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말씀과 삶</title>
		<link>http://wordnlife.org/</link>
		<description>김종인 목사의 블로그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25 Apr 2012 12:40:12 -0700</pubDate>
		<generator>Tistory 1.1 (http://www.tistory.com/)</generator>
		<managingEditor>말씀</managingEditor>
		<item>
			<title>과유불급</title>
			<link>http://wordnlife.org/432</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든다. 더구나 글을 쓰고 싶지 않은데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글을 쓸 때가 있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 상태와는 다른 느낌을 글을 써야 할 때 그것은 큰 압박이다. 각설하고....
&lt;br /&gt;
&lt;br /&gt;우리가 많이 부르던 흘러간 노래 중에 최희준이라는 가수가 부른 '인생은 나그네길'이 있다. 그 노랫말 중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이 요즘의 내 마음을 대변한다.
&lt;br /&gt;
&lt;br /&gt;빈손, 나그네, 뭐 이런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집착을 버린다는 뜻이 아닐까?
&lt;br /&gt;
&lt;br /&gt;이번의 큰 사건은 그냥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 충격은 초기 번잡한 수습의 시간들이 지나면서 커다란 아픔으로 계속 다가온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픈 심정이 점점 더 크게 마음에 자리 잡는다. 이 마음이 슬픔으로 때로는 분노로 치받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생각들이 새롭게 머리를 지배한다.
&lt;br /&gt;
&lt;br /&gt;몇몇 사람이, 물론 나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일곱 명의 죽음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느냐고 말을 한다.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라는 뜻일 것이다.
&lt;br /&gt;
&lt;br /&gt;사실 이번의 큰일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일들을 생각한다.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서, 아침에 잠깐 걷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들풀의 모습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늘 새로운 생각들을 한다.
&lt;br /&gt;
&lt;br /&gt;그런데 그 많은 생각들도 중요한 변화를 나에게 주지만 그런 일들이 꼭 하나님께서 이번 일들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라는 의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이길래 그런 조그만 깨달음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이 
필요했을까?
&lt;br /&gt;
&lt;br /&gt;너무 깊이 생각을 해서일까?
&lt;br /&gt;그 지나친 생각들이 희생을 당한 그분들의 아픔을 희석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lt;br /&gt;의미를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이나, 정작 그 깨달음보다 더 큰 것은 희생당한 유족들의 아픔을 내 안에 담는 일이다.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깨닫는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다.
&lt;br /&gt;
&lt;br /&gt;(2012.4.22)&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32</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32#entry432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2:14:36 -0700</pubDate>
		</item>
		<item>
			<title>한지와 화선지 2</title>
			<link>http://wordnlife.org/431</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눈앞의 화려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lt;br /&gt;거친 삶을 살아온 나는 편안함에 대한 갈구 역시 남다를 수 있다.
&lt;br /&gt;그런데 정작 그런 삶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그런 삶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lt;br /&gt;그래서 그 삶을 누릴만한 환경에서도 누릴 줄 모른다.
&lt;br /&gt;
&lt;br /&gt;화선지는 모양을 잘 내준다.
&lt;br /&gt;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lt;br /&gt;내가 늘 나 자신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점은, 거친 내 삶의 흔적들이 좀 더 세련된 관계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lt;br /&gt;다른 사람의 따뜻함을 좀 더 잘 드러내주고, 다른 사람의 가진 모습들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내지를 못한다.
&lt;br /&gt;그래서 같은 종이라도 화선지보다는 한지를 좋아하는지...
&lt;br /&gt;나와 같은 동질성을 느낀다고나 할까...
&lt;br /&gt;
&lt;br /&gt;박흥식 목사가 준 물건 중에 한지 한 묶음이 있는데 거칠지만 그 속에 깊은 따스함이 담겨 있어서 참 좋은 느낌을 준다.
&lt;br /&gt;
&lt;br /&gt;이번에 일어난 사고 속에서, 마음에 비통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로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영어권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영어가 서투름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같은 말을 쓰는 분들에게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많이 아픈데, 그 아픈 가슴이 전달되지 못했다.
&lt;br /&gt;
&lt;br /&gt;이번에 한국에서 유희자 목사가 위로의 메일을 보내왔는데, 강하지만 여린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표현을 했다.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준다.
&lt;br /&gt;
&lt;br /&gt;순간의 기쁨을 주는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lt;br /&gt;그런데 나는 그것이 잘 안 된다.
&lt;br /&gt;
&lt;br /&gt;그저 내 마음의 깊은 모습이 잘 전달되지는 않아도 문득 기억나는 따스함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lt;br /&gt;한지처럼...
&lt;br /&gt;
&lt;br /&gt;(2012.4.15)&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31</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31#entry431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2:13:50 -0700</pubDate>
		</item>
		<item>
			<title>한지와 화선지</title>
			<link>http://wordnlife.org/430</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보통 우리는 한지라고 부르지만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고 한다.
&lt;br /&gt;한지와 화선지라고 부르는데, 한지는 표면이 거칠고 먹을 잘 먹지 않아서 사람들은 먹이 잘 먹고 결이 고운 화선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lt;br /&gt;그런데 정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화선지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을 좀 더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지는 그 사람의 필력을 정확히 드러내기 때문에 실력 있는 사람들은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lt;br /&gt;
&lt;br /&gt;붓글씨를 쓰거나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좋은 화선지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좀 더 나은 작품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lt;br /&gt;
&lt;br /&gt;그런데 한지와 화선지의 수명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지의 수명이 길다.
&lt;br /&gt;조선 왕조의 실록을 기록한 종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종이 제작법을 따른 전통 한지인데, 오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한지의 품질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지를 제작하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아직도 그때의 품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그리고 화선지는 결을 곱게 하기 위해서 화공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 변질되는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고 누렇게 추하다고 한다. 또한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는 하나 수명은 짧다.
&lt;br /&gt;
&lt;br /&gt;이천 년 전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lt;br /&gt;그뿐인가?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러 온 세례요한 역시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lt;br /&gt;
&lt;br /&gt;더 좋고 더 폼이 나는 선택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그 길을 마다하고 가장 험한 길을 가는 그분들의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lt;br /&gt;
&lt;br /&gt;눈앞의 영화와 이익이 아니라 영원을 선택한 그분들의 삶은 거칠기만 했다.
&lt;br /&gt;
&lt;br /&gt;우리 신자들의 삶의 형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lt;br /&gt;영원을 보는 것은 눈앞의 잠깐 보였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2012.4.1)&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30</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30#entry430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2:12:49 -0700</pubDate>
		</item>
		<item>
			<title>노스텔지아</title>
			<link>http://wordnlife.org/429</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시간이 지나면 낯선 타인처럼 잊고 살 줄 알았는데 가슴을 파고드는 괴로움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그리움으로 돌아가면 가슴이 팔딱거리며 뛴다.
&lt;br /&gt;
&lt;br /&gt;서른여섯의 나이 때, 나는 거절할 수 없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lt;br /&gt;제주도의 가장 큰 교회의 담임목사와 큰 규모의 중고등학교의 교목실장을 겸한, 아마도 내 나이와 경력으로는 그런 제의를 받을 수 없는 묵직한 내용이었다.
&lt;br /&gt;그 제의는 내가 근무하던 대학의 이사장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는데, 아마도 이사장님이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이른 아침에 학교를 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lt;br /&gt;
&lt;br /&gt;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내 할 일은 성실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이 인정을 받게 된 이유일 것이다.
&lt;br /&gt;
&lt;br /&gt;그런데 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나름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나중에는 후회로 바뀌기도 했지만....
&lt;br /&gt;
&lt;br /&gt;힘들 때 마다 나는 가끔 그때의 일을 생각한다. 그때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그 후의 그 참혹한 고생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lt;br /&gt;
&lt;br /&gt;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비슷한 제의를 받았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하고 나는 내 길을 갔고 그래서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성실함과 정직이 그 사람의 형통함을 보장해주지 않는 경우도 참 많구나 하면서...
&lt;br /&gt;
&lt;br /&gt;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왜 그때가--고생하던-- 그리워질까?
&lt;br /&gt;그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음의 때였기 때문이리라.
&lt;br /&gt;
&lt;br /&gt;토요일의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나만의 시간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날이다.
&lt;br /&gt;마음을 스쳐 가는 바람처럼 이런저런 상념 끝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lt;br /&gt;
&lt;br /&gt;우리의 시간이 정지되었을 때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lt;br /&gt;
&lt;br /&gt;(2012.3.25)&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9</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9#entry429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2:12:00 -0700</pubDate>
		</item>
		<item>
			<title>편치 않음</title>
			<link>http://wordnlife.org/428</link>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lt;br /&gt;그런데 왜 그렇게 불편한지...
&lt;br /&gt;
&lt;br /&gt;요즘 한국에는 노스페이스의 열풍과 함께 그로 인하여 생기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마디로 브랜드의 빛과 그림자의 
현상이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평생 브랜드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 없이 살아왔던 터라 그런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고 어릴 
때부터 잘 지내왔다.
&lt;br /&gt;
&lt;br /&gt;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 물론 추웠겠지만 노스페이스 상표가 선명한 옷을 입고 유세를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lt;br /&gt;본인은 물론 주위의 참모들도 무감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수출을 말하면서 외국의 브랜드가 달린 옷을 입고 있는 무감각이 그들의 가치관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lt;br /&gt;어른들이 이럴진대 자라는 아이들의 생각이야 뻔한 것이 아닌가? 아이들의 가치관을 만들어 줘야 할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면서 자랄 것인가?
&lt;br /&gt;
&lt;br /&gt;무릇 어른들이라면 대세가 어떻든지 대의를 행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유행은 없을 수는 없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유행을 
따르다 보면 각 다른 모습의 특징들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 각각 다름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어 가는 것이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닐까?
&lt;br /&gt;
&lt;br /&gt;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요즘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젊은 아이들의 말투가 묘하게 공통점이 있다. 언어학자가 아니니 정확하게 구분을 해서 말하기가 어렵지만 분명히 그들의 말투와 억양에는 유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lt;br /&gt;그래서 너무 싫다. 얼굴들도 성형을 그렇게 해서인지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 구분이 어려운데 말투와 억양까지 똑같으니 참으로 불편하다.
&lt;br /&gt;
&lt;br /&gt;그런데 더 짜증이 나는 것은 그 억양이다. 억양에 여운을 느끼게 하는 공명이 없다. 눈매와 말투까지 사나워 보이는데 억양까지 여유가 없다. 사람의 억양에는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느낄 수가 없다.
&lt;br /&gt;
&lt;br /&gt;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을 짙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나 혼자만의 꿈인지......
&lt;br /&gt;
&lt;br /&gt;(2012.3.18)&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8</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8#entry428comment</comments>
			<pubDate>Wed, 25 Apr 2012 12:10:37 -0700</pubDate>
		</item>
		<item>
			<title>예수 믿음</title>
			<link>http://wordnlife.org/427</link>
			<description>&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참으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lt;br /&gt;
미국에서의 삶도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lt;br /&gt;
그러고 보니 81년에 시작한 내 목회생활 삼 분의 이가 미국에서의 목회였다.
&lt;br /&gt;
목회라...
&lt;br /&gt;
그런데 가슴에 남는 목회자로서의 기억을 되살린다면 가장 초기의 목회지였던 영종도에서의 목회이다. 아마 가장 극한 상황에서의
 목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목회자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오고 있으면서 그때보다 더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지만 느낌은 늘 
영종도에서의 목회가 가장 짜릿하다.
&lt;br /&gt;
&lt;br /&gt;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만일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아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떠나 내 인생의 멘토는 누구였을까를 살펴본다. 그리고 내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는 누구였는지를 생각해 본다.
&lt;br /&gt;
&lt;br /&gt;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어려웠을 그때에 누군가 조금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땠을까?
&lt;br /&gt;
그때 그분의 조언대로 삶의 환경을 바꿨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lt;br /&gt;
그때 그 슬픔은 어떻게 변했을까?
&lt;br /&gt;
&lt;br /&gt;
목회자란 섬김과 헌신을 늘 말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섬김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30년을 목회하고 나서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이었을 뿐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한 것은 일종의 처세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요즘 나를 아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데...
&lt;br /&gt;
&lt;br /&gt;
우리는 모두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lt;br /&gt;
목사를 하던지 일반 생업에 종사하던지...
&lt;br /&gt;
예수를 믿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하며 슬프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그저 나를 위한 삶이었을 뿐인데...
&lt;br /&gt;
내가 나를 너무 착각해서 나한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2012.3.11)&lt;/span&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7</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7#entry427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Mar 2012 12:41:19 -0700</pubDate>
		</item>
		<item>
			<title>교회설립 기념일을 기억 함</title>
			<link>http://wordnlife.org/426</link>
			<description>&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2004년 2월에 시작된 첫 모임이었다. 새로움을 갈구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새로운 시작의 필요성은 있었다.
&lt;br /&gt;
환경이 새로운 출발을 요구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lt;br /&gt;
&lt;br /&gt;
1년 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 교회 설립을&amp;nbsp; 공식적으로 했다. 이후 지금까지 나름대로는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려는 노력을 우리는 함께 해 왔다.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려 했으나 분명 차이가 보이는 목회의 형태를 취해 왔다.
&lt;br /&gt;
&lt;br /&gt;
선교나 구제 혹은 교회의 부흥을 외치지는 않았으나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노력을 해 왔다.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우리 
교우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손길은 여러 곳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주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 보려 했다.
&lt;br /&gt;
&lt;br /&gt;
오이코스 대학과 에스라 신학대학이 존재할 수 있었던 기반이 교회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후원한 일은
 아직 없으나 교우들이 학교에 직간접으로 관여해서 쏟은 그 도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작은 것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은 
하지만 그 도움 속에는 그분들의 아픔과 고뇌 그리고 살을 베는 헌신이었다.
&lt;br /&gt;
&lt;br /&gt;
적어도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기본을 지켜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교회가 화려함은 
없으나 그 속에 잔잔한, 그러나 포기되지 않은 사랑의 실천이 있었다. 생존의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교우들의 삶을 보면서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 안타까움을 기도에 담고 있는 교우들의 삶을 기억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작년에 우리 교회는 모이는 수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그들과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가는 모습은 너무 기분 좋다. 한국에 가면 말씀의 교회를 고향처럼 생각하는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좋다.
&lt;br /&gt;
&lt;br /&gt;
교회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한가족이 되어야 한다. 가족이란 질서는 있으나 서열(위계)은 없다.
&lt;br /&gt;
&lt;br /&gt;
드라마 식객을 보았다. 한 죄수의 탈옥을 한 이유가 어머니의 밥을 먹고 싶어서......
&lt;br /&gt;
&lt;br /&gt;
말씀의 교회...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교회, 어머님의 품 같은 교회로서...
&lt;br /&gt;
&lt;br /&gt;
(2012.3.4)&lt;/span&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6</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6#entry426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Mar 2012 12:40:25 -0700</pubDate>
		</item>
		<item>
			<title>부활주일</title>
			<link>http://wordnlife.org/425</link>
			<description>&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어릴 때 교회의 여러 행사 중에 성탄절은 우리에게 좀 더 각별한 날이었다.
&lt;br /&gt;
단순히 통행금지 시간이 해제된다는 해방감뿐이 아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틀에 얽매여 살던 시대에 성탄절은 집에서 벗어나
 남자 여자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다. 그때 유행하던 소위 야전이라고 불렀던 포터블 전축에 엘피판을 걸어놓고 울리 불리라는 
춤을 추곤 했었다. 물론 야식으로 삼양라면은 최고의 인기였고......
&lt;br /&gt;
&lt;br /&gt;
상대적으로 부활절은 우리에게 재미난 일로 기억되지 않는다. 남산이나 혹은 덕수궁에서 서울의 교회들이 연합으로 새벽에 
부활주일 기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성가대로 참여해서 할렐루야를 합창하던 일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그래도 새벽의 예배는 
사람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기는 했었다.
&lt;br /&gt;
&lt;br /&gt;
나이가 들면서 성탄절이나 부활주일의 의미가 조금씩 변화되었는데, 즐거운 날로 인식되던 성탄절은 조금 숙연한 날로, 그저 그런 날로 기억되던 부활주일은 정말 기쁜 날로 바뀌어져 간다.
&lt;br /&gt;
&lt;br /&gt;
성탄절은 사실 고난을 향한 주님의 첫 행보가 시작된 날이었다면 부활절은 모든 고난(인간 전체의 고난까지)을 마감하고 진정한
 자유,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가 선포된 날이 아닌가? 당연히 부활절이야말로 가장 큰 축제여야 한다.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직전의 고난주간 때문에 막바로 기쁨으로 연결이 잘되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몇 주 후면 부활주일이다.
&lt;br /&gt;
기쁘다 혹은 즐겁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그리고 침묵 속의 삼일과 그리고 터져 나온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반신반의 하며 맥 빠져 있던 제자들처럼 되지 말고,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제자들처럼 뜨겁게 뜨겁게 복음을 전해 보자.
&lt;br /&gt;
&lt;br /&gt;
다음 주일은 교회설립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lt;br /&gt;
말씀의 교회가 갖는 올곧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면 이런 기회를 통해서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부활의 전화를 한 통씩 돌려보면 어떨까...
&lt;br /&gt;
&lt;br /&gt;
(2012.2.26)&lt;/span&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5</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5#entry425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Mar 2012 12:39:52 -0700</pubDate>
		</item>
		<item>
			<title>진보</title>
			<link>http://wordnlife.org/424</link>
			<description>&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토요일 아침마다 새벽기도회 후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일상적으로 진행되던 그 일에 약간의 변화가 왔다.
&lt;br /&gt;
보통은 캐로우스 식당에 모여서 좀 비싸긴 하지만 아침을 먹곤 했다. 식사비용을 그냥 돌아가면서 내곤 했는데, 실은 그 비용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lt;br /&gt;
&lt;br /&gt;
교회에서 선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토요일 아침 식사 비용을 줄여서 선교비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각자 10불을 내고 비싼 음식보다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으로 대체하고 그 차액을 선교비로 모으기로 했다.
&lt;br /&gt;
&lt;br /&gt;
잘 진행되고 있는데, 지난 주일에는 식사비용을 조금 더 줄이면 선교비가 더 모일 것 같다는 생각에 5불 정도 되는 음식에서
 3불짜리로 메뉴를 바꿔 보았다. 사실 5불짜리나 3불짜리나 충분한 양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왕 모자라는데 선교비나 더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lt;br /&gt;
&lt;br /&gt;
식사의 양을 조금 줄이면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주장하던 내용과는 많이 다르지만, 의미를 부여해보니 그럴만한 의미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lt;br /&gt;
&lt;br /&gt;
그렇다고 절약된 금액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절약하고 선교비를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lt;br /&gt;
&lt;br /&gt;
며칠 전에 한국 어느 선교회의 대표를 만났었는데 그분들이 하고 있는 사역에 관한 말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드러나지 않게 열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음보다 더 가슴을 찡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헌신을 하는 것이 넉넉한 중에서가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협력(돕는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하는 선교회는 모(?)국 나환자 진료병원이다. 그곳에는 매일 나환자들의
 환부를 매일 쓰다듬으며 치료하는 한국인 처녀 간호사도 있고 짧은 기간 동안 필요한 공사를 하기 위하여 단기간 방문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들은 생활비도 따로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그곳 정부의 공무원들은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lt;br /&gt;
&lt;br /&gt;
선교가 비록 많은 재정을 보내지는 못할지라도 조그만 희생으로 모인 정성이라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 같다.
&lt;br /&gt;
&lt;br /&gt;
(2012.2.19)&lt;/span&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4</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4#entry424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Mar 2012 12:39:02 -0700</pubDate>
		</item>
		<item>
			<title>사람들 앞에 드러남</title>
			<link>http://wordnlife.org/423</link>
			<description>&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 id=&quot;writeContents&quot;&gt;갑자기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이 지겹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사실은 한 두 번이 아니고 거의 매일처럼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lt;br /&gt;
너무 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 그리고 뭔가 감추고 싶은-감춘다기보다는 그 일들이 드러났을 때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일들이 본질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회자 될 때에 목사가 싫어진다.
&lt;br /&gt;
&lt;br /&gt;
목회를 하는 것이 너무 가슴 벅차게 감사하고 옳은 일인데, 너무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것이 너무 견디기 어렵다.
&lt;br /&gt;
&lt;br /&gt;
특히 '목사가 왜 저래?'라는 말을 들으면 내 삶의 반경은 더욱 작아진다.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일이지만서두...
&lt;br /&gt;
&lt;br /&gt;
요즘 들어 신경이 바짝 쓰이기도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기력이 쇠해지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라고 자위하기는 하지만 너무 나 
자신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민망하기만 하다. 그것도 좋은 모습이 아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이...
&lt;br /&gt;
&lt;br /&gt;
말이란 것이 그 사람의 인격과 속내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일 수 있는데, 너무 여과되지 않은 요즘 나의 거친 말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더 민망한 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늙으면 다 그래'
&lt;br /&gt;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은 하지만...
&lt;br /&gt;
씁쓰을 하기만 한 내 모습이다.
&lt;br /&gt;
&lt;br /&gt;
(2012.2.12)&lt;/span&gt;&lt;br /&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author>말씀</author>
			<guid>http://wordnlife.org/423</guid>
			<comments>http://wordnlife.org/423#entry423comment</comments>
			<pubDate>Wed, 21 Mar 2012 12:38:27 -07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