인이 그 비밀을 캐려고 하는 것을 보고서도 삼손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 터인 데도 삼손은 사랑에 눈멀었기 때문에 들릴라의 음모를 결코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알아 차리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최대 적국의 여인과 사랑을 나눌 생각을 한 자체가 벌써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입니다.&lt;/P&gt;
&lt;P&gt;그러나 아무리 사랑에 눈먼 삼손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이 엄청난 비밀을 지켜야겠다는 자각은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lt;br /&gt;그래서 거짓말로 들릴라에게 비밀을 고백합니다.&lt;br /&gt;“만일 마르지 아니한 푸른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지리라”&lt;br /&gt;그래서 들릴라는 푸른 칡 일곱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난 다음 블레셋 사람들을 내실에 매복시키고는 짐짓 놀란 투로 삼손을 깨웁니다.&lt;/P&gt;
&lt;P&gt;‘푸른’ 이란 단어와 ‘일곱’이라는 단어는 뭔가 매우 신비한 힘을 발휘할 것 같은 착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이걸로 삼손을 묶기만 한다면 삼손의 힘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삼손을 묶었지만 삼손의 힘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lt;br /&gt;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불탄 삼실을 끊음 같이’ 하였답니다.&lt;/P&gt;
&lt;P&gt;여러분 ! 상대에게 자기의 비밀을 이야기했는데 공교롭게도 얼마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비밀을 들은 사람을 의심하게 마련입니다. &lt;br /&gt;더구나 들릴라는 어떤 식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직접 삼손의 의식을 잃게하고는 철저하게 삼손을 묶었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안방에서. 우리가 옆에서 삼손을 바라보면 안타까운게 아니라 그의 바보스러움에 화가 납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바보에게 그 놀라운 힘을 주셨는지&lt;/P&gt;
&lt;P&gt;이쯤되면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더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들릴라를 의심할만 한데 삼손은 너무 심한 바보인 것 같습니다. 이걸 보고 미쳤다고 합니까? 들릴라에게 미쳐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lt;br /&gt;그런데 들릴라도 진짜 뻔뻔하고 천박한 여인입니다.&lt;/P&gt;
&lt;P&gt;자기의 음모가 탄로났다면 도독이 제발 저린다고 움츠려들 만도 한데 이 여인은 자기의 음모가 실패하자 오히려 화를 냅니다.&lt;br /&gt;‘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lt;br /&gt;이 말은 ‘당신이 나를 가볍게 취급하여 모욕을 주었다’라는 말입니다. 정말로 기가 찹니다.&lt;br /&gt;뻔뻔한 배신자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바보와의 만남이 바로 소렉 골짜기 들릴라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입니다.&lt;/P&gt;
&lt;P&gt;4.쓰지 아니한 새줄로 나를 결박하라&lt;br /&gt;한번 삼손을 잡을 기회를 놓친 들릴라는 자기의 천박한 무기를 최대한 발휘해서 연일 삼손을 조릅니다.&lt;br /&gt;마침내 견디지 못한 삼손은 말합니다.&lt;br /&gt;“만일 쓰지 아니한 새줄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lt;/P&gt;
&lt;P&gt;그러자 들릴라는 역시나 삼손을 새줄로 결박하여버립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삼손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lt;br /&gt;삼손은 여전히 자기의 결박을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끊어버립니다.&lt;br /&gt;자기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인 곁에서도 마냥 행복해 하는 미련한 삼손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lt;br /&gt;왜냐면 삼손은 자기를 멸망으로 이끄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5.머리털 일곱가닥을 위선에 섞어짜면 &lt;br /&gt;두번이나 실패한 들릴라는 아마 삼손을 못살게 들들 볶았을 것입니다. 두번이나 어려움을 겪고도 아직까지 들릴라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삼손은 솔직히 구제불능의 바보이거나 사랑에 눈먼 자일 것입니다.&lt;br /&gt;세번째로 삼손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lt;br /&gt;“머리털 일곱가닥을 위선에 섞어짜서 그 띠로 나를 결박하면”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즉 천을 짤 때 베틀에서 가로와 세로로 실을 넣어서 짜는데 그 안에다 자기의 머리카락 일곱가닥을 넣어서 짜라고 말합니다.&lt;/P&gt;
&lt;P&gt;이때 삼손은 긴 머리를 일곱갈래로 묶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한갈래에서 한 개씩을 빼서 천을 짜서 그 줄로 나를 묶는다면 내가 힘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이번에는 좀 어렵지요. 천까지 짜야하고. 돈에 눈먼 들릴라와 사랑에 눈먼 삼손의 조합!&lt;br /&gt;이 말을 듣고 즉시 실천에 옮긴 들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천을 짜는 베틀에 단단히 고정시켜 버립니다.&lt;br /&gt;그러나 삼손의 힘은 여전하여 잠이 깨어서는 자기를 묶은 모든 바디와 위선을 순식간에 다 빼어버립니다.&lt;/P&gt;
&lt;P&gt;6.머리가 밀리우며 힘이떠나고&lt;br /&gt;세번이나 속은 들릴라는 이제 삼손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lt;br /&gt;그래서 당신이 나를 희롱하면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느냐면서 마구 삼손을 볶습니다. 이걸 공갈협박이라고 합니까? 적반하장이라고 합니까?&lt;/P&gt;
&lt;P&gt;우리는 삼손의 기사를 읽으면서 삼손이 욕정에 눈이 멀어서 너무나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머저리는 빨리 죽어야 돼’ 라고 생각합니다.&lt;br /&gt;그런데 16절에 보니까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랍니다.&lt;br /&gt;너무나 시달려서 이제 삼손은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들릴라의 사랑의 포로가 된 삼손, 사랑인지 욕정인지에 눈이 먼 삼손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매달리는 자이며, 약하게 하는 자이며, 어두운 밤의 여인인 들릴라의 정체를 끝끝내 보지 못하고 자기의 비밀을 토로합니다.&lt;/P&gt;
&lt;P&gt;마침내 삼손의 비밀을 알아낸 들릴라는 삼손을 잠들게 하고는 그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립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비밀을 토로하고 자기의 머리카락이 밀리는 지도 모른채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lt;br /&gt;마침내 힘이 없어진 삼손은 블레셋인들에게 두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됩니다.&lt;/P&gt;
&lt;P&gt;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lt;br /&gt;어릴때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lt;br /&gt;그러나 이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lt;/P&gt;
&lt;P&gt;먼저 삼손이 자기의 비밀을 말한 순서를 한번 살펴봅시다.&lt;br /&gt;처음 들릴라의 간청으로 자기의 비밀을 말할 때 그는 푸른 칡 일곱 가닥을 이야기 합니다.&lt;br /&gt;이는 분명히 삼손의 마음속에 자기의 긴 머리카락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나실인은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깁니다. 그가 비록 자기의 비밀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머리카락을 의식하고 칡으로 바꾸어 말한 것입니다.&lt;/P&gt;
&lt;P&gt;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삼손은 얼마든지 다른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lt;br /&gt;뭐 독주를 일곱사발을 마시면 이라던지&lt;br /&gt;아니면 부적을 베게밑에 두면 이라던지. &lt;br /&gt;손톱을 깎아버리면 이라던지 얼마든지 다른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부터 긴 가닥의 줄을 이야기 합니다.&lt;/P&gt;
&lt;P&gt;두번째는 이 줄의 형태가 구체화됩니다.&lt;br /&gt;‘한번도 사용하지 아니한’ 새줄로 나를 묶으면. 삼손도 그렇고 누구라도 머리카락으로 줄을 만들어서 사람을 묶는데 사용한 사람은 없을겁니다. 뭐, 요즘 나오는 라푼젤이란 만화영화에서는 머리카락으로 사람도 묶기는 합디다만.&lt;/P&gt;
&lt;P&gt;세번째는 한 걸음 더 자기의 비밀 쪽으로 접근합니다.&lt;br /&gt;이제 드디어 머리털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머리카락 일곱 가닥을 천을 짜는데 섞어 짜면 자기가 힘을 쓰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lt;br /&gt;차마 전부 다를 털어놓지는 못하지만 입이 근질거렸을 것입니다. 이미 삼손의 마음에는 심리적 저항선인 ‘머리털’이라는 단어에 대한 금지명령이 깨진 상태입니다.&lt;/P&gt;
&lt;P&gt;그리고 마침내 네번째는 자기의 비밀을 전부 털어놓고 멸망하게 됩니다.&lt;br /&gt;이와 같이 삼손이 자기의 비밀을 토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의 유혹을 독하게 마음먹고 끊어버리지 못하자 점점 더 치정의 그물에 빠져서 어리석게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멸망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lt;/P&gt;
&lt;P&gt;삼손이 완벽한 바보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지능의 사람이라는 가정하에서 생각해 봅시다. 그는 들릴라가 자꾸 자기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고 자기의 신변에 뭔가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라가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들릴라를 단호하게 떠나지 못한 것은 그가 이미 들릴라에게 너무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리는 떠나야 된다고 말하지만 몸은 그러한 명령에 따르지 못합니다. 아니 애써 외면하려 합니다. 그냥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lt;br /&gt;&amp;nbsp;“괜찮아, 괜찮아,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lt;/P&gt;
&lt;P&gt;실패로 이르게 하는 좋지 못한 습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절대로 그러면 안돼” 라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된 습성에 물든 우리의 육신은 머리 속의 생각을 실천에 잘 옮기지 못합니다.&lt;br /&gt;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패망으로 이르는 수순을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밟고 있는 것입니다.&lt;/P&gt;
&lt;P&gt;이제 또 다른 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lt;br /&gt;과연 삼손은 머리털이 밀렸기 때문에 힘이 사라진 것일까?&lt;br /&gt;본문을 얼핏보면 머리털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말입니다.&lt;br /&gt;삼손의 힘의 근원은 결코 머리털이 아니었습니다.&lt;br /&gt;그럼 무엇입니까?&lt;/P&gt;
&lt;P&gt;20절에서 잠에서 깨어서 위급한 순간에 힘을 발휘하려고 몸부림쳐도 힘이 솟아나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삼손의 모습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라는 말로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lt;br /&gt;삼손은 17절에서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라고 표현하여 자기 자신도 자기의 힘의 근원이 머리털에 있지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은 것 같습니다.&lt;/P&gt;
&lt;P&gt;그러면 왜 머리털이 그렇게나 중요한 도구로 나옵니까?&lt;br /&gt;그것은 머리털을 미는 것이 하나님의 나실인이 지켜야할 중요한 규범이었기때문입니다. 머리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털을 밀지 않는 것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헌신된 자세를 견지하기 위한 나실인의 규칙이었던 셈입니다.&lt;/P&gt;
&lt;P&gt;사실 삼손은 나실인의 중요 규례 세가지중 이미 두가지를 범한 상태입니다.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은 14장에서 자기가 죽인 사자의 몸에 생긴 벌꿀을 취함으로 이미 어겼고 포도주를 먹지 말라는 규칙 역시 어긴 상태였습니다. 이제 그가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약 중에서 단 하나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며 라는 규칙만 어기면 그는 실로 하나님의 나실인 규약 모두를 어긴 그야말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lt;/P&gt;
&lt;P&gt;뿐입니까?&lt;br /&gt;이방인과 통혼하지 못하게 한 , 나실인이 아니고 평범한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켜야하는 규례조차 그는 자기의 정욕을 위해 헌신짝처럼 버린 패륜아였습니다. &lt;br /&gt;육욕에 눈인 먼 삼손은 결국 그 육욕이 주는 악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육체가 원하는 바대로 하다가 멸망을 맞이하는 것입니다.&lt;br /&gt;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 즉 최후의 언약까지 파기하는 때를 기다리셔서 삼손에게서 떠나셨던 것입니다.&lt;/P&gt;
&lt;P&gt;성경을 잘 살펴보면 삼손이 괴력을 발할 때마다 여호와의 신, 즉 성령께서 임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lt;br /&gt;그렇습니다. 힘의 근원은 머리털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 즉 성령이 셨던 것입니다.&lt;br /&gt;힘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과의 나실인 규약을 어기면서도 그는 조금치도 마음에 거리끼거나 그 규약을 생각지 않았고 자기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실패는 오래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왔던 셈입니다.&lt;/P&gt;
&lt;P&gt;꿀을 먹기 위해 시체를 만지고, 자기를 즐겁게 할 만하다고 함부로 이방 여인을 취하여 결혼잔치를 베풀면서 포도주를 마시고, 그것도 부족해서 마침내 머리카락까지 밀게 된 삼손의 행태를 보면 모두 다 자기의 육욕에 진 것입니다.&lt;br /&gt;하나님과의 약속보다 배고픔과 달콤함, 그리고 욕정을 우선시한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당연한 징벌이었던 것입니다.&lt;br /&gt;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많으셔서 마지막 규례가 깨어질 때까지 그를 지키셨던 것입니다. 습관이 중독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습관은 보통의 힘으로 제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독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이며 외부적인 도움이 없이는 어렵습니다.&lt;/P&gt;
&lt;P&gt;삼손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약점들이 있습니다. 실로 이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실패로 이르게 하는 습관들인 셈입니다.&lt;br /&gt;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영에 속한 자’가 되라고 항상 강조합니다.&lt;br /&gt;우리가 좋은 일, 착한 일을 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악한 습관에 빠지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lt;br /&gt;그것은 우리가 죄악 가운데서 잉태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lt;br /&gt;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죄성이 들어와서 오늘날도 끊임없이 몸 속 깊은 곳에서 그러한 죄성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실패로 이르게 하는 몇가지의 습관 가운데 한가지라도 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특히나 우리로 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는 습관들은 놔두면 중독에 이르게 되어 결코 끊어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lt;br /&gt;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화되지 못한 육신의 찌꺼기는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조금 더 밝은 쪽으로 나를 옮겨가도록 노력해 봅시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것을 끊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lt;/P&gt;
&lt;P&gt;이런 습관들은 완전하게 성화되지 못한 우리 성도들에게 몇 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창하게 몽땅 다 버린다고 생각지 말고 그 중에서 한가지라도 끊어버리리라 결심하고 실천하시는, 그래서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영에 속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견인’이라는게 있습니다. 견인이야 우리가 잘 아는 말이지요. 차량 ‘견인’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가는 거지요. 그렇게 애써서 옮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 이전보다 훨씬 하나님 보시기에 멋진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한 나로 말미암아 훨씬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 있는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lt;/P&gt;
&lt;P&gt;우리는 이 땅에서 끊임없이 성화되어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로 이르게 하는 습관들을 한가지씩 한가지씩 끊어가야 할 것입니다.&lt;br /&gt;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한걸음씩 한걸음씩 성공을 향하여 가게 하는 습관이 될 것이며 , 마침내는 하나님 앞에서 큰 복을 받는 길을 열어줄&amp;nbsp; 것입니다.&lt;br /&gt;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실패의 습관들을 버리며 끊어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5월 6일 주일 예배&lt;/SPAN&gt;&lt;/P&gt;
&lt;P&gt;――――――――――――――――――――――――――――――――――――――――――――――――――――――――――――――――――――――――――&lt;/P&gt;
&lt;P&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lt;/P&gt;
&lt;P&gt;――――――――――――――――――――――――――――――――――――――――――――――――――――――――――――――――――――――――――&lt;/P&gt;
&lt;P&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lt;/P&gt;
&lt;P&gt;담배를 끊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내일부터 금연하고, 오늘만 피지 뭐... 술을 끊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달리고, 다음 주 부터 술 안 마시지 뭐... 다이어트를 하는 멋진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만 실컷 먹고, 내일&amp;nbsp;아침부터는 적게 먹지 뭐... 사람은 한 가지 태도를 보고도, 그 다음의 모습을 알려주는 흔적들이 간혹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quot;미루는 습관&quot;, &quot;오늘을 회피하고 합리화 하는 습관&quot; 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결국 오늘의 결단을 미루었기에, 그 댓가를 받게 되는 셈이지요.&lt;/P&gt;
&lt;P&gt;경영 구루 켄 블랜차드와 작가 스펜서 존슨이 쓴 1분 경영이라는 책에서는 &quot;1분의 중요성&quot;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사람에 대한 재밌는 통찰이 있지요. 10년 뒤의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사람이 노력하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러한 점에 근거하지 않나 싶습니다.&lt;/P&gt;
&lt;P&gt;결론적으로 삼손은 단 1분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거나, 반성하거나, 결단하거나, 그런 &quot;생각하는&quot;시간이 없었다고 생각되어 졌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노예 쯤 되겠지요. 그런데 사실 이 설교말씀은 도전적으로 들리기에도 충분합니다. &quot;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단 1분이라도 결단하고 노력했는가?&quot; 라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적당히 합리화 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의 모습은 10년이 흘러도 똑같은 모습이 될 수 있지요.&lt;/P&gt;
&lt;P&gt;실패자, 막장인생이 되지 말고,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 식의 어쩌면 뻔한 교훈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쾌락을 좇아서 한심하게 사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경계하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좀 더 멋진 스스로를 위해서 체크표까지 만들어가면서, 스스로의 행동을 경계하고 돌아봤다고 합니다. 일전에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고 썼는데,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lt;/P&gt;
&lt;P&gt;삼손도 하루 아침에 몰락하지 않았으며, 또한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도 천천히 일상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바로 지금을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quot;바로 지금&quot;이며, 미루기만 하는 &quot;그 언젠가&quot; 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결국 &quot;지금 말하고, 지금 행동하는 대로&quot; 영혼이 물들어 가며, 그렇게&amp;nbsp;한 걸음씩&amp;nbsp;성장해 가거나, 혹은&amp;nbsp;몰락해가기 때문입니다. / 2012. 05. 10. 시북.&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22</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22#entry922comment</comments>
			<pubDate>Thu, 10 May 2012 20:36:49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4월4일/지도자의 길(청년설교13)/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24</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P&gt;
&lt;P&gt;일단의 사람들이 다메섹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메섹이 어디냐하면 지금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가 바로 성경상의 이 다메섹입니다&lt;br /&gt;그런데 그 무리중에서 앞장선 사람은 참 이상하게 생겼습니다&lt;br /&gt;우선 150이 안되는 키에 머리에는 숱이 거의 없고 코는 메부리코이며 다리는 휘어서 정말 볼품이 없었습니다&lt;br /&gt;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사내의 말을 듣는걸로 보아서는 이 사내는 이 무리들의 지도자인것 같습니다&lt;/P&gt;
&lt;P&gt;이 사람은 누구일까요?&lt;br /&gt;이 사람은 바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울입니다&lt;br /&gt;이 사람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다메섹으로 도망간 기독교도들을 잡아올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입니다&lt;br /&gt;이제 다메섹성 가까이 왔습니다. 마침내 6일간의 여행이 끝이 나려 합니다. 목적지에 당도하기 직전입니다. 바울은 이제 성안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나사렛 예수라는 이단의 무리를 잡아서 결박할 전의를 다집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lt;br /&gt;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빛이 비취면서 바울을 비추며 사울아 사울아라는 음성이 들립니다&lt;br /&gt;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언어습관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lt;br /&gt;이땅에서 주님께서는 항상 사람을 부를때 두 번씩을 부르셨습니다&lt;br /&gt;사울아 사울아 처럼 베드로야 베드로야, 마르다야 마르다야, 나사로야 나사로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lt;br /&gt;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비추이며 소리가 나는지라 &lt;br /&gt;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임을 직감하고는 그 자리에 꿇어엎드립니다&lt;/P&gt;
&lt;P&gt;우리말 성경에는 마치 강제적으로 외부적인 힘에 의해 엎드려진것 같지만 실제로 원문상에는 바울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하여 꿇어엎드린 것입니다&lt;br /&gt;아마 바울은 이때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lt;br /&gt;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나사렛 이단을 박멸하러 다메섹까지 오는걸 보시고 내 열심에 칭찬의 말씀이 계실수도 있겠다&lt;/P&gt;
&lt;P&gt;그런데 &lt;br /&gt;문제의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합니다&lt;br /&gt;지금 칭찬은 커녕 나를 핍박한다고 야단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주님 제가 언제 주님을 핍박했습니까?&lt;br /&gt;전 주님에 대한 열성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lt;br /&gt;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의 죄를 저질러서 죽은 자의 여당들을 잡으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lt;/P&gt;
&lt;P&gt;바울이 묻습니다&lt;br /&gt;‘주여 뉘시오니이까?’&lt;br /&gt;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lt;br /&gt;자 여러분 바울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결코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위해하거나 박해한 적은 없습니다&lt;br /&gt;그 전에 주님은 이미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그런데도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십니다&lt;br /&gt;실제로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핍박한 적은 있지만 주님을 직접적으로 박해하지는 않았는데도 말입니다&lt;br /&gt;이때의 인상이 바울의 일생동안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항상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고백했습니다&lt;br /&gt;그리고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lt;/P&gt;
&lt;P&gt;오늘날 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굳이 교회를 나가야 될 필요가 있는냐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내가 집에서 아니면 회사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구태여 교회를 나갈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합니다&lt;br /&gt;물론 이들의 마음속에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 실망하고 교역자에게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압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와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lt;br /&gt;왜냐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주님은 지금 바울에게 교회가 바로 나라고 교회와 자기를 동일시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lt;br /&gt;주님은 지금 바울에게 성도들이 바로 나라고 성도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계십니다&lt;/P&gt;
&lt;P&gt;솔직히 바울은 일찍이 스데반의 순교시에 그를 처단하는데 증인으로 가담하였으며 박해받은 많은 성도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옥에 가두었고 지금도 다메섹으로 피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lt;br /&gt;주님이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lt;br /&gt;그리고는 우리말 성경에는 없지만 표준원문에는 이런말이 삽입되어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가 떨고 놀라며 가로되&lt;br /&gt;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lt;br /&gt;주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lt;br /&gt;&lt;br /&gt;‘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lt;br /&gt;행할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lt;br /&gt;그런데 9:7에 보면 같이 가던 사람들은 빛을 보고 소리만 들었지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고 합니다&lt;br /&gt;오로지 바울만이 빛속에서 주님을 보았던 것입니다&lt;br /&gt;그리고 소리를 들었던 바울의 동행들도 소리만 들었지 그 소리가 무슨말인지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lt;br /&gt;즉 뭐라고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분명한 음성으로는 전달되지 않아 도데체 무슨 소린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lt;/P&gt;
&lt;P&gt;자 그런데 빛속에서는 주님을 보았던 바울이 이제 그 빛이 사라지고 나자 눈이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lt;br /&gt;그래서 빛속의 주님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끌리어 다메섹성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lt;br /&gt;그는 조금전에만 해도 앞장서 무리를 인도했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이끌리게 되었고 전에는 믿는자들을 사로잡고자하던 이가 이제는 오히려 예수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lt;/P&gt;
&lt;P&gt;여하튼 바울은 이제 실명을 하고는 사흘동안을 보지 못하며 식음을 전폐합니다&lt;br /&gt;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뭐했을까요?&lt;br /&gt;11절에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저가 기도하는 중이라”&lt;br /&gt;그는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고 있었답니다&lt;/P&gt;
&lt;P&gt;바울은 정말 이때 자기생애서 가장 비참하고 황당하며 놀라운 경험을 했을것입니다. &lt;br /&gt;그렇게도 자기가 열심을 내며 핍박하며 박해한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것임을 알게되었으므로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lt;br /&gt;뿐만 아니라 눈까지 보이지 않아서 남의 손에 이끌려 낯선곳에서 기도하고 있다니&lt;br /&gt;참 하나님의 역사는 모르는겁니다&lt;/P&gt;
&lt;P&gt;이제껏 자기가 죽이려고 다니던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lt;br /&gt;이제껏 자기가 거짓이라고 핏대세우며 다니던 사건을 진실이라고 이야기해야되는...&lt;br /&gt;참 기가막히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건 단순한 바울의 회심은 아닙니다&lt;br /&gt;&lt;br /&gt;오히려 핍박자 바울이 주님을 만난 다음에 어떻게 해서 기독교의 지도자요 사도가 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지도자의 도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lt;br /&gt;&lt;br /&gt;바울은 이렇게 다메섹 도상에서 빛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만나고 그의 분부를 듣고 소경의 몸이되어 직가라는 곳에 기거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lt;br /&gt;솔직히 예수님을 만났고 그로부터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lt;br /&gt;아무도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어쩔겁니까?&lt;br /&gt;사람들은 빛을 보았고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며 예수님의 소리였음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단지 바울 혼자서만 보고 들었는데 과연 누가 바울을 위해서 주님을 만난 놀라운 사건을 증명해 주겠습니까?&lt;/P&gt;
&lt;P&gt;별수없이 바울은 그 놀라운 체험을 하고서도 소경이 되어서 남의 손에 이끌리어 한집에서 식음을 전폐하고는 놀람과 당혹에 휩싸여 기도할 뿐이었습니다&lt;br /&gt;아무도 그를 사도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은채로.........&lt;br /&gt;솔직히 사도가 어떤 사람입니까&lt;br /&gt;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아닙니까?&lt;br /&gt;주님은 모두 12명의 제자를 삼으시고는 더 이상 제자를 만들지 않고 승천하셨습니다&lt;/P&gt;
&lt;P&gt;그런데 지금 바울은 자기가 주님을 만났다고 하면서 자기가 사도라고 주장합니다&lt;br /&gt;이 사람의 편지 앞부분에는 항상 ‘사도된 바울은’ 이란 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lt;br /&gt;그러나 혼자서 내가 성령충만을 받고 너희들을 지도하겠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바로 지도자가 되는것은 아닙니다&lt;br /&gt;그가 성령충만한지,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는지가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lt;br /&gt;그게 어떻게 증명이 됩니까?&lt;br /&gt;&lt;br /&gt;한편&lt;br /&gt;바울이 기도하고 있는중에 아나니아라는 역시 다메섹에 살던 유대인에게 하나님이 환상중에 나타나셔서는 그를 불렀습니다&lt;br /&gt;그리고는 직가라는 곳에 머물며 기도하고 있는 사울에게 가서 기도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lt;br /&gt;아나니아 역시 사울의 악명은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두렵습니다&lt;br /&gt;그가 주의 성도를 핍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과연 가도 될까요?&lt;br /&gt;하나님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lt;br /&gt;그러면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렇게 얘기하십니다.&lt;/P&gt;
&lt;P&gt;하나님은 이제 한사람을 증인으로 세우셔서 사울의 그릇됨을 증명하셨습니다. 물론 사도라는 말은 아직 없습니다&lt;br /&gt;과연 가보니 한 소경이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수하니 곧 눈에서 비늘같은것이 떨어지고 다시 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핍박하던 자에서 핍박받는 자로 변하게 된 것이며 어제까지 예수 믿는이의 원수에서 형제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lt;/P&gt;
&lt;P&gt;어떻습니까?&lt;br /&gt;바울이 아무리 유명하고 자기가 사도라고 큰소리쳐도 처음부터 그가 그렇게 유명했던것은 아닙니다&lt;br /&gt;지금 아나니아 라고하는 전혀 무명의 성도에게 안수기도받음으로 다시 보게된 한 불쌍한 사람에 불과하고 비로소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은 초신자에 불과합니다.&lt;br /&gt;사울은 아나니아의 소개로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과 며칠을 거하면서 유대교의 회당에서 전도를 시작합니다&lt;br /&gt;‘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lt;/P&gt;
&lt;P&gt;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바울의 전도에 이상히 여기거나 황당해 했지 믿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lt;br /&gt;22절에 “증명하여...굴복시키니”&lt;br /&gt;굴복시키니 라는 말은 바울의 말이 유대인들에게 먹혀들어갔다는 의미를 줍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데 원문에는 당황케하다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졌습니다&lt;br /&gt;즉 그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명했지만 사람들이 여기에 굴복해서 예수를 믿은것이 아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을 당황케하고 불안하게 했다는 말이며 분명한 인식이나 결론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lt;/P&gt;
&lt;P&gt;그렇습니다&lt;br /&gt;바울이 그 대사도라 일컬어지는 바울이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했지만 , 자기의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예수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지를 증명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바울의 변절로 인해 당황할 뿐이었다 이겁니다&lt;br /&gt;&lt;br /&gt;여러분&lt;br /&gt;어떻습니까?&lt;br /&gt;바울이 처음부터 바울은 아니었지요&lt;br /&gt;비록 나중에는 바울의 선교여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주를 영접하고 교회가 소아시아와 그리스에 세워졌고 그의 목회서신이 성경이 되었지만 처음에 그에게는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열정만 있었습니다&lt;/P&gt;
&lt;P&gt;9:23 여러날이 지나매&lt;br /&gt;여기서 여러날은 몇일이나 작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3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lt;br /&gt;그리고 이 23절은 22절에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lt;br /&gt;아무런 능력도 나타내지 못한데 실망한 바울은 다메섹을 떠나서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그 사막에서 3년간을 기도하며 영적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마 틈틈이 전도도 한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사막의 성자가 된것입니다. 이것이 나바테아의 아레다왕의 분노를 사게되어 다시 사막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옵니다.&lt;/P&gt;
&lt;P&gt;어떻습니까?&lt;br /&gt;처음 우리는 단순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빛가운데 만나고 즉시로 대 사도요 전도자가 된걸로 생각했습니다.&lt;br /&gt;그러나 그가 대 사도요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의 기도와 다메섹 성도들의 도움과 사막에서의 3년간의 영적체험과 이를 가능케한 기도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lt;/P&gt;
&lt;P&gt;그러나 이것으로 바울이 완성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lt;br /&gt;아직도 그는 훈련일정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lt;br /&gt;큰 그릇은 결코 빨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lt;br /&gt;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 기도와 영적체험으로 이제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바울은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와서 더 열심히 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lt;/P&gt;
&lt;P&gt;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의 실패를 맞보았습니다&lt;br /&gt;이번에는 전도가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lt;br /&gt;9:25절에 “그의 제자들이”라는 말이 있는걸로 보아서는 바울에게도 제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t;br /&gt;그는 이제 성공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요?&lt;br /&gt;사막에 가기 전에는 단지 논리로 사람들을 압도하기만 했던 바울은 이제 은혜를 받고 성숙해져서 어느정도의 개종자를 얻게 되기까지 합니다&lt;/P&gt;
&lt;P&gt;그러자 기독교가 확장될 걸 우려한 유대인들이 아레다 왕의 신하들과 짜고는 그를 죽이려고 성안을 뒤지고 또 일부는 성문에서 지키게끔 되었던 것입니다&lt;br /&gt;유대인들과 나바테아의 아레다왕의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는 다메섹의 성문으로 당당히 나가지 못하고 이번에는 밤에 몰래 광주리에 태워져서 성벽을 넘어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lt;/P&gt;
&lt;P&gt;그러면 나바테아의 왕이 로마령까지 와서 그를 잡으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바울이 사막에 있을때 은혜를 받고서 아라비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아레다왕의 미움을 사서 다메섹으로 도망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lt;br /&gt;저의 견해로는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안에서 그를 죽이려 하고 아레다왕의 신하들은 로마령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므로 밖에서 그를 죽이려고 지킨것이 아닌가 합니다&lt;/P&gt;
&lt;P&gt;여하튼 &lt;br /&gt;두 번에 걸친 바울의 성급한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lt;br /&gt;3년간의 고행과 기도가 그에게 충분하지 못했을까요?&lt;br /&gt;아직도 그에게 훈련과 연단이 더 남아있단 말입니까?&lt;br /&gt;그리고 그는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신분과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서.&lt;br /&gt;그러나 바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lt;/P&gt;
&lt;P&gt;이전부터 그를 잘알고 그를 부려먹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런가하면 그가 새롭게 개종한 기독교계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의 완전한 개종을 믿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고 경원합니다. 그는 두 진영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방인처럼 겉돌고 있습니다.&lt;/P&gt;
&lt;P&gt;26절에“제자들을 사귀려고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물론 여기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성도를 이야기합니다.&lt;br /&gt;그런데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것과 주를 담대히 증거한 것을 이야기합니다.&lt;br /&gt;그렇게 하고서야 비로소 사도들과 성도들이 바울을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과 교제하며 자유롭게 예루살렘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lt;/P&gt;
&lt;P&gt;그러나 곧 바울은 그곳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을 합니다&lt;br /&gt;원래 그리스사람들이 논쟁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헬라파 유대인들이나 바울 역시 변론을 좋아한 것은 당연합니다&lt;br /&gt;바울은 말쟁이기 때문에 말로 바울을 이기기가 힘들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lt;br /&gt;벌써 두 번째로 바울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lt;br /&gt;왜냐면 논리로는 그를 이길 수 없었으므로 아예 죽여서 그를 침묵하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전 이 기사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lt;br /&gt;아직도 바울은 멀었다&lt;br /&gt;은혜가 아니고 논리를 가지고 기독교를 증거하려 하니까 반발이 커진다&lt;br /&gt;글쎄 솔직히 기독교의 논리는 성령 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lt;br /&gt;그러나 성령의 조명이 있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lt;br /&gt;그래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기도 합니다&lt;/P&gt;
&lt;P&gt;자기가 직접 하나님을 느끼지 않는다면 결코 그 놀라운 신비로운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lt;br /&gt;그래서 다시금 바울은 형제들의 도움을 얻어 예루살렘성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이사랴로 갔다가 자기의 고향 다소로 가게 됩니다.&lt;/P&gt;
&lt;P&gt;여러분&lt;br /&gt;우리는 30절에 ‘형제들이 알고’란 표현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바울과 교제한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제자들 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lt;br /&gt;이것은 바울이 성도들과 더 친근해 졌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lt;br /&gt;아직 바울에게 확실한 능력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에 점점 더 깊이 속하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lt;/P&gt;
&lt;P&gt;그는 다소에서 적어도 7,8년 정도를 아무도 찾지 않는 가운데서 혼자서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고 영적체험을 하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한 준비기간을 보냈습니다&lt;br /&gt;그리고는 마침내 바나바가 다소로 가서 바울을 찾아서 그를 안디옥 교회의 부목사로 세울때까지 그는 은인자중하며 하나님이 자기를 쓰실때까지 기다리며 실력을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lt;/P&gt;
&lt;P&gt;이렇게 따지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은 다음 적어도 10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것입니다.&lt;br /&gt;그것도 자기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 아나니아가 나중에는 바나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우리가 지금 누구나가 알고 있는 대사도요 &lt;br /&gt;교회를 비유대인사회로 퍼지게 만든 가장 큰 공훈자인 바울이 바울될때까지 연단과 훈련의 기간 10년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lt;/P&gt;
&lt;P&gt;지금 당장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lt;br /&gt;내가 지금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내가 놀라운 체험을 하고 그의 소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무런 직책이 주어지지 않음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있습니까?&lt;br /&gt;나의 영적능력과 경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까?&lt;br /&gt;나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줄 아나니아가 없음과 나를 소개해줄 바나바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있습니까?&lt;/P&gt;
&lt;P&gt;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말고 &lt;br /&gt;그의 때가차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립시다&lt;br /&gt;그는 우리를 3년 때로는 10년을 기다리게도 하시며 아무런 징조도 없다가도&lt;br /&gt;그의 때가차기만 하면 하루아침에도 그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lt;/P&gt;
&lt;P&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lt;P&gt;대기만성. 큰 그릇은,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로또나 복권 같은 것이 위험한 것은 대가 없이 갑작스럽게 많은 것들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소중하게 다룰 줄 모르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복권당첨자가 더 불행해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하루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일까요?&lt;/P&gt;
&lt;P&gt;YES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으로 유명해졌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기밴드 비틀즈의 실력은 함부르크에서 이름없이 매일 매일 밴드 활동을 꾸준히 오랜 시간 했기 때문에, 탄탄한 내공이 뒷받침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글쎄요. 저는 이런 점들이 상당히 좋습니다. 성경책의 인물들의 이야기,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나, 바울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인간적입니다.&amp;nbsp;이른바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다는 식의&amp;nbsp;신데렐라, 왕자님&amp;nbsp;판타지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주변 환경은 인간(개인)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는 어려우므로, 그 점에 있어서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동역자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lt;/P&gt;
&lt;P&gt;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늘을 충실히 보내는 것이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며, 열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열정적으로 사는 것. 이것보다 더 멋진 인생이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 / 2012. 05. 시북.&lt;/P&gt;&lt;/DIV&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24</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24#entry924comment</comments>
			<pubDate>Sun, 06 May 2012 22:35: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3월28일/주님은 왜 무화과를 저주하셨나?(청년설교12)/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23</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SPAN&gt; 
&lt;P&gt;성도 여러분&lt;br /&gt;오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의 승리의 행진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한 &lt;br /&gt;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lt;br /&gt;그러나 단순히 무화과 나무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lt;br /&gt;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lt;br /&gt;우리는 한그루 무화과 나무 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사랑과 고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lt;br /&gt;&lt;br /&gt;1.예수님은 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lt;br /&gt;그것은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얻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lt;br /&gt;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가난한자의 양식’이라고 불려집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lt;br /&gt;누구나 이 무화과를 따먹을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었습니다.&lt;br /&gt;&lt;/P&gt;
&lt;P&gt;본시 무화과는 보통 3월말에 싹이 나서 5,6월에 열매를 맺고 8-10월 사이에 수확을 하게 됩니다.&lt;br /&gt;그렇기에 4월경에 열매를 구한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lt;br /&gt;그런데 무화과는 열매가 먼저 나고 난 다음에 잎사귀가 나거나 &lt;br /&gt;&lt;br /&gt;적어도 잎과 동시에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푸른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lt;br /&gt;당연히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lt;br /&gt;&lt;br /&gt;13절에 보면 “멀리서 잎사귀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라는&lt;br /&gt;기록이 있습니다. &lt;br /&gt;이것을 보면 예수님역시 이런 희망을 가지고 무화과를 살피셨던 것 같습니다.&lt;br /&gt;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나무에는 비록 잎사귀는 무성했지만 어떤 열매도 있지 않았습니다. &lt;/P&gt;
&lt;P&gt;자 여러분 &lt;br /&gt;이렇게 본다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했다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것은 &lt;br /&gt;조금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lt;br /&gt;본문의 저자인 마가역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같은 13절후반부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lt;/P&gt;
&lt;P&gt;그렇습니다. &lt;br /&gt;그때에는 무화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lt;br /&gt;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lt;br /&gt;신적 예지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셨나, &lt;br /&gt;제철도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나무를 저주하시다니 등등&lt;br /&gt;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 아닙니다.&lt;br /&gt;오히려 이 무화과나무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내용의 시발점이 될뿐입니다. &lt;br /&gt;사실 이 무화과 나무 저주 기사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급박성을 알리는 &lt;br /&gt;상징적인 사건입니다. &lt;br /&gt;&lt;br /&gt;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서는 이 사건뒤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에 &lt;br /&gt;일부러 눈을 감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lt;br /&gt;&lt;br /&gt;2.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lt;br /&gt;저는 여기서 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으려 하셨는지에 &lt;br /&gt;한번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lt;br /&gt;본문과 같이 무화과 저주사건을 다룬 마태복음21:18절에보면 예수님께서는&lt;br /&gt;“이른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때에 시장하신지라”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lt;br /&gt;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은 “이른아침” 과 “시장하신지라” 라는 구절입니다.&lt;br /&gt;“이른아침”은 히브리어로 ‘프로이’라는 말로 새벽3시에서 6시사이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lt;br /&gt;이것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t;br /&gt;&lt;br /&gt;우리나라의 옛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루에 두끼만을 먹었습니다. &lt;br /&gt;솔직히 하루에 세끼를 제대로 먹게된 것은 비교적 근세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lt;br /&gt;&lt;br /&gt;그래서 하루에 두끼를 먹었던 옛날에 한끼를 굶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lt;br /&gt;그러나 여기서 자세히 본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끼만을 굶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큽니다. &lt;br /&gt;두끼를 굶었을 확률이 있다는 거죠&lt;br /&gt;&lt;br /&gt;본문 11절에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 /&gt;이 구절과 마태21:18절의 “이른아침과 시장하신지라” 라는 구절을 연계시켜서 로버트선이란 학자는&lt;br /&gt;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다니의 길거리나 야외에서 노숙을 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lt;br /&gt;왜냐하면 만일 주님이 베다니의 어떤 집에서 유숙을 했다면 당연히 그들이 주님에게 아침을&lt;br /&gt;대접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만일 노숙하셨다면 &lt;br /&gt;아마 저녁도 드시지 못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3.그러면 왜 주님은 노숙을 하셨을까요&lt;br /&gt;그것은 베다니에서 아무도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았기때문입니다. &lt;br /&gt;&lt;br /&gt;주님은 아무도 맞아들이는 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셔야 했을 것입니다. &lt;br /&gt;주님이 배고프시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수 있습니까? &lt;br /&gt;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덩이로 장정만 5000이 넘는 무리를 먹이셨던 능력의 주님께서.&lt;br /&gt;&lt;br /&gt;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lt;br /&gt;그렇습니다. 주님이 배고프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lt;br /&gt;그분은 우리를 위해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발휘하시는 분이지만 &lt;br /&gt;자기를 위해서는 돌로 떡한덩이도 만드시지 않은 분이셨습니다.&lt;br /&gt;&lt;br /&gt;우리를 위해서는 높고 영광스런 하늘보좌도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신분이시며&lt;br /&gt;33년간 이땅에서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고는 &lt;br /&gt;그것도 모자라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런 사랑의 주님이셨습니다.&lt;br /&gt;&lt;br /&gt;4.사람들은 하루만에 그들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lt;br /&gt;여러분&lt;br /&gt;불과 하루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실 때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lt;br /&gt;벳바게사람들은 주님에게 나귀새끼를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lt;br /&gt;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의 등에 펴고&lt;br /&gt;나머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땅에 펴며, 가지를 꺾어서 깔았으며 &lt;br /&gt;순례자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의 행렬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았습니까? &lt;br /&gt;&lt;br /&gt;그들은 주님의 앞뒤를 따르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lt;br /&gt;소리높이 외치며 주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lt;br /&gt;그들은 주님을 왕으로 대접했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입성으로 소동했습니다.&lt;br /&gt;그러던 것이 불과 하루전인데 지금 주님은 몸 누일곳을 찾지 못하시고 &lt;br /&gt;야외에서 유숙하시며 아침을 굶으시고 시장하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lt;br /&gt;&lt;br /&gt;10절에 보면 “ 오는 우리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말이 나옵니다.&lt;br /&gt;여기서 우리는 처음 유대인들이 주님을 자기네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lt;br /&gt;옛적 다윗임금때의 강력한 나라를 만들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리며, &lt;br /&gt;겉옷을 땅에 깔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하고 따랐지만 &lt;br /&gt;주님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시고 단지 11절의 표현대로 단순히 “예루살렘에 이르러 &lt;br /&gt;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는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제자를 데리시고 &lt;br /&gt;베다니로 나가시”고 말았기 때문에 &lt;br /&gt;그들은 더 이상 주님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lt;br /&gt;그들의 생각에 주님을 환영한다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으니까&lt;br /&gt;&lt;br /&gt;그들의 기대대로 로마군인들을 몰아내지도 않고 &lt;br /&gt;왕좌에 앉아서 제2의 다윗왕국도 선포하지 않고 &lt;br /&gt;단순히 성전을 둘러보시고는 나가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lt;br /&gt;정치적환상이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lt;br /&gt;오히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lt;br /&gt;그리고 로마당국의 분노를 유발한 위험인물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lt;br /&gt;그분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할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lt;br /&gt;그들은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5.베다니까지 주님을 배반했습니다.&lt;br /&gt;여러분&lt;br /&gt;이 베다니에는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살려주신 나사로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lt;br /&gt;뿐만 아니라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고장이었습니다. &lt;br /&gt;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던 베다니조차도 주님에게 아무런 유익을 구할수 없다고 &lt;br /&gt;판단하자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lt;br /&gt;그래서 주님은 이른새벽에 무화과 열매를 찾으시게까지 되었습니다.&lt;br /&gt;&lt;br /&gt;사실&lt;br /&gt;우리는 주님과 함께 베다니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lt;br /&gt;역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성으로 종려가지를 흔들며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lt;br /&gt;마찬가지로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아서 그분을 길거리에서 유숙하게도 하지 않았고&lt;br /&gt;하룻밤 잠자리와 한끼 따뜻한 식사를 아끼지도 않았습니다&lt;br /&gt;당연히 우리는 주님을 외면한 적이 없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lt;/P&gt;
&lt;P&gt;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우신 사랑, &lt;br /&gt;영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lt;br /&gt;높고 영광스런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오늘 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는데, &lt;br /&gt;마지막 피와 물 한방울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쏟아주셨는데 &lt;br /&gt;지금 우리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습니까?&lt;br /&gt;&lt;br /&gt;주님이 내게 유익이 되면 그 앞에서 온갖 죽는 시늉까지 다하다가 &lt;br /&gt;주님이 내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냉정하게 주님을 배반하고 돌아서는 2000년전 유대인들 같지는 않습니까?&lt;br /&gt;&lt;br /&gt;이제 우리는 이 무화과 한그루에서 알 수있듯이 &lt;br /&gt;사랑하셨지만 사랑받지는 못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는 그런 부활절&lt;br /&gt;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사랑하는 이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셨지만 &lt;br /&gt;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lt;br /&gt;그런 부활절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lt;br /&gt;&lt;br /&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lt;P&gt;목사님의 부활절 맞이 설교. 2004년 당시나 2012년 지금이나 핵심적인 내용은 같습니다. 모처럼 지난 번에 못 달았던 코멘트를 덧붙이자면, 과연 사람들의 행동하는 형태는 시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딱 잘라 말해서, 도움 (정확히는 이익) 이 되면 가까이 하고, 도움이 안 되면 멀리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이것이 극대화가 된 것이 아닐까 가끔 염려합니다. 이익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는 능숙합니다. 심지어&amp;nbsp;회사라는 것이&amp;nbsp;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모임으로 정의되기까지 합니다.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손대서는 안 되며, 이익이 되지 않는 다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봅니다. &lt;/P&gt;
&lt;P&gt;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길을 간다는 것은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일상으로의 초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예배 같은 의식을 합니다. 은혜라는 선물에 매일 감격할 수 있고, 힘을, 가진 것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것이 인간을 기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참 인간이란 생각할 수록 신기합니다 :)&lt;/P&gt;&lt;/DIV&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23</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23#entry923comment</comments>
			<pubDate>Sat, 05 May 2012 20:09: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2년4월29일/아브라함과 엘 올람(창세기21:33-22:14)/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20</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29일 주일 예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아브라함과 엘 올람 (창세기21:33-22:14)&lt;/P&gt;
&lt;P&gt;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몇 가지 난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곤란한 문제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한 부분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성경은 결코 금언록이나 격언록이 아니고 우화집이나 교훈집도 아닙니다. 즉 누구나 보아도 그럴듯하게 여겨질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진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난감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부분도 들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lt;/P&gt;
&lt;P&gt;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려고 한 아브라함의 행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서는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야만적이며 증오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무슨 말로도 인신공양을 합리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곤란한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행위를 믿음의 극치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lt;/P&gt;
&lt;P&gt;솔직히 제가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는 이 기사가 성경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lt;br /&gt;그리고는 도저히 이 기사를 그대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아들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지를 보기위해서 아들을 죽이라고 명하는 일이 있을&amp;nbsp;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인신공양의 풍습을 무지무지 싫어하시거든요. 산 사람을 바치는 ‘몰록’신의 풍습을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설마 이러실 리가 없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성경본문을 면밀히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풀 수 없었습니다. &lt;/P&gt;
&lt;P&gt;믿음 때문에 우리의 정서와 인성을 포기해야 합니까?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왜 그는 그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슬프고 또 야만적인 것을 요구하셨을까요?&lt;br /&gt;도대체 아브라함은 어떻게해서 그런 황당한 요구에 응할 생각을 한 것일까요?&lt;br /&gt;오늘 저는 이러한 일들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lt;/P&gt;
&lt;P&gt;1.영생하시는 하나님&lt;br /&gt;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이 과연 아브라함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가를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lt;br /&gt;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게 된 것은 사실 아브라함의 말이 발단이 된것입니다. 입이 화근인 셈이지요.&lt;br /&gt;뭐라고 이야기했는데요?&lt;br /&gt;뭐라고 이야기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의 장을 앞쪽으로 좀 넘겨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창세기22장부터 시작해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lt;/P&gt;
&lt;P&gt;본문 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던 이유가 앞장의 뒷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원래의 성경구별은 장절로 나누이지 않고 큰 점으로 나누어 두었습니다.&lt;br /&gt;그렇다면 어디서 찾아야합니까? 21장이요. 21장 22절에 보면 점이 찍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는 표시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기사는 뜬금없이 22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조약을 맺는 부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장절의 체계와는 다릅니다만 바로 이 점찍힌 부분이 성경에서 원래 나누어 놓은 부분입니다. 뭐라고 합니까?&lt;/P&gt;
&lt;P&gt;33절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바로 이겁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의 대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지냅니다.&amp;nbsp;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아브라함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겁니다.&lt;br /&gt;우리들도 그런 일을 많이 했습니다. 비록 기도할 때나 설교를 들을 때는 “주여 믿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도 실제로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혀 믿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인 고로 우리는 이런 일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신은 우리로 하여금 축복의 장으로 이끌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lt;/P&gt;
&lt;P&gt;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거하는 손님이었지만 그는 이제 당당하게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비멜렉이라는 (블레셋의) 왕이 그를 단순한 유목민 가정의 가장이 아니라 국가의 군주로, 대부족의 족장으로 인정한 것을 말합니다. 객으로 와서 주인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마침내 이방인들의 눈에도 굉장한 사람으로 비춰졌다는 말입니다. &lt;br /&gt;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위해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단단하고 오랫동안 사는 에셀나무는 조약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아브라함의 염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분은 너희들이 아는 ‘엘’신이 아니라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올람이다”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lt;/P&gt;
&lt;P&gt;지금처럼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야외에서 돌로 단을 쌓고 제물을 태우며 큰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방신의 대지에서 전혀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가나안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요 도발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lt;br /&gt;히브리어로는 “엘 올람”이라고 합니다.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lt;br /&gt;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은 당연히 영원히 살지요. 만일 신이 인간처럼 유한하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신을 누가 섬깁니까?&lt;br /&gt;그래서 아브라함이 말하는 ‘엘 올람’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lt;/P&gt;
&lt;P&gt;그분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죽더라도 다시금 부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부활의 주님 아닙니까? 그래요, 아브라함은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믿는 신도들도 결코 죽지 않게 하실 것을 그가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러 사랑의 하나님이니 공의의 하나님이니 언약의 하나님이니 하고 말합니다. &lt;br /&gt;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이방 가나안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나의 하나님을 ‘엘 올람’의 하나님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당신을 믿는 다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죽더라도 다시 살 것입니다 . 당신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lt;br /&gt;“당신을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죽더라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당신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말은 아브라함의 여호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며 그의 여호와 신앙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lt;/P&gt;
&lt;P&gt;그리고 그는 이러한 신앙고백을 그냥 혼자서 속으로 되뇌인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하나님을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도 ‘엘’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엘은 가나안 만신전에서 최고 높은 신으로 숭배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엘 신과는 다른 엘 신을 소개한 것입니다.&amp;nbsp; “가나안 사람들아! 내가 섬기는 하나님 ‘엘’신은 너희가 믿는 ‘엘’신과 달리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올람’이시다” 라고 외친 것입니다.&lt;br /&gt;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 오셔서 과연 아브라함이 자기의 신앙고백대로 믿는 다는 증거를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lt;br /&gt;22:1에 보면 ‘시험하시려고’라고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lt;/P&gt;
&lt;P&gt;2.슬픈 가족사&lt;br /&gt;음, 이것은 전설입니다. 성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lt;br /&gt;뭐냐면 원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고향에서 달 신의 신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달 신의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는데 아들이 달 신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시당국에 아들을 고발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화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아마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거짓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lt;br /&gt;인신공양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오르는 과정을 보면 마치 달신도 부활의 신인 듯 합니다. 그래서 데라는 아들이 비록 달신에게 제물로 바쳐졌지만 다시금 살아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달신에게 바쳐진 아들은 살아 나지 못했고 결국 데라는 달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고향 우르를 떠나서 하란으로 온 것이라고 하는 전설입니다.&lt;/P&gt;
&lt;P&gt;이러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 아브라함이라면 그가 에셀나무 아래서 단을 쌓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른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보수하시는 하나님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는 이방인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여기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lt;br /&gt;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아브라함이 과연 가지고 있는가를 보고 싶어 하셨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응답하셨던 것입니다.&lt;/P&gt;
&lt;P&gt;3.내가 여기 있나이다&lt;br /&gt;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1절에 ‘그를 부르시되’ 여기서 이 말은 크게 부르는 모습이 아닙니다. 원뜻을 본다면 조용히 다가오셔서 대화하듯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여기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답한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란 말은 정확하게는 ‘나를 보소서’입니다. &lt;br /&gt;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구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그런 구절로 이해하고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부르시자 마자 즉각적으로 응답했다는 말입니다. 이게 쉬운 일 같습니까? 천만에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lt;/P&gt;
&lt;P&gt;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도 항상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기란 어렵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의 신경이 하나님을 향해 있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고단한 삶속에서 지치고 힘들어 주일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lt;br /&gt;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답한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그가 항상 자신의 안테나를 하나님을 향하여 맞추어 두고 있었다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하나님은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친구와 조용한 가운데 대화하듯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과 긴밀히 대화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 그런 이가 되어야 합니다.&lt;/P&gt;
&lt;P&gt;4.그를 번제로 드리라&lt;br /&gt;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삭은 2절의 표현대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독자’라는 표현은 유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극히 소중한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도 바로 이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lt;br /&gt;엄밀히 말해서 이삭은 독자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만 총 8명 이었고 딸의 숫자는 얼마인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아들을 번제로 바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엄청난 고민과 번뇌, 그리고 인륜 때문에 그는 몇 날 몇 일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이 자기가 생각지도 못했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lt;/P&gt;
&lt;P&gt;또한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우리에게 모리아 산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서 희생제물을 삼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아산은 브엘세바에서 사흘길인 곳이고 나중에 모리아 산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인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성경에는 모리아 땅이라고 했지 모리아 산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게다가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이라고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사마리아인들은 모리아 산을 그리심 산으로 상정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안 인들은 여기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네가 모리아 땅으로 가면 여러 산들이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 내가 한 산을 너에게 지정해 줄 것이다’ 란 의미입니다. &lt;/P&gt;
&lt;P&gt;그리고 원문을 잘 분석해 보면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을 강제로 명령한 것은 아닙니다. 2절의 “데리고... 가서”란 표현은 권고의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amp;nbsp; 하나님은 강제로 이삭을 태워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번제로 드릴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즉 판단은 아브라함이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lt;br /&gt;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말앞에 “너는”이란 말이 있는데 번역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권고하실 때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말고 심지어 너의 아내에게도 말하지 말고 너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란 말을 하신 것입니다.&lt;br /&gt;신앙의 판단에는 항상 이와 같은 외로운 결단이 요구되어 집니다. 그 누구도 나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문자 그래도 하나님과 나와의 단독적인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 결단하고 이행해야 합니다.&lt;/P&gt;
&lt;P&gt;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번제라고 해서 단순히 태워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번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각을 뜹니다. 각이 뭐냐면 목과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몸통도 분해해서 안엣 것을 끄집어내는 뭐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토막 살인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너무 너무 끔찍한 것입니다. 램브란트의 그림에서는 이 장면을 표시하면서 아브라함이 날카로운 단검으로 이삭의 목을 딸려고 하는 장면으로 묘사했습니다. &lt;br /&gt;너무 끔찍합니다. 너무 잔인합니다. 도저히 못할 짓을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시킨 것입니다. &lt;/P&gt;
&lt;P&gt;5.아침에 일찌기 일어나&lt;br /&gt;아브라함은 고민을 참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한 일은 무엇입니까? 번제물이 될 이삭을 불러서 그의 의사를 물어본 것입니까? 아니면 아내나 심복들을 불러서 의중을 떠본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이삭의 모습을 살펴본 것입니까?&lt;br /&gt;모두 다 아닙니다. 희한하게도 아브라함은 그런 엄청난 명령에 순종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출발한 것입니다.&lt;/P&gt;
&lt;P&gt;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너무너무 힘든 선택이요 명령인데도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묵묵히 그의 명령을 준행하기위해 준비하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꺼려서 피할려고 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녁 늦게나 출발해서 시간에 맞추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삼일째 출발해도 됩니다. 가다가 “시간이 늦어서 도저히 안되겠네”하고는 돌아와도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거리를 가면서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봐 일찍이 일어나서 길을 떠납니다. “나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당신만을 믿습니다. 주여 기적을 보여주시옵소서!”&lt;/P&gt;
&lt;P&gt;실제로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까지는 약 75km정도가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시간상으로는 사흘 만에 충분히 도착하도고 남습니다. 보통은 이틀거리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사흘만에 당도한 것은 고민으로 그의 발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흘째되는 날 마침내 멀리서 모리아 땅의 산들을 바라봅니다. 과연 저 산들 중에 어디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인가를 알려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가슴이 아프지만 , 틀림없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이삭을 그냥 데리고 가지 않으실 것을 믿었습니다.&lt;/P&gt;
&lt;P&gt;그는 도중에서 혹시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또다른 하나님의 명령이 내리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너의 믿음을 보았으니 아들아 이삭과 함께 평안히 돌아가라”“는 명령이 나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기적적이고 신묘한 방안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침내 아브라함은 멀리서 모리아 산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lt;/P&gt;
&lt;P&gt;6.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lt;br /&gt;모리아 산에 오르기 전에 아브라함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여기 답이 나와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이것은 복수형입니다. 즉 나혼자 돌아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사환들은 산아래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기와 이삭만이 산에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마당에서도 반드시 우리가 함께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굳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lt;/P&gt;
&lt;P&gt;그것은 그가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올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신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죽지 않게 해주실 것을 믿었고,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사환들에게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고백하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던 것입니다.&lt;br /&gt;이삭과 함께 산을 올라가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은 자기가 제물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천진하게 물어 보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마음이 찢어지지 않았을까요?&lt;/P&gt;
&lt;P&gt;그런데 여기에 대답을 보세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지금 이삭을 불사르기 위해서 가는 아브라함이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이 친히 다른 제물을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물론 거짓으로 아들을 속이려고 이런 말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이나 옛날에도 거짓말은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굳이 아브라함을 죄인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lt;br /&gt;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마침내 다 왔습니다. 이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lt;/P&gt;
&lt;P&gt;7.여호와 이레&lt;br /&gt;성경은 모리아 산에 당도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행위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심리상태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단지 일이 되어지는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때 엄청난 갈등과 번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짐승의 각을 뜨듯 해부해야 하는 그래서 태워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당혹감, 혹은 배신감에 어쩔줄 몰라 하며 공포에 젖어있는 이삭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16세가량의 청소년인 이삭이 115세 이상인 아브라함을 과연 힘으로 이기지 못해서 결박당했겠느냐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를 차마 어쩌지 못해서 체념했을까요?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혹은 의식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을까요?&lt;/P&gt;
&lt;P&gt;드디어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합니다. 이때까지 하나님의 도움이나 다른 지시는 전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시하실 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중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삭을 칼로 죽여야 합니다. 오, 주여!&lt;br /&gt;그때 바로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lt;br /&gt;이렇게 두 번 연속하여 부르는 것은 친밀한 사이라는 말도 되고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을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lt;/P&gt;
&lt;P&gt;그렇다면 제물은 어쩌지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제물이 필요합니다. 13절에 보면 “한 수양(lyIa;)”이 수풀에 걸려있답니다. 이 말에는 몇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 절에서 본 아브라함의 대답을 기억합니다. 이삭이 “아버지 제물은 어디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의 대답&lt;br /&gt;“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이걸 히브리어로 읽으면 AL ha,r&amp;gt;yI ~yhli{a/가 됩니다. 각 단어의 맨앞글자를 붙이면 바로 “한 수양”이 되는 것입니다. &lt;br /&gt;말장난입니까?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이 일을 얘기하신 것입니다. 무심코 이야기하는 아브라함과 이삭은 알지 못했지만 이미 그들의 말속에 하나님은 해법을 주신 것입니다. &lt;/P&gt;
&lt;P&gt;자,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여호와 이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 말을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실 것이라 라고 해석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호와 이레되신 하나님, 우리가 필요할 것을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은 목사님들의 설교에 단골 메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약간 다른 뜻이 있습니다. 뭐냐면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말입니다. 또는 “여호와의 산에서 나타나리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lt;br /&gt;잠깐 언급했지만 모리아산에서 결박당하고 번제물이 될 뻔한 이삭은 신약시대 예수님의 모형으로 많이 언급되어 집니다. 그런데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을 보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어린양, 십자가를 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각하게 됩니다. &lt;/P&gt;
&lt;P&gt;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제물을 친히 마련하셨습니다. 그 제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장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대속의 제물로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산에서 하나님의 아들 , 독생자 예수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맞이해야할 대속의 제물을 친히 준비하셨습니다.&lt;br /&gt;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서 나타난 수풀에 뿔이 걸린 어린양으로 예표됩니다. 어떻습니까?&lt;br /&gt;여호와 이레의 뜻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lt;/P&gt;
&lt;P&gt;8.맺는 말&lt;br /&gt;이제 말씀을 맺어야 겠습니다.&lt;br /&gt;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태워서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하나님은 사실 아브라함이 “당신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러한 믿음을 실제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말로만 그렇게 이야기 하는 지를 아시고자 하셔서 그를 시험코자 이삭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지를 시험코자 아들을 죽여보라고 하신 것이아닙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 우리의 호언장담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부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여러분에게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드려라는 시험이 올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lt;/P&gt;
&lt;P&gt;이삭이 제물이 되지 않고 그가 다시 산 아래 사환들에게로 돌아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을 믿음의 최고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당시에 아브라함도, 이삭도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각을 뜨는 잔인함이 요구되어지는 제물로 이삭을 올려놓고 아브라함은 그래도 하나님의 간섭을 기대했을 것입니다.&lt;/P&gt;
&lt;P&gt;만일 하나님이 거짓된 우상처럼 , 달신 나나처럼 자기의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다면 그는 어떠했을까요?&lt;br /&gt;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올람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는 영원히 사시고 죽지도 않으시며, 죽어도 다시 사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 이삭의 순종, 하나님의 역사&lt;br /&gt;다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라도 빠졌다면 오늘 이 사건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쁩니다. 전능하신 참신을 믿고 있어서 기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며 죽어도 다시 살 것이며 그와 더불어 영생할 것임을 믿습니다.&lt;br /&gt;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함부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들을 이겨낼 때에야 만이 진정한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떠합니까?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시늉만 합니까?&lt;/P&gt;
&lt;P&gt;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상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엘 올람’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세력이 가나안 토착세력과 비슷할 만큼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왕이 아브라함의 세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교류하면 뭔가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lt;br /&gt;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수 있을 만큼 우리의 세력이 성장했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보고 저들과 함께하면 뭔가 세상에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할까요?&lt;/P&gt;
&lt;P&gt;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지금처럼 마음대로 부르지 못할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세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위가 악해서. 우리가 이대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악행을 계속한다면, 회개할 줄 모르고 후안무치한 행위를 계속한다면 어느날 세상 사람들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시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엘 올람 ,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지요, 만일 우리가 이대로 계속 간다면 세상은 우리를 향하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향하여 뭐라고 부를까요?&lt;/P&gt;
&lt;P&gt;말이란건 참 중요합니다. 엘 올람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잡아 바치라는 시험에 처해 집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엘 올람,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그는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바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하나님을 과연 뭐라고 부를까요?&lt;/P&gt;
&lt;P&gt;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앞에 우리의 하나님의 이름을 뭐라고 소개할까요? 오늘 세상은 우리가 소개하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하나님일지를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amp;nbsp;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뭐라고 부를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뭐라고 소개할 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lt;br /&gt;또 하나 뭐라고 부를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르는 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칭호의 진정성을 물어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나에게 어떤 하나님입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29일&amp;nbsp;주일 예배&lt;/P&gt;
&lt;P&gt;――――――――――――――――――――――――――――――――――――――――――――――――――――――――――――――――――――――――――&lt;/P&gt;
&lt;P&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amp;nbsp;/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lt;/P&gt;
&lt;P&gt;고백합니다. 설교를 듣고, 또 읽고, 깊게 생각에 잠기고, 마음 속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 앞에 혼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란, 절망 속에서도 행복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참으로 약하고, 못나고, 부족한 모습 속에서 자학적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 마치 아Q 같은 인생을 사는 한심한 저이지만, 그럼에도 너는 소중하고, 일상은 특별하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하나님 입니다. &lt;/P&gt;
&lt;P&gt;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끈기와 성실 같은 성공적인 미덕도 찾아볼 수 없지만, 삶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를 못하기에 한글로 표현하자면, &quot;삶을 주신 하나님&quot; 이라고 표현하면 제일 좋겠네요. 그 전까지는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시체 같은 인생은 참으로 슬펐습니다.&lt;/P&gt;
&lt;P&gt;지금은 어렴풋이&amp;nbsp;알고 있습니다. 더 많이 가져도, 더 많은 재능이 있어도, 행복하지는 않을 것임을. 오직 주어진 일들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하나 둘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다만 바람이 있다면, 첫째는, 안테나를 잘 맞춰서&amp;nbsp;아브라함처럼 즉각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과 귀를 멀게 하는 탐욕을 경계해야 겠지요.&lt;/P&gt;
&lt;P&gt;아기는 어머니의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 상황에서는, 용감무쌍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잠시 침묵하고 계실 때,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느린 발걸음을 걸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진실의 역사다, 그 점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습니다.&amp;nbsp;아브라함의 위대함은 아이의 신앙이 아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피드백이 없을 때에도 용기를 내고 결단을 하고, 아침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고뇌하는&amp;nbsp;아브라함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amp;nbsp;마침내 그는&amp;nbsp;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목적지까지 keep going 하는 것, 다시 말해 그래도 계속 가는 것 입니다. 두 번째&amp;nbsp;바람은 이러한 믿음의 발걸음을 걸어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lt;/P&gt;
&lt;P&gt;거대한 질문이었습니다. &quot;가장 사랑하는 것, 이것을 버릴 수 있는가?&quot; 게다가 이것을 버리기 위해서, 며칠을 계속해서 갈 수 있는가. 백명이 있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고, 천명이 있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고, 만명이 있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경쟁적인 사회시스템 속에서 우리 모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amp;nbsp;따라서, 이러한&amp;nbsp;&quot;사랑하는 것을&amp;nbsp;버리기 위한 여행&quot; 같은 혼란스러운 질문은 터부(금기)시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입으로만 주님을&amp;nbsp;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말에 대해서는 전혀&amp;nbsp;책임지지 않는, 조금도&amp;nbsp;증명하지 않는, 한 마디로&amp;nbsp;겉으로 그럴싸한&amp;nbsp;신앙만을 다들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lt;/P&gt;
&lt;P&gt;오늘 하나님이 &quot;내가 생명력 넘치는 삶을 주었는데 하루를 멋지게 보냈는가? 의미있게 보냈는가?&quot;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엇을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벽에다가 머리를 쾅쾅 박아대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 이 장문의 덧붙임 글&amp;nbsp;마침입니다. / 2012. 05. 03. 시북.&lt;/P&gt;&lt;/SPAN&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20</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20#entry920comment</comments>
			<pubDate>Thu, 03 May 2012 00:09: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3월21일/여호와께서 네 앞서 가신다(청년설교11)/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21</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SPAN&gt;&lt;/P&gt;
&lt;P&gt;오늘은 바로 기드온 직전의 사사였던 드보라와 바락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lt;br /&gt;&lt;br /&gt;이번에 또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누구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징치하시는고 하니 &lt;br /&gt;하솔에 도읍한 가나안왕 야빈에게 그들을 파셨다고 합니다&lt;br /&gt;&lt;br /&gt;처음에는 이스라엘은 메소포타미아의 왕을 섬겼습니다. 지금의 이라크정도되는 나랍니다&lt;br /&gt;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기서 가나안으로 강을 건너온 사람들입니다&lt;br /&gt;실로 메소포타미아는 이스라엘 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t;br /&gt;식민모국쯤 됩니까? 미국에게 영국과 같은 의미를 줍니다. &lt;br /&gt;글쎄 그정도 나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다음에는 모압왕입니다&lt;br /&gt;사실 모압은 메소포타미아에 비해 엄청 작은 나라입니다. 또 이스라엘보다도 작은 나라입니다. &lt;br /&gt;슬슬 자존심이 상합니다. 이런 적은 나라를 섬기다니.....&lt;br /&gt;그런데 이번에는 모압도 아니고 가나안의 하솔왕를 섬긴답니다. &lt;br /&gt;&lt;br /&gt;사실 이 하솔왕 야빈에 관한 기사는 여호수아11장에도 등장합니다&lt;br /&gt;“그때 여호수아가 하솔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진멸하고 왕은 목베었으며 성읍은 불살랐다”는 &lt;br /&gt;기사가 나옵니다&lt;br /&gt;그러나 이제 바로 그 하솔이 다시 강성해져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당시 가나안은 도시국가체제였기 때문에 통일왕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lt;br /&gt;그래서 본문의 야빈은 가나안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lt;br /&gt;하솔이라는 도시를 다스리는 왕이면서 북 가나안의 영도자격 인물이었던 같습니다&lt;br /&gt;&lt;br /&gt;이정도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존심이 좀 상합니다. &lt;br /&gt;이런 조그만 도시국가에게도 이기지 못하고 이들을 섬기다니!&lt;br /&gt;&lt;br /&gt;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조금 더 읽어나가면 조금 다른 기사가 눈에 들어오는데&lt;br /&gt;&quot;그 군대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야빈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lt;br /&gt;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입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이 본문에서 “야빈왕은”이란 말로 번역된 곳을 &lt;br /&gt;히브리원문에는 야빈왕이 아니라 시스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lt;br /&gt;이걸로 보아서는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고 괴롭게 한 자는&lt;br /&gt;하솔의 왕 야빈이 아니라 그의 군대장관인 시스라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이정도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한심한 상태에 빠져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lt;br /&gt;일개 도시국가의 왕도 아니라 그 자의 심복에게 굴종하고 학대받는 신세!&lt;br /&gt;정말 비참합니다.&lt;br /&gt;&lt;br /&gt;이같이 이스라엘은 한번 씩 범죄할 때마다 점점 더 추락해서는 이제&lt;br /&gt;조그만 군사집단에게도 학대를 받는 무기력한 상태로 빠져버렸다는 겁니다&lt;br /&gt;&lt;br /&gt;우리는 [북으로 간 단지파]에서 이스라엘의 단지파가 북으로 간 이유가&lt;br /&gt;골짜기를 차지하지 못해서이고 골짜기로 진출하지 못한 원인이 &lt;br /&gt;철병거가 무서워서 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바로 그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무려 900승이나 있다는 겁니다&lt;br /&gt;이건 정말 엄청난 것입니다&lt;br /&gt;&lt;br /&gt;사실 하로셋은 중요한 가나안의 철생산지 였습니다. &lt;br /&gt;하로셋이란 이름의 뜻은 숙련된 기술자, 공교한 장인 이런 뜻입니다. &lt;br /&gt;여기에는 정교한 철장들이 많이 살아서 이들이 철병거를 많이 생산하고 있었는데&lt;br /&gt;이제 시스라가 바로 이 하로셋에서 철병거 900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lt;br /&gt;이스라엘이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었단 말입니다&lt;br /&gt;이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야빈을 섬긴것입니다. &lt;br /&gt;&lt;br /&gt;마침내 견디지 못한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는 &lt;br /&gt;그에게 부르짖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심에 응답하셨습니다.&lt;br /&gt;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왜 부르짖었겠는지를 한번 살펴봅시다&lt;br /&gt;&lt;br /&gt;우리 성경에는 심히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부르짖은것 같이 나타납니다&lt;br /&gt;그러나 원문에는 부르짖은것 뿐만 아니라 철병거때문에도 부르짖었다고 나와있습니다. &lt;br /&gt;즉 철병거 구백승은 자기네의 힘으로 이겨내기에 너무나 어려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단 말입니다&lt;br /&gt;&lt;br /&gt;그렇습니다&lt;br /&gt;목이 굳어서 완강한 백성들이라 자기네가 할수만 있다면 &lt;br /&gt;쾌락의 여신을 섬기며 그냥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철병거 앞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lt;br /&gt;하나님앞에 다시 돌아온것입니다&lt;br /&gt;&lt;br /&gt;그 때에 여선지자 이며 한 사람의 아내였던 드보라가&lt;br /&gt;에브라임 산지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lt;br /&gt;이 여자는 사사였습니다. &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20년간 고통받을때도 사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lt;br /&gt;하나님은 드보라에게 말씀하셨습니다&lt;br /&gt;&lt;br /&gt;참 사사가 무언지부터 말씀드려야 겠습니다&lt;br /&gt;사사는 우리말로 하면 판사정도의 지위입니다. 그리고 비상시에는 군대지휘관을 겸하였습니다. &lt;br /&gt;또는 사람에 따라 왕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lt;br /&gt;그런데 이 드보라는 아마 판사의 역할을 한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드보라는 납달리지파의 바락을 군사령관으로 삼으려고 그를 소환했습니다&lt;br /&gt;그리고는 그에게 하나님의 명령이니 일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볼산으로 이끌어가라고 말합니다&lt;br /&gt;우리 본문에는 이끌어간다는 표현이 나와있지 않지만 원문에는 이 표현이 있습니다&lt;br /&gt;이제까지 이스라엘은 20년간이나 시스라의 철병거가 무서워서 &lt;br /&gt;죽은듯이 그를 섬겼지만 이제는 힘없는 백성들이 마침내 일어서서 다볼산에 모이려합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드보라가 일만명의 군사를 모집해서 준 것은 아닙니다.&lt;br /&gt;바락에게 납달리지파에게 가서 일만의 군사를 모아서 다볼산으로 이끌고 가라고 합니다&lt;br /&gt;참 정말 곤란하고 어려운 일입니다&lt;br /&gt;&lt;br /&gt;이제까지 죽은듯이 있었던 노예상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lt;br /&gt;시스라의 철병거와 싸우게 한다는건 정말 쉬운일이 아닙니다&lt;br /&gt;여기 '이끌다'는 동사는 히브리어 ‘마솨크’입니다&lt;br /&gt;&lt;br /&gt;이 말은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인것을 볼때 &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싸우기 싫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lt;br /&gt;여하튼 바락은 눈물로 호소해서 일만의 군대를 모집하고 다볼산으로 그들을 이끌고 갔습니다&lt;br /&gt;&lt;br /&gt;다볼산!&lt;br /&gt;산이기 때문에 철병거가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는 곳입니다&lt;br /&gt;해발400M의 작은 산에 모여서 이들은 지금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lt;br /&gt;하나님의 표징을 바라면서&lt;br /&gt;&lt;br /&gt;왜냐고요&lt;br /&gt;그것은 하나님이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를 기손강으로 이끌겠다고 하시고&lt;br /&gt;그들을 네 손에 붙이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lt;br /&gt;앞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야빈의 손에 붙이셨는데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야빈과 그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lt;br /&gt;&lt;br /&gt;물론 그 전에 그 강력한 철기군단을 기손강으로 이끌겠다고 하셨습니다&lt;br /&gt;여기서도 ‘이끌다’는 ‘마솨크’라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lt;br /&gt;이것은 바락과 하나님의 신인 합작을 보여줍니다&lt;br /&gt;&lt;br /&gt;“네가 이스라엘을 이끌어 다볼산으로 가면 &lt;br /&gt;나는 시스라의 군대를 기손강으로 이끌겠다”&lt;br /&gt;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하실 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혼자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lt;br /&gt;자기의 도구인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기를 즐겨하십니다&lt;br /&gt;&lt;br /&gt;그리고 그 일에 쓰임받는 사람에게 한없는 영광과 기회를 주십니다&lt;br /&gt;오늘 그 기회는 처음 드보라에게 왔다가 다시 바락에게로 온 것입니다&lt;br /&gt;단지파의 남자들이 못한 일을 여자에게 시키셨는데 &lt;br /&gt;다시 남자의 손으로 철병거를 무찌르는 임무가 넘어왔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바락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lt;br /&gt;“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않으면 내가 가지 않겠다”&lt;br /&gt;이 사람의 고충은 알겠습니다&lt;br /&gt;단지 싸움밖에 할 줄 몰랐던 이 장군은 하나님의 명령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lt;br /&gt;드보라만한 명망도 없었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드보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므로 &lt;br /&gt;당연히 내가 싸움터에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 하고는 &lt;br /&gt;그러나 이 싸움의 영광은 네가 아니라 전혀 엉뚱하게도 여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lt;br /&gt;그리고 그 여인에게 시스라를 파시겠답니다&lt;br /&gt;&lt;br /&gt;여기서의 여인은 드보라 자신을 말할까요?&lt;br /&gt;아닙니다&lt;br /&gt;그렇지 않습니다&lt;br /&gt;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 영광을 받게 됩니다&lt;br /&gt;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묘미입니다&lt;br /&gt;&lt;br /&gt;여기서 보면 시스라나 이스라엘이나 모두다 하나님이 임의대로 팔고 붙이고 하는 모습을&lt;br /&gt;볼 수 있습니다&lt;br /&gt;그는 의인은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시지만 악인 역시 주목하고 계십니다&lt;br /&gt;&lt;br /&gt;그리고 그분의 임의로 역사를 움직이십니다&lt;br /&gt;여하튼 바락으로 다시 돌아갑시다&lt;br /&gt;자기가 영광을 받지 못해도 드보라와 동행을 해야 한다는 바락 때문에 &lt;br /&gt;드보라 역시 바락과 함께 전장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lt;br /&gt;바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 가서 군대를 모집하는 일입니다&lt;br /&gt;&lt;br /&gt;모두 일만의 군대를 모집해야 되는데.......&lt;br /&gt;10절에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에서 ‘부르니’는 ‘와야즈에크’라는 동사를 번역한 것인데 이 동사는 고난과 압제아래 있을때 도움을 애처롭게, 눈물겹게 부르짖을때에 사용하는 동사입니다&lt;br /&gt;바락이 이 일만의 군사를 모으기위해 얼마나 애처롭게 울부짖으며&lt;br /&gt;고생해서 모았는지를 아시겠지요&lt;br /&gt;그런데도 하나님은 시스라을 전혀 엉뚱한 여인에게 파시겠다고 말합니다&lt;br /&gt;&lt;br /&gt;영광을 바락이 아닌 제 3의 여인에게 돌려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lt;br /&gt;그런데 바락이 그렇게 힘들여 모집한 군사는 군사가 아니라 &lt;br /&gt;일반적인 백성의 남자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lt;br /&gt;&lt;br /&gt;여기에 비해 시스라의 군사는 용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lt;br /&gt;자 , 전혀 훈련받지 못하고 억지로 억지로 모집된 백성들과 역전의 용사들과 더하기 철병거 900승&lt;br /&gt;&lt;br /&gt;이정도면 말안해도 우리는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lt;br /&gt;그런데 하나님은 시스라와 철병거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답니다. &lt;br /&gt;그리고 특히 시스라는 여인에게 파시겠답니다&lt;br /&gt;&lt;br /&gt;자 과연 하나님은 어떤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의 예언을 이루실까요?&lt;br /&gt;“겐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시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lt;br /&gt;장막을 쳤더니”라는 말이 갑자기 나옵니다&lt;br /&gt;그리고는 다시 바락의 전투로 이이기가 돌아갑니다&lt;br /&gt;&lt;br /&gt;참 뚱딴지 같습니까?&lt;br /&gt;우리도 성경을 따라 바락의 전투현장으로 가봅시다&lt;br /&gt;자 이제 다볼산에 일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있다는 첩보가 &lt;br /&gt;시스라에게 신속하게 전해집니다&lt;br /&gt;아마 시스라도 좀 놀랐을 겁니다&lt;br /&gt;지난 20년동안 찍소리도 못하고 눌려살던 백성들이 갑자기 다볼산에 모여서 반란을 꾀하다니 &lt;br /&gt;좀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lt;br /&gt;&lt;br /&gt;여하튼 이번기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란을 일으킨 댓가가 무언지를 가르키기위해서 &lt;br /&gt;자기의 모든 철병거와 온 군대를 다 모았습니다.&lt;br /&gt;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정도 군대는 필요치가 않습니다&lt;br /&gt;&lt;br /&gt;용사 천명만 가도 이스라엘 백성 일만정도는 얼마던지 괴멸시킬수가 있습니다&lt;br /&gt;보십시오&lt;br /&gt;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구도 변변찮은 것들이 철병거가 무서워서 산속에 숨어 있는데 &lt;br /&gt;아 그래 그걸 무슨 반란군이라고 여길것 까지 있습니까&lt;br /&gt;철병거가 무서워서 산아래로 내려오지도못하고........&lt;br /&gt;이제 다볼산을 공격하기 위해 기손강으로 군대를 몰아갑니다&lt;br /&gt;그의 자랑인 무적의 철병거900승과 함께&lt;br /&gt;&lt;br /&gt;그런데 여러분&lt;br /&gt;여기서 기손강으로 나와있지만 실제로 기손강은 강이라기 보다는 와디입니다&lt;br /&gt;우리말로는 마른하천, 가나안에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데 &lt;br /&gt;우기에만 강에 물이 흐르고 평소에는 말라서 교통로로 이용되는 그런 곳이란 말입니다&lt;br /&gt;그러므로 그들은 기손강바닥의 넓고 평평한 지형을 이용해서 철병거를 이동시키고 있었습니다. &lt;br /&gt;&lt;br /&gt;당연히 지금은 건기때이므로 기손강에는 전혀 물이 없고 비가 올 예정도 없습니다&lt;br /&gt;이제 그들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내며 &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있는 다볼산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전차대의 위력에 겁먹고는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lt;br /&gt;자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될까요?&lt;br /&gt;14절에 보면 갑자기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라 &lt;br /&gt;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라는 &lt;br /&gt;기사가 나옵니다&lt;br /&gt;과연 무엇을 보고 드보라는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한다고 자신있게 단언한 것일까요&lt;br /&gt;그리고 바락은 과연 무엇 때문에 군말없이 군사를 이끌고 산을 내려간 것일까요?&lt;br /&gt;&lt;br /&gt;사실 드보라는 기손강으로 몰려드는 비구름을 보았단 말입니다. &lt;br /&gt;바락역시 그 비구름을 보았기 때문에 군말없이 산을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lt;br /&gt;&lt;br /&gt;놀랍지 않습니까?&lt;br /&gt;건기에 비구름이라니!&lt;br /&gt;그러면 드보라가 보고 바락도 본 비구름을 대군을 이끈 시스라는 못본것일까요?&lt;br /&gt;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lt;br /&gt;똑같은 사람으로 장수로 천기를 살피는것은 기본중의 기본아닙니까&lt;br /&gt;더구나 지금 자기네는 강바닥으로 철병거와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lt;br /&gt;비가 오면 삽시간에 급류가 휘몰아치고 강바닥이 수렁이 되어 철병거가 바퀴가 빠지고 &lt;br /&gt;그래서 움직이기 어려우면 이스라엘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것을 과연 몰랐겠습니까&lt;br /&gt;전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지 않습니다&lt;br /&gt;&lt;br /&gt;만일 시스라가 그 정도도 생각지 못하는 장수라면 야빈이 &lt;br /&gt;그에게 철병거와 자기의 군대를 맡기고 의지할 리가 없을것이고 &lt;br /&gt;그런 사람밑에서 이스라엘이 20년 동안이나 학대를 당하면서도 &lt;br /&gt;꼼짝하지 못했을 리가 없겠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여러분&lt;br /&gt;가나안의 주신이 누굽니까?&lt;br /&gt;바로 바알아닙니까?&lt;br /&gt;바알은 비와 구름, 바람의 신입니다&lt;br /&gt;그러므로 시스라는 비록 비구름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비가 되어서 &lt;br /&gt;자기네를 해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lt;br /&gt;자기네의 신이 자기네를 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lt;br /&gt;가나안사람들이 여호와를 산의 신이라고 생각했던것과 마찬가지로 &lt;br /&gt;평지에서는 바알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어떻습니까?&lt;br /&gt;자기네가 그렇게 열심히 섬겼던 바알은 절대 절명의 순간에 &lt;br /&gt;그들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lt;br /&gt;하나님은 산의 신뿐만 아니라 평지의 신도 되시고 바알이 가지고 있는것 같았던 &lt;br /&gt;비와 바람과 구름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lt;br /&gt;&lt;br /&gt;갑자기 닥친 물에 떠내려가고 겨우 기진맥진한 몸으로 강에서 탈출한 그들에게 &lt;br /&gt;이스라엘은 성난 사자처럼 달려들었고 그렇게도 강한 용사와 최신 장비로 무장된 &lt;br /&gt;시스라의 철기군단은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여&lt;br /&gt;마침내 자기들의 고향인 하로셋으로 도망을 가다가 뒤쫓아온 바락의 군대에게 &lt;br /&gt;모두 전멸하고 말았습니다&lt;br /&gt;&lt;br /&gt;아마 아무도 이런 기상이변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lt;br /&gt;그리고 바로 그 비로 인하여 ,자기네가 평소에 그렇게 원하고 바랬던 그 비로 인하여 &lt;br /&gt;철기군단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될 뿐만 아니라 &lt;br /&gt;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마침내 시스라는 자기네 군대를 벗어나서 전차에서 내려서는 도보로 도망을 가지 시작합니다&lt;br /&gt;그런데 가다가 이 사람은 자기네와 평소부터 우호적이었던 겐사람의 장막을 지나게 됩니다&lt;br /&gt;아마 시스라는 모든게 틀어진걸 알고는 하솔왕 야빈에게 도움을 구하려 갈 생각이었던것 같습니다&lt;br /&gt;왜냐하면 헤벨의 장막이 바로 하솔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때문입니다&lt;br /&gt;&lt;br /&gt;막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을 지나려 하는데 갑자기 야엘이 나가서 시스라를 부릅니다&lt;br /&gt;우리 성경에는 들어오소서 들어오소서 라고 되어있지만 &lt;br /&gt;원문에는 돌이키소서 돌이키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lt;br /&gt;이걸로 봐서는 시스라는 이 장막을 지나서 계속 하솔로 갈려고 했던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갑자기 야엘이 나가서 통과하려는 시스라를 불러서 자기의 장막으로 맞아 들입니다. &lt;br /&gt;사실 전쟁에 패한 시스라는 이왕에 우호적인 족속이었다고 해서 겐사람들을 믿지 않았습니다&lt;br /&gt;&lt;br /&gt;자기가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을때는 자기하고 친한 척 비위를 맞추려고 &lt;br /&gt;온갖 아첨을 늘어놓다가도 막상 자기가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병의 신세가 되었을때 &lt;br /&gt;어떻게 사막의 유목민을 믿는단 말입니까?&lt;br /&gt;&lt;br /&gt;그런데 너무 간절하게 그리고 극진히 시스라를 영접하자 그만 &lt;br /&gt;시스라는 야엘을 믿고는 도망가던 도중에 잠을 청하게 됩니다&lt;br /&gt;바로 이게 시스라의 마지막이었습니다&lt;br /&gt;성경에는 야엘이 장막 말뚝으로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찍어서 죽여버렸다고 나옵니다&lt;br /&gt;참 잔인합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아무리 시스라가 도망중이고 경황이 없더라도 여자의 몸으로 &lt;br /&gt;장막말뚝으로 관자놀이를 꿰뚫어 죽인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닙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우리가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이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유목민들은 보통 안주인이 터를 잡고 위치를 선정합니다. &lt;br /&gt;그래서 먼저 말뚝을 박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장막을 치는 형태로 삶을 영위합니다 .&lt;br /&gt;그러므로 야엘 역시 항상 해왔던 말뚝질이라서 아마 익숙하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막 죽이고 나자 바락이 야엘의 장막에 도착합니다&lt;br /&gt;바락은 군대를 모두 전멸시키고는 뒤늦게 시스라가 없는 것을 알고 지금 허겁지겁 찾는 중인데....&lt;br /&gt;이미 시스라는 야엘의 장막 말뚝에 죽어있는 상태입니다&lt;br /&gt;전혀 엉뚱한 여인이 이번 전투의 제일 큰 공을 차지합니다&lt;br /&gt;&lt;br /&gt;머뭇머뭇 거린 결과 바락은 가장 큰 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lt;br /&gt;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루어지더니 &lt;br /&gt;이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인에게서 또 다른 성취를 봅니다&lt;br /&gt;&lt;br /&gt;처음 우리는 남자들이 철병거 때문에 평지를 포기하고 산에서만 살다가 &lt;br /&gt;결국은 한 개의 지파가 그대로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lt;br /&gt;그런데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여자인 드보라가 맡았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드보라 역시 여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바락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lt;br /&gt;그런데 지금 야엘이라는 전혀 엉뚱한 한 여인의 손에 그 무적의 철기군단을 이끌던 시스라가 &lt;br /&gt;정말이지 어이없게 죽어버렸습니다&lt;br /&gt;이 여인은 사사도 아니고 장군도 용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유목민 집안의 안주인에 불과합니다.&lt;br /&gt;하나님은 처음부터 야엘을 사용하시기 위하여 어느 날인가 야엘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주시키시고&lt;br /&gt;야빈의 관할에서 우호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셨습니다&lt;br /&gt;&lt;br /&gt;그렇기 때문에 시스라 역시 오랜 이웃인 야엘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가 큰 일을 당하였습니다&lt;br /&gt;즉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야엘을 먼저 보내셔서 &lt;br /&gt;결정적인 순간을 준비하게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lt;br /&gt;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자기네의 섬기는 신 바알이 가졌다고 생각되어왔던 장기,&lt;br /&gt;비와 구름에 의해 무너진것을 보았습니다. 즉 가나안인들이나 이스라엘 인들은&lt;br /&gt;바알을 너무 과대 평가해 왔습니다. &lt;br /&gt;실제로 바알이고 아세라고 전혀 도움이 되주지 않았습니다&lt;br /&gt;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전혀 능력이 없는 목석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lt;br /&gt;단지 그러한 목석을 이용해 쾌락을 즐겨왔을뿐&lt;br /&gt;&lt;br /&gt;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을 목도했습니다. &lt;br /&gt;인간의 눈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그는 하십니다&lt;br /&gt;&lt;br /&gt;왜냐, 그는 바알이 아니기 때문에&lt;br /&gt;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lt;br /&gt;&lt;br /&gt;오늘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펼쳐집니다&lt;br /&gt;그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나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들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lt;br /&gt;나아가 그 섭리의 역사의 주인공일 수 있습니다&lt;br /&gt;우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이 있습니까?&lt;br /&gt;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lt;br /&gt;&lt;br /&gt;그러면 하나님께 사랑의 아버지께 구하십시오&lt;br /&gt;안된다고 낙담하고 좌절하지만 말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lt;br /&gt;기도에 무슨 돈이 들고 시간이 들고 큰 희생이 따릅니까?&lt;br /&gt;괜히 기도하기 싫으니까, 어차피 기도해도 안될거라고 기도를 무시하니까&lt;br /&gt;기도하지 않고 안된다 안된다 하며 걱정만하는 겁니다&lt;br /&gt;조용히 기도해 보십시오&lt;br /&gt;그러면 놀라우신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lt;/P&gt;
&lt;P&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lt;P&gt;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일종의 신앙공동체에 가깝다고 합니다. 차별화된 교리를 지키지 못하면 공동체가 침묵 속에서 그대로 붕괴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이교도와 섞이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민족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철저히 우리와 이방인을 구분지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서 막강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비바람의 신 바알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요.&lt;/P&gt;
&lt;P&gt;1929년 시리아에서 이른바 우가리트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부분들이 실제의 일들을 기반으로 기록되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신으로 숭배되었던 바알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도 사실이었던 셈입니다. 말하자면 바알은 그 지역의 지존으로 추앙받았던 셈입니다.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자꾸만 헤어나오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화려한 바알에게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라고&amp;nbsp;감히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바알은 나이트클럽에서의 묻지마 부킹에 이은 원나잇 만큼이나 아찔한 신이라는 것. 언제나 항상 추종자가 있는, 꺼지지 않는 대상인 셈입니다.&lt;/P&gt;
&lt;P&gt;흔히 3S를 조심하라는 말을 과거에 많이 했습니다. 스크린, 스포츠, 섹스 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셋 다 좋아한다고 그래서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영화와 게임 등&amp;nbsp;이른바 미디어를 좋아하고, 축구와 야구에 매우 열광적이며, 성적인 코드에 굉장히 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이 좋은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까. 오색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고 멋있고 즐겁고 근사하기에, 눈과 귀를 멀게 해서, 노예처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순화하거나, 조작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포츠의 땀과 근성은 눈물날 만큼 멋있습니다!)&lt;/P&gt;
&lt;P&gt;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처럼 데모를 하지 않는 것은, 이미 3S가 더욱 막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데모나 투쟁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amp;nbsp;혹여 소송이라도 당할 수 있으므로 권력 앞에 모두 고개를 조아려야 합니다.&amp;nbsp;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져도, 3S가 밤마다 위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학대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amp;nbsp;이러한 학대적인 사회에서 일부는 자신의 못남을 탓하다가 마음의 병이 들어서 죽음의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본능적으로 남탓이라도 해둬야 이 절망적인 상황이&amp;nbsp;이해받을 것 같습니다.&lt;/P&gt;
&lt;P&gt;스마트폰이 생기고, SNS가 활성화 되었고, 새롭게 연결된 세상은 만들어졌습니다. 정말 21세기 같습니다. 당신의&amp;nbsp;삶은 얼마만큼&amp;nbsp;행복해 졌습니까? 한 번 뿐인 인생을 주인으로 보내고 있습니까? 저는 최근 &quot;요즘 정말 살맛나는 멋진 세상이야&quot;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quot;힘들어 죽겠어&quot;, &quot;스트레스로 멘탈붕괴 중&quot;, &quot;그저... 막막하다&quot;&amp;nbsp;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lt;/P&gt;
&lt;P&gt;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quot;당신은 오늘 무슨 생각으로 대체 살아가고 있습니까?&quot;, &quot;당신은 오늘 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quot;, &quot;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quot; 혹자는 군자를 두고 자율적 인간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가슴에 손을 대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꿈꾸던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게 되는 5월 입니다. / 2012. 05. 시북.&lt;/P&gt;&lt;/DIV&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21</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21#entry921comment</comments>
			<pubDate>Tue, 01 May 2012 00:12: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2년4월22일/이 재앙(출애굽기8:1-15)/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19</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22일 주일 예배&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 재앙 (출애굽기8:16-19)&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에게 내린 ‘이’ 재앙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리로서는 의아하겠지만 ‘이’역시 애굽 신의 상징입니다. ‘겝’이란 신입니다. 땅의 신이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먼저 이 재앙은 아무런 경고 없이 즉시 주어집니다. 첫 번째 사이클의 마지막 재앙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이전에 이미 두 번이나 경고하셨고 회개할 시간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즉시로 재앙을 내리셨다고 해서 회개할 시간이 없었다고 , 말도 없이 재앙을 내렸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바로는 이전의 개구리 재앙에서 개구리가 물러가면 히브리인들을 풀어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말을 믿고 참 간절히 기도함으로 개구리들을 애굽 땅에서 하숫가로 물러가게 한 모세를 배신하고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경고하고 회개하고 약속하는 시간없이 즉시로 ‘이’를 애굽땅에 퍼지게 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회개의 기회가 점점 줄어 들지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제일 처음에는 아침에(그러니까 내일 아침), 두 번째는 바로의 궁전에 찾아가서, 그리고 세 번째는 아무런 사전 경고없이 즉시로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런 패턴이 세 번씩 되풀이 되고 난 연후에야 열 번째로 직접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그 징계 역시 무시무시합니다. 그냥 죽여버리잖아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는 “과연 그분이 계신가?”라고 회의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벌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그분은 오래 참으시지만 불의를 보고 끝끝내 잠잠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불의를 저지르는데 하는 일이 형통합니까? 아니 아예 죄라는 의식도 희미합니까? 가슴이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두려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바로처럼 강팍해서 그런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강팍한 가운데서 살다가 심판을 받아서 영원히 멸망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를 ‘유기’라고 합니다. 버려두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까지 나를 버려두시기로 작정하셨단 말이거든요. 그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미리 경고도 하고 시간도 주고 조금씩 채찍으로 때려서 우리가 정신차리도록 하실터인데 그렇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분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기회를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분이 오래 참으시지만 오래 참던 이가 한번 채찍을 들면 더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기를 아론으로 하여금 그 지팡이로 땅을 세게 내리치도록 하십니다. 그러면 땅의 티끌이 피어오를 것이고 그것이 이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 역시 우리들의 상상과는 달리 애굽의 신을 상징합니다. 즉 땅의 신인 ‘겝’을 상징합니다. 이 ‘겝’이란 신은 하늘의 여신 ‘누트’와 합하여 애굽의 주신 ‘오시리스’를 잉태한 신이라고 합니다. 음, 이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안나와 있네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늘과 땅이 합하여 주신 ‘오시리스’를 낳았다는 신화는 우리나라의 삼신 신화와 비슷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나라의 신화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에는 삼신교를 믿었는데 하늘아버지인 ‘천일’과 하늘아버지의 아들인 ‘지일’, 그리고 천지간에 가득한 덕량이라는 ‘태일’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이게 삼위일체의 기독교 교리와 비슷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늘 아버지인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 즉 성자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신 성자 하나님 이렇게 삼위일체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과 매우 유사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나라의 한글 역시 천지인,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사람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고 하니 뭔가 고대에 알 수 없는 비밀이 이 땅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겝’신이 이번에는 하나님에게 혼쭐이 납니다. 하나님은 거듭거듭 이러한 것들이 결코 너희의 신이 될 수 없다고 보여주시는데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야 별 수가 없습니다. 벌만 가중될 뿐입니다. 그래서 고집쟁이는 고통만을 더할 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는 우리가 매우 잘 아는 것입니다만 성경은 여기 ‘이’의 정체에 대해서 약간씩 다른 견해를 취합니다. 말 그대로 ‘이’라고 하는 측이 있고 ‘진드기’다 또 ‘각다귀’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각다귀는 모기와 비슷합니다. 모기보다 작지만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며 나일강이 범람하는 지역에 산다고 합니다. 이 각다귀는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물과 적당한 온도만 되면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이 각다귀는 사람을 공격할 때는 머리털, 옷 속, 심지어 눈이나 귀, 코 속까지 들어와서 피를 빨기 때문에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아마 여기서 말하는 ‘이’는 각다귀일 것이라는 설이 제일 유력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물론 단순히 ‘이’일 확률도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이 성경자체는 아니니까요. 번역상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는 아니고 벼룩의 공격에 관해서 제가 조금 들어본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가 살펴보듯이 하나님의 재앙들은 모두 애굽의 자연현상 중의 하나로써 그 수가 많거나 정도가 극심해서 그렇지 특별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거나, 전혀 새로운 짐승이나 괴수 같은 것이 나와서 애굽의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공포를 불러 일으킨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앞서의 나일강이 피가 되는 것이나 개구리가 나오는 것이나 오늘의 ‘이’나 다 나올 만 합니다. 평소에도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이 물을 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각다귀가 물에서 나오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물이 아니라 땅의 티끌, 즉 먼지를 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땅을 지팡이로 내려치면 먼지가 피어오르고 그것이 이가 된다고 하십니다. 물이 아니라 땅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땅에서가 아니라 주로 물에서 생기는 것들이 땅을 침으로 생긴다? 이게 바로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자연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든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나일강이 피처럼 붉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본래 나일강은 이디오피아를 통과하면서 아비시니아 고원의 붉은 점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혹가다가 피처럼 붉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황토물이나 핏빛처럼 붉은 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고기들이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고기는 황톳물 속에서도 잘 삽니다. 중국의 황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원래 나일강가에 그 개구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신이 된 것입니다. 비옥한 땅에서 잘 기어답니다. 그러니 애굽인들은 그 개구리가 자신들에게 해를 준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를 받자 그 개구리가 자기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너무 너무 귀찮고 고통스럽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래도 이제까지는 있던 것을 가지고 애굽을 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티끌을 가지고 이를 만드신 것입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이적입니다. 이제 애굽의 술사들도 따라하지 못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애굽에 각다귀가 많아서 그들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모기니 각다귀는 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번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땅의 티끌을 각다귀로 만드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초자연적 현상, 즉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비슷하거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직히 이나 각다귀가 비위생적인 곳에서 대량으로 서식하는 일은 흔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전혀 자연적으로는 일어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물이 아니라 땅에서 발생했다고 하기 때문에 자연적이지 않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내려친 부분은 아주 적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내려쳐진 결과는 자못 심각합니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해 애굽 모든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중요하기도 하고 아주 적은 울림이 거대한 재앙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아론의 지팡이가 애굽을 돌아다니며 땅들을 내려친 것이 아닙니다. 아론은 다만 한 지점의 땅만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온 애굽땅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결코 한정된 사람과 한정된 땅에만 그 이가 퍼진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히브리 노예도 없고 , 나는 하나님을 비웃거나 경멸한 적이 없어서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요?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죄악입니다. 세상이 점점 타락하는데 이를 그냥 방관한 죄입니다. 음, 이를 공범이라고 합니까?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닌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이 되셔서 자기를 내어 놓게 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또한 아론의 지팡이가 땅을 쳤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애굽의 신 ‘겝’을 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겝’이 주신 ‘오시리스’의 어버이란 사실을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오시리스’마저도 여호와의 치심을 받는 것으로 일이 진행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애굽의 바로는 어느 신이 더 높은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가 그렇게 잘나고 위대한 신이라면 어떻게 자기의 백성들을 수백년간 노예로 놔둘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인들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신을 치시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만일 애굽의 바로가 영안이 있었다면 ‘이’재앙을 보고는 항복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더 큰 재앙이 닥쳐올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가 주는 고통이나 불편함은 그의 자존심과 탐욕보다 약했던 것 같습니다. 노예의 신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자존심, 돈이 얼만데 어른아이 합해서 무려 200만이나 되는 노예를 풀어 준다니....‘ 어른 노예는 은30세겔이고 미성년은 은20세겔입니다. 그러면 돈이 얼맙니까? 그런 욕심이 ’이‘가 주는 고통을 이겨내게 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애굽의 술객들이 이 재앙을 흉내 내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인간들은 이 재앙을 따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시인합니다. 이전까지는 애굽의 술사들이 모세의 재앙을 따라하거나 적어도 흉내는 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은 전혀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신의 손길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들은 지금 인간의 과학이 신의 영역을 정복해 간다고 자랑합니다.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게놈지도를 읽는다,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사라진 팔다리를 만들어 내고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장기를 이식하고 심지어 복제인간에 본판 인간의 영혼을 집어 넣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을 만들려는 노력들이 쉬임없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새로운 우주 탄생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들도 일어납니다. 인간들은 지금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저는 이러한 노력들이 금지되어야 된다거나 헛되다 이런 식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저는 우습다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왜냐고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인 , 신의 특별한 작품과 신적 영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원숭이에서 진화한, 더 나아가서는 단세포 아메바에서 출발한 인간으로 생각한 하찮은 인간이 마침내 스스로를 신으로까지 목표로 하고 있으니 우습다는 말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솔직히 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이라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일들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단세포 동물로 설정해 놓고 , 스스로를 짐승의 한종류로 설정해 놓고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고 설치는 인간들이 너무 우습습니다. 그래서는 ‘이’를 자기들의 주신 ‘오시리스’의 어버이를 낳은 땅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숭배하는 애굽인들과 무엇이 다릅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가 신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웃깁니다. 개구리 보다 더 작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처음은 몇 개를 따라해도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애굽의 술사들이 말한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에 굴복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신이 있듯이 히브리인들도 도와주는 신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말일뿐입니다. 왜냐면 여기서의 하나님은 ‘엘로힘’이고 이 엘로힘의 원뜻은 단순히 ‘신, 또는 신의 복수형인 신들’이거든요. 이제 겨우 애굽의 술사들은 ‘이’재앙이 인간의 트릭이 아니라 신적인 역사임을 인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그 신은 애굽의 술사들이 생각하는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란 사실을 이제부터 애굽인들은 질릴 정도로 , 뼈에 아로 새겨지도록 깨닫기 시작할테니까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더 놀랍고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두 손 들고 포기한 이 거대한 ‘신적 이적’을 보고도 바로는 히브리인들을 풀어 주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마음이 더 강팍하여져서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너무도 명명백백한 사실일지라도 자기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위협받지 않으면 끝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부득부득 하나님이 없다고 우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눈앞에서 고통받는 현실을 보고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이 아니라고 외면합니다. 나는 아직 살만하거든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초자연적 현상을 보고서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바로가 굳이 고집을 부리고 마음이 강팍해서 말을 안듣는 이유는 마음속의 욕심 때문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고, 자기가 신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신이 조종하도록 하지 않으려 하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강팍한 인간의 마음을 사탄은 참 잘 이용합니다. 처음부터 사탄은 자기를 섬기게 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해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 아니라 다른 신도 있다. 그러니 하나님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섬겨도 된다. 신이 여럿 있으니까 인간은 이 신 저 신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신에 절대적으로 구속되는 것보다 훨씬 인간에게는 숨쉴 공간이 넓어지게 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바로와 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적이라고, 신의 권능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우연이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갈 것입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이 항상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의 구원의 방주문이 닫히고 무서운 심판이 벌어질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을 민감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우리의 영적인 안테나를 고정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그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속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22일&amp;nbsp;주일 예배&lt;/P&gt;
&lt;P&gt;――――――――――――――――――――――――――――――――――――――――――――――――――――――――――――――――――――――――――&lt;/P&gt;
&lt;P&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amp;nbsp;/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lt;/P&gt;
&lt;P&gt;&amp;nbsp;마태복음 11장을 보면, &quot;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quot;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감각에 대한 경고 입니다. 병든 사회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춤추지 않는 사회, 기쁨을 억압하는 사회, 표현을 말살하는 사회가 되면, 틀림없이&amp;nbsp;고여있어 썩은 물과 같이&amp;nbsp;악취가 나기 시작합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향수를 뿌려댈 수 있으니 느끼지 못하겠지요. 흡사 바로 처럼, 사람들이 아무리 울고 있어도, 귀가 먹은 것처럼 들리지가 않습니다. 다니엘 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손길이 경고를 해도, 벽에 낙서를 보듯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로 유행가 제목처럼&amp;nbsp;I Don`t Care 가 되는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인생의 길을 걷다가, 춤출 일이 있다면 신나게 춤을 추고, 슬픈 일을 만나면 함께 울 수 있고, 경고 앞에서는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소박한 기독교인이 되기를, 다만 그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amp;nbsp;2012. 04. 25. 시북.&lt;/P&gt;&lt;/SPAN&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19</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19#entry919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4:23:49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3월14일/큰 용사여 일어나라(청년설교10)/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18</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SPAN&gt;&lt;/P&gt;
&lt;P&gt;1.또 다시 범죄한 이스라엘&lt;br /&gt;&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가나안의 하솔왕 야빈을 격파하고&lt;br /&gt;지난 40년간을 평화롭게 살았습니다&lt;br /&gt;그런데 한 40년 평화롭게 살게되자 이 사람들의 고질적인 죄악성이 피어오릅니다&lt;br /&gt;바로 욕정입니다&lt;br /&gt;성경6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도데체 무슨 악을 행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lt;br /&gt;&lt;br /&gt;2.바알에 미친 이스라엘&lt;br /&gt;&lt;br /&gt;본문에는 단순히 또 악을 행했다고 했지만 &lt;br /&gt;실제로 히브리원문에는 ‘악’ 앞에 정관사 ‘그’를 붙여서 바로 ‘그 악’이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lt;br /&gt;이것은 이스라엘이 숙명적으로 되풀이해서 빠졌던 죄악인 &lt;br /&gt;바알과 아세라 숭배 즉 우상숭배의 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lt;br /&gt;그런데 우상숭배가 왜 욕정입니까?&lt;br /&gt;&lt;br /&gt;그리고 도데체 바알과 아세라가 어떤 신이길래 &lt;br /&gt;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끊임없는 징계를 받으면서도&lt;br /&gt;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이 조금만 편해지면 미친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lt;br /&gt;바알과 아세라에게 달려갔던 것일까요?&lt;br /&gt;&lt;br /&gt;6장에 나와있는 이표현은 사사기 4장1절에 그리고 3장 7절과 12절에 나와있는 표현과 동일합니다&lt;br /&gt;바알과 아세라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특별히 영험해서일까요?&lt;br /&gt;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바로 그 하나님 여호와 대신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어야 되겠지요&lt;br /&gt;그런데 이 바알과 아세라는 이제 아무도 안 섬기는 것을 보면 전혀 어떠한 염험도 없었음이 확실합니다&lt;br /&gt;물론 사탄이 이 바알과 아세라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lt;br /&gt;가끔가다 그 장소에서 역사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어쨌든 바알과 아세라 자체는 말하지 못하는 단순한 돌멩이와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다&lt;br /&gt;그런데 왜 도데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미친듯이 수많은 역사의 교훈을 받고서도 &lt;br /&gt;조금만 몸이 편안해지면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간 것일까요?&lt;br /&gt;바로 그게 욕정 거꾸로 말하면 정욕 때문이라는 겁니다&lt;br /&gt;&lt;br /&gt;사실 이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예배하는 것은&lt;br /&gt;하나님을 예배하는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큼 재미있습니다&lt;br /&gt;아니 재미가 아니라 열광적이고 몰입시키고 거의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합니다&lt;br /&gt;&lt;br /&gt;허참 성령의 역사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까?&lt;br /&gt;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예배는 한마디로 말하면 스트립쇼와 집단 혼무 &lt;br /&gt;그리고 혼음으로 이어지는 광란의 섹스파티입니다&lt;br /&gt;&lt;br /&gt;바알과 아세라 신전에는 예배의식을 수행하는 ‘성스러운 창녀’들이 있었고&lt;br /&gt;심지어는 ‘성스러운 남창’ 그리고 더한 것은 수간용으로 사용되는 염소들도 있었다는 겁니다&lt;br /&gt;성경에서 남색과 수간을 가증히 여겨서 돌로 쳐죽이라고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lt;br /&gt;&lt;br /&gt;여러분&lt;br /&gt;이정도면 이해가 되십니까?&lt;br /&gt;엄숙하고 거룩하며 단조롭고 기름냄새와 피비린내 진동하는 &lt;br /&gt;그리고 아까운 제물을 낭비하는 여호와 예배와 관능적이고 향락적이며 &lt;br /&gt;인간의 말초적 본능을 최대한 자극하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lt;br /&gt;예배행위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아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lt;br /&gt;&lt;br /&gt;3.재미있는 예배가 능사가 아니다&lt;br /&gt;&lt;br /&gt;저는 오늘의 우리예배를 돌이켜서 한번 여기에 대입시켜 봅니다&lt;br /&gt;아무리 우리 예배를 재미있게 한다고 해도 세상이 주는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lt;br /&gt;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예배를 아무리 재미있게 꾸며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죠&lt;br /&gt;나이트에서 춤추고 미남 미녀들과 향략을 즐기는 것하고 &lt;br /&gt;예배를 드리는 것 하고는 아예 기본자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재미라는 관점에서는 &lt;br /&gt;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lt;br /&gt;&lt;br /&gt;그래서 우리는 이 예배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갈구하는 것입니다&lt;br /&gt;즉 성령이 임하실 때만이 이러한 세상적인 재미를 능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lt;br /&gt;성령이 임하시지 않는다면 예배는 정말 지루하고 딱딱하며 &lt;br /&gt;공연히 시간만을 축내는 비생산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더 퇴페적일수록 더 향락적일수록 그리고 즐기면 즐길수록 &lt;br /&gt;더 더 더 신에게 잘 예배한것이 되고 더 많은 복을 준다는데 &lt;br /&gt;도대체 누가 이 신을 안섬기려 하겠습니까?&lt;br /&gt;&lt;br /&gt;여하튼 이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나면 바알과 아세라에게 달려가곤 했습니다&lt;br /&gt;이러한 것을 아시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모든 이방족속들을 멸하라고 &lt;br /&gt;그렇게 신신당부하셨던 것이지요&lt;br /&gt;&lt;br /&gt;촌놈들이 도시문명의 화려함과 향락을 일단 한번 맛본다면 &lt;br /&gt;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촌에서 그냥 눌러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lt;br /&gt;아니 마약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lt;br /&gt;마약을 일단 한번 맛보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지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lt;br /&gt;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정부는 이러한 마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lt;br /&gt;마약밀수와 매매을 최대의 범죄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단속하고 발본색원하려고 &lt;br /&gt;엄청난 예산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lt;br /&gt;너희가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들면 결국 너희는 죽는다&lt;br /&gt;그래서 내가 너희를 징계하고 훈계하며 채찍질하는 것이다&lt;br /&gt;어떻습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되십니까&lt;br /&gt;&lt;br /&gt;4.미디안에게까지 당하는 이스라엘&lt;br /&gt;&lt;br /&gt;여하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다가 &lt;br /&gt;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당했는데 이번에는 딱 칠년동안 미디안 사람을 섬기게 하셨습니다&lt;br /&gt;칠년이라 ...........&lt;br /&gt;이상하게도 형벌이 너무 가벼운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바로 이전에 이스라엘은 동일한 범죄로 20년동안 가나안의 하솔왕 야빈을 섬겼는데&lt;br /&gt;어째서 겨우 7년만?&lt;br /&gt;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이 들어서 조금 덜 범죄했나?&lt;br /&gt;&lt;br /&gt;하하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닙니다&lt;br /&gt;1절에 보면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라는 구절을 직역하면 &lt;br /&gt;“그가 그들을 미디안에게 주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lt;br /&gt;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아래 있지 못하고 &lt;br /&gt;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손에 내맡겨지게 되었단 말입니다&lt;br /&gt;&lt;br /&gt;미디안족속은 이스라엘과 결코 관계가 없는 민족은 아닙니다&lt;br /&gt;모세의 장인이 바로 이 미디안족의 제사장아닙니까&lt;br /&gt;그리고 이스라엘에 백부장 , 천부장 제도를 마련한 것이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입니다. &lt;br /&gt;&lt;br /&gt;그러고 보면 참 미디안족속이 이스라엘에 큰 도움을 준 우호적인 이웃이었는데 &lt;br /&gt;이제 여호와의 보호의 손길이 떠나가자 즉시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어서는 &lt;br /&gt;이스라엘을 공격해서 7년을 지배하는데 햇수는 짧지만 &lt;br /&gt;그 강도는 이제까지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lt;br /&gt;&lt;br /&gt;5.망각된 경고의 말씀&lt;br /&gt;&lt;br /&gt;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lt;br /&gt;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lt;br /&gt;여러분&lt;br /&gt;원래 하나님은 우리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lt;br /&gt;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하나님 대신에 인간들이 &lt;br /&gt;스스로를 위하여 피난처와 산성을 만들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그들이 여기에 피난하려고 했지만 식량을 위하여 &lt;br /&gt;그들이 곡식을 파종하고나면 3,4절에 미디안사람, 아말렉사람, 동방사람들이 쳐들어와서는&lt;br /&gt;이스라엘의 밭에다가 자기네 가축을 풀어서는 모든 식물들을 먹어치우게 합니다&lt;br /&gt;&lt;br /&gt;자기네만 산에 피하고 굴에 숨어있으면 뭐합니까&lt;br /&gt;자기네의 밭이 모조리 황폐해지고 토지 소산이 없어지는데...&lt;br /&gt;사실 하나님은 이미 신명기 28:15,33절에서 “네가 만일&lt;br /&gt;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lt;br /&gt;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며 행하지 아니하면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라고 경고하고 계셨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워낙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바알과 아세라에 미쳐있던 백성들인지라&lt;br /&gt;그런 경고의 말씀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른단 말입니다&lt;br /&gt;알수가 없죠. 뭐 성경을 보기를 해야 그런 말씀이 적혀있는지를 알지.............&lt;br /&gt;&lt;br /&gt;6.가혹한 채찍&lt;br /&gt;&lt;br /&gt;뿐만아니라 한두 민족이 아니라 거의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힌것 같습니다.&lt;br /&gt;동방사람이라고 한걸 보면 하란, 모압, 에돔, 아랍족속들이 미디안의 약탈과 함께 떼를 지어 &lt;br /&gt;이스라엘에게로 쳐들어 온것을 알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리고 이들은 토지소산을 모두 먹어치우고는 &lt;br /&gt;이스라엘의 소나 양 이나 나귀도 몽땅 끌고가 버렸습니다&lt;br /&gt;가나안의 북에서부터 남쪽에 이르기까지 그 땅에 식물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합니다&lt;br /&gt;&lt;br /&gt;그래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무자비한 약탈과 침략행위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lt;br /&gt;산속에 숨어서 자기네 땅에서 자기네가 지어놓은 곡식들을 먹으며 &lt;br /&gt;그것도 인간들이 먹는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먹으며 자기의 가축들을 끌어가고&lt;br /&gt;촌락을 파괴하는 미디안과 여타 족속들을 바라보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서&lt;br /&gt;아무도 나와서 싸울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7.다시 부르짖는 이스라엘&lt;br /&gt;&lt;br /&gt;매년 이렇게 7년을 계속하게 되니 마침내 이스라엘 인들은 &lt;br /&gt;인간적인 정욕에서 벗어나 참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lt;br /&gt;&lt;br /&gt;아무리 그 앞에서 음란하게 춤을 추고 음행을 일삼으며 경배해도 &lt;br /&gt;바알과 아세라는 어떤 구원도 베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lt;br /&gt;&lt;br /&gt;인간들 참!&lt;br /&gt;그렇게 고난을 당하지 않고 채찍에 맞지 않고 평안할 때&lt;br /&gt;하나님 안에 거할줄 모르다가 호되게 당해서 죽기 직전에야 겨우 하나님을 찾다니 참 인간이란!&lt;br /&gt;그러나 뭐 죽기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것 보다는 그래도 낫습니다&lt;br /&gt;&lt;br /&gt;8.하나님의 응답&lt;/P&gt;
&lt;P&gt;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마침내 응답하셨는데 &lt;br /&gt;한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lt;br /&gt;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고 그 땅은 내가 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lt;br /&gt;&lt;br /&gt;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lt;br /&gt;너희가 내말을 안들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lt;br /&gt;너희가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만든건&lt;br /&gt;바로 너희들이라는 말입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당신이 계시다면 &lt;br /&gt;어찌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이야기 하지만 &lt;br /&gt;이 모든 악과 불행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에게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lt;br /&gt;&lt;br /&gt;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 &lt;br /&gt;미디안과 동방사람들의 약탈과 압제가 계속되자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lt;br /&gt;그에게 불평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기네에게 아무 힘도 주지 못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계속해서&lt;br /&gt;음란히 섬기고 있었습니다&lt;br /&gt;&lt;br /&gt;이 사람들 참&lt;br /&gt;자기네가 미디안이나 아말렉 사람들 그리고 다른 동방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lt;br /&gt;그들은 그 사람들의 신이 하나님보다 더 세기 때문에 그 신들을 섬겨야 자기네도&lt;br /&gt;이 고통에서 해방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lt;br /&gt;&lt;br /&gt;그리고 뭐 어차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다는 건 자기네의 쾌락이 점점 더해가는 거니깐&lt;br /&gt;전혀 손해가 아닙니다&lt;br /&gt;광야에서 찌는듯한 무더위 가운데 서서 &lt;br /&gt;제물의 각을 뜨고 태워서 또는 삶아서 제사를 지내고 자기네는 서서 그걸 보는것 보다는 &lt;br /&gt;자기네에게 쾌락을 주는 좋은 신을 잘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lt;br /&gt;&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자 그들은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lt;br /&gt;그 땅의 신, 즉 농경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되었더라는 말입니다&lt;br /&gt;&lt;br /&gt;바람과 비를 주관한다는 바알과 풍요의 신인 아세라를 섬겨야 농사도 잘되고 새로운 땅에서&lt;br /&gt;잘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겁니다&lt;br /&gt;&lt;br /&gt;이제까지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는 산의 신이고 &lt;br /&gt;유목민의 신이므로 옛날 말이지 농사를 짓고 있는 지금 섬길 신은 아니라 이겁니다&lt;br /&gt;이건 배은망덕도 유분수지............&lt;br /&gt;정말 황당한 사람들입니다&lt;br /&gt;이러니 하나님이 어찌 징계의 채찍을 들지 않으시겠습니까?&lt;br /&gt;&lt;br /&gt;9.마침내 기드온이 등장하다&lt;/P&gt;
&lt;P&gt;갑자기 성경은 여호와의사자가 오브라의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는데 마침 기드온이&lt;br /&gt;미디안 사람 몰래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lt;br /&gt;기드온의 등장을 알리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면서 무어라고 하는고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lt;br /&gt;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lt;br /&gt;그러자 기드온은 무어라고 대답합니까?&lt;br /&gt;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lt;br /&gt;또 하나님의 그 이적이 어디있나이까?&lt;br /&gt;그리고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lt;br /&gt;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lt;br /&gt;&lt;br /&gt;여러분&lt;br /&gt;솔직히 이 앞절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lt;br /&gt;지금 너희가 당하는 고통이 너희가 나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도 기드온은 지금 그 말은 못들었는지 하나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lt;br /&gt;그리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어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불평합니다&lt;br /&gt;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 붙이셔서 &lt;br /&gt;우리가 지금 이렇게 괴롭다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여러분&lt;br /&gt;조금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에게&lt;br /&gt;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lt;br /&gt;&lt;br /&gt;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합니다&lt;br /&gt;솔직히 말하면 기드온은 결코 큰 용사가 아닙니다&lt;br /&gt;&lt;br /&gt;이사람은 지금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서 포도주틀에서 &lt;br /&gt;몰래 곡식을 빻고 있던 겁쟁이입니다&lt;br /&gt;또 사람들은 먹을것이 없어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산에 숨어살고 있지만 &lt;br /&gt;그래도 자기는 먹을것이 있으므로 이웃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현실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지않고&lt;br /&gt;아니 아예 그런생각조차 없이 내 한목숨 살면 된다고 &lt;br /&gt;숨어서 곡식이나 빻고 있는 뻔뻔한 자이기도 합니다&lt;br /&gt;&lt;br /&gt;더 놀라운 사실은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네의 죄 때문에&lt;br /&gt;자기들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은 꿈에도없이 오히려&lt;br /&gt;&lt;br /&gt;하나님 당신이 우리 고통의 원흉이라고 외치는 후안무치한 무식장이입니다&lt;br /&gt;또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lt;br /&gt;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큰용사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lt;br /&gt;하나님이 찾아오신것에 대한 감격이나 두려움도 없고 &lt;br /&gt;그냥 천연덕스럽게 원망이나 늘어놓고 있는 영적 불감증에 걸린 불평장이의 모습만을 &lt;br /&gt;보여줄 뿐입니다&lt;br /&gt;&lt;br /&gt;이번에는 우리가 불평해야 겠습니다&lt;br /&gt;하나님 뭐 저런 것을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까?&lt;br /&gt;그렇게도 사람이 없습니까?&lt;br /&gt;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말씀하시되 &lt;br /&gt;너는 이 네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lt;br /&gt;&lt;br /&gt;내가 너를 보냈다 라고 하셨는데 이 사람의 대답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lt;br /&gt;처음답은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lt;br /&gt;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자니이다&lt;br /&gt;&lt;br /&gt;지금 하나님이 친히 그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보내노니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lt;br /&gt;명령을 내리시자 기드온은 자기는 힘이 없어서 도저히 못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lt;br /&gt;그가 겸손해서 그런 말을 한것이 아닙니다&lt;br /&gt;이 사람은 천성적으로 비겁한 자이고 노예근성을 가진 자입니다&lt;br /&gt;&lt;br /&gt;현실을 파악하는 역사적 안목도 없고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lt;br /&gt;건전한 기독교인다운 자세도 보이지 않습니다&lt;br /&gt;그냥 자기한몸 무사한 걸로 만족하며 &lt;br /&gt;세상이 잘못되는 것은 무조건 하나님탓으로 너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lt;br /&gt;한심한 소시민에 불과합니다&lt;br /&gt;&lt;br /&gt;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lt;br /&gt;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lt;br /&gt;그리고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사람을 치듯하리라&lt;br /&gt;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lt;br /&gt;&lt;br /&gt;이쯤되면 왠만한 사람이라면 그럼 제가 한번 해보지요 정도는 될겁니다&lt;br /&gt;아무리 겁쟁이고 꿈이없는 소시민이라 할지라도.............&lt;br /&gt;그런데 이 사람은 대뜸 그러면 하나님 저에게 표징을 보여주십시오&lt;br /&gt;참 나 이제는 이적을 보여달랍니다&lt;br /&gt;그리고 내가 준비를 할동안 어디 가지말고 나를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lt;br /&gt;가서 뭘 가져왔나 보십시오&lt;br /&gt;&lt;br /&gt;염소새끼하나, 고운 가루 한 에바, 한소쿠리의 고기, 한양푼이에 가득한 국&lt;br /&gt;아마 염소새끼를 잡아서 고기와 국을 만든것 같은데...........&lt;br /&gt;&lt;br /&gt;이만하면 당시에는 엄청난 호화판입니다&lt;br /&gt;모두들 먹을게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산속 동굴에서 전전긍긍하던때에 &lt;br /&gt;이정도 음식을 가져올 정도라면 기드온의 집에는 양식이 어느정도는 넉넉하게 있었던것 같습니다&lt;br /&gt;그러니까 남의 불행에 눈을 감았는지도 모릅니다&lt;br /&gt;&lt;br /&gt;지킬게 너무 많아서....이걸로도 충분한데 ............... &lt;br /&gt;괜히 뭐 큰용사니 뭐니 떠들어서 독립군을 일으켜봐야 ............... 뭐 어차피 이길것 같지도 않고&lt;br /&gt;&lt;br /&gt;여호와의 사자가 국을 쏟은 반석에서 불이나오게 하고 그 불을 타고 떠나 버리자 &lt;br /&gt;비로소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슬프다고 부르짖는데&lt;br /&gt;&lt;br /&gt;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lt;br /&gt;자기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므로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슬퍼합니다&lt;br /&gt;&lt;br /&gt;이 사람은 이 순간에도 오로지 자기의 목숨에만 관심이 있습니다&lt;br /&gt;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고 하니 안심하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lt;br /&gt;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은 원문상으로는 “너에게 평강!”이런 뜻입니다&lt;br /&gt;샬롬이라고 하지요&lt;br /&gt;참 지금 하나님은 네가 안죽을테니 너무 떨지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lt;br /&gt;&lt;br /&gt;기드온은 아무리 봐도 기가 찬 사람입니다&lt;br /&gt;아마 하나님역시 이 기드온을 잘 알았던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성경에 기드온은 단지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다라고만 말하고 슬프답니다&lt;br /&gt;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자기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lt;br /&gt;뭐 비겁한 졸장부가 자기목숨외에 무엇 때문에 슬퍼하겠습니까?&lt;br /&gt;&lt;br /&gt;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lt;br /&gt;이웃들이 못살겠다고 외쳐도 나만 살수있으면 되지 &lt;br /&gt;내가 왜 다른이들을 돌아보아야해! 하며 이웃의 불행과 고통과 억울함과 불의에 눈감지 않습니까?&lt;br /&gt;&lt;br /&gt;지금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어도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하며&lt;br /&gt;나자신만을 돌보고 있지않습니까?&lt;br /&gt;&lt;br /&gt;큰용사여 일어서라!고 주님이 말씀하실때에 조차&lt;br /&gt;하나님 전 큰용사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전 극히 하잘것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는&lt;br /&gt;이기적인 사람은 아닙니까?&lt;br /&gt;&lt;br /&gt;그리고 분명히 우리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lt;br /&gt;당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살고 있습니다 라며&lt;br /&gt;하나님을 원망하고 남의 탓을 하며 &lt;br /&gt;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lt;br /&gt;&lt;br /&gt;그리고 일어서라고 하는 하나님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왜 그모양입니까?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회피하고는 그 책임은 하나님에게 지우지는 않습니까?&lt;br /&gt;&lt;br /&gt;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님앞에 큰 용사입니까?&lt;br /&gt;그래서 이 누란에 처한 나라를 구할 사람입니까?&lt;br /&gt;&lt;br /&gt;아니면 나에게 곡식이 있고 그래도 종도 있고 살만하니&lt;br /&gt;아예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던지 나만 내 가족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lt;br /&gt;소시민에 불과합니까?&lt;br /&gt;&lt;br /&gt;하나님은 이제까지 소시민적이고 비겁하고 소극적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lt;br /&gt;큰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 한다&lt;br /&gt;&lt;br /&gt;이제 네가 일어나서 나를 의지하여 이 나라를 구원하라고 하실 때 &lt;br /&gt;주의 명령에 순종하고 큰 용사로 일어서는 &lt;br /&gt;그래서 나라를 구하는 이 사회를 구하는 그런 강력한 믿음의 큰 용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lt;/P&gt;
&lt;P&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lt;P&gt;&amp;nbsp;2012. 04. 누란(쌓아올린 계란)이라는 말은&amp;nbsp;우리 또래인 오늘날의 2030세대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나, 386세대인 홍목사님이나, 조국교수님과 같은 분들에게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이 설교문은 마침 지금 시절을 빗대는 듯한 엄중한 목소리로, 현실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lt;/P&gt;
&lt;P&gt;누란지위의 나라, 한국사람은 외국사람들에게 으르렁 거리고, 일부&amp;nbsp;외국사람은 한국사람을 함부로 막 대하고, 밑에서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느라&amp;nbsp;거의 임금은 올라가지 않는 이상한&amp;nbsp;나라.&amp;nbsp;물가는 황당하게 오르곤 하는 나라. 빈부의 양극화는 극도로 심해져서 박경철 원장님의 비유처럼 &quot;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빈부차이가 너무도 심합니다. 대자본의 기회는 한량없이 연해있고, 가난한 자는 송곳을 세울 곳도 없습니다&quot; 위태위태한 나라.&lt;/P&gt;
&lt;P&gt;&amp;nbsp;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소심하게 살아가는 기드온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듯이, 어쩌면 지금 나약한&amp;nbsp;우리를 통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라고, 보다 바르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라고, 오늘 이 순간도 촉구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것을 보면서,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이 질문이 온종일 가슴을 칩니다.&lt;/P&gt;&lt;/DIV&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18</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18#entry918comment</comments>
			<pubDate>Sun, 22 Apr 2012 22:25: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3월7일/그가 지휘하신다(청년설교9)/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548</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SPAN&gt;&lt;br /&gt;&lt;br /&gt;여호수아5:10-15&lt;br /&gt;&lt;br /&gt;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 진을치고는 &lt;br /&gt;출애굽후 세 번째의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lt;br /&gt;그리고는 그 땅에서 자라고 있던 보리이삭을 거두어서 먹었습니다&lt;br /&gt;그러자 하늘의 만나가 그쳤다고 합니다&lt;br /&gt;이제 비로소 이스라엘백성들은 만나대신에 땅에서 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이스라엘사람들이 가나안땅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lt;br /&gt;요단동편의 일부지역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lt;br /&gt;요단서편에서 그들은 단 한 개의 성도 차지하지 못하고 이제 그 첫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lt;br /&gt;그것도 가장 강한 여리고성과의 전투를&lt;br /&gt;이래저래 여호수아는 착잡합니다&lt;br /&gt;&lt;br /&gt;그래서 혼자서 진을 나와 여리고성 가까이 와서 들판을 거닐고 있습니다&lt;br /&gt;어떻게 하면 저 성을 함락시킬수 있을 것인가&lt;br /&gt;&lt;br /&gt;여러분&lt;br /&gt;여리고성은 보통의 성읍이 아닙니다&lt;br /&gt;이중성벽으로 둘러쳐진 견고한 성벽안에 물이 풍부하며 &lt;br /&gt;종려나무가 많아서 종려나무성읍이라고 불려지는 푸른 곳입니다&lt;br /&gt;뿐만아니라 발삼나무가 있어서 바람이 불때마다 발삼향이 풍겨오는 &lt;br /&gt;아름답고 푸르르며 강력하고 견고한 성입니다&lt;br /&gt;&lt;br /&gt;지금 여리고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나안 사람들은 &lt;br /&gt;이스라엘백성들 앞에서 숨을 죽이고 성벽안에 엎드려 있습니다&lt;br /&gt;&lt;br /&gt;왜입니까?&lt;br /&gt;하나님이 그들을 기적적으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lt;br /&gt;홍해를 육지같이 지나게 하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lt;br /&gt;요단강마저 가르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lt;br /&gt;지금 죽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앞에서 엎드려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실상 이스라엘백성들은 형편없는 사람들입니다&lt;br /&gt;이제껏 남의 나라에서 노예로 지나다가 제대로된 싸움을 한게 겨우 40년전입니다&lt;br /&gt;위대한 모세의 지도로 그럭저럭 버텨나왔지만 &lt;br /&gt;제대로된 싸움법도 모르고 무기도 변변찮은 이들은 &lt;br /&gt;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지 사실 자기실력으로&lt;br /&gt;여기까지 오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지금 여호수아는 어떻게 저 성을 함락시켜야 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lt;br /&gt;그럼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lt;br /&gt;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돌아갈 배가 없습니다&lt;br /&gt;배를 타고 요단강을 건넌게 아니라 &lt;br /&gt;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강물을 건너게 하신것이기 때문에 &lt;br /&gt;강을 건너올때는 배가 필요없었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그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을 뒤로하고 진을 친것입니다&lt;br /&gt;우리는 이를 배수의 진이라고 합니다&lt;br /&gt;또한 死地卽生이라고 하나요?&lt;br /&gt;이런 배수의 진은 보통 여기서 이기거나 아니면 죽겠다는 &lt;br /&gt;필사의 각오가 있을때만이 칠 수 있는 진입니다&lt;br /&gt;&lt;br /&gt;결코 철부지 아이와 노약자를 데리고 있는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 수 있는 진은 아닙니다&lt;br /&gt;더구나 가나안인들의 철병거가 평야지대를 휩쓸게 된다면&lt;br /&gt;제대로 무구를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하면 도망도 못가고 몰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하나님은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이끄셨습니다&lt;br /&gt;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강건너편에 작지만 땅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lt;br /&gt;또 이 여리고가 아니라 변두리의 조그만 성읍부터 공격해도 되었을 것입니다&lt;br /&gt;약하고 무비가 빈약한 곳을 골라서 공격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승산이 많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왜 하필이면 하나님은 자기네를 가나안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성으로 이끄셨을까요?&lt;br /&gt;그것은 바로 이 여리고가 지정학적으로 가나안의 중심부이기 때문입니다&lt;br /&gt;만일 그들이 이 여리고를 점령한다면 아이성으로 가는 통로를 얻게 되고 &lt;br /&gt;그리고 약한 아이성마저 점령한다면 가나안을 남북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즉 이제부터는 다른 지역에서 서로 원군을 보내 주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게 되어서 &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매우 유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가나안을 전부 점령할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 일단 가나안을 전부 정복하려고 한다면 &lt;br /&gt;반드시 점령해야 할 곳이 바로 이 여리고 성이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결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여기서 여호수아의 고민이 시작됩니다&lt;br /&gt;하나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lt;br /&gt;저 백성들을 어찌해야 합니까&lt;br /&gt;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저만 믿고 이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저들을 어찌해야 합니까?&lt;br /&gt;저 강력한 적군을 앞에 두고 뒤로는 강물이 흐르고 &lt;br /&gt;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서 어찌해야 할바를 모르겠습니다&lt;br /&gt;고민하며 혼자서 들판을 걷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문득 눈을들어보니 한 사람이 자기의 앞길을 막고 있는데 칼을 빼어들고 있습니다&lt;br /&gt;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들고 자기의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lt;br /&gt;더군다나 격전을 앞두고 있는 전장에서&lt;br /&gt;&lt;br /&gt;즉각 여호수아가 묻습니다&lt;br /&gt;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lt;br /&gt;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면 적의 편이냐?&lt;br /&gt;그러면 뭐 너의 편이다 아니면 너의 적군편이다&lt;br /&gt;이런식으로 대답을 해야 될터인데 이 사람의 대답은 기이합니다&lt;br /&gt;&lt;br /&gt;‘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lt;br /&gt;‘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lt;br /&gt;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자녀들이므로 뭐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인게 확실합니다&lt;br /&gt;그러면 여호수아의 질문에 나는 너를 위하여서 왔다&lt;br /&gt;이렇게 답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런데 이 사람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아니라 아니라 &lt;br /&gt;나는 너의 편도 아니고 적의 편도 아니고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왔답니다&lt;br /&gt;성경에 군대장관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lt;br /&gt;&lt;br /&gt;그러면 군대장관이란 정확히 어떤 자리입니까?&lt;br /&gt;국방부 장관쯤 됩니까?&lt;br /&gt;이 군대장관이란 단어를 영어성경에는 커맨드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lt;br /&gt;커맨드......사령관이란 말입니다&lt;br /&gt;&lt;br /&gt;자 다시한번 이야기해 볼까요&lt;br /&gt;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으로 왔느니라&lt;br /&gt;아니라 나는 너의 편도 아니고 적의 편도 아니다 &lt;br /&gt;나는 너를 돕는 조력자가 아니고 너희를 지휘할 사람이다&lt;br /&gt;내가 이 군대의 지휘관이다&lt;br /&gt;&lt;br /&gt;놀라운 말씀입니다&lt;br /&gt;이 군대의 사령관은 네가 아니라 이겁니다&lt;br /&gt;이 군대의 대장은 네가 아니고 바로 나다 이겁니다&lt;br /&gt;그러므로 다시 말해서 이 싸움은 내가 지휘한다&lt;br /&gt;그러니 너는 나의 지휘를 받아라&lt;br /&gt;&lt;br /&gt;놀랍지 않습니까?&lt;br /&gt;이 싸움은 그가 지휘하신답니다&lt;br /&gt;이 싸움은 하나님이 친히 지휘하신답니다&lt;br /&gt;그러니 너는 나의 지휘를 받아라&lt;br /&gt;&lt;br /&gt;성경에는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말합니다&lt;br /&gt;일반적으로 종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lt;br /&gt;그러므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됨을 의미합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lt;br /&gt;너는 나의 지휘를 따르기만 해라&lt;br /&gt;이 군대의 사령관은 나고 &lt;br /&gt;이 싸움은 내가 지휘한다&lt;br /&gt;&lt;br /&gt;여러분&lt;br /&gt;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lt;br /&gt;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lt;br /&gt;오히려 우리가 도저히 어떻게 해 볼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강력하며 부유합니다&lt;br /&gt;심지어 너무나 아름답기까지 합니다&lt;br /&gt;&lt;br /&gt;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좋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듯이 보입니다&lt;br /&gt;아무것도 모자람이 없습니다&lt;br /&gt;그러므로 이 성은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습니다&lt;br /&gt;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힘, 내가 가진 배경, 내가 가진 재물로 도저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lt;br /&gt;이 세상의 파도는 너무나 강력하여 나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습니다&lt;br /&gt;그러기에는 나의 힘이 너무 미약합니다&lt;br /&gt;그러면 어떡합니까?&lt;br /&gt;&lt;br /&gt;그분에게 우리의 싸움의 지휘권을 반납하면 됩니다&lt;br /&gt;그 분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지휘권을 반납합시다&lt;br /&gt;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우리를 지휘하게 합시다&lt;br /&gt;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의 지휘권을 반납할 수 있습니까?&lt;br /&gt;4:18절에 보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lt;br /&gt;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lt;br /&gt;&lt;br /&gt;이 말중에서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이 부분을 유의하십시오&lt;br /&gt;발바닥으로 육지를 밟으려면 당연히 신발을 신지 않아야 합니다&lt;br /&gt;즉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맨발로 언약궤를 메었다는 말입니다&lt;br /&gt;종들이 맨발로 다닌다고 말씀드렸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자 말씀의 종이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lt;br /&gt;제사장들이 말씀의 종이 되어 말씀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서는 곳에 서자 &lt;br /&gt;요단강이 갈라졌고 또 갈라졌던 강물이 합쳐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난 것입니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lt;br /&gt;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앞에 겸비한 자세를 보이고 준행할 때 &lt;br /&gt;우리는 우리의 모든 벅찬 싸움의 지휘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게 되고 &lt;br /&gt;그로 하여금 나의 싸움을 대신 싸우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하나님이 대장되신 싸움에서 패배란 당연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lt;br /&gt;우리는 그분을 대장으로 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lt;br /&gt;여기에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나오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lt;br /&gt;우리의 싸움을 대신 싸우게 합시다&lt;br /&gt;&lt;br /&gt;겸손하게 그 앞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lt;br /&gt;그분에게 지휘권을 반납합시다&lt;br /&gt;그렇습니다&lt;br /&gt;&lt;br /&gt;우리가 닥친 모든 세상과의 싸움에서 사령관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lt;br /&gt;그 싸움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나를 이끄시고 싸우시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lt;br /&gt;&lt;br /&gt;저는 기독교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중심을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두는 것.&lt;br /&gt;그 분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것. 때로는 말도 안 되고, 너무나 어려운 곳으로 인도될 때도 있겠지요.&lt;br /&gt;그 때 신발을 벗어서, 낮은 마음을,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lt;br /&gt;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인생을 이끌어 가는 지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lt;br /&gt;&lt;br /&gt;돈, 섹스, 권력... 그야말로 강력하고 화려하고 매혹적이며 환상적인&amp;nbsp;세상 앞에서...&lt;br /&gt;아무것도 가지지 않고서, 가난하게 마음을 비우고 하늘을 볼 때, 비로소 무엇인가 보이지 않을까요.&lt;br /&gt;내게 주어진 기회들 앞에서, 도망치지 말고, 당신의 지휘를 구하는 그리스도인 되고 싶습니다.&lt;br /&gt;아마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요. &quot;두려워 말라&quot; 매일 그렇게 전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lt;br /&gt;&lt;br /&gt;2010. 08. 08. 쓴 글. 시북.&lt;/DIV&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548</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548#entry548comment</comments>
			<pubDate>Fri, 20 Apr 2012 22:19: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04년2월22일/몇시간의 기다림 그리고 믿음(청년설교8)/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87</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lt;/SPAN&gt;&lt;br /&gt;&lt;br /&gt;지지난주에 우리는 80년짜리 기다림에 관해서 알아보았습니다&lt;br /&gt;그리고 지난주에는 5년짜리 기다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lt;br /&gt;이제는 하루, 아니 몇시간의 기다림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lt;br /&gt;&lt;br /&gt;우리는 매일매일 기다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lt;br /&gt;그러나 이 기다림만큼 힘든일도 없습니다&lt;br /&gt;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게 80년짜리 기다림인지 5년짜리 기다림인지&lt;br /&gt;겨우 몇시간짜리 기다림인지 알수 있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전에는 &lt;br /&gt;과연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루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기다림에 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lt;br /&gt;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초기에 한참 인기가 급상승을 했습니다&lt;br /&gt;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왔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lt;br /&gt;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lt;br /&gt;그래서 주님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lt;br /&gt;갈릴리 호수를 건너다니시면서 사역을 하셨는데 &lt;br /&gt;오늘의 이야기는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lt;br /&gt;&lt;br /&gt;배를 타고 거라사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자 &lt;br /&gt;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해변가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래서 주님은 이 사람들과 함께 해변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는데 &lt;br /&gt;갑자기 마을의 회당장중 한사람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lt;br /&gt;주님께 나아와서 주님앞에 무릎을 꿇습니다&lt;br /&gt;&lt;br /&gt;그리고는 많이 간청하면서 자기의 딸이 ,&lt;br /&gt;12살난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고 지금 가서 한번만 손만 얹기만 해도 낫겠다고 &lt;br /&gt;집에 가주시기를 요청합니다&lt;br /&gt;&lt;br /&gt;당연히 사랑의 주님께서 이 간청에 응해서 지금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lt;br /&gt;그러자 삽시간에 주님의 주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서 예수님을 둘러싸고 함께 갑니다&lt;br /&gt;왜 이사람들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함께 갈까요?&lt;br /&gt;구경, 그렇습니다&lt;br /&gt;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이겁니다&lt;br /&gt;야이로의 딸이 안되서 반드시 나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보다는&lt;br /&gt;단순히 오늘도 주님이 이적 한건을 행하시는 구나 &lt;br /&gt;이 좋은 구경을 놓쳐서는 안되지!&lt;br /&gt;뭐 전부 이런 마음입니다&lt;br /&gt;&lt;br /&gt;보통 의사는 어떻게 합니까?&lt;br /&gt;응급환자가 생기면 총알같이 그를 치료하러 가거나 아니면 응급차가 총알같이 달려갑니다&lt;br /&gt;병의 악화를 막고 심지어는 늑장대응으로 인한 사망이나 후유증을 막기 위함아닙니까&lt;br /&gt;&lt;br /&gt;근데 주님의 대응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lt;br /&gt;&lt;br /&gt;회당장은 마을의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입니다&lt;br /&gt;보통 회당에서는 10명의 직원을 두고 그 중에서 세사람에게 장의 직책을 맡깁니다&lt;br /&gt;그래서 이 회당장은 상당한 명망을 가진 사람을 임명합니다&lt;br /&gt;근데 이런 사람이 겨우 30의 청년앞에 무릎을 꿇고 ,. &lt;br /&gt;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서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심으로 간청을 합니다&lt;br /&gt;본문에 ‘많이’ 라는 말은 ‘전심으로’ ‘간절히’ 이런 뜻입니다&lt;br /&gt;그리고 지금 죽기직전이니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셔서 보아주십시오&lt;br /&gt;아무리 중한 질병이라도 죽기전에 가셔서 손만 한번 대기만 해도 제 딸이 살것입니다&lt;br /&gt;&lt;br /&gt;믿음 좋고 !&lt;br /&gt;정말 확실한 믿음과 겸손, 그리고 딸에 대한 진실된 사랑&lt;br /&gt;이런게 느껴지지 않습니까?&lt;br /&gt;그런데 그 나라 신발이 우리처럼 전투적인 신발이 아닙니다&lt;br /&gt;운동화나 가죽화처럼 양사방을 꽉 둘러싸고 끈으로 쪼아맨 신발이 아니라 &lt;br /&gt;그 나라의 신발은 샌달입니다. 느슨한 줄로 걸쳐놓은 ...&lt;br /&gt;&lt;br /&gt;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앞뒤에서 밀고 밀치며 난리가 났습니다&lt;br /&gt;더 잘보려고...&lt;br /&gt;그래서 좀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lt;br /&gt;자연 행렬의 속도가 느릿느릿입니다&lt;br /&gt;회당장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요&lt;br /&gt;지금 시간이 없는데...죽기전에 가서 손만 대어도 나을터인데...&lt;br /&gt;제발 빨리 좀 갔으면 좋겠는데...&lt;br /&gt;&lt;br /&gt;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입니다&lt;br /&gt;&lt;br /&gt;여기 보십시오&lt;br /&gt;25절에 갑자기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는 한 여인이 나타나서는 &lt;br /&gt;사람들 사이에 섞여 몰래 주님의 뒤에서 옷자락을 만진 일이 일어납니다&lt;br /&gt;&lt;br /&gt;사실 별거아닙니다&lt;br /&gt;지금 사람들이 주님을 둘러싸고 밀치고 난린데 옷자락이 조금 건들릴수도 있지...&lt;br /&gt;그런데 정말 그런데&lt;br /&gt;세상에 갑자기 주님께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외칩니다&lt;br /&gt;참 기가찹니다&lt;br /&gt;지금 안그래도 혼잡하고 서로 밀고 밀리고 밀치고 정신이없는데 &lt;br /&gt;&lt;br /&gt;아니 옷이 좀 건들릴수도 있지&lt;br /&gt;뭐 별거 아닌거 가지고 꼭 그렇게 난리를 쳐야 합니까?&lt;br /&gt;베드로를 위시한 여러 제자들이 모두 불평스럽게 대꾸합니다&lt;br /&gt;주님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밀치고 있는 혼잡한 상황을 보시면서 &lt;br /&gt;그깟 옷조금 건들린게 뭐 대수라고 그러십니까?&lt;br /&gt;&lt;br /&gt;그리고 속으로 말했겠지요&lt;br /&gt;지금 저사람의 딸이 죽어간다 안합니까&lt;br /&gt;시간 없다 아닙니까&lt;br /&gt;빨리 가야 안됩니까&lt;br /&gt;&lt;br /&gt;그래요 맞습니다&lt;br /&gt;그런데 주님은 지금 가던 길을 멈추고는 누가 내옷에 손댔느냐고 외치고 있습니다&lt;br /&gt;하는걸 보니까 &lt;br /&gt;주님의 옷에 손댄 사람이 제발로 걸어나오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을 테셉니다&lt;br /&gt;&lt;br /&gt;거참, 사랑의 주님께서 지금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큰일이 뭐 있다고 저러시는지...&lt;br /&gt;저 양반이 인기가 좀 올라가더니 사람이 변했나.............&lt;br /&gt;그래도 주님은 끝까지 자기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 나올때까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lt;br /&gt;시간이 흐르자 이제 사람들은 도데체 누구야&lt;br /&gt;빨리 나가 하면서 서로를 보고 너지 너지 하면서 야단입니다&lt;br /&gt;&lt;br /&gt;마침내 더 숨길수가 없다고 판단한 한 여인이 &lt;br /&gt;주님앞에 나와서 엎드려 고백합니다&lt;br /&gt;&lt;br /&gt;&quot;주님 제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lt;br /&gt;저는 12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왔습니다&lt;br /&gt;수많은 의원들이 저를 치료했지만&lt;br /&gt;재산만 탕진하고 아무도 저를 고치지 못했습니다&lt;br /&gt;율법은 저를 부정한 여인이라 하고 남편마저 저를 외면했습니다&lt;br /&gt;그런데 제가 주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lt;br /&gt;그 옷을 만지기만 해도 &lt;br /&gt;한번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나을걸로 믿었습니다&lt;br /&gt;그래서 만졌고 이제 나았습니다&lt;br /&gt;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quot;&lt;br /&gt;&lt;br /&gt;&quot;딸아 평안히 가라&lt;br /&gt;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quot;&lt;br /&gt;그래놓고는 다시 여인에 대한 기사는 끝이나고 &lt;br /&gt;다시 야이로의 딸에대한 기사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lt;br /&gt;&lt;br /&gt;근데 여러분 참 이상합니다&lt;br /&gt;왜 여기에다가 뜬금없이 이 기사를 넣어두었을 까요?&lt;br /&gt;&lt;br /&gt;여러분 이상 안합니까?&lt;br /&gt;하하 그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 봅시다&lt;br /&gt;여인에게 축복하고 떠나보낸후에 다시 주님은 야이로의 집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lt;br /&gt;이적 한 개를 보려고 예수님을 에워쌌던 사람들은 수지맞은 겁니다&lt;br /&gt;본 이적이전에 벌써 오픈 이적을 한 개 보았습니다&lt;br /&gt;&lt;br /&gt;역시 종교계의 스타답습니다&lt;br /&gt;세상에 불치병으로 알려진 혈루증을 낫게 하다니!&lt;br /&gt;이제 회당장의 딸을 낫게 하는것도 마저 봐야지&lt;br /&gt;&quot;우리 동네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건 우리 동네 , 우리 고을의 자랑이야&quot;&lt;br /&gt;&lt;br /&gt;근데 사람들이 다가옵니다&lt;br /&gt;슬픈 기색으로 다가온 이 사람들은 바로 야이로집의 하인들과 식구들입니다&lt;br /&gt;근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는데&lt;br /&gt;야이로의 딸이 죽었답니다&lt;br /&gt;&lt;br /&gt;모든게 끝났습니다&lt;br /&gt;한번만 죽기전에 한번만 주님이 손을 대면 틀림없이 나을텐데...&lt;br /&gt;그렇게 빨리 좀 가자니까&lt;br /&gt;빨리 안가고 꾸물거리고&lt;br /&gt;&lt;br /&gt;그것도 부족해서는 &lt;br /&gt;옷만진 사람을 찾는다며 그 난리를 피우더니&lt;br /&gt;결국 시간안에 대지 못하고 &lt;br /&gt;죽기전에 손한번 대지 못하고 &lt;br /&gt;그만 피어나지도 못한 자기의 외동딸이 그만 가버린겁니다&lt;br /&gt;&lt;br /&gt;&quot;주님 그러실 수 있습니까?&lt;br /&gt;당신이 정녕 사랑의 주님입니까?&lt;br /&gt;자기 인기 때문에 &lt;br /&gt;한건 했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자랑하더니&lt;br /&gt;결국 내딸은 죽어버렸습니다!&quot;&lt;br /&gt;&lt;br /&gt;소리치며 욕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lt;br /&gt;울고 불고 해도 모자라지 않습니까&lt;br /&gt;근데 야이로의 집안은 굉장합니다&lt;br /&gt;&lt;br /&gt;&quot;이제 선생님을 굳이 괴롭힐 필요 없습니다&quot;&lt;br /&gt;&lt;br /&gt;그래요&lt;br /&gt;이미 모든게 끝났는데&lt;br /&gt;이제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은 필요가 없습니다&lt;br /&gt;&lt;br /&gt;여러분 &lt;br /&gt;선생님이란 단어를 주목합시다&lt;br /&gt;그들은 주님을 주가 아니라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lt;br /&gt;&lt;br /&gt;그래요&lt;br /&gt;선생이라면 이 상황에서 필요치 않습니다&lt;br /&gt;산 사람에게야 선생이 필요하지 죽은 이에게 무슨 선생입니까?&lt;br /&gt;이미 끝났는데...........&lt;br /&gt;&lt;br /&gt;그런데 주님은 그 말들을 무시하시고&lt;br /&gt;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lt;br /&gt;이미 죽어서 끝났는데 더 이상 선생님이 필요없습니다&lt;br /&gt;&lt;br /&gt;여기 36절에 들으시고란 말은 원뜻이 무시하고 란 뜻입니다&lt;br /&gt;그러니까 그런말을 귓등으로 들어 넘기고 &lt;br /&gt;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lt;br /&gt;여기서 ‘두려워’는 원뜻이 염려하다란 말입니다&lt;br /&gt;다시말해서 &lt;br /&gt;염려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lt;br /&gt;&lt;br /&gt;참 내 이미 죽어서 모든게 끝났는데 뭘 염려하지 말고 믿기만 하란 말입니까?&lt;br /&gt;그리고는 보십시오&lt;br /&gt;또 이상합니다&lt;br /&gt;그랬으면 뭔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되는데&lt;br /&gt;갑자기 베드로, 야고보, 요한외에는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하게 하십니다&lt;br /&gt;이적을 보려고 이제까지 예수님을 둘러싸고 밀고 밀리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lt;br /&gt;제자들도 세명 빼놓고는 못따라오게 하신것입니다&lt;br /&gt;왜 그랬을까요?&lt;br /&gt;&lt;br /&gt;왜 갑자기 그들을 따라오지 못하게 했을까요?&lt;br /&gt;그것은 사람들의 믿음 없음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우리는 이 기사를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lt;br /&gt;사람들은 예수님이 능력이 많은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lt;br /&gt;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lt;br /&gt;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lt;br /&gt;&lt;br /&gt;구경하려고 모여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lt;br /&gt;예수님의 제자들마저...&lt;br /&gt;&lt;br /&gt;그러나 아마 이 세제자는 달랐던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다른 제자들이 구경꾼들과 합세해서 주님이 지나치게 자기의 인기에 연연하고 &lt;br /&gt;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죽어가는 자를 위해서 열심을 내지 않았다고&lt;br /&gt;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이를 무시하며 염려하지말고 믿기만 하라고 한다고&lt;br /&gt;불평하며 화를 내며 비웃었을 것입니다&lt;br /&gt;이미 끝난것이다&lt;br /&gt;당신은 이미 끝났어&lt;br /&gt;그러니 딴데 가서 알아보시지&lt;br /&gt;그러게 선생님 죽기전에 좀 빨리 가자니까 안듣고 엉뚱한 일이나 벌이더니만...&lt;br /&gt;이렇게 말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단 말입니다. &lt;br /&gt;그가 하나님 자신인줄 알았으므로&lt;br /&gt;&lt;br /&gt;주님의 마음은 참 답답하셨을것 같습니다&lt;br /&gt;그는 일반적인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lt;br /&gt;&lt;br /&gt;그에게는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환경이 주는 불가능이란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lt;br /&gt;우리에게 불가능이 있다면 &lt;br /&gt;그건 주님을 우리가 모시지 못했기때문이지 시간이 늦어서가 아니고 공간적으로 너무 멀어서도 아니고 하지못할 불가능해 보이는 여건때문도 아닙니다&lt;br /&gt;&lt;br /&gt;그런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사람들이야 원래 그렇다 칩시다&lt;br /&gt;&lt;br /&gt;그런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의 제자들마저도 주님의 진정한 실체를 모르고 있습니다&lt;br /&gt;그를 소유하고 그와 더불어 동행하는 한 불가능이란게 존재하지 않음을 &lt;br /&gt;그들은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고칠때 알아보아야 했습니다&lt;br /&gt;&lt;br /&gt;그런데도 여전히 그를 알지 못하고 구경꾼들에 동조해서 &lt;br /&gt;불평하며 원망하며 무지에서 나온 막말로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는 &lt;br /&gt;주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세제자만 데리고 가신것입니다&lt;br /&gt;&lt;br /&gt;아이의 집에서 주님은 비웃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lt;br /&gt;죽은것이 아니라 잔다&lt;br /&gt;그리고는 부모와 세 제자외에는 다 내어보내시고는 &lt;br /&gt;소녀의 손을 잡고는 ‘달리다굼’ &lt;br /&gt;‘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lt;br /&gt;그러자 소녀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lt;br /&gt;달리다굼&lt;br /&gt;이것은 어머니들이 소녀들을 아침에 잠에서 깨울때 사용하는 말입니다&lt;br /&gt;얘야 일어나라, 간밤에 잘잤니 &lt;br /&gt;그렇습니다&lt;br /&gt;밤에 잘자고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듯이 &lt;br /&gt;주님은 그렇게만 불가능하고 끝장난듯이 보이는 일들을 정말로 장난처럼 &lt;br /&gt;가볍게 가능으로 바꾸십니다&lt;br /&gt;&lt;br /&gt;그렇습니다&lt;br /&gt;불가능이란것은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있느냐 아니냐&lt;br /&gt;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느냐 아니냐로 판단되는 것이지&lt;br /&gt;시간과 공간과 주위환경으로 판단되어질 문제는 아닙니다&lt;br /&gt;&lt;br /&gt;우리의 적은 믿음으로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판단하거나 제한하지 맙시다&lt;br /&gt;이미 모든게 끝난것 같은 시점에서도 주님에게는 결코 끝이아닙니다. &lt;br /&gt;시작일뿐입니다&lt;br /&gt;&lt;br /&gt;-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lt;/P&gt;
&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lt;br /&gt;&lt;/DIV&gt;
&lt;DIV style=&quot;FONT-FAMILY: dotum; COLOR: rgb(102,102,102)&quot;&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lt;br /&gt;&lt;br /&gt;&amp;nbsp;믿음.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말이자, 가장 지켜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lt;br /&gt;&amp;nbsp;믿는다는 것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긍정적으로 자신을 믿고 돌파해 가는 사람은 얼마나 멋진가.&lt;br /&gt;&amp;nbsp;나의 꿈은 겨자씨 만큼이라도 진정성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행동으로 따르고자 하는 것이 나의 꿈이기도 하다.&lt;br /&gt;&lt;br /&gt;&amp;nbsp;신앙이 훌륭한 점이 무엇인가?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결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lt;br /&gt;&amp;nbsp;병원 등에서 종교를 가지라고 권유하는 것도,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분명 낫기 때문에 그러하리.&amp;nbsp;나도 어릴 적에 몸이 안 좋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던 시간이 있었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불명확하다. 엄청나게 먹었던 약 때문일까, 열심히 기도하던 작지만 소중했던 신앙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 때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확신. 그래서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었던 병을 이겨내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의학계에도 이렇게 성장하면서 병이 나은 케이스가 있다고 한다. 나도 그 케이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긍정적인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lt;br /&gt;&lt;br /&gt;&amp;nbsp;좌절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눈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서 여기가 끝이고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할 때조차, 분명 어딘가에는 또 다른 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 길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 일도 잘 풀리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리라.&lt;br /&gt;&lt;br /&gt;&amp;nbsp;하물며 기독교인이 인상을 찌푸리고, 안 된다, 힘들다 라면서 불평과 짜증을 늘어놓는 것은 한 마디로 믿음 없는 모습일 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안 될 것 같아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정말 안 될 일조차도 이루어지기 마련이다.&lt;br /&gt;&lt;br /&gt;&amp;nbsp;지금 정말 삶이 힘들다고 생각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의 힘든 터널을 통과하면 환하고 멋진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설령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소중하게 당신을 만든 그 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결코 아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사랑 받고, 사랑 할 자격이 있는 중요한 사람이다.&lt;br /&gt;&lt;br /&gt;&amp;nbsp;내게도 정말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과 더불어서 살아가고자 한다. 내 친구의 힘듬에 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한 사람이고자 한다. 왜냐고? 늘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주님 안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라고. 나도 모든 사람을 한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는 넓디 넓은 마음을 가지고자 더욱 분발해야 겠다. 사랑하며 살자. 그리고 긍정적으로 살자. 불가능,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lt;br /&gt;&lt;br /&gt;by 시북 (2008년 2월의 글)&lt;br /&gt;&lt;br /&gt;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느냐도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lt;br /&gt;예수님의 제자들도 직접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귀 기울여서 듣지 않았기 때문일까.&lt;br /&gt;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있어서, 거기에 미흡했던 예수의 모습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lt;br /&gt;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그러했다.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실 때가 많았다. 대체 왜?&lt;br /&gt;&lt;br /&gt;한 가지 명확한 것은, 내가 바라는 예수의 이상적인 모습을 믿는 것이 아니라...&lt;br /&gt;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서, 내가 제대로 예수님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lt;br /&gt;우리같으면 당장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데&lt;br /&gt;혈루증 여인 따위는 나중에 돌보는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lt;br /&gt;&lt;br /&gt;하지만 주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믿는 마음 하나를 그토록 소중하게 대하신 것이다.&lt;br /&gt;항상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다.&lt;br /&gt;무엇보다 미루지 않고 만나주시는 그 마음이 계속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lt;br /&gt;시간이 흐르면 좀 더 이 이야기의 의미를 더 생각해 볼 수 있을지도... (2010년 8월, 씀)&lt;/DIV&gt;&lt;/DIV&gt;
&lt;P&gt;&amp;nbsp;2012년 4월. 아직도 알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던 길을 가다가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소홀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문득 고 노무현 대통령의 버스비유가 생각난다. 버스는 빨리 가야한다,&amp;nbsp;안 그러면 죽는다고 더는 사람을&amp;nbsp;못 태운다고 급한 버스가 지나간다. 한 여자가 태워달라고 간절히 손을 흔든다. 그 때 서야 하는가, 가야 하는가. 효율 우선의 보수주의는 가고, 공동체 우선의 진보주의는 선다고 한다. 둘 중에 누가 옳다고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자를 태우고 가면, 목적지에 못 가서 다 망한다는&amp;nbsp;위험성을 쉽게 무시하기도 어렵다. 적어도 정의의 측면에서, 또는 예수님이었다면, 그 여자를 태우고 갔을 것 같다.&lt;/P&gt;
&lt;P&gt;&amp;nbsp;나는 아직도 이 문제를 고민한다. 내가 기득권을 가진 버스기사 였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난 내 욕심을 내놓을 수 있을까. 물론, 난 가난하므로 진보적인 생각이 익숙하지만, 내가 부자였다면, 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의 작은 손길의 기부도 위대하고, 부자의 부자다운 거대한 기부도 역시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결국은 비율의 문제겠지. 얼마만큼 진심으로 이웃을 생각하느냐의 진정성의 문제겠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만 서른 즈음의 요즘이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87</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87#entry87comment</comments>
			<pubDate>Thu, 19 Apr 2012 19:2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2년4월15일/개구리 재앙(출애굽기8:1-15)/홍종일목사</title>
			<link>http://suparobo.tistory.com/917</link>
			<description>	&lt;div class=&quot;ad250_outter&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 0 0 20px 10px;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div class=&quot;ad250&quot; style=&quot;background: transparent url(http://i1.daumcdn.net/img-media/media3/common/ad250_bar_r2.gif) no-repeat scroll 0 0; width: 250px; height: 250px; padding: 18px 0 0; position: relative; width: 250px&quot;&gt;
			&lt;iframe width=&quot;25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frameborder=&quot;0&quot; scrolling=&quot;no&quot; marginheight=&quot;0&quot; marginwidth=&quot;0&quot; src=&quot;http://amsv2.daum.net/ad/adview?secid=00659&amp;mkvid=1&amp;blogid=133855&quot;&gt;&lt;/iframe&gt;		&lt;/div&gt;
	&lt;/div&gt;
&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15일 주일 예배&lt;/STRONG&gt;&lt;/SPAN&gt;&lt;/P&gt;&lt;/SPAN&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 재앙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출애굽기8:1-15)&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늘은 출애굽시에 내려진 열가지 재앙 중에서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가 아는 출애굽시의 열가지 재앙은 우리가 황당하게 생각하겠지만 모두 애굽의 신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막는 애굽의 왕에게 그가 섬기는 신들을 치심으로 누가 진정한 신인지를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재앙 중에서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열 번째 재앙인 애굽의 장자와 첫째 짐승을 죽이기전에 모두 아홉가지의 재앙을 먼저 내리시면서 애굽의 바로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은 아홉 번까지의 재앙에서 직접적으로는 누구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고통을 주셨고 회개를 촉구했을 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가 알다 시피 이 재앙들에 등장하는 나일강이나 개구리, 이 같은 것들은 각각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을 상징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여호와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는 바로와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반대로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애굽의 신들을 치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애굽인들의 목숨을 치신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들을 괴롭게 하셔서 애굽인들과 바로가 깨닫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거두어 가기 전에 경고와 기회로서 아홉 번의 재앙을 먼저 내리신 것입니다. 적어도 애굽의 장자들에게는 회개하고 목숨을 살릴 기회가 무려 아홉 번이나 있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나일강을 피로 물들였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굴복하지 않고 있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바로 개구리로 애굽 온 땅을 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리고 이 재앙을 내리기 전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고 이 재앙을 피할 길도 알려 주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솔직히 처음부터 애굽의 장자들을 죽여 버렸으면 아마 애굽인들과 바로는 바로 하나님앞에 항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루하게 재앙들을 내리고 바로가 항복하는 지를 확인하고 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도 필요가 없어지고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도 덜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는 악인이라도 가능하면 심판을 면하게 하려 하십니다. 과감한 징벌과 직접적 재앙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면 참 좋을 터인데 그는 끝까지 거듭 거듭 악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려고 하십니다. 재앙을 내려서 그들이 고통받는 것보다 회개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아래 들어오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내 백성을 보내라” 이 말은 ‘히브리 노예들은 바로의 백성이 아닌데 왜 붙잡고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결코 너희의 통치아래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만 나의 백성들을 놓아주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들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나만을 섬길 것이니 그들을 놓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세상은 하나님의 법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고 경쟁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랑을 강조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은 전혀 경쟁력이 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너무 이상적이라서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처럼 보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가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물러 터졌어요. 그래서 그의 법을 따르면 결국은 이 세상에서 도태될 것 같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데 따른 벌은 실제적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이 이어서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 말은 내 백성을 보내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자기를 예배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지상 천국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남을 짓밟아야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잘살도록 하는 세상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진정한 천국이 이땅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벅차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의 법을 따르기만 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의 선언은 이어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내가 치리라” 이 말은 단순히 때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치명타를 가하다. 패배시키다. 상대방이 철저하게 피해를 입어 스스로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치고 때리다’의 뜻이 있습니다. 즉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 주지 않는다면 치명타를 가해서 스스로 항복할때까지 철저하게 두들기겠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선언인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재앙이 개구리를 통해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는 애굽인들의 신입니다. 그들은 개구리 모양의 머리를 가진 여신 ‘헤카’ 를 숭배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성경에서 언급되는 이 개구리는 나일강 주위에 서식하다가 나일강의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12월경부터 강변의 비옥한 토지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하는데 애굽인들은 이 개구리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런 개구리들이 올라오는데 바로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개구리가 올라오는 만큼 애굽땅이 풍요롭고 다산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네가 섬기는 신이 자기들을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개구리 재앙을 경고 받고도 전혀 뜻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게다가 개구리는 매년 12월경부터 나일강에서 기어오르는 것이거든요. 그게 자연의 순리거든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뿐만 아니라 바로의 신하, 술객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개구리들을 올라오게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바로의 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개구리가 기어 올라오는 것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며 자연적인 것이라고 강변하면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일단 개구리 재앙이 일어나자 땅으로 기어 올라온 개구리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개구리의 수가 급증하여 오히려 애굽인들의 고민거리가 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너무 수가 많아지자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 아니라 징그럽고 귀찮고 생활에 방해가 되는 그저 그런 생물로 변해버렸습니다. 희소가치가 떨어지자 개구리는 단순히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이 스스로 자기네 신을 경멸하도록 만드셨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세가 아론에게 명령했고 아론이 순종하여 그 손을 펴매 애굽 온 땅이 순식간에 개구리떼로 뒤덮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즉각적인 순종은 지금 놀라운 이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평소에 인간들을 보면 도망가는 개구리들이 인간들의 처소로 몰려 듭니다. 그것도 너무 너무 수가 많아서 도저히 제어가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므로 초자연적 현상이라 ,이적이라고 부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애굽의 술객들 역시 독특한 방법으로 똑 같은 이적을 행했습니다. 바로이 요술사들도 개구리를 불러 올 수 있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그들의 술법은 오히려 개구리의 수를 더했으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것입니다. 바로에게 필요한 것은 개구리의 숫자를 늘리는 요술이 아니라 개구리를 물러가게 하는 요술입니다. 하나님의 재앙과 똑같은 재앙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개구리 재앙을 물리치는 일이 필요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개구리를 물리치는 일은 요술사들이 하지 못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가 온 땅을 뒤덮자 즉시 바로는 모세를 부릅니다. 이는 개구리의 피해가 생각외로 커서 견딜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여긴 개구리들은 이제 다시 보니 결코 풍요와 다산을 가져오지 않고 아무렇게나 발에 밟히고 침구 속에서 기어다니고 음식가운데도 들어가고 하니까 , 신이 아니라 아무 생각없는 미물이고 풍요와 다산을 가져오기는커녕 귀찮고 골치만 아프게 합니다. 징글징글합니다. 이제는 개구리신은 보기만 해도 징그럽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개구리를 물리쳐 달라고 요청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여호와께 구하여 떠나게 하라” 바로는 처음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고 이야기 했는데 재앙을 겪자 마자 바로 여호와를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요술로 여호와의 재앙을 따라할 때만 해도 별거 아닌 것처럼 뻐기고 있었지만 개구리로 인한 재앙이 점점 심해져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자 여호와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사람은 보통 그 마음이 완악해서 자기의 신념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신을 인정하기를 꺼려합니다. 아니 싫어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위대한 애굽의 왕인 내가 노예들의 신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고 되뇌입니다. 자기네 신관들과 요술사들도 비슷하게 따라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애써 여호와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개구리들이 온땅을 뒤엎고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들끓게 되자 , 자기네 요술사들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개구리들을 하숫가로 몰아내지 못하자 할 수 없이 굴복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 말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것은 바로가 개구리가 땅으로 몰려 나온 것이 하나님 때문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신, 개구리 머리 신인 헤카가 하나님의 조종을 받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위대한 바로의 신인 헤카가 노예의 신인 여호와의 조종을 받는 무능한 존재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아니 너무 너무 삶에 걸리적 거리는 개구리들은 그들이 과연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신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리고 이 재앙이 여호와로 말미암았고 그러므로 물러나게할 이도 자기네의 신이 아니라 여호와임을 인정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8절에 보면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라는 말이 비로소 나옵니다. 그렇게나 많은 이적과 경고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바로가 히브리노예를 해방시키겠다는 최초의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세는 바로의 말을 듣고 언제 개구리를 물러가게 할까 정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지금 즉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내일 물러가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내일이니라”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바로는 지금 개구리의 재해로 힘들어 하고 있지만 당장 물러가게 하지 않고 내일로 미루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애굽땅에 들끓는 개구리들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데 왜 그는 당장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애야기 했을까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는 혹시라도 자연적으로 개구리가 오늘밤에라도 물러갈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는 그들의 신이므로 헤카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그 신이 자기들의 제물을 받고 물러갈까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배가 터져 죽고 음식에서도 이불속에서도 튀어나오는 징글징글한 한갓 미물임이 밝혀진 상태에서도 바로는 아직까지 자기네의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는 비록 여호와에 굴복했지만 여전히 사실을 부인하고 이를 번복할 여지를 두려고 합니다. 악인들과 세상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기대와 욕망도 이와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그러한 악습과 죄악이 칼로 자르듯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네의 신념체계가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어렵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가 하수에만 있을 것이다” 이는 개구리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개구리신인 헤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 여호와가 하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세가 간구하매”란 말에서 “간구”는 형식적이거나 의무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열심히 간구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개구리 재앙을 멈출날을 자기가 마음대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는 날짜를 지정할 것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여호와로부터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개구리를 물러 가게 할 날짜가 내일이 될지 일주일 후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내일이라는 바로의 요청대로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고 이제 그 일을 위해서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세의 기도가 끝나자 마자 개구리들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들은 집에서 나와서 일정한 장소에서 죽게 됩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개구리들의 물러남과 집단 폐사는 바로에게 다시금 억지를 부릴 마음을 품게 합니다. 바로는 분명히 ‘내일’ 물러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개구리들은 오늘 물러갔거든요. 이래서 바로는 자기 신, 개구리 형상의 헤카신에 대한 미련이 남았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신뢰가 금이 갔습니다. 어쨌든 날짜가 안맞으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렇게 인간은 자기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가 이미 쓸모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죄악의 뿌리는 너무 너무 깊습니다. 하나님이 명백한 승리를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논리로 하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려 합니다. 조금의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기만 해도 이적을 부인하려 합니다. 그도저도 아니면 그냥 우연이라고만 생각하려 합니다. 그들은 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적, 하나님의 손길 자체를 거부합니다. 자기의 행동과 신념이 다른 초월적 존재의 손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무더기로 쌓으니”&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개구리가 무더기로 쌓인 것은 이들의 신이 가진 싼 몸값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 되려면 이 개구리가 그래도 희소해야 하는데 너무 너무 많아서 무더기로 쌓여 죽어 있으니 그들의 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푹푹 썩어서 악취가 진동합니다. 도저히 고귀한 신의 사자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애굽인들이 그렇게나 신성시했던 개구리 신도 결국 죽자 악취를 내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덧없는 모습으로 변할 뿐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런데 바로는 개구리가 사라지자 다시금 히브리인들을 붙잡아 두려고 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고 인간적인 욕망이 신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을 말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고대의 노예는 한사람에 은 삼십 세겔이었습니다. 소년은 은 이십 세겔. 그런데 이러한 노예가 무려 이백만에 달한다면 엄청난 손실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바로는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 주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인간은 흔히 자기의 욕심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신과의 약속을 변개시키려 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다급해서 신을 인정하고 그에게 자비를 빌었더라도 한고비를 넘기는 순간부터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이깁니다. 인간의 욕망과 죄성은 이정도로 끈질깁니다. 뿌리를 뽑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바로는 이로 말미암아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하나님의 형벌이 멀어지고 숨쉴만해 지면 죄악의 욕망들이 꿈틀거리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죄인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눈이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보며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늘 본문의 개구리들은 애굽인들에게는 축복의 상징이었지만 실제로 이 신들은 애굽인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결국 애굽인들은 자기네 신들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고 자기의 신들이 자기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여호와의 신벌에 이용되고 형편없이 폐기처분되는 모습을 보고 우상의 덧없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역사적으로 애굽인들의 신앙이 변질되거나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개구리신이나 여러 신들은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지도자의 뜻대로 상징을 조작해서 인간들을 통치하기 쉽게 하는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기 시작하면 이제부터는 그 신을 조종하거나 상징을 조작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 지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형편없이 썩어저 무더기로 쌓여있는 개구리들의 시체가 썩어서 악취가 온땅에 진동함에도 여전히 애굽의 신으로 남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적어도 개구리 신은 인간들을 조종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어리석은 애굽인들은 개구리가 집에서, 밭에서 나가서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뭔가 신들이, 개구리 신 헤카가 자기들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여겼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와 같이 명백한 사실도 왜곡된 시각과 욕망을 가진 인간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죄성에 젖어 있는 인간은 눈앞에 명명백백하게 보이는 사실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원인이 될 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과 더불어 대적하려 하지만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한계를 깨닫고 그 앞에 무릎 꿇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하나님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재앙을 내리기 전에 우리로 하여금 피할 길을 주십니다. 이는 우리가 그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고 그래서 재앙을 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일러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며, 오히려 섬겨야 할 창조주를 무시하는 인간들은 그 죄를 깨닫고 참된 신을 섬길 때까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지도자를 섬기는 백성들도 그 지도자의 무지와 욕심으로 함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신념체계는 그 정도로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내 백성을 놓으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고 할 때 그 손실이 얼만지 내 자존심이나 왕권이 얼마나 상하고 위협받을 것인지를 계산하기 전에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 길만이 더 큰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우리는 이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법칙을 가지고 세상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모든 힘과 승리의 원천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법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lt;P&gt;-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15일&amp;nbsp;주일 예배&lt;/P&gt;
&lt;P&gt;――――――――――――――――――――――――――――――――――――――――――――――――――――――――――――――――――――――――――&lt;/P&gt;
&lt;P&gt;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amp;nbsp;/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lt;/P&gt;
&lt;P&gt;- 오늘 저의 개인적&amp;nbsp;이야기들은 특별한&amp;nbsp;결론도 유도도&amp;nbsp;없습니다. 고민하는 부분을 털어놓을 뿐입니다.&lt;/P&gt;
&lt;P&gt;명말, 청초의 중국 학자, 고염무의 정치 저작 &quot;일지록&quot;에 보면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quot;천하흥망, 필부유책&quot; 이라고 주장했으니까요. 국가가 망한다고 해서&amp;nbsp;지도자의 탓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도 짊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저와 같은 많은 20-30 젊은이들은 &quot;ㅇㅇ탓이다&quot; 라고 말하는 데 익숙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ㅇㅇ를 뽑지 않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고생이다 라고 변명하는데 능숙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내 책임은 없다, 나는 모르겠다 라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자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세상은 너무 하다 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lt;/P&gt;
&lt;P&gt;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라고 말하면 조금 무거운 것 같기도 합니다. 1%의 탐욕과 오만이&amp;nbsp;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사람을 노예처럼 사고 파는데 능숙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소중한 성을 팔아서까지 연예계의 문턱을 밟아야 하는 걸까요. 언제부터인가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amp;nbsp;해서는 안 되는 일 같은 건&amp;nbsp;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자본을 가졌으므로, 신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quot;교만&quot;, 다른 말로 &quot;멸망의 길&quot; 이라고 말합니다.&lt;/P&gt;
&lt;P&gt;1926년 3월 중국에서 시위도중 류허쩐이 살해당하자, 사상가 루쉰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quot;멸망해 가는 민족이 왜 침묵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침묵이여, 침묵이여!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것이다&quot; 2012년 4월 한국에서는 많은 어린 영혼들이 시스템의 감옥 속에서&amp;nbsp;정신적 살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목숨을 끊는 일들도 계속 들려옵니다.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라고 팔짱만 끼고, 나몰라라 하면서, 모두가 책임을 외면한다면, 국가가 그렇게 착취와 억압의 도구,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능으로서만 작동한다면, 어쩌면 멸망의 길이 가까운 게 아닐까요.&lt;/P&gt;
&lt;P&gt;숨긴다고 해서 영원히 감출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덮으려고만 하고, 고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amp;nbsp;선명한 대가를 치르는 날을 볼 것이라 나는 믿습니다. 루쉰의 말처럼 -&amp;nbsp;&quot;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세상이 과연 옳은 세상인가?&quot; 광인들이 미친 듯이 날 뛸 때,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한다면, 망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lt;/P&gt;
&lt;P&gt;성경에서 하나님은 9번을 참고, 마침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직접 사람을 칩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9번의 옐로카드를 받았음에도, 사람의 오만함과 욕심은 꺾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amp;nbsp;바나나를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아서 사람에게 끌려갔다는 원숭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던 하루입니다. / 2012. 04. 18. 시북.&lt;/P&gt;&lt;/SPAN&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sa/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target=&quot;_blank&quot;&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t;!-- Creative Commons License--&gt;
			&lt;!-- &lt;rdf:RDF xmlns=&quot;http://web.resource.org/cc/&quot; xmlns:dc=&quot;http://purl.org/dc/elements/1.1/&quot; xmlns:rdf=&quot;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quot;&gt;
			&lt;Work rdf:about=&quot;&quot;&gt;
			&lt;license rdf:resource=&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quot; /&gt;
			&lt;/Work&gt;
			&lt;License rdf:about=&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Reproduc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istribution&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Notice&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Attribution&quot;/&gt;
			&lt;perm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DerivativeWorks&quot;/&gt;
			&lt;require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ShareAlike&quot;/&gt;&lt;prohibits rdf:resource=&quot;http://web.resource.org/cc/CommercialUse&quot;/&gt;&lt;/License&gt;&lt;/rdf:RDF&gt; --&gt;&lt;/div&gt;&lt;/fieldset&gt;</description>
			<category>정관영암교회</category>
			<author>시북</author>
			<guid>http://suparobo.tistory.com/917</guid>
			<comments>http://suparobo.tistory.com/917#entry917comment</comments>
			<pubDate>Wed, 18 Apr 2012 15:39:43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