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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말씀과 삶</title>
		<link>http://wordnlife.org/</link>
		<description>김종인 목사의 블로그입니다.
jonginkim2004@yahoo.co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05 Sep 2009 00:53:41 -07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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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씀과 삶</title>
		<url><![CDATA[http://cfs7.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I0NTE0OUBmczc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5MDAwMDAwMDAwMC5naWY%3D]]></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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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김종인 목사의 블로그입니다.
jonginkim2004@yahoo.com</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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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엘에이를 다녀오며</title>
			<link>http://wordnlife.org/316</link>
			<description>&lt;br /&gt;
지난 목요일에는 새벽에 급히 엘에이를 다녀와야 했다. 당일로 다녀오는 길이라 무척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그렇게 다녀왔다. 물론 당연히 나는 잠만 잤고 운전은 조목사님과 정전도사의 몫이었다.&lt;br /&gt;
&lt;br /&gt;문제는 엘에이를 가다가 일어났다. 우리가 엘에이를 가는 루트는 늘상 5번과 170번을 경유해서 101으로 가다가 웨스턴이나 벨몬트에서 나가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의 관례는 5번이 지난 후부터는 운전을 내가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잠을 잤는지 어쨌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엘에이의 다운타운을 향하여 계속 운전을 했다.&lt;br /&gt;
&lt;br /&gt;나는 당연히 운전을 하기 시작한 지점이 170번 전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전혀 낯선 동네로 가는 것이었고 그래서 헤매기 시작한 것이 거의 30마일 이상을 빙빙 돌아서 와야만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목사님이 운전대를 준 지점은 이미 170번으로 나가야 할 곳도 지나고 110번으로 나가야 하는 곳도 지난 엉뚱한 지점으로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내가 잠을&amp;nbsp;맘 놓고 잔 이유는 당연히 그 길을 많이 오간 조목사님이 길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전을 내가 하기 시작한 지점도 당연히 늘 교대하던 지점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갑자기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늘 깨어 기도하고 있으라고... 잠을 자다가 낭패를 당했다. 아무도 믿으면 안된다. 철썩같이 믿고 잠을 잤는데, 그 양반이 이렇게 배신을 때릴 줄은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lt;br /&gt;
&lt;br /&gt;피곤하면 잠을 자야하겠지만 늘 깨어서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편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낭비한다. 내가 거의 30마일을 헤맨것처럼....&lt;br /&gt;
&lt;br /&gt;이번에 엘에이를 다녀온 이유가 동열 형제의 부친이 작고하셨기 때문인데 환갑에 돌아가셨다. 몇 년 있으면 나도 환갑인데......&lt;br /&gt;
&lt;br /&gt;갑자기 인생을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깨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그래서 나의 인생의 사는 모습이 늘 정갈할 수 있다면...&lt;br /&gt;
&lt;br /&gt;(2006.9.3)</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6</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6#entry316comment</comments>
			<pubDate>Sat, 05 Sep 2009 00:03:02 -0700</pubDate>
		</item>
		<item>
			<title>생각의 기준</title>
			<link>http://wordnlife.org/315</link>
			<description>&lt;br /&gt;
나이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스스로에게 많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늘 자문자답하곤 한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할 수 있는지를 아니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아무 생각없이 했었다.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일을 통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유익을 챙겼다는 의미이다. 적당히 체면도 세워주고 돈도 벌 수 있다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lt;br /&gt;
&lt;br /&gt;요즘 내 주위에는 거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삶의 양태들을 어른의 입장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아마 거의 같은 내용의 질문들을 그들에게 하는 것 같다.&lt;br /&gt;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묻곤 하는데 그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거의가 다 먹고 살려고... 라는 대답이다.&lt;br /&gt;
&lt;br /&gt;사업을 하면서 실패를 하는 사람들의 몇가지 특징중의 한가지는 눈에 뭐가 씌우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이 곧 그 일의 결과라고 생각해 버리고 다른 부분의 모습은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lt;br /&gt;
또 한가지 특징은 함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lt;br /&gt;
돕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어떤 이념적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힘이 들어도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 일이 실패로 결말지어질 함께 남아있는 사람이 늘 있다. 그 가야 할 길이라는 이념적 공감대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lt;br /&gt;
사업은 실패해도 사람이 남아 있으면 그 일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lt;br /&gt;
&lt;br /&gt;돈 잃고 사람 잃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이념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익을 원해서 모이는 자들은 이익이 없어지면 곧 떠난다.&lt;br /&gt;
&lt;br /&gt;며칠 전에 어떤 분과 선함과 악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는데.....&lt;br /&gt;
그 기준이 애매모호한 찝찝함이 여운으로 남아있어서....&lt;br /&gt;
&lt;br /&gt;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봤는데...&lt;br /&gt;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공동체의 유익을 버리는 것이 악한 것이고&lt;br /&gt;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선한 것이다.&lt;br /&gt;
&lt;br /&gt;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망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망했다면 망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모두가 다 나누었다는 증거이니... 어린 아이같은 순진한 생각이라 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이념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돈을 벌려는 목적만 갖게 되면 이념적 가치를 상실한다. 함께 더불어 사는......&lt;br /&gt;
&lt;br /&gt;(2009.6.21)&lt;!--&quot;&lt;--&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5</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5#entry315comment</comments>
			<pubDate>Tue, 23 Jun 2009 14:09:42 -0700</pubDate>
		</item>
		<item>
			<title>무력감을 넘어서서</title>
			<link>http://wordnlife.org/314</link>
			<description>&lt;br /&gt;
며칠 전, 사무실에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서서 한국일보 앞을 지나고 있는데 길 위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어서 찬찬히 지켜보며 운전을 했다. 매 종류의 새가 길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서 왜 길 위에 매가 앉아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푸드득 날아가는 매의 발에 다람쥐가 매달려 있었다. 매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는 다람쥐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으며 부리로 쪼고 있었다. 다람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lt;br /&gt;
&lt;br /&gt;그냥 혼잣말로 저런 저런 하고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운전 중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그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다람쥐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그 광경을 지나쳐 오면서 갑자기 속이 울컥거리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동물의 세계가 본질적으로 약육강식의 세계이지만 막상 다람쥐가 힘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속이 울컥거릴 것까지는 없었는데....&lt;br /&gt;
&lt;br /&gt;몇가지 일들이 연상되면서 갑자기 무력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람쥐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산의 철거를 반대하다가 불에 타 죽은 힘없는 서민들의 모습과 가진 자들인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다 스스로 자신을 버린 그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힘이 없는 존재들은 저렇게 죽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분노로 치밀어 오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공의를 실천하고 약자들을 배려하면서 살라고 당시의 부자들과 정치권력자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에게 권면할 때도 그들은 배고픈 강아지가 짓고 있다고 아모스를 경멸했다. 그들을 향하여 아모스는 멸망을 예언했는데, 그날 나는 턱없이 힘을 남용하여 힘없는 존재들을 짓누르는 그들을 향하여 아모스보다 더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혼자만의 악다구니였지만....&lt;br /&gt;
&lt;br /&gt;적지않는 시간이 지났다......&lt;br /&gt;
&lt;br /&gt;그리고 무력감으로 인하여 갖는 분노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냈다.&lt;br /&gt;
&lt;br /&gt;그리고......&lt;br /&gt;
&lt;br /&gt;오랜 후에......&lt;br /&gt;
나보다 없는 사람, 약한 사람들을 향한 조그만 배려를 실천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2009.6.7)&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4</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4#entry314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6:29 -0700</pubDate>
		</item>
		<item>
			<title>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김</title>
			<link>http://wordnlife.org/313</link>
			<description>&lt;br /&gt;
노자나 장자에 의하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유교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명예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lt;br /&gt;
명예를 중히 여기는 집단이 또 있는데 일본의 사무라이가 그것이고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은 2차 대전등에 가미가제 특공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lt;br /&gt;
이들의 명예를 중히 여기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헤아리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명예가 손상될 때에는 목숨을 끊어서라도 자신을 지켜나갔다.&lt;br /&gt;
&lt;br /&gt;어느 만화에 보니 킬러들에게도 고수와 중수 그리고 하수가 있는데 고수들은 사람을 죽일 때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주위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법을 통해서 그 사람 스스로 죽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lt;br /&gt;
&lt;br /&gt;이게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는 연륜을 이야기 할만큼 되니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인간의 본성들을 보게 되는데, 그 인간들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간교하고 추접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좀 배우면 배운만큼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만큼 더 간교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리는 생존의 욕심도 보기에 따라 역겨울 수도 있는데 가진 자들이 더 가지겠다고 잔머리들을 굴리는 모습을 보면 토하고 싶다.&lt;br /&gt;
&lt;br /&gt;이번 주간 내내 내 마음 속에는 분노가 가시지를 않는다. 그리고 염려가 되는 일은 의인을 죽이는 대한민국의 가진 자들에 대한 역겨움에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강만수라는 재무장관은 소망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이 소름이 끼친다. 부자가 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허리를 졸라매야 합니까라는 말에는 그저 머리를 숙일 뿐이다. 그들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를 듣기나 하고 있는 것인지......&lt;br /&gt;
&lt;br /&gt;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무리들이 간교함까지 더해져서 시대의 사상가이며 약자 편에 서 있던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하더니 이제는 그의 죽음 앞에서 겉모습만 숙연한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조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누런 이빨들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lt;br /&gt;
&lt;br /&gt;정말 그들이 명예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까?&lt;br /&gt;
자신과 그 주변을 괴롭히는 양아치들 속에서 약한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낭떠러지로 던진 그 마음을 헤아려나 볼 수 있을까?&lt;br /&gt;
&lt;br /&gt;후대의 역사가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lt;br /&gt;
..&lt;br /&gt;
&lt;br /&gt;(2009.5.31)&lt;!--&quot;&lt;--&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3</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3#entry313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5:49 -0700</pubDate>
		</item>
		<item>
			<title>근조 노무현 대통령</title>
			<link>http://wordnlife.org/312</link>
			<description>&lt;br /&gt;
정치란 원리적으로는 이념이 앞서지만 실제로는 편가르기 싸움이기 때문에 아무리 겉으로는 신사적인 면이 있더라도 그 안에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이 내재되어 있다.&lt;br /&gt;
나는 에세이를 이 칼럼에 실으면서 갖는 원칙이 있는데 정치적 견해는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현대 정치사에서 우리는 여러 사람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아마도 능력이라는 차원과 추진력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과 질곡의 상황에서 우리가 벗어나는 그 길목에서 그의 군인으로서의 추진력은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그러나 평범함 속에서도 사상적 가치를 추구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을 꼽을 수 밖에 없다.&lt;br /&gt;
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세상이 인정하는 주류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lt;br /&gt;
&lt;br /&gt;사상이란 절대로 주류 속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류란 늘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 최우선적이기 때문에 사상이란 부분이 허용되지 않는다.&lt;br /&gt;
&lt;br /&gt;위대한 사상은 변방으로부터 나온다.&lt;br /&gt;
공자가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 반열에 끼워놓기는 싫으나 예수님도 철저히 변방 출신이셨다.&lt;br /&gt;
사상 뿐 아니라 혁명은 주류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와 변방으로부터 시작된다.&lt;br /&gt;
&lt;br /&gt;주류는 변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이익을 추구함 뿐이다.&lt;br /&gt;
&lt;br /&gt;변방은 그래서 이익을 추구함보다는 사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상은 힘이 없는 자들과 돈이 없는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은 눈앞의 이익이라는 큰 명제 앞에서 늘 매도 당하게 되어 있다.&lt;br /&gt;
&lt;br /&gt;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장점은 잃어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lt;br /&gt;
그래서 그들은 매여 있지 않는다.&lt;br /&gt;
그래서 그들의 생각은 자유롭다.&lt;br /&gt;
그래서 위대한 사상이 나올 수 있다.&lt;br /&gt;
&lt;br /&gt;나는 정치가가 아닌 사상가로서의 노무현을 좋아한다.&lt;br /&gt;
그의 길이 철저한 비주류였던 것이 나와 흡사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lt;br /&gt;
&lt;br /&gt;이제 그분은 훨훨 더 자유로움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lt;br /&gt;
&lt;br /&gt;근조......&lt;br /&gt;
&lt;br /&gt;(2009.5.24)&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2</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2#entry312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5:15 -0700</pubDate>
		</item>
		<item>
			<title>물이 너무 맑으면</title>
			<link>http://wordnlife.org/311</link>
			<description>&lt;br /&gt;
바다는 물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물의 깊이가 너무 깊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 바다 안에는 해류가 있는데 그 흐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해류는 지구 곳곳을 다 흘러다닌다. 그리고 그 해류를 통해서 생명의 흐름이 함께 간다. 육지의 온갖 더러움을 다 받아들이는데 그 안에서 건져낸 생선은 싱싱하다.&lt;br /&gt;
&lt;br /&gt;물이 너무 맑으면 그 안에 큰 고기가 없다. 아니, 없다는 말보다는 살 수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송사리만 산다. 물이 맑은 시내는 흘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래서 물 맑은 곳은 사람들에게 잠시 휴식의 공간은 제공하지만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지는 못한다.&lt;br /&gt;
&lt;br /&gt;우리 교회가 있는 도로의 이름은 물가장자리이다. 이 도로의 끝은 바다와 냇물이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가보면 습지로 물가장자리가 이루어져 있어서 각종 바다새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습지여서가 아니라 그곳에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새들이 모이니 새들을 관찰하고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모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사람들을 위한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lt;br /&gt;
&lt;br /&gt;살다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이 때로는 사람관계를 편치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와 갈등, 원망등이 생기며 은원의 관계가 생겨나기도 한다.&lt;br /&gt;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격적으로 친화적이 아닌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친구를 사귀기를 원하는데도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너무 삶의 모습이 투명하게 드러난 사람들이 친구가 업는 경우가 많다. 투명하게 사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 속에 인간의 더러운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아서 접근하기가 싫은 경우가 생겨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속이 상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원칙하고 맞지 않아도, 때로는 얄미운 마음이 들더라도 너무 이런 생각들을 쉽게 말로 쏟아내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크레물린처럼 음흉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 사람들이 거할 수 없도록 너무 다 드러내지 말자는 것이다. 좋고 싫음에 대하여......&lt;br /&gt;
&lt;br /&gt;인생의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또 다른 보다 나은 삶의 기준이 요구된다.&lt;br /&gt;
올곧으면서도, 투명하면서도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물 공간을 내 안에 만들어내기가 참으로 어렵다.&lt;br /&gt;
그래서 신선들은 혼자 사는지 모르겠다.&lt;br /&gt;
&lt;br /&gt;(2009.5.17)&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1</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1#entry311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4:41 -0700</pubDate>
		</item>
		<item>
			<title>소중한 것</title>
			<link>http://wordnlife.org/310</link>
			<description>&lt;br /&gt;
제목이 통 생각나지 않는 영어로 읽은 단편소설이 있다.&lt;br /&gt;
그 내용은 한 젊은이가 여행길에 길가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그 잠든 사이에 여러 사람들이 그 젊은이의 옆을 지나가는 사건들이 그 소설의 내용이다.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지나가면서 그 청년의 잠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데 그만 그 청년이 일어나지를 않아서 그냥 지나간다. 자식이 없는 부유한 노부부도 그렇게 지나가고 산적도 지나간다. 많은 사건들이 그 청년을 중심으로 일어났지만 정작 그 청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을 잤고 그리고 얼마 후에 잠을 깬 그 청년은 아무 일도 없는 채로 그의 길을 간다는 내용이다.&lt;br /&gt;
&lt;br /&gt;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우리 주위에서 너무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알고 관계 맺는 일들은 너무 적다.&lt;br /&gt;
이 단편 소설은 청교도 신앙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소설의 내용을 빌려서 말한다면 이 청년의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과 같다.&lt;br /&gt;
&lt;br /&gt;다른 사람이 호의를 갖고 접근했는데 그 일에 대하여 아무런 의식도 없이 지나가는 일도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악한 의도를 갖고 접근한 일들도 우리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lt;br /&gt;
&lt;br /&gt;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일들 중에 우리의 인생을 바꿀만한 중요한 것들도 있었을텐데, 우리가 잠을 자는 것과 같이 아무 의식이 없어서 우리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의미 없는 일들이 될 때도 많을 것이다. 인생이 우리의 노력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의하여도 많이 좌우된다.&lt;br /&gt;
&lt;br /&gt;기도의 사람이란 어떤 개념일까?&lt;br /&gt;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그것을 놓치지 않는 지혜를 가질 뿐 아니라 늘 그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수없이 많이 주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해서 놓쳐 버리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lt;br /&gt;
&lt;br /&gt;나는 오늘도 기도한다.&lt;br /&gt;
&#039;하나님 제게 주신 은혜를 무지로 인해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주님이 주신 은혜이며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도 주의 은혜일진대, 모쪼록 하나님 은혜의 울타리 속에서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039;&lt;br /&gt;
&lt;br /&gt;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lt;br /&gt;
&lt;br /&gt;(2009.4.26)&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310</guid>
			<comments>http://wordnlife.org/310#entry310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4:06 -0700</pubDate>
		</item>
		<item>
			<title>당혹</title>
			<link>http://wordnlife.org/309</link>
			<description>&lt;br /&gt;
1950년대 학교에 다녔던 우리들의 세대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화장실의 양변기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어떻게 그 안에다가 볼일은 보는 것일까였다. 냉장고도 너무 신기했다. 미제상표가 붙은 것은 품질과 상관없이 모두가 비싼 것이었고 미제를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은 큰 권력이기도 했다. 사촌동생이 스케이트를 샀는데 노르웨이하겐이라는 대단한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너무너무 부러웠었다. 미제 볼펜은 갖는 것은 정말 선택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볼펜의 잉크가 줄줄 흘러서 옷을, 그것도 단벌이 잉크로 얼룩졌던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다.&lt;br /&gt;
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될만했다. 그런데 미제를 갖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따돌림이 되기도 하는 일이 있었는데......&lt;br /&gt;
&lt;br /&gt;유난히 패션 감각이 뛰어난 어머니를 둔 덕분에 나도 미제를 몸에 휘감고 살았다. 어머니의 패션 감각은 완전히 미국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입고 있던 옷들은 거의가 다 미제였다. 그런데 그 미제라는 것이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에서 건져 올린 옷들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옷들이 꽤 쓸만했었다. &lt;br /&gt;
&lt;br /&gt;어머니는 쓰레기로 처리되는 옷들 속에서 옷을 골라내는 기막힌 눈썰미가 있으셔서 늘 괜찮은 옷들을 골라서 내게 입히곤 했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반바지에 긴 스타킹을 받쳐서 옷을 입곤 했었다. 이 패션은 내가 살던 홍은동(문화촌)에서는 가히 시대를 앞서 가는 첨단의 패션이었다.&lt;br /&gt;
&lt;br /&gt;그런데 왜 그것이 나에게는 당혹으로 여겨졌을까?&lt;br /&gt;
옷은 첨단이었는데 문제는 신발이 미제가 아니었다. 내가 신고있던 신발은 기차표 검정 고무신이었다.&lt;br /&gt;
옷은 중고품이라도 잘 손질해서 입으면 비싸보이는 옷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구제품 속에 신발은 없었던 모양이라 검정 고무신을 받쳐입고 있는 내 패션은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이 문제가 해결된 때는 고등학교를 들어가서였다.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으니까 너무 편했다. 눈에 띌 염려가 없어졌고 이 편안함은 군대생활을 하는동안 계속되었다.&lt;br /&gt;
&lt;br /&gt;전도사 시절에 선생님 한 분이 선물을 했는데 고급 넥타이였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고 초등학교 시절의 당혹함이 생겼는데...&lt;br /&gt;
넥타이에 어울리는 양복이 없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아침에 집에서 나오다가 눈에 넥타이가 포장이 조금만 벗겨진 채로 있었는데 색깔이 너무 파래서 저 넥타이가 내 것이라면 매야 할지 안 매야 할지 고민을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lt;br /&gt;
물론 옛날의 그 일과는 다른 행복한 고민이다.&lt;br /&gt;
&lt;br /&gt;(2009.5.10)&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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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wordnlife.org/309#entry309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3:12 -0700</pubDate>
		</item>
		<item>
			<title>부러운 것</title>
			<link>http://wordnlife.org/308</link>
			<description>&lt;br /&gt;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같은 반 친구 중에 도나스 가게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었다. 속에 찹쌀 앙꼬가 들어있는 도너스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일인데도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길거리에서 연탄불을 펴놓고 국화빵을 구워서 팔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도 부러웠다. 그 옆에 가끔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던 그 친구는 넉넉하게 나에게 갓 구워낸 뜨거운 국화빵을 주곤 했었다. &lt;br /&gt;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나도 국화빵 장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흰소리를 하다가 구박을 받은 기억이 난다.&lt;br /&gt;
&lt;br /&gt;실상 그들의 삶은 부러워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참 뛰놀 때에 그러지 못하고 도너스나 국화빵을 만들고 있어야 할 친구들이었는데 나는 도리어 그 친구들을 부러워했다.&lt;br /&gt;
&lt;br /&gt;순식간에 세월이 지나서 벌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게 된다. 돈이나 권력은 없어도 젊음이라는 소중한 것을 갖고 있었던 것을,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 때는 그 소중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던가?&lt;br /&gt;
&lt;br /&gt;토요새벽기도회에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고 묵상을 했었다. 돈이나 권력이나 그런 것들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간 시간들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lt;br /&gt;
낭비된 시간들은 회복되지 않는다.&lt;br /&gt;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것은 하루 24시간이다.&lt;br /&gt;
시간은 소중하다. 그 안에 우리의 꿈, 삶, 인생이 몽땅 들어 있다.&lt;br /&gt;
&lt;br /&gt;5월이다.&lt;br /&gt;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달이다.&lt;br /&gt;
하나님께서 어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아이들이다.&lt;br /&gt;
우리의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봐야 할 이유 중에 한가지는 바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그들이 알찬 인생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lt;br /&gt;
&lt;br /&gt;미국에 내가 처음 왔을 때 내 나이는 마흔 둘이었다. 그때 그들의 나이 삼십대에 만났던 사람들이 벌써 오십줄에 들어서서 같이 늙어 간다.&lt;br /&gt;
같이 늙어 간다......&lt;br /&gt;
&lt;br /&gt;(2009.5.3)&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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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wordnlife.org/308#entry308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Jun 2009 23:12:26 -0700</pubDate>
		</item>
		<item>
			<title>나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다</title>
			<link>http://wordnlife.org/306</link>
			<description>&lt;br /&gt;
서울을 방문하면서 나는 몇 가지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했다. 구리시의 한 교회를 방문해서 어린 아이들이 포함된 찬양팀을 보면서 내가 가진 인식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철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찬양 반주를 하면서 보여주었던 그 진지함과 감정은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이었다.&lt;br /&gt;
그동안 나는 교회의 찬양 리더는 적어도 30 중반이어야 하며 신앙의 연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집사가 되었던 때가 27살이었고 그때 나는 교회의 교육부장으로 주일학교 교육을 담당했었다. 그전에 장교로 임관을 했던 때가 21살 때였고 나름대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상 나의 20대는 정말 왕성하게 일을 하던 때였을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도 꽤 깊은 곳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lt;br /&gt;
&lt;br /&gt;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그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우리 말씀의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은 20대 후반부터 30 중반의 사람들이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다. 적어도 자기 인생쯤은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들의 생각이 사고의 기반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을 우리는 너무 어리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29살에 신학교를 들어갔는데 입학하는 날부터 나는 새벽기도와 저녁 설교를 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영종도에서 단독목회를 시작했던 때는 32살이었다. 어른들로부터 꽤 괜찮은 목회자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영종에서 목회하던 그때의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최고의 목회자인 줄 착각하고 있다.&lt;br /&gt;
생각해보면 어린 사람을 어리다고 하지 않고 신뢰를 보내 준 그분들이 고맙기만 하다.&lt;br /&gt;
&lt;br /&gt;내년에는 우리 젊은이들을 교회의 일선에 전전 배치해야겠다. 사람을 일을 하면서 일을 배우고 철도 들어가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미리 결론을 내리고 그들을 의논의 대상으로 생각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젊음과 열정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사람들이 볼 때 은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직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아닌지......&lt;br /&gt;
&lt;br /&gt;교회가 구태의연에서 새로운 환골탈태의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lt;br /&gt;
&lt;br /&gt;(2009.4.12)&lt;!--&quot;&lt;--&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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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Apr 2009 21:30:09 -07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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