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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ZIME 2.0</title>
		<link>http://zime.co.kr/</link>
		<description>Zoom In MEdia since 2001</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5 Dec 2008 14:05: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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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BS, 왜 대운하에 침묵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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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홍성일&lt;br /&gt;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lt;br /&gt;&lt;/SPAN&gt;&lt;/DIV&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C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C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50&quot; width=&quot;190&quot;/&gt;&lt;/a&gt;&lt;/div&gt;&quot;물은 생명이다.&quot; SBS가 야심차게 펼치고 있는 캠페인의 핵심 표어이다. SBS의 홍보 책자는 &amp;lt;물은 생명이다&amp;gt;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SBS의 10년 프로젝트 &amp;lt;물은 생명이다&amp;gt;는 생명의 근원인 물의 소중함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적극적인 환경메시지를 전파하는 SBS의 대국민 약속입니다.” 삼성중공업기름오염 사고 당시 SBS가 발 빠르게 관련 프로그램(&amp;lt;그것이 알고 싶다&amp;gt;, &amp;lt;라인업&amp;gt;)을 제작해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었던 것도, 임직원들이 솔선수범하며 자원봉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도 “물은 생명이다”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했던 ‘SBS의 대국민 약속’이 있었기에 SBS는 다른 방송사보다 더 큰 책임감으로 태안을 찾았을 것이다. &lt;br /&gt;&lt;br /&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SBS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 같다. 한반도 대운하가 한반도의 물길을 바꾸고 대한민국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신기한 일이다. MBC의 &amp;lt;PD 수첩&amp;gt;이 “현장보고 독일 운하를 가다”를 통해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KBS의 &amp;lt;추적 60분&amp;gt;이 “경부운하 540km를 가다”를 통해 역시나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한 것에 비한다면 SBS의 침묵은 두드러진다. 자신들 스스로 물에 대해, 그리고 환경에 대해 ‘적극적인 메시지’를 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y5wbm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y5wbm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40&quot; width=&quot;315&quot;/&gt;&lt;/a&gt;&lt;/div&gt;그렇다면 SBS의 침묵의 원인은 무엇인가? 혹시나 SBS의 최대주주가 건설회사이기 때문에, 즉 대운하 건설의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환경 이슈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추측은 몇 가지 정황에 근거한다. 연초 SBS는 한반도 대운하 관련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아예 반대 항목을 누락시켜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또, 몇 년 전에는 &amp;lt;물은 생명이다&amp;gt; 캠페인이 최대주주인 건설회사의 물 정화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amp;lt;신강균의 사실은&amp;gt;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도 SBS는 다른 방송사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는데, 당시 SBS의 최대주주 건설회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수혜주로 꼽혔다. 그리고 그 회사는 최근 한반도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한 그랜드 컨소시엄의 구성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정황들이 대운하에 대한 SBS의 침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lt;/SPAN&gt; &lt;br /&gt;&lt;br /&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기실, 이와 같은 이유로 방송 콘텐츠의 내용을 규정해 버리는 것은 방송 제작자의 자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다. 필자 역시도 이런 이유로 SBS가 침묵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SBS가 다른 방송사에 비해 발걸음이 더디다는 것이다. &amp;lt;물은 생명이다&amp;gt;를 통해 이미 물과 환경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 방송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각 방송사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소신과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장을 내세우기 전에 필요한 것은 국민들 또한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이다. 방송의 역할은 바로 그와 같은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더욱이 대운하와 같은 프로젝트는 우리 세대의 합의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합의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이 아닌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SBS의 응답(response)을 요구한다. 그것은 대국민 서비스로서의 방송의 책임(responsibility)이다. (PD 저널 08/02/20)&lt;/SPAN&gt;&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align=&quot;middle&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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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gt;</description>
			<category>칼럼</category>
			<category>pd 저널리즘</category>
			<category>SBS</category>
			<category>대운하</category>
			<author>ZIME 0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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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1 Mar 2008 01:00: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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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행의 가치</title>
			<link>http://zime.co.kr/44</link>
			<description>&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홍성일&lt;br /&gt;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lt;/SPAN&gt;&lt;/SPAN&gt;&lt;/DIV&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br /&gt;&lt;br /&gt;‘동무’는 순 우리말로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뜻한다. 어깨동무, 길동무란 말에 동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남한에서는 ‘동무’ 그 자체로 쓰이는 일이 드물다. 북한에서 동무란 말이 일반화되며, 동무의 뉘앙스는 변하였고, 의미의 변화가 생겨났다. 말과 뜻 간에는 고정적인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새 의미가 추가되기도 하고, 기존 의미가 탈락되기도 함을 ‘동무’가 보여준다. 비슷한 예로 ‘동행’을 들고 싶다. 동행의 사전적 정의는 ‘같이 길을 감’이다. 함께 걸으며 오가는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쌓는 것이 동행이 아닐까. 그래서 최성수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웃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라고 노래하였다. 허나, 요즘의 ‘동행’에선 이런 감정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대신 동행은 법률적 용어로 굳어졌다. 임의 동행, 참고인 동행 명령과 같은 사법적 뉘앙스가 동행 속에 더 짙게 베여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동행이란 말보다는 ‘무한이기주의’란 말이 더 익숙하다. 1인자, 2인자를 왈가왈부하며, 내 한 몸 건사하기 쉽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행’을 말할 때 울리는 애틋함이 사라지는 현실은 그만큼 ‘함께 가기’가 힘들다는 반증일 터이다.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현실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시장 질서로 재편되는 우리네 살림살이 속에서 동행은 참으로 향수적인 의미가 되거나, 아니면 사법적인 중립적 의미로 제한되어져, 애틋함의 불편함을 가려야만 쓸 수 있는 말이 되고 있다. 기실, 시장과 동행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동행 속엔 이윤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우직함이 있다. 그가 나에게 손해를 주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 손익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동행 속에 있으니 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i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i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50&quot; width=&quot;190&quot;/&gt;&lt;/a&gt;&lt;/div&gt;KBS의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은 그런 의미에서 우직하게 동행의 사라진 혹은 불편한 의미를 포착한다.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이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우리가 애써 보지 않았던 1% 극빈층의 모습이다. 우리가 볼 수 없었다는 것은 이들이 시장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시장의 활력과 역동성은 구매력과 판매력을 갖는 이들의 활력과 역동성일 뿐이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은 소비자와 생산자이지, 무산자가 아니다. 이들을 우리네 방송의 한 가운데로 데리고 왔다는 측면에서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은 시장 바깥을 고민한다. 한편, 우리가 보지 않았다는 것은 시장이 시장 바깥의 존재를 은폐해야만 성립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질서 속에서 시장 바깥에 눈을 돌리는 것은 도태를 의미하기에, 우리는 시장 바깥을 보려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 1%의 극빈층은 고립되고, 소외되며, 지워지고 있었다.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이 보여준 이들의 실존적 궁핍함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이 그렇다고 지질히도 궁상맞은 무산자의 삶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1%의 극빈층의 삶에도 존재하는 희로애락의 보편성은 이들이 시장의 낙오자일지언정, 결코 버려질 수 없는 인간적 동행자임을 보여준다. 고립을 동행으로, 소외를 관심으로, 지워짐을 복원으로 치유하는 시도 속에서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은 시장 중심적 사고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며, 시장의 실패를 강조한다. 시장의 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는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amp;lt;현장르포 동행&amp;gt;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동행’의 오래된 의미를 되살리는 작업이 아닐까. (PD 저널 08/01/09)&lt;/SPAN&gt;&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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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칼럼</category>
			<category>현장르포 동행</category>
			<author>ZIME 0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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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1 Mar 2008 00:57: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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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고 미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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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원용진 교수&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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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C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C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63&quot; width=&quot;294&quot;/&gt;&lt;/a&gt;&lt;/div&gt;광고는 상품의 지표다. 지표란 기생적 운명을 지닌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상품이 존재하지 않은 채 광고가 존재할 수는 없다. 하얀 눈 위의 선명한 발자국이 사람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지표이며 지나갔던 사람에 예속될 수밖에 없듯이 광고도 상품에 예속된 존재다. 기생적 운명, 예속 등의 표현은 창조의 산물 가운데 유독 광고에만 주어지는 불명예인 듯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다른 창조적 산물들은 기생적 운명이나 예속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스럽다. 문학작품은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은 가상적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치는데 익숙하다. 미술작품들의 추상성도 엄청날 정도여서 과연 어떤 존재물을 그려낸 것인가 모르기 일쑤다. 음악의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안타깝지만 창의성을 강조하는 광고물은 전혀 그런 자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상품과 관련 없는 광고물을 창조했다간 자칫 그 존재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광고는 자율을 누리지 못하고 속박된 슬픈 존재로 인식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존재론적 슬픔은 사회적 제재라는 전혀 다른 슬픔에 비하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창의성을 노래하되 상품에 기반한 창의성이 아닐 경우 광고에는 어김없이 사회적 제재가 다가온다. 창조물 중 허위라든지, 과장이라든지 하는 혐의를 뒤집어 써야 하는 경우는 광고 말고 무엇이 있으랴. 사전 심의 없이는 방송이 불가능한 분야는 광고물이 유일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방송 광고물 사전 심의를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볼멘 목소리를 내 보지만 공허할 뿐이다. 누구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존재론적 속박이 연장되어 사회적 규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광고야 말로 눈물 젖은 창의성 영역이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창조적 행위를 펼친다는 광고인의 자존심에도 그래서 늘 찜찜한 부분이 남는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표현물인 광고를 상업적 메시지로만 한정 짓는 것은 광고를 위해서나 그를 안고 있는 사회를 위해서나 유익한 일은 아니다. 표현물인 한 그것의 자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인정을 넘어서서 광고 이미지가 인간의 감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도 수긍되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를 항상 상품에 종속되어 있다고만 여긴다면, 그리고 그 평가를 상품과의 관계에서만 행해낸다면 표현이라거나 창의성이라든가 하는 용어들을 광고인들은 빨리 포기하는 편이 낫다. 표현의 영역을 지키고 있으며, 여전히 사회 내 구성원들의 미적 감각을 고민한다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면 다시 표현, 재현, 자율성, 감각 등을 광고와 연관해 논의해야 한다. 이는 광고인들의 자존 그리고 정체성과도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인들을 상업인으로만 규정하는 일은 어리석어 보인다. 상업적인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것만으로 정체성을 논의하기엔 미흡한 면이 있다. 미학적인 면, 인간 감각과 관련된 면을 건드리지 않고서 광고, 광고 이미지, 광고인의 정체성을 논의하기엔 미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아리스토텔레스적 전환&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C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C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07&quot; width=&quot;250&quot;/&gt;&lt;/a&gt;&lt;/div&gt;표현물, 재현, 예술 등에 대한 논의의 출발은 불가피하게 아테네 학당의 선사들에 기댈 수밖에 없다. 플라톤이 그 시작점이다. 이 철학자는 표현물이나 재현물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예술에 대해 상당한 적대감을 보였다. 예술은 실물의 모방(mimesis)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실물은 실물들의 최고 이상향인 이데아의 하위 범주로 파악했다. 모든 인간 행위가 이데아를 향하고, 이데아란 최고의 위치를 가진 것이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데아가 가장 높은 곳에 있다면, 그 다음에는 실물, 그 아래에는 실물을 흉내 낸 재현, 표현물, 예술이 있었다. 표현하고, 재현하는 일은 언제나 그 대상으로 얼마나 더 가까운가 아닌가로 평가받았다. 아무리 가깝게 모방되었다 하더라도 실물이라는 존재를 넘어설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의 논의에서 애초부터 재현, 표현이라는 행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던 셈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현의 지위를 그의 스승과는 다르게 설정한다. 재현도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 재현물이 실물과의 닮고 안 닮고를 떠나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도 있음을 설파한다.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재현물, 예술 등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반문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때 재현물은 실물과의 관계에서 평가되는 것이 아닌 독자적 영역을 가진 사회적 제도로 인정받는다. 이로써 예술, 재현물, 표현물에 대한 전과 다른 논의가 가능해졌다. 이후 예술과 재현물에 대한 논의는 플라톤적인 것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으로 나뉘지만 균형 발전을 하지는 않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오히려 예술의 자율성에 더 큰 점수를 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경향이 강했다. 재현을 통해 오랫동안 가려져 왔던 실물의 내면 깊숙한 진실을 알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예술을 높이 평가하는 비평도 많아졌다. 심지어는 모방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시뮬라크라(simulacra)의 가치조차도 높이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최근의 미학 논의 경향과 광고의 운명론적 한계를 종합해보면 다음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상품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창의적 산물인 광고가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진다. 완전한 자율성을 내세울 순 없는 셈이다. 만약 광고에서 예술성이나 미학적 가치를 찾고자 한다면 부분적 자율성에 걸어 논의할 도리 밖에 없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상품과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예술성을 펼치는 모습이다. 이제 기생이나 예속이란 말 대신 다르게 표현할 방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광고가 비록 상대적이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자율성을 가지는 존재라면 그에 상응하는 미학적 라벨을 붙여주는 친절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이데거는 고호의 &amp;lt;구두&amp;gt; 그림을 놓고 의미부여를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경향의 하이데거는 고호의 작품이 구두를 모방했다거나, 구두를 잘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구두가 지닌 진실을 꿰뚫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았다. 실물 자체에는 은폐되어 있던 진실이 재현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재현이 혹은 예술작품이 실물에 생명을 주고 있으니 플라톤의 실물과 재현의 지위관계는 역전이 되는 셈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고호의 &amp;lt;구두&amp;gt;가 없었다면 과연 구두라는 수단이 지닐 수 있는 그토록 위대한 진실을 우리가 알 수 있었을까. 비록 상품이라는 실물에 연을 대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지만 광고가 그 같은 지경에 이르는 일을 불가능한 것일까. 상품 표피를 훑어주는 광고가 아니라 그 속까지 꿰뚫어 전해주는 그런 미학적 도구로서의 광고는 생산될 수 없는 것일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사회의 문지방 넘어 가기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NS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NS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19&quot; width=&quot;316&quot;/&gt;&lt;/a&gt;&lt;/div&gt;광고가 뛰어난 표현, 예술 등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행해야 할 지점으로 설정한 예들도 얼마든지 있다. 예술작품을 등장시키거나 그를 패러디하면서 광고들은 예술작품에 대한 동경(憧憬)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예술의 경지를 꿈꿨지만 그에 이르지 못한 신세 한탄일 수도 있다. 얼핏 얼핏 광고 속에서 보이는 예술 작품이나 고전 영화의 오마쥬(hommage)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가 사회적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이나 그에 기반한 제재를 딛고 일어서는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광고인들의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자조(自嘲)를 떨치는 일도 우선 순위에서 앞 세워져야 할 사안임을 잊어선 안 된다. 기생이나 예속이라는 형용어를 광고 속에서 걷어 내는 일이 더 미뤄져선 안 될 일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는 이미지를 만들어 사회에 떠돌아다니게 하는 이미지 탱크다. 그것이 바로 광고 이미지가 사람들의 감각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하는 사회적 이유다. 자조를 털고 자존을 세우며 미학적 고민을 펼치는 것이 바로 광고가 사회의 문지방에 들어서는 모습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몇몇 공익적 내용을 앞세운 캠페인성 광고들은 이미 그런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투적인 캠페인임을 넘어서서 인간관계의 정곡을 찔러내는 광고도 몇 편 본 적이 있다. 지나치게 잘 만들어지고 미학적 성찰까지 곁들어져 있어 상품을 제대로 지칭하지 못하지 않을까 우려가 될 정도였다. 상품의 지표성 역할을 잘 하지 않았을 때 광고의 당혹감은 너무나 잘 알기에....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상품 미학이라는 영역을 창안해낸 하우크는 광고가 소비 감각을 자극하는 미학을 구성해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창의성을 지닌 재현체로서 광고가 소비 감각만을 강조하고, 다른 감각의 자극, 확장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잠재된 감각을 자극해내고, 그를 확장하는 일을 광고가 해내지 못하란 법은 없다. 예술이나 다른 재현에는 - 상품과의 관계에서 생긴 존재론적 한계 탓에 - 미치진 못하겠지만 그 역할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가 펼쳐낸 부정적 방향의 미학적 발견들도 많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클로즈업을 통한 인간 육체의 상품화 등이 바로 그 예다. 여성의 몸을 조각조각 분해하고 그에 따라 분절적으로 사고하고 분절적으로 감각케 하도록 유도해갔던 광고들이 그 적확한 예가 아닐까. 그 이면에는 성의 자유분방하게 인식하고 감각케 한 이미지 운동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여성을 객체화하는데 눌리고 말았다는 점에서 부정적 방향이라고 규정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부정적 방향은 인간 능력의 확장보다는 어느 한 편으로 쏠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도착적으로 감각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 방향은 당연히 쏠림보다는 다양함, 도착보다는 애정과 차이에 대한 인정 등으로 규정된다. 광고가 미학적인 측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준다면 광고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사회가 얻는 혜택들도 많으련만 아직 그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장애들이 많은 듯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광고인들의 자조적 무의식도 떨치고, 미학적 논의도 도입해야겠고, 광고의 정체성 변화도 꾀해야 하니 이래저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산물이 사회적 이익을 보고도 어려움 때문에 뜻을 접는데서야 어디 체면이 설 수 있을까. 어렵지만 한번 내질러 볼 일이다. 광고인들의 분발을 촉구한다.&amp;nbsp; &lt;/SPAN&gt;&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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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칼럼</category>
			<category>광고</category>
			<category>미학</category>
			<author>ZIME</author>
			<guid>http://zime.co.kr/26</guid>
			<comments>http://zime.co.kr/26#entry26comment</comments>
			<pubDate>Thu, 24 Jan 2008 02:04: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lt;머피 브라운&gt;과 한국 미디어 정치</title>
			<link>http://zime.co.kr/42</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원용진 교수&lt;br /&gt;http://airzine.egloos.com&lt;br /&gt;&lt;/DIV&gt;&lt;br /&gt;&lt;br /&gt;&lt;FONT face=바탕 size=2&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S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S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00&quot; width=&quot;230&quot;/&gt;&lt;/a&gt;&lt;/div&gt;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때였다. 당시 재선을 노리던 (아버지) 부시의 러닝메이트였던 댄 퀘일 부통령은 TV 시트콤인 &amp;lt;머피 브라운&amp;gt;에 시비를 걸었다. TV 앵커우먼인 주인공이 아버지도 없는 아이를 낳았다는 비난이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댄 퀘일의 발언에 온 미국이 뒤집혔다. 맞는 말이라는 측과 웃기는 보수 꼴통이라는 측이 맞섰다. &lt;/FONT&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사건이 커진 데는 당시 댄 퀘일 부통령이 대표적인 조롱거리 정치인이었던 탓도 있었다. 자니 카슨 쇼, 데이비드 레터만 쇼 등 심야 토크 쇼는 그 이전에도 연일 조롱거리로 댄 퀘일을 끌어다 즐기곤 했었다. 그러나 그 발언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가장 큰 이유는 12 년에 걸쳐 펼친 공화당 정권의 가족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쟁 때문이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돌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댄 퀘일의 발언으로 증폭된 가족 논의는 그 해 대선에서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된다. ‘가족의 가치(family value)&#039;를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온갖 선거 캠페인에서 부딪쳤다. 공화당은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주장했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다양한 가족 유형을 인정하고, 그 가족들이 온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라며 ’가족의 선택‘과 가족 복지를 강조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039;가족의 가치&#039;가 대선 주요 이슈로 발전하게 된 데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신문, 대중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뉴스, 시사토론, 심야 토크쇼, 심지어는 코미디 프로그램, 어느 매체랄 것도 없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amp;lt;뉴욕 데일리 뉴스&amp;gt;는 1면에 “퀘일이 머피 브라운에게 : 야, 이 쓰레기야”라는 놀라운 헤드라인을 실었을 정도다. 미국 부통령 역사에서 댄 퀘일만큼 미디어의 조명을 &amp;nbsp;많이 받은 부통령은 없을 거라고 다들 말하곤 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i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i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83&quot; width=&quot;283&quot;/&gt;&lt;/a&gt;&lt;/div&gt;댄 퀘일이 시비를 걸 때 시트콤의 제 1부 시리즈는 이미 끝나 있었다. 주인공 머피 브라운이 남자 아이를 낳는 것으로 마감되었고 제 2부 시리즈 방영을 앞두고 있었다. 댄 퀘일의 발언 이후 곧 이어 제 2부 시리즈가 방영되었다. 제 2부 첫 번째 에피소드는 ‘복수혈전’에 가까웠다. 머피 브라운은 아이를 안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은 편모슬하 자식을 비난하는 부통령에 관한 뉴스를 방영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 까지 치민 머피 브라운은 다음날 자신의 프로그램에 나가 부통령을 비난하고 훈계까지 날린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실질 정치와 TV 시트콤이 메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고, 그를 보고 즐기며, 또 정치에 참여하는 미국 미디어선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시 나는 학위논문 통과 후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는데 &amp;lt;머피 브라운&amp;gt; 덕에 피곤함을 달랠 수 있었다). 2부 1편 방영 후 댄 퀘일은 시트콤 속에서 태어난 그 아이에게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 인형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댄 퀘일은 자신이 미국의 모든 가족에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2부 첫 번째 에피소드를 한 흑인 편모 가족과 함께 시청했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해 선거에서 전통적 가족 가치 대신 ‘가족의 선택’을 강조한 민주당이 승리한다. ‘문제는 경제’라는 프레임으로 클린턴이 이겼던 것으로 기억들을 하지만 ‘가족의 가치’도 승패에 영향을 줄 만큼 큰 이슈였다. 한 작은 사건이 이슈화되고, 대선의 큰 쟁점으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에 전 미국이 다 참여하고 있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가볍게, 이런 저런 식으로 온 사회가 동참하고 토론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미디어’가&amp;nbsp; 있었다. &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039;바탕&#039;;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039;바탕&#039;;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S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S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04&quot; width=&quot;272&quot;/&gt;&lt;/a&gt;&lt;/div&gt;미디어 선거란 그런 것 아닐까? 저널리스트들이 나와서 후보자들의 말 한마디도 꼬투리 잡고, 그를 빌미로 주요 쟁점도 만들어 보고. 혹 실언이라도 나오면 개그 콘서트도 한번 써먹고. 라디오에서는 김구라가 살짝 비꼬아주기도 하고. 정책과 연결될 만한 얘기라면 온 사람들 다 끌어내서 토론도 붙여보고. 그런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너무 바빠질까? 미디어가 그렇게 활발하면 유권자들이 불편해할까? 한국의 미디어들은 선거 시즌만 되면 꽁꽁 얼어붙거나 제 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댄 퀘일은 &amp;lt;머피 브라운&amp;gt;을 떠 올리며 한국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quot;한국인이어서 행복하시겠어요.&quot; &amp;nbsp;&amp;nbsp; &lt;br /&gt;&lt;br /&gt;덧말 : 댄 퀘일은 감자 부통령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교육을 걱정하던 그는 한 초등학교를 찾는다. 부통령 앞에서 아이들은 영어 받아쓰기 경연을 벌였다. 한 아이가 선생님이 불러준대로 칠판에 &#039;감자(potato)&#039;를 올바르게 적었다. 이 때 그 걱정많은 부통령은 아이를 측은하게 쳐다보며 &#039;애야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039;라며 철자를 고쳐준다. POTATO&lt;SPAN style=&quot;COLOR: #ff0000&quot;&gt;E.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머피 브라운 사건과 감자 사건 이후 댄 퀘일은 몇 번의 재기를 노렸다. 그 때마다 토크 쇼 사회를 보는 코미디언들의 입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치 무대에서 멀어져갔다. &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y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My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04&quot; width=&quot;225&quot;/&gt;&lt;/a&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DIV&gt;&lt;/DIV&gt;&lt;/SPAN&gt;&lt;/SPAN&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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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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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category>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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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2 Dec 2007 16:21: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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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숙경 편집장이 말하는 신나는 아줌마 세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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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은정 기자&lt;/DIV&gt;&lt;br /&gt;&lt;br /&gt;웹진 줌마네는 아줌마들을 위한, 아줌마들에 의한 인터넷 매체이다. 그리고 줌마네 학교를 통해 글쓰기와 마음의 힘 기르기 훈련을 마친 아줌마들이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고 있다. 아줌마들의 목소리를 세상과 연결 짓는 줌마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답을 알기 위해 EBS 삼색토크의 진행자이며 줌마네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숙경씨를 만나보았다. &lt;br /&gt;&lt;br /&gt;
&lt;CENTER&gt;&lt;SPAN id=spanPreivew&gt;&lt;OBJECT id=Viewer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8,0,0,0 height=&quot;495&quot; width=&quot;350&quot; align=middle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gt;&lt;PARAM NAME=&quot;_cx&quot; VALUE=&quot;9260&quot;&gt;&lt;PARAM NAME=&quot;_cy&quot; VALUE=&quot;13097&quot;&gt;&lt;PARAM NAME=&quot;FlashVars&quot; VALUE=&quot;&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image.newsbank.co.kr/flash/001@01242002091291201861&quot;&gt;&lt;PARAM NAME=&quot;Src&quot; VALUE=&quot;http://image.newsbank.co.kr/flash/001@01242002091291201861&quot;&gt;&lt;PARAM NAME=&quot;WMode&quot; VALUE=&quot;Transparent&quot;&gt;&lt;PARAM NAME=&quot;Play&quot; VALUE=&quot;0&quot;&gt;&lt;PARAM NAME=&quot;Loop&quot; VALUE=&quot;-1&quot;&gt;&lt;PARAM NAME=&quot;Quality&quot; VALUE=&quot;High&quot;&gt;&lt;PARAM NAME=&quot;SAlign&quot; VALUE=&quot;LT&quot;&gt;&lt;PARAM NAME=&quot;Menu&quot; VALUE=&quot;-1&quot;&gt;&lt;PARAM NAME=&quot;Base&quot; VALUE=&quot;&quot;&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gt;&lt;PARAM NAME=&quot;Scale&quot; VALUE=&quot;NoScale&quot;&gt;&lt;PARAM NAME=&quot;DeviceFont&quot; VALUE=&quot;0&quot;&gt;&lt;PARAM NAME=&quot;EmbedMovie&quot; VALUE=&quot;0&quot;&gt;&lt;PARAM NAME=&quot;BGColor&quot; VALUE=&quot;000000&quot;&gt;&lt;PARAM NAME=&quot;SWRemote&quot; VALUE=&quot;&quot;&gt;&lt;PARAM NAME=&quot;MovieData&quot; VALUE=&quot;&quot;&gt;&lt;PARAM NAME=&quot;SeamlessTabbing&quot; VALUE=&quot;1&quot;&gt;&lt;PARAM NAME=&quot;Profile&quot; VALUE=&quot;0&quot;&gt;&lt;PARAM NAME=&quot;ProfileAddress&quot; VALUE=&quot;&quot;&gt;&lt;PARAM NAME=&quot;ProfilePort&quot; VALUE=&quot;0&quot;&gt;&lt;PARAM NAME=&quot;AllowNetworking&quot; VALUE=&quot;all&quot;&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false&quot;&gt;  &lt;EMBED id = &quot;Viewer&quot; name=&quot;Viewer&quot; pluginspage = &quot;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quot; align = &quot;middle&quot; src= &quot;http://image.newsbank.co.kr/flash/001@01242002091291201861&quot; width=&quot;424px&quot; height=&quot;600px&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quality=&quot;high&quot; /&gt; &lt;/OBJECT&gt;&lt;/SPAN&gt;&lt;/CENTER&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lt;STRONG&gt;&amp;lt; 신선한 아줌마 세상, &#039;줌마넷&#039;에 대하여 &amp;gt; &lt;/STRONG&gt;&lt;/FONT&gt;&lt;/DIV&gt;&lt;/DIV&gt;
&lt;P&gt;Zime: &lt;br /&gt;안녕하세요. 웹진 줌마네는 아줌마들을 위한 인터넷 매체로서는 최초인데요, 줌마네를 통해 아줌마와, 아줌마를 바라보는 세상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 &lt;br /&gt;&amp;nbsp;&lt;br /&gt;아줌마는 누구인가, 아줌마 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평론한 글은 많지만 아줌마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어요. 부엌의 일상사만 해도 남성이 봤을 때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봤을 때, 아줌마가 봤을 때는 각각 다를 텐데 말이죠. 아줌마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쌓이면 그 안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전망이 찾아질 꺼라 믿었죠. &lt;br /&gt;&lt;br /&gt;&lt;br /&gt;Zime: &lt;br /&gt;줌마네는 오프라인에서 아줌마들을 위한 줌마네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떠한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나요? &lt;br /&gt;&lt;br /&gt;줌마네는 아줌마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훈련하는 곳이에요. 글쓰기 훈련과 마음의 힘 기르기라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현재 5기까지 배출이 되었죠. 줌마네 학교는 세상 밖으로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기에는 아직 초기단계에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 목소리를 직접 내려고 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줌마네 학교의 글쓰기 훈련을 통해 아줌마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생겨날 수 있을까요? &lt;br /&gt;&lt;br /&gt;글쓰기는 굉장히 솔직한 작업이잖아요. 글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진솔하게 드러나죠. 아줌마들은 글 한 줄을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잊고 있던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요. 이것은 아줌마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회와의 끈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되죠. &lt;br /&gt;&lt;br /&gt;&lt;br /&gt;Zime: &lt;br /&gt;줌마네 학교이념 중 ‘못되게 살자’라는 이념이 있던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lt;br /&gt;&lt;br /&gt;‘못된 여자’, ‘나쁜 여자’ 가 되는 것은 여성 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익숙한 메타포죠. ‘좋은 여자’로 살기 위해 훈련된 사람들에게는 일정 기간 ‘못된 여자’가 되는 것이 필요해요. 아줌마들은 결혼 나고 나서 여러 가지 역할의 굴레에 갇히다 보니 자기 욕망과 주변 상황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거든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 욕구를 직접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게 착한여자, 즉 ‘못된 여자’가 되어야 하죠. 사실 다른 사람한테 가장 ‘착한 여자’가 자기 자신한테는 가장 ‘나쁜 여자’이거든요. &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lt;STRONG&gt;&amp;lt;방송을 통한 여성운동에 대하여&amp;gt;&lt;/STRONG&gt;&lt;/FONT&gt; &lt;br /&gt;&lt;br /&gt;Zime: &lt;br /&gt;EBS 삼색토크와 MBC 아주 특별한 아침에 출연하고 계신데요, 방송활동을 통해 여성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lt;br /&gt;&lt;br /&gt;10년 전 KBS에 ‘독점여성’ 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것이 방송활동을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죠. 방송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작은 거 하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엔 요기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TV에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기엔 한계가 있지만 여성운동을 하다보면 아무리 좋은 얘기도 우리 끼리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한 예로, 순결이데올로기를 옆집 아줌마과 옆집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어느 정도 괴리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방송을 통해 다른 언어, 편안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여성 운동을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삼색토크’ 프로그램은 진행자들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편안한 말투로, 수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요 그런 진행방식도 이숙경씨의 의견이 반영된 것인가요? ? &lt;br /&gt;&lt;br /&gt;네, 맞아요. 왜 우리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뒹굴 거리면서 편안하게이야기를 하잖아요? 편안한 자세로 앉아 격이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훨씬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 즉 자세나 분위기가 이야기의 내용을 결정짓기도 하니까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요새 방송을 보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여성 진행자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데요,&amp;nbsp;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lt;br /&gt;&lt;br /&gt;단순히 예쁜 여자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여자의 모습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죠. 그렇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여성앵커가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고, 한 여자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다루기보다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으로 여성을 포장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안타까워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여성의 삶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시청자에게 호소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100%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lt;br /&gt;&lt;br /&gt;‘삼색토크’ 같은 경우에는 여성주의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적은 편이죠. 하지만 방송이라는 것은 원래 무차별 다수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수위로, 이야기를 많이 걸러내고 중화시켜서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방송의 한계고 의미죠. 하지만 그 틈새에서도 ‘어떻게 얘기할까, 할 소리는 하는 방법은 뭘까’라고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lt;STRONG&gt;&amp;lt;여성 문화 운동,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하기&amp;gt;&lt;/STRONG&gt;&lt;/FONT&gt; &lt;br /&gt;&lt;br /&gt;Zime:&lt;br /&gt;‘삼색토크’를 보면 가족 간의 호칭처럼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소하게 넘어가는 문제들을 잘 지적되고 있는데요, 이처럼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크고 작은 억압들을 깨트려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lt;br /&gt;&lt;br /&gt;잘 살고 싶은 욕망이죠.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때 그 생각을 점점 포기하면서 세상에 적응해나가느냐, 아니면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원하는 것을 향해 실천하느냐에 따라 여성의 변화가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한 개인으로서 여성의 삶이 자신의 의지대로 끝까지 움직이고 변화했을 때 모든 여성의 해방도 실현되거든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현재 구상 중이신 새로운 여성 운동이 있으신가요? &lt;br /&gt;&lt;br /&gt;줌마네 안에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나갈 생각이에요. 줌마네가 정해진 틀을 가지고 운영되기 보다는 아줌마들의 변화, 아줌마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루어는 장소거든요. 줌마네는 문화적인 컨셉이 매우 다양해요. 그 동안은 사람 키우기, 글쓰기 훈련에 주력했었는데 앞으로는 줌마네 안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작은 문화 행사들을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최근에도 ‘신부와 아버지’라는 연극을 단체 관람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이처럼 줌마네 회원들은 물론이고 오프라인 회원들이 함께 모여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생각이에요. &amp;nbsp; &lt;br /&gt;&lt;br /&gt;&lt;br /&gt;&amp;lt;이숙경&amp;gt; &lt;br /&gt;* 웹진 &amp;lt;줌마네&amp;gt; 편집장 (&lt;A href=&quot;http://www/&quot;&gt;http://www&lt;/A&gt;. zooma. co. kr) &lt;br /&gt;* EBS 삼색토크 진행 &lt;br /&gt;* 도서출판&amp;lt;여성사&amp;gt; 기획실장 역임 &lt;br /&gt;* 한국성폭력상담소 &lt;br /&gt;* 페미니스트 카페 ‘고마’ &lt;br /&gt;* 서울시립대학교 여성학 강사&lt;br /&gt;&lt;br /&gt;&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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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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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Mar 2007 23:43: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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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BC 신입 PD 이재진씨를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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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박영란 기자&lt;br /&gt;&lt;/DIV&gt;
&lt;P&gt;&lt;br /&gt;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일어서보려는 MBC가 든든한 지지대로 선택한 2006 MBC 신입 드라마 PD 이재진씨를 만나보았다. 주변에서 PD를 꿈꾸는 사람, 또 그 꿈을 아깝게 놓쳐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오던 터라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주인공이 마냥 궁금하기만 했다. 설레는 맘으로 아침부터 서두르다 약속시간 30분전에 도착해 버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마침내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사람 좋게 웃으며 이재진씨가 들어왔다. &lt;br /&gt;&lt;br /&gt;&lt;br /&gt;&lt;FONT color=#333333 size=3&gt;&lt;STRONG&gt;#. 기분 좋은 예감, 이재진.&lt;/STRONG&gt;&lt;/FONT&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ZIME: &lt;br /&gt;우선 축하드려요. 합격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lt;br /&gt;&lt;br /&gt;다들 말도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사실 PD가 되겠다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좀 믿기 어려운 눈치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벌써부터 이 PD라고 불러요. 다들 축하해 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죠. &lt;br /&gt;&lt;br /&gt;&lt;br /&gt;ZIME: &lt;br /&gt;경쟁률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PD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독 드리는 자리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MBC가 본인을 선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lt;br /&gt;&lt;br /&gt;글쎄요. 저도 그게 너무 궁금해요.(웃음) 그냥 저는 자기소개서 쓸 때부터 마지막 임원면접 할 때까지 저만의 컨셉을 하나 잡아서 쭉 밀고 나갔어요. 먼저 PD를 제작 스탭들과 배우, 작가 등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해 두고 내가 잘난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나를 낮추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죠. 그런 겸손한 이미지가 오히려 저를 돋보이게 해 주지 않았나 싶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 &lt;br /&gt;좀 더 구체적인 노하우(?)가 있다면요?(^^) &lt;br /&gt;&lt;br /&gt;음, 직접 영상을 구성하고 만들어보는 현장 경험이요. 영화제작과 초급 TV 제작 수업을 들으면서 이렇게 찍으면 어떤 화면이 나올 것이라는 감각을 익혔죠. 그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실제 합숙 면접 단계에 올라온 20명의 지원자 중에 7~8명 정도가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 분들이시더라고요. 물론 30분정도 간단하게 지도를 받지만 그래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차이가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D 준비하시는 분들 보면 드라마 분석이나 논술, 작문 연습에 더 치중하시는 것 같은데 제 경우에는 그런 것보다 직접 기획해 보고 스토리 보드도 그려보고 화면에 담아보는 연습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혹시 면접 질문 중에 본인이 생각해도 잘 받아 넘긴 질문이 있다면요? &lt;br /&gt;&lt;br /&gt;마지막 임원 면접이 특히 까다로웠어요. 다른 조는 20분이 채 넘지 않았다는데 저희 조만 45분이 넘는 시간동안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연신 물어보셨죠. 특히 요즘 PD들은 기껏 방송사에서 키워주면 다 독립 제작사에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나가버린다는 얘기를 하시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시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저보다 먼저 대답하신 분은 아무래도 MBC 시스템 안에서 PD의 예술가적 기질을 펴기 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을 하시고는 엄청 공격을 받으셨죠. 그래서 저는 조직에 대한 자부심 이야기를 했어요. 잘난 개개인이 조직을 끌어가는 경우가 있을수 있지만 조직이 일원을 받쳐주고 커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경우가 많고 MBC는 바로 그런 조직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합숙 하실 때 하루 종일 글만 쓰시느라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재밌었던 일은 없었나요? &lt;br /&gt;&lt;br /&gt;PD 준비하시는 분들은 팔운동 꼭 하세요. 글 굉장히 많이 쓰거든요. 드라마 PD는 특히 심했죠. 그래도 첫날밤에 가졌던 술자리는 참 재밌었어요. 현업에 계시는 분들과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약간은 긴장을 풀고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나이가 좀 어린 편이라 재미있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다보니 ‘너 왜 예능 PD가지 여기 있냐?’는 말까지 듣게 됐죠.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서강대학교 취업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읽었어요. 필기시험 전형 때 작문을 &amp;lt;트라우마&amp;gt;나 &amp;lt;츄리닝&amp;gt;의 느낌으로 풀어가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lt;br /&gt;&lt;br /&gt;제가 논술을 대비해서 특별히 글쓰기 연습을 해 오던 게 아니라 작문에 승부수를 띄우자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파격’이라는 주제어를 보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금방 떠올랐죠. 축구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 경기 하나 하면 모두가 왈가왈부 제 목소리 높이기 바쁘잖아요.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다들 축구 전문가죠. 그래서 이런 상황을 제가 즐겨보는 인터넷 만화처럼 풀어갔어요. 우선 내년 독일 월드컵에 한국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위원회가 열리죠. 신문선 해설위원, 허정무 전 감독, 홍명보 코치 등 실제 관계자들을 등장시켜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의견들을 내 놓죠. 중간 중간 ‘한국 축구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군대다’라는 식의 유머도 좀 섞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가 정말 파격적인 대안이 있다며 말을 하죠. ‘랜덤...’ 전 국민이 전문가인데 아무나 골라서 내보내면 될 것 아니냐는 거죠. 축구팬으로서 그동안 느꼈던 바를 조금 냉소적이지만 재미있게 담아보려고 했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 &lt;br /&gt;재밌네요. 실제로 쓰셨던 글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요.(^^) &amp;lt;트라우마&amp;gt;에 심취하신 분이라면 뭔가 남다른 면이 있을 것 같은데, 지원서 쓰실 때 취미는 뭐라고 쓰셨는지 갑자기 궁금해요. &lt;br /&gt;&lt;br /&gt;별로 특이할 건 없는데. 농구하고 만화그리기라고 썼어요. 특히 만화 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수업시간에 저도 모르게 만화를 그리면서 필기를 해요. 어느 순간 공책을 보면 교수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말풍선 안에 수업 내용이 들어가 있죠. 그래서 제 공책에는 별 내용은 없고 그림만 잔뜩 있어요. 그리고 농구는 좋아하기도 운동이기도 하지만, 취미가 노래가 됐든 춤이 됐든 심지어는 골프까지 직접 해 보이게 했대서 어렵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농구를 적어봤죠. &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lt;STRONG&gt;#. 만화 같은 드라마를 꿈꾸는 유쾌한 남자. &lt;br /&gt;&lt;/STRONG&gt;&lt;/FONT&gt;&lt;br /&gt;ZIME:&lt;br /&gt;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얘기 좀 할게요. 상투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가장 감명 깊게 봤거나 재미있게 본 드라마를 꼽는다면? &lt;br /&gt;&lt;br /&gt;올해 초에 방영됐던 &amp;lt;신입사원&amp;gt;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제가 만화 그리기도 좋아하지만 보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amp;lt;신입사원&amp;gt;은 마치 만화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웃기도 많이 웃었고, 저도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만화 같은 드라마요? 감이 잘 안 오는데 설명 좀 더 해주세요. &lt;br /&gt;&lt;br /&gt;저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그 재미라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이죠. 어떤 사람은 &amp;lt;장미빛 인생&amp;gt;처럼 감동적인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서운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를 주기란 참 힘이 드는데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포인트는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편하게 보고 웃을 수 있기에는 코믹 드라마가 적격이죠. 저는 이런 코믹 드라마를 만화적인 장치를 써서 만들어 보고 싶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그런데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드라마가 만화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말도 안 되게 풀어가는 드라마들이 상당히 많은데. &lt;br /&gt;&lt;br /&gt;만화나 드라마나 모두 픽션일 수밖에 없죠. 실제가 아닌 허구라는 출발점은 같지만 제가 말하는 만화적인 장치는 만화 같은 설정이 아니에요. 설정 자체는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스토리 전개를 만화책 보듯이, 책장 넘기듯이 한다는 얘기죠. 기본적으로 만화는 전개가 굉장히 빠르거든요. 그리고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만화적인 화면 분할도 사용해 볼 수 있겠고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굉장히 기대되는데요. 언제쯤 만화책 보듯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될까요?(^^) &lt;br /&gt;&lt;br /&gt;적어도 6~7년은 기다리셔야 될 텐데요. 드라마 PD가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려면 예능이나 시사교양 PD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그동안 조연출을 하며 내공을 쌓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 기획안이 통과가 되어야겠죠.(웃음) &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lt;STRONG&gt;#. 그 남자의 드라마 보기. &lt;br /&gt;&lt;/STRONG&gt;&lt;/FONT&gt;&lt;br /&gt;ZIME:&lt;br /&gt;저희 기사 읽어보셨어요? 한달에 두 번 드라마 이야기를 쓰거든요. &lt;br /&gt;&lt;br /&gt;저번 호였던가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내가 잘 만들었기 때문이고 안 나오면 경쟁사가 시청률을 너무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봤어요. 요즘 MBC가 드라마부분 경쟁에서 참패를 거듭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청률 문제죠. 아시다시피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지상파 DMB가 상용화되면 더 심해질 거예요. 갈수록 줄어드는 시청률을 어느 정도는 나눠먹어야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죠. 특히 MBC는 지나치게 젊은 트랜드만 쫓다 보니 더욱더 시청률을 나눠먹을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디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나요? 다시보기가 있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다운받아서 볼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식구들과 다퉈가며 제 입맛에 맞는 드라마를 보기보다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게 되죠. 왜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그들의 부모님 세대가 함께 하는 드라마를 최근 MBC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그게 드라마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에 하나고 네 탓만 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혹시 기사를 부탁한다면 어떤 화두를 가지고 쓰고 싶으세요? 아이템 얻는 데 참고 좀 하려고요. &lt;br /&gt;&lt;br /&gt;마니아 드라마 분석해 보는 거 어때요? &amp;lt;네 멋대로 해라&amp;gt;가 거의 마니아 드라마의 원조고 이후에 여러 드라마들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시청률은 크게 높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큰 유행을 일으킨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마니아 드라마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아이템 하나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요즘에는 어떤 드라마 보고 계세요? &lt;br /&gt;&lt;br /&gt;저번 주에 시작한 &amp;lt;달콤한 스파이&amp;gt; 보고 있어요. &amp;lt;신입사원&amp;gt;을 쓰셨던 작가분들 작품이거든요. &amp;lt;신입사원&amp;gt;처럼 만화적인 느낌도 있고 굉장히 재밌어서 앞으로도 기대가 되요. 그래서 쭉 지켜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amp;lt;비밀남녀&amp;gt; 다운받아서 보고 있고요. 몇 회 보지는 못했지만 꽤 잘 만든 드라마 같아요. 재미있고 신선하고요.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 있으세요? 드라마 보시면서 같이 일 해 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요?&lt;br /&gt;&lt;br /&gt;&amp;lt;맨발의 청춘&amp;gt;에 나오는 강경준씨 좋아해요. 드라마가 뜨지 못해서 배우도 빛을 못 받고 있는데 연기 잘하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또 &amp;lt;여고괴담&amp;gt;에 나왔던 김옥빈씨도 기회가 된다면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 중에 하나고요. &lt;br /&gt;&lt;br /&gt;&lt;br /&gt;처음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부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까지 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뭐 인터뷰 할 게 있나요’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던 이재진씨였다. 사람 좋게 웃는 얼굴 그대로 인터뷰 내내 참 편안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서 하나 둘 터져 나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게 만드는 참 유쾌한 남자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 속에 첫 발을 내딛는 이재진씨, 아직 자신의 자리가 신기하기만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할 테지만 누구보다 잘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이재진씨의 만화 같은 드라마를 빨리 만나 볼 수 있게 되기를.&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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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MBC</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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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재진</category>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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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Mar 2007 23:25: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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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독립도 되었습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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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align=right&gt;도은혜 기자 &lt;/P&gt;
&lt;P&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4MDAwMDAwMDAwMi5wbm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4MDAwMDAwMDAwMi5wbm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87&quot; width=&quot;570&quot;/&gt;&lt;/a&gt;&lt;p class=&quot;cap1&quot;&gt;표절의혹을 받은 kbs2 자유선언&lt;/p&gt;&lt;/div&gt;&lt;br /&gt;우리나라 연예오락방송 중 어떤 것이 일본의 형식에서 진행자 스타일까지 똑같이 베껴왔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인기 있다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연예인들이 여럿 나와 때론 가학성이 논란이 되는 게임을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에게 내뱉으며, 무리 중 한명을 바보로 만드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나의 놀이로써 행한다. 이런 스타일의 방송들이 우리 오락프로그램을 점령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배용준의 일본한류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마’라는 말은 이제 일상어처럼 방송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고, 시간 때우기 용 질 낮은 프로그램에도 더 이상 방송사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lt;/P&gt;
&lt;P&gt;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고 해서, 요즘 세대들의 정서가 그에 맞기 때문이라고 볼 순 없다. 보기에 좋은 떡이 몸에도 좋은 건 아니다. 매체는 사람들의 정서추세에 영향을 받아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영향을 주기 쉽다. 스스로 만들기 쉬운 길을 택하다 보니 한국방송에서 제대로 된 한국의 정서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함께 출연한 상대의 머리를 세게 내리치는 일본방송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이제는 빈번하게 우리 방송에서도 연출된다. 겉보기 비슷해 보일지는 몰라도 정서적으로 큰 괴리가 있었던 일본으로부터, 왜 이렇게 방송들은 독립을 하지 못하고 표절을 이어가고 있는지 안타깝다. &lt;/P&gt;
&lt;P&gt;문화에 고급과 저급을 구분할 수 있을까? 교과서적인 대답으로는 문화는 질적 구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질적 수준을 구분하고 있다. 그 기준은 ‘경제력’이다. 좀더 윤택하고 세련된 대상과 그에 대한 묘사로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나아졌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서구의 문화에 대해서는 보다 너그럽고 바라보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다못해 수십 년 우리를 통치했던 일본에 대해 겉으로는 반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베끼고 따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류의 가닥이 중국이나&amp;nbsp; 베트남 같은 곳에 이어졌을 때, 우리는 그 나라들 보다 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앞선 문화를 전해주는 양 선망의 대상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자부심이다.&amp;nbsp; 그들에 대한 문화적 우월성을 생각하기 전에, 이제 경제력이 강해지고 있는 나라가 우리가 거친 단계처럼 문화적인 잠재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들이 언제까지 우리의 드라마와 가수들에게 환호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lt;br /&gt;&amp;nbsp; &lt;br /&gt;문제는 우리다. 이제 충분히 우리 힘으로 좋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많은 부분 수출로 한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습성이 남아있고, 일본으로부터 방송 베끼기는 여전하다. 한류의 자부심은 부풀리지만, 이미 우리나라에 만연한 일본류에 대해서는 애써 모르는 척한다. 이런 것들이 방송에서의 진짜 독립을 막고 오히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 대한 막연한 선망과,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대해 문화적으로 앞서있다는 자부심이 대조를 이루며 우리 정체성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lt;/P&gt;
&lt;P&gt;우리의 문화를 어떤 것이라고 확실히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류의 ‘류’와 같이 문화는 흐르고 흘러 합쳐지고 수용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내부에서 문화를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 경우를 드물지 않게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자생적으로 문화를 키워나갈 자유로운 광복을 맞는 상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대주의적 습성과 부풀려진 자부심으로 소위 우리가 생각했던 선진국에 대한 안이한 열등감을 숨기며, 표절과 패러디로 우리 문화를 스스로 종속시켜가는 일은 그만해야 할 일이다.&amp;nbsp; 광복절에 또 한번 각성해야 할 것은 현재에 사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lt;/P&gt;</description>
			<category>Feature</category>
			<category>문화</category>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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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Mar 2007 12:24: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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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화여대 DEW를 만나다</title>
			<link>http://zime.co.kr/8</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성현 기자&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
&lt;DIV&gt;대학 웹진, 그렇게 익숙한 매체는 아니다. 각 대학별로 있는 학보나, 교지, 방송국에 비해 그 역사는 터무니 없이 짧고, 짧은 역사 덕에 정착된 웹진이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웹(web)이라는 공간적 제약, 혹은 자유 때문에 다른 대학 언론에 비해 웹진의 정체성을 규정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대학 웹진의 정체성은 두 가지 정도로 구분 지어 볼 수 있다. &lt;br /&gt;&lt;br /&gt;첫 번째로 대학 내의 정보를 교외로 알리는 대학 정보 알림 웹진. 대부분의 대학 웹진이 이러한 모습을 표방한다. 물론, 이런 기본적 모습에서 수많은 변주를 만들어 내며 각 대학의 개성을 뽐내고 있지만, 기본적 형태는 학내 소식을 전하고, 선후배 소식 알림과 자신의 학교와 관련한 외부 소식을 취재, 보도하는 웹진이다. 이러한 대표적 웹진에는 서울대 인터넷 언론 스누나우(&lt;A href=&quot;http://www.snunow.com/&quot;&gt;http://www.snunow.com/&lt;/A&gt;), 성균관대 스큐진 (&lt;A href=&quot;http://skkuzine.skku.ac.kr/&quot;&gt;http://skkuzine.skku.ac.kr&lt;/A&gt;), 경북대 웹진(&lt;A href=&quot;http://webzine.knu.ac.kr/&quot;&gt;http://webzine.knu.ac.kr&lt;/A&gt;)등이 있다. &lt;br /&gt;&lt;br /&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y5naWY=&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4.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y5naWY=&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74&quot; width=&quot;212&quot;/&gt;&lt;/a&gt;&lt;/div&gt;두 번째는 일반 전문 웹진 못지 않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문화된 웹진의 모습을 보이는 형태이다. 대체로 미디어나, 문화, 여성,사회 등 다양한 것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웹진을 발간한다. 이러한 대표적 웹진에는 계명대 참언론 연구회에서 만들어 내는 시사 웹진 참진(&lt;A href=&quot;http://www.chamzine.co.kr/&quot;&gt;www.chamzine.co.kr&lt;/A&gt;), 서울대 언론비평웹진 필화(&lt;A href=&quot;http://www.philhwa.com/&quot;&gt;www.philhwa.com&lt;/A&gt;), 이화여대 시사웹진 듀(&lt;A href=&quot;http://www.ewhadew.com/&quot;&gt;www.ewhadew.com&lt;/A&gt;)등이 있다. &lt;br /&gt;&lt;br /&gt;인터넷 안에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은 여러가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서버와 홈페이지 같은 기술적인 문제부터, 컨텐츠의 질의 문제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전문가의 손을 빌리고, 웹 상에서 공격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사이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 웹진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오히려 학내에서만 보는 대학 언론들과는 차별된 웹 상의 공개성과 자유성은 그들의 문제를 더욱더 극대화 해서 보여준다. 학내 소식을 전하는 홍보성 웹진의 경우는 학교 내 홍보팀에서 관리를 해주는 경우가 대다수 이기에 비교적 수월하지만,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비교적 전문화된 웹진들은 사이트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lt;br /&gt;&lt;br /&gt;실제로 대학 웹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소속된 동아리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화여대 시사웹진 듀(D.E.W)를 찾아가 보았다. 이화여대 듀(&lt;A href=&quot;http://www.ewhadew.com/&quot;&gt;www.ewhadew.com&lt;/A&gt;)는 99년 6월에 발간,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매달 한번씩 발행하고, 20대 감성의 시사웹진을 표방하고 있다. &lt;br /&gt;&lt;br /&gt;&lt;br /&gt;ZIME:&lt;br /&gt;현재 이화여대 듀의 기자 수는 몇 명 정도 인가요? &lt;br /&gt;DEW:&lt;br /&gt;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자 수는 약 18명 정도 입니다. 04학번과 03학번이 대다수를 차지 합니다. &lt;br /&gt;&lt;br /&gt;ZIME:&lt;br /&gt;듀의 운영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운영비도 만만찮을 텐데. &lt;br /&gt;DEW:&lt;br /&gt;대체로 운영비는 서버관리비와 홍보 포스터 제작비, 취재비등이 포함됩니다. 사실, 인터넷 매체이기 때문에 운영비가 더 적게 든다고 보지만, 운영비가 부담인 것은 사실입니다. 주로 듀 이름으로 학교 근로를 하는데, 한 학기에 80만원 정도 됩니다. 이것으로 듀의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lt;br /&gt;&lt;br /&gt;ZIME:&lt;br /&gt;한 기자가 듀에 머무는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lt;br /&gt;DEW: &lt;br /&gt;대체로 1년에서 1년 반정도. 2년 정도 된 사람도 있습니다. &lt;br /&gt;&lt;br /&gt;ZIME:&lt;br /&gt;홍보도 중요한 부분 인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듀의 홍보를 하고 있는지요? &lt;br /&gt;DEW:&lt;br /&gt;저희 역시도 홍보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우리끼리 보고 말기에는 아까운 기사들이 많아서요. 듀의 독자층은 듀가 표방하는 “20대 감성 시사 웹진”에서도 알 수 있듯 20대 대학생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맞춘 홍보를 하려 합니다. 지난번에 저희 기획 기사와 비슷한 컨셉이 싸이월드에 올라왔길래, 댓글을 다는 식으로 듀 홍보를 했는데 그날 하루 방문자 수가 훌쩍 높아졌습니다. 홍보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 했죠. 저희가 오프라인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 것도 홍보 때문 이기도 합니다.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홍복 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더 고심해야겠지만, 홍보 부분은 저희가 하고 있는 고민만큼 더 적극적으로 하려 합니다. &lt;br /&gt;&lt;br /&gt;ZIME:&lt;br /&gt;웹진을 만들고 있고, 또 웹진 소속 대학생 기자로서 느끼는 점들은? &lt;br /&gt;DEW:&lt;br /&gt;일단, 대학생 기자로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죠. 또 인터뷰나 취재를 다닐 때 알아주는 매체가 아니니까 쉽게 컨택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학생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일반 제도 언론이 볼 수 없는 점들을 우리가 집어내고, 조금씩 변화 시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lt;br /&gt;&lt;br /&gt;ZIME:&lt;br /&gt;듀가 생각하는 듀만의 방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lt;br /&gt;DEW:&lt;br /&gt;컨셉에 대한 것은 항상 고민점입니다. 듀의 경우는 편집장이 바뀔때마다 그 무게중심의 위치가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서주원 前편집장의 경우 미디어나 언론인 인터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성화주 前편집장의 경우는 문화코드 부분에 무게를 두었구요, 저(송혜영, 現편집장) 같은 경우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고 해도 듀만의 그 무엇은 대학생이 만들고, 대학생을 위한 웹진이라고 보고, 또 한분야에만 전문적으로 무게를 두기 보다는 전방위적인 취재와 기사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죠. &lt;br /&gt;&lt;br /&gt;&lt;br /&gt;듀에서 4년여간의 긴 시간을 함께한 정순화(00,언론정보)씨는 듀를 ‘나서지 않으면서 주도한다’라는 말로 정의한다. 집어야 될 것 을 집고 있지만, 강하지는 않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게 듀의 색이라고 이야기 한다. 덧붙여서 대학 웹진 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데 허튼 작업이라고 볼 때, 또 외부에서 어리게만 본다는 점을 꼽으며 아쉬워했다. &lt;br /&gt;&lt;br /&gt;인터넷은 그야말로 토론의 장이다. 기사 하나에도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 안에서 격렬한 토론이 이루어 지기도 한다. 대학생 웹진은 토론의 장인 인터넷이 낳은 또 하나의 이야기 광장이다. 기존 언론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집어내고 젊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열정 하나로 취재를 하고, 뜨거운 사고를 통해 그들과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대학 웹진, 웹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컨텐츠와 좀더 신중하고 깊이 있는 기사는 그들이 가지고 가야 할 몫이다. &amp;nbsp;&lt;/DIV&gt;&lt;/DIV&gt;&lt;/DIV&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align=&quot;middle&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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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Oct 2006 00:08: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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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고 속 ‘젊은 리얼리즘’</title>
			<link>http://zime.co.kr/43</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원용진 교수&lt;br /&gt;&lt;A href=&quot;http://airzine.egloos.com/&quot;&gt;http://airzine.egloos.com&lt;/A&gt;&lt;br /&gt;&lt;/DIV&gt;&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2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a href=&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NS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6.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Y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1MDAwMDAwMDAwNS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81&quot; width=&quot;272&quot;/&gt;&lt;/a&gt;&lt;/div&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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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quot;청춘이 바로 사업이다”. 1930년대 미국이 경기 회복을 노리던 때 광고 회사들이 내걸은 슬로건이다. 새로운 소비 주체를 형성해야 했고, 더 많은 소비를 촉진시켜야 했던 때 광고는 청춘의 재구성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광고는 지속적으로 모습을 달리하는 청춘을 온갖 수사를 다해 창조해냈다. 소비로 한층 더 멋져진 청춘, 부모 세대와는 다른 빛나는 청춘, 놀아서 즐거운 청춘, 모험적이어서 진취적인 청춘, 에로틱한 몸을 가져서 더 탐나는 청춘 이런 식으로 말이다. &lt;br /&gt;&lt;br /&gt;광고는 청춘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일에만 그치진 않았다. 모두가 청춘을 꿈꾸는 소비자로 옮겨가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청춘이야말로 온 사회가 꿈꾸어야 하는 대상인 것처럼 포장해냈다. 노인도, 장년도, 어린이도 청춘이라는 범주야말로 가장 축복받은 것인 양 여기도록 꾸며냈다. 나이든 이들은 회춘을 꿈꾸고, 어린 사람들은 그 빛나는 범주를 하루라도 빨리 들기를 동경하며 모방하게 만들었다. 사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인구들이 있건만 모두가 머리 속에 청춘을 입력하며 살아가도록 광고는 주문을 해댔다.&amp;nbsp; &lt;br /&gt;&lt;br /&gt;이제 광고와 청춘은 뗄 수 없는 일란성 쌍둥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시작된 광고의 큰 프로젝트가 이젠 관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광고들은 그 관습을 반복하고 있다. 늘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캐릭터, 젊은 층의 새로운 유행을 선발해 관습에 얹으면 그만이었다. 젊은 리얼리즘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 외에 광고는 별 다른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 청춘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고 새롭게 청춘을 구성해내자던 과거의 큰 프로젝트에 비하자면 지금 광고업계는 자잘한 프로젝트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lt;FONT color=#000080&gt;광고, 관습적으로 청춘 예찬…젊은 몸에 대한 욕망 부추겨&lt;/FONT&gt;&lt;/STRONG&gt; 
&lt;P&gt;광고가 관습적으로 반복하는 청춘, 젊은 리얼리즘은 너무도 익숙해 긴 설명도 필요치 않다. 그 모습들을 간단하게 일별해보자. 그 첫째는 젊은 몸에 대한 욕망의 강조다. 광고 속 모델들은 젊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탱탱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몸은 노동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나 노동으로 얻은 몸 보다 훨씬 더 세련되어 있고, 탐낼만한 대상으로 변해 있다. 소비만으로 가꾸어질 수 있는 몸, 헬스클럽을 소비해 멋있어진 몸, 화장품을 소비해 탄력 있어진 몸, 광고된 음식을 소비해 건강해진 몸, 비싼 의상에 휩싸여 더 멋있어진 몸으로 전해지고 있다. &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47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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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mediatoday.co.kr/news/photo/200711/62376_64104_46.jpg&quot; border=1&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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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탐낼 만한 대상으로서의 몸은 그에 멈추지 않고 즐거운 몸으로 자리를 옮긴다. &lt;br /&gt;&lt;br /&gt;젊어서 즐거운 몸, 즐겁게 만들어야 하는 몸, 희노애락을 소통하는 몸, 보여서 즐거운 몸으로 광고는 젊음을 옮겨 놓는다. 광고는 늘 에로틱해 보이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lt;br /&gt;&lt;br /&gt;‘부비부비 춤’을 싣지 못하는 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비 보이’를 해내지 않은 젊은 몸은 나무토막으로 별칭 된다. 섹시하지 않은 젊은 몸은 수도원과 연결되고 만다. 에로틱하게 역동적인 젊은 몸. 광고가 꿈꾸고, 꿈꾸게 만드는 젊은 리얼리즘이다.&amp;nbsp; &lt;br /&gt;&lt;br /&gt;광고 속 젊음은 진취성과 모험성으로 포장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음으로 포장된다. 그래서 광고 속 젊음은 한국이라는 경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 어떤 배경도 이국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미래형 생활 터전인 메트로폴리스가 배경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젊음을 욕망하게 하는 광고들은 인간만의 세상에도 갇히지 않는다. 로봇을 부리고, 혹은 스스로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자신의 몸 안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사해동포적인 것처럼 보인다. 늘 코스모폴리탄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때론 사이보그적인 모습을 띤다. &lt;br /&gt;&lt;br /&gt;지상파 방송 속의 주류 광고들에서 젊은 리얼리즘이 펼쳐지지만 이면에서는 낯선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의 풍파를 겪은 나이든 모델들은 지역 홈 쇼핑 채널들에서 아픈 몸들을 과시(?)하고 있다. 무릎이 아프고, 위장이 편치 않아 걱정이라는 중년의 배우들이 온갖 약 봉지들을 들고 나기에 분주하다. 생약, 보약, 영양제, 보양식품. 고통으로부터 편해질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펼쳐놓기에 바쁘다. 늙은 리얼리즘은 제 한 몸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주류 광고 속 젊은 리얼리즘, 비주류 광고 속 늙은 리얼리즘. &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lt;FONT color=#000080&gt;매체와 광고의 공모&lt;/FONT&gt;&lt;/STRONG&gt; &lt;br /&gt;&lt;br /&gt;광고의 기운은 광고적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광고의 기운은 그것이 앞뒤로 옥죄고 있는 프로그램 안으로도 전해지게 마련이다. 광고 속 젊은 리얼리즘은 어김없이 매체 속 젊은 리얼리즘으로 전이된다. 광고 탓만은 아니겠지만 방송 속 어디 한 곳, 젊은 리얼리즘으로 치장되지 않은 곳이 없다. 탱탱하고, 섹시한 몸,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힘, 끝 간 데 없어 보이는 에로틱한 분위기,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어지러움을 선사하는 짧은 호흡의 유행이 넘치고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 기운은 흘러 넘치고 있다. &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2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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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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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덕택에 늙은 리얼리즘은 방송 속에서 주책의 주체이거나 온정의 대상으로 변한 지 오래다. 노인네들은 늘 시골과 연관될 뿐이어서, 메트로폴리스로 빠져나간 젊은 자식들을 걱정하는 편지를 연발할 뿐이다. &lt;br /&gt;&lt;br /&gt;그리고 고향과 전통의 지킴이로 온정의 박수를 받는 객체로 인식된다. 한국을 벗어난 노인들의 해외관광은 사치이거나 보신관광으로 재현되는 것에도 우리는 익숙해있다. 전철에서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로 그려질 즈음이면 악의적 재현은 아닐까 분노도 솟구칠 정도다. &lt;br /&gt;&lt;br /&gt;그나마 요즘은 방송 속에서 나이든 이들이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는 지적도 빈번할 정도다. 젊은 리얼리즘을 풍부하게 해줄 스타를 기용하다 보니 나이든 연기자들에게 돌아갈 출연료 몫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lt;br /&gt;&lt;br /&gt;그래서 아예 부모 없는 젊은이들, 나이든 이들이 얼굴을 감춘 동네, 고향이 없는 등장인물들을 만나는 일이 허다하다. &amp;nbsp;&amp;nbsp; &lt;br /&gt;&lt;br /&gt;광고하는 이들이 볼멘 목소리를 낼 지도 모르겠다. 매체에 돌려야 할 비판을 광고로 돌린 오조준이라고 말이다. 광고에게 그 같은 문화적 책무까지 떠넘기는 일은 과한 일이라는 역공을 해댈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광고에 가했던 표현을 조금은 완화시켜보자. 광고는 젊은 리얼리즘의 주변인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광고는 매체와 함께 젊은 리얼리즘을 형성해내는데 공모하고 있는 듯 하다. 광고는 방송 프로그램의 앞뒤에 붙어 공모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젊은 리얼리즘이 온 사회에 흘러넘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amp;nbsp; &lt;br /&gt;&lt;br /&gt;자본주의가 본 궤도에 안착하면서 시작된 청춘의 재구성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광고인들은 그 큰 프로젝트에 젖줄을 대며 자잘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젊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반 사회적인 그 프로젝트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만약 광고를 하는 일이 정말 창의적이고, 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혹 그런 긍지와 책무감을 광고인이 지녀야 한다는데 동의를 한다면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전 세기에서 벌였던 큰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큰 프로젝트를 한번 시행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무임승차적 관습이라는 굴레를 던져버릴 것을 권하고 싶다. &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lt;FONT color=#000080&gt;“사람이 사업”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쳐라&lt;/FONT&gt;&lt;/STRONG&gt;&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03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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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청춘이 사업”이라는 슬로건을 접고, “사람이 사업”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칠 것을 제안한다. 다양한 연령층에 마다 그에 맞는 취향이 있다. &lt;br /&gt;&lt;br /&gt;젊은 몸이 부럽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나이에 맞춘 몸을 사회와 더불어 가자는 사람도 있다. 시골에서 고향을 지키지만 과거 전통의 굴레로부터 한참 벗어난 채 살아가는 삶도 있다. &lt;br /&gt;&lt;br /&gt;에로틱하지 않은 몸으로도 사랑을 지피고, 사랑의 소통을 향기롭게 펼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젊지 않음은 축복일 수도 있다. 그만큼 젊잖게 책임감 있게 사회에 자신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젊은 리얼리즘에만 줄을 댄 광고가 다양한 연령층에,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이 펼치는 다양한 삶들에 보급선을 댄다면 지금보다는 화려하진 않지만 건강하고, 풍부하지 않을까. 건강하고 풍부한 광고로부터 학습 경험을 한 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그 같은 요청을 해내지 않을까. &lt;br /&gt;&lt;br /&gt;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광고는 매체와 전혀 다른 형태의 공모를 시작하게 된다. 오래 전에 시작된 그 낡은 큰 프로젝트를 딛고 서는 전혀 새로운 큰 프로젝트를 해낸 사회적 제도로 오래 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 쯤 되어야 광고인들도 사회에 기를 펴고 발언이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lt;/P&gt;&lt;div class=&quot;blogger-news-widget&quot; style=&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quot;&gt;
	  			&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align=&quot;middle&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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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칼럼</category>
			<category>광고</category>
			<category>리얼리즘</category>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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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8 Oct 2006 16:29: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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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임성한과 노희경 작가의 너무나 다른 &#039;비밀&#039;</title>
			<link>http://zime.co.kr/19</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김연실 기자&lt;br /&gt;&lt;/DIV&gt;&lt;br /&gt;드라마의 작가주의 시대가 도래했는가. 몇 년 전만 해도 새 드라마를 홍보할라치면 그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이름이 그 전선에 서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슷비슷한 드라마들이 여주인공과 &#039;실장님&#039; 이름만 바꾼 채 등장하기가 일쑤였고 시청자들 역시 신데렐라 스토리에 후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이제는 달라졌다. 거기서 거기인 시나리오를 가지고서는 아무리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톱스타와 함께라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80년대 생인 필자에게 있어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정옥 작가의 &amp;lt;네 멋대로 해라&amp;gt;에서부터였다. &lt;br /&gt;&lt;br /&gt;물론 이전에도 김수현 작가 등이 그 아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amp;lt;네 멋대로 해라&amp;gt;처럼 배우들보다 작가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같은 분위기 속에 &amp;lt;인어아가씨&amp;gt;의 임성한, &amp;lt;미안하다 사랑한다&amp;gt;의 이경희, &amp;lt;내 이름은 김삼순&amp;gt;의 김도운 등 스타 작가들이 탄생하거나 새롭게 주목받았다. &lt;br /&gt;&lt;br /&gt;작가의 이름을 내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드라마 작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존재였고 독특한 스타일로 인정받은 작가들은 일정한 단골 시청자들을 보유한 상태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야기 자체의 중요성을 깨달은 방송사가 스타작가 발굴에 앞장서면서 시청자들은 다양한 스타일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lt;br /&gt;&lt;br /&gt;&lt;B&gt;숨겨진 진실에 대한 다른 이야기 &lt;/B&gt;&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righ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a href=&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S5qcGc=&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5.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0OTM5OEBmczU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0MDAwMDAwMDAwMS5qcGc=&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32&quot; width=&quot;480&quot;/&gt;&lt;/a&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30%&quot; color=#3a6e7c&gt;▲ &amp;lt;하늘이시여&amp;gt;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date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30%&quot; color=#3a6e7c&gt;ⓒ2006 sbs&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여기서는 두 명의 작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현재 SBS의 &amp;lt;하늘이시여&amp;gt;를 통해 높은 시청률은 물론 화제를 낳고 있는 임성한 작가와 KBS의 &amp;lt;굿바이 솔로&amp;gt;로 사랑받고 있는 노희경 작가다. 임성한은 2002년 &amp;lt;인어아가씨&amp;gt;를 통해 주목 받은 뒤 &amp;lt;왕꽃 선녀님&amp;gt;을 통해 스타작가로 자리매김한 작가이며 노희경은 &amp;lt;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amp;gt; &amp;lt;거짓말&amp;gt; 등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lt;br /&gt;&lt;br /&gt;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계속 다음 회를 보도록 하는 것은 그 드라마가 보유하고 있는 &#039;어떤 비밀&#039;에 있다. 그 비밀은 때로는 등장인물들은 모르되 시청자들은 아는 것이며 혹은 등장인물도 시청자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lt;br /&gt;&lt;br /&gt;흔히 등장하는 출생이나 삼각관계의 비밀은 시청자들은 모두 알지만 등장인물들은 죽어라 모르다가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어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게 하는 장치이다. 이에 반해 마치 추리물처럼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시청자조차 그것을 알 수 없어 등장인물들과 함께 그 비밀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lt;br /&gt;&lt;br /&gt;임성한 작가가 즐겨 쓰는 &#039;비밀&#039;은 출생 및 혈연관계의 비밀이다. 현재 방송중인 &amp;lt;하늘이시여&amp;gt;는 한 중년여성이 어릴 적 잃었던 딸과 함께 살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기고 딸을 현재 자신의 아들(실제로 낳지는 않은)과 결혼시킨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lt;br /&gt;&lt;br /&gt;과거 &amp;lt;인어아가씨&amp;gt;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여성이 배다른 언니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보다 자극적인 정도에 있어 그 강도가 세졌다. 그와 같이 파격적인 설정을 기본으로 하고 이로 인해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와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lt;br /&gt;&lt;b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center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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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righ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ohmynews/2006/04/02/betrayed_283103_1[440243].jpg&quot; width=500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30%&quot; color=#3a6e7c&gt;▲ &amp;lt;굿바이 솔로&amp;gt;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date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30%&quot; color=#3a6e7c&gt;ⓒ2006 kbs&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노희경 작가의 &amp;lt;굿바이 솔로&amp;gt;의 비밀은 한 마디로 말하기가 다소 힘들다. 등장인물 각자가 서로 다른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상황을 모두 설명하면 장황해질 것이니 간추려 말하자(자세한 이야기는 드라마 공식홈페이지&lt;A href=&quot;http://www.kbs.co.kr/drama/&quot; target=_blank&gt;http://www.kbs.co.kr/drama/&lt;/A&gt;&lt;br /&gt;goodbyesolo/index.html 참고). &lt;br /&gt;&lt;br /&gt;주요 7명의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과거의 상처들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 상처는 부모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친구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져야 할 사람들 사이의 상처라고 해두자. &lt;br /&gt;&lt;br /&gt;두 작품의 차이점은 앞서 말한 &#039;누가 비밀을 아는가&#039;이다. &amp;lt;하늘이시여&amp;gt;의 경우 이미 제작 단계에서부터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로 인해 &#039;그 비밀&#039;은 등장인물들만 제외하고 모두 아는 비밀이 되었다. &lt;br /&gt;&lt;br /&gt;시청자들은 이 중년여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언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까 함께 노심초사하면서 드라마를 지켜본다. 덕분에 모든 상황은 &#039;그 비밀&#039;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드라마에 대한 집중력 또한 거기서 발생한다. 이런 드라마의 경우 진실이 드러나는 시점에 이르러 시청률이 최고조에 이른다. &lt;br /&gt;&lt;br /&gt;&amp;lt;굿바이 솔로&amp;gt;는 이와는 달리 &#039;함께 비밀을 찾아보자&#039;의 상황으로 시청자를 초대한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인 오 여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오 여사는 겉으로 보아 &#039;잘 나가는 사모님&#039;이다. &lt;br /&gt;&lt;br /&gt;그러나 실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는데 이를 속이고 결혼했다는 죄로 남편에게 정신병자 소리를 듣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늘 소위 &#039;쿨하게&#039; 큰소리치고 자신감이 넘치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늘 잘해도 &#039;늘 거짓말하는 인간&#039;으로 취급당한다. 이것은 오 여사의 첫 번째 비밀이었다. &lt;br /&gt;&lt;br /&gt;그리고 이제 시청자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마주치는 오 여사를 만나고 있다. 더 깊숙이 숨겨져 있었던, 그녀를 거짓말하는 사모님으로 만들어 버린 아픈 상처가 서서히 드러나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오 여사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비밀 역시 한 꺼풀씩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lt;br /&gt;&lt;br /&gt;&lt;B&gt;진정한 승자는 누가 될까 &lt;/B&gt;&lt;br /&gt;&lt;br /&gt;이처럼 다른 비밀과 진실을 지닌 두 드라마는 시청률에 있어서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amp;lt;하늘이시여&amp;gt;는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소위 인기 드라마의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쏟아지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amp;lt;굿바이 솔로&amp;gt;는 10%대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드라마의 편성과 주요 시청자들의 연령 등 두 드라마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러한 상황을 전제하고라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lt;br /&gt;&lt;br /&gt;어쩌면 그 차이는 숨겨진 진실의 파급 효과에 있는지도 모른다. &amp;lt;하늘이시여&amp;gt;에서는 비밀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이 집중되어 있고, 그 설정 자체의 파격성 때문에 진실이 밝혀졌을 때 드라마 내에서 일어날 파급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을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서 현재 주인공들은 전에 없이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t;br /&gt;&lt;br /&gt;이에 반해 &amp;lt;굿바이 솔로&amp;gt;에서의 &#039;비밀누설&#039;은 상대적으로 잔잔하게 비춰진다. 그것은 그 비밀이라는 것이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는 함구된 것이라 할지라도 비밀의 주인공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비밀, 즉 과거의 상처를 알게 된 후에도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039;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039;이다. 그런 점에서 그 비밀이란 것은 사실 드라마 내에서 반응한다기보다 시청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lt;br /&gt;&lt;br /&gt;이제 우리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두 작가가 그 비밀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진실과 그 과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amp;lt;하늘이시여&amp;gt;의 비밀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amp;lt;인어아가씨&amp;gt; 때부터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는 소위 대한민국 상류층의 생활정보 외에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039;부모의 잘못은 자식으로 되물림되며 정상적인 가정을 해친다&#039; 정도로 볼 수 있겠다. &lt;br /&gt;&lt;br /&gt;그리고 드라마의 모든 이야기가 그 비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각 인물들 역시 그 비밀들로 인해 존재하면서 가벼움을 떨칠 수 없다. 즉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여러 관계를 맺고 있지만 모든 것이 &#039;그 비밀&#039;을 위해 형성된 것으로 그 부분을 제외하면 각각의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amp;lt;하늘이시여&amp;gt;의 인물들을 보면서 &#039;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039; 혹은 &#039;저 사람의 과거는 어땠을까&#039;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곧 &#039;비밀을 위한 비밀&#039;과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lt;br /&gt;&lt;br /&gt;&amp;lt;굿바이 솔로&amp;gt;의 경우 이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 &#039;7명이 모두 주인공이다&#039;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 깊이는 그들이 간직한 아픈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 가운데에서 드러난다. 각자의 존재감은 다른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색깔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비밀 그 자체보다 한 사람으로서의 인물들 하나하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lt;br /&gt;&lt;br /&gt;그것은 곧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각자의 상처와 비밀로 얼룩진 내면을 숨기고 위태롭게 쿨한 척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자아가 &amp;lt;굿바이 솔로&amp;gt;의 인물들에 투영되어 있다. &lt;br /&gt;&lt;br /&gt;그래서 그들의 비밀이 시청자들에게 누설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대신 공감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그의 앞선 작품들에서처럼 &#039;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039;는 비밀과 &#039;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아간다&#039;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lt;br /&gt;&lt;br /&gt;자,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너무 뻔한 것이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039;하늘이시여!&#039; 한탄하며 &#039;왕자 커플&#039;의 닭살 행각을 견뎌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녹록하지 않은 삶과 너무나 닮아 있는 7명의 인물들의 비밀과 진실을 잠시나마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른다.</description>
			<category>What&#039;s up TV?</category>
			<category>노희경</category>
			<category>드라마</category>
			<category>오마이솔로</category>
			<category>임성한</category>
			<category>작가주의</category>
			<category>하늘이시여</category>
			<author>ZI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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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2 Apr 2006 01:29: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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