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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웅저와 함께</title>
		<link>http://withzaw.net/</link>
		<description>&#039;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039;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Maung Zaw)</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9 Dec 2009 23:07: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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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꼬 마웅저</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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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웅저와 함께</title>
		<url><![CDATA[http://cfile5.uf.tistory.com/image/117E63254A63DA18750269]]></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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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039;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039;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Maung Zaw)</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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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title>
			<link>http://withzaw.net/397</link>
			<description>&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내일모레면 2010년 새해가 시작되네요. 저는 이제 한국에 온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5년이나 20년 내내 걸어 온 길에 대해 후회한 것이 별로 없고, 앞으로도 그러게 살아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1988년 버마의 8888민중항쟁에 참여하 때 우리가 열심히 운동하면 2년 안에 군부는 무너지고 민주화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의 운동을 2년으로 계획을 했습니다. 한국에 올 때도 마찬가지로&amp;nbsp; 2년 후에 버마로 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2년씩 연장은 지금은 20년이 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한국 생활 15년 동안 살아온 길에 함께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덕분에 잘 살 수 있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한국의 난민 문제와 버마 아동교육 지원, 고국 버마 민주화문제 등을 위해 활동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면 살아온 저는 내년부터 현장을 좀 바꿔서 활동할 생각입니다. 한국과 태국을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것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11월 3일부터 12월 10일까지(5주)&amp;nbsp; 태국(메솟)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제가 메솟에서 하려고 하는 교육프로그램 준비를 위한 현지조사를&amp;nbsp; 때문입니다. 태국(메솟, 치앙마이)에 있는 버마 교사들, 활동가들, 전문가들, 정치단체들, 태국인들 등을 찾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버마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도 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아시다시피 저는 예전부터 아이들의 교육 지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번 태국에 다녀와서 메솟(태국)에 버마&#039;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센터&#039;를 만들어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한국에 돌아온 후 동료들과 한국 친구들에게 저의 고민에 대해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민을 듣는 대부분 사람들은 제가 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좋게 봐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2010년을 시작하러 오는 1월 4일에 이우 고등학생들과 메솟으로 갑니다. 이우 고등학생들은 10박 11일 해외 통합 기행 일정을 마무리해서 한국에 돌아오겠지만 저는 &#039;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센터&#039;를 만들기를 위한 현지조사를 더 하고 한국에 돌아올 예정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현장을 바꿔서 활동하고 싶은 많은 이유 중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가지 못하는 버마 십대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 사회에서 15년 동안 배워온 것들을 한번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써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시고, 계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한컴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한컴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한컴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P&gt;&lt;br /&gt;</description>
			<category>마웅저일기</category>
			<author>마웅저</author>
			<guid>http://withzaw.net/397</guid>
			<comments>http://withzaw.net/397#entry397comment</comments>
			<pubDate>Tue, 29 Dec 2009 23:06: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해외 칼럼]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중앙일보]</title>
			<link>http://withzaw.net/396</link>
			<description>&lt;P&gt;제임스 웹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최근 미얀마를 방문해 군부 실권자인 탄 슈웨 장군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난 데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미얀마 집권 당국과 대화하려던 웹 상원의원의 노력은 불행히도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상처를 줬다. 게다가 웹 의원은 군부가 장기 집권을 위해 추진하는 내년 총선에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참여를 희망하는 등 적절치 않은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군부가 계획하는 ‘행사성 선거’는 미얀마 국민이 염원하는 자유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군부 독재를 영구화할 것이다.&lt;/P&gt;
&lt;P&gt;1990년 치러진 미얀마의 마지막 선거에서 국민은 압도적인 표 차로 군부 통치를 거부했다. 당시 선거에서 NLD는 의회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했지만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이후 19년 동안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민주정부 구성을 요구한 미얀마 민주인사들은 투옥과 협박, 고문과 죽음에 직면했다.&lt;/P&gt;
&lt;P&gt;군부는 내년 총선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가장하고, 제도화된 ‘규율 민주주의’를 주장하려 한다. 지난해 5월 강력한 사이클론이 미얀마를 초토화하고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며칠 뒤, 군부는 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군부는 유권자 93% 이상이 군부 통치의 영구화와 아웅산 수치 여사 및 운동가들의 선출직 진출을 막는 포괄적 규정(외국인과의 결혼 등 외국과 막연한 관련이 있는 사람의 선출직 진출 자격 박탈)을 내용으로 하는 신헌법에 찬성했다고 주장했다.&lt;/P&gt;
&lt;P&gt;몇몇 국제 문제 전문가는 내년 미얀마 총선을 기회로 여긴다. 그러나 군부의 신헌법 아래 치러지는 선거는 엉터리다. 미얀마의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거나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며 추구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희생시킬 수 없다. NLD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NLD는 4월 군부와의 진정한 대화와 모든 정치범 석방, 2008년 신헌법 재검토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군부는 오히려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민주운동가 2000여 명의 투옥을 연장하고 소수민족에 대한 대규모 군사 공격과 언론 탄압을 강화했다.&lt;/P&gt;
&lt;P&gt;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웹 상원의원과 같은 관리들이 미얀마의 우방인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여러 국가와 국제기구는 미얀마의 군부 지도자와 대화하고, 군부가 NLD 및 미얀마 소수인종 그룹과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미얀마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군부가 NLD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정치범을 석방하며 소수인종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한편 진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추가적인 단계를 밟는다면 그러한 제재는 적절한 때 철회될 것이다. 정리=하현옥 기자 &lt;/P&gt;
&lt;P&gt;우 윈틴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lt;br /&gt;
[워싱턴 포스트=본사 특약]&amp;nbsp; &lt;br /&gt;
&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버마자료</category>
			<author>마웅저</author>
			<guid>http://withzaw.net/396</guid>
			<comments>http://withzaw.net/396#entry396comment</comments>
			<pubDate>Tue, 15 Sep 2009 16:54: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미얀마 내전 확대… 中, 南進 나설까</title>
			<link>http://withzaw.net/393</link>
			<description>&lt;P&gt;&lt;STRONG&gt;접경지로 3만명 피란…반군 수백명 중국에 투항&lt;br /&gt;
중국군 비상경계령… 공안부장 윈난에 급파&lt;br /&gt;
&lt;/STRONG&gt;&lt;br /&gt;
중국 윈난(雲南)성 접경지역에서 터진 미얀마 정부군과 소수민족 군대의 충돌이 인도차이나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lt;/P&gt;
&lt;P&gt;수만명의 미얀마 피란민은 교전을 피해 윈난성으로 넘어가고, 포탄은 중국 지역까지 날아들고 있다. 중국군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남진(南進)정책이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충돌을 계기로 중국이 영향력 확대에 나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lt;IMG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 WIDTH: 270px; HEIGHT: 348px&quot; height=297 alt=&quot;&quot; src=&quot;http://www.segye.com/content/image/2009/08/30/20090830001203_0.jpg&quot; width=270 align=right border=0 categoryid=&quot;2010000000000&quot;&gt;&lt;/P&gt;
&lt;P&gt;◆미얀마 내전의 실상=미얀마 정부군이 공격한 곳은 동북부 코캉 지역이다. 이 지역은 소수민족이 거주지로, 카친·코캉·와방과 같은 지역은 사실상 소수민족 자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20여년 동안 별 충돌 없이 평화가 유지돼왔다.&lt;/P&gt;
&lt;P&gt;그러나 미얀마 정부군은 지난 7∼12일 산발적인 공격을 시작하더니 지난 24일을 전후해 코캉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미얀마 동북부에는 코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족민주동맹군(MNDAR)과 와방연합군(UWSA), 바랑방해방군(PSLA), 커친독립군(KIA) 등 소수민족 군대가 활동하고 있다. ‘마약왕’ 쿤사는 이 지역의 남쪽에 둥지를 트고 있다.&lt;/P&gt;
&lt;P&gt;코캉지역은 무장반군이 중국 경찰에 투항하면서 정부군에 장악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지난 수일간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던 코캉족 무장반군 수백명이 30일 중국 국경을 넘어 중국 국경경찰에 투항했다고 보도했다.미국에 본부를 둔 미얀마 인권 감시그룹은 이날 코캉족 반군 대부분이 중국령에 진입하자마자 무기와 군복을 버리고 현지 경찰에 항복했다고 전했다. 홍콩 문회보는 코캉지역의 중심 도시인 라오가이가 정부군에 의해 장악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lt;/P&gt;
&lt;P&gt;윈난성으로 넘어간 피란민은 3만명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주로 접경 마을인 난싼(南傘)에 모여들고 있다.&lt;/P&gt;
&lt;P&gt;◆미얀마 사태의 배경과 중국의 움직임=미얀마 정부는 코캉의 소수민족 군대가 마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정부군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변국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태국의 미얀마 전문가인 윈민 교수는 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 군사정권은 소수민족 세력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며 “코캉은 소수민족 세력 중 가장 약한 곳”이라고 말했다. 약한 소수민족부터 치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미얀마 군사정부는 언제나 마약거래를 빌미로 공격해왔다”고 덧붙였다.&lt;/P&gt;
&lt;P&gt;중국은 이번 사태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이 벌어지는 코캉 인근에는 중국의 석유·가스 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또 미얀마 정부가 이번 공격에 대해 중국에 한마디 사전통고도 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을 크게 당황하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쪽으로 3발의 포탄이 날아들어 중국인 1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치기도 했다.&lt;/P&gt;
&lt;P&gt;세계의 눈은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에 쏠리고 있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미얀마 정부가 문제를 적절히 다루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경을 지키는 중국 무장경찰 부대에는 이미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멍젠주(孟建柱) 중국 공안부장도 윈난 국경지역에 긴급히 내려갔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은 확전과 소수민족 자치체제의 붕괴를 바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lt;/P&gt;
&lt;P&gt;강호원 선임기자 &lt;A href=&quot;mailto:hkang@segye.com&quot;&gt;hkang@segye.com&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버마자료</category>
			<author>마웅저</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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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withzaw.net/393#entry393comment</comments>
			<pubDate>Mon, 31 Aug 2009 15:38: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8월 8일 버마 항쟁을 알리기 위해 10대들이 나섰다(참여연대)</title>
			<link>http://withzaw.net/392</link>
			<description>&lt;P&gt;&lt;FONT color=#177fcd&gt;“Don&#039;t say goodbye, say see you later.” &lt;br /&gt;
&lt;br /&gt;&lt;/FONT&gt;이 말은 저와 16명의 친구들이 태국에 있는 버마 난민캠프 중 하나인 멜라우 캠프에 며칠간 머물다 떠나던 날, 한 버마 친구가 저희에게 해 준 말입니다. 군부독재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 친구는 오히려 희망을 잃지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영 헤어질 것처럼 goodbye를 말하던 저희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제야 see you later를 말하면서 다짐했습니다. 꼭 다시 만나자고.&amp;nbsp; 그리고 그 때까지 절대 잊지 않고 힘닿는 대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입니다.&lt;/P&gt;
&lt;p id=&quot;more392_0&quot; class=&quot;moreless_fold&quot;&gt;&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toggleMoreLess(this, &#039;392_0&#039;,&#039;더보기&#039;,&#039;접기&#039;); return false;&quot;&gt;더보기&lt;/span&gt;&lt;/p&gt;&lt;div id=&quot;content392_0&quot; class=&quot;moreless_content&quot; style=&quot;display: none;&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tyle=&quot;WIDTH: 161px; HEIGHT: 171px&quot; height=215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attach/17/1073101245.jpg&quot; width=161&gt;&lt;/DIV&gt;
&lt;P&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이우학교에는 고 1 학생들이&amp;nbsp;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의 문제를 주제로 여행을 가는 해외통합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버마의 민주화를 주제로 올해 1월 버마와 태국의 국경도시인 메솟에 다녀왔습니다&lt;/DIV&gt;
&lt;P&gt;8월 8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버마 사람들에게 8월 8일은 5월18일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는 대대적인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무자비한 군부의 총칼 앞에 쓰러져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불완전하나마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버마에서는 아직도 군부독재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lt;FONT color=#8e8e8e&gt;&lt;br /&gt;
▲ 멜라우 캠프의 아이들&lt;/FONT&gt;&amp;nbsp;&lt;br /&gt;
&lt;br /&gt;메솟에 다녀온 뒤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마음만 갖고 있었을 뿐,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던 친구들이 모여 얘기를 해보던 차에, 마웅저 선생님께서 8월 8일을 위한 기념행사를 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버마를 다녀왔던 저희는 바쁘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lt;br /&gt;
&lt;br /&gt;&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tyle=&quot;WIDTH: 161px; HEIGHT: 265px&quot; height=189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attach/17/1328871806.bmp&quot; width=161&gt;&lt;/DIV&gt;
&lt;P&gt;저희가 기획했던 행사는 크게 버마 아이들이 그린 그림, 특히 버마 아이들의 꿈을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 것, 방문했던 학교 중 사정이 어려웠던 사무터(Hsa Mu Htaw) 학교를 위한 모금, 버마의 상황과 8888민중항쟁에 대해 알리는 피켓과 사진 전시, 그리고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버마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이었습니다. 서명운동은 특히 학교 내에 있는 엠네스티 동아리 친구들이 준비해주었습니다. &lt;/P&gt;
&lt;P&gt;8월 8일 아침, 행사 전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 참가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피켓을 들고 올라가면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기자회견 중에 여러 사람들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도 전에 버마 대사관이 있는 골목에 경찰버스가 저지선을 쳐놓&amp;nbsp;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대사관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큰 충돌없이 기자회견은 끝났지만 분명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버마문제인데 경찰이 이정도로 막을 필요가 있을지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lt;br /&gt;
&lt;FONT color=#8e8e8e&gt;▲시위대를 제압하는 군인&lt;br /&gt;
&lt;br /&gt;&lt;/FONT&gt;&lt;br /&gt;
&lt;br /&gt;&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tyle=&quot;WIDTH: 233px; HEIGHT: 214px&quot; height=175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attach/17/1353106475.bmp&quot; width=233&gt;&lt;/DIV&gt;
&lt;P&gt;기자회견이 끝나고 저희는 준비한 행사를 하기 위해 명동 예술극장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그 날 극장 앞에서 다른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사용문제를 놓고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곧 천막을 치고 준비해온 그림, 사진, 피켓 등을 전시했습니다.&lt;br /&gt;
&amp;nbsp;&lt;br /&gt;
마웅저 선생님은 이 행사와 관련해서 저희를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입니다. 이분 초청으로 온 버마 이주민들, 한국 시민단체에서 오신 활동가들, 몇몇 기자들까지 합세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희와 버마분들이 준비해 온 피켓과 사진들로 볼거리가 많은 전시회&lt;br /&gt;
였습니다. 전시를 해 놓고 막상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쥐었을 때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거려 창피했습니다.&lt;br /&gt;
&lt;FONT color=#8e8e8e&gt;▲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lt;br /&gt;
&lt;/FONT&gt;&lt;br /&gt;
&lt;br /&gt;&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 0px auto&quot; cellSpacing=5 cellPadding=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159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attach/17/1131653274.bmp&quot; width=239&gt;&lt;/TD&gt;
&lt;TD&gt;&lt;IMG height=159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attach/17/1324667498.bmp&quot; width=2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FONT color=#8e8e8e&gt;
&lt;P&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FONT color=#8e8e8e&gt;▲완성된 부스 풍경 / 서명하는 시민들&lt;br /&gt;
&lt;/FONT&gt;&lt;/DIV&gt;
&lt;P&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서명용지를 들이대며 “안녕하세요, 버마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를 반복했습니다.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은 일 하시네요.’ 하면서 기꺼이 서명해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열번 거절에 하나의 서명을 받는 정도였지만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버마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되고, 개중 몇 명은 버마의 상황까지도 알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lt;/FONT&gt;&lt;/P&gt;
&lt;P&gt;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산하게 천막을 걷고 그림들을 떼어내며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날은 찌는 듯이 더웠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던 사람들, 서명을 받던 도중에도 눈에 들어오던 버마 아이들의 그림,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에 천막 앞에서 굳이 찬송가를 불러야겠다던 ‘예수천국불신지옥‘ 분들과의 실랑이까지도 잊지 못할 일들 입니다. &lt;br /&gt;
&lt;br /&gt;적자를 예상하고 시작한 행사였지만 의외로 꽤 많은 돈이 모금되었습니다. 180여명의 분들이 버마 정치범들의 석방을 위해 서명해주었습니다. 2시간 동안의 짧다면 짧은 행사였지만 이제 see you later를 말하던 버마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느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거 같습니다.&amp;nbsp; &lt;br /&gt;
&lt;br /&gt;&lt;FONT color=#8e8e8e&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FONT color=#8e8e8e&gt;성지윤 (이우고등학교 2학년)&lt;br /&gt;
&lt;br /&gt;&lt;/FONT&gt;&lt;/DIV&gt;&lt;/FONT&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기자회견문] 버마 8888 민주 항쟁21주년 공동 성명&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오늘은1988년 8월 8일 발생한 버마의8888민주 항쟁 2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이 민주항쟁으로26년 간 지속되던 버마의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버마 민주주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와 제1 정당인 NLD, 그리고 여러 정당과 국민회의 대표 위원회, 88세대 학생지도자와 특히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1990년의 총선 결과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연방국가 설립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현 군부체제는 지금도 버마 역사상 전례 없는 인권 남용 뿐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살육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하여 학생 지도자들, 우 쿤 툰 우 소수민족 지도자 등 2100명이 넘는 정치 수감자들을 불법적으로 구금하고 장기형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정치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1990년 5월에 거행된 총선 결과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진정한 대화 권고를 아예 묵살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위해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일방적인 초안 헌법을 강제적으로 승인시켰습니다. 더욱이 군부는 이제 2010년 또 다른 총선을 실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7월3일과 4일 버마를 방문하여 군부지도자를 만나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 모든 정치 수감자들의 즉각적 석방과 국민화합을 위한 정치적 대화 실시를 요구했으나 탄 쉐 군부대표는 어떤 명시적 약속도 하지 않았으며 아웅 산 수지여사와의 접촉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은 실망하여 “나는 버마 정부가 버마 정치에서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약속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 고 발표 했습니다. 사실 군부의 이 같은 대응은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무례한 모욕을 가한것 입니다. &lt;br /&gt;
&lt;br /&gt;아웅 산 수지 여사는 2003년 5월 30일 디페인 대학살 사건으로 감금 된 지 6년이 되는 올해 5월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군부는 아웅 산 수지 여사를 석방하기는커녕 그녀의 집을 침입한 외국인 때문에 가택연금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는 버마의 국가 화해를 위한 정치 대화를 요구해왔습니다. 버마 국민들에게 여사는 단지 국민지도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희망이자 빛입니다. 그래서 여사에 대한 불법 구금과 투옥은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사형 선고나 같고, 국제사회에 대한 뻔뻔스러운 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이번 체포 사건이 버마의 법 존재 여부의 판정 사례가 될 것이다”고 언급했습니다. 판결은 8월 11일 내려질 예정인데, 만일 군부가 사법적 권한을 오용하여 아웅 산 수지 여사에 대해 불법적 투옥을 선고한다면 단연코 이득 대신 더 가혹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또 국민들의 힘이 총구의 위협 아래 그들 뜻대로 따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곧 이해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만일 우리가 버마 국민들의 이익과 존엄성에 기반을 두어 진정한 평화적 대화를 한다면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lt;br /&gt;
&lt;br /&gt;그래서 한국에서 버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버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버마 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하나, 불법 재판을 앞두고 있는 아웅 산 수지여사와 모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하라.&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하나, 국민 화합을 위해 NLD,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진정한 대화를 실시하고 가능한 한 정해진 시한 안에 민주주의 전환 과정을 이행하라. &amp;nbsp;&lt;br /&gt;
&lt;br /&gt;2009년 8월 8일 토요일&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lt;FONT color=#8e8e8e&gt;송영길 (최고 위원,민주당), 윤병국(부천시의원),신철영(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김규환, 서헌성, 정용인Weekly 경향기자,국 제 민주연대, 군산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나와 우리, 경계를 넘어, 대학생 나눔 문화, Kuki Students Democratic Front (Korea Branch),민족 민주동맹(자유지역) 한국지부, 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협의회,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버마민주화와난민교육지원을위한부천시민모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 부천시민연합, 새 사회연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아시아의친구들, 5.18 기념 재단,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인권실천시민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참여예산부천시민네트워크, Chin National Community (Korea), Karen Youth Organization (Korea Branch), 평화행동 한걸음더(광주), 풀뿌리 부천자치연대, 피난처, 함께하는 시민행동,&lt;/FONT&gt; &lt;br /&gt;
&lt;/DIV&gt;
&lt;P&gt;&lt;SPAN class=author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gt;beth&lt;/SPAN&gt;&lt;/SPAN&gt; &lt;/P&gt;
&lt;DIV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ABBR class=updated title=2009-08-12T16:59:09+09:00&gt;2009/08/11 14:39&lt;/ABBR&gt; &lt;ABBR class=published title=2009-08-11T14:39:00+09:00&gt;2009/08/11 14:39&lt;/ABBR&gt; &lt;/DIV&gt;
&lt;DIV class=tagTrail&gt;&lt;IMG alt=Tag src=&quot;http://blog.peoplepower21.org/skin/pspd4/images/entryTag.gif&quot;&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메솟&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메솟&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버마&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버마&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버마군부&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버마군부&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버마민주화&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버마민주화&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아시아&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시아&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tag/아웅산%20수지&quot; rel=tag&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웅산 수지&lt;/FONT&gt;&lt;/U&gt;&lt;/A&gt; &lt;br /&gt;
&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버마자료</category>
			<author>마웅저</author>
			<guid>http://withzaw.net/392</guid>
			<comments>http://withzaw.net/392#entry392comment</comments>
			<pubDate>Wed, 12 Aug 2009 21:14: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미얀마, 총선승리 위해 수치 여사 재구금</title>
			<link>http://withzaw.net/391</link>
			<description>&lt;P&gt;(방콕=연합뉴스) 현영복 특파원 = 지난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사정권이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11일 재구금 조치를 내린 것은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출마 등 정치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lt;/P&gt;
&lt;P&gt;국제 사회는 그동안 미얀마 군정이 미국인 남성 존 예토의 수치 여사 자택 잠입 사건을 이용, 수치 여사의 정치활동 재개를 막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lt;/P&gt;
&lt;P&gt;미얀마 군정이 국제 사회의 빗발치는 비판과 제재 조치에도 수치 여사의 발을 묶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수치 여사를 풀어줄 경우 정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lt;/P&gt;
&lt;P&gt;실제로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지난 1990년 실시된 총선 당시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된 상태에서도 의회의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미얀마 군정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lt;/P&gt;
&lt;P&gt;미얀마 군정은 총선 직후 선거를 무효화한 뒤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정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1990년 총선의 악몽&#039;을 잊지 못하고 있다.&lt;/P&gt;
&lt;P&gt;특히 미얀마 군정은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치여사가 정치활동을 재개하면 군정의 탄압으로 흩어져 있던 재야 세력이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뭉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lt;/P&gt;
&lt;P&gt;지난 2002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수치 여사가 전국을 순회할 때 수많은 인파가 몰려 수치 여사를 미얀마의 구세주로 떠받드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미얀마 군정은 태풍의 눈인 수치 여사를 어떤 구실로든 묶어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lt;/P&gt;
&lt;P&gt;미얀마 군정 지도부는 또 총선에서 져 정권을 내놓을때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세력이 집권하길 희망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탄압을 받아온 수치 여사와 그의 지지세력들이 집권하게 되면 정치 보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lt;/P&gt;
&lt;P&gt;미얀마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태국에 망명중인 아웅 나잉 오는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quot;미얀마 군정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은 총선 이후 하야했을 때 자신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lt;A href=&quot;mailto:youngbok@yna.co.kr&quot;&gt;youngbok@yna.co.kr&lt;/A&gt;&lt;br /&gt;
&lt;/P&gt;</description>
			<category>버마자료</category>
			<author>마웅저</author>
			<guid>http://withzaw.net/391</guid>
			<comments>http://withzaw.net/391#entry391comment</comments>
			<pubDate>Tue, 11 Aug 2009 16:38:44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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